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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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1화

광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이미 밤 아홉 시가 다 되어 있었다.집 앞에 도착하자 고하슬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고 소예지는 잠시 뒤를 돌아 문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오늘 밤 고마웠어.”고이한은 그녀의 예의 바른 표정을 바라보다가 옅게 웃었다.“당연한 건데 뭐... 잘 자.”말을 마친 고이한은 더 붙잡지 않고 먼저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소예지도 자연스럽게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갔다.딸은 이미 양희순에게 불려 가서 씻고 있는 중이었다.소예지는 가방을 내려놓은 뒤 휴대폰이 울리는 것을 보고 화면을 확인했다.낯선 번호였다.“여보세요?”“예지야, 나다.”수화기 너머로 인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예지는 순간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스쳤다.“안 박사님, 잘 지내셨어요?”“잘 지내고 있지. 다름이 아니라 내게 이제 막 의대를 졸업한 손자가 하나 있는데 이래저래 조건이 꽤 괜찮은 아이야. 그 아이를 자네 밑에서 반년 정도 실습시키고 싶은데 괜찮겠나?”소예지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그녀의 실험실은 곧 정식으로 세워질 예정이라 인력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게다가 안지환은 아버지 생전부터 알고 지내던 의학계의 권위자였고 그런 그가 직접 추천하는 사람이라면 실력과 잠재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아저씨가 추천하시는 분이라면 저는 백 퍼센트 안심이죠. 마침 새 실험실이 준비 단계라 사람이 필요했어요.”“그거 잘됐구나. 그 아이 이름은 안시윤인데 학교 성적도 아주 우수하고 관련 프로젝트에도 몇 개 참여한 경력이 있어.”안지환은 온화하게 웃으며 몇 마디 더 안부를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통화를 마친 소예지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실험실에 새로운 인재가 들어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었다.곧 그녀는 2층으로 올라가 컴퓨터를 켰다. 새 실험실 준비 작업을 다시 하나씩 정리하고 다듬기 시작했다.상회의 기금은 필요한 곳에 써야 했고 최대한 빠르게 성과를 내야만 진기태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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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2화

이 순간, 소예지의 휴대폰에도 메시지가 도착했다.보낸 사람은 고이한이었다.[세 시에 출장 가. 요 며칠 하슬이 좀 부탁할게.]소예지는 휴대폰을 힐끗 보고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일 잘 보고 와. 하슬이는 내가 잘 돌볼게.]그 순간 막 현관을 나서던 훤칠한 남자가 그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얇은 입술 끝을 아주 미세하게 올렸다.적어도 지금 소예지의 답장은 예전처럼 단답형 몇 마디로 끊기는 말투가 아니었다.김경환은 고개를 돌려 옆 카페를 바라보며 사장에게 커피를 포장해 갈지 잠시 고민하고 있었다.그때 무심코 통유리창 너머로 낯익은 실루엣이 들어왔다. 소예지였다.생각해 보면 소예지가 요즘 집에서 쉬고 있었으니 아파트 단지 입구 카페에 있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김경환이 그쪽을 바라보는 순간, 갑자기 소예지 맞은편 빈자리에 흰 셔츠를 입은 젊은 남자가 앉는 모습이 보였다.첫 반응은 단순했다. 소예지에게 말을 걸러 온 사람인가 싶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소예지가 미소를 지으며 그 남자에게 무언가를 말했고 남자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악수를 청했다.김경환은 몇 초 동안 멍하니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다가 그 남자를 자세히 훑어봤다.기껏해야 스무 살 초반으로 보였다.얼굴은 깔끔하고 단정했으며 막 대학을 졸업한 학생 같은 깨끗한 인상이었다. 그 인상은 햇빛이 쏟아지는 아침 공기 속에서 유난히 또렷하게 보였다.이때 소예지와 안시윤은 이미 대화를 시작한 상태였다.소예지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력서는 잘 봤어. 정말 훌륭하더라. 특히 연구 방향이 흥미로워서 그런데 세 번째 프로젝트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어?”전공 이야기가 나오자 안시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곧바로 논리적으로 자신의 연구 방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김경환이 계속 카페 쪽을 주시하고 있던 그때, 뒷좌석 문이 열리며 고이한이 차에 올라탔다.김경환은 순간 심장이 조여왔다.대표에게 저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말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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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3화

카페 안에서 소예지는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맞은편에 앉은 안시윤을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그녀의 시선에는 내내 감탄이 서려 있었고 그 집중된 시선 때문에 카페 입구로 들어서는 훤칠한 그림자 하나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그때 옆에서 낮고 매혹적인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소개 안 해줄 거야?”소예지는 놀라 고개를 들었고 갑자기 나타난 고이한을 보자 저도 모르게 물었다.“공항 간다고 하지 않았어?”고이한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지나가는 길에 커피 포장이나 하려고 들렀어.”뒤따라온 김경환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카운터 쪽으로 가 주문을 넣었다.고이한의 시선이 곧장 맞은편의 안시윤에게로 향했다. 그 눈빛에는 상대를 가늠하는 듯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소예지는 그 압박감 같은 기운을 느끼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어 맞은편을 향해 손짓하며 소개를 시작했다.“이쪽은 안시윤. 우리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신 안지환 박사님의 손자분이야.”그리고 다시 고이한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쪽은 고신 그룹 대표 고이한 대표야.”안시윤은 고이한을 알아본 듯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인사했다.“고 대표님, 안녕하세요.”고이한은 안시윤을 짧게 훑어보았다. 그리고 손을 내밀며 덧붙였다.“소 박사의 전남편이기도 하죠.”안시윤의 얼굴이 순간 붉어졌고 그는 얼른 허리를 숙이며 악수를 받았다.“고 대표님,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짧게 손을 맞잡은 뒤 고이한이 담담하게 물었다.“안 어르신 손자분이라고?”이어 소예지를 바라보며 물었다.“사람 뽑는 거야?”“새 실험실에 사람이 부족해서 조수 두 명 정도 더 채용해야 해.”소예지가 고개를 들어 대답했다.고이한의 시선이 다시 안시윤에게로 향했다.“내 전처가 자네를 꽤 마음에 들어 하는 모양이군.”안시윤은 보이지 않는 압박감에 잠시 숨을 고르며 겸손하게 답했다.“소예지 누나께서 기회를 주신 것뿐입니다. 저는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습니다.”소예지는 안시윤의 미묘한 긴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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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4화

양희순이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하슬이 저렇게 좋아하는 거 좀 봐요. 아빠가 많이 보고 싶었나 봐요.”소예지는 문밖으로 나섰다. 고이한의 몸에는 여행의 피로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들어가서 좀 쉬어. 하슬이는 내가 데려다줄게.”소예지가 그에게 말했다.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같이 갈게.”고이한이 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고하슬도 그의 손을 꼭 붙잡았다.“엄마, 저 아빠랑 같이 등교하고 싶어요. 제발요.”결국 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뒷좌석에서는 고하슬과 고이한이 출장 이야기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차는 금세 어린이집에 도착했다.고하슬이 밝은 얼굴로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가자 소예지는 차로 돌아와 뒷좌석의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집에 데려다줄게. 가서 쉬어.”“당신은?”고이한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목소리에는 피로가 살짝 섞여 있었다.“나는 마트에 가서 물건 좀 사야 해.”“그럼 같이 가자. 마침 우리 집 냉장고도 비었어. 생필품도 좀 사야 하고.”고이한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소예지가 대답하기도 전에 고이한이 덧붙였다.“부탁할게.”소예지는 백미러로 그를 한 번 바라보고는 시동을 걸어 대형마트로 향했다.차 안은 잠시 조용해졌다. 고이한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은 채 잠깐 숨을 골랐다.지하 주차장에 도착하자 그는 다시 평소의 여유를 되찾은 모습으로 소예지와 함께 엘리베이터 홀로 향했다.엘리베이터가 열렸을 때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소예지가 먼저 들어갔고 고이한이 뒤따라 탔다.그때 중년 여성이 급히 뛰어와 엘리베이터 문을 붙잡으며 뒤쪽 사람들에게 외쳤다.“빨리 와, 빨리!”이어 유모차를 미는 두 여성과 남자 둘, 노인 넷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왔다. 유모차가 공간을 크게 차지하면서 소예지는 순식간에 뒤로 밀려 엘리베이터 벽에 바짝 붙게 됐다.그때 배달원까지 급하게 들어오면서 모두가 뒤로 밀렸고 소예지는 통통한 남자와 거의 맞닿을 듯한 상황까지 몰렸다.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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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5화

계산대에 도착한 소예지는 자신의 물건들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그 모습을 보던 고이한이 자연스럽게 말했다.“같이 계산하자.”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이미 휴대폰을 꺼내 결제 화면을 켰다. 그러자 소예지가 곧바로 손을 뻗어 막으며 말했다.“내 건 내가 낼게.”고이한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생필품 몇 개인데 얼마나 한다고.”소예지는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내가 낼게.”그때 고이한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화면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중요한 전화라 받아야겠다. 미안한데...”말하지 않아도 의미는 뻔했다. 카트 안에는 그의 바디워시와 술 몇 병이 함께 들어 있었다.소예지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고이한은 계산대에서 물러나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잠시 후 계산을 마친 소예지가 카트를 밀고 나오자 고이한도 전화를 끊고 자연스럽게 큰 손으로 카트를 넘겨받았다.“내가 밀게.”소예지는 굳이 거절하지 않고 옆으로 비켜섰다.고이한은 카트를 밀며 옆에 선 그녀를 바라보았다.“하슬이 공부는 어때?”“그럭저럭이야.”소예지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고이한이 나직하게 말했다.“고생 많다.”소예지는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딸을 돌보는 건 애초에 자신의 몫이었기 때문이다.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순간, 한 어린 여자아이가 고이한을 올려다보며 신기한 듯 속삭였다.“엄마, 저 아저씨 머리는 왜 하얘요?”아이의 엄마가 화들짝 놀라 급히 딸을 끌어안고 입을 막으며 고이한에게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고이한은 아이를 바라보다 눈매를 부드럽게 풀며 말했다.“괜찮아요. 애가 귀엽네요.”엄마는 얼굴이 붉어졌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고이한은 양손에 쇼핑백을 들었다. 소예지가 다가와 하나를 받으려 하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내가 들게.”그는 물건을 트렁크에 넣은 뒤 자연스럽게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리며 물었다.“많이 보기 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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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6화

“그럼 좋아. 열한 시 반쯤 네 아파트 단지 입구로 데리러 갈게.”“응.”소예지가 대답하자 통화는 곧 끊겼다.소예지는 신호등 앞에 차를 멈췄다. 옆에 앉은 고이한이 계속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느꼈다.그녀가 고개를 돌렸다.“뭘 봐?”고이한은 잠시 말이 막힌 듯하다가 답답한 듯 말했다.“분명 내가 먼저 점심 먹자고 했잖아.”소예지는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나서야 기억이 떠올랐다.방금 마트에서 그가 먼저 점심을 먹자고 했고 자신은 별생각 없이 거절했었다.“강 선배가 업무 일 때문에 나를 부른 거야.”소예지가 담담하게 말했다.어차피 누구와 밥을 먹든 그건 그녀의 자유였다.“그럼 나도 껴도 돼?”“안 돼.”소예지가 바로 잘라 말했다.고이한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가슴이 묘하게 조여왔다.“왜?”그가 결국 물었다. 목소리에는 옅은 불만이 섞여 있었다.“똑같이 밥 먹는 건데 그 사람은 업무 얘기하면 되고 나는 왜 안 돼? 강 박사도 우리 회사 직원이야. 그리고 나도 당신이랑 업무 얘기할 거 있어.”소예지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나랑 강 선배랑 밥 먹는 자리에 외부인이 있는 건 좀 불편해.”‘외부인.’그 말이 고이한 가슴을 조용히 찔렀다.결국 자신은 그녀에게 외부인이었다.‘그렇다면 강준석은 자기 사람이라는건가...’고이한의 턱선이 굳었다.“그럼 당신은 강준석을 계속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사적인 일까지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으로?”소예지는 핸들을 쥔 손에 힘이 살짝 들어갔다.소예지는 그 말의 의미를 알아챘다. 4년 전, 결혼 생활이 무너지던 시기 자신이 강준석에게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기억까지 함께 떠올랐다.“우리 서로 다르지 않아.”소예지가 차분하게 말했다.“당신이 나에게 숨긴 것과 내가 당신에게 숨긴 것, 크게 다르지 않아. 결국 우리는 비슷한 사람이야.”고이한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그런 뜻 아니야.”“우리는 이미 이혼했어. 내가 누구랑 밥을 먹고 뭘 하든 그건 내 자유야.”“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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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7화

27층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고이한이 소예지에게 한마디를 건넸다.“고마워.”소예지는 닫혀가는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보면서도 마음이 완전히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고이한의 사과와 한발 물러선 태도를 분명 느꼈지만 이미 지나온 상처는 너무 깊었다. 많은 것들은 다시 시작할 기회조차 잃은 뒤였다.소예지가 그에게 품었던 사랑과 한때의 열정, 그리고 오래전에 이미 식어버린 감정 같은 것들이 그랬다.친구가 될 수는 있었고 동료가 될 수도 있었다. 투자를 주고받는 사이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독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단 하나의 관계는 부부였다.소예지는 집에 돌아와 양희순에게 점심은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뒤 위층으로 올라가 일을 시작했다.낮 열한 시 반, 소예지는 강준석의 메시지를 받고 아래로 내려갔다.업무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던 순간, 정면에서 낯익은 실루엣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주경화, 윤하준의 어머니였다.소예지는 인사를 건네려 했지만 주경화는 마치 그녀를 보지 못한 사람처럼 그대로 지나쳤다.소예지가 그녀 옆까지 다가간 뒤에야 주경화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고 몇 초 동안 소예지를 바라본 뒤에야 비로소 알아본 듯 표정이 풀렸다.“소예지 씨였구나!”주경화는 웃으며 인사한 뒤, 스스로를 탓하듯 말을 이었다.“요즘 자꾸 기억력이 떨어져서 그래요. 아니 글쎄 휴대폰도 집에 두고 나와서 지금 다시 가지러 가는 길이었어요!”소예지는 주경화의 눈빛이 예전처럼 또렷하지 않고 몸에도 노화의 흔적이 짙어졌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렸다.같은 단지에 살면서도 반년 넘게 마주치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제가 놀라게 해드렸나 봐요.”소예지가 미안한 듯 웃었다.“일은 아직도 바빠요? 몸 좀 챙기세요. 나 봐요, 기억력이 갈수록 나빠지네요.”주경화가 말을 마친 순간, 가정부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사모님, 휴대폰 가져왔어요.”소예지는 주경화를 향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주 여사님, 저는 먼저 친구 만나러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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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8화

하지만 이번만은 강준석은 소예지에게 분명히 짚어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강준석의 말은 마치 돌멩이 하나가 소예지 마음속 호수에 던져진 것처럼 잔잔한 파문을 만들었다.소예지는 찻잔을 쥔 손에 힘을 주었고 긴 속눈썹을 내리깔아 감정을 감췄다.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고이한이 처음 아무 조건 없이 실험실에 투자했을 때부터 지금처럼 일상 깊숙이 스며든 현재까지 이미 많은 것들이 정상적인 관계의 범위를 넘어서 있었다.소예지가 짧게 숨을 내쉬고 강준석을 바라봤다.“강 선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 것 같아.”강준석이 낮게 숨을 내쉬었다.“나도 이런 일에 깊게 끼어들 처지는 아닌데 그냥 친구로서 몇 마디 한 거야.”소예지는 시선을 창밖으로 잠시 두었다가 말했다.“나도 그 사람 의도는 알아. 근데 아는 거랑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다른 문제잖아. 사업적으로 도와준 건 고마워.”“하슬이 때문에라도 조용히 지낼 생각도 있어. 근데 재혼은 내 고려 대상 아니야. 아니, 내 인생 계획에도 없어.”강준석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그럼 기회 봐서 고 대표한테 이건 확실히 말해두는 게 어때. 괜히 기대만 붙잡아 두면 너도 힘들고 고 대표한테도 좋을 거 없잖아.”소예지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나도 기회 봐서 이건 확실히 말해야겠어. 더 이상 나한테 시간이나 정성 쓰지 말라고. 고 대표도 이제 겨우 스물아홉인데 아직 젊잖아.”강준석이 더는 말을 보태지 않았다. 그는 소예지가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했다.점심 식사가 끝난 뒤 강준석이 소예지를 입구까지 데려다줬다.소예지는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휴대폰을 확인했다. 고이한이 보낸 메시지였다.[밥 먹었어? 올라올 때 위장약 한 통만 사다 줄 수 있어?]소예지가 미간을 찌푸렸다.‘또 위가 아픈 건가.’바로 아래 약국이 있어서 몇 걸음이면 되는 거리였다.그녀가 답장을 보냈다.[알았어.]소예지는 약국으로 가서 위장약을 사고 계산을 마친 뒤 나왔다. 그리고 27층 버튼을 누르고 그의 집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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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9화

소예지가 갑자기 진지해진 표정을 보이자 고이한은 살짝 당황했다.그는 곧바로 몸을 옆으로 비켜서며 말했다.“들어와서 얘기하자.”소예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그의 집 안으로 들어섰다.넓고 환한 거실에는 햇살이 조금 비쳐 들었지만 사람의 온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 냉랭함이 남아 있었다.고이한은 약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소예지에게 마실 것을 가지러 가며 물었다.“커피, 차, 아니면 따뜻한 물?”“커피로 할게.”소예지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정신을 조금 더 또렷하게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고이한은 커피 한 잔과 따뜻한 물 한 잔을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먼저 말을 꺼내지 않은 채 소예지를 바라봤다.소예지는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시며 마음을 정리했다.“몇 가지,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게 서로에게 더 나을 것 같아. 아니, 정확히는 당신한테 더 나을 것 같아.”고이한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녀가 하려는 말을 짐작한 듯 잠시 숨을 고른 뒤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말해봐.”“이혼한 이후로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오해도 하나씩 풀려왔지. 지난 2년 동안 내 일에 도움 주고 지원해 준 것도 고마워.“하슬이 잘 챙겨준 것도 고맙고. 나도 우리가 지금처럼 평화롭고 우호적인 관계로 아이를 함께 키워가길 바라.”소예지는 잠시 창밖 햇살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거기까지야. 우리 둘 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게 있어. 우리 사이에는 아이와 필요한 협력 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어.”“예를 들면 재혼 같은 거. 그건 앞으로 내 인생 계획에도 없어.”소예지의 말은 흔들림 없이 명확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선을 긋듯 분명했다.고이한이 물잔을 쥔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그는 침묵한 채 속눈썹을 내리깔고 감정의 흐름을 감췄다.잠시 후 고개를 든 고이한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내가 이렇게 하는 게 결국 당신을 재혼으로 몰아붙일까 봐 그런 거야?”소예지는 입술을 다문 채 그를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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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0화

“별말을.”소예지가 문 쪽으로 걸어가다 말고 잠시 멈춰 섰다. 그러고는 문득 이 말만큼은 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았다.“지금은 후회 안 하더라도 나중엔 후회할 수도 있어. 어쨌든 당신 인생은 당신 거잖아. 나한테 쓰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소예지는 짧게 말을 정리하듯 덧붙였다.고이한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당신도 방금 내 인생은 내 거라고 했잖아. 그럼 어디에 쓰든 낭비든 말든 결정할 권리도 나한테 있는 거 아니야?”소예지는 말문이 막혔다.그에게는 분명 자기 인생을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 그것은 소예지에게도 마찬가지였다.고이한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내일도 쉬는 날이야?”소예지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봤다.“왜?”고이한이 태연하게 말했다.“내일 나랑 골프 치러 가자.”소예지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나 골프 칠 줄 모르는 거 알잖아. 별로 관심도 없어.”고이한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내가 가르쳐줄게.”“됐어.”소예지가 단호하게 잘랐다.고이한이 이어 말했다.“지난번에 임 대위 구했을 때, 나한테 신세 진 거 있잖아. 그거 이번에 쓰자. 내일 하루, 나랑 같이 있어 줘. 딸 등원시키고 하원할 때까지.”소예지는 순간 멍해졌다. 하루로 그 신세를 갚는다는 건 예상 밖이었다.하지만 계산해 보면 오히려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그 빚에 다른 방식으로 얽매이는 것보다는 깔끔했다.소예지는 빠르게 판단을 끝냈다.“좋아, 그럴게.”고이한의 눈빛에 옅은 웃음이 스쳤다.“그래, 내일 하슬이 등원시키고 데리러 올게.”소예지는 그의 집을 나섰다. 고이한은 문을 닫고 거실로 돌아와 탁자 위 위장약 통을 잠시 바라보다가 서랍 속에 넣었다.사실 그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소예지는 집으로 돌아와서야 고이한이 왜 이렇게 쉽게 그 조건을 써버렸는지 의아해했다.그의 성격이라면 더 계산적으로 움직였어도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서로 빚 없이 정리되는 건 소예지가 바라던 방향이기도 했다.이튿날 아침, 고이한이 딸을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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