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1711 - Chapter 1720

1726 Chapters

제1711화

이서연의 얼굴이 더욱 뜨거워졌다.“나도 알아. 지원이가 성실하고 착실한 사람인 건. 근데 너무 재미가 없어.”소예지가 웃으며 말했다.“그러니까 오히려 서로 잘 맞는 거지. 넌 밝고 솔직하니까 지원이랑도 잘 어울리고.”이서연도 더는 숨길 생각이 없는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사실 가끔 실험실에서 일하는 모습 보고 있으면... 꽤 멋있긴 해.”“내가 보기엔 지원이도 너한테 꽤 신경 쓰고 있어.”소예지의 말에 이서연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아니거든!”소예지는 그런 이서연을 보며 웃었다.“난 너희 둘이 성격도 잘 맞는 것 같아.”이서연이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지원이는 완전 일 중독이야. 눈에는 데이터랑 실험밖에 안 보이는데 날 볼 틈이 어디 있겠어.”소예지는 웃으며 고개를 저은 뒤 화면의 데이터를 바라보며 말했다.“평소에 말수가 적기는 해도 일은 정말 착실하게 하잖아. 지원이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말로 티 내는 사람은 아닐 거야. 대신 행동을 보면 분명 알 수 있겠지.”그 말을 듣자 이서연은 최근 이지원이 자신에게 간식이나 작은 케이크를 사다 주기 시작했다는 게 떠올랐다. 그동안은 별생각 없이 넘겼던 일이었다.“요즘 지원이가 시도 때도 없이 간식도 사다 주고 내가 좋아하는 밀크티 맛도 기억하긴 해. 근데 그것만으로 날 좋아한다고 할 수 있어?”이서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에 잠겼다.“네가 뭘 좋아하는지 기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한테 마음을 쓰고 있다는 뜻이지.”이서연이 눈을 깜빡였다.“그럼 고 대표님도 너한테 그래?”소예지는 잠시 생각하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응. 다만 그 사람은 좀 바쁘지.”이서연의 눈에 기대감이 어렸다. 나이도 적지 않은 데다 이지원이라면 확실히 괜찮은 남자였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저녁이 되어서도 소예지는 실험실에 남아 야근을 하고 있었다.한창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고이한이 저녁 식사를 챙겨 실험실로 찾아왔다.“하슬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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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2화

자료실 안은 무척 조용했다.줄지어 늘어선 높은 선반에는 각종 실험 자료와 문헌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소예지는 곧장 신경과학 자료가 있는 구역으로 가서 필요한 서류를 찾기 시작했다.손가락으로 파일들을 하나씩 훑어보던 그녀는 그중 하나를 꺼내 몇 장 넘겨보았다. 찾던 자료가 아니었는지 도로 제자리에 꽂은 뒤 계속해서 다음 파일을 살폈다.고이한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가에 기대어 그런 소예지를 바라보았다.흰 가운을 입은 소예지는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운 깃 사이로 안에 입은 흰 셔츠가 살짝 드러났고 몇 가닥의 잔머리가 뺨을 따라 흘러내려 있었다.자료를 확인하는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때때로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생각에 잠기는 모습은 꼭 공부에 열중한 학생 같았다.한동안 자료를 찾던 소예지가 마침내 파일 하나를 꺼내 고이한에게 다가갔다.“찾았어.”고이한은 그녀가 건넨 파일을 받아 들면서 다른 한 손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소예지의 허리를 감쌌다.소예지는 허리를 감싼 그의 손을 가볍게 밀어냈다.“장난치지 마. 나 아직 일 남았어.”“보는 사람도 없잖아.”고이한은 웃으며 대답했지만 곧 순순히 허리에서 손을 떼고 대신 소예지의 손을 잡았다.자료를 챙겨 사무실로 돌아온 소예지는 다시 하던 일을 이어갔다. 고이한도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손에 잡히는 과학 잡지 한 권을 펼쳐 들었다.한참 일에 몰두하던 소예지는 문득 목이 말라 컵을 집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컵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일을 마치고 마시기로 하고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리려는데 고이한은 그 작은 몸짓을 놓치지 않았다.고이한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수기로 향했다. 물 한 잔을 따라 소예지 곁에 놓아주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한번 바라본 뒤 컵을 들어 물을 마셨다.소예지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살짝 올라갔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고이한의 보살핌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저녁 여덟 시 반이 되어서야 소예지는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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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3화

세 여자는 순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임자 있네...”“저 여자가 여자 친구인가 봐. 예쁘기도 하다.”“예쁜 정도가 아닌데? 분위기 좀 봐. 딱 봐도 지적인 여자잖아.”아까 번호를 물어보겠다던 여자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됐어. 괜히 가서 망신당하지 말자.”그래도 세 사람의 시선은 자꾸만 두 사람에게 향했다.자세히 보니 그 잘생긴 남자는 맞은편에 앉은 여자만 바라볼 뿐 다른 사람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그중 한 여자가 몰래 고이한과 소예지의 사진을 찍어 곧바로 자신의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다.[오늘 선남선녀 커플 발견. 특히 남자분 희끗한 머리 진짜 미쳤다!]그때 직원이 소예지가 주문한 디저트를 포장해 테이블로 가져왔다.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나섰다.조금 전 스토리에 사진을 올린 여자는 두 사람이 나가자마자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평소 인스타 활동을 자주 하는 편이라 올린 지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댓글이 줄줄이 달리고 있었다.[헐, 이 사람 고신 그룹 대표 고이한 아니야?][세상에! 고이한이잖아. A시에서 제일가는 부자잖아!][맞아, 맞아. 고이한 맞아. 저 희끗한 머리가 딱 특징이잖아.][같이 있는 여자는 전처 아니야? 소예지. 의학계에서도 유명한 연구자잖아.]사진을 올린 여자가 눈을 크게 떴다.“헐, 아까 그 잘생긴 남자가 고신 그룹 대표였어. 옆에 있던 여자는 전처고.”세 여자는 다시 흥분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그중 한 명이 웃으며 말했다.“너 아까 하마터면 번호 물어보러 갈 뻔했잖아.”“그만해, 생각만 해도 쪽팔려 죽겠어...”“근데 진짜 둘이 너무 잘 어울린다. 두 사람 다 분위기가 남다르더라니.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은 말도 못 걸겠다.”그 시각 소예지는 차 안에서 여유롭게 티라미수를 맛보고 있었다.신호에 걸려 차가 멈추자 티라미수를 한 숟갈 떠 고이한의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밤 아홉 시 반 두 사람은 집에 도착했다.양희순이 소예지에게 물었다.“사모님, 뭐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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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4화

어둠 속에서 고이한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목소리에는 만족스러운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소예지는 그의 품에 안겼다. 샤워를 마친 고이한에게서 산뜻한 시더우드 향이 훅 끼쳐왔다.그 순간 소예지의 심장이 조금 더 빠르게 뛰었다.“응.”그녀가 작게 대답했다.고이한은 웃으며 소예지를 번쩍 안아 올린 채 위층으로 향했다.갑자기 몸이 허공에 뜨자 놀란 소예지는 그의 어깨를 꼭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고이한의 팔 힘은 놀라울 정도로 강했고 걸음도 흔들림 없이 안정적이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안방에 도착했다.어두운 방에는 조명만 켜져 있어 은은한 빛이 방 안 가득 퍼져 있었다.고이한은 소예지를 그대로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소예지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고이한이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부드럽고도 긴 입맞춤이었다.입맞춤에는 고이한 특유의 소유욕이 묻어 있었고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탓에 오히려 더 견디기 힘들었다.소예지는 다리에 힘이 풀릴 만큼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몸은 푹신한 침구 속으로 파묻혔고 그저 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그의 입맞춤은 목선을 따라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쇄골 부근에 오래 머물자 따뜻한 숨결이 피부 위로 흩어지며 잔잔한 떨림이 일었다.“고이한...”소예지가 그를 살짝 밀었다.고이한이 고개를 들었다. 눈 깊은 곳에는 짓궂은 웃음이 숨어 있었다.“응?”살짝 잠긴 목소리에도 장난기가 묻어났다.곧이어 고이한이 다시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무언가를 나지막이 속삭였다.소예지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그녀가 손을 들어 고이한을 한 대 때렸다.“당신 정말...”고이한은 오히려 낮게 웃었고 그때마다 그의 가슴에서 작은 울림이 전해졌다. 그는 그대로 소예지를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이번에는 고이한이 불을 완전히 끄지 않았다.소예지가 꺼달라고 해도 그는 들어주지 않았다.그렇게 초겨울의 긴 밤이 깊어 갔다.다음 날 아침.어젯밤부터 내리던 비가 아침이 되어서도 보슬보슬 그칠 줄 몰랐다.이런 날씨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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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5화

고이한이 커피 한 잔을 들고 와 소예지에게 물었다.“좀 마실래? 이따 내가 데려다줄게.”소예지는 고이한의 커피잔을 받아 두 모금 마셨다.그렇게 간단히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함께 집을 나섰고 뒤에 남아 옷가지를 정리하던 양희순은 나란히 걸어 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고이한은 소예지를 실험실 사무실까지 데려다준 뒤에야 돌아갔다. 소예지는 그가 떠나자 곧바로 업무에 몰두했고 그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주일을 보냈다.그동안 고이한은 대체로 소예지의 바쁜 일정을 이해하고 기다려주었지만 가끔은 제 마음 가는 대로 굴기도 했다.그러는 사이 고하슬의 학교에서는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다. 학부모가 동행하지 않는 일정이라 고하슬은 앞으로 한 달 동안 M국에서 지내야 했다.마침 고수경도 업무차 M국으로 출장을 갈 예정이었다. 현지에서 조카를 돌봐주겠다는 고수경의 말에 소예지는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고 고하슬은 연말이 되어서야 M국에서 돌아올 예정이었다.소예지는 경주에 입원 중인 송세아의 치료 방안을 검토하며 몇 가지 핵심 수치를 조정했다.동시에 신경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 D국에서 개발한 최첨단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칩도 하나 신청했다.한편 소예지가 진행 중인 연구도 속도를 내고 있었다.그렇게 보름이 흐른 뒤 윤하준이 어머니를 모시고 소예지의 실험실을 찾아왔다.다시 만난 주경화의 상태는 지난번보다 확연히 나빠져 있었다. 이제는 소예지조차 알아보지 못한 채 소파에 앉아 낯선 사람을 보듯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그 모습을 마주한 순간 소예지는 가슴 한구석이 세게 죄어들었다. 주경화와는 몇 번 만난 사이에 불과했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저릿했다. 그제야 어머니의 병세를 걱정하며 애태우던 윤하준의 심정이 진심으로 이해됐다.지난번보다 훨씬 야윈 주경화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빛에는 공허함과 혼란스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두 손으로는 무의식적으로 옷자락을 계속 만지작거렸고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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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6화

소예지는 몇 가지 치료 방안을 마련했지만 어느 방안이든 효과를 입증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앞으로의 치료는 장기전이 될 터였다.그러는 사이 어느덧 연말이 다가왔고 고하슬의 겨울 해외 연수도 무사히 끝났다.고이한과 소예지는 함께 공항으로 딸을 마중 나갔다. 잠시 후 사람들 사이로 혼자 여행 가방을 끌며 걸어오는 고하슬의 모습이 보였다. 전보다 키가 조금 더 자란 데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한층 눈부셔 보였다.이번 연수를 거치며 확실히 더 성장했고 전보다 독립적으로 변한 딸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에 자랑스러운 미소가 번졌다.“아빠, 엄마.”고하슬은 두 사람을 발견하자 신이 나서 달려와 소예지의 품에 와락 안겼다.“재미있었어?”“네! 정말 재미있었어요.”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세 사람은 저녁이 되자 고씨 집안 본가로 가서 함께 식사했다.진가영은 최근 상태가 상당히 좋아 보였고 식사를 마친 뒤에는 소예지에게 섣달그믐 저녁도 고씨 집안에서 함께 보내자고 권했다.소예지는 흔쾌히 승낙했다. 마침 명절을 맞아 양희순에게도 휴가를 줄 생각이었기에 설 연휴 동안에는 고씨 집안에서 함께 식사하게 될 터였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섣달그믐날이 찾아왔다.소예지는 모처럼 늦잠을 자고 아홉 시가 다 되어서야 눈을 떴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딸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빠, 그거 거기 아니에요. 이쪽에 맞춰야 돼요.”소예지가 거실로 향하자 고이한과 고하슬이 나란히 앉아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아직 맞추지 못한 퍼즐 조각들이 잔뜩 흩어져 있었고 고하슬은 고이한이 집어 든 조각을 가리키며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었다.고이한이 딸의 말대로 조각을 끼워 넣자 이번에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거봐요. 제가 맞다고 했죠?”고하슬이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식탁 위에는 아침 식사로 우유 한 잔과 샌드위치가 준비되어 있었다. 소예지는 우유를 마시며 퍼즐에 푹 빠진 부녀를 웃으며 바라보았다.점심이 되자 세 사람은 고씨 집안 본가로 향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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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7화

정월 초나흘부터 소예지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주경화의 병세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상태였다. 조용한 실험실 안에는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만 들려왔고 이지원과 안시윤, 이서연도 휴가를 일찍 끝내고 돌아와 일을 돕고 있었다.윤하준은 병실 구역에서 주경화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예지야, 준비 끝났어.”장비실에서 나온 이지원이 검사 목록을 건넸다.“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조정도 끝났고 신경 신호 수집 장비 보정도 마쳤어.”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사 목록을 받아 꼼꼼히 확인했다.“좋아. 그럼 시작하자.”소예지는 주경화에게 다가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몸을 낮췄다. 오늘 주경화는 얼마 전보다 상태가 좋아 보였다. 눈빛에는 여전히 혼란스러움이 남아 있었지만 적어도 거부감을 보이지는 않았다.“어머님, 우리 검사 하나만 해볼까요?”주경화가 윤하준을 바라보자 그가 다가와 어머니를 부축해 일으켰다.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설치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필요했다. 소예지는 직접 전극 패치를 하나씩 주경화의 두피에 부착한 뒤 복잡한 장비들을 차례로 연결했다. 손길은 부드러우면서도 능숙했다.곁에서 지켜보던 윤하준도 눈에 띄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소예지가 안심시키듯 그를 바라보았다.윤하준은 소예지와 눈을 맞춘 뒤 고개를 끄덕이고 가볍게 숨을 들이마시며 최대한 긴장을 풀었다.모든 준비가 끝나자 소예지는 조작대 앞으로 돌아가 헤드폰을 착용한 뒤 화면 위에서 움직이는 신경 신호 파형을 주시했다.“수집 시작해.”이지원이 시작 버튼을 눌렀다.화면 위에서 거의 움직임이 없던 파형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미약했지만 신호가 강해질수록 파동도 점차 뚜렷해졌다.“해마 영역의 신호가 강해지고 있어요.”안시윤이 데이터를 주시하며 말했다.“측두엽 영역에서도 반응이 나타났어요.”소예지는 대답하지 않은 채 화면에 집중하며 빠르게 조작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의 수치를 조정했다.주경화는 진정제의 효과로 편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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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8화

30분 뒤 주경화는 병실로 옮겨졌다.이런 치료는 앞으로 최소 3개월 동안 계속해야 했다.잠시 후 윤하준이 소예지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소파에 앉아 있는 친구를 발견한 그는 먼저 인사를 건넸다.“이한아, 너도 왔네.”고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어머님 상태는 어때?”“기억이 돌아왔어. 예지 씨가 또 한 번 기적을 만들어냈어.”윤하준의 시선이 소예지에게 향하자 그녀가 차분하게 말했다.“사실 난 처음부터 이 이론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과거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이용해 임현욱을 깨웠을 때부터 이 이론은 이미 상당히 성숙한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단지 적절한 조건과 이상적인 수치를 찾아내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소예지는 마침내 안정적인 특이점을 찾아냈다.윤하준은 소예지를 바라보았다. 눈빛에 가득한 감사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마워요. 예지 씨한테 정말 큰 신세를 졌네요.”소예지가 그를 향해 웃었다.“신세로 따지면 나도 하준 씨한테 진 게 많아요.”그때 고이한이 물 두 잔을 들고 다가왔다. 한 잔은 윤하준에게 건네고 다른 한 잔은 소예지에게 주었다.소예지가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셨을 때 안시윤이 서류를 들고 들어왔다. 그러자 고이한은 소예지의 손에 있던 컵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고 그대로 한 모금 마신 뒤 윤하준에게 말했다.“우리 휴게실 가서 좀 앉아 있자.”윤하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고이한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윤하준의 눈에도 두 사람의 사이는 확연히 보였다. 소예지와 고이한은 이미 부부였을 때의 친밀함을 완전히 되찾은 듯했다.윤하준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재결합은 언제 할 생각이야?”고이한이 웃었다.“억지로 할 생각은 없어. 예지 뜻에 맡겨야지.”윤하준의 눈에 부러운 기색이 스쳤지만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축복이 담겨 있었다.“다시 결혼식 올리게 되면 제일 먼저 알려줘.”“그건 예지한테 달렸지. 그래도 기다리고 있긴 해.”고이한은 다시 웃었다. 눈에 어린 행복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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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9화

소예지는 웃다가 이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노벨상 후보 추천에는 엄격한 규정이 있어. 본인이 직접 지원할 수 없고 반드시 추천 자격이 있는 사람의 추천을 받아야 해.”“알아. 추천권은 특정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만 있으니까.”고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몇 사람에게 연락해 뒀어. 주 총장님과 이성열 박사님도 당신을 추천하겠다고 했어. 두 분 모두 국내에서 손꼽히는 권위자잖아.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또 누가 당신을 추천하겠다고 했는지 알아?”소예지가 눈을 깜빡였다.고이한의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자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지만 소예지는 굳이 맞혀보지 않았다.“그냥 말해줘.”“당신도 생각했을 것 같은데. 장인어른의 지도교수였던 진경수 교수님이야.”소예지는 순간 숨을 멈췄다.의학계에서 진경수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국내 신경과학 분야의 기틀을 세운 학자 중 한 명이었으며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 추천된 적이 있는 몇 안 되는 국내 과학자이기도 했다.무엇보다 그는 아버지 소영욱의 박사 과정 지도교수였다.소예지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진경수 교수의 모습도 이미 환갑을 넘긴 노인이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던 해에는 직접 추모 글을 써 의학 학술지에 게재하기도 했다.“교수님이...”소예지의 목소리에 격한 감정이 묻어났다.“이제 거의 아흔이 다 되셨지?”“아흔여덟이셔.”고이한은 소예지의 손을 잡아 가볍게 쥐었다.“사람을 통해 연락드렸는데 당신이 소영욱 교수님의 딸이라는 말을 듣고 먼저 시간을 정해서 한번 만나자고 하셨어.”소예지는 벅찬 감정에 목이 메었다.“정말?”“장인어른은 교수님이 당시 가장 아끼던 제자였고 당신은 그 제자가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딸이라고 하셨어.”소예지는 고이한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나도 꼭 한번 찾아뵙고 싶어.”그 뒤로 소예지는 온 마음을 주경화의 치료에 쏟으며 회복 과정의 마지막 관찰과 기록까지 꼼꼼하게 진행했다. 윤하준의 기분도 눈에 띄게 좋아졌고 전보다 한결 편안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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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0화

노인의 목소리는 늙고 쇠약했지만 따뜻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잠시 서 있던 소예지의 손을 고이한이 말없이 가볍게 쥐어주었다.소예지는 고이한의 손길에 힘을 얻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노인에게 인사했다.“진 교수님, 안녕하세요. 소영욱 교수의 딸 소예지예요.”진경수 교수는 고개를 들어 소예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증손녀를 바라보는 것처럼 한없이 다정했다.“닮았구나. 정말 많이 닮았어.”노인이 나지막이 중얼거리더니 소예지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특히 그 눈이 닮았구나. 강단이 있어.”고이한도 뒤따라 인사했다.“진 교수님, 안녕하세요.”진경수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이한에게도 무척 온화한 태도를 보이며 옆에 있는 의자를 두드렸다.“둘 다 앉게.”진경수 교수 역시 눈앞의 젊은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고이한은 그동안 수많은 연구 프로젝트에 투자해왔고 안목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노인의 시선이 다시 소예지에게 향했다. 눈빛에는 자애로움이 가득했다.“지금 하고 있는 연구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이 늙은이한테 한번 이야기해 보렴.”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연구의 기초 이론부터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진경수 교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소예지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소예지가 연구 내용을 세세하게 설명할수록 노인의 눈은 점점 밝아졌고 얼굴에 깊게 자리 잡은 주름마저 활짝 펴지는 듯했다.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주경화의 치료와 현재 회복 상태로 이어졌다.소예지의 설명을 들은 진경수 교수의 눈시울이 살짝 젖었다. 목소리에도 흥분이 묻어났다.“그렇다면 그 파형이 이제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거냐?”“현재까지는 계속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요. 환자의 기억도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고 거의 정상적인 기억 수준까지 회복됐어요.”진경수 교수가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대단하구나. 정말 대단해. 우리 때는 장비도 부족했고 의료 기술도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지. 나 역시 그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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