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1351 - Chapter 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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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1화

차는 연회장이 있는 호텔을 향해 안정적으로 달렸다. 저 멀리 석양빛이 도시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소예지는 더 이상 과거를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이제 두 사람의 관계는 새로운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다시 이어질 뿐이었다.고이한 역시 더는 다른 화제를 꺼내지 않았다. 그는 소예지가 지나간 추억을 다시 들춰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 사실을 깨닫자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지만 그는 곧 감정을 눌러 삼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연회가 열리는 호텔에 도착했다.도어맨이 다가와 차 문을 열어주었고 고이한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그 모습을 본 호텔 매니저가 곧장 정중하게 다가왔다.“고 대표님, 오셨군요.”고이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소예지가 내리기를 기다렸다.소예지가 차에서 내리자 두 사람은 나란히 레드카펫을 밟고 환하게 불이 켜진 연회장 안으로 향했다.두 사람의 등장은 곧바로 주변의 시선을 끌었다.남자는 차분하면서도 범접하기 어려운 기품을 풍겼고 여자는 단아함 속에 지적인 매력을 품고 있었다. 두 사람은 겉으로는 선을 지키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들이 한때 부부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이미 연회장에는 손님들의 절반가량이 도착해 있었다.몇몇 이사들이 먼저 고이한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고 동시에 소예지에게도 상당한 호의를 보였다.“소 박사님, 반갑습니다.”소예지는 차분하게 이사들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했다.그녀의 태도는 지나치게 낮지도 거만하지도 않았고 대화를 나누는 사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교양과 품격이 드러났다.“소 박사님, 지난번 학술지에 발표하신 신경퇴행성 질환 관련 논문을 읽어봤는데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한 중년 이사가 진심 어린 칭찬을 건넸다.소예지는 그가 과학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연구 성과까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이어갔다.이것이 바로 오늘 그녀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였다.자신의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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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2화

“왜 그래? 옛 연인 보니까 마음이라도 흔들리나?”방기성이 갑자기 몸을 숙이며 은근히 불쾌한 기색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심유빈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질투심이 자신도 모르게 행동으로 드러난 모양이었다. 방기성의 팔을 잡고 있던 손에 어느새 힘이 들어가 있었다.심유빈은 황급히 환하고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몸을 더 가까이 붙였다.“자기, 제 마음에 누가 있는지 자기가 더 잘 알잖아요.”방기성은 콧방귀를 뀌었다.하지만 마침 고이한과 직접 마주할 기회를 찾고 있던 터라 심유빈을 데리고 그쪽으로 걸어갔다.심유빈은 순간 놀랐다.방기성이 정말 고이한에게 다가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그녀는 조용히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오늘 밤만큼은 절대로 고이한과 소예지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됐다.“고 회장님, 소 박사님, 정말 우연이네요. 마침 전용 기금 설립 건에 대해 이야기를 좀 나눌 수 있을까요?”방기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목소리가 제법 커서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자연스럽게 끌었다.고이한은 미간을 살짝 좁혔고 소예지는 차분한 표정으로 다가온 두 사람 쪽으로 몸을 돌렸다.심유빈도 일부러 여유로운 태도를 가장하며 고이한에게 인사를 건넸다.“고 대표님, 오랜만이에요.”그러고는 마치 그제야 소예지를 발견한 것처럼 일부러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머, 소예지 씨도 계셨네요. 아니, 이제는 소 박사님이라고 불러야겠죠? 며칠 못 본 사이에 정말 딴사람이 되셨네요.”겉으로는 칭찬처럼 들렸지만 실제로는 은근한 비웃음이 담긴 말이었다.고이한은 심유빈을 그대로 무시한 채 차가운 시선으로 방기성을 바라봤다.“방 대표님도 의학 전용 재단에 관심이 있으십니까?”방기성은 하하 웃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관심이야 있죠. 특히 고 회장님께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프로젝트라니 더 궁금해지더군요. 다만 이렇게 큰 규모의 자금이 그렇게 신속하게 승인된 게 상회 규정과 절차에 맞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곧장 소예지를 바라봤다.“어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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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3화

방기성은 어색하게 두어 번 웃으며 어떻게든 체면을 수습하려 했다.“나도 그냥 한번 물어본 겁니다. 어쨌든 이렇게 큰돈이 걸린 일이니 신중한 게 좋지 않겠습니까.”고이한은 차가운 눈빛으로 방기성을 똑바로 응시했다.“아무런 증거도 없이 개인적인 추측만으로 상회의 결정을 의심하는 것은 저 개인에 대한 불신일 뿐만 아니라 모든 심사 전문가들에 대한 모욕이기도 합니다. 방 대표님께서는 말씀에 신중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방기성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예순을 넘긴 자신이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젊은이에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훈계를 듣는 처지가 되었다. 체면도 위신도 모조리 구겨진 셈이었지만 당장 반박할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고이한은 그런 그를 냉랭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방 대표님께서 계속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신다면 상회는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권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담긴 단호함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고 주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시선에도 경외심이 한층 짙어졌다.곁에 서 있던 심유빈은 남몰래 입술을 깨물었다.고이한이 소예지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방기성을 이토록 난처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방기성이 거의 체면을 잃을 정도로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자 마음속 질투는 더욱 짙어졌다.소예지는 그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가 된 것이 분명했다. 누가 그녀에 대해 한마디라도 하면 이런 경고도 서슴지 않을 정도였으니 심유빈의 시선이 저절로 소예지에게 향했다.반면 소예지는 조용히 곁에 서 있었지만 마음은 복잡했다. 고이한이 자신을 지켜주려 한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할 리 없었으나 그럴수록 마음 한편은 무거워졌다.그녀는 자신 때문에 그가 구설에 오르거나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방기성은 가까스로 평정을 유지한 채 이를 악물고 말했다.“고 회장님 위세가 대단하시군요. 절차가 규정에 맞고 프로젝트가 우수하다면 제가 괜한 말을 한 셈으로 하겠습니다.”그때 한 중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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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4화

심유빈은 그들 두 사람을 떼어놓기 위해 온갖 수단과 계략을 동원하며 십 년이라는 청춘을 쏟아부었다.‘그런데 결국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마는 걸까.’고이한의 깊고도 단호한 시선이 줄곧 소예지에게 향해 있는 것을 보자 심유빈의 가슴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답답해졌다.몸을 약간 숙인 채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그의 태도에는 보기 드문 인내와 집중이 담겨 있었고 소예지 역시 살짝 고개를 든 채 차분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그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 어떤 미움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심유빈은 괴로움을 삼키듯 입술을 깨물었다.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한 끝에 결국 방기성 같은 늙은 남자에게까지 몸을 의지하게 되었는데 소예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고이한 곁으로 돌아와 예전보다 더 두터운 보호와 편애까지 받고 있는 현실이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그녀의 허리를 방기성이 갑자기 끌어안았다.“뭘 그렇게 봐? 아직도 옛 연인 생각해?”심유빈은 서둘러 시선을 거두고 애교 어린 표정으로 바꿔 말했다.“자기, 저는 그냥 자기 대신 화가 나서 그래요. 저 고이한이라는 사람, 자기를 너무 무시하는 것 같잖아요.”방기성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고이한을 음흉한 눈빛으로 바라봤다.“흥, 저 기세가 언제까지 가는지 두고 보자고. 오늘 일은 내가 똑똑히 기억해 둘 테니까.”그 말에 심유빈의 입가에 희미한 만족감이 스쳤다.애초에 그녀가 원했던 것도 방기성이 고이한에게 적대감을 품는 것이었다. 방기성 정도 되는 위치라면 충분히 고이한과 정면으로 맞붙을 수 있었다.심유빈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불씨를 지폈다.“자기, 소예지가 고이한을 얼마나 휘두르는지 봐요. 제가 보기에는 고이한이 저렇게까지 감싸는 것도 분명 뭔가 떳떳하지 못한 거래가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방기성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소예지를 바라봤다.확실히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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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5화

소예지가 방명철과 십여 분가량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고이한이 다가와 방명철에게 인사를 건넨 뒤 그녀를 향해 말했다.“소 박사, 잠깐 시간 내줄 수 있어? 해외에서 온 분들 중에 소 박사와 꼭 인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소예지가 방명철을 바라보자 그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가봐. 중요한 일이 먼저지.”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나 고이한을 따라 연회장 반대편으로 향했다.고이한이 다가서자 한눈에 봐도 교포 출신으로 보이는 신사가 반갑게 맞이했다.“고 대표님.”“진 선생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분은 소예지 박사입니다.”고이한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 박사님, 반갑습니다. 드디어 직접 뵙게 되는군요.”진기태의 시선이 소예지에게 향했다. 그 눈빛에는 감탄과 존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 사이 또 다른 지인이 다가와 진기태에게 말을 걸었고 고이한은 소예지 쪽으로 살짝 몸을 기울여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프로젝트 후원금의 팔십 퍼센트는 진 선생님이 지원한 거야.”소예지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눈앞의 온화하고 점잖은 교포 출신 기업인이 재단의 최대 후원자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그녀의 눈빛에는 자연스럽게 존중과 감사가 더해졌다.“진 선생님, 과학 연구를 위해 이렇게 큰 지원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진기태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소 박사님, 그런 말씀 마세요. 오히려 제가 감사해야 합니다. 박사님의 논문과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거든요. 인류의 건강을 바꿀 수 있는 최첨단 기술에 투자하는 건 원래부터 제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하고요.”그의 말투에는 후원자의 우월감이나 생색내는 기색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과학에 대한 존중과 진심 어린 기대가 담겨 있었다.덕분에 소예지 역시 조금씩 긴장을 풀 수 있었다.“진 선생님, 과분한 말씀입니다. 저는 이 자금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반드시 좋은 결과로 보답하겠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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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6화

하지만 방기성은 상회 재단의 내막을 파헤치는 일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그때 곁에 있던 심유빈이 소예지가 화장실 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방기성에게 말했다.“자기,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소예지가 칸막이 안에서 나왔을 때, 심유빈은 마침 세면대 앞에서 손을 씻고 있었다.그녀는 거울을 통해 소예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오늘 소 박사님 정말 존재감이 대단하시네요.”화장실 칸막이 문은 모두 열려 있었고 안에는 두 사람 외에 아무도 없었다.소예지는 거울 너머로 자신을 향한 심유빈의 도발적인 시선을 마주했지만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고 굳이 상대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심유빈은 붉은 입술을 살짝 끌어올리며 말을 이었다.“예전 생각이 나네요. 고 대표도 한때는 저를 이런 자리에 자주 데려갔거든요. 겉으로는 그렇게 차갑고 재미없는 사람 같아 보여도 사적으로는 전혀 안 그래요.”그녀는 일부러 말을 끊고 소예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특히 저희 둘만 있을 때는 정말 다정하고 부드러웠어요. 생각해 보면 가끔 그때가 그립기도 하고요.”그 말 속에 담긴 암시는 너무도 노골적이었다.결국 자신과 고이한 사이가 특별한 관계였다는 사실을 소예지에게 상기시키려는 의도였다.소예지는 느긋하게 손을 씻은 뒤에야 천천히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두 사람의 과거는 나와 상관없어요.”심유빈은 피식 웃으며 눈썹을 치켜올렸다.“저번 연주회 대기실 기억하세요? 제 머리카락이 고 대표 벨트에 걸렸던 일 말이에요. 왜 그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그 말을 듣는 순간 소예지의 손길이 잠시 멈췄다.심유빈이 그 일을 꺼내자 오래전 지워진 줄 알았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당시 심유빈은 매혹적인 차림을 하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고이한의 벨트 버클에 걸려 있었으며 두 사람의 자세는 누가 봐도 오해하기 쉬운 모습이었다.“그날 당신이 들어와서 우리를 방해하지만 않았다면...”심유빈은 붉은 입술을 살짝 벌린 채 혀끝으로 입술을 한번 훑었다.“무슨 일이 벌어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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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7화

심유빈의 말을 듣던 소예지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심유빈이 알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그 시절 그녀가 먼저 마음을 고백한 뒤에도 고이한이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을 때, 소예지는 이미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었다.결국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된 것은 그녀가 매달려 얻어낸 결과가 아니라 포기하려던 바로 그 순간 고이한이 먼저 청혼했기 때문이었다.“심유빈 씨, 그런 더러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까지 함부로 판단하지 마세요. 이미 방기성 씨를 선택했으면 그분 곁에서 본인 인생이나 잘 사시면 되잖아요.”“여기저기 다니면서 고이한 씨와 있었던 일을 떠벌리는 게 대체 본인한테 무슨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네요.”소예지가 가방을 들고 돌아서려 하자 심유빈이 분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소예지 씨, 여기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마세요. 당신이 정말 그 사람에게 아무 감정도 없다고는 믿지 않아요. 수영장에서는 저를 선택했고 대기실에서도 저와 함께 있는 시간을 마냥 싫어하지만은 않았잖아요.”“그런데도 결혼 생활 내내 정말 당신한테만 충실했다고 믿는 거예요? 지금은 고 대표의 호의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면서 예전에 그가 당신한테 어떻게 했는지는 다 잊어버린 거예요? 솔직히 말해보세요. 당신 정말 고 대표를 조금도 미워하지 않아요?”심유빈은 이를 악문 채 말을 쏟아냈다.소예지의 마음 깊숙이 묻혀 있는 상처를 다시 들춰내고 그 위에 소금을 뿌리려는 의도였다.소예지는 붙잡힌 손목을 빼냈다.분명 한때는 고이한의 무관심과 냉대가 견디기 힘들 만큼 아팠다. 하지만 지금 심유빈의 말을 듣고 있는 그녀의 마음은 이상할 만큼 차분했다.미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그것은 모두 과거의 일이었다.시간이 흐르고 자신 역시 성장하면서 과거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지금의 그녀와 고이한은 협력 관계였다.그는 가장 든든한 조건으로 그녀의 연구를 지원해 주고 있었고 그녀는 자신의 일에 집중해 사회에 보답하면 됐다.두 사람의 관계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그리고 소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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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8화

때를 놓친 진심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심유빈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보기에는 고이한도 원하는 사람을 끝내 붙잡지 못하는 괴로움을 겪어봐야 했다.그래야만 과거 자신이 저지른 일들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셈이었고 비로소 인과응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았다.‘끝내 가질 수 없었던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냉대를 받고 있다니 이보다 더 통쾌한 일이 또 있을까.’소예지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초연한 척하며 고이한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생 일만 하며 살아가게 만들면 더없이 만족스러울 터였다.자신은 그저 곁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됐다.고이한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매달리는지, 또 소예지가 얼마나 흔들림 없이 선을 긋는지를.하늘은 참 공평했다.과거에 저질렀던 일들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지 못한 채 속만 태우는 날들을 보내게 만들고 있었으니까.마음이 타들어 가는 모습을 떠올리자 묘한 기대감마저 차올랐다.오직 심유빈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고이한은 지난 십 년 동안 오직 그녀만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어찌 보면 자신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기에 다른 여자가 끼어들 틈도 없었다고 심유빈은 믿고 있었다.방금 언급했던 대기실 사건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모든 것이 철저하게 계산된 연출이었다.당시 고이한은 스미스 박사 명의로 된 규정 범위 내 실험 동의서에 서명하라고 압박하고 있었고 심유빈은 연주회를 계기로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어 일부러 대기실로 불러냈다.한창 유혹하려던 중 비서에게서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소예지가 도착했다는 연락이었다.그 소식을 확인하자마자 악의적인 계획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한 뒤 일부러 드레스 자락을 밟고 넘어지는 척하며 앞으로 쓰러졌고 머리가 고이한의 아랫배에 부딪치면서 미처 피할 틈도 없이 머리카락이 벨트 버클에 얽혀버렸다.거기에 어깨끈까지 살짝 끌어내려 더욱 흐트러지고 애매한 모습이 되도록 연출했다.그리고 소예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그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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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9화

심유빈이 자리로 돌아오자 직원이 다가와 방기성이 휴게실에서 쉬고 있으니 나중에 그쪽으로 와달라고 전했다.심유빈은 인파 속에 있는 고이한을 바라보며 표정을 가다듬었다.이내 술잔을 들고 그의 쪽으로 걸어갔다.“이한 씨, 오랜만이야.”심유빈은 억지로 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이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고이한은 마침 몇몇 재계 원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듣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한 번 힐끗 보고는 이내 시선을 거뒀다.심유빈은 주변에서 낯익은 얼굴 몇몇을 발견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저들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한때 자신과 고이한의 관계를 오해했던 사람들이었다.“이한 씨, 그렇게 냉랭하게 굴지 마. 아무리 그래도 우린 오랜 지인이잖아.”심유빈이 태연하게 말했다.고이한의 반응에 주변 사람들도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심유빈과 고이한 사이에 한때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지만 지금 보니 고이한은 옛정을 되살릴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무슨 용건이야?”고이한이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물었다.심유빈의 웃음이 순간 굳어졌다.“아니, 그냥 인사하러 왔어. 당신이랑 소예지 씨 사이가 좋아 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방금 소예지 씨랑 잠깐 이야기해 봤는데 두 사람 지금 좋은 협력 관계라면서?”그녀는 일부러 ‘협력 관계’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고이한을 빤히 바라봤다. 흠잡을 데 없는 그 얼굴에서 아주 작은 동요라도 찾아내고 싶었다.금속 테 안경 너머의 눈빛은 여전히 깊고 가늠하기 어려웠다. 다만 그 안에 서린 경고만큼은 순식간에 선명해졌다.“소예지 곁에 얼씬도 하지 마.”고이한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사람을 짓누르는 듯한 냉기가 묵직하게 담겨 있었다.심유빈의 웃음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내가 괜한 일에 끼어든 모양이네.”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고이한이 소예지를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확인한 순간, 심유빈의 마음속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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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0화

소예지가 막 젊은 생물학자와 연락처를 교환하고 있을 때였다.“소 박사, 이야기 다 끝났어?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곁에서 낮고 매력적인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예지가 고개를 들었다.“응, 끝났어.”그녀는 생물학자에게 가볍게 인사한 뒤 고이한을 따라 한쪽으로 자리를 옮겼다.“십 분 뒤에 집에 돌아갈 건데 같이 갈래?”고이한의 물음에 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였다.딸이 고씨 저택에 있으니 당연히 데리러 가야 했다.“그래, 같이 가자.”소예지는 차를 가져오지 않았고 이 일대는 교통이 통제되어 택시도 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의 차를 타고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고이한의 눈에 옅은 웃음기가 스쳤다.“김 비서한테 차를 입구 앞으로 대기시키라고 할게.”십 분 뒤, 소예지와 고이한은 나란히 만찬장을 떠났다.시간은 어느새 여덟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차에 올라탄 소예지는 피곤한 듯 눈가를 가볍게 문질렀다.역시 이런 사교 모임은 그녀의 영역이 아니었다. 사실 오늘 밤 내내 그녀는 긴장을 늦추지 못한 상태였다.“피곤해?”고이한이 묻자 소예지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진기태 선생님이랑 식사 자리를 한 번 마련할 수 있을까? 재단 일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 보고 싶어서.”고이한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그럴 필요가 있을까?”소예지의 눈빛은 맑고 단호했다.“필요해. 그분의 돈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거니까 계약상 그분께도 합당한 권리를 드리고 싶어. 예를 들면 연구 성과에 대한 우선 접근권이나 일부 특허 공유권 같은 거.”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나는 사람들이 내가 당신과의 관계 때문에 이 자금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그리고 당신을 곤란하게 하거나 괜한 말이 나오게 하고 싶지도 않고.”오늘 밤 방기성이 했던 말은 결코 그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터였다.상회처럼 거대하고 복잡한 조직이라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분명 더 있을 것이다.소예지가 이렇게 하려는 이유는 이번 지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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