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471 - Chapter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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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1화

소예지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제 사생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진가영은 잠시 멍해졌다가 뒤늦게야 깨달았다. 이제 자신은 소예지의 사생활을 묻고 들춰볼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걸.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래, 맞아. 내가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었지. 안으로 들어가 쉬어. 난 먼저 하슬이 좀 찾아볼게.”진가영이 자리를 떠난 뒤에도 소예지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채, 정원 한가운데 조용히 서 있었다.조금은 외로워 보이기도 했지만 이상하리만큼 편안해 보이기도 했다.그때, 휴대폰을 귀에 댄 채 누군가와 통화 중이던 고수경이 저택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그녀는 소예지가 혼자 있는 모습을 발견하자 곧장 통화 상대에게 짧게 말했다.“유빈 언니, 일단 이따가 다시 얘기하자.”전화를 끊은 그녀는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소예지를 향해 다가오며 코웃음을 흘렸다.“주 여사한테 잘 보인다고 해서 네가 윤씨 집안에 들어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소예지는 그저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뿐인데 결국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구나 싶은 마음에 불쾌함이 스며들었다.그녀는 고수경을 향해 차갑게 시선을 보냈다.“나는 누구한테도 잘 보이려고 온 게 아니야.”“설령 네가 아양을 떨어도 소용없어. 지금 윤씨 집안에서 주도권 쥔 사람은 주 여사야. 하준 오빠 결혼 문제도 그분 허락 없이는 안 돼. 내가 이 집에 못 들어간다 해도 넌 더더욱 기회 없어.”고수경은 뻔뻔하게 미간을 살짝 치켜세우며 마치 승리를 선언하듯 말했다.그 순간, 대문 쪽에서 윤하준이 모습을 드러냈다.소예지를 찾기 위해 정원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하필이면 고수경이 소예지 옆에 서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망설임 없이 그는 성큼 다가왔다.“소예지 씨.”윤하준의 목소리에 고수경은 화들짝 놀라며 표정을 바꾸더니 이내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그러나 윤하준은 고수경을 힐끔 한 번 바라볼 뿐, 더 이상의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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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2화

주경화의 반응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고수경은 통화하는 척하며 슬며시 정원 한쪽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한편, 윤하준은 어머니가 다가오는 순간 온몸이 긴장으로 굳어졌다.예전보다 태도가 누그러지긴 했지만 그녀의 속마음을 여전히 가늠하기 어려웠고 소예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조차 전혀 알 수 없었다.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주경화는 평소보다 훨씬 따뜻하고 진심 어린 미소를 띠고 있었다.“소예지 씨, 왔어요.”그녀는 반가운 듯 소예지를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고 이내 윤하준을 향해 가볍게 나무라는 말투로 덧붙였다.“하준아, 넌 참... 어떻게 손님을 이렇게 바깥에서 바람 맞게 해? 얼른 안으로 모셔서 차 한 잔이라도 대접해야지.”윤하준은 순간 당황한 듯 눈을 몇 번 깜빡였고 소예지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주 여사님. 좋은 저녁입니다.”주경화의 눈빛엔 여전히 소예지를 향한 관심이 담겨 있었지만 예전처럼 차갑고 경계하던 기색은 사라지고 오히려 다정한 온기가 배어 있었다.그 시선을 마주한 소예지는 잠시 당황스러운 얼굴로 자연스레 옆에 서 있는 윤하준을 바라보았다.그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주경화는 다정하게 소예지의 손을 잡았다.“왜 이렇게 서 있어요? 그렇게 격식 차릴 필요 없어요. 자, 안으로 들어가요.”그 모습을 나무 뒤에서 지켜보던 고수경의 얼굴은 굳어졌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뜬 채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경화 이모가... 저 여자한테 왜 저렇게 다정하게 굴어?’심지어 자신에게도 그런 따뜻한 말투와 표정은 받은 적이 없었는데 어째서 하필 소예지에게만 저리도 호의적인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소예지가 주경화의 팔짱을 끼고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순간적으로 주변에 있던 사모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그들은 하나같이 놀란 표정으로 소예지와 주경화를 번갈아 바라보았다.“소예지 씨, 이리 와요. 내가 몇 분 소개해 드릴게요.”주경화는 소예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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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3화

그 말은 고수경의 심장 깊숙한 곳을 차갑게 파고들었다.입술을 꼭 깨문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이었다.“지난번엔 분명, 제가 윤씨 가문 며느리로 제일 잘 어울린다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이혼한 여자는 절대 안 된다고도...”주경화의 표정이 단번에 굳어졌다.그녀는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수경아, 그런 말 한 적 없어. 네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거야.”“다들 소예지만 칭찬하는 거죠? 하지만 예전에 그 여자가 우리 오빠랑 결혼하려고 무슨 짓까지 했는지 알아요? 수단과 방법 안 가리고 기어코 들어왔잖아요. 지금은 또 하준 오빠까지 유혹하려고...”고수경의 감정이 한순간에 폭발했다.“수경아!”진가영이 날카롭게 그녀를 제지하며 낮게 외쳤다.“그만해. 이 정도면 체면 구길 만큼 구겼어.”그제야 고수경은 주변을 돌아봤고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 있음을 느꼈다.심지어 윤하준마저 냉랭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그런 표정에 결국 눈물이 왈칵 쏟아진 고수경은 그대로 몸을 돌려 거실을 뛰쳐나갔다.“수경아!”주경화가 안타까운 듯 그녀를 불렀지만 이미 그녀는 자취를 감춘 뒤였다.진가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조용히 말했다.“그럼 우리 먼저 실례할게.”그녀는 몸을 숙여 손녀에게 다정하게 말했다.“하슬아, 할머니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 너는 엄마랑 같이 있어, 알겠지?”“네. 할머니!”진가영이 저택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을 때, 이미 차에 시동이 걸려 있었고 뒷좌석에 탄 고수경은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진가영은 말없이 조용히 차에 올라탄 뒤, 운전석의 기사에게 나직이 말했다.“집으로 가죠.”기사가 막 출발하려던 찰나, 정문 쪽에서 한 줄기 차량 불빛이 다가왔다.불빛에 비친 번호판을 알아본 기사가 말했다.“도련님의 차입니다.”고수경은 눈물 어린 눈으로 고개를 들어 바라봤고 곧 익숙한 자동차가 모습을 드러냈다.진가영은 순간 긴장한 듯 눈을 가늘게 좁혔다.‘이한이가 이 시간에 왜... 오늘 못 온다고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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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4화

이 시각, 손님들과 직원들 대부분이 저택 1층 거실에 모여 있었기에 정문 쪽에 누가 도착했는지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그저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이 반짝이는 연회장으로 고이한이 심유빈과 하종호를 이끌고 들어섰을 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의 시선이 서서히 그들을 향해 쏠리기 시작했다.게다가 심유빈은 누가 봐도 오늘을 위해 공들여 차려입은 모습이었고 고이한의 곁에 꼭 붙어서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조화를 이루며 시선을 사로잡았다.그들을 발견한 윤하준이 놀란 얼굴로 거실 쪽에서 다가왔고 세 사람을 바라보며 약간 당황한 듯했지만 곧 익숙한 웃음을 띠고 다정히 인사를 건넸다.“다들 어떻게 왔어?”“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미안하게 됐어.”그 말투엔 분명 예전과는 다른 적당한 거리감과 형식적인 예의가 배어 있었다.하종호는 순간 어깨를 으쓱하며 웃더니 고이한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이한아, 그런 말 하면 서운하지. 우리랑 하준이 사이에 무슨 격식이야? 이 정도는 괜찮지.”윤하준은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로 맞았다.“내가 초대를 미처 못 해서 그래. 오늘 좀 정신이 없었어.”“윤 대표님, 우리가 무례하게 찾아온 거 아니라면 다행이에요.”심유빈이 은근하게 분위기를 띄우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아니에요. 와줘서 고마워요.”윤하준은 짧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그때, 주경화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대표, 하 대표...”그러나 그녀의 시선이 심유빈에게 머무는 순간, 눈빛에 잠시 낯섦과 당혹이 스쳤다.“이분은...”심유빈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서며 정중하게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저는 심유빈이라고 해요. 윤 대표님 친구예요.”“아, 그래요? 잘 오셨어요, 환영합니다.”주경화는 순간의 당황을 눌러 담은 채 빠르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하준아, 이러지 말고 정원 쪽에 테이블 하나 마련하게 하자. 젊은 사람끼리 밖에서 식사하는 게 더 편하잖니. 여긴 내 친구들이라 같이 있어도 대화가 안 통할 텐데...”그때, 한 부인이 다가와 하종호의 등을 툭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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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5화

고이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종호와 함께 거실을 빠져나와 정원 쪽으로 향했다.황금빛 조명이 따스하게 내려앉은 정원의 긴 테이블 위에는 정갈한 식기들과 고급스러운 와인잔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밤공기를 타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며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하준이가 지금 지하 와인셀러에 내려가 술 고르고 있어. 내가 이번엔 꼭 최고급 와인 꺼내 오라고 했거든.”하종호는 일부러 분위기를 띄우듯 유쾌하게 말했지만 그의 눈동자 속엔 셋 사이에 감도는 묘한 긴장감이 어렴풋이 담겨 있었다. 그는 그 균열을 어떻게든 메워보려 애쓰는 중이었다.심유빈은 그의 옆자리에 앉으며 슬며시 웃었다.“아쉽네요. 저는 와인 못 마시게 돼서...”하종호는 그녀를 다독이듯 말했다.“방금 주방도 다녀왔는데 오늘 소고기 스테이크가 예술이더라고요.”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윤하준이 돌아왔고 그 뒤를 따르던 직원이 와인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바구니 안에는 레드와 화이트 와인, 위스키까지 각종 명주가 고루 담겨 있었다.“하 대표, 이 정도면 괜찮지? 부족하면 네가 직접 내려가서 고르든가.”윤하준이 웃으며 말했다.“충분하지. 나 다 못 마셔.”하종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와인 오프너를 들고 직접 병을 열기 시작했고 윤하준은 직원에게 음식을 차리라고 지시했다.곧 테이블 위에는 근사한 요리들이 정갈하게 놓였다. 하종호는 모두의 잔에 레드와인을 따라주고 심유빈에게는 따로 과일주스를 건넸다.메인 요리까지 모두 차려지자 심유빈이 자연스럽게 윤하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윤 대표님, 이제 좀 쉬시죠. 소예지 씨도 불러 같이 식사해요.”윤하준은 짧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데리고 올게요.”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고이한의 손에 쥐어져 있던 와인잔이 살짝 떨렸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면서 얇은 유리잔은 마치 조금만 더 세게 쥐면 그대로 부서질 듯 위태롭게 느껴졌다.윤하준의 반응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마치 자신이 데려올 사람이 자신의 연인, 혹은 아내라도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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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6화

소예지는 테이블 위에 놓인 새우 요리를 보자마자 바로 떠올렸다.얼마 전, 윤하준과 함께 식사하던 자리에서 먹었던 바로 그 메뉴였다. 그때 자신이 맛있다고 칭찬했던 걸 윤하준이 기억하고 이렇게 따로 주방에 부탁까지 했다는 사실이 조금은 놀라웠고 또 어딘지 모르게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그때 소예지 씨가 맛있다고 하셨던 게 기억나서요. 이번에 특별히 추가했어요.”윤하준은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말했다.“고마워요.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여요.”소예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으로 새우 요리를 하나 집어 접시에 옮겼다.그 순간, 심유빈이 싱긋 웃으며 끼어들었다.“소예지 씨, 입맛이 바뀌신 건가요? 제가 알기로는 푸아그라 좋아하셨던 것 같은데요?”소예지의 눈길이 싸늘하게 그녀를 스쳤다.“사람은 변하죠. 예전에 좋아했던 것도 지금은 역겨울 때가 있으니까요.”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분명했다. 심유빈의 도발에 단단히 응수하는 동시에 맞은편에 앉아 있는 전 남편을 향한 날 선 메시지이기도 했다.고이한은 술잔을 쥔 손가락에 힘을 줬고 반사적으로 시선이 소예지에게 닿았다.가늘게 좁아진 눈동자 속엔 말로 다 담기지 않는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고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깊고 짙은 무언가가 가라앉아 있었다.소예지의 말은 어쩌면 심유빈이 의도했던 반응이기도 했다.하지만 적어도 한 사람, 고이한만큼은 그 말을 도저히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아무리 이혼한 사이라지만 전 부인에게 그렇게 노골적으로 조롱당하는 상황을 반길 사람은 없으니까.고이한의 눈빛은 점점 더 어두워졌고 표정은 속내를 읽기 어렵게 굳어져 갔다.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자 하종호가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자자, 음식 다 식겠어. 얼른 먹자고!”심유빈은 고이한을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이한 오빠, 술 마시기 전에 뭐라도 좀 드시는 게 좋겠어.”바로 그때, 고하슬이 귀엽게 입을 삐죽이며 투덜댔다.“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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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7화

심유빈과 하종호는 조용히 정원을 따라 걸어 저택 뒤편의 후원까지 이르렀다.이곳은 앞쪽과는 달리 사람의 인기척이 거의 없을 만큼 고요했고 그 적막 속에 두 사람의 발소리만이 조심스럽게 울려 퍼졌다.그때였다.갑작스레 심유빈이 불쑥 돌아서는 바람에 생각에 잠겨 있던 하종호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녀와 정면으로 마주쳤다.그의 입술이 정확히 그녀의 이마에 닿았다.하종호는 당황한 기색으로 한 걸음 물러서며 급히 말했다.“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하지만 심유빈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갑자기 할 말이 생각나서요. 뒤에 계신 줄 모르고 그냥 돌아섰네요.”하종호는 그녀를 바라보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그를 향해 심유빈이 조금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지금 윤 대표님이랑 이한 오빠, 무슨 얘기 나누고 있을까요? 하종호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하종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가다듬은 뒤, 이마를 찌푸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왠지 불안하네요.”“분명히 소예지 씨 때문일 거예요.”심유빈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다른 건 몰라도 하종호 씨도 이한 오빠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요. 자존심 하나로 사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전처가 자기 가장 가까운 친구와 얽히는 걸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죠.”그녀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내렸다. 하종호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나도 느껴졌어요.”“혹시 말이에요...”심유빈은 숨을 잠시 고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혹시 소예지 씨, 이한 오빠 상대로 복수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그녀는 말끝을 천천히 늘이며 시선을 하종호에게 옮겼다.“사실 윤 대표님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이한 오빠를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하종호의 표정이 굳었다.“뭐라고요?”“며칠 전에 제 여동생한테 들은 이야기인데요.”심유빈은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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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8화

심유빈의 눈빛에는 계획이 하나씩 착착 들어맞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번뜩였다. 그녀는 길게 숨을 내쉰 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하지만 종호 씨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지금 윤 대표는 소예지 씨에게 완전히 빠져 있잖아요. 그런 윤 대표가 과연 당신 말을 들을까요?”하종호의 시선이 어둡게 가라앉았다.“그렇다면 소예지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을 윤하준에게 알려야죠. 그래야 정신 차릴 테니까요.”심유빈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고운 얼굴 위로 그림자가 얹혔고 그녀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사실 나도 이런 일에 끼어들고 싶진 않았어요. 그런데 세 분 사이가 이렇게 어그러지는 걸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하종호는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유빈 씨도 결국 좋은 마음에서 그런 거죠.”“소예지 씨가 이한 오빠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윤 대표님을 끌어들여 이런 식으로 감정을 흔든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분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하종호의 손이 무의식중에 꽉 쥐어졌다.같은 시각, 밤이 깊어 갈수록 정원은 더 고요해졌고 은은한 조명 아래 고이한은 친구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목소리는 감정을 덜어낸 듯 담담하게 흘러나왔다.“정말로 소예지를 사랑해?”윤하준은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으로 대답했다.“태어나서 이렇게 확신한 건 처음이야.”“언제부터였어?”고이한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윤하준은 작게 한숨을 내쉬다가 스스로도 조금은 우습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쓸쓸하게 웃었다.“모르겠어. 그냥 어느 순간부터 그랬어.”말하지 않아도 고이한은 알 수 있었다. 윤하준은 아주 천천히 자기도 모르게 소예지에게 스며든 것이다.고이한은 옆을 지나던 직원에게 손짓했다.“담배 한 갑만 주세요.”직원은 곧 담배를 들고 오자 고이한은 그중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남은 담배와 라이터를 윤하준에게 내밀었다.“한 대 할래?”윤하준은 고개를 저었다.“담배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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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9화

윤하준 역시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맞서며 단호하게 말했다.“확실해.”그 짧은 한마디에 마치 이 공간 전체가 얼어붙은 듯 숨조차 쉬기 어려운 침묵이 드리웠다.스무 해가 넘는 우정은 그 순간, 유리잔처럼 위태롭게 흔들렸고 누군가 손끝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금이 가 산산이 부서져 버릴 듯했다.그 긴장감의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어둠 속, 심유빈과 하종호는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결국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고이한과 윤하준 사이의 기류는 점점 팽팽하게 조여들었고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정적이 감돌던 찰나 하종호가 급히 걸음을 옮겨 다가왔다.“뭐야, 분위기가 왜 이래? 술은 이제 그만 마시는 거야?”억지로라도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는 말이었지만 심유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시선은 오직 한 사람, 고이한에게 향해 있었다.‘왜지? 왜 이혼 조건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조항을 넣었을까?’그건 분명, 그답지 않았다.‘소예지에게 5년간 결혼 금지라니. 무슨 이유지? 설마 아직도...’그러나 이내 심유빈은 모든 조각이 맞춰지듯 표정을 가라앉혔다.‘그래, 소예지가 먼저 이혼을 요구했고 이한 오빠는 그에 대한 일종의 징벌로 조건을 건 거야.’‘5년 동안 결혼하지 못한다면 어느 남자가 그런 여자를 위해 또다시 5년을 기다릴 수 있겠어? 그것도 한 번 결혼했던 여자를...’방금 윤하준이 ‘기다릴 수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의 어머니인 주 여사가 그것을 허락할 리 없었다.결혼도 못 하고 만약 아이까지 생긴다면 출생신고조차 어려울 판이었다.생각할수록 고이한의 수는 냉정하고도 잔인했다.진심으로 무릎을 꿇게 만들겠다는 듯, 단 하나의 조항으로 소예지의 미래를 옭아맸다.그 순간, 심유빈의 입가엔 엷은 미소가 번졌다.하지만 그 미소에는 온기가 없었다.그녀는 이미 하종호를 이 전쟁에 끌어들였고 지금 상황이라면 머지않아 소예지는 스스로 무너지게 될 것이다.“우리 서로 좀 차분해질 필요가 있겠어...”하종호가 조심스럽게 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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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0화

고이한의 시선이 무심히 스쳐 지나간 자리에는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딸아이를 바라보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소예지가 있었다.그녀는 아이들의 찰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한 장면 한 장면을 정성스레 담아냈고 그 평온한 얼굴에는 잔잔한 따스함이 어렸다.한편, 주경화는 손수 손녀의 케이크를 잘라 접시에 담아 나눠주고 있었고 고하슬은 가장 먼저 받은 조각을 들고 곧장 소예지에게 가져다주었다.그러고는 두 번째 조각을 들고 고이한에게 다가가 말했다.“아빠, 이거 드세요.”그 모습을 바라보던 심유빈은 문득 자신도 혹시 고하슬에게 한 조각 건네받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품었다.하지만 아이는 어느새 자기 몫의 케이크를 들고 해맑은 얼굴로 한입 가득 베어 물고 있었다.그녀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일그러졌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씁쓸한 생각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역시 잘해줘 봤자 소용없어. 배은망덕한 애란 말이지.’한때는 소중한 시간을 들여 정성껏 다가갔던 적도 있었건만 남은 건 허망함뿐이었다.고이한은 케이크를 몇 숟가락 뜨다 말고는 더는 손을 대지 않았다.그러고는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하슬아, 오늘은 아빠랑 같이 갈래 아니면 엄마랑 같이 갈래?”고하슬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또렷한 눈빛으로 대답했다.“엄마랑 갈 거예요!”왜 그런 걸 묻느냐는 듯 장난스럽게 눈을 깜빡이며 웃었다.고이한은 아쉬움이 담긴 눈빛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애틋한 마음이 먼저였는지 아이의 코끝을 손가락으로 살짝 톡 건드리며 부드럽게 웃었다.“그래, 알겠어.”그는 다시 고개를 들어, 조명 아래 선 소예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그 눈빛엔 도무지 읽히지 않는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고 몇 초간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던 그는 곧 말없이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심유빈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케이크 한 입도 대지 않은 채 가방을 집어 들고는 고이한의 뒤를 따랐다.그 장면을 우연히 본 하종호는 순간 시선을 멈추었다.그의 눈빛에는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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