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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다시 너의 세계로: Chapter 81 - Chapter 90

100 Chapters

제81화

“사모예드랑 리트리버의 피가 섞인 강아지예요?”서하율이 물었다.“응.”“그럼 네모 엄마랑 네모 아빠 중에 누가 리트리버고 누가 사모예드예요?”정하준은 아이의 질문에 귀찮아하는 법도 없이 차근차근 얘기해주었다.“그런 아저씨도 잘 몰라. 아저씨네 집으로 왔을 때 네모는 이미 3개월이었어.”서이담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3개월 된 사모예드와 리트리버의 피가 섞인 강아지라면 그때 그녀가 빗속에서 주웠던 그 강아지였다.‘하지만 그때 분명히 나한테...’“난 강아지 싫어해.”“강보람, 만약 네가 그 강아지를 집으로 데리고 오면 휴지통에 버려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자신은 안 키운다며 단호하게 얘기했던 정하준이었는데 결국에는 자신의 집에서 잘 키우고 있었다.서하율은 문득 정하준의 차량 아래서 감자를 주웠던 일이 떠올랐다.“아저씨가 네모 데리고 온 거예요?”정하준은 그 질문에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아니. 누가 길에서 주웠다가 아저씨네 집에 버리고 갔어.”서하율은 그의 말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다시 네모를 바라보며 재밌게 놀아주었다.서이담은 정하준의 옆쪽에 서서 그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았다.정하준은 방금 강보람을 친구라고 표현하지도 않았고 전 여자 친구라고도 표현하지 않았다.‘당연한 거 잖아. 이제는 완전히... 남이니까.’“아저씨, 비를 피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집을 나서기 전, 서하율은 고개를 숙이며 정하준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서이담은 그런 딸을 보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정하준은 서이담을 한번 바라보았다가 다시 서하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아저씨가 집까지 데려다줄까?”“아니요.”서이담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번거롭게 뭐 하러 그래요. 지금은 비도 안 내리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오늘은 하율이 데리고 근처 동물원에 가기로 했어요.”서이담은 그렇게 말한 후 서하율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서하율은 엘리베이터에 오른 뒤에도 계속해서 정하준과 네모를 향해 손을 흔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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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월요일.서이담이 회사에 출근하자 김유린이 장난기 가득 어린 눈빛으로 그녀의 목을 가리켰다.“어머, 그거 뭐야? 내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사실 서이담은 스카프를 두를까도 생각했지만 붉은 기가 많이 가라앉았기에 그럴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결국에는 들켜버리고야 말았다.“그런 거 아니니까 일이나 해.”“설마 모기한테 물렸다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지? 지금은 겨울이야. 믿어주는 데도 한계가 있어.”김유린이 은근한 눈빛으로 보내며 서이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다음부터는 남자 친구한테 조심하라고 해. 이건 너무 보이는 곳만 물어 뜯어놨잖아. 컨실러 빌려줄 테니까 어떻게 커버해 좀 해봐.”김유린은 그렇게 말하며 가방에서 컨실러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고마워.”그때 백서연의 사무실 쪽에서 김유린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나 갔다 올게.”“응.”10분 후, 다시 돌아온 김유린은 시든 꽃처럼 생기가 하나도 없었다.그 모습을 본 이세은이 물었다.“언니, 무슨 일이에요? 백 팀장님 왜 저렇게 화나신 거래요?”“남자 친구랑 대판 싸운 것 같아.”김유린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화를 내면서 서류를 막 집어 던지길래 주워주려고 했더니 나한테 큰 소리로 나가라고 하는 거 있지.”“어머, 진짜요?”“사무실에서 나오기 전에 백 팀장님이 어머니랑 통화하는 거 슬쩍 들었는데 남자 친구가 연수 때문에 지금 성운시에 없나 봐. 그래서 백 팀장님 생일도 챙겨주지 못했대.”김유린의 말에 서이담의 손이 몇 초간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그날 이후, 김유린은 백서연의 사무실을 오가며 자신이 들은 정보를 전부 다 서이담에게 공유해 주었다.정하준은 지금 한성시에 있다고 한다....병원.서이담은 오늘 서하율의 일로 병원에 왔다.황준기는 서하율의 차트를 한번 확인하더니 대뜸 서이담을 향해 이런 질문을 했다.“혹시 하준이 친척이에요?”서이담은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했다.“아니요. 왜 그렇게 물으세요?”황준기는 차트를 내려놓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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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정하준은 의사들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그저 미소만 지었다.“그럼 교수님께서 수술해 주시는 거로 알고 이만 가보겠습니다.”“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던 친구예요.”서이담의 입에서 친구라는 말이 흘러나왔다.“그럼 꽤 어릴 때부터 연애한 거네요?”황준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서이담은 인망 높은 교수가 아닌 꼭 자기들 또래와 대화하는 것 같았다. 만약 그녀에게 말주변이 있었으면 아마 지금쯤 진료실은 수다의 장이 되어있었을 것이다.“교수님, 농담은 그만해주세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저한테는 6살 난 딸이 있어요.”황준기는 뭐가 문제냐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아이가 있으면 연애 못 합니까? 미리 말하지만 나는 만약 두 사람이 연애한다고 하면 적극 찬성이에요.”‘하준이가 나한테 부탁까지 했는데 잘 안되면 내가 곤란하지.’“저는 그런 게...”“그럼 이만 심초음파 하러 가보세요. 내가 미리 얘기해 뒀으니까 아마 금방 할 수 있을 겁니다.”황준기가 그녀의 말을 자르며 얼른 가보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서이담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진료실에서 나와 심초음파 하는 곳으로 향했다. 황준기의 말대로 그녀는 바로 다음 번호를 받았다.서이담은 아이와 제일 앞쪽 벤치에 앉아 있다가 초음파실에서 나온 사람을 보고는 아주 잠깐 멈칫했다.“할머니.”먼저 그쪽을 향해 인사를 건넨 건 서하율이었다.정기 검진을 받고 나온 최명희는 서하율의 목소리에 활짝 웃으며 가까이 다가왔다.“하율아, 왜 병원에 있어? 어디 아파?”서하율은 그 질문에 대답 대신 서이담을 올려다보았다.서이담의 시선은 최명희가 아닌 그녀와 함께 온 사람들에게로 향해 있었다. 한 명은 도우미인 한씨 아주머니였고 나머지 한 명은 강보람을 쓰레기 보듯 봤던 주다빈이었다.지난번 구준서의 생일 파티에서 주다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건 그녀가 딸을 따라 Y 국으로 갔기 때문이다.주다빈과 정도현의 딸인 정소연은 브루클리 음대 졸업생으로 5년 전에 데뷔해 지금은 월드 투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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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한씨 아주머니는 별다른 의도 없이 한 말이었지만 듣는 입장은 달랐다.서이담은 아주머니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겉보기에도 주다빈과 그녀는 매우 달랐으니까.“그래요? 이담 씨와는 앞으로 좋은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네요.”주다빈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예의상 하는 말이 분명했다.최명희가 대놓고 서하율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정색하면서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하지만 꽤 신경이 쓰였던 건지 주다빈의 시선이 다시금 서이담의 얼굴로 향했다. 피부가 깨끗하고 전체적으로 참한 것이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상이었다.“그러고 보니 그러네.”최명희가 웃으며 주다빈과 서이담을 번갈아 보았다.“코끝에 난 점은 미인 점이라고 하더니 둘이 똑 닮았어.”서이담은 별다른 대꾸 없이 그저 미소만 지었다. 그녀의 점은 임신하고 난 뒤에 생긴 것이라 그다지 짙은 점이 아니었다.컨실러로 커버하면 금방 사라질 점이었다.그날 저녁.침대에 누운 서이담은 낮에 최명희 일행을 만났던 것이 떠올라 휴대폰으로 정소연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정소연은 팔로워가 천만 명이 넘었다. 5분 전에 막 올라온 기사를 확인해 보니 성운시에서 열리는 연주회의 티켓팅이 시작되자마자 전석 매진됐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서이담은 그녀의 게시물을 보며 저도 모르게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이 떠올랐다.그녀는 정소연 같은 부류의 사람을 보면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보다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이런 사람들과 엮여서 좋았던 기억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서이담은 할 수만 있다면 구질구질했던 과거를 머릿속에서 싹 다 지워버리고 싶었다.그때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리며 그녀의 잡념을 끊어냈다.발신자는 외할머니였다.“보람아, 가영이 약혼식 올린다고 한 거 들었어? 영일이가 너한테 전화를 해봤는데 받지 않는다면서 나한테 대신 연락해 달라고 부탁하더라. 시간 되면 같이 밥이라도 먹을까?”서이담은 자고 있는 서하율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저는 못 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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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평상에 앉아 있는 인원이 전과 달리 조금 줄어든 것을 보니 근 몇 년간 산 사람은 살고 간 사람은 간 모양이었다.“아가씨, 누가 찾으러 온 거야?”어르신 중 한 명이 서이담을 보며 물었다.서이담은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양손 가득 선물을 쥔 채 익숙한 골목으로 들어갔다.서금순의 집은 빨간색 대문이라 알아보기 쉬웠다.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서금순이 빨래하는 것이 보였다. 옆에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나른하게 누워있었다.손녀를 본 서금순은 벌떡 일어나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오면 온다고 얘기를 하지!”서이담은 손에 든 것을 내려놓고 외할머니를 꼭 끌어안았다.“세탁기 사용하시라니까. 이렇게 추운 날에 왜 손빨래를 하고 있어요.”“빨 거 두 개밖에 없어서 그랬어.”서이담은 전보다 더 쭈글쭈글해진 서금순의 손을 보며 괜히 마음이 아팠다.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흐르는 것 같았다.그녀가 4살이었을 때는 아직 할아버지도 이 세상에 있었고 송영일도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으며 남영숙도 늘 미소 짓는 얼굴로 그녀를 대했었다.가족끼리 평상에 둘러앉아 식사하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아이의 눈에는 매우 즐거워 보였다.서이담은 옛날 생각을 하며 서금순에게 오늘 밤은 이곳에서 묵고 가겠다고 했다.“너도 가영이 약혼식에 왔으면 좋았을 텐데. 가영이 걔, 엄청 많이 변했어. 약혼자도 훤칠하니 멋있더라.”서이담은 송가영 일가에 관해서는 얘기하고 싶지 않았기에 대충 대답해 준 후 이부자리를 펴기 위해 자개장 쪽으로 다가갔다.서금순은 그녀의 태도를 보고는 눈치껏 화제를 돌렸다. 오래간만에 온 손녀였으니까.서이담은 그녀의 딸과 비슷한 면이 매우 많았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딸의 얼굴이 매우 보고 싶었다.“보람아, 재현이랑은 어때? 괜찮아?”서이담은 그때 서금순을 안심시키기 위해 진재현과 결혼했다고 얘기했다. 서로 목적이 있어 결혼한 거라는 얘기는 빼고 말이다.서이담은 결혼했을 당시의 약속대로 병상에 누워 계시는 진재현의 아버지를 찾아뵙고 인사를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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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얼른 자.”서금순은 말을 마친 후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사진은 자신의 베개 밑에 집어넣었다.서이담은 갑자기 쌀쌀맞아진 그녀의 말투에 고개를 갸웃했다가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집을 떠나버린 송수빈의 사진을 보게 됐으니 그립기도 하고 또 그녀가 원망스럽기도 한 게 분명했다.“할머니도 잘 자요.”서이담은 그렇게 말하며 이불을 덮고 누웠다.다음 날 아침.서금순은 서이담이 이만 가려고 하자 대뜸 카드 한 장을 건넸다.“네가 나한테 보냈던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전부 다 모아뒀어. 이 돈을 하율이 수술비에 보태. 그래도 부족하면 내가 목돈도 너한테 줄게.”서이담이 받을 수 없다며 밀어내자 서금순이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넣어둬. 아니면 영숙이가 와서 가져갈 거야.”서이담은 그 말에 어쩔 수 없이 카드를 건네받았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녀는 은행에 들러 잔액을 확인했다. 정말 한 푼도 쓰지 않고 전부 다 모아놓고 있었다.순간 눈물이 핑 돌고 코끝이 찡해 났다.“하율이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그때는 할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와야겠어.”..한성시.오전 10시, 심장외과의 대형 수술이 진행되었다. 수술은 심장외과 일인자인 김종찬이 직접 집도했으며 여러 대형 미디어에서 생중계한 가운데 7시간이라는 긴 수술이 무사히 마무리되었다.수술실 밖으로 나온 김종찬은 딱 5분 정도의 인터뷰를 한 후 나머지는 팀원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뒤쪽으로 빠졌다.그러고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정하준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아저씨, 그간 잘 지내셨어요?”“나야 뭐 똑같지. 저녁에 우리 집으로 와. 집사람이 너 많이 보고 싶어 해. 여진이도 너 온다고 하니까 구체적으로 언제 오냐며 난리야.”한성시의 김씨 가문은 대대로 의사를 배출해 낸 훌륭한 가문이다. 김씨 가문의 최고 어르신인 김택수는 젊었을 때 군부대의 의사였고 정하준의 외할아버지와 친분이 두터웠다.그 인연이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져 정하준은 꼭 일 년에 한 번 김씨 가문을 찾아왔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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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김여진은 정하준의 마음이 아닌 몸부터 갖기로 마음먹었다.‘아무리 오빠라도 나랑 자고 나면 더 이상 나한테 쌀쌀맞게 굴지 못할 거야. 오빠네 부모님들도 당장 우리를 결혼시키려고 하겠지.’그녀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다 백서연 때문이었다.백씨 가문과 정씨 가문이 정략결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버렸으니까. 그래서 백서연보다 먼저 정하준을 갖고 싶었다.정하준은 지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수면이 부족했던 차에 술까지 마셔버렸으니 당연한 결과였다.게다가 그는 원래 어디를 가든 항상 어느 정도의 적응 기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정하준은 취기에 몸을 맡긴 채 가만히 누워있다가 짙은 향수 냄새가 점점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눈앞에서 다시금 서이담의 얼굴이 아른거렸다.하지만 이건 서이담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었다.서이담은 좀 더 깨끗하고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여자였다. 즉 그 말은 지금 그의 얼굴 쪽으로 입술을 들이밀고 있는 여자는 서이담이 아니라는 소리였다.정하준은 그 생각에 정신을 번쩍 차리며 손으로 김여진의 입술을 힘껏 밀어냈다.“오빠...”김여진은 수치스럽기도 하고 또 속상하기도 했다. 정하준의 눈빛이 평소대로 돌아온 걸 보고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오빠, 나는 안 되는 거야? 나는 5살 때부터 계속 오빠만 바라봤어. 그런데 왜 나는 한 번도 고려 안 해줘?”“나는 널 한 번도 여자로 본 적 없어. 나는 늘 너를 대할 때 소연이를 대하는 것처럼 대했어. 조카 대하듯이 대했다고.”“조카라니...”김여진의 눈가가 단숨에 빨갛게 변했다.정하준은 휴대폰을 꺼내 들고는 택시를 불렀다.“택시 불렀으니까 이만 나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널 여자로 본 적 없어.”정하준이 줄곧 가만히 있었던 건 눈앞에 있는 여자가 서이담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해? 내가 왜 오빠 조카야! 오빠랑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왜 내가 오빠 조카야! 여자로 본 적 없다고? 그럼 이번 기회에 똑바로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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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정하준도 알고 있다. 유부녀에게 이런 마음을 갖는 건 잘못된 것이라는 걸.하지만 다 알면서도 자꾸 그녀가 눈에 들어오고 그녀가 보고 싶었다.이유는 그도 알 수 없었다.단순히 얼굴이 예뻐서? 아니, 그건 이유가 되지 않았다. 서이담보다 예쁜 여자는 널리고 널렸으니까. 당장 김여진만 봐도 예쁜 얼굴이었다.그러면 역시 강보람을 잊지 못하는 건가?강보람은 어느 날 갑자기 그의 곁에서 사라져 버렸다. 강보람은 그와 연애했을 당시의 모든 물건을 전부 다 그에게 돌려준 채 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먼저 협박한 것도 그녀였고 먼저 미련 없다는 듯 떠난 것도 그녀였다.강보람이 사라진 후, 대뜸 그녀와 비슷한 느낌의 여자가 나타났다.겉모습은 어디 하나 닮은 구석이 없었지만 특유의 그 느낌이 너무 비슷했다.나긋나긋하게 말하는 것도 비슷했고 억울하면 눈이 빨개지는 것도 비슷했고 쑥스러운 듯이 웃는 것도 비슷했으며 심지어는 머리카락을 넘기는 모습도 비슷했다.정하준은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욕망에 굶주린 늑대를 달래는 방법은 식은 죽 먹기였다.정하준은 하늘색 커튼 쪽으로 다가가더니 마치 그녀가 앞에 있는 것처럼 아주 짙은 눈빛으로 커튼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그에게는 일할 때 사용하는 전화번호 외에 아무도 모르는 개인용 전화번호가 하나 더 있었다.그는 개인용 전화번호로 서이담에게 문자를 보냈다.[다른 남자 앞에서 하늘색 니트 입지 마. 그리고 다른 남자한테 웃어주지 마.]같은 시각.문자를 받은 서이담은 깜짝 놀라며 휴대폰을 멀리 던져버렸다.말투로 볼 때 남자임이 틀림없어 보였다.서이담은 서둘러 커튼을 친 후 현관문 쪽 CCTV를 확인하며 빠르게 문을 이중 잠금 해버렸다. 그러고는 다시 침대로 와 낯선 번호를 차단했다.다음날.서이담과 김유린, 그리고 이세은은 오늘도 식당으로 가 함께 점심밥을 먹었다.밥을 먹던 도중, 김유린이 어젯밤에 일어난 해프닝을 얘기해주었다. 내용을 요약해 보면 그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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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서이담은 그날 이후 크게 신경 쓸 만한 일이 없었기에 문자 일도 차츰 잊어버렸다.하교 시간이 되고 서하율을 데리러 가면 가끔 구준서와 마주쳤다.구준서를 데리러 오는 사람은 어느 날은 한씨 아주머니였다가 어느 날은 운전기사였다가 또 어느 날은 정예진이었다.거기에 정하진은 없었다.구준서는 멀리 있는 서이담을 보더니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힘차게 달려왔다.서이담은 보름 동안 살이 조금 빠진 듯한 구준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준서, 안녕?”“담이 이모, 우리 만둣국 먹으러 가요. 지난번에 저랑 같이 만둣국 먹으러 가겠다고 약속했잖아요.”구준서의 오늘의 보호자는 정예진이었다. 정예진은 차에서 내린 후 서이담과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웃었다.“얘가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 아무것도 안 먹어요. 꼭 연애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정예진은 그렇게 말하며 서이담의 옆에 있는 서하율을 바라보았다.서하율은 정말 정예진과 많이 닮아 있었다. 아마 정예진이 아이를 안아 들고 거리를 나가면 바로 사람들이 딸이 참 예쁘다며 말을 걸 것이다.정예진은 아직도 구준서가 좋아하는 사람이 서하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구준서는 침대 위에서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러브레터를 작성했다. 악필이라 뭐라고 썼는지 엄마인 그녀조차 제대로 알아보기 힘이 들었지만 맥락상 어떤 여자애를 좋아하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 증거로 최근에는 치킨도 안 먹고 불닭볶음면도 안 먹기 시작했으니까.정예진은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서이담을 향해 말했다.“그럼 같이 만둣국 먹으러 가죠. 타세요.”서이담은 그 말에 알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서하율은 차에 올라탄 후 예의 있게 고개를 숙이며 정예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고맙습니다.”“하율이는 어쩜 인사성도 밟아? 귀여워.”정예진은 운전하며 계속 뒷좌석에 앉은 서하율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사실 그녀는 줄곧 딸을 원했었기에 자신과 어딘가 닮은 듯한 서하율이 너무나도 예뻐 보였다.“엄마한테 들었어요. 아이 일 때문에 병원에 갔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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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그런데 생각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진동음이 울렸다.[정하준: ?][정하준: 무슨 일이에요?]서이담은 그의 문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일단 모른 척하기로 했다....정예진은 빨간불에 걸린 틈을 이용해 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다.[누나가 방금 친구를 한 명 사귀었는데 그 집 딸이 심장병이래. 그래서 네 번호 줬으니까 친구 추가 오면 수락해.]정예진은 정하준의 성격상 바로 무시해 버릴까 봐 한마디를 더 보탰다.[꼭 받아. 알았지? 수락 안 하면 가만 안 둘 거야.]하지만 정하준은 그녀의 문자를 두 개 다 무시해 버렸다.정예진은 음성 메시지로 쏘아붙이고 싶은 걸 꾹 참으며 인내심을 갖고 다시 타자했다.[내 친구랑 그 집 딸이 지금 내 뒷좌석에 앉아 있어. 이따 넷이서 친구네 집 근처에서 만둣국 먹을 거야. 그 집 딸이 얼마나 귀여운지 알아? 준서랑 같은 반 친구이기도 해. 참, 너는 준서한테 좋아하는 여자애 있는 거 알았어? 요즘 애가 다이어트를 하질 않나 향수를 뿌리지 않나 아주 난리도 아니야.]장문의 문자를 보냈건만 정하준은 여전히 아무런 답장도 보내오지 않았다.반면 서이담의 휴대폰은 답장을 원하고 있지 않는데도 계속 답장이 왔다.[정하준: 뭡니까?][정하준: 계속 내 말 무시하면 그때는 전화할 겁니다.]서이담은 그 말에 얼른 답장을 보냈다.[미안해요. 손이 미끄러져서 잘못 보냈어요.][정하준: 아이의 상태에 관해 물어볼 거 있으면 화요일이나 목요일에 진료실로 찾아와요.]서이담은 남자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왜 하필이면 그때 손이 미끄러져서는! 그것도 그렇게 귀여운 이모티콘을...’서이담은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화면을 꺼버렸다.그런데 2분 후, 휴대폰에 다시금 메시지가 날아들었다.[정하준: 토요일은 예약이 다 차서 안 될 것 같아요. 혹시 급한 거면 점심시간에 따로 시간 내줄게요.][아니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요.]서이담은 딱딱한 말투로 답장하고는 휴대폰을 가방에 넣어버렸다....서이담은 정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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