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451 - Chapter 460

556 Chapters

제451화

고씨 가문 저택.진가영은 가정부에게 고하슬이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를 준비하라고 일러둔 뒤, 손녀와 함께 소파에 앉아 장난감을 함께 놀아주고 있었다.그 시각 고이한은 2층 서재에서 업무를 처리 중이었고 고수경은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외식하러 나간 상태였다.최현숙은 작은 증손녀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점점 더 예뻐져 가는 아이의 얼굴이 정말이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어느덧 저녁 식사 시간이 되고 고이한은 캐주얼한 실내복 차림으로 2층에서 내려왔다.그는 소파에 앉아 있던 딸아이의 손을 살포시 잡아 식탁으로 이끌고 조심스럽게 턱받이를 씌워주었다.“하슬아, 엄마랑 같이 군대에 다녀왔다고 들었는데 거기 재미있었어?”최현숙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고하슬은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해맑게 웃었다.“엄청 재미있었어요! 현욱 아저씨가 반딧불이도 많이 잡아줬고요, 탱크도 태워줬어요!”그 말에 진가영은 국을 뜨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현욱 아저씨?”고이한이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소예지가 업무상 연락하는 사람이에요.”“아저씨 진짜 잘생기고 진짜 멋있어요!”고하슬은 눈을 반짝이며 덧붙였다.고이한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졌지만 그는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표정을 바로잡고 조용히 반찬을 집어 딸의 밥그릇에 올려주며 부드럽게 말했다.“고하슬 어서 밥 먹어.”진가영은 아들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떠보듯 물었다.“예지가 혹시 요즘 새 남자친구라도 생긴 건 아니지?”“엄마, 그건 소예지 사생활이에요.”곁에서 듣고 있던 최현숙 역시 눈빛이 반짝이며 손자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폈다. 소예지가 얼마나 성실하고 능력 있고 단정한 여자인지를 생각하면 주변에 구애하는 사람이 있어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괜히 한숨을 내쉬며 고이한을 흘겨보았다.진가영도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사실 그녀는 그보다 오래전부터 궁금한 것이 있었다.아들이 과거 소예지의 명의로 돌려준 여덟 개의 회사들,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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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2화

고이한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깊은 눈빛 속 어딘가에는 본인조차 자각하지 못한 반성의 기색이 어렴풋이 스쳐 지나갔다.그 사이 고하슬은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작은 다리로 총총 뛰어 정문 앞까지 되돌아간 아이는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는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아빠, 왜 안 들어와요?”소예지의 시선이 차갑게 그를 향했고 고이한은 딸과 그녀의 시선 사이 어딘가에 머무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아빠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먼저 엄마랑 들어가.”“네!”고하슬은 더 묻지 않고 씩씩하게 손을 흔들었다.마침 그때 강아지 젤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고이한 앞까지 달려와 애교를 부렸다. 고이한은 가볍게 무릎을 굽혀 젤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강아지의 눈은 실룩이며 그 손길을 유난히도 좋아했다.딸아이를 먼저 들여보내고서야 마당에 있어야 할 강아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소예지는 잠시 불쾌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젤리! 당장 들어와.”젤리는 마지못한 듯 고개를 흔들고는 천천히 문 안으로 들어왔다.소예지는 조용히 대문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문 너머에 서 있던 남자는 마치 그녀의 세계에서 완전히 차단된 것처럼 조용히 그 자리에 남았다.밤이 깊었다.소예지는 고하슬을 품에 안은 채 ‘어린 왕자’ 이야기를 읽어 주고 있었다.“그래서 어린 왕자는 자기 별을 떠나 더 넓은 우주를 찾아 나서기로 했단다...”고하슬은 품에서 눈을 비비다가 이내 곤히 잠들었고 소예지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다가 살며시 고개를 숙여 아이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이튿날 아침.소예지는 고하슬을 유치원에 데려다준 뒤 곧장 새로 이전된 실험기지로 향했다. 현재 의과대의 일부 연구 프로젝트가 그곳으로 옮겨졌고 그녀가 주도하는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전번의 공식적인 개소식을 마친 뒤, 본격적인 운영이 시작된 상태였다.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로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얼굴이 환하게 다가왔다.“소예지! 드디어 돌아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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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3화

소예지는 고이한과 잠시 시선을 마주친 뒤, 아무 말 없이 서류를 안은 채 그를 지나쳐갔다.얼마 후 소예지와 양정화가 연구 관련 미팅을 진행하던 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고이한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고 대표? 어쩐 일이야?”양정화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확인하러 왔습니다.”고이한은 짧게 답했다.“마침 나도 지금 소예지랑 연구 이야기하던 참이야. 같이 들을래?”양정화가 권하자 고이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소예지와 가장 먼 소파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최근 프로젝트는 양정화가 중심이 되어 이끌고 있었고 그녀는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을 소예지에게 차근히 설명하고 있었다.소예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들었지만 고이한의 시선이 계속 자신에게 머물러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 시선을 의식할수록 그녀는 입술을 한층 더 단단히 다물었고 표정은 더욱 차갑게 굳어졌다.“다음 단계는 샘플 수를 확대할 예정이고 큰 문제가 없다면 두 달 후쯤 동물실험에 들어갈 수 있을 거야...”“네.”소예지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전 이만 실험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그녀는 파일을 덮고 일어나 그대로 자리를 나섰다.양정화는 예상보다 훨씬 차가운 반응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동시에 소파에 앉아 있는 고이한의 무표정한 얼굴을 힐끔 본 뒤, 상황을 대체로 이해했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울림 바이오 쪽 인수 건은 어떻게 됐어?”양정화가 화제를 돌리듯 물었다.“아직입니다. 제가 제시한 가격에 그쪽이 입장을 안 바꾸고 있어요.”고이한의 눈빛에 짧고 날 선 빛이 스쳤다.울림 바이오의 특허 기술은 소예지가 진행 중인 연구에 핵심적으로 필요한 자산이었다.이후 양정화는 연구 진행 상황을 간단히 정리해 그에게 전달했고 고이한은 소파 팔걸이를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소예지가 돌아왔으니 프로젝트 진행 속도를 좀 더 높일 필요가 있어요.”“알겠어. 내가 직접 챙길게.”양정화는 짧게 답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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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4화

오후 내내 소예지는 실험실에 머물렀다.두 시간 동안 이지원이 어려운 문제를 조심스럽게 질문해왔고 그녀는 성실하게 하나하나 답해주었다.그러다 문득 이지원은 지난번 안채린의 행동이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게 걸렸다.결국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너, 안채린이랑 사이 어때?”소예지는 특별한 감정 없는 얼굴로 고개를 살짝 저으며 솔직히 말했다.“좋지 않아.”예상했던 답이었는지 이지원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어차피 지금 안채린은 MD 팀에 속해 있고 소예지가 주도하는 프로젝트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니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퇴근하기 직전 소예지는 다시 한번 양정화의 호출을 받았다.사무실로 들어서자 양정화는 고이한이 울림 바이오 인수를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다.그 기업의 특허 중 세 가지는 소예지가 현재 진행 중인 연구에서 꼭 필요한 핵심 기술이었다.소예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조금 전 고이한이 일주일 내로 특허 사용권을 실험실로 넘기겠다고 말했으니 걱정할 일은 없었다.“고 대표가 이번 프로젝트에 정말 많은 자금을 투자했어. 솔직히 말해 거의 비용을 따지지 않고 쏟아붓는 수준이야.”양정화가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들어보니까 울림 쪽에서 부른 가격이 시장가보다 훨씬 높대. 그런데도 고 대표는 그냥 그대로 밀고 나간다더라.”소예지는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그 실험은 결국 심유빈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첫사랑을 살리는 데 들어가는 돈이야 그 사람한테는 그저 숫자겠지.’양정화는 웃으며 분위기를 풀었다.“그러니까 우리도 연구 열심히 해서 절대 그 기대에 실망 주지 말자고. 물론 진척도 조절은 내가 중간에서 할 테니 연구는 네 페이스대로 해.”소예지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사무실을 나섰다.딸을 데리러 유치원에 도착했을 때 고하슬은 놀이터에서 이안과 함께 신나게 뛰놀고 있었다.다만 이안을 데리러 온 사람은 평소처럼 보모도, 윤하준도 아니었다. 잘 다듬어진 단발머리와 세련된 옷차림에 누가 봐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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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5화

“울림 그룹의 특허가 급하게 필요해서 그런 걸 거야.”“설마 그 특허가 네 실험실에서 쓰일 예정인 거야?”“응.”박시온은 어이없다는 듯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러니까 고 대표가 그렇게 순순히 물러섰던 거구나. 결국엔 자기 첫사랑을 살리려고 그런 거였잖아?”저녁 무렵, 윤씨 가문의 저택.주경화는 외손녀의 손을 꼭 잡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전에는 늘 의문이었다.성공한 아들이 굳이 편리한 별장을 놔두고 왜 이런 낡은 구도심의 주택을 선택했는지.인테리어는 그럭저럭 깔끔하지만 동네도 그렇고 위치도 그렇고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몇 년간 주경화는 남편의 병간호와 딸의 재판 문제로 해외에 머무르며 한국과 멀어져 있었다.하지만 남편은 끝내 세상을 떠났고 딸은 감옥에 수감된 상태라 이제 그녀가 집중해야 할 건 단 하나, 아들의 경영권 싸움이었다.그 어렵사리 회장 자리를 차지한 아들이지만 탐욕스러운 둘째 아주버니는 아직도 그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이럴 때일수록 강력한 정치적 동맹이 필요했고 그게 바로 고씨 가문과의 정략결혼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윤하준이 퇴근해 집에 들어왔다.주경화는 이안을 장난감방으로 보내고 아들을 불러세웠다.“이리 와. 엄마랑 얘기 좀 하자.”“엄마, 저 좀 피곤해요.”윤하준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그런 아들의 모습에 주경화는 답답함을 억누르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결혼 이야기 언제까지 미룰 셈이야? 이러고만 있을 거야?”“엄마, 저 정략결혼 같은 건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그러니까 제발 신경 쓰지 마세요.”그의 단호한 말투에 주경화는 순간 멈칫했다.“설마 소예지라는 여자 때문이야?”윤하준의 발걸음이 멈췄다.“엄마, 절 조사하셨어요?”주경화는 여유롭게 소파에 앉아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유치원에서 소예지를 봤어. 확실히 기품은 있더라.”“제발 이 일에 끼어들지 마세요.”윤하준은 발길을 돌리려다 이내 멈추고 다시 어머니 쪽으로 다가섰다.“제가 하는 모든 결정은 예지 씨와는 아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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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6화

다음 날 아침, 지온 재단의 부대표에게서 소예지에게 연락이 왔다.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신인 과학 인재 양성 프로젝트’ 개회식에서 그녀가 직접 연설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사실 이 프로젝트는 그녀가 재단에 투자한 자선 기획 중 하나였다.그 취지도 오로지 순수한 인재 양성에 있었고 애초엔 소예지도 조용히 뒤에서 돕는 것만으로 만족하려 했다.그래서 처음엔 그 연설을 정중히 사양하려 했지만 이 프로젝트가 앞으로 더 많은 젊은 인재들을 길러내는 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자 마음이 바뀌었다.그건 곧 과학계에 실질적인 기여가 될 일이었고 그녀는 결국 연설을 수락했다.그날 저녁 윤하준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내일 열 시, 재단 행사에서 뵈어요.]소예지는 짧고 간단히 답장을 보냈다.[알겠어요. 시간 맞춰 갈게요.]다음 날 아침.소예지는 평소처럼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다 마침 이안이를 데려온 주경화와 마주쳤다.“안녕하세요, 주 여사님. 좋은 아침이에요.”소예지가 정중히 인사하자 주경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힐끗 그녀를 훑어보았다.그 눈빛에는 분명 은근한 탐색과 판단이 섞여 있었다.그러나 예상과 달리 소예지의 표정에선 어떤 아부도 비위 맞추는 태도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그녀는 인사만 짧게 한 뒤 곧바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경화는 순간 묘한 당혹감을 느꼈다.‘수경이 말이 사실이라면 저 여자는 나한테 어떻게든 잘 보이려 애썼어야 하는 거 아닌가?’이안을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길에도 주경화의 생각은 복잡했다.며칠째 아들은 소예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꺼내지 않았고 혼사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단호하게 거절했었다.사실 그녀도 아들을 억지로 결혼시키고 싶은 건 아니었다.다만 이제 막 회사를 물려받은 아들이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자리를 잡기를 바랐고 정략결혼은 빠르고 확실한 우군을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었다.소예지는 오전 반차를 내고 지온 재단 행사장으로 향했다.오늘은 지온 재단에서 신규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날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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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7화

고수경이 다급하게 오빠를 부르던 그 순간 심유빈의 표정 역시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하종호가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듯 말했다.“고 대표가 업무 관련해서 얘기 나눌 게 있다고 하더라고.”고수경은 분노를 억누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업무 얘기? 도대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지금 당장 얘기해야 해요?”마침 행사 관계자들이 앞줄 좌석 안내를 위해 다가왔다.연륜 있는 인사들이 줄줄이 입장하는 걸로 보아 첫 줄 좌석은 이미 모두 차 있는 듯했다.하종호는 심유빈과 고수경을 데리고 두 번째 줄로 안내했다.“유빈 언니, 괜찮아요?”고수경이 조심스레 묻자 심유빈은 억지로 웃으며 답했다.“괜찮아.”그러나 고수경의 시선은 여전히 앞줄에 앉아 있는 소예지에게 고정돼 있었다.그 눈빛엔 질투와 불쾌감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대체 무슨 자격으로 저 여자가 앞줄에 앉는 거야?”“앞줄은 재단 이사진이나 특별 초청 인사만 앉을 수 있어.”하종호가 짧게 대답했다.심유빈은 가볍게 웃었지만 그 웃음은 씁쓸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보니까 하준 오빠 소예지한테 꽤 신경 쓰는 모양이네. 이런 자리에도 초대하고.”고수경은 다시 입술을 꾹 눌렀다.질투와 불안이 뒤섞인 눈빛이었다.“누가 알아? 저 여자가 먼저 들러붙었을 수도 있잖아.”그 말에 하종호는 미묘하게 눈썹을 치켜들었다.그 역시 슬쩍 소예지 쪽을 바라보며 의아함을 떨치지 못했다.‘설마 진짜 하준이랑 사귀는 건가?’한편, 고이한은 소예지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소예지는 단 한 번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고 오히려 같은 줄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것조차 불편한 듯 미묘하게 몸을 멀리 두고 있었다.마침내 행사가 시작되고 사회자가 무대 위로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지금부터 지온 재단 ‘신인 과학 인재 양성 프로젝트’ 출범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윤하준 대표님의 인사말이 있겠습니다.”박수 속에서 윤하준이 단정한 걸음으로 무대에 올랐다.그의 시선이 객석을 천천히 훑다가 소예지가 앉은 자리에서 잠시 멈췄다.그는 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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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8화

소예지의 오른편에 앉아 있던 한 남성이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감사합니다.”그녀는 잔잔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예의 바르게 답했지만 왼편에서 건네진 인사는 아예 듣지 못한 듯 반응조차 없었다.고이한은 그녀의 옆자리에서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 안에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곧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감정을 지운 채 평소처럼 무심하고 냉담한 얼굴로 돌아갔다.한편, 무대 위에서는 재단의 다음 프로젝트 소개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환경 보호 캠페인 홍보가 주제였다.그 시각 고수경은 꼿꼿이 앉아 있는 소예지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속을 부글부글 끓이고 있었다.가슴께가 답답할 정도로 억눌린 감정이 차오른 탓에 눈빛도 매서웠다.“유빈 언니, 저 여자 거들먹거리는 거 좀 봐. 겨우 돈 좀 냈다고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아나 봐.”질투로 가득 찬 고수경의 말에 심유빈은 억지로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답했다.“수경아, 그렇게 말하지 마. 소예지 씨도 과학계에 도움 되는 일 한 거잖아. 기부는 기부지.”고수경은 입술을 삐죽이며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그 옆에서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하종호는 조금 뜻밖이라는 듯 심유빈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심유빈이 무심히 긴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하종호의 팔에 살짝 스치자 그의 눈가에 엷은 웃음이 번졌다.그때였다. 소예지의 자리로 한 명의 비서 스태프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허리를 낮췄다.“소예지 씨, 윤 대표님께서 회의실 쪽으로 오시라고 하셨어요.”소예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도 지금 이 자리에 더는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비서를 따라 회의실 쪽으로 향하자 비서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대표님께서 이쪽에서 편히 쉬시다가 행사 끝나고 기부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네.”소예지는 짧게 답한 뒤 조용히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약 한 시간이 지나 본 행사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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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9화

소예지는 그가 왜 사과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아니에요. 마음 쓰지 마세요.”소예지의 담담한 표정은 오히려 윤하준의 마음을 더욱 짓눌렀고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넘겨주는 만큼 그는 오늘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비겁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전 이만 가볼게요. 윤 대표님도 어서 돌아가세요.”소예지는 담담히 인사한 뒤 조용히 조수석에 올라탔다.차량 문을 닫으려는 찰나 윤하준은 몸을 살짝 기울이며 조용히 당부했다.“가는 길 조심하고요.”소예지의 차가 부드럽게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순간 그는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그때 그의 등 뒤에서 다급히 날아든 목소리가 발걸음을 붙잡았다.“하준 오빠, 잠깐 시간 돼? 우리 얘기 좀 해.”뒤를 돌아보니 차를 몰고 그를 따라온 고수경이 서 있었다.오늘 하루 종일 그를 만나기 위해 틈을 엿보던 그녀는 마침내 그를 붙잡을 기회를 손에 넣은 것이다.그녀의 얼굴에는 어렴풋한 수줍음과 망설임이 동시에 엿보였고 윤하준은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는 시계를 흘끔 본 뒤 바로 차량 문을 열며 말했다.“수경아, 미안하지만 지금 약속 있어서.”막 입을 떼려던 순간, 그가 자리를 뜨려 하자 고수경의 가슴은 털썩 내려앉았다.그녀는 마른 입술을 다급히 달싹이며 말했다.“하준 오빠 그 우리 두 집안의 혼사 얘기 말이야...”하지만 윤하준은 그녀의 말을 조용히 끊었다.“미안하지만 난 그 얘기... 관심 없어.”“왜?”고수경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며 억울함과 상처가 뒤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혹시 소예지 때문이야? 오빠 정말 그렇게까지 그 여자를 좋아하는 거야?”“그 누구 때문도 아니야.”윤하준은 차분하게 대답했다.“그저 난 결혼을 거래 수단으로 삼고 싶지 않을 뿐이야.”“아니. 나 다 알아. 결국엔 다 소예지 때문이잖아. 그 여자가 대체 뭐가 그렇게 좋아? 나보다 나은 게 뭐냐고!”고수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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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0화

특허 양도 계약은 큰 문제 없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소예지는 시간을 흘끗 확인한 뒤 자리에 앉아 있던 양정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교수님, 전 실험실로 먼저 가볼게요.”“그래, 다녀와.”양정화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배웅했다. 그러고는 옆에 앉아 있는 고이한을 향해 슬쩍 물었다.“고 대표 무슨 할 말 있어요?”고이한은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 소예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눈을 가늘게 뜬 채 짧게 대답했다.“없습니다.”모든 서류를 정리한 소예지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조용히 뒷문으로 걸음을 옮겼다.그 뻣뻣한 뒷모습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하든 그녀는 듣고 싶지 않다는 뜻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양정화는 말없이 그 둘을 바라보다가 마음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한때는 이 둘이 완전히 틀어지기 전에 혹여 다시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의 소예지 눈빛엔 더는 미련이 없었고 고이한 역시 그 마음을 되돌릴 인내심을 이미 다 소진해 버린 듯했다.잠시의 침묵 끝에 고이한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소예지 어머니 쪽 샘플 연구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양정화는 예전에 직접 소예지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아직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하진 않은 듯 보였다.“고 대표, 그건 좀 민감한 문제야. 아무래도 예지 어머니와 관련된 샘플이다 보니까...”양정화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고이한의 눈빛이 곧장 진지하게 가라앉았다.“그래서 더더욱 소예지가 심리적인 장벽을 넘겨야 합니다. 연구는 미룰 수 없는 일이에요.”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무실 문가에 누군가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두 사람의 시선이 향한 그곳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을 떨고 있는 소예지가 서 있었다.사무실 안은 순식간에 얼어붙은 듯 정적에 휩싸였고 양정화는 급히 분위기를 풀기 위해 서둘러 말을 꺼냈다.“예지야, 고 대표도 연구 진행이 걱정돼서 그런 거야. 다른 뜻은 아니었어.”하지만 소예지는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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