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781 - Chapter 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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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1화

나뭇잎들이 바람에 살랑이며 부딪혀 사각거렸다고이한은 눈을 가늘게 뜬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순간, 그의 휴대폰이 낮게 진동했다.화면을 확인한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낮고 짧은 목소리로 말했다.“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이 얘긴 다음에 하자.”윤하준은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고이한이 서둘러 차에 올라타는 뒷모습을 윤하준은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이내 천천히 자신의 차로 향했다.오늘은 중요한 회의가 예정된 날이었다.주현우는 기술팀을 이끌고 이른 아침부터 회의실에 도착해 있었고 이미 전체적인 진행 흐름을 점검하고 있었다.회의실 안에서는 강준석과 소예지가 나란히 앉아 연구 데이터를 검토하고 있었으며 이서연은 회의에 필요한 자료와 장비를 차분히 정리하고 있었다.잠시 후, 회의실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주현우는 곧바로 엔지니어에게 발표를 지시하려 했다.그러나 그때였다.철컥.회의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입구로 향했다.완벽하게 차려입은 고이한이 안으로 들어섰고 그 뒤를 김경환이 조용히 따랐다.“늦어서 죄송합니다.”낮고 묵직한 그의 목소리가 회의실 안에 울려 퍼졌다.고이한의 시선은 천천히 방 안을 훑었다.그리고 끝내, 소예지에게서 멈췄다.불과 1초 남짓한 짧은 눈 맞춤이었지만 그 순간 소예지는 손에 쥔 펜을 무심결에 더 꽉 쥐었다.그는 원래 이런 기술 회의에까지 직접 참석할 필요는 없었다.“고 대표님, 이쪽으로 앉으시죠.”주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곧 주변 사람들이 자리를 정리했고 고이한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뒤 회의실 중앙의 주석에 앉았다.“회의 계속하시죠.”단호한 한마디에 공기는 순식간에 한층 더 긴장되었다.막 발표를 시작하려던 엔지니어가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테스트 결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반응 지연 시간이 0.3초까지 단축되었습니다.”고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그 수치는 더 줄일 수 없습니까?”질문을 받은 엔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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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2화

소예지는 남에게 신세를 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그래서 더더욱 이번 여행에서 윤하준에게 진 빚은 가능한 한 빨리 갚고 싶었다.[좋아요. 11시 30분에 MD 정문 앞에서 기다릴게요.][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 혼자 운전해서 갈 수 있어요.][괜찮아요. 저도 마침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요.]윤하준의 말투에는 단호함이 묻어 있었다.소예지는 더 이상 고집하지 않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어차피 한 끼 식사로 이번 정산을 마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오전 11시 20분.윤하준은 이미 실험실 1층 로비에 도착해 있었다.통유리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이 그의 단정한 옆모습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소파에 앉아 무심히 잡지를 넘기고 있었지만 그 풍경은 마치 광고 사진처럼 고요하면서도 깔끔했다.그 시각, 회의 역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주현우가 분위기를 띄우려는 듯 나섰다.“고 대표님도 계시니까, 오늘 회식 어떻습니까? 식사하면서 편하게 이야기 나누시죠.”고이한이 막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소예지는 서류를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죄송하지만 저는 약속이 있어서 참석이 어렵겠네요.”주현우의 표정에 미세한 당혹감이 스쳤다.이번 자리는 사실 소예지와 고이한 사이의 냉랭한 기류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소 박사님, 약속을 조금만 미룰 수는 없을까요?”“중요한 친구와의 약속이라서요.”주현우가 애써 붙잡아 보려 했지만 소예지의 태도는 단호했고 그녀는 곧장 회의실을 빠져나갔다.주현우는 분위기를 살피듯 고이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그럼 고 대표님은...”“전 본사 회의가 있어서요. 회식은 따로들 하세요.”고이한 역시 더 말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 광경을 지켜보던 강준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저도 남지 않겠습니다. 마무리할 일이 좀 있어서요.”아까까지만 해도 소예지가 회식에 불참한다는 소식에 은근히 기뻐했던 안채린은 강준석의 말에 입꼬리가 힘없이 내려갔다.어찌 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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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3화

“좋아요. 예지 씨가 추천하는 거라면 꼭 먹어봐야죠.”윤하준은 가볍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소예지는 시선을 앞쪽으로 돌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저기서 좌회전이에요.”윤하준의 차가 막 출발하려던 순간,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그들 차량 앞을 스치듯 지나갔다.그 차는 다름 아닌 고이한의 차량이었다.“고 대표도 오늘 여기서 회의했어요?”윤하준이 별 뜻 없는 듯 가볍게 물었다.“네, 기술 회의요.”소예지는 짧게 답했다.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은 윤하준은 그녀의 안내에 따라 근처에 있는 한 레스토랑으로 차를 몰았다.자리에 앉자마자 소예지는 대표 메뉴 네 가지를 주문하며 물었다.“매운 거 괜찮으세요?”“네. 괜찮아요.”윤하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처음 몇 입은 괜찮아 보였지만 이내 그의 얼굴이 술기운이 오른 사람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그제야 소예지는 그가 매운맛에는 그다지 강하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죄송해요. 생각보다 좀 매웠죠? 제가 맵지 않은 걸로 두 가지 더 시킬게요.”그녀는 곧바로 물을 따라 주고, 직원에게 메뉴를 추가로 주문했다.“괜찮아요.”윤하준은 천천히 웃었다.“가끔은 이런 도전도 재밌잖아요.”이 정도 매운맛은 그에게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소예지는 윤하준이 외국에서 오래 생활했을 것이라 짐작했고 그만큼 매운 음식에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추가로 주문한 요리가 도착하자 소예지는 계속해서 윤하준이 먹기 편하도록 접시를 챙겨 주었다.“다음엔 하준 씨가 추천한 레스토랑으로 가죠.”소예지는 살짝 민망한 듯 말했다.“괜찮아요. 이렇게 새로운 음식을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윤하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급히 메뉴를 바꾸며 자신을 배려하는 소예지의 모습이 그에겐 제법 귀엽게 느껴졌다.윤하준은 매운맛을 참고 천천히 식사를 이어갔다.소예지가 맛있다고 여기는 음식이라면 자신도 한 번쯤은 제대로 느껴보고 싶었다.식사를 마친 뒤, 두 사람은 잠시 여유를 즐기다 차로 돌아왔다.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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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4화

서지나는 막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소예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옆에 서 있던 안채린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채린 선배, 방금 예지 선배 데려다준 사람 누구예요?”럭셔리 스포츠카에 눈에 띄는 외모까지 더해져 그는 어딘가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안채린은 그 인상을 곱씹듯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짧게 대답했다.“윤하준, 윤화 그룹 대표야.”서지나는 속으로 놀라며 절로 감탄이 나왔다.‘헉... 소예지랑 밥 먹는 사람들 모두 대단한 인물이네.’호기심이 동한 서지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혹시... 둘이 사귀는 건 아니에요?”안채린은 비웃듯 콧방귀를 뀌었다.“너 소예지를 너무 고평가하네. 윤 대표는 우리 고 대표랑 어릴 때부터 형제처럼 자란 사이야. 그런 사람이 친구의 전처랑 무슨 사이겠어?”그 말에 이서연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저 정도의 재력과 외모라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한편, 고씨 저택.고수경은 외출 준비를 마친 채 집을 나서려던 중, 진가영에게 불려 걸음을 멈췄다.“어디 가니?”“심유빈 언니네예요. 오늘 언니가 돌아온다고 했어요.”“아니, 왜 자꾸 남의 집에 가서 귀찮게 굴어?”“귀찮게라니요? 방금 전에 오빠가 문자 보냈어요. 유빈 언니 좀 보살피라고요.”고수경은 당당하게 말했다.그 말을 듣는 진가영의 눈빛이 미묘해졌다.아들이 저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걸 보면 정말 마음이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헷갈렸다.“엄마, 그러면 다녀올게요.”고수경은 그렇게 말한 뒤 차고로 향했다.진가영은 딸이 차를 몰고 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가슴 한편이 조여 오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그녀는 가슴을 누르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올해도 어김없이 증상이 시작된 것이었다.“사모님, 괜찮으세요?”곁에 있던 가정부가 황급히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다.“방으로 좀 들어가서 누워야겠네.”그 시각, 심유빈의 집.고수경이 도착했을 때, 심유빈은 거실 소파에 얇은 담요를 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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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5화

심유빈은 시선을 아래로 떨군 채, 컵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천천히 문질렀다.“하지만 요즘 고 대표 행동은... 정말 좀 이상해.”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고개를 들어 말을 이었다.“이번에 경주에 갔을 때 거의 줄곧 소예지랑 같이 있었어.”“뭐?”고수경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그럼 우리 오빠, 언니랑 같이 있지도 않았단 말이야?”“검진하러 병원에 한 번 같이 가 준 것 말고는...”심유빈은 붉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고개를 떨궜다.고수경은 곧바로 변명부터 꺼냈다.“언니, 그건 오해야. 우리 오빠랑 소예지는 일이 엮여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있는 거야. 그냥 업무적인 거라고.”사실 고수경은 ‘재결합’이라는 말만 들어도 진저리가 났다.소예지에 대한 싫은 감정은 차마 말로 다 못 할 정도였다.이번에도 고하슬에게 몇 마디 했다는 이유로 그 여자 때문에 창피를 당했고 그 일로 오빠에게까지 혼이 났다.생각할수록 소예지는 얄미웠고 또 얄미웠지만 이런 이야기를 심유빈에게 털어놓을 낯은 없었다.심유빈의 얼굴빛이 여전히 어두워 보이자 고수경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언니, 너무 걱정하지 마. 나 진짜 장담할 수 있어. 우리 오빠 마음엔 언니밖에 없어. 소예지 같은 건...”그녀는 입꼬리를 삐딱하게 올리며 덧붙였다.“그냥 일 핑계 삼아서 우리 오빠한테 찰싹 달라붙으려는 거지 뭐.”심유빈은 엷게 웃었다.“나 걱정 안 해도 돼. 너희 오빠 마음이 어떤지는... 나도 알아.”“고마워. 그렇게 생각해 줘서 다행이야. 진짜 소예지한테 휘말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언니 마음만 괜히 힘들어지잖아.”고수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요즘 오빠 얼굴 보기도 힘들 정도로 바빴다.그래서 더더욱 심유빈이 괜한 생각을 하게 될까 봐서 걱정이었다.아무리 전 부인이라 해도 아직도 오빠 실험실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거슬릴지는 불 보듯 뻔했으니까.“그건 그렇고 너랑 윤 대표는 요즘 어때?”심유빈이 살며시 물었다.그 말에 고수경의 눈가가 붉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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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6화

고수경은 놀란 눈으로 심유빈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이번에 소예지가 경주에 간 건, 다른 남자랑 데이트하러 간 거야?”심유빈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차분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나랑 너희 오빠가 군 의대에서 그 사람들을 봤어. 그 남자, 소예지한테 엄청 다정하게 굴더라. 꼭 연인처럼 팔도 감싸 주고... 딱 봐도 그냥 친구 사이는 아닌 것 같았어.”그 말을 듣는 순간, 고수경의 목소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높아졌다.“그러니까... 소예지가 하준 오빠를 걸쳐 놓고도 다른 남자까지 유혹하고 있었다는 거야? 말도 안 돼. 하준 오빠 같은 남자를 두고 어장 관리를 하고 있다니 그 여자 수법 진짜 대단하네.”그녀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분노를 터뜨렸다.“저런 변덕스러운 여자가 어떻게 하준 오빠를 좋아할 자격이 있어? 사람을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논 것도 모자라 뒤통수까지 친 거잖아?”심유빈은 놀라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수경아, 진정해...”“진정하라고?”고수경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소예지 같은 여자한테 농락당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진정해?”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분노를 억누른 듯 낮게 말했다.“이건 절대 그냥 넘길 수 없어. 하준 오빠도 진실을 알아야 해. 유빈 언니, 그날 본 걸 전부 말해줘. 하나도 빼놓지 말고.”심유빈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내가 본 게 아주 많진 않아. 하지만 이번에 소예지를 접대한 사람이 바로 그 남자라는 건 확실해. 데리러 온 차가 군부 소속 차량이었거든.”“그게 다야?”고수경이 채근하듯 되물었다.“아니. 병원에서도 봤어. 엘리베이터에서 둘이 같이 나오는 걸 봤는데 말도 잘 통하고 소예지는 웃는 얼굴이 어찌나 다정하던지... 그래서 내가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남자친구냐고 물었더니 그 남자가 예의 바르게 인사하면서 자기 이름을 밝혔어. ‘임현욱’이라고.”“임현욱?”고수경은 순간 머릿속을 뒤져봤지만 그 이름은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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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7화

심유빈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다녀와.”그 말을 듣자마자 고수경은 인사 한마디 없이 곧장 윤화 그룹으로 향했다.오후 네 시.고수경은 윤화 그룹 본사 건물 앞에 도착해 있었다.예전에도 이곳에서 근무한 적이 있던 그녀는 안내데스크 직원들에게 이미 얼굴이 익숙했다.누구도 그녀를 막지 않았고 고수경은 곧장 엘리베이터에 올라 익숙한 손길로 윤하준의 집무실이 있는 층을 눌렀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비서가 그녀를 발견하고 놀란 눈으로 인사를 건넸다.“고수경 씨, 무슨 일이시죠?”“윤 대표님 좀 뵈러 왔어요. 사무실에 계세요?”“방금 회의 끝내시고 지금은 사무실에서 업무 보고 계세요.”고수경은 윤하준의 사무실 문 앞에 멈춰 섰다.가볍게 노크한 뒤, 안에서 응답이 들리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갔다.윤하준은 책상 위에 서류를 펼쳐 둔 채 검토하던 중이었다.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고는 약간 찌푸린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일이야?”고수경은 성큼 다가가며 조급하게 말을 꺼냈다.“윤하준 오빠,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어요. 소예지에 관한 일이에요.”“예지 씨가 왜? 무슨 일 생겼어?”윤하준의 표정이 단번에 진지해졌다.그 반응에 고수경은 잠시 당황했다.‘그렇게까지 걱정하다니...’그를 향한 마음이 다시 저릿하게 아려왔다.조금 후면 그가 듣게 될 이야기를 생각하자 그 충격이 어떨지 눈앞에 선명히 그려지는 듯했다.“하준 오빠, 소예지 씨가 경주에 출장 간 거 알고 계시죠? 그런데 그게 단순한 업무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그 사람... 경주에서 다른 남자랑 데이트를 했어요.”그녀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덧붙였다.“오빠, 소예지한테 농락당하고 있어요.”윤하준의 눈빛이 서서히 가늘어지며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수경아. 예지 씨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너보다 잘 알아.”여전히 소예지를 감싸는 듯한 그의 말에 고수경의 속은 타들어 갔다.눈가가 금세 붉어졌고 그녀는 책상에 몸을 기댄 채 목소리를 높였다.“하준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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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8화

“그만해.”윤하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예지 씨가 어떤 사람인지는 네가 여기서 판단할 일이 아니야.”그 말이 떨어지자 고수경의 두 눈에는 금세 억울한 눈물이 고였다.윤하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그만 가 봐, 수경아.”고수경은 한발 물러섰다가 이를 악문 채 그대로 돌아섰다.엘리베이터까지 겨우 걸어 나간 그녀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핸들에 얼굴을 묻었다.그렇게 꾹 참고 있던 눈물이 결국 터져 나왔다.그녀는 누구보다 윤하준을 생각해 왔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거절뿐이었다. 그 억울함은 쉽게 삼킬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소예지에게 휘둘리는 윤하준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고 그를 위해 해왔던 모든 일들이 한순간에 허무하게 느껴졌다.한편, 고수경이 사무실을 떠난 뒤에도 윤하준은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지금 그의 머릿속은 오직 하나의 질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예지 씨는 정말... 임현욱과 교제 중일까?’윤하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휴대폰을 들어 고이한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익숙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이한아, 시간 괜찮아? 잠깐 얘기 좀 하고 싶어.”“응, 괜찮아. 무슨 일이야?”윤하준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수경이가 조금 전에 나한테 왔어. 예지 씨에 관해 몇 가지 얘기를 하더라고. 너, 군 의대에서 소예지랑 임 대위 봤다며?”고이한은 숨기지 않고 답했다.“맞아. 마주쳤어.”윤하준의 손이 휴대폰을 쥔 채로 미세하게 떨렸다.“그래서 그 둘 사이가...”고이한이 말을 끊듯 사실 그대로 설명했다.“이번 경주 회의는 장관님이 마련한 자리였어. 향후 의료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공식 만찬이었고 임현욱은 대표로 우리를 접대한 거야.”순간, 두 사람 사이에 묵직한 침묵이 흘렀다.잠시 후, 고이한이 먼저 그 침묵을 깨뜨렸다.“임현욱, 괜찮은 사람이야. 집안도 좋고 성품도 반듯해. 그리고 무엇보다... 소예지를 진심으로 대하더라.”윤하준은 입을 다물었다.그 역시 인정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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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9화

소예지는 양정화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챘다.그녀는 잠시 망설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조금만... 생각해 봐도 될까요?”조심스럽게 묻는 소예지를 향해 양정화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네가 연단에 서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고신 그룹이 설립하는 이 재단은 백혈병 환자들을 위한 치료 기반이 될 거야. 그 의미가 얼마나 큰지는 너도 잘 알잖아.”“알겠습니다. 고민해 보고 회신드릴게요.”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 시각, 고이한은 고시 그룹 본사 집무실의 통유리창 앞에 서 있었다.그의 뒤쪽에서는 김경환이 차분히 업무 보고를 이어 가고 있었다.“아, 고 대표님. 초청 메일은 모두 발송 완료됐습니다.”고이한은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낮게 물었다.“그 사람은 답했나?”누구를 가리키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김경환은 바로 이해했다.“소예지 씨는 아직 회신이 없습니다.”고이한은 여전히 창밖을 바라본 채, 눈빛을 거두지 않고 짧게 말했다.“그래.”오후 다섯 시 반.소예지는 퇴근길에 예상치 못한 교통 정체에 걸렸다. 그녀는 담임 선생님에게 조금 늦을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곧바로 답장이 도착했다.[하슬이 어머님, 괜찮아요. 이안 삼촌께서 아이들이랑 같이 놀아 주고 계세요!]선생님은 메시지와 함께 사진도 보내왔다.소예지는 신호 대기 중, 화면을 내려다보았다.사진 속에는 놀이터에서 해맑게 뛰노는 고하슬과 이안의 모습,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고 서 있는 윤하준의 뒷모습이 담겨 있었다.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사함이 마음속에서 물밀듯 밀려왔다.소예지는 곧장 답장을 보냈다.[곧 도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서둘러 어린이집에 도착했을 때, 석양이 놀이터를 부드럽게 물들이고 있었다.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잔잔히 퍼지는 가운데 윤하준은 조용히 그 곁을 지키고 서 있었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그가 뒤돌아봤고 소예지를 발견하자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졌다.“왔네요.”“하슬이 봐줘서 고마워요.”소예지는 진심이 담긴 눈빛으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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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0화

“네. 이번엔 국방부 장관의 특별 초청이었어요. 우리가 초대받은 것만으로도 모두 큰 영광으로 생각했죠.”소예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그 정도면 이미 대단한 거죠.”윤하준은 은근한 부러움이 묻어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소예지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과찬이에요.”잠시, 두 사람 사이에 말이 끊겼다.윤하준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지만 망설이다가 끝내 입을 열지 못한 채 그저 깊어진 눈빛으로 소예지를 바라볼 뿐이었다.그때 윤하준의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을 확인하자 주경화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이안을 데리고 돌아오라는 재촉이었다.[네, 엄마. 이제 막 식사 마치고 예지 씨랑 잠깐 얘기하고 있었어요.]곧이어 답장이 도착했다.[어머, 소예지랑 같이 있었어? 그럼 천천히 와. 급할 거 없으니까 얘기 더 나눠도 돼.]주경화는 말투를 금세 바꾸며 다정하게 덧붙였다.윤하준은 미소를 지으며 답장을 보냈다.[엄마, 알았어요.][혼자 이안이 돌보고 있는 줄 알았지. 시간도 이르고 늦게 와도 돼.]통화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소예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그녀는 습관처럼 화면을 확인하다가 잠시 시선을 멈췄다.[공항이에요. 곧 탑승해서 기지로 돌아가요. 인사는 남겨야 할 것 같아서요.]임현욱이었다.소예지는 몇 초간 그 메시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답장을 보냈다.[조심히 다녀오세요. 무사히 도착하길 바라요.]답장은 곧바로 돌아왔다.[고마워요. 다음에 또 봐요.]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윤하준이 조용히 물었다.“임 대위예요?”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오늘 복귀한대요.”윤하준은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조용히 쥐었다가 이내 힘을 풀었다.“자주 연락해요?”소예지는 솔직하게 답했다.“친구끼리 연락하는 정도예요.”굳이 숨기거나 꾸며낼 이유는 없었다.윤하준에게만큼은 처음부터 진실로 대하고 싶었다. 그게 서로에게도 그리고 자신에게도 가장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윤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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