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1291 - Chapter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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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1화

바로 그때, 고이한의 등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마워.”고이한은 놀란 듯 몸을 돌렸다.곧 소예지의 맑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 눈빛에는 진심 어린 감사가 담겨 있었다. 방금 전 주경호와 나눈 대화를 모두 들은 것이 분명했다.“고맙다는 말은 안 해도 돼.”고이한이 낮게 답했다.“이 장비가 현욱 씨 치료에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할 거야. 대신 고맙다는 말은 꼭 하고 싶었어.”고이한은 시선을 살짝 내렸다. 짙은 속눈썹이 눈 아래로 그림자를 드리웠다.소예지의 이 한마디는 임현욱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이미 가족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그때 옆에 있던 주경호가 자연스럽게 말을 받았다.“소 박사. 고 대표도 도와주고 있으니까 현욱이 치료도 잘될 거예요.”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고이한을 바라봤다.이 장비를 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가 적지 않은 공을 들였다는 사실 역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주경호는 손목시계를 한번 확인하더니 말했다.“회의가 있어서 먼저 가봐야겠네요.”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주경호가 자리를 뜨자 소예지가 입을 열었다.“난 좀 더 있다가 갈게. 바쁘면 먼저 가.”말을 마친 소예지는 돌아서서 다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고이한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천천히 엘리베이터 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병원을 나서자 오후의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앉은 고이한은 곧바로 시동을 걸지 못했다. 방금 전 임현욱을 바라보던 소예지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진솔하면서도 담담했던 그 눈빛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 남아 있던 원망과 응어리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듯했다. 소예지는 더 이상 그를 원망하지 않았고 그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도 않았다.그저 담담하게 그의 도움을 받아들이고 다른 남자를 위해 진심으로 감사를 전할 뿐이었다.그 순간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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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2화

소예지는 가볍게 대답하며 앞으로 다가섰다.“내가 안을게.”고이한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내가 안을게.”말을 마친 그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딸을 안은 채 안방으로 걸어갔다.소예지도 조용히 뒤를 따랐다.고이한은 품에 안은 고하슬을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그런데 막 눕히자마자 고하슬이 눈을 비비며 다리를 쭉 뻗더니 몸을 뒤척였다. 잠결에 살짝 보채는 기색까지 보였다.고이한은 곧바로 쭈그려 앉아 큰 손으로 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고하슬이 익숙한 아빠의 온기를 느끼며 다시 편안한 잠에 빠져들 수 있도록 다정하게 토닥여 주는 손길이었다.고하슬이 마침내 깊은 잠에 빠진 것을 확인한 뒤에야 그는 이불을 꼼꼼히 덮어주었다.딸을 재운 뒤 고이한이 몸을 돌려 소예지를 바라봤다.“일찍 쉬어.”소예지는 아래층까지 그를 배웅했다.문 앞에 도착하자 고이한이 돌아서서 소예지를 바라봤다. 어둑한 조명 아래 그의 눈빛은 유난히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그 사람 깨어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어느 정도 확신은 있어?”소예지는 잠시 멈칫했다.몇 초 동안 생각을 정리한 뒤 솔직하게 답했다.“뇌-컴퓨터 접속 기술 자체는 이론적으로 가능해. 하지만 실제 적용에는 아직 불확실한 부분이 많아. 그래도...”소예지가 고개를 들었다.눈빛이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고이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미 많이 도와줬잖아.”소예지가 말한 것은 그 장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고이한은 그녀의 지친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시 한번 말했다.“일찍 쉬어.”말을 마친 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소예지는 문 앞에 잠시 서서 닫힌 문을 바라봤다.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잔잔한 물결처럼 번져갔다.오후에 편정우에게 물어본 뒤에야 그녀는 그 최신 모니터링 장비가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알게 됐다.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고이한은 자신의 바이오테크 회사가 가진 가장 중요한 협상 카드를 내걸고 D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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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3화

소예지는 벌떡 일어나 곧바로 사무실 문을 열고 실험실로 달려갔다. 이호연의 옆에 선 그녀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이호연 역시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방금 서른두 번째 시뮬레이션 테스트를 완료했는데 목표 신경세포 반응이 전부 93퍼센트에 도달했어요. 우리가 설정한 임계치를 훨씬 뛰어넘었습니다.”소예지는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며 물었다.“오차 범위는요?”“완전히 안전 범위 안으로 통제됐습니다.”이호연은 컴퓨터 화면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더 중요한 건 소 박사님이 구축한 신경세포 전파 패턴이 주변 기능 영역과 안정적인 연결 구조를 형성했다는 거예요. 임현욱 씨가 외부 신호를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 조건만 갖추고 있다면 깨어나게 할 가능성이 생긴 겁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소예지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석 달 만에 처음으로 희망이 단순한 가능성이 아닌 현실의 형태로 눈앞에 다가온 것 같았다.“소 박사님. 바로 다음 테스트 들어가야 해요.”이호연의 재촉에 소예지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늦게 들어가게 될 것 같아 휴대전화를 꺼내 고이한에게 문자를 보냈다.[오늘 밤 하슬 재워줄 수 있어? 늦게 들어갈 것 같아서.]곧바로 답장이 도착했다.[얼마나 늦는데?]소예지는 잠시 고민하다 답장을 보냈다.[아마 새벽 넘을 것 같아.]정확히 장담할 수 없는 일정이었다.잠시 후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김 비서 보낼게.]소예지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괜찮아. 임 이사한테 부탁할게.]괜히 그쪽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고이한의 답장은 예상보다 빨랐다.[다른 사람은 마음이 안 놓여.]소예지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답장을 보냈다.[알겠어.]그날 소예지는 깊은 밤까지 테스트를 이어갔다.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좋았고 실험실 문을 나서며 가방을 챙겼을 때는 이미 새벽 한 시를 훌쩍 넘긴 뒤였다. 도시 전체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시간이었다.김경환은 차를 몰고 실험실 앞에서 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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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4화

식탁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모처럼 여유로운 아침 식사를 했다.“어젯밤 테스트 결과가 좋다고 들었는데.”고이한이 고개를 들어 소예지를 바라봤다. 실험실 소식을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말이었다.소예지의 눈빛이 한층 밝아졌다.“맞아. 이번 테스트 결과가 예상보다 훨씬 좋았어. 안정적인 신경 신호 경로를 성공적으로 구축했거든...”설명하던 소예지가 문득 말을 멈췄다.맞은편에 앉은 고이한은 그녀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지만 갑자기 말이 끊기자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라고 생각해 설명을 줄인 건가 싶었다.소예지는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의학적으로 보면 상당히 큰 진전이라고 할 수 있어.”고이한의 눈빛에 잔잔한 인정이 스쳤다.하지만 곧 소예지의 표정이 조금 무거워졌다.“그런데 다음 단계는 위험 부담이 커. 뇌 안에 초소형 전극을 삽입해야 하는데 그 자체가 굉장히 정밀한 수술이거든.”“주 총장님 팀이 있으니까 잘될 거야.”고이한의 말에 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지.”그렇게 대답한 그녀는 다시 숟가락을 들어 죽을 먹기 시작했다. 몹시 허기가 졌는지 평소보다 먹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랐다.그때 맞은편에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예지.”소예지가 고개를 들었다.“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지금까지 해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야.”잠시 멈칫하던 소예지는 맞은편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고마워.”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그 뒤로는 식탁 위에 그릇과 숟가락이 부딪히는 소리만 조용히 오갔다.식사를 마친 뒤 소예지가 그릇을 치우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고이한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내가 할게. 쉬어.”“괜찮아. 내가 할게.”소예지도 손을 뻗어 고이한 앞에 놓인 그릇을 집으려 했다. 하지만 마침 같은 순간 고이한도 손을 뻗은 탓에 두 사람의 손끝이 그릇 가장자리에서 가볍게 맞닿았다.소예지는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고이한 역시 잠시 동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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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5화

소예지가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직 여유가 있었다.“실험실 근처에서 먹자.”고이한은 고개를 끄덕인 뒤 아이패드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내가 운전할게.”소예지는 간밤에 너무 무리한 탓인지 머리가 아직도 조금 무거웠다. 오후 회의를 생각하면 이동하는 동안이라도 눈을 붙이는 게 나았다.차에 오른 뒤 소예지는 뒷좌석에 기대 눈을 감았다. 고이한도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대신 운전하는 내내 백미러를 통해 가끔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실험실 맞은편 중식당 앞에 차가 멈춰 섰을 때, 소예지는 눈을 뜨고 미간을 가볍게 주물렀다. 그러다 고개를 드는 순간 깊고 짙은 눈빛과 마주쳤다. 마침 고이한이 백미러를 통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두 사람의 시선은 백미러 안에서 잠시 맞부딪혔고 먼저 시선을 거둔 것은 소예지였다.“다 왔어?”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묻자 고이한이 짧게 답했다.“응.”그는 안전벨트를 푼 뒤 먼저 차에서 내려 소예지 쪽 문을 열어주었다.두 사람은 나란히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인테리어가 단정하면서도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실험실 직원들이 자주 찾는 식당이기도 했다.그 순간 창가 쪽에 앉아 있던 안채린의 표정이 굳어졌다.성양 그룹은 이미 파산했지만 안채린은 민간 프로젝트 부서의 자리만큼은 가까스로 지켜냈다. 아버지는 빚을 피해 해외로 떠났고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대저택을 떠나 실험실 근처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값나가는 물건들은 모두 처분했다. 한때 자랑하던 벤틀리 스포츠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안채린은 이 식당에서 소예지와 고이한을 마주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늘 높은 곳에 있던 고신 그룹 대표가 지금은 소예지를 위해 직접 의자를 빼주고 있었다. 그 동작은 자연스럽고 다정했다.성양 그룹은 무너졌고 안채린 역시 높은 곳에서 진흙탕으로 떨어져 수많은 냉대와 조롱을 견뎌야 했다. 성양 그룹의 파산이 고이한의 손에서 비롯됐다는 소문도 들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안채린은 그를 원망할 수 없었다.바로 그때 식당 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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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6화

안채린은 예전에 고이한을 향해 형부라고 불렀을 때 자신을 내려다보던 차가운 눈빛을 떠올렸다. 그리고 방금 소예지를 바라보던 그의 시선도 함께 떠올랐다. 믿기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눈빛이었다.“안채린. 우리 이제 들어가야지? 오후에 정리할 자료가 산더미야.”여자 동료의 목소리가 그녀의 생각을 끊었다.“응.”안채린은 황급히 시선을 거뒀다. 예전에 형부라고 불렀던 일이 다시 떠오르자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녀는 서둘러 가방을 챙긴 뒤 먼저 식당을 빠져나갔다.한편 소예지와 고이한의 테이블에서는 뇌-컴퓨터 접속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예전에 이사회에서 약속했던 3년 계획 말이야. 이제는 충분히 실현 가능할 것 같아. 적어도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거야.”소예지의 말에 고이한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당시 그가 프로젝트 투자를 결정했을 때 이사회에서는 온갖 의심과 반대가 쏟아졌다. 그때 소예지는 혼자서 그의 편에 섰고 직접 3년 계획을 세워 이사들을 설득해 냈다.돌이켜 보면 두 사람은 언제나 서로를 이루어주고 있었다.그때 고이한은 문득 소예지의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알아챘다. 얼마 먹지도 못한 채 숟가락을 내려놓았고 손으로 이마를 가볍게 문지르는 모습에서도 피곤함이 묻어났다.“좀 더 먹어.”고이한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회의까지 아직 한 시간 남았어.”소예지가 고개를 젓는 순간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이어 머리가 핑 도는 듯 몸이 살짝 흔들렸다.고이한의 표정이 즉시 굳었다.“왜 그래? 몸 안 좋아?”소예지는 손을 내저었다.“괜찮아.”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채기가 두 번 더 터져 나왔다. 코끝은 금세 붉어졌고 얼굴에도 부자연스러운 홍조가 번졌다.그 변화를 놓치지 않은 고이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예지가 반응할 틈도 없이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곧바로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열 있어. 지금 당장 병원 가야 해.”낮고 단호한 목소리였다.“안 돼.”소예지는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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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7화

소예지는 전화를 끊은 뒤 앞에서 운전하고 있는 고이한을 향해 말했다.“회의 한 시간 미뤄졌어.”고이한은 백미러 너머로 그녀를 바라봤다.“그럼 좀 자도 되겠네.”“응. 잠깐 눈 좀 붙일게.”소예지는 가운데 팔걸이를 내린 뒤 몸을 기댈 수 있는 편한 자세를 잡았다. 약기운이 돌기 시작한 탓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고이한은 신호 대기 중 잠시 뒤를 돌아봤다. 곤히 잠든 소예지를 확인한 뒤 차 안 온도를 적당하게 조절했다.차는 그렇게 십여 분을 안정적으로 달렸다. 이후 시내의 소음에서 한참 떨어진 호숫가 공원 옆에 조용히 멈춰 섰다.고이한은 차에서 내려 자신의 수트 재킷을 가져와 소예지의 몸 위에 조심스럽게 덮어주었다. 그녀를 깨우지 않으려는 듯 움직임마저 조심스러웠다.다시 운전석으로 돌아온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조용히 업무를 처리했다.시간은 소리 없이 흘러갔다.어느새 사십 분이 훌쩍 지나 있었고 고이한은 그제야 차를 출발시켜 실험실 쪽으로 향했다.소예지는 잠들기 전 알람을 맞춰둔 모양이었다.실험실 주차장에 차가 막 들어선 순간 휴대전화 알람이 울렸고 소예지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아직 정신이 채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몸 위를 덮고 있는 수트 재킷이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잠시 멈칫했다.이상하게도 예전처럼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재킷을 벗어 옆에 내려놓은 뒤 이마를 가볍게 주무르며 말했다.“내리자.”고이한은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다가 입꼬리를 아주 살짝 올렸다.예전 같았으면 소예지는 귀찮다는 듯 재킷을 한쪽으로 던져버렸을 것이다.“좀 나아졌어?”차에서 내리며 고이한이 물었다.“많이 나아졌어.”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였다.목소리에는 아직 코맹맹이 소리가 남아 있었지만 안색만큼은 분명 전보다 좋아 보였다.“고마워.”소예지가 고개를 들어 말했다.고이한의 눈빛이 순간 살짝 굳었다.“우리 사이에 아직도 그렇게 격식 차려야 해?”소예지는 대답하지 않았다.노트북 가방을 든 채 실험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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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8화

“응.”소예지는 짧게 대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다.두 사람은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소예지에게 제대로 링거를 맞고 쉬어야 한다며 혈액 검사까지 진행했다. 다행히 바이러스성 감기는 아니었다. 최근 계속된 과로에 몸이 버티지 못하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소예지는 텅 빈 링거실에 앉아 주삿바늘이 꽂힌 손등을 내려다봤다. 잠시 후 고이한이 따뜻한 물 한 잔을 들고 와 그녀에게 건넸다.병원 에어컨은 생각보다 강했다. 열이 오르고 있었지만 몸은 오히려 으슬으슬 추웠고 소예지는 팔짱을 낀 채 한기를 견디려 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고이한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잠시 후 돌아온 그의 손에는 수트 재킷이 들려 있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재킷을 펼쳐 소예지의 어깨 위에 덮어주었다.재킷이 내려앉자 차가운 냉기가 한순간 차단됐다.소예지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았다.“고마워.”낮게 건넨 말에도 고이한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옆자리에 앉은 채 조용히 링거가 떨어지는 모습만 바라봤다.고요한 침묵이 한동안 이어지던 가운데,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고이한이었다.“당신, 아버님이랑 정말 많이 닮았어.”뜻밖의 이야기에 소예지가 고개를 돌렸다.“예전에 소 교수님이 우리 아버지 주치의로 있을 때 일이야. 그때도 39도가 넘는 열이 있었는데 팀을 모아 치료 방안 회의를 하셨거든.”고이한의 시선이 천천히 먼 곳을 향했다.“한 손에 링거를 꽂은 채 회의를 진행하셨는데 오늘 회의실에서 당신을 보니까 그때 아버님 생각이 나더라. 정말 똑같았어.”소예지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붉은 입술이 살짝 다물렸다.분명 아버지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현욱 씨 상태를 더는 늦출 수 없어서.”“걱정하는 건 알아.”고이한의 시선은 소예지의 창백한 얼굴에 머물렀다.“하지만 당신이 쓰러지면 그게 진짜 프로젝트를 망치는 거야.”소예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마주 봤다.“어쨌든 현욱 씨를 위해 해준 일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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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9화

잠시 후 고이한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은 뒤 다시 돌아왔다.소예지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고이한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별일 아니야.”지금의 그에게는 소예지와 함께 링거실에 앉아 있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없다는 뜻이었다.소예지는 여전히 머리가 무거웠다. 최근 계속 무리한 탓에 열이 오르면 어지럼증도 더 심해졌다. 그래도 다행히 회의만큼은 끝까지 버텨냈다. 이제 주경호의 팀도 다음 치료 방향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을 터였다.삼십 분쯤 지나 간호사가 와서 바늘을 뽑아주었다.소예지는 손등에 솜을 누른 채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오래 앉아 있었던 탓인지 순간 눈앞이 핑 돌았다. 저도 모르게 눈을 감는 순간 고이한이 곧바로 팔을 붙잡았다.“걸을 수 있겠어?”낮은 목소리였다.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에서 팔을 빼냈다.하지만 고이한은 앞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걸음이 눈에 띄게 불안정해 보였다.큰 키의 고이한은 한 걸음 뒤에서 묵묵히 따라가며 그녀를 살폈고 결국 끝까지 곁을 지킨 채 소예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양희순은 반차를 낸 상태였고 고하슬도 집에 없었다. 지금 같은 상태의 소예지를 혼자 두고 가기에는 마음이 영 놓이지 않았다.문 앞에 선 고이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들어가서 같이 있을게. 양 여사 오면 갈게.”소예지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혼자 있을 수 있어.”이번에 병원까지 함께해 준 것은 고마웠지만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예지야. 고집부리지 마.”고이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지금 상태로 혼자 있으면 마음이 안 놓여.”하지만 소예지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정말 괜찮아.”고이한은 창백하면서도 고집스러운 소예지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잠시 말을 잃었다.그러다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약속할게. 그냥 옆에 있는 것뿐이야. 다른 생각은 하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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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0화

“안드레 사의 태양신 칩은 최신 기밀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라 구매 심사가 엄청 까다롭대요. 전 세계 대리점에도 물량 제한이 걸려 있어서 실험실 명의로 신청하면 최소 1년은 기다려야 하는 데다 최종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어요.”1년.그 말을 듣는 순간 소예지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자신은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임현욱의 상태는 더 이상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지금까지 어렵게 쌓아 올린 연구 성과가 칩 하나 때문에 멈춰 서게 된다는 사실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다른 방법은 없어요?”소예지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물었다. 다급함이 목소리 사이로 묻어났다.“한 가지 방법은 있는데...”이호연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업계에서 충분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직접 보증을 서고 더 높은 수준의 사업 채널을 이용하는 거예요. 듣기로는 고신 그룹이 안드레 사와 오랫동안 전략적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하더라고요. 어쩌면 고 대표님이라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소예지의 머릿속이 순간 새하얘졌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호연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고이한뿐이었다.문제는 조금 전 자신이 단호하게 돌려보낸 사람에게 이제 와서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그때 수화기 너머로 이호연의 다급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소 박사님. 이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요. 정말 시간이 없어요.”소예지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맞았다.임현욱을 위해서라면 고이한에게 부탁해야 했다. 칩값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었지만 그 칩을 확보할 수 있는 통로만큼은 반드시 고이한을 거쳐야 했다.“알겠어요. 지금 바로 얘기해 볼게요.”소예지가 결심한 듯 말하자 이호연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이에요.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통화가 끝나자 소예지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그래도 내려가야 했다.소예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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