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층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고이한이 소예지에게 한마디를 건넸다.“고마워.”소예지는 닫혀가는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보면서도 마음이 완전히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고이한의 사과와 한발 물러선 태도를 분명 느꼈지만 이미 지나온 상처는 너무 깊었다. 많은 것들은 다시 시작할 기회조차 잃은 뒤였다.소예지가 그에게 품었던 사랑과 한때의 열정, 그리고 오래전에 이미 식어버린 감정 같은 것들이 그랬다.친구가 될 수는 있었고 동료가 될 수도 있었다. 투자를 주고받는 사이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독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단 하나의 관계는 부부였다.소예지는 집에 돌아와 양희순에게 점심은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뒤 위층으로 올라가 일을 시작했다.낮 열한 시 반, 소예지는 강준석의 메시지를 받고 아래로 내려갔다.업무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던 순간, 정면에서 낯익은 실루엣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주경화, 윤하준의 어머니였다.소예지는 인사를 건네려 했지만 주경화는 마치 그녀를 보지 못한 사람처럼 그대로 지나쳤다.소예지가 그녀 옆까지 다가간 뒤에야 주경화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고 몇 초 동안 소예지를 바라본 뒤에야 비로소 알아본 듯 표정이 풀렸다.“소예지 씨였구나!”주경화는 웃으며 인사한 뒤, 스스로를 탓하듯 말을 이었다.“요즘 자꾸 기억력이 떨어져서 그래요. 아니 글쎄 휴대폰도 집에 두고 나와서 지금 다시 가지러 가는 길이었어요!”소예지는 주경화의 눈빛이 예전처럼 또렷하지 않고 몸에도 노화의 흔적이 짙어졌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렸다.같은 단지에 살면서도 반년 넘게 마주치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제가 놀라게 해드렸나 봐요.”소예지가 미안한 듯 웃었다.“일은 아직도 바빠요? 몸 좀 챙기세요. 나 봐요, 기억력이 갈수록 나빠지네요.”주경화가 말을 마친 순간, 가정부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사모님, 휴대폰 가져왔어요.”소예지는 주경화를 향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주 여사님, 저는 먼저 친구 만나러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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