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711 - Chapter 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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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1화

곧 첫 번째 공연이 시작되며 연회장은 빠르게 정적에 잠겼다.세 번째 공연 순서가 되자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 밝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음은 유명 피아니스트, 심유빈 님께서 대표곡 ‘비 오는 날의 산책’을 연주해 주시겠습니다!”박수갈채 속에서 심유빈은 우아한 걸음으로 무대 위에 올랐다.무대 중앙의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은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자연스럽게 무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그 시선의 끝에 있는 사람은 고이한이었다. 심유빈은 깊게 숨을 들이쉰 뒤, 하얗고 가녀린 손가락을 천천히 피아노 건반 위에 내려 앉혔다. 이윽고 부드럽고 감미로운 선율이 홀 안 가득 퍼져 나갔다. 심유빈은 단지 예쁘기만 한 장식용 꽃병 같은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피아노 실력은 분명 탄탄했고 그것은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 올린 결과였다.고이한을 처음 만났던 그날 이후, 그는 그녀의 목표이자 우상이었다.그와 나란히 설 수 있는 여자가 되기 위해 그녀는 밤을 새워 연습했고 숨 돌릴 틈 없이 자신을 갈고닦았다.고이한은 그녀에게 쉽게 닿을 수 없는 아득하면서도 찬란한 존재였고 그래서 그녀는 멈추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무대 조명 아래에서 샴페인빛 드레스와 분홍빛 다이아몬드가 어우러진 그녀의 모습이 대형 스크린에 비쳤다.화면 속 심유빈은 분명 아름다웠고 고급스럽고 예술적인 분위기로 모든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하지만 바로 그 순간, 고이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그는 화면 속 심유빈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알아보는 순간 표정이 굳어졌고 이내 갑작스럽게 몸을 틀어 자신의 뒷자리에 앉아 있는 소예지를 바라보았다.소예지는 애초에 심유빈의 연주에 큰 관심이 없어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누군가의 시선이 꽂히는 기척을 느끼자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이 정면으로 맞닿자 소예지의 눈빛은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제야 고이한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하지만 그의 눈빛은 이전보다 한층 어두워져 있었다.무대 위에서 심유빈의 연주는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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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2화

대화가 이어지던 중, 심유빈은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 급히 말을 꺼냈다.“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자리를 일어서는 순간, 그녀는 온몸이 휘청이는 걸 느꼈다.샴페인 색 드레스 자락을 한 손으로 끌어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목에 걸린 목걸이를 꽉 움켜쥔 채였다. 우아함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마치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그녀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그 무렵, 소예지 역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심유빈은 거의 도망치다시피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는 핏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목걸이를 풀려 했지만 손이 지나치게 떨려 고리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그때 한 여성이 손을 씻으러 다가오며 물었다.“도와드릴까요?”“부탁드릴게요.”심유빈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여성은 다가와 목걸이의 고리를 풀어주며 말했다.“정말 예쁜 목걸이네요.”“감사합니다.”심유빈의 목소리는 이미 굳어 있었고 여성이 자리를 떠나자 화장실 안에는 적막만이 남았다.심유빈은 숨을 한 번 고르며 목걸이를 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뒤집었다.그리고 그 아래에 새겨진 이니셜이 그녀의 시선을 단번에 붙잡았다.S.Y.J.그 글자들은 마치 날 선 칼날처럼 심유빈의 심장을 그대로 파고들었다. 바로 그 순간, 문 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고 심유빈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소예지였다. 차가운 공기처럼 고요하고 단정한 모습에 은백색 드레스는 군더더기 없이 허리선을 감싸며 화려한 장신구 하나 없이도 자연스러운 우아함을 풍기고 있었다.심유빈의 눈동자에 원망이 번뜩였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목걸이를 쥔 손에 더 힘을 주었다.소예지는 그녀의 손에 들린 목걸이와 금세 상처가 드러난 얼굴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을 이해했다.이 목걸이가 고이한이 직접 주문 제작한 것이라면 그 아래에 새겨졌을 이름은 결코 심유빈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그리고 심유빈 역시 이미 그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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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3화

한참이 지나서야 전화를 받은 그 끝에서 심유빈의 떨리는 목소리가 먼저 흘러나왔다.“이한 오빠... 나 쓰러질 것 같아. 빨리 화장실로 와줘...”그 한마디에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고이한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단숨에 행사장을 빠져나갔다.바로 그때였다.소예지의 휴대폰 화면이 짧게 깜빡였다.임현욱이 그녀를 바라보며 휴대폰을 내밀었다.“전화 왔어요. 양 아주머니예요.”소예지는 급히 행사장 옆의 조용한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엄마, 나 과자 조금만 먹어도 돼요?”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딸의 앳된 목소리에 소예지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머금었다.“그래. 두 개만 먹어.”“네! 엄마.”통화를 마치려던 그 순간, 등 뒤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소예지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화장실 쪽에서 고이한이 걸어 나왔고 그의 품 안에는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린 심유빈이 안겨 있었다. 심유빈은 힘없이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댄 채, 마치 모든 것을 의지하듯 가느다란 팔로 그의 목을 감싸고 있었다.소예지의 시선이 고이한의 눈과 마주친 순간, 그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고 공기는 단단히 얼어붙은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찰나의 정적이 흐른 뒤, 심유빈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는 오직 소예지만이 알아볼 수 있는 미묘한 미소를 띠면서 고이한의 품 안으로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나 어지러워... 너무 힘들어...”고이한의 턱선이 단단하게 굳어졌다.그는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은 채, 그녀를 품에 안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그가 안고 있는 사람은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마치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처럼 보였다.그의 체온과 늘 사용하던 은은한 향수가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소예지의 코끝을 파고들었다.그러나 그 향은 문득, 세상에서 가장 역겹고 견디기 힘든 냄새처럼 느껴졌다.예지는 고개를 돌려 코를 막은 채, 아무 표정 없이 다시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그 모습을 본 임현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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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4화

소예지의 아름다움은 쉽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도드라지지는 않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인상을 지녔으면서도 어딘가 날이 서 있었다. 꽃처럼 유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 감춰진 강인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번번이 놀라움을 자아내게 했다.그녀를 만난 이후, 임현욱의 시선은 단 한 번도 그녀에게서 멀어진 적이 없었다.그녀가 다른 남자의 곁으로 완전히 떠나지 않는 한,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작정이었다.차 안에서 소예지는 임현욱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복잡한 기술 개념을 차분하고도 명확하게 풀어내는 그녀의 모습에 임현욱은 자꾸만 더 깊이 빠져들었다.차 안의 공기마저 묘하게 설레는 듯 느껴질 정도였다.“전우분은 어느 단지에 살아요?”소예지가 조용히 묻자 임현욱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예지 씨 집 근처에서 내려주면 돼요.”그의 말투는 단호했다.곧 차량은 운치 있으면서도 화려하게 꾸며진 ‘라온 파크’의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소예지는 자신의 전용 주차 구역을 알려주었고 차가 멈추자 임현욱이 먼저 문을 열고 내렸다.소예지가 안전벨트를 풀려는 찰나, 그녀의 시야 한켠에 기둥 옆에 기대선 실루엣 하나가 들어왔다.담배를 손에 든 채, 어둠 속에서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고이한이었다.임현욱도 곧바로 그 존재를 알아챘다.“고 대표님?”“임 대위님.”고이한은 짧게 인사를 건넸다.그의 목소리는 낮고 쉰 듯 건조했다.소예지는 차에서 내려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우리 올라가요.”“그러죠. 집 앞까지 데려다줄게요.”임현욱이 자연스럽게 나섰다.그러나 그 순간, 고이한이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고는 검은 수트를 단정히 여민 채 앞으로 다가왔다.그의 눈빛은 깊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할 얘기가 있어.”그 짧은 한마디만으로도 임현욱은 두 사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곧바로 알아챘다.그는 소예지 앞에 한 발 나서,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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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5화

임현욱은 소예지를 끝까지 배웅한 뒤,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서야 자리를 떴다.소예지는 그에게 안으로 들어와 차 한잔 하고 가라고 권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늦은 밤이었다.그는 자신의 욕심보다 이 시간에 소예지를 더 붙잡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여겼기에 마음은 간절했지만 더 머물지 않았고 서두르지도 않았다.조용히 돌아선 그의 선택은 오히려 소예지의 마음속에 더 깊은 여운을 남겼다.“엄마!”문을 열자마자 고하슬이 양팔을 벌린 채 달려와 그녀에게 와락 안겼다.아이는 통통한 볼살과 사랑스러운 얼굴, 초롱초롱한 눈으로 올려다보며 말한다.“엄마, 나 진짜로 과자 많이 안 먹었어요! 딱 한 봉지만 먹었어요.”“알아. 우리 하슬이는 엄마랑 한 약속 잘 지키잖아.”소예지는 무릎을 굽혀 아이의 볼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옆에 있던 양희순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고하슬은 정말 소예지를 닮아 하루가 다르게 의젓해지고 있었다.겉모습은 여전히 그 남자와 꼭 닮아 있었지만 마음만큼은 소예지의 따뜻함을 고스란히 닮은 듯했다.하지만 소예지는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남은 긴장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혹시라도 고이한이 그녀의 집까지 찾아오지는 않을지,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쉽사리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다행히도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한편, 병원.고수경은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던 도중, 뜬금없이 심유빈에게서 연락을 받았다.“심장이 좀 안 좋아서 병원에 왔어.”짧은 말이었지만 심유빈의 말투는 어딘가 이상했다.그녀는 고수경이 마음속으로 이미 ‘미래의 새언니’라고 여기고 있던 사람이었다.그래서 고수경은 고민할 것도 없이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병실 문을 열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는 심유빈이 눈에 들어왔다.“유빈 언니,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잖아. 갑자기 무슨 일이야?”그러나 심유빈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이내 눈가가 붉어졌고, 입술을 깨문 채 애써 감정을 참으려는 듯 고개를 떨궜다.고수경은 당황했다.‘항상 씩씩하고 당당하던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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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6화

“혹시... 그 여자가 뭐라고 해서 언니 병이 도진 거 아니야?”고수경은 더는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심유빈은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수경아, 그냥 묻지 마. 그 여자가 한 말은 너무... 듣기 거북했어.”“아니, 난 들어야겠어. 대체 뭐라고 했는데? 얼마나 독하게 말했길래 언니가 이 지경이 된 거야?”고수경의 눈빛이 번뜩였다.분명했다. 소예지가 또 무슨 말을 내뱉었을 것이다. 이 일을 빌미로 할머니 앞에서 그녀의 인성을 드러내고 더는 감싸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심유빈은 한숨처럼 말을 이었다.“그 애가 그러더라. 나는 늘 자기가 버린 걸 주워 가는 여자래. 지난번 할머니가 준 팔찌도 원래는 그 애 거였고... 이번 목걸이도 그리고 네 오빠도 자기가 버린 거래.”고수경은 마치 황당한 코미디를 들은 사람처럼 픽 하고 웃어 버렸다.“뭐? 자기가 우리 오빠를 버렸다고?”곧이어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대체 무슨 뻔뻔한 소리를 하고 다니는 거야? 오빠가 그 여자를 먼저 내친 거잖아!”그러다 문득, 죄책감이 밀려온 듯 고수경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미안해, 유빈 언니. 팔찌도 목걸이도 다 내 불찰이야. 이건 내가 오빠한테 꼭 설명할게.”심유빈은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고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굳이 설명 안 해도 돼. 사실... 내가 너무 욕심냈던 거야. 그 목걸이, 받지 말았어야 했어.”“그게 왜 언니 탓이야? 내가 바보같이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이름이 새겨진 것도 모르고 그냥 준 건데. 그 여자가 그걸 빌미로 언니한테 그런 말을 하게 만든 것도 전부 내 잘못이야.”고수경의 가슴 한가운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소예지 저 여자는 이혼하고도 여전히 오빠한테서 뭐든 얻어 내려 해. 마치 전 남편을 평생 현금 인출기처럼 여기는 사람 같아.’“우리 오빠도 참 답답해. 대체 자기가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겠어?”심유빈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래도 소예지 씨는... 네 오빠한테 여전히 중요한 존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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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7화

“앞으로 내 물건, 함부로 건드리지 마.”고이한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흘러들었다. 크게 소리를 높인 것도 아니었지만 그 말 한마디에 고수경의 눈가는 이미 붉어져 있었다. 어릴 때부터 늘 오빠에게서 다정한 말만 듣고 자라온 그녀에게 이런 말투는 거의 고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알겠어. 안 건드릴게. 다시는 안 건드려.”작아진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그 목걸이 다시 가져와. 그리고 다시는 멋대로 끼어들지 말고.”“오빠, 그 목걸이 때문에 소예지가 유빈 언니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고수경은 더 이상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소리쳤다.“언니 면전에서 그 목걸이는 자기는 필요 없는 거라면서 언니더러 남이 버린 물건이나 주워 간다고 비웃었어! 거기다 오빠도 자기가 필요 없는 남자라고 했다잖아! 오빠는 그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을 거야? 그렇게까지 언니가 당하는 걸 그냥 놔둘 거냐고!”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한 격앙된 목소리였다.이쯤이면 오빠가 정신을 차릴 거라 믿었다.그러나 전화기 너머는 잠시 조용했다.그리고 곧 분노를 억지로 눌러 담은 듯한 고이한의 낮고 무거운 음성이 이어졌다.“네가 뭘 안다고 그래.”그 말에 고수경은 한순간 입을 다물었다.‘방금 그건... 오빠가 소예지를 두둔한 거야?’“유빈 언니는 그 일로 병원까지 왔어. 그런데 오빠는...”말을 끝내기도 전에 전화는 뚝 끊겼다.손에 들린 휴대폰을 멍하니 내려다보며 고수경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다.‘대체 오빠 왜 이러는 거야?’‘예전엔 유빈 언니한테 그렇게 잘해주더니 지금은 무슨 생각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침대 위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은 심유빈의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말없이 앉아 있는 그녀는 유난히 더 연약해 보였다.고수경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다가가 그녀 앞에 앉았다.‘그대로 말하면... 언니가 더 상처받겠지.’“무슨 일 있었니, 수경아?”심유빈이 조용히 물었다.“오빠는 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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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8화

깊은 밤, 거의 새벽에 가까운 시각이었다.고수경은 심유빈을 집까지 데려다주며 옆에서 부축하고 있었다.그녀의 손목을 잡아 주는 순간, 손끝에 닿은 감촉이 어딘가 이상했다.주름처럼 겹겹이 남아 있는 흔적에 시선이 멈췄고 고수경은 무심코 심유빈의 손목을 뒤집어 보았다. 그녀의 왼쪽 손목에는 네다섯 줄의 긁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 순간 심유빈은 급히 손을 빼앗듯 거둬들이며 상처 난 부위를 움켜쥔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수경아, 오늘 고마웠어.”“유빈 언니, 그거...”고수경은 숨이 막힌 듯 그녀를 바라봤다.‘설마... 손목을 그은 흔적인가?’심유빈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궜다.“젊었을 때 내가 너무 어리석었어. 예체능 입시 준비할 때 스트레스도 심했고 많이 우울했거든. 그때 괜히 바보 같은 짓을 좀 했지.”고수경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하지만 방금 본 자국 중 하나는 유난히 또렷했다. 도저히 오래된 흉터처럼 보이지 않았다.“언니, 아무리 힘들어도 이런 식으로 자신을 다치게 하면 안 돼.”고수경의 목소리가 떨렸다.심유빈은 고개를 숙인 채, 가볍게 웃었다.“그러게. 그땐 세상이 다 무너진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지.”그 순간, 고수경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맴돌았다.‘이건 분명 오빠 때문이야.’‘아니면 소예지 때문일지도.’심유빈이 오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그제야 실감이 났다. 그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마저 버릴 수 있을 만큼의 마음이라는 것도 분명해졌다. 문득 고수경은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나도 저만큼의 각오로 하준 오빠를 좋아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유빈 언니, 세상에 넘지 못할 고비는 없어. 다시는...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나, 정말 마음 아파.”그 말에 심유빈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고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잠시 후, 고수경은 그녀의 집을 나섰다.라온 파크.집에 도착해 문을 여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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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9화

고이한은 눈을 감은 채 잠시 숨을 고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테이블 위에 올려둬.”“오빠.”고수경은 한 걸음 다가서며 그동안 꾹 눌러왔던 말을 더는 참지 못하고 꺼냈다.“도대체 왜 소예지 집 바로 아래에 집을 산 거야? 하슬이 때문이야, 아니면...”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이한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내 일에 간섭하지 마. 네 일이나 잘 챙겨.”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 했다.그러나 고수경이 급히 그의 팔을 붙잡았다.“오빠.”손에 힘이 들어갔다.“아직도... 소예지를 사랑해?”그 질문에, 고이한의 몸이 몇 초간 그대로 굳어버렸고 등 뒤의 실루엣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돼 있었다.“대답해.”고수경이 재차 물었다.“이혼한 건... 걔가 오빠를 버린 거야, 아니면 오빠가 그 여자를 버린 거야?”고이한의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그는 팔을 빼내며 낮게 말했다.“네가 모르는 게 있어.”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뒤, 더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덧붙였다.“내일 새집 하나 더 알아볼 거니까 여기서 나가.”고수경은 깜짝 놀랐다.“왜? 난 이 동네가 좋아. 나 여기서 안 나가.”고이한의 시선이 차갑게 내려앉았다.“아직도 윤 대표한테 미련 남았어?”그 말에 고수경의 눈가가 붉어졌다.“오빠는 왜 이렇게 사람을 무시해? 내가 그 사람한테 그렇게 부족해 보여?”고이한은 잠시 흔들리는 듯 보였지만 이내 목소리는 다시 단단해졌다.“부족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하준이는 너랑 맞지 않아.”“왜 안 맞아?”고수경은 이를 악물고 반박했다.“이 세상에 오빠처럼 여동생 무시하는 사람도 없어.”고이한은 잠시 침묵하다가, 마치 결정타를 날리듯 말했다.“그 사람 마음엔 이미 소예지가 있어.”목소리는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정말 모르겠어?”고수경은 콧방귀를 뀌었다.“상관없어. 하준 오빠가 소예지를 좋아해도 난 계속 좋아할 거야. 좋아하는데 무슨 죄가 있어?”그 말에 고이한의 얼굴이 순식간에 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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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0화

고이한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 위에 몇 초간 머물렀다.그러나 그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거실의 은은한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스듬히 가르며 차갑고 단단한 윤곽을 또렷이 드러냈다.속눈썹이 드리운 그림자 아래에서 그의 눈동자는 감정을 철저히 숨긴 채, 무엇을 생각하는지 도무지 읽히지 않았다.하지만 고수경은 물러서지 않았다.“오빠, 말해.”조급함이 섞인 목소리였다.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그녀는 스스로도 모르게 손바닥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대답을 듣는 것이 두려우면서도 그의 입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고 싶었다.“그건 너랑 상관없는 일이야.”고이한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담담했다.그 안에는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듯 보였다.그 애매한 대답에 고수경은 잠시 멍해졌다.부정도 아니고, 인정도 아닌 말.‘그렇다면 정말로...’“내일 이사해.”고이한은 명령처럼 말을 던졌다. 늘 그래 왔듯, 반박의 여지를 주지 않는 어조였다. 그는 더 말하지 않은 채 그대로 몸을 돌려 서재로 들어갔고 거실에 홀로 남은 고수경은 그 자리에 선 채 끝내 눈물을 쏟아냈다.조금 전 오빠가 내뱉은 말들이 날카롭지도 않은 둔한 칼이 되어 한 번 또 한 번 심장을 베어내는 것만 같았다.‘왜... 왜 모두가 소예지 주위를 맴도는 거야!’잠시 후, 거실에서 ‘쾅’ 하고 문 닫히는 소리가 울렸다.고이한은 미간을 찌푸린 채 서재에서 컴퓨터를 켰다.폴더를 열자 고요한 방 안에 갑자기 소녀의 달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고이한, 오늘은 어떤 이야기 듣고 싶어?”꿀을 머금은 듯 부드럽고 맑은 목소리가 그의 귀를 감싸안았다. 영상 하단에 표시된 날짜는 10년 전이었고 고이한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천천히 눈을 가늘게 떴다.이내 화면 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다.“고이한, 속눈썹 진짜 길다. 조금 만져봐도 돼?”밝고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띤 소예지가 혼수상태에 빠진 남자의 곁에서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의 속눈썹을 건드리고는 웃었다.“오늘 해부학 수업 들은 얘기 해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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