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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1화

소예지는 그의 칭찬을 가볍게 흘려넘기며 말했다.“출발하지.”가는 동안 두 사람은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다.골프장에 도착하자 고즈넉한 공기와 함께 탁 트인 시야가 펼쳐졌고 끝없이 펼쳐진 푸른 잔디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다.소예지도 마찬가지였다.이렇게 넓게 펼쳐진 잔디를 마주한 것이 얼마 만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만큼 오랜만이었다.그녀의 마음도 자연스럽게 풀렸다.고이한이 옆에서 물었다.“지난번에 윤하준이 가르쳐준 동작 기억나?”소예지는 잠시 그때를 떠올렸다.윤하준이 알려준 건 그저 클럽 잡는 법과 스윙 기본 정도였지만 지금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고이한이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오늘은 내가 가르쳐줄게.”소예지가 고개를 들었다.“안 배우면 안 돼?”고이한이 태연하게 답했다.“기왕 온 김에 배워두는 게 낫지 않아? 헛걸음은 아니게.”소예지는 잠시 생각했다.어차피 오늘 하루를 함께하기로 한 조건이라면 굳이 분위기를 틀 필요는 없었다. 지나치게 뻣뻣하게 굴 이유도 없었다.“알았어.”고이한은 꽤 인내심 있는 코치처럼 클럽을 잡는 법부터 스윙 자세까지 차근차근 설명했다.소예지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심유빈의 골프 실력이 좋은 것도 어쩌면 그가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가르쳐준 결과일지도 모른다고.고이한은 그녀가 잠시 딴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을 보고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내 설명이 그렇게 지루해? 벌써 딴생각이야?”소예지가 무심코 물었다.“심유빈 골프 실력, 당신이 가르친 거야?”말이 나오자마자 그녀는 곧바로 후회했다. 굳이 꺼낼 필요 없는 질문이었다.고이한도 잠시 멈칫했다. 곧 그의 시선이 깊어졌고 단호하게 말했다.“아니야.”그리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그 사람한테 뭔가를 가르친 적 없어. 골프든 뭐든.”소예지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본 거야. 계속 설명해 줘.”하지만 고이한은 곧바로 다시 설명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녀를 바라보던 시선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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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2화

소예지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짓다가 물을 받아 천천히 마셨다.방금 전 연습을 몇 번 거치고 나니 이 운동이 생각보다 지루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두 사람은 근처 휴게 구역으로 이동했고 직원이 시원한 음료와 과일을 가져다주었다.고이한은 편안해진 소예지의 표정을 잠시 바라보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꺼냈다.“상회 쪽에 M국 국제 과학 연구 교류회 참가 명단 하나 있어. 다음 달에 열리는데 신경과학 최신 동향 관련 주제야. 진기태 대표님이 이미 신청 서류는 대신 넣어주셨으니까 가면 돼.”소예지는 그 교류회에 원래 관심이 있던 상태였다.다만 진기태가 자신을 대신해 신청까지 해줬다는 사실에는 조금 놀란 기색이 스쳤다.“정말? 그럼 진 대표님께 감사드려야겠네.”고이한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순전히 투자자 입장에서 프로젝트 전망 좋게 보고 최대한 좋은 자원 연결해 준 거야.”“진 대표님이 신경 많이 써주셨네. 대신 꼭 감사 인사 전해줘. 나 꼭 갈게.”소예지의 눈빛에는 진기태를 향한 진심 어린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그녀에게는 이런 교류의 장이 꼭 필요했다.앞으로 연구 방향에도 중요한 자리였고 진기태는 이 연구에 자금의 80퍼센트를 투자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 마음을 가볍게 넘길 수는 없었다.고이한은 고개를 끄덕인 뒤 더 이상 말을 보태지 않고 과일 접시를 그녀 쪽으로 밀어주었다.번잡한 도시와는 달리, 넓게 트인 골프장에는 햇살과 초록빛 잔디가 조용히 퍼져 있었고 잠시 머물러 숨을 고르기에는 충분히 여유로운 공간이었다.고이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몇 타 더 치고 올게.”몇 분 뒤, 옆 파라솔 아래로 젊은 여자 두 명이 자리를 잡았다.그들은 풍경 사진을 여러 장 찍다가, 그중 한 명이 갑자기 놀란 목소리를 냈다.“세상에, 저 사람 고신 그룹 대표 아니야?”고이한의 은백색 머리카락은 오히려 그를 부유층 사이에서 쉽게 눈에 띄는 상징처럼 만들었다. 두 사람 역시 그를 단번에 알아봤다.햇살이 그의 어깨와 목선, 탄탄한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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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3화

“언제 돌아갈 거야?”“점심에 식당 예약해 뒀어. 이제 가면 돼.”고이한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어서 두 사람은 골프장을 떠나 근처의 조용하고 아늑한 가정식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한때 부부였던 사이인 만큼 서로에게 특별히 어색함이나 서먹함은 없었다.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흐르는 공기가 있었다.식사 중 고이한은 굳이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소예지가 진기태에 대해 몇 가지를 물어왔다. 투자자로서 어떤 사람인지 더 확인하고 싶은 의도였다.고이한은 그 질문에 차분히 답해주며 진기태의 성향과 투자 방식까지 설명했다. 그리고 소예지가 충분히 안심하고 그의 투자를 받아도 된다고 덧붙였다.점심 식사가 끝난 뒤 고이한은 소예지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오늘 하루를 그에게 내주기로 했다고는 하지만 소예지 역시 꽤 지쳐 보였다.“저녁에 당신 집에 올라가서 밥 먹어도 될까? 오후엔 집에서 일할 거라 밖에 안 나갈 거라서.”잠시 말을 멈췄다가 그는 덧붙였다.“요즘 속이 좀 안 좋아서 담백한 게 먹고 싶어.”소예지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올라와.”고이한은 그제야 짧게 웃고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오후 세 시, 소예지 집 초인종이 울렸다. 안시윤이었다. 그는 과일과 봉투 하나를 들고 서 있었다.“예지 누나, 뭐 좀 가져다드리려고요. 이건 제가 산 과일이고 이건 저희 큰할아버지가 누나한테 전해달라고 하신 책이에요. 누나 아버님 거라고 하셨어요.”소예지는 순간 멍해졌다. 땀이 맺힌 안시윤의 얼굴을 보며 고마움을 느꼈다.“고마워, 들어와서 물이라도 한잔 마시고 가.”“괜찮아요. 저 이따 시립도서관 가서 자료 좀 찾아봐야 해서요.”안시윤은 가볍게 웃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떠났다.소예지는 과일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 가방 속 책을 꺼냈다. 두 권은 의학서였고 아버지가 직접 필기해 둔 흔적이 남아 있었다.그리고 또 한 권은 비교적 얇은 노트였다. 아버지가 당시 기록한 것으로 보였다.소예지는 조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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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4화

저편에서 스미스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박사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소예지는 감정을 억누르며 정중하게 물었다.“말해봐요.”“지난번 제가 백혈병을 연구할 때 주셨던 자료 데이터가 박사님이 직접 연구해서 나온 건가요?”스미스가 잠시 멈칫했다.“어... 그게...”그는 바로 답하지 못하고 잠시 말을 고르듯 침묵했다.소예지는 이미 어느 정도 답을 짐작한 상태였다. 그래서 곧바로 다그치듯 물었다.“그때 저한테 주신 자료, 혹시 제 아버지의 초기 연구 데이터 아니었나요?”“소 박사,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저편에서 스미스의 목소리가 놀라움으로 높아졌다.소예지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말했다.“제 손에 아버지가 예전에 쓰신 노트가 있어요. 거기 적힌 이론들이 박사님이 주신 자료랑 거의 같더라고요.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처음에 고 대표가 실험실을 만들었을 때 그 최초 연구 프로젝트가 혈액병에 관한 거였나요?”스미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그때 고 대표가 세운 혈액 연구실은 사실 목적이 혈액병이 아니었어요. 처음 프로젝트는 자네 아버지가 주도한 백혈병 연구였고 나는 그때 소 박사 아버지 일을 지원하는 역할이었어요. 혈액병 연구는 그로부터 1년 뒤에야 시작됐어요.”소예지가 조용히 물었다.“그럼 제 아버지가 왜 그렇게까지 백혈병 연구에 매달리셨는지 아세요?”스미스는 잠시 말을 고르듯 웃음을 흘렸다.“그건 고 대표한테 직접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도 자세한 사정은 몰라요. 그 프로젝트는 당시 거의 기밀 수준이었거든요.”소예지는 미간을 찌푸렸다. 기밀 수준의 프로젝트라면 더더욱 이해되지 않았다.‘왜 아버지가 백혈병을 연구한거지...’스미스가 더는 설명하지 않을 태도를 보이자 소예지도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박사님.”“천만에요. 시간 나면 실험실 한 번 들러요.”“네, 시간 되면 갈게요.”소예지는 짧게 미소 지으며 전화를 마쳤다.이미 그녀의 연구는 대부분 마무리 단계에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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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5화

초인종이 울리자 소예지는 문 앞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신나서 통통 뛰며 들어오는 딸을 본 뒤, 뒤이어 들어오는 남자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막상 마주하자 따져 묻고 싶던 마음이 다시 가라앉았다.감정을 제대로 누르지 못하면 또 그와 부딪힐 것 같았다. 무엇보다 오늘 밤만큼은 딸이 유난히 즐거워 보였다.양희순이 차린 저녁상은 비교적 담백한 음식들로 채워져 있었다.고이한이 두 사람을 식탁으로 부르자 고하슬이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을 보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제가 좋아하는 탕수육 있네요! 저 이거 먹을래요.”고이한이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아빠랑 손 씻으러 가자.”고하슬은 그의 손을 잡고 1층 화장실 쪽으로 따라갔다. 소예지는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양희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 무슨 일 있으세요?”“아니에요.”소예지는 고개를 저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아버지 노트 내용이 계속 떠올랐다.후에 다시 확인했을 때 아버지의 백혈병 연구는 전면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 희귀 백혈병 치료 방향에 집중돼 있었다.만약 고이한이 정말 상업적인 이익을 노린 것이라면 이렇게 좁고 특정된 연구 방향일 이유가 없었다. 그 사실이 오히려 더 이해되지 않았다.소예지는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그때 딸이 뛰어오는 모습이 보이자 아무 일 없는 듯 미소를 지으며 딸의 손을 잡고 식탁에 앉았다.고이한은 소예지 맞은편에 앉았고 양희순은 식사를 마친 뒤 방으로 들어갔다.식사가 끝난 뒤 양희순이 다시 나와 정리를 하는 사이, 고이한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화면을 확인한 뒤 소예지를 바라봤다.“먼저 내려가 볼게.”“그래.”소예지는 굳이 붙잡지 않았다. 이따 딸에게 글자라도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고이한은 휴대폰을 들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여보세요.”“고 대표님, D국 건에 진전이 있습니다.”“말해.”“26년 전 방기성의 비서였던 사람을 조사했습니다. 그 비서에게 딸이 하나 있는데 방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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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6화

유미나는 한참 소란을 피우고 있는 심유빈을 냉정하게 바라보다가 분석하듯 입을 열었다.“유빈아, 지금은 화낼 때가 아니야.”“저 여자들은 그냥 돈 보고 온 거야. 넌 다르지. 젊고 예쁘고 방 대표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여자친구잖아. 게다가 그 사람이 너한테 다시 아이를 낳아달라고 직접 말까지 했잖아.”심유빈은 입술을 세게 깨물며 손으로 아랫배를 감쌌다.“우위는 무슨. 지금 그 사람 곁에 저렇게 여자들이 둘러싸여 있는데 나는 만날 기회조차 없어.”그녀의 계획은 이미 어그러진 상태였다.원래라면 아이를 가져 지위를 확고히 할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방기성이 그녀에게 신경 쓸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더구나 앞으로 시험관 시술도 그의 협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유미나가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우리부터 흔들리면 안 돼. 내가 알아봤는데 방 대표가 저 여자들이랑 예전에 사귀긴 했어도 지금은 감정적으로 이어진 관계는 아니야.”“그리고 지금은 아들을 잃은 상태라 정신적으로도 예민해서 경계심이 강해. 우리가 더 조심하면서 기다려야 해.”그때 심유빈의 휴대폰이 울렸다. 확인한 순간 그녀의 얼굴에 즉시 생기가 돌았다.“방 대표 비서한테서 온 거야.”유미나도 급히 몸을 숙였다.“빨리 받아봐.”전화를 받은 뒤 잠시 후, 상대가 말했다.“심유빈 씨, 방 대표님이 내일 점심 식사를 함께하자고 하십니다. 시간 괜찮으십니까?”심유빈은 속으로 크게 기뻐했지만 목소리는 최대한 차분하게 눌렀다.“네, 시간 괜찮아요.”“오전 아홉 시에 기사가 호텔로 모시러 갈 겁니다.”전화를 끊자마자 심유빈의 불안은 완전히 가라앉았다. 그녀는 유미나를 바라보며 말했다.“언니, 방기성이 나랑 식사하자고 했어. 역시 나 신경 쓰고 있는 거야.”유미나가 바로 맞장구쳤다.“당연하지. 그 여자들이 어떻게 너랑 비교가 돼. 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잖아.”심유빈의 표정에 다시 자신감이 차올랐다. 겉만 번지르르한 여자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었다.방기성 역시 결국 자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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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7화

소아는 눈앞의 방기성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얼굴에는 방기성과 꽤 많이 닮은 구석이 있었다. 윤곽과 이목구비 곳곳에 방기성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그렇지만 방소아는 곧바로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저 방기성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방기성은 순간 한 걸음 다가서며 눈앞의 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외모가 특별히 화려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는 단번에 이 아이가 바로 자신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혈연이라는 것은 때로 이렇게 설명할 수 없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법이었다.“얘야...”방기성이 갑자기 격앙된 목소리로 목이 메며 방소아의 손을 붙잡았다. 예순다섯의 나이에,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 친딸을 마주한 순간보다 더 벅찬 일은 없었다.마치 하늘이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자신에게 새로운 길을 내려준 것만 같았다.그때 대문 밖으로 검은 승용차 한 대가 그대로 안으로 들어섰다. 심유빈이 도착한 것이었다.그녀는 오늘 검은 드레스를 차려입고 정교한 메이크업을 한 채였다.방기성과 점심 식사를 함께하려는 목적이었고 동시에 자신의 위치를 확실히 다지기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심유빈 씨, 대표님께서 지금 손님을 만나고 계십니다.”비서가 급히 다가와 그녀를 막아섰다.심유빈의 얼굴이 바로 일그러졌다.“무슨 손님인데 나도 못 들어가요?”이미 그녀는 방기성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사실상 미래의 사모님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도 쉽게 그녀를 막을 수는 없었다.“그게...”비서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심유빈은 이미 안으로 들어섰다.그리고 문 앞에 도착한 순간, 방기성이 낯선 여자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옆에는 중년 여성이 서 있었고 이어서 방기성이 그 여자아이를 끌어안는 장면까지 보였다.심유빈의 미소가 단숨에 굳었다.‘방기성에게 또 다른 여자가 생긴 건가. 그것도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여자아이와?’그녀는 속으로 비웃었다. 안목이 형편없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이 정도라면 자신이 나서면 충분히 밀어낼 수 있다고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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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8화

심유빈은 그래도 침착함을 잃지 않은 채 방소아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안녕하세요. 저는 아버님 친구예요.”방소아는 그 요염한 여자를 바라보며 눈빛에 경멸을 담았다.어린아이도 아니고 ‘친구’라는 말로 자신을 무마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방소아는 결코 순진한 사람이 아니었다.어려서부터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며 수많은 일을 겪은 만큼 더 단단한 사람이었다.이번에 이 자리에 온 것도 이런 여자들과 경쟁하려는 게 아니었다.그저 어머니를 위해 최소한의 공정한 답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만약 이 소위 아버지라는 사람이 여전히 이런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어머니를 곤란하게 만든다면 차라리 아버지라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더구나 그녀는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다.국내 세경대학교에서 막 정보공학 석사 과정을 마친 상태였다.방소아는 심유빈의 말을 무시한 채 곧장 방기성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단단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저랑 엄마가 오늘 온 건 당신 돈을 노리려고 온 게 아니에요. 그냥 친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었을 뿐이에요.”“그런데 지금 보니 생활은 꽤 화려하시네요. 제 존재는 예상 밖이었던 것 같고요. 앞으로는 없는 딸처럼 생각하셔도 됩니다. 저랑 엄마는 이만 방해하지 않을게요.”말을 마친 방소아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돌아서서 나가려 했다.“소아야, 잠깐만!”방기성이 순간 당황하며 급히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애원하듯 목소리를 낮췄다.“아빠가 잘못했다. 아빠가 앞으로 꼭 고칠게. 보상도 충분히 해줄게.”옆에 있던 배미경은 입술을 꽉 깨문 채 그동안 딸과 함께 버텨온 세월이 떠올라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다.방소아는 발걸음을 멈춘 채 그를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기성은 즉시 상황을 읽고 몸을 돌려 심유빈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심유빈 씨, 나가주세요. 앞으로 다시는 제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심유빈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그녀는 믿기지 않는 듯 방소아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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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9화

그는 눈앞의 아이를 바라보았다.자신과 상당히 닮은 얼굴을 볼수록 만족감이 밀려오면서도 동시에 감정이 격하게 치솟았다.인생을 다 살아온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좋다, 정말 좋구나. 내 딸이 이렇게 뛰어나고 대단하다니.”흥분으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 그는 딸의 손을 붙잡았고 이번에는 방소아도 손을 빼지 않았다.“소아야, 원하는 게 뭐냐. 아빠가 다 해주겠다. 앞으로 아빠의 모든 건 다 네 거야.”방기성은 서둘러 자신의 부성애를 확인시키듯 조급하게 말을 쏟아냈다.“전공이 뭐야. 뭐에 관심 있어? 아빠가 회사도 차려줄 수 있고 공부를 계속 이어가게 지원도 해줄게. 말만 해.”이 순간 방기성에게는 심유빈도 다른 여자도 중요하지 않았다. 갑자기 나타난 이 뛰어난 딸만이 그의 전부처럼 느껴졌고 노년의 위안이자 자랑거리로 여겨졌다.방소아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결국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혈연이라는 끈이 마음속 응어리를 조금씩 풀어냈고 표정도 서서히 누그러졌다.그리고 잠시 후 방기성에게 말했다.“저희 엄마랑 결혼해주실 수 있어요?”방기성은 순간 멍해졌다가 옆에 있는 전직 비서를 바라보았다. 26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있었다.그사이 쌓인 죄책감과 혼자 아이를 키우며 고생했을 그녀에 대한 미안함이 뒤늦게 밀려왔다.마침내 양심이 움직이듯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아빠가 너희한테 가정을 만들어주마.”옆에 있던 배미경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그녀는 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 안에는 오랜 세월의 고생과 사심이 섞여 있었다.딸에게 안정된 자리와 미래를 남겨주고 싶었다. 결국 방기성과 결혼해야만 딸의 미래와 상속 문제까지도 확실해진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검은 승용차 안, 뒷좌석에 앉아 있던 심유빈은 이미 한동안 말이 없었다. 머릿속은 텅 빈 듯 멍했고 방기성이 딸을 바라보던 눈빛만 계속 맴돌았다.그 순간 이미 자신과 방기성의 관계는 끝났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게다가 방기성의 그 딸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는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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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0화

“유빈아,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내가 너한테 얼마나 쏟아부었는데. 돈 쓰고 힘써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언제 불평한 적 있어?”유미나는 속으로는 억울함이 치밀었다.그녀 역시 심유빈이 언젠가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줄 거라 기대하며 버텨온 사람이었다.그런데 아직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한 상태에서 돈과 시간, 인맥까지 쏟아부은 결과가 이런 식이라니.하지만 심유빈은 유미나의 감정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분노와 절망 속에서 계속 쏟아냈다.“방기성 눈에는 오직 그 딸밖에 안 보였어. 내가 해온 건 전부 헛수고였다고. 내가 그 역겨운 걸 참으면서 얼마나 오래 그 사람 옆에 있었는데 나는 결국 아무것도 얻은 게 없어.”심유빈은 타국 호텔 앞에서 감정을 쏟아냈지만 옆에 서 있던 유미나의 굳어지는 표정과 식어가는 시선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유미나는 이제 그녀의 말을 들으며 완전히 마음이 식어버렸다. 자신이 쏟아온 시간과 노력이 전혀 인정되지 않는 현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그녀는 심유빈을 위해 7년을 일하며 인맥과 돈, 시간을 쏟아부어 여기까지 끌어왔다.자기 커리어까지 뒤로 미룬 채, 오직 그녀가 방 사모님 자리에 오르기만을 기다려왔다.그런데 돌아온 건 감사가 아니라 책임 전가였다.그야말로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심유빈은 결국 지친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나 먼저 올라가서 샤워 좀 할게. 이따 방으로 음식 좀 시켜줘. 배고파.”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먼저 방으로 올라갔다.유미나는 호텔 앞에 잠시 서 있다가 조용히 휴대폰을 꺼냈다.그리고 가장 빠른 귀국 항공편을 예약했다.이어 방으로 돌아가 짐을 챙긴 뒤 로비로 내려와 체크아웃을 마치고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한편 방으로 돌아온 심유빈은 샤워를 마친 뒤 가운 차림으로 나왔다. 당연히 식사가 준비돼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테이블은 비어 있었다.기분이 이미 바닥까지 내려가 있던 그녀는 순간 짜증을 터뜨렸다.“대체 뭐 하는 거야. 밥 하나 제대로 못 시켜?”그녀는 곧바로 휴대폰을 들어 유미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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