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1311 - Chapter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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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1화

임현욱은 주경호와 아버지가 선뜻 말을 잇지 못한 채 침묵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주변 사람들 역시 시선을 피한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그 순간 가슴이 조여들었다. 안타까움과 다급함이 동시에 치밀어 오르자 그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예지 씨 지금 어디 있어요. 보러 가야겠어요.”“현욱아, 흥분하지 마. 이제 막 깨어났잖아. 몸이 아직 버티기엔 너무 약해.”임성국이 급히 앞으로 나서서 그의 몸을 붙들었다. 주현우 역시 옆에서 목소리를 낮춰 만류했다.“지금은 누워 있어야 해.”“아버지, 딱 한 번만 보게 해주세요. 정말 한 번만요.”쉬어 있는 목소리였지만 단단한 결이 느껴졌다. 방금 의식을 되찾은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눈빛에는 간절함이 가득했다.주현우와 임성국은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이미 마음을 정한 사람이라는 걸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말로는 더 이상 막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다.결국 주현우가 길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대신 밖에서 잠깐만 보는 걸로 하자. 소 박사는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해.”그는 곧바로 간호사에게 휠체어를 요청했다. 이어 임현욱을 조심스럽게 옮겨 앉힌 뒤 직접 휠체어를 밀며 병실 밖으로 향했다.복도를 지나며 임현욱은 입을 가린 채 가볍게 기침을 했다. 방금 깨어난 몸은 아직 힘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조용한 복도 끝, 유리창이 있는 관찰실 앞에 멈춰 섰다. 그 순간 유리창 너머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은은한 불빛 아래 소예지는 침대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손등에는 수액이 연결돼 있었고 병실 안에는 적막한 공기만이 감돌았다.그 곁을 지키던 고이한은 고개를 깊게 숙인 채 소예지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리고 그 손을 이마에 가져다 댄 채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주현우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긴장한 얼굴로 임현욱의 반응을 살폈다. 혹시라도 자극이 될까 걱정이 앞섰다.임현욱은 깊이 잠들어 있는 소예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 너머로 고이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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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2화

하얀 천장을 바라보는 임현욱의 눈빛이 가늘게 흔들렸다.눈가에는 옅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사랑과 죄책감, 끝내 포기하지 못한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그것은 자신이 품어온 끝내 온전히 이뤄질 수 없었던 감정에 보내는 마지막 인사였다.이제부터는 친구의 자리로 물러날 생각이었다. 앞으로 소예지가 일을 선택하든 사랑을 선택하든, 어떤 길을 걷게 되든 진심으로 응원할 생각이었다.잠시 뒤 임현욱은 의료진의 안내를 받아 정밀 검사를 받으러 이동했다. 신체 각 기능이 안정적으로 회복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그로부터 약 10분쯤 지난 뒤, 임성국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통화를 마친 그는 소예지의 병실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유리창 너머를 잠시 바라보고 있던 그때 보좌관이 조용히 병실 문을 두드렸다.고이한은 그 소리에 고개를 들어 밖을 확인했다.유리창 너머에 서 있는 임성국의 모습을 확인하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 밖으로 나왔다.“총리님.”공손한 인사가 이어졌다.“고 대표, 수고가 많았어요.”임성국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무거웠다.“경주 쪽에 긴급한 일정이 생겨서 바로 올라가야 해요. 현욱이 쪽은 주 총장님과 조 박사님이 계시니 믿을 수 있는데 소예지 이 아이가...”말끝을 흐린 채 병실 안을 바라보던 임성국은 안쓰럽다는 듯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이번에 현욱이를 위해 정말 모든 걸 다 쏟아부었네요.”“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체력이 고갈돼 실신한 것뿐이라고 합니다. 충분히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셨어요.”고이한이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임성국은 다시 시선을 거두어 고이한을 바라봤다.“고 대표, 내가 떠난 뒤에는 소예지를 좀 신경 써줬으면 해요. 꼭 잘 돌봐주길 바라요.”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고 대표와 소 박사가 우리 임씨 가문에 베풀어준 은혜는 나 임성국이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 거예요. 임씨 가문 역시 절대 잊지 않을 거고요.”총리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가진 무게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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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3화

고이한은 천천히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손을 들어 미간을 눌렀다.사흘 동안 그 역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겨우 두 시간 남짓 눈을 붙였다가 깨어나면 그 뒤로는 아무리 누워 있어도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날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한편 한 시간가량 정밀 검사를 마친 임현욱은 다시 병실로 돌아와 안정을 취하게 됐다. 신체 상태는 예상보다 양호했다. 워낙 타고난 체력이 좋은 덕분이었고 물론 아직은 회복이 우선이었기에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다.주현우는 쉬는 게 좋겠다고 권했지만 임현욱은 오히려 정신이 또렷한 상태였다. 그는 침대 옆 의자를 가리키며 조용히 말했다.“주 총장님, 앉으세요.”주현우는 그 눈빛을 보는 순간 임현욱이 무엇을 묻고 싶은지 알아차렸다.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지난 석 달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어린 시절부터 지켜봐 온 아이였기에 안쓰러운 마음도 컸다.“총장님, 제가 혼수상태에 있던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임현욱이 조심스럽게 부탁했다.주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하고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래. 네가 알아야 할 일들이 있어.”임현욱은 침대 머리에 기대어 앉았다.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눈빛만큼은 이미 맑고 침착함을 되찾은 상태였다.“말씀해 주세요.”“네가 혼수상태에 있던 석 달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주현우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우선 네 아버지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엄청난 중압감을 받으면서도 단 한 번도 너를 포기하지 않으셨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과 인맥을 총동원해 치료 방법을 찾으셨지.”임현욱의 눈가가 미세하게 붉어졌다.아버지의 사랑만큼은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다음은 소 박사야.”주현우의 목소리에는 감탄과 안타까움이 함께 배어 있었다.“그 아이는 너를 살리기 위해 정말 목숨을 걸었어. 모든 힘을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프로젝트에 쏟아부으며 기술적 난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갔지. 특히 사흘 전에는 연구팀 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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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4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던 그 순간, 이 두 사람과 그들 뒤에서 함께 버텨온 팀이 자신에게 마지막 생의 기회를 안겨주었다.그 은혜는 너무나 무거웠다.임현욱은 천천히 눈을 감고 밀려드는 감정을 가슴 깊이 눌러 담았다.“총장님, 알겠습니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한편 소예지는 또다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생생한 악몽에서 눈을 떴다. 깊은 물속에 가라앉았다가 가까스로 수면 위로 떠오른 사람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몸을 벌떡 일으켰고 그 소리에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고이한도 천천히 눈을 떴다.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것은 다급함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소예지의 얼굴이었다.“깨어났어? 현욱 씨 깨어난 거야?”소예지는 그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목소리는 잠겨 있었고 눈빛에는 간절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고이한은 그런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까지 느껴졌다.예상했던 그대로였다.소예지가 가장 먼저 걱정하는 사람은 역시 임현욱이었다.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게 저려왔지만 그는 곧바로 다른 손으로 소예지의 손을 감싸 쥐었다.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손에 힘을 실은 채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깨어났어.”소예지는 여전히 불안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그를 바라봤고 고이한은 그런 시선을 마주한 채 한마디를 덧붙였다.“완전히 의식을 되찾았고 상태도 안정적이야.”그 말을 듣는 순간 소예지는 온몸의 힘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몇 번이고 거칠게 숨을 들이마시며 가슴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사실 이번 수술은 벼랑 끝에서 억지로 밀어붙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음의 준비를 마칠 시간조차 없었고 모든 과정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단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임현욱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그가 무사히 깨어났다는 말을 듣는 순간, 오랫동안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줄이 서서히 풀리듯 느슨해졌다.마치 하늘이 마지막 순간 손을 내밀어준 것만 같았다.거대한 안도감과 뒤늦게 밀려온 두려움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덮쳐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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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5화

‘가장 좋은 모습과 상태로 임현욱 앞에 나타나고 싶은 걸까.’그 생각과 함께 자조와 씁쓸함이 뒤섞인 감정이 조용히 마음속에 번져갔다.“걱정하지 마, 어떤 모습이든 임 대위 눈에는 다 예뻐 보일 거야.”고이한이 낮게 중얼거렸다. 소예지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손을 거두고 붉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씻고 오고 싶으면 집에 다녀와도 돼.”“괜찮아.”고개를 저은 소예지를 바라보며 고이한의 입꼬리가 씁쓸하게 올라갔다.“임 대위 앞에 서는 게 그렇게 신경 쓰여?”조금 놀란 표정이 스쳤지만 사실 조금 더 단정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단지 여자로서 자연스러운 본능에 가까웠다.“지켜줘서 고마워, 이제 가서 쉬어.”말을 꺼내며 눈을 옆으로 돌리자 눈 밑에 핏발이 가득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난 괜찮아.”고이한은 다시 의자에 앉았고 소예지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건넸다.“내 휴대폰 못봤어?”시간을 확인하며 네 시간 넘게 잠들었던 사실을 알아차린 소예지는 이불을 조용히 걷고 침대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다.고이한은 미간을 좁혔지만 막지 않았고 다만 팔을 살짝 잡아주어 비틀거려 넘어지지 않도록 했다. 신발을 다 신은 후에는 소예지가 가볍게 팔을 뺐다.“고마워.”“그 말 말고 다른 건 없어?”고이한의 목소리에는 짜증 섞인 투가 느껴졌다. 형식적인 감사 인사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소예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가 목을 한 번 삼키고 말했다.“그럼... 수고했어?”고이한은 잠시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좌절인지 허탈인지 모를 감정이 스쳤다가 이내 낮은 코웃음으로 흘려보냈다. 시선이 부담스러워진 소예지는 눈길을 피하며 짧게 말했다.“가볼게.”소예지가 병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겼고 고이한은 멀어지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묵직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는 눈을 감고 그 씁쓸함을 삼킨 뒤,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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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6화

임현욱이 진심 어린 눈으로 소예지를 바라봤다.“나를 살려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래도 예지 씨도 알아주셨으면 해요. 당신이 건강하게 잘 있는 것도, 저에게는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을요.”소예지는 그가 체력 고갈로 쓰러진 상황을 말하는 걸 이해하며 눈썹을 살짝 올려 웃었다."저를 너무 약하게 보시는 거 아닌가요? 사흘 밤새우는 게 대수예요. 이 나이에 그 정도로 무슨 일이 있겠어요."병실 밖, 고이한은 복도 벽에 기대어 유리창 너머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봤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소예지의 얼굴에 번진 미소와 임현욱의 눈빛 속 부드러움은 충분히 보였다. 굳이 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병실 안에서 임현욱의 시선은 소예지를 향해 있었고 어느새 미안함과 죄책감이 깃들어 있었다.“예지 씨, 꼭 사과해야 할 일도 있고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할 것도 있어요.”소예지는 눈을 살짝 크게 뜨며 그를 바라봤다.“무슨 말씀이에요?”“이번 임무가 군사 훈련이 아니었어요. 위험 지역에 들어가 전우들을 구하는 일이었는데 떠나기 전에 말하지 못했어요. 그건 저의 잘못이에요.”소예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혼수상태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그 임무가 얼마나 위험했는지 충분히 알았던 것이다.“알고 있었어요. 사과하지 않아도 돼요.”그녀가 부드럽게 달래자 임현욱은 고개를 저었다. 결심한 듯 굳은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이번 일을 겪고 나서 꼭 해야 할 말이 생겼어요. 예지 씨, 미안해요. 저는... 예지 씨 마음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할 것 같아요.”소예지의 표정에 잠깐 당혹이 스쳤다. 이런 말을 들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임현욱은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저를 위해 이 모든 걸 해주셨는데 이런 말씀을 꺼내면 안 된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이기적으로 상처를 드리는 건 더 못하겠어요. 제 앞날도 제 일도 온통 불확실한 데다 위험투성이예요. 이번에 깨어났지만 다음에도 이렇게 운이 좋을 거라 장담할 수 없어요.”그의 시선이 창밖 복도에 희미하게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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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7화

고이한은 복도에서 조용히 20분 동안 앉아 있었다.조 박사가 간호사와 함께 장비를 밀며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정기 검사를 진행하려는 모양이었다.잠시 후, 소예지가 임현욱의 병실에서 나왔다.소예지의 얼굴에는 옅은 피로가 배어 있었지만 안색은 이미 홍조를 되찾은 뒤였다. 임현욱이 깨어났다는 사실 하나가 그녀를 이토록 달라지게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온 것, 잃었다가 다시 찾은 그 감각은 어떤 약보다 강했다.복도에 아직 앉아 있는 고이한을 보고 소예지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왜 안 간 거지.’소예지가 걸어오자 고이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물었다.“상태는 어때?”“생각보다 회복이 잘 됐어.”담담하게 대답하는 소예지를 바라보다가 고이한은 잠시 침묵했다.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어머니랑 하슬이 데리고 온천 리조트에 며칠 다녀올까 해. 거기 환경이 조용하고 쉬기도 좋고 하슬이도 기분 전환이 될 것 같아서.”소예지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봤다.“언제 결정한 거야?”딸한테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고이한의 시선이 임현욱 병실 쪽으로 잠깐 흘렀다.“일주일 전에 어머니한테 얘기했어. 당신은 이제 임현욱도 깨어났으니 앞으로 마무리 작업이 남아 있을 텐데... 꽤 바쁠 것 같아서.”말 안에는 다른 뜻이 담겨 있었다. 마무리 작업이 아니더라도 임현욱 곁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바쁠 것이라는 뜻이었다.소예지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고이한의 시선이 그녀에게 내려앉았다.“같이 갈래? 아니면... 여기 더 있을 거야?”소예지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실제로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프로젝트 마무리도 중요했고 몸도 아직 여행을 나설 상태가 아니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다녀와. 나는 빠질 수 없어.”잠시 후 덧붙였다.“당신이라면 하슬이를 믿고 보낼 수 있어. 바람 쐬게 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고.”예상한 대답이었다. 고이한의 눈 깊은 곳에 아주 희미하게 실망이 스쳤다.‘여기에 남는 건 일 때문일까, 아니면 임현욱 곁에 있기 위해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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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8화

뒤에서 꽂히는 시선은 여전히 소예지의 등에 머물러 있었다.가슴 깊은 곳에 꼭꼭 숨겨둔 채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기대는 이 순간 완전히 끝을 맺었다.고이한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 뒤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렸다.“그럼 일 봐. 나 먼저 갈게.”소예지는 그제야 고이한이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챈 듯했지만 귓가에는 이호연의 보고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당장 신경을 돌릴 여유가 없어 짧게 고개만 끄덕였다.몸을 돌린 고이한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허리는 여전히 곧게 펴져 있었지만 멀어지는 뒷모습에는 짙은 외로움이 배어 있었다.머릿속에는 한 문장이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었다.‘소예지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있어.’자신이 품고 있던 모든 마음도 여기서 끝내야 했다.소예지는 무심코 엘리베이터 홀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간이 살짝 좁혀졌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이호연의 목소리가 생각을 밀어냈다.통화를 마친 뒤 병실 안을 들여다보니 조 박사가 임현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검사는 이미 끝난 듯했다.소예지는 가볍게 노크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조 박사가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소 박사, 정말 수고 많았어요.”“제 힘만으로 된 건 아니에요. 팀 전체의 공이에요.”말을 마치다가 소예지는 잠시 멈추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고 대표가 전폭적으로 도와준 덕분이기도 하고요.”임현욱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고 대표 아직 있어요?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요.”소예지는 고개를 저었다.“볼일이 있어서 먼저 갔어요. 다음에 하세요.”임현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막 깨어난 탓인지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고 피곤한 기색도 역력했다.조 박사가 눈치를 채고 입을 열었다.“소 박사, 이제 임 대위 좀 쉬게 해줍시다.”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임현욱을 바라봤다.“현욱 씨, 저는 실험실로 먼저 가볼게요.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요.”임현욱이 부드럽게 웃었다.“예지 씨도 많이 지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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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9화

소예지는 실험실에서 마무리 작업을 했다. 팽팽하던 긴박감이 사라지자 소예지와 이호연, 이지원은 여유 있게 데이터를 정리할 수 있었다.조금 늦게 강준석도 와서 거들었다. 주로 소예지의 잡다한 일들을 도맡았다. 이지원에게 소예지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얘기를 들었고 고이한이 곁을 지켰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걱정되긴 했지만 괜한 오해를 만들고 싶지 않아 참기로 했다. 자신이 소예지와 고이한의 관계에 적잖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강준석은 그 생각 때문에 며칠째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예민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번만큼은 자꾸 되짚게 됐다.처음 귀국해서 실험실에 합류했을 때, 고이한이 자신을 대하던 태도를 떠올렸다. 분명 연적을 바라보는 불쾌함과 경계심 같은 것이었다.그 생각이 들자 강준석은 소예지와 4년 전에 나눈 채팅 기록을 뒤졌다. 소예지는 삭제했겠지만 강준석의 것은 남아 있었다. 그는 두꺼운 서류 뭉치들을 소예지 자리에 옮겨놓고 손을 탁탁 털며 걸어와 물었다.“예지야, 우리 채팅 기록 너는 다 지웠지? 고 대표가 당시 우리가 채팅한 거 알았다면... 혹시 너도 바람피웠다고 의심하지는 않았을까?”그 말이 불쑥 마음속으로 파고들었고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이 잠시 멈췄다.소예지는 미간을 좁히며 기억을 더듬었다.“채팅 기록은... 다 지웠어.”“의심했는지는 몰라. 그 사람이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으니까.”하지만 이혼 전 2년 동안, 고이한은 확실히 더 차가워졌다.심유빈과의 관계를 이전에는 소예지 앞에서 피하려 했지만 마지막 2년 동안은 소예지가 보는 앞에서 심유빈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어조가 묘하게 친밀할 때도 있었다. 혹시 일부러 보여준 건 아닐까 싶었다.‘설마 그때 이미 강 선배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알고 있었던 걸까.’대화 내용 대부분은 학술적인 교류에 불과했지만 고이한은 자존심 강하고 예리한 사람이었다. 알고 있었다면 마음에 응어리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그래서 침묵을 택한 걸까. 더 차갑게 구는 방식으로 벌을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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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0화

강준석의 죄책감이 더욱 깊어졌다.“미안해, 예지야.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그냥 너랑 얘기하면 배우는 게 많아서... 결혼 생활에 영향을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선배 잘못 아니야.”소예지가 고개를 저었다.“원래 우리 사이에는 문제가 있었어. 제대로 소통되지도 않았고, 신뢰도 부족했지. 이제는 다 지난 일이야.”강준석이 없었어도 심유빈이 있었다. 그때 고이한은 심유빈과의 관계를 털어놓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고 소예지는 끝내 그 원망을 안고 살았을 것이다.물론 돌이켜보면 고이한이 몇 번 해명하려 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소예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가 설명했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것이다.당시 소예지 상황으로는 딸아이의 유전 가능성을 알게 된 이상 오히려 더 빨리 이혼을 결심하고 고이한이 심유빈 곁에 있도록 비켜섰을지도 몰랐다.소예지는 강준석의 후회 가득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강 선배, 그만 생각해. 진짜 선배 탓 아니야.”강준석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어 소예지를 바라봤다. 마음속 깊은 곳에 차마 드러내지 못하는 비밀 하나가 있었다.사실 소예지가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강준석은 마음이 흔들렸다. 귀국한 진짜 이유도 소예지 때문이었다.소예지는 모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이한은 분명히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소예지가 실험실에 합류하는 것에 대해 고이한이 이 박사를 찾아가 압력을 넣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실험실의 이론적 토대 자체가 소예지가 제시한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고이한이라도 그녀를 내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예지야, 내가 없었더라도 너희 두 사람은...”강준석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어차피 이혼했을 거야.”소예지가 확신하듯 말했다.강준석이 갑자기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근데 예지야, 너 처음에 고 대표를 어떻게 좋아하게 된 거야? 말해줄 수 있어?”조용한 사무실 안에서 소예지는 강준석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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