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771 - Chapter 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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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1화

잠시 후, 방송국 전용 차량이 도착해 고이한을 픽업했다.오늘은 개인 재정 인터뷰 촬영 일정이 잡혀 있었다.그로부터 약 30분 뒤, 임현욱은 소예지를 조용히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 소예지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비행기까지 세 시간 남았어요. 조금 쉬었다가 택시 타고 갈게요.”임현욱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제가 직접 모셔다드릴게요.”“하지만 괜히 번거롭게 해드리는 것 같아서요...”“전 그게 좋아요.”임현욱은 부드럽게 웃었다.“어차피 곧 군에 들어가면 이렇게 귀찮게 해줄 기회도 별로 없을 거니까요.”소예지도 그 말에 따라 웃었다.“다음에 A시에 오시면 제가 꼭 밥 살게요.”“좋죠.”그녀는 오늘 그의 아버지 부탁을 들어주었고 임현욱 역시 끝까지 예의를 다하고 싶었다.같은 시각,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고이한의 인터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진행자가 질문을 던졌다.“고 대표님, 생명과학 회사를 창업하셨지만 아직 상장을 하지 않으셨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고이한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카메라를 응시했다.“저는 단순히 회사를 만들고 자본을 회수하는 데에서 멈추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건 인류를 위해 의미 있는 무언가를 남기는 일입니다.”그는 말을 이으며 차분히 설명했다.“의료 산업은 다른 산업과 다릅니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는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기도 하죠. 자본 수익만을 좇는다면 더 빠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와 제 팀은 정말 병을 고치고 생명을 살리는 약을 만들고 싶습니다.”진행자의 눈빛에 존경의 빛이 스쳤다.“고 대표님의 전 부인이신 소예지 박사님도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들었습니다.”그 말에 고이한의 눈빛이 순간 부드러워졌다.“맞습니다. 그분은 백혈병 연구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연구자입니다.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이후에도 몇 가지 전문적인 질문이 이어졌고 고이한은 침착하고 매끄럽게 답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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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2화

임현욱은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탑승 게이트 안으로 사라진 소예지의 뒷모습을 마치 무언가 아쉬움이 남은 사람처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그제야 고이한이 발걸음을 옮기자 곁에 서 있던 공항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고이한은 시선을 거두고 감정이 비워진 얼굴로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소예지는 좌석에 앉아 옆자리를 힐끗 바라봤지만 아직 아무도 앉지 않은 빈자리였다.‘이 옆자리는 비어 있는 건가?’그렇게 생각한 바로 그 순간, 기내 앞쪽에서 스튜어디스의 밝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어서 오십시오. 편안한 비행 되시길 바랍니다.”소예지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저 사람이 왜 여기에...’고이한이 여유롭고 묵직한 걸음으로 기내에 들어섰다.단정하게 떨어지는 수트와 길게 뻗은 다리 그리고 날 선 옆선까지, 그의 존재만으로도 몇몇 승무원의 시선이 저절로 따라붙었다. 그러나 그는 자리를 찾느라 머뭇거리는 대신 곧장 소예지의 옆자리로 걸어와 앉았다.“이런 우연도 있네?”짧은 인사를 건네고는 고이한은 천천히 재킷의 단추를 풀고 다리를 뻗은 뒤, 침착하게 안전벨트를 맸다. 소예지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피했다. 지금이라도 자리를 바꿀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지만 이미 만석이라는 사실은 탑승할 때 확인한 뒤였다. 그는 그녀의 뺨 너머로 창밖을 바라본 채,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윽고 비행기는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회색빛 하늘은 점점 어두워졌고 빗방울이 유리창을 촘촘히 두드렸다. 꽤 거친 날씨였다.비행기가 힘차게 이륙을 시작하자 소예지는 본능적으로 좌석 팔걸이를 꽉 움켜쥐었다.손끝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본 고이한이 낮게 말했다.“겁낼 거 없어.”소예지는 잠시 그를 흘깃 바라보다가 아무 대답 없이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폭우를 뚫고 고도를 올린 비행기는 이내 평형을 되찾았다.잠시 후, 스튜어디스가 음료를 나누기 시작했다.고이한이 먼저 물었다.“뭐 마실래?”“됐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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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3화

“놓으라고 했잖아!”소예지는 그의 품 안에서 몸을 비틀며 거칠게 밀쳐냈다.그러나 바로 그 순간,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이 안전벨트를 제대로 매지 못한 채 복도 쪽으로 튕겨 나가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고이한의 팔이 더 단단해졌다.철벽처럼 단단한 두 팔이 소예지의 허리를 감싸안았고 다른 한 손은 그녀의 머리를 보호하듯 감쌌다.소예지는 담요 속에서 마치 모든 감각이 봉인된 사람처럼 그의 가슴팍에 파묻혀 있었다.“놓으라고...”그녀는 담요 안에서 손을 뻗어 그를 밀어내려 했다.“움직이지 마.”고이한의 저음이 명령처럼 내려앉았다.그 목소리에 두려움으로 굳어 있던 소예지는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비명과 흔들림, 불안한 기류가 뒤엉킨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는 눈을 꼭 감은 채 숨을 죽였다.심장은 미친 듯 뛰고 있었고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깊은 두려움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기류가 잦아들자 승무원들이 분주히 통로를 오가며 승객들을 안심시켰다.객실 곳곳에서 억눌렸던 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소예지는 정신을 수습하자마자 고이한을 밀쳐냈지만 고이한은 억지로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그녀를 놓는 순간에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의 얼굴을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소예지의 얼굴은 잿빛처럼 창백했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눈가를 덮고 있었다.아까의 거센 흔들림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는 분명했다.“괜찮아?”고이한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그녀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려 했다.소예지는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쳐냈다.“손대지 마.”그럼에도 고이한의 얼굴에는 분노도 억지스러움도 없었다. 이제 그는 그녀를 억누르려 하지 않았다. 승무원들이 객실을 돌며 다친 승객이 없는지 확인하기 시작했고 다행히 이후 비행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어졌다.승객들도 다시 자리에 앉아 조금씩 숨을 고르기 시작했고 창밖으로는 점차 A시의 야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불빛이 반짝이며 천천히 다가오는 가운데 소예지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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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4화

드디어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자 소예지는 짐가방을 끌며 김경환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감사해요, 김 비서님.”김경환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감사할 사람은 따로 있죠. 고 대표님 덕분입니다.”그 말에 소예지는 잠시 걸음을 멈칫하더니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집에 도착하자 양희순이 반갑게 그녀를 맞으며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을 내어왔다.비행기 안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탓에 소예지는 말없이 젓가락을 들어 국수를 떠먹었다.그때, 휴대전화가 조용히 울렸다.[2층에 불이 켜진 걸 봤어요. 돌아온 거죠?]보낸 사람은 윤하준이었다.소예지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하준 씨... 산책 중인가?’[방금 도착했어요.]잠시 후,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잘 쉬세요. 방해 안 할게요.]그 짧은 문장을 바라보던 소예지는 화면을 껐다.샤워를 마친 뒤, 그녀는 곧장 서재로 들어가 밀린 실험 데이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이번 출장이 길어졌던 탓에 손대지 못한 자료가 생각보다 많이 쌓여 있었다.소예지는 앞으로 특별한 일이 없다면 당분간은 출장을 줄이고 연구에 집중하자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는 늘 딸이 있었다. 이 시간쯤이면 이미 잠자리에 들었을 터라 괜히 잠을 깨울까 싶어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다.밤이 깊어지고 침대에 누운 그녀는 문득 오늘 비행기에서의 순간을 떠올렸다. 기체가 거칠게 요동치던 그 찰나,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던 짧은 순간에 오직 딸아이의 얼굴만이 머릿속을 스쳤다.‘만약... 그 비행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더라면 하슬이는 어떻게 되었을까.’그 순간만큼은 생사도 원한도, 지나온 감정들조차 모두 무의미해졌다. 그저 살아남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고 그것은 오직 딸을 위해서였다.소예지는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다음 날 아침.눈을 뜨자마자 그녀는 곧장 실험실로 향했다.아직 이른 시각이었지만 소예지는 언제나 이렇게 조용한 아침 시간에 연구하는 걸 좋아했다.그녀를 본 강준석이 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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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5화

“어머! 고 대표님이 인터뷰에서 소예지 얘기했어!”이서연의 말에 식당 안이 순식간에 술렁이기 시작했다.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예지를 향했다.이혼한 전 부인에 대해, 그것도 공식 방송에서 존중과 감사를 표하는 그의 발언은 의외였고 동시에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소예지는 조용히 눈을 가늘게 뜬 채 화면 속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확실히 고이한의 언변과 이미지는 훌륭했다. 책임감 넘치고 진심으로 연구를 위하는 기업가처럼 보였다.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카메라 앞에서의 얼굴일 뿐이었다.진짜 그 사람의 민낯은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소예지는 말없이 국물만 천천히 휘저으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호기심 어린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채린은 씁쓸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고 대표님 눈엔 아직도 소예지밖에 안 보이나 봐요.”서지나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흥. 이미지 관리지 뭐.”안채린은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을 쳤다.“공적인 자리에서 전 부인을 무시할 수는 없잖아. 그래야 자기 이미지가 좋아지니까.”그녀의 눈빛에는 분명 불쾌함이 서려 있었다.어쩐지 억울했다.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은 소예지가 아니라 ‘심유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강준석은 소예지의 굳은 표정을 알아차리고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먼저 실험실로 데려갔다.그리고 그날 오후, 안채린은 심유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고 대표 인터뷰 봤어?]심유빈의 답장은 거의 곧바로 도착했다.[응. 봤어.][언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마. 고 대표도 어쩔 수 없이 이미지 관리하느라 그런 거니까.][알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짧고 담담한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까지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안채린은 그 답장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그래, 아직은 괜찮아.’심유빈이 화를 내지 않았다는 건,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는 뜻일지도 몰랐다.오후 네 시 반.소예지는 아이를 데리러 집을 나섰다.어린이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윤하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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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6화

고하슬의 목소리는 또랑또랑하고 분명했다.그 말이 떨어지자 그 자리에 있던 세 명의 어른은 동시에 굳어버렸고 옆에 서 있던 이안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하슬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하슬아, 왜 우리 삼촌을 고모부라고 불러?”“고모가 그랬어. 나중에 하준 삼촌이 내 고모부가 될 거라고.”순간, 진가영의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급히 고하슬 앞에 쪼그려 앉아 아이의 시선을 맞추며 다급하게 말했다.“하슬아, 그건 고모가 장난으로 한 말이야. 그러니까 믿지 마.”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소예지도 부드러운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하슬아, 이런 말은 밖에서 하면 안 되는 거야. 알겠지?”고하슬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커다란 눈동자 속에는 여전히 의문이 가득 담겨 있었다.“근데 고모가...”“고모가 잘못 말한 거야.”진가영은 아이의 말을 서둘러 끊으며 민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윤하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윤 대표, 아이가 아직 어려서 아무 말이나 한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윤하준은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습니다.”소예지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딸에게 말했다.“하슬아, 하준 삼촌한테 인사하자.”고하슬은 윤하준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윤하준 역시 이안의 손을 잡은 채 정중하게 말했다.“그럼 저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그들이 자리를 뜨자 진가영은 참았던 숨을 내쉬듯 길게 한숨을 쉬며 소예지에게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정말 미안해. 이따가 수경이는 내가 꼭 혼내야겠어. 하슬이한테 왜 그런 얘길 했는지...”소예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저희도 이만 가볼게요.”“할머니, 안녕!”고하슬은 환하게 손을 흔들며 차에 올라탔다.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곧 의아한 얼굴로 소예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엄마, 근데 왜 하준 삼촌을 고모부라고 부르면 안 돼요?”소예지는 운전석에 앉은 채 딸을 돌아보며 차분히 설명했다.“하준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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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7화

소예지의 가슴안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오빠라는 사람은 “이번 생에는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단언해 놓고도 그 여동생은 딸에게 “새엄마가 생길 거다”라는 황당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리고 있었다.‘이건... 정말 선을 넘었어.’“흥, 난 새엄마 싫어요! 아빠가 다른 여자랑 결혼하는 것도 싫어요.”고하슬은 볼을 불쑥 부풀리며 입술을 내밀었다.그 말에 소예지는 잠시 멍해졌다.‘이런 말은 한 번도 가르친 적 없는데...’이 어린아이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느끼고 판단한 끝에 분명하게 거부하고 있었다.그 사실이 가슴 한쪽을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리게 파고들었다.소예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아이의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듯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오늘 저녁에는 뭐 먹고 싶어? 엄마가 할머니한테 말씀드려서 해 달라고 할게.”“닭강정 먹고 싶어요!”고하슬은 금세 기분이 풀린 듯 다리를 흔들며 신나게 말했다.“그래.”소예지는 곧바로 양희순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메뉴에 닭강정을 추가해 달라고 부탁했다.한편, 다른 차 안에서는 조금 전 일이 마음에 걸린 듯 이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삼촌, 왜 하슬이는 나중에 삼촌을 고모부라고 부른대요?”윤하준은 잠시 숨을 고른 뒤,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아이 눈높이에 맞춰 설명했다.“아마 하슬이가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아. 삼촌은 하슬이 고모랑 그냥 친구야.”“아.”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아무 걱정도 없다는 듯 천진하게 덧붙였다.“그런데 저는 예지 이모가 더 예쁜 것 같아요. 하슬이 고모보다요.”윤하준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방금까지 가슴을 눌러오던 답답함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느낌이었다.그는 웃음을 머금었지만 다정하게 타일렀다.“이안아, 그런 말은 삼촌한테만 하고 다른 데서는 말하지 말자.”“네! 알겠어요!”이안은 똘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집에 돌아온 고하슬은 곧장 장난감 방으로 들어갔고 소예지는 조용히 서재로 향했다.일을 하려고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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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8화

“하슬이한테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예요?”고이한은 가늘게 눈을 좁히며 어머니를 향해 물었다.“그냥... 하슬이한테 윤 대표를 고모부라고 부르라고 했대.”진가영은 난처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대답했다.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이한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그게 다예요?”진가영은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되물었다.“뭐가 더 있어? 그거 말고 또 뭐가 있겠니?”고이한은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정말 그것뿐인데 소예지가 그렇게까지 화를 낸 건가?’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묘한 위화감이 지워지지 않았다.“하슬이는 아직 어린애니까 그렇다 쳐도 하필 윤 대표랑 소예지 앞에서 그런 얘길 하다니... 내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도 얼굴이 다 화끈하더라. 아무리 수경이가 윤 대표를 좋아한다지만 그렇다고 하슬이 입을 빌려 그런 말을 하게 하면 안 되지.”진가영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 말을 들으며 고이한의 얼굴빛은 서서히 어두워졌다.소예지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직접 전화를 걸 정도라면 단순히 ‘고모부’ 운운한 말 하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뭔가 더 있어.’그는 재킷을 소파 위로 던지듯 내려놓고 묵직한 발걸음으로 2층으로 올라갔다.그리고 고수경의 방문 앞에 멈춰 서서 손을 들어 노크했다.“수경아, 문 열어.”문 너머에서 고수경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빠... 내가 잘못했어. 제발 더는 혼내지 마.”“문 열어.”그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더 이상의 거절은 통하지 않았다.결국 고수경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틈을 만들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오빠, 진짜야... 그냥 하슬이랑 장난처럼 말한 거야...”하지만 고이한은 망설임 없이 문을 밀치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그의 시선은 날카롭게 동생을 꿰뚫고 있었다.“하슬이한테 윤하준을 고모부라고 부르게 한 것 말고 또 무슨 말을 했어?”그는 누구보다 소예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녀가 그렇게까지 분노할 이유가 단 하나일 리 없었다.고수경은 움찔하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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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9화

고수경은 입술을 깨문 채 눈물을 쏟았다그저 두 마디 던진 말이 이렇게까지 오빠의 분노를 불러올 줄은 정말로 상상도 하지 못했다.‘분명 고하슬이 소예지에게 말했고 소예지가 오빠에게 따지듯 전화해서 오빠가 저토록 화가 난 거야.’그렇게 생각하자 억울함이 더욱 커졌다.“이한아, 밥 다 됐어.”아래층으로 내려온 진가영은 여전히 얼굴에 분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아들을 보고 조심스럽게 불렀다.“고생하셨어요. 어머니 먼저 드세요.”고이한은 꾹 눌러 삼킨 듯한 감정을 억누른 채 재킷을 집어 들고는 더 말도 없이 그대로 집을 나섰다.“이놈의 남매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진가영은 한숨 섞인 말로 혼잣말을 내뱉었다.그때, 거실 너머에서 최현숙이 느릿하게 걸어 나왔다.최근 들어 귀가 부쩍 어두워진 탓에 가정부에게서 남매가 다퉜다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은 모양이었다.“왜 이렇게 소란이야? 또 싸운 거니?”“아니에요, 어머니. 식사하시죠.”진가영은 더 이상 어머니까지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자식 둘이 번갈아 속을 썩이니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이한이 방금 들어오지 않았어? 어디 갔어?”“일이 생겨서 다시 나갔어요.”진가영은 짧게 대답한 뒤, 곧장 2층에 있는 딸의 방으로 향했다.문을 열자, 눈가에 선명한 눈물 자국이 남아 있는 고수경이 보였다.“너 때문에 오빠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아? 앞으로 어떻게 윤 대표 얼굴을 보라고 그래?”진가영은 짜증 섞인 말투로 따졌다.“오빠가 화난 건 그 일 때문이 아니에요.”고수경은 이를 악문 채 낮게 말했다.“아니라고? 그럼 대체 왜 그렇게 화를 낸 건데?”진가영이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하슬이한테... 유빈 언니가 곧 새엄마가 될 거라고 말했어요.”고수경은 후회가 가득 담긴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뭐라고?”진가영은 순간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진짜 그런 말을 했단 말이니?”“하슬이도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할 일이잖아요.”고수경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그게 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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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0화

소예지는 입술을 단단히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이한은 딸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소파 등받이에 재킷을 걸었다.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동생한테는 이미 경고했어.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그러자 소예지는 비웃듯 짧은 냉소를 흘렸다.“당신 동생이 그렇게 철없는 게 하루이틀도 아니잖아.”고이한의 눈빛이 짙어졌다.“그 애가 다시는 하슬이 근처에 못 오게 할 거야. 아예 따로 나가 살게 하려고.”소예지는 그 말에 시선을 돌려 장난감 방으로 들어가는 딸의 뒷모습을 잠시 확인한 뒤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꾹꾹 눌러 담은 말투로 차분히 말했다.“당신 동생이 또 한 번이라도 내 딸한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면 그땐 즉시 접근 금지 신청을 할 거야. 고씨 집안 누구도 하슬이 근처에는 얼씬도 못 하게 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말을 마친 소예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거실에 홀로 남겨진 고이한의 눈빛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이번 고수경의 행동은 분명히 소예지가 지켜온 분노의 선을 넘어선 일이었다.그때, 다시 거실로 나온 고하슬이 그의 손을 끌어당겼다.“아빠, 내가 어떻게 계산하는지 보여 줄게요!”고이한은 미소를 띠며 딸의 옆에 앉았다.조금 더 쉬운 방법 하나를 알려 주자 고하슬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아빠, 열 문제만 더 내 주세요!”“좋아.”문득 시계를 보니 어느새 십 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그는 2층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소예지는 그를 내쫓지 않았다. 그 사실에 마음이 조금 놓여 잠시만 더 딸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젤리는 그의 발치에 누운 채 꼬리를 살랑거리며 조용히 몸을 기대고 있었고 고이한은 강아지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한편 서재에 있던 소예지는 거실 쪽에서 들려오는 딸의 웃음소리에 잠시 눈을 감았다.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감정을 애써 눌러 보려 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그를 내쫓고 싶다는 충동이 스쳤으나 그보다 먼저 딸의 마음이 다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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