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진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에 서명인은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시간 없으시면 사모님을 잘 모시라고 재무팀에 얘기해 두겠습니다.”하도진은 펜을 돌리다가 덤덤한 눈빛으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비서를 바라보며 대수롭지 않은 듯이 물었다.“서 비서, 입사한 지 얼마나 됐지?”하도진은 그를 자르려는 것일까? 그가 무슨 말실수를 한 것일까?서명인의 마음을 밝혔던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 이제 곧 고향으로 돌아가서 농사해야 할지도 몰랐다.서명인은 식은땀을 닦으며 횡설수설했다.“졸업한 뒤 바로 입사해서 5, 6년쯤 됩니다.”하도진이 한정판 펜을 책상 위로 던지며 덤덤히 말했다.“딱 한 번 말할게. 나는 나와 그 여자의 관계가 밝혀지는 걸 원하지 않아. 그러니 앞으로 주의하도록 해.”서명인은 고개를 힘껏 끄덕인 뒤 도망치듯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곳에 1초라도 더 있으면 잘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민하윤은 주소에 적힌 대로 에스티 본사에 도착했다. 정장을 입은 직원들은 사원증을 찍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이곳 직원이 아닌 민하윤은 프런트 데스크 직원에게 질문을 받았다.“혹시 예약하셨나요?”민하윤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휴대전화를 꺼내 고개를 숙이고 타자했다.[안녕하세요. 전 태유 은행 본점 신용대출팀 민하윤 대리입니다. 오늘 오전 열 시 재무팀 차장님과 신용대출 자금 업무와 관련하여 회의하기로 했습니다.]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민하윤의 행동은 아주 이상했다. 말하지 않고 휴대전화로 타자를 해서 소통하니 말이다.얼굴은 예쁜데 말하지 못하니 너무 안타까웠다.프런트 데스크의 두 직원 모두 동정의 눈길을 보내며 서둘러 말했다.“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전화해서 확인해 볼게요.”민하윤은 고마운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그녀는 검은색 코트를 여미면서 무료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그러다 갑자기 프런트 데스크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얼굴도, 분위기도 연예인 뺨치는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자 프런트 데스크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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