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1331 - Chapter 1340

1436 Chapters

제1331화

“할머니, 저 과일 먹고 싶어요.”고하슬이 진가영의 손을 잡아당기며 앙증맞은 목소리로 말하자 미묘하게 가라앉아 있던 분위기가 깨졌다.“그래, 할머니가 체리 씻어줄까?”“네.”곁에 있던 최현숙은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진가영이 집으로 돌아와 요양하는 동안, 더는 진실을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한 그녀는 자신의 병세는 물론 심유빈이 혈액 공여자였다는 사실까지 모두 털어놓았다.최현숙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한편으로는 손자가 온 가족을 속여 왔다는 사실에 서운함이 밀려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심유빈이 멀쩡한 손자의 결혼을 망쳐 놓았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물론 가장 큰 잘못은 심유빈이 아니라 손자 고이한에게 있었다.최현숙은 야위어 버린 소예지를 바라보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예지야. 할머니랑 잠깐 나가서 바람도 쐬고 얘기도 좀 하자.”소예지는 순순히 최현숙을 따라 정원으로 향했다.최현숙의 손은 뼈마디가 도드라질 만큼 야위어 있었지만 그 온기와 힘은 여전했다. 처음 소예지의 손을 잡고 고씨 집안으로 들어섰던 그날과 다르지 않았다.“할머니는 안다. 그동안 네가 얼마나 억울했는지.”할머니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이한이 그 녀석이 잘못한 게 너무 많았지.”소예지는 할머니의 눈빛을 바라보다가 그녀가 이미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소예지는 시선을 떨군 채 침묵했다.“심유빈 일도 나 역시 최근에야 전부 알게 됐다.”최현숙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그 애한테도 잘못은 있지만 가장 큰 잘못은 결국 이한이에게 있어.”소예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할머니, 다 지난 일이에요.”최현숙은 먼 곳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한이 그 녀석은 어릴 때부터 고집이 셌어. 아비를 일찍 잃고 나서는 무슨 일이든 혼자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짐이 될까 봐 늘 전전긍긍했고.”소예지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최현숙이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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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2화

소예지는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이호연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할머니, 전화 좀 받고 올게요.”말을 남긴 소예지는 휴대폰을 들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갔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고이한이 곁으로 다가오자 최현숙은 고개를 들어 손자를 한 번 흘겨보며 물었다.“방금 예지 말, 너도 들었지?”고이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받아야 할 벌이에요.”“처음부터 그 애한테 사실대로 말했어야지. 넌 우리를 전부 속여 놓고 심유빈이 예지를 괴롭히는 것도 눈감아 줬잖니.”최현숙의 목소리에는 노여움과 안타까움이 함께 담겨 있었다.고이한은 소예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낮게 말했다.“제가 잘못했습니다.”“이제 와서 잘못했다고 한들 뭐가 달라지겠니? 예지는 이미 너한테 마음을 완전히 접었어.”그 말을 하고도 손자가 무언가 대답해 주기를 바랐지만 고이한은 끝내 입을 열지 않은 채 묵묵히 소예지가 있는 방향만 바라보고 있었다.답답한 마음이 치민 최현숙은 손자의 등을 한 번 탁 치며 혀를 찼다.“그 답답한 성격은 대체 언제 고칠 거니. 예지가 네 어디가 좋다고 그렇게 좋아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그 말을 끝으로 더는 손자를 상대하지 않고 거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몇 걸음 못 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최현숙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손자의 마음이 아직도 소예지에게 향해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눈을 감는 날까지 그 마음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고이한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할머니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했는지 모를 리 없었지만 지금 와서 무슨 말을 한들 달라질 것은 없었다.소예지는 이미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행복을 조용히 지켜주는 것뿐이었다.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소예지는 최현숙이 자리를 떠난 뒤에도 고이한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눈빛에는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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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3화

“네.”소예지의 기분도 꽤 괜찮았다.끊임없이 이어진 업무에 쫓겨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는데 오늘은 모처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했다.고수경이 온천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들을 들려주며 분위기를 띄운 덕분에 식사 자리는 한결 화기애애해졌고 고하슬은 다음에도 꼭 같이 가자며 연신 졸라댔다.밤 여덟 시 반이 넘어 식사와 과일까지 모두 마친 소예지는 슬슬 일어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그 기색을 눈치챈 고이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내가 데려다줄게. 일찍 가서 쉬어.”소예지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운전해서 갈게.”“그럼 가는 길에 나 좀 태워줄래?”고이한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묻자 소예지가 되물었다.“차 안 가져왔어?”“차는 김 비서가 일 보러 몰고 갔어.”너무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바람에 소예지도 더 묻기 귀찮아져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같이 가자.”고씨 가족과 인사를 마친 뒤 소예지는 딸의 손을 잡고 저택 밖 주차장으로 향했다. 옆에서 함께 걷던 고이한이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내가 운전할까?”“아니.”단호하게 거절하는 바람에 고이한은 더 말하지 않고 고하슬을 안고 뒷좌석에 앉았다. 하루 종일 뛰어놀아 피곤했던지 고하슬은 아빠 품에 머리를 기대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차가 출발한 지 오 분도 지나지 않아 고하슬은 완전히 잠들었다.그 무렵 소예지의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연달아 도착했다. 누군가 신이 나서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끊임없이 알림이 울렸다.신호 대기 중 휴대폰을 확인한 소예지는 발신자를 보고 미소 지었다.박시온이었다.지난번 소예지가 선물한 옷을 아들에게 입혀 찍은 사진 여러 장이 도착해 있었다.박시온은 안목이 정말 좋다며 연신 칭찬을 늘어놓았고 소예지는 사진 속 멋지고 귀여운 꼬마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웃음을 머금었다. 눈가와 입가에 번지는 미소가 한결 부드러웠다.고이한은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소예지를 저토록 웃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임현욱 말고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 탓에 시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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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4화

총리가 직접 마련한 식사 자리에 초대받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었다.고이한은 조심스럽게 안부를 물었다.“총리님, 임 대위는 몸 상태가 좀 어떻습니까?”“현욱이는 아주 잘 회복하고 있어요.”임성국의 목소리에는 안도감이 묻어 있었다.“이번에 두 사람을 부른 건 직접 만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서예요. 다만 제가 공무 때문에 A시까지 갈 수가 없어서 말이죠. 고 대표가 소 박사와 함께 한번 와주셔야겠어요.”“네. 함께 시간 맞춰 가겠습니다.”“좋아요, 그럼 그렇게 하지요. 소 박사 쪽에는 제가 따로 연락해 둘게요.”잠시 말을 멈췄던 임성국은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고 대표, 젊은 사람들 일에 제가 의견을 보탤 처지는 아니지만 이번에 현욱이가 깨어난 데에는 두 분의 공이 컸습니다.”통화를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소예지에게도 임성국의 전화가 걸려 왔다. 직접 초대를 받은 그녀 역시 흔쾌히 응했고 전화를 끊은 지 십여 분쯤 지났을 때는 고이한의 메시지까지 도착했다.[삼 일 뒤 우리 엄마한테 하슬이 맡기고 경주에 같이 가.]소예지는 짧게 답장을 보냈다.[그래.]그 뒤 이틀 동안 소예지는 다시 실험실과 육아를 오가는 일상으로 돌아갔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출발 당일이 찾아왔다.아침 일찍 고이한이 고하슬을 데리러 왔고 오전 열 시에는 그의 전용기가 출발할 예정이었다. 소예지는 갈아입을 옷 몇 벌만 간단히 챙겨 캐리어에 넣은 뒤, 여덟 시 반이 되자 고이한의 차에 올라 공항으로 향했다.운전은 김경환이 맡았고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각자 생각에 잠긴 채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소예지는 가는 내내 몇 번이나 휴대폰을 확인했다. 메시지가 올 때마다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고 옅은 화장을 한 얼굴에는 생기까지 감돌았다. 이번 경주행을 무척 기대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이번 방문은 감사 만찬에 참석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쩌면 미래의 시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일이라 기대하는 것처럼 보였다.고이한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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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5화

설마 했던 짐작이 정말 맞았다.소예지가 카드키를 대고 문을 여는 순간, 바로 옆 객실 앞에 서 있던 고이한도 그녀를 발견했다.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인지 그는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내 방이 바로 옆이야.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불러.”“고마워.”소예지는 예의 바르게 답했다.고이한은 미간을 살짝 좁힌 채 무언가 더 말하려 했지만 결국 입을 다물었다.지금은 예의를 지키는 게 맞았다.어차피 머지않아 소예지는 임씨 집안 사람이 될 터였고 앞으로 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단순한 예의만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지켜야 할 거리였다.방 안으로 들어온 소예지는 문을 닫고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이번 경주행은 그녀에게도 적잖이 긴장되는 자리였다. 원래부터 격식을 차리는 자리에 익숙한 성격이 아니었고 임씨 집안이 굳이 이렇게까지 성대하게 감사를 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이번 자리는 누가 봐도 정식으로 사례를 전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그 사실을 떠올릴수록 오히려 부담이 커졌다.그때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을 확인하니 임현욱이었다.“여보세요.”“도착했어요?”“방금 호텔에 도착했어요.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많이 좋아졌어요. 며칠만 더 요양한 뒤에 슬슬 근력 운동도 시작해 보려고요.”임현욱의 목소리는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잘됐네요. 분명 예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두 사람은 앞으로의 재활 계획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눴고 통화를 마친 소예지는 오늘 밤이면 그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한편 옆방 스위트룸에서는 고이한이 통창 앞에 서 있었다.오늘 밤 만찬에서 소예지와 임현욱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 한구석이 황량하게 비어 가는 듯했다.그는 오늘 밤을 끝으로 소예지의 삶에서 완전히 물러날 생각이었다.앞으로 딸 때문에 마주치거나 업무상 만날 일이 생기더라도 더 이상 선을 넘지 않으면서 가장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오후 내내 소예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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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6화

“총리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고이한이 겸손하게 답하자 임현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처럼 단정한 얼굴이었지만 그 안에는 미처 감추지 못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오늘 이 자리에 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모두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저는 영영 깨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잔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겠습니다.”그 말에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잔을 들어 올렸다. 임현욱은 감사의 인사를 마친 뒤 천천히 사람들을 둘러보았고 마지막으로 소예지에게 시선을 멈췄다.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치자 소예지도 가볍게 미소 지었다.임성국 역시 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그리고 오늘은 좋은 소식 하나를 더 전하려고 합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고이한은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술잔을 쥔 손가락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마침내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 나오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어느새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말을 멈춘 채 임성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예지 역시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고이한은 시선을 떨군 채 마치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판결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굳어 있었다.“저는 국가급 과학기술 지원 계획을 승인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5년 동안 10조 원 규모의 전용 자금을 투입해 인공지능과 바이오의약을 비롯한 첨단 산업의 기초 연구와 산업화를 중점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발표가 끝나자 참석자들의 눈빛이 일제히 달라졌다. 국가에도 도움이 되고 국민에게도 이로운 정책인 만큼 누구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이한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임성국이 발표하려던 소식이 이런 내용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이 계획의 영감은 바로 여러분에게서 나왔습니다.”임성국은 소예지와 고이한을 비롯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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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7화

소예지는 임현욱을 따라 긴 복도를 지나 그의 서재에 들어섰다. 널찍한 방 안에는 벽 한쪽을 가득 채운 진열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그 안에는 각종 트로피와 훈장, 표창장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이거 다 현욱 씨가 받은 거예요?”놀란 듯 묻자 임현욱이 옅게 웃었다.“대부분은 그래요. 몇 개는 아버지가 젊었을 때 받은 거고요.”소예지는 유독 눈길을 끄는 훈장 하나 앞에 걸음을 멈췄다. 가장 높은 등급의 훈장이었다.곁으로 다가온 임현욱이 그것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설명했다.“5년 전 국경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중 받게 된 훈장이에요.”잠시 옛일을 떠올리는 듯 웃었지만 사실 그 작전은 거의 돌아오지 못할 뻔한 임무였다. 자신을 끝까지 버리지 않은 동료들 덕분에 가까스로 살아 돌아올 수 있었고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목숨을 걸고서라도 부대원을 데려와야 한다는 신념, 누구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소예지는 괜스레 가슴이 조여왔다. 이런 공훈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임무가 얼마나 위험하고 치열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그녀는 천천히 전시장을 따라 걸으며 다른 훈장들도 둘러봤다. 비슷한 훈장이 몇 개 더 있었고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 마지막으로 사진들이 걸린 벽 앞에 멈춰 섰다.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스무 살 무렵의 임현욱이었다.병상에 누운 채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사진 속 그는 전우들과 함께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이건 제가 스무 살 때 찍은 사진이에요.”설명하는 목소리에는 옅은 웃음이 담겨 있었다.사진 속 그는 지금보다 훨씬 앳된 모습이었다. 햇살 아래서 자란 소년 같은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소예지는 한동안 벽에 걸린 사진들을 바라봤다. 임현욱이 겪어 왔을 수많은 위험과 상처를 떠올리자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고 그 모든 것을 견뎌낸 강인함에는 자연스럽게 존경심이 생겼다.지금 눈앞에 놓인 영광과 훈장들 역시 수없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끝에 얻어낸 결과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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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8화

소예지는 대략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고이한 역시 그녀를 보고 있었고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 그의 눈빛에는 미처 읽어내지 못한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그때 임성국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다실에 차를 준비해 뒀어요. 다들 자리를 옮겨 한잔하시죠.”사람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랐다. 고이한 역시 몸을 일으키려던 참이었는데 임현욱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더니 옆자리에 앉았다.“고 대표님,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고이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예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이 마주 앉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지원 일행과 함께 다실로 향했다.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뜨고 나자 임현욱은 찻잔에 차를 따라 고이한 앞으로 밀어주며 정중하게 말했다.“고 대표님, 이번에 제가 다시 깨어날 수 있었던 건 대표님 회사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과 대표님께서 칩을 신속히 운반해 주신 덕분입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고이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임 대위님, 과분한 말씀입니다.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임현욱의 눈빛에는 감사의 기색이 더욱 짙어졌다.“그렇게 말씀하실 일이 아닙니다. 대표님께서 힘써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아마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을 겁니다.”고이한은 찻잔을 들어 올린 채 차분하게 그를 바라봤다.“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번 일을 도운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총리님께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보여주신 헌신을 존경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잠시 말을 멈춘 그는 목소리를 낮춰 말을 이었다.“소 박사가 제게 부탁했기 때문입니다.”임현욱은 잠깐 멈칫했지만 곧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그랬던 거군요.”“소 박사는 당신을 살리기 위해 자존심까지 내려놓고 저에게 부탁했어요.”고이한은 손끝으로 찻잔 가장자리를 천천히 쓸었다.“그 모습을 보니 소 박사가 당신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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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9화

소예지는 누군가 들어오는 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문가에 선 사람은 고이한이었다.시선이 잠시 마주친 순간, 소예지는 임현욱이 이미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고이한에게 전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고이한은 곧장 소예지에게 다가가지 않고 먼저 임성국에게로 걸어갔다. 몇 마디 인사를 나누는 동안 술기운도 어느 정도 가신 듯했고 조금 전보다 정신이 한결 또렷해 보였다.어느새 시계는 여덟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다과 자리도 마무리될 무렵, 임성국은 걸려 온 전화를 받은 뒤 참석자들을 향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여러분, 죄송합니다.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긴 것 같네요.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제대로 모시지 못한 점은 이해해 주세요.”사람들은 하나같이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임성국이 직접 자리를 비워야 할 정도라면 분명 중요한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그는 곧 아들을 불렀다.“현욱아, 손님들 좀 배웅해 드려라.”그러고는 특별히 소예지와 고이한 앞으로 다가와 말을 이었다.“오늘 제대로 대접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다음에 A시에 가게 되면 그때는 제가 다시 자리를 마련할게요.”“그런 말씀 마세요.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소예지가 웃으며 답하자 고이한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총리님의 환대에 감사드립니다.”임현욱은 직접 사람들을 바깥까지 배웅했다. 이호연과 이지원은 같은 차에 올랐고 주경호와 스미스 박사도 한 차량에 탑승했다. 그렇게 한 대씩 떠나고 나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고이한과 소예지가 탈 차뿐이었다.다른 사람들을 모두 보낸 뒤 임현욱은 소예지 앞으로 다가갔다. 이미 고이한은 먼저 차에 올라타 있었고 소예지가 막 탑승하려는 순간 임현욱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예지 씨, 고 대표님 오늘 술을 좀 많이 마셨어요. 가는 길에 조금만 신경 써주세요.”소예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럴게요.”차에 오른 고이한은 좌석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다. 겉으로는 쉬는 것처럼 보였지만 살짝 찌푸린 미간을 보면 상태가 그리 좋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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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0화

고이한의 눈빛에 어른거리던 취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전에 없던 진지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그가 막 무언가를 더 말하려던 때였다. 엘리베이터가 “딩” 소리를 내며 도착했고 두 사람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끊겼다.소예지가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고 고이한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방문 앞에 도착한 소예지가 카드키를 대려는데 등 뒤에서 고이한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잘 자.”소예지는 아까 그의 질문에 끝내 답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 그의 기분이 좋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그녀는 예의상 작게 답했다.“잘 자.”“내일 열 시 비행기야.”고이한이 덧붙였다. 따로 돌아갈 필요 없이 그의 전용기를 타면 된다는 뜻이었다.소예지는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 고이한은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밤새 푹 자고 일어난 소예지가 짐을 챙겨 나오자 고이한이 복도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얼마나 오래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짐은 기사님한테 먼저 차에 실어 달라고 하고 우리 아침 먹으러 가자.”소예지가 가방을 든 채 캐리어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본 고이한은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캐리어를 들어 올려 대신 끌며 앞서 걸어갔다.소예지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결국 아무 말 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고이한은 식당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사에게 짐을 맡긴 뒤 몸을 돌려 말했다.“들어가서 아침 먹자.”소예지는 먼저 식당 안으로 들어가 접시에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를 담은 뒤 창가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고이한도 다가와 자연스럽게 그녀 맞은편 의자를 빼고 앉았다.지난밤 소예지는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았다.전날 밤 소예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에 고이한이 임현욱을 도운 일은 결과적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안겨 주었다. 임성국이 흘린 몇 마디만으로도 기술과 바이오 의료 분야의 전망이 상당히 밝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이한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기업을 거느리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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