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소예지는 양희순에게 전화를 걸어 딸을 학교에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오늘은 실험실에서 밤 아홉 시까지 추가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었다.그런데 오후 다섯 시 반, 양희순에게서 전화가 걸려 오자 소예지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사모님, 하슬이 아버님께서 학교로 오셔서 아이를 데려가셨어요. 오늘은 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밤 아홉 시쯤 다시 데려다주시겠다고 전해 달라고 하시네요.”“네, 알겠어요.”소예지는 짧게 대답했다.“하슬이도 무척 신난 모양이더라고요. 아무래도 아빠랑 그 집 어르신들이 그리웠던 것 같아요.”양희순은 혹시나 소예지의 기분이 상할까 조심스레 말을 덧붙였다.“네...”소예지는 다시 한번 짧게 응답했을 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아마 양정화가 실험실에서 있었던 일을 그에게 전했고 그래서 일부러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갔을 터였다.하지만 딸아이가 즐겁게 지내고 있다면 굳이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지금은 눈앞의 실험에 집중하는 게 우선이었다.밤 아홉 시.소예지는 실험 장비의 전원을 끄고 이지원과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하루 종일 흥분에 들떠 있던 이지원은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르다 주차장 입구에 이르러 환하게 웃었다.“소예지, 너랑 같은 팀에서 일할 수 있어서 진심으로 영광이야.”소예지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오늘도 고생했어. 어서 들어가서 푹 쉬어. 눈 밑 다크서클이 너무 심하잖아.”그 말에 이지원은 마음이 따뜻해졌다.“응. 너도 운전 조심하고.”소예지가 집에 도착했을 때, 아직 고하슬은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무언가 떠오른 듯 그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2층으로 향했다.그리고 장식장 속 깊은 곳에서 포장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종이백에 담아 들고 내려왔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양희순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사모님, 그건 뭐예요?”하지만 소예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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