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Chapter 81 - Chapter 90

100 Chapters

제81화

이혼해야만 하는 상황까지 온 건 문강찬의 잘못이었다.“이혼해줄게.”이 말을 내뱉는 동시에 그는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지금 이 순간 문강찬은 진윤슬에 대한 마음이 가족애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걸 깨달았다.이제야 진윤슬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그 감정 말이다.자기 마음을 깨달은 순간 눈가가 촉촉해졌지만 여전히 부드럽게 웃으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내일 오전 9시에 법원에서 보자.”그러고는 들고 온 봉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연고야. 잊지 말고 발라.”말을 마친 문강찬은 자리를 떠났고 쓸쓸한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진윤슬은 얼굴을 감싸 쥔 채 임청아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슬픔과 고통... 후련함과 기쁨이 한데 뒤섞였다. 수렁과도 같았던 결혼 생활이 드디어 끝이 보였다.임청아는 웃으면서 축하해줬고 웃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거렸다.그날 밤 진윤슬은 친구네 집에서 간만에 푹 잤다.다음 날 오전 9시, 진윤슬은 시간 맞춰 법원 앞에 도착했고 고개를 들자 흰 셔츠 차림의 문강찬이 보였다.그 모습에 진윤슬은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이 흰 셔츠는 그들이 혼인신고를 하던 날 그가 입었던 셔츠였다.그때 문강찬은 내내 싸늘한 기운만 풍겼고 물론 그녀도 기쁠 리 없었다. 두 사람은 혼인신고가 아니라 이혼하러 온 것 같았다.혼인신고를 마친 후 진윤슬은 바로 해오름으로 들어갔다.비록 이 결혼이 그녀가 원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음속 깊은 곳에 약간의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하여 결혼식 날 입었던 옷을 정성스럽게 개어 잘 보관해두었다.그런데 문강찬이 그 옷을 입고 이혼하러 올 줄은 몰랐다. 옷은 그대로였지만 사람은 많이 변했다.진윤슬은 복잡한 생각들을 재빨리 정리하고 시선을 늘어뜨린 채 말했다.“들어가자.”문강찬의 두 눈에 실망감이 스치더니 이내 씁쓸함으로 가득 찼다.사실 일부러 이 흰 셔츠를 입고 왔다. 혹시나 그녀를 붙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이혼 신고를 할 땐 부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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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문강찬은 가슴이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속에 있던 말이 무심코 튀어나왔다.“아직 한 달 있어.”한 달의 이혼 숙려 기간은 그에게 있어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간이었다.그의 말에 담긴 위협을 감지한 진윤슬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뭘 어쩌겠다는 거야?”“나랑 집에 가.”문강찬은 그녀가 집에 돌아오기를 바랐다.어젯밤에 혼자 밤을 보냈는데 집에 온기라곤 없이 썰렁했다. 안주인이 없는 집은 껍데기만 남은 차가운 공간일 뿐이었다.진윤슬이 입술을 꽉 깨물더니 검은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난 더는 강찬 씨랑 엮이고 싶지 않아.”그리고 그 집에 대해서 말하자면 문강찬은 한 번도 진윤슬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아내로 생각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진윤슬은 단호하게 돌아섰다.이젠 불어오는 바람마저 황량하게 느껴졌다.문강찬이 회사로 돌아오자 오창윤이 재빨리 뒤따라갔다.“증거는 제출했고 조사팀이 투입됐습니다.”이건 원래 계획했던 일이었고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문강찬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그래.”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짧게 대답했다.“큰 사모님께서 찾아오셨는데 카드 한도 제한에 대해 불만이 많으신 것 같더라고요.”오창윤이 또 말했다.사실 최민경은 불만만 가진 것이 아니라 난동까지 부리며 대표 사무실 전체를 욕하고 돌아갔다.문강찬의 눈에 혐오감이 스쳐 지나갔다.“다음부터는 못 들어오게 해.”오창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 말했다.“진 본부장님이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진세린은 이미 사무실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다.문강찬이 들어오자 바로 일어나 걱정스럽게 물었다.“오빠, 언니랑 이혼하러 갔다고 들었는데 정말이야?”문강찬의 두 눈이 칠흑처럼 어두웠는데 뭔가 다른 속마음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아직 숙려 기간이 남아 있어.”그의 표정만 봐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던 터라 진세린이 조심스럽게 떠보았다.“이혼해서 나쁠 건 없지. 사랑 없는 결혼은 늘 짐이 될 뿐이니까. 어쨌거나 그때 오빠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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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임청아인 줄 알았는데 문을 열어 보니 뜻밖에도 문강찬이었다.문을 닫으려던 그때 문강찬이 비집고 들어오더니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소파로 데려갔다.“약은?”문강찬이 물었다.진윤슬은 그가 함부로 들어오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곳은 그녀 혼자만의 공간이라 그의 숨결이 묻는 걸 원치 않았다.그녀가 매정하게 내쫓았는데도 문강찬은 가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TV 옆 테이블 위의 연고에 머물렀다.연고 하나를 집어 들고 진윤슬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면봉에 연고를 묻혀 그녀를 쳐다보았다.“이리 와. 약 발라 줄게.”진윤슬이 고개를 돌렸다.“이런 일로 문 대표한테 폐를 끼쳐서야 하겠어?”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강찬이 잡아당긴 바람에 함께 소파 위로 넘어지고 말았다.문강찬이 위에, 진윤슬이 아래에 있었는데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문강찬 씨.”화가 난 진윤슬이 손톱으로 그의 목을 할퀴자 옅은 자국이 나타났다.하지만 문강찬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녀가 잡아 뜯든 물어뜯든 약을 다 바를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른 연고를 집어 들었다.진윤슬이 재빨리 손을 뻗어 빼앗으려 했으나 문강찬의 팔이 더 길어 손쉽게 먼저 연고를 잡았다.그는 자리에 앉아 진윤슬을 품에 안고 손가락을 치맛자락 위에 올려놓았다.“문강찬 씨.”진윤슬이 핏발이 선 두 눈으로 그의 손을 누르며 소리쳤다.그 연고는 김해인이 처방해준 것이었는데 문강찬이 이틀 밤 연속 잠자리를 요구한 바람에 약간 찢어진 것처럼 아팠다.지금 그의 의도는 분명했다.‘이 인간 정말...’진윤슬은 너무도 화가 나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눈에 눈물이 고였다.“우린 이미 이혼했어. 날 건드리지 마.”“아직 숙려 기간이야.”문강찬은 아주 차분하게 대답하고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눌렀다.“내가 만든 상처 내가 책임져야지.”진윤슬이 협조하지 않아 약을 바르는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다.며칠 동안 금욕했더니 몸이 또 반응하기 시작했다. 문강찬은 그녀를 안고 반강제적으로 달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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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손 놔.”진윤슬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문강찬은 놓아주지 않았다.방유권이 캐리어를 끌고 오면서 강경하게 말했다.“대표님, 두 사람 이미 이혼했어요. 윤슬 씨한테 이러시면 안 됩니다.”문강찬이 더욱 꽉 쥐더니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비서에게 지시했다.“사모님 캐리어를 챙겨.”방유권과 쓸데없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진윤슬을 끌고 가버렸다.방유권은 경호원들에게 가로막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그렇게 진윤슬은 문강찬에게 강제로 끌려갔다.차는 공항에서 출발하여 한 레스토랑에 멈춰 섰다.문강찬은 그녀를 억지로 룸으로 끌고 들어간 다음 싸늘하게 말했다.“실컷 놀았어?”지난 보름 동안 그의 책상 위에 진윤슬의 사진들이 가득 쌓였다. 처음에는 그녀의 사진뿐이었는데 나중에는 그녀와 방유권의 사진도 있었다.사진 속에서 그녀는 유난히 밝게 웃고 있었고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질투심이 불타오른 문강찬은 방유권에게 무슨 일이라도 만들어줄까 생각했었지만 결국 포기했다.진윤슬이 마음껏 쉬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리고 그녀가 돌아오자마자 바로 데려갔다.종업원이 음식을 가져오는 사이 진윤슬은 화장실에 다녀왔다.비행기에서 내려 곧장 이곳에 끌려온 터라 일단 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그런데 화장실에서 나온 후 뜻밖에도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를 만났다.“진 본부장님.”동료가 놀란 얼굴로 진윤슬을 부르자 진윤슬이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동료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전에 본부장님이 레시피를 팔아넘겼다고 누명을 쓴 일 있잖아요. 그거 조사 결과가 나왔어요. 글쎄 안병곤이 실험실의 연기 감지기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했다지, 뭐예요? 이미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받고 있어요.”진윤슬도 그 이름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평범한 연구원으로 별다른 존재감이 없던 사람이었다.여행을 간 사이 뉴스 기사를 보고 안병곤이 잡혔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녀가 레시피를 팔아넘겼다는 누명도 이미 벗겨진 상태였다.동료가 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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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안병곤의 아내가 복권에 당첨된 4억 원은 개인 계좌에서 이체된 돈이었다.그리고 계좌의 주인이 바로 진태호였다.진윤슬은 휴대폰에 뜬 증거들을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범인을 잡았다는 후련함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비록 진씨 가문 사람들과 정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큰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하지만 그들은 진세린을 위해 이렇게까지 잔인한 함정을 파놓고 그녀를 망가뜨리려 했다.진윤슬은 망설임없이 경찰에 신고했다.경찰서에서 진술을 마치자 진태호와 주아란이 도착했다.주아란은 복도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화를 내며 고함을 질렀다.“진윤슬, 감히 네 오빠를 경찰에 신고해? 미쳤어?”진윤슬은 고개를 들고 담담하게 말했다.“미친 건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죠.”그들이 진세린을 아끼는 방식은 거의 병적이었다.“당장 경찰한테 오해라고 해. 오빠 동생끼리 장난친 거라고, 진짜 신고한 거 아니라고 말해.”조급해진 주아란은 진윤슬에게 허위 신고를 했다고 말하라는 말까지 내뱉었다.지금까지 딸 진윤슬을 마음에 둔 적이 없으니 충분히 하고도 남을 만했다.진윤슬은 주아란의 손을 뿌리치며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진짜인지 아닌지는 경찰이 조사하면 다 알게 될 거예요.”“너... 이 재수 없는 년. 넌 우리 집에 그냥 빚 받으러 왔지?”흥분한 주아란이 막말을 퍼부었다.“그때 널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어.”진윤슬을 데려온 걸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 그냥 팔리읍에서 평생 살게 했어야 했는데.아니, 그곳에서 죽게 놔뒀어야 했다.진윤슬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주아란이 드디어 속마음을 드러냈다.그들은 진심으로 딸을 데려오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박순옥의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 신세를 지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진윤슬도 데려왔던 것이었다.진윤슬 같은 딸이 없기를 그들은 누구보다 바랐다.“후회해도 늦었어요.”진윤슬은 마음속 고통을 억누르며 차가운 가면으로 자신을 숨겼다.주아란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진태호의 걱정에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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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문강찬이 나타났다. 곧장 진윤슬에게 다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괜찮아?”진세린부터 챙기지 않은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강찬아, 드디어 왔구나.”주아란은 울먹이면서 드디어 기댈 언덕이 생겼다는 표정을 지었다.“윤슬이가 글쎄 태호가 레시피를 유출했다고 하지, 뭐야? 너희 사이가 그렇게 좋은데 태호가 그럴 리가 없잖아.”문강찬이 미간을 찌푸렸다.“레시피 유출요?”‘진범이 이미 잡혔는데 진태호가 왜 연루돼있어?’진윤슬이 휴대폰에서 증거를 꺼냈다.“증거 여기 있어.”주아란이 두 장만 보고 고개를 내저었다.“이거 조작된 거야...”그녀는 진태호의 결백을 굳게 믿고 있었다.그때 진세린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완벽하게 계획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윤슬이 알아내고 신고까지 했을 줄은 몰랐다.그녀는 문강찬의 눈치를 보면서 셈을 하기 시작하더니 먼저 다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오빠, 오빠랑 단둘이 할 얘기가 있어.”진윤슬이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그녀도 돌아갈 생각이었던 터라 아무 말 없이 바로 가버렸다.문강찬이 따라 나가려 하자 진세린이 막아섰다. 그녀의 두 눈이 한없이 부드러웠다.“오빠.”두 사람은 복도로 향했다.잠시 후 진세린이 흐느끼며 말했다.“다 나 때문이야. 내 잘못이야.”문강찬이 얼굴을 찌푸렸다.“천천히 말해.”진세린이 계속 말했다.“태호 오빠가 내가 맨날 우울해하는 걸 보고 회사에서 겪은 일을 알게 됐어. 계속 언니한테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했거든. 내가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더라고. 결국에는 이런 일을 저지르고 말았어.”문강찬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그럼 다 사실이란 말이야?”진세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문강찬의 얼굴이 순식간에 얼음처럼 차가워졌다.“이런 짓을 하면 내가 얼마나 큰 손해를 보는지 몰라서 그랬대? 게다가 윤슬이는 태호 친동생이잖아.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어?”이 순간 문강찬은 그제야 박순옥이 말했던 진씨 가문 사람들의 편애가 어떤 것인지 완전히 깨달았다.분노가 마구 치밀었고 진윤슬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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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진윤슬은 문강찬이 진태호를 돕지 않는다고 해서 고마워할 생각이 없었고 그 역시 그녀를 아끼는 척할 필요는 없었다.마침 차가 한 대 지나가자 진윤슬은 그 차를 타고 휙 가버렸다.문강찬은 씁쓸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강찬 오빠.”진세린이 주아란을 부축한 채 다시 나타났다. 두 여자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몸에 힘이 빠진 주아란이 넘어질 뻔하자 문강찬이 부축했다.그 틈에 주아란은 문강찬의 옷을 붙잡고 진태호를 도와달라고 애원했다.진씨 가문에 아들이라곤 진태호 하나뿐이라 가문의 미래가 그에게 달려 있기에 무슨 일이 있으면 안 되었다.“오빠, 곤란하면 안 도와줘도 돼.”진세린이 부드럽게 말했다.“언니랑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면 이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게. 언니가 또 화내면 안 되잖아.”그녀가 이해심 많은 모습을 보여도 문강찬은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다.“그렇다면 나한테 부탁해봤자 소용없어. 나보다 더 대단한...”그때 휴대폰이 울렸는데 긴급회의가 있다는 연락이었다.문강찬은 전화를 받으면서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주아란이 진세린의 손을 잡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강찬이가 방금 한 말 무슨 뜻이야? 더 대단한 뭐? 대단한 사람을 찾으라고 했어?”‘대단한 사람? 그게 누구지?’진세린이 단번에 알아차리고 급하게 말했다.“할머니예요.”대단한 사람... 진윤슬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사람... 할머니밖에 없었다.주아란이 무릎을 탁 쳤다.“그래. 할머니한테 가자.”박순옥이 입만 열면 진윤슬은 무조건 들을 것이다. 전에도 그랬으니까.주아란은 급히 사람을 시켜 박순옥을 데려오도록 했다.홀로 경찰서 의자에 앉아 있던 진세린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태호 오빠도 참 멍청해. 어떻게 자기 은행 계좌로 돈을 보내? 경찰이 못 찾을까 봐 그런 거야?’그리고 진윤슬은 또다시 판세를 뒤집었다. 남매간의 정을 내팽개치고 진태호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려 했다.만약 운이 더 좋아서 진세린까지 알아냈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그리고 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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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진윤슬이 소식을 들었을 때 할머니는 병원에 있었다.간병인이 당황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전화 왔는데 누군가 할머니를 데려갔고 외부와 연락하지 못하게 했다고 했다.그리고 할머니는 다람시에서 온 며느리와 싸우다가 화병으로 쓰러졌다고 했다.할머니가 응급실에 들어간 틈에 간병인이 몰래 기회를 엿보고 전화한 것이었다.진윤슬은 온몸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났다. 그들 모두 몰염치한 사람이라 처음부터 예상했어야 했는데.급히 병원으로 달려갔고 박순옥은 여전히 응급실에 있었다. 그리고 주아란과 진세린이 바싹 붙어 앉아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진윤슬은 성큼성큼 다가가 진세린을 잡고 냅다 뺨을 후려갈겼다. 진세린이 얼굴을 감싸 쥐고 비명을 질렀다.“진윤슬!”옆에 있던 주아란도 벌떡 일어나 호통쳤다.“진윤슬, 지금 뭐 하는 짓이야?”그러고는 팔을 높이 들어 진윤슬을 때리려 했다.진윤슬의 눈빛이 싸늘해지더니 주아란의 손목을 잡고 세게 밀어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주아란의 뺨도 때리고 싶었다.그들은 맞을 짓을 했다.주아란이 비틀거리다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우아한 사모님이 언제 이런 굴욕을 당한 적이 있었겠는가? 체면이고 뭐고 깎일 대로 다 깎였다.“진윤슬, 너 아주 막 나가는구나.”진윤슬의 눈에 서리가 내렸고 분노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만약 할머니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진태호를 평생 감옥에서 썩게 할 겁니다.”대체 얼마나 잔인한 사람이어야 연로한 할머니를 다람시까지 끌고 온단 말인가?심지어 할머니가 응급실까지 가게 만들었다.이 순간 진윤슬은 그들을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늙은 할망구 때문에 네 오빠를 감옥에 보내겠다는 거야?”주아란은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예전의 일들은 그냥 아이들 간의 사소한 다툼으로 여겼었다. 게다가 진윤슬의 차갑고 거만한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좀 더 길들여서 말을 잘 듣게 만들고 싶었다.해서 문제가 생기면 늘 진윤슬을 탓했다.하지만 지금 진태호가 감옥에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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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진성국은 아내를 끌어안고 진윤슬을 차갑게 쳐다보았다.“불효자식 같으니라고.”정말 골칫덩어리도 이런 골칫덩어리가 없었다.진세린이 얼굴을 감싸던 손을 내려놓자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아빠, 언니가 저를 때렸어요.”진성국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고 진윤슬을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예전에도 진윤슬을 싫어했는데 이젠 혐오할 지경이었다. 더 이상 감정을 숨길 필요도 없었다.어차피 진윤슬은 이미 문씨 가문의 버림을 받았고 문강찬과 이혼했으니 진씨 가문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진윤슬, 꺼져야 할 사람은 너야.”그는 아내와 막내딸을 감쌌고 다른 딸을 원수처럼 대했다. 그 모습에 진세린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진윤슬이 시선을 늘어뜨렸다.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흘러내려 차가운 얼굴이 반쯤 가려졌고 나머지 반쪽 얼굴에 비웃음이 서서히 떠올랐다.갑자기 무섭게 쏘아보자 진세린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아니나 다를까 진윤슬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진세린, 진태호가 감옥에 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야?”이 말은 진세린의 마음속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뒀던 비밀을 찔러버렸다.진성국은 미간을 찌푸리며 막내딸을 쳐다봤다.“세린아, 무슨 말이야, 이게?”주아란이 눈물을 글썽이며 진세린의 손등을 쓰다듬었다.“세린아, 혹시 너 뭐 알고 있는 게 있어?”진세린은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진윤슬이 일부러 이러는 걸 알고 있었다.진태호가 말하지 않는 한 그녀에게는 증거가 없었다.진세린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했다.“그럼 나도 감옥에 보내겠단 말이야? 오빠, 나, 엄마, 아빠를 다 싫어하니까 싫어하는 사람들을 싹 다 감옥에 보내려고?”진성국과 주아란의 마음속에 있던 의심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진윤슬이 이간질하고 있다고 단정 지었다.하마터면 속을 뻔했다.진성국이 크게 화를 냈다.“진윤슬, 계속 이렇게 소란을 피운다면 널 호적에서 파버리는 수가 있어.”예전에는 문강찬 때문에 그나마 웃는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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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병실, 진윤슬은 계속 할머니 곁을 지켰다.박순옥이 깨어났고 진성국과 주아란, 그리고 진세린도 옆에 있었다.진성국은 진태호가 경찰에 잡혀간 일을 꺼내며 진윤슬이 신고한 걸 나무랐다. 또 박순옥이 진윤슬만 너무 편애해서 저렇게 제멋대로인 성격으로 컸다고 원망을 늘어놓았다.그러자 박순옥이 못마땅해하며 그를 흘겨봤다.“태호랑 세린이는 너희 둘이 예뻐하잖아. 그런데 윤슬이는? 제대로 챙겨준 적이나 있었어? 내가 좀 편애하면 안 돼?”기분이 언짢아진 주아란은 몰래 진윤슬을 쏘아보며 빈정거렸다.“쟤는 대단한 애잖아요. 굳이 우리까지 신경 쓸 필요 있나요? 자기 일에 문제가 생겼는데 왜 애꿎은 태호를 탓하는지, 참.”주아란은 아들이 절대 잘못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우린 한 가족인데 여동생이 오빠를 감옥에 보낸다는 게 말이 돼요? 남들이 웃을까 봐 걱정이네요.”“그 입 다물지 못해요?”진윤슬이 주아란의 말을 가로채고 차갑게 쳐다보았다.“할머니 건강이 안 좋고 연세도 많으셔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걸 몰라요?”주아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어른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그게?”진윤슬이 맞받아쳤다.“당신이 어른이에요?”“난 네 엄마야.”“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날 신경 쓴 적이나 있어요? 없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내 엄마라고 하는 건데요?”가뜩이나 진씨 가문 사람들에게 아무 감정이 없는데 주아란이 할머니를 괴롭히고 또 깨어나자마자 쉴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진태호의 일을 들먹이는 걸 보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돈 몇 푼 던져주면 아이가 저절로 잘 큰다고 생각해요?”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정성은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건강하게 잘 자랐다.이 모든 건 할머니의 노고 덕분이었고 주아란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하여 그녀는 어른 행세를 할 자격이 없었다.주아란이 굳은 얼굴로 씩씩거렸다.“진윤슬, 넌 정말 배은망덕한 년이야. 이럴 줄 알았더라면 너 같은 딸이 없다고 생각할걸 그랬어.”“닥쳐.”박순옥이 엄하게 꾸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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