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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한다고 말해줘: Chapter 41 - Chapter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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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화

침실 안 온도가 점점 더 높아졌다. 민하윤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눈앞의 하도진은 마치 사냥을 즐기는 것처럼 서서히 민하윤에게로 접근했다.이내 하도진이 민하윤을 번쩍 안아 들어 침대 위로 던졌다.민하윤은 겁먹은 얼굴로 하도진을 바라보았다. 민하윤의 손톱이 하도진의 손목에 깊이 파고들었고 저항하는 와중에 빨간 흔적이 남았다.“민하윤, 지금 날 할퀴었어?”하도진은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한 손으로 넥타이를 잡아당기면서 민하윤의 손목을 움켜쥐었다.[밖에 어른들 계세요.]민하윤이 황급히 수화를 썼다. 그녀는 하도진이 이해하지 못할까 봐 다급히 손가락으로 침실 문을 가리켰다.하도진은 그런 민하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에 힘을 주면서 또박또박 말했다.“안 들릴 거야.”뜨거운 숨결이 귓가에 닿자 민하윤은 본능적으로 피하다가 실수로 코끝이 하도진의 턱에 새로 올라온 수염을 스쳐 간질간질함을 느꼈다.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민하윤은 머릿속이 텅 비었다. 심지어 하도진이 어떻게 자신의 수화를 이해했는지 생각해 볼 틈도 없었다.두 사람은 아주 야릇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 민하윤이 두 손으로 하도진의 목을 감싸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하도진이 고개를 숙이며 민하윤에게 키스하면서 한 손으로 민하윤의 허리를 쥐고 다른 손으로 침대를 짚었다. 그가 다음 행위를 이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벨 소리가 울리며 분위기를 깼다.조금 전까지 욕망에 휩싸였던 하도진은 발신자를 확인한 순간 정신을 차렸다. 그는 차가운 얼굴로 민하윤에게서 떨어지더니 낮은 목소리로 참을성 있게 말했다.“주소 보내줘요.”전화 너머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혼자 있으면 무섭다고요?”...“금방 갈 테니까 거기서 가만히 기다려요.”...민하윤은 조금 전의 몽롱했던 감정 속에서 벗어나며 티 나지 않게 자신의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조용히 침대 위에 앉아 심각한 표정의 하도진을 바라보았다.“먼저 자. 나는 일 때문에 잠깐 나갔다 와야 해.”하도진은 옷장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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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하씨 가문은 매년 제사를 지냈고 하지선은 매년 제사 전에 귀국하여 가족들을 만났다. 안타깝게도 큰형과 둘째 형은 몇 년 전 병으로 돌아가셨기에 하진석에게는 여동생 하지선만 남게 되었다. 그래서 하지선이 귀국하여 그들을 보러 오는 것은 하씨 가문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그렇게 40년이 흐르니 손주들도 모두 성인이 되어 가정을 이룰 나이가 되었다.이번에 하지선은 자신의 가장 어린 손녀 소피아를 데리고 돌아왔다. 소피아는 13, 14살쯤 돼 보였고 이국적인 얼굴에 귀여운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으며 아주 힙한 데님 셋업을 입고 있어서 굉장히 사랑스러웠다.어른들은 서로 안부를 물은 뒤 자리에 앉았고 사업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다. 렉스톤의 펀드나 해외 시장 등 모두 민하윤이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이었다.젊은이들은 식탁의 끝 쪽에 앉아 있었다. 민하윤도 그곳에 얌전히 앉아 있었고 하지선이 이따금 말을 걸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민하윤은 하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가 수화를 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고, 말을 못 하는 그녀를 받아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그래서 민하윤은 자신의 존재감을 최대한 낮추려고 했고 앞에 놓인 음식도 거의 먹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건드려서 고개를 돌려 보니 소피아였다.“언니, 저랑 같이 여기서 나갈래요?”소피아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민하윤을 향해 눈을 찡긋거렸다.민하윤은 살짝 당황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민하윤은 자신을 바라보는 하도진의 시선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민하윤은 소피아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 호기심이 많은 소피아는 이것저것 살펴보고 만져보았다. 예스러운 인테리어와 가구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소피아는 이따금 질문을 던졌다.“언니, 이건 뭐예요?”민하윤이 휴대전화 메모장에 글을 적었다.[청화백자야.]“이건요?”소피아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말 모양의 도기가 있었다. 민하윤이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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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하도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얼마 남지 않은 인내심까지 모두 사라진 그는 침대 옆으로 걸어가서 손을 뻗어 소피아의 옷 뒤쪽을 잡아 소피아를 침대 밖으로 던졌다.하도진은 소피아가 한 말들이 마음에 안 들었다. 게다가 소피아는 그와 민하윤의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했다.눈치 빠른 소피아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뒤 재빨리 민하윤의 품속으로 파고들면서 두 손으로 민하윤의 목을 꼭 끌어안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도와줘요!”민하윤은 웃음을 참으며 두 팔 벌려 소피아를 안았다. 세 사람은 그렇게 뒤엉키게 되었고 방 안에서는 소피아의 까르륵거리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아주머니가 위층으로 올라와 문을 두드리며 그들에게 저녁 식사하러 내려오라고 전했다.소피아는 말이 많았다. 평소 하씨 가문은 굉장히 조용한 편이었고 식사를 할 때도 이따금 수저와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는데 소피아가 오자마자 집 안에 활기가 가득 흘러넘쳤다.“언니, 저 한옥도 가보고 싶고 놀이공원도 가보고 싶고 등산도 하고 싶어요. 언니, 저랑 같이 닭갈비랑 족발, 솜사탕 같이 먹어줄래요?”소피아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본 민하윤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성급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채선화는 말을 못 하는 민하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하지선 앞이라 차마 뭐라고 할 수 없었기에 소피아를 달래며 말했다.“이모 대학교 사학과에 훌륭한 언니, 오빠들이 많아. 그 언니, 오빠들한테 소피아 명원 구경 시켜주라고 할게. 그 언니, 오빠들이 옆에서 설명도 다 해줄 거야. 하윤 언니는 너한테 말로 설명해 줄 수가 없어.”마지막 말이 무딘 칼이 되어 민하윤의 마음을 서서히 찔렀다.소피아는 고민하지도 않고 바로 거절하며 단호히 말했다.“전 하윤 언니랑 같이 갈 거예요. 그리고 설명 같은 건 가이드가 하는 일이잖아요. 하윤 언니는 가이드가 아니예요.”“하윤이는 너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할 거야. 그리고 안전하지 않아.”채선화는 비록 온화한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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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물소리가 멈추자 민하윤은 황급히 눈을 감으며 깊이 잠든 척했다. 그러다 갑자기 옆 침대가 아래로 꺼지는 기분이 들면서 상큼하면서도 시원한 향이 느껴졌다.그들은 똑같은 샴푸와 바디워시를 써서 몸에서 나는 향도 똑같았다. 민하윤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간질거렸지만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눈을 감았다.“나 등지고 있지 마. 그거 예의 없는 짓이야.”눈을 감은 하도진이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민하윤은 미간을 살짝 찡그렸지만 하도진의 말대로 얌전히 몸을 돌렸다.“네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하도진의 짓궂은 말에 민하윤은 얼굴이 빨개지며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하도진은 이목구비가 입체적이었고 두 눈동자는 다정해 보였으며 눈꼬리는 살짝 올라가서 차가운 느낌도 들었다.민하윤의 시선이 자기도 모르게 아래로 향했다. 조금 어두운 노란빛 조명 아래서 민하윤은 하도진의 붉은 입술, 윤곽이 뚜렷한 인중을 보았다. 민하윤은 처음으로 평온한 마음으로 하도진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소피아가 한 말 중 한 가지는 정확했다. 하도진은 확실히 매우 잘생겼다.민하윤은 졸음이 쏟아져 서서히 눈을 감았다. 잠시 뒤 하도진이 속눈썹을 파르르 떨다가 눈을 떠서 민하윤을 바라보았다.하도진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민하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맨얼굴의 민하윤은 깐 달걀처럼 피부가 좋았고 단정한 눈썹, 긴 속눈썹, 예쁘게 휘어진 눈꼬리, 작고 오뚝한 코, 붉은 입술을 가졌다.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 하도진은 목젖이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동안 하도진은 금욕적인 생활을 했고 전 여자 친구 고은율과 만날 때도 갑자기 욕망이 불타오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그러나 민하윤을 볼 때면 늘 자기도 모르게 욕구가 생겼다.하도진은 팔을 뻗어 민하윤을 품에 안고서 깊이 잠든 민하윤의 고른 숨소리를 들었다. 민하윤을 품에 안으니 괜히 즐거웠다.하도진은 조심스럽게 앞머리가 살짝 흐트러진 민하윤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그리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빨갛고 부드러워 보이는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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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민하윤은 그런 노골적인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하도진에게서 벗어나 침대에서 일어났다.“뭐가 그렇게 급해?”하도진은 팔짱을 끼고서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민하윤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손을 들어 자신의 옆을 톡톡 쳤다.“나 피곤하니까 나랑 조금만 더 같이 자자.”민하윤은 매서운 눈빛으로 하도진을 노려본 뒤 메모장을 켜서 글을 적었다.[오늘은 중요한 날이에요. 집안 어른들께서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요.]제사는 하씨 가문처럼 대단한 가문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고 젊은 세대인 그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제사 준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하도진은 흥미 없는 표정으로 불만스레 혀를 찼다.“민하윤, 너 너무 재미없다.”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하도진은 이내 침대에서 일어나 옷장 안에서 정장과 넥타이, 손목시계를 꺼내서 꼈다. 늘씬한 키에 넓은 어깨, 얇은 허리를 가진 하도진은 우월한 몸매의 소유자였다.검은색의 맞춤 정장을 입은 하도진은 굉장히 멋있었다. 옷뿐만 아니라 하도진이 내뿜는 분위기까지 더해지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특유의 냉정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하도진은 들고 있던 넥타이를 민하윤에게 건네면서 넥타이를 매달라는 듯이 턱을 살짝 들었다.민하윤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으나 얌전히 그에게서 넥타이를 건네받은 뒤 발꿈치를 들며 넥타이를 매줬다. 하지만 어색하고 서툴러서 넥타이가 삐뚤빼뚤했다.민하윤은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손을 움직여 넥타이를 풀더니 고민 가득한 얼굴로 다시 시도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하도진이 민하윤의 손목을 잡고 그녀에게 넥타이를 매는 방법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다.민하윤은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심장이 쿵쾅대는 걸 느꼈다. 아침 햇살 아래서 이렇게 그와 친밀한 행위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이제 알겠어?”하도진은 한 손을 주머니에 꽂고 눈을 나른하게 뜬 채로 민하윤을 바라보면서 일부러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다음에 잘하는지 확인할 거야.”민하윤은 덤덤한 표정으로 살며시 고개를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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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민하윤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메모장에 글을 적었다.[배불러요.]하도진도 더는 설득하지 않고 계속해 아침을 먹었다. 초조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머니들이 미리 준비한 도시락과 과일들을 차에 실을 때야 비로소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는 주머니 안에 초콜릿을 몇 개 넣었다.세 노인은 소피아를 데리고 검은색 레인지로버에 앉았고 또 다로 벤틀리 두 대를 준비했다. 그중 한 대에는 하준혁 부부가 앉았고 하도진은 본인이 직접 운전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하도진의 아내인 민하윤도 당연히 하도진과 같은 차를 탔다.소피아는 그걸 보더니 자기도 하도진의 차에 앉겠다고 투정을 부렸고 어른들의 허락이 떨어지자 곧바로 즐겁게 하도진의 차로 달려갔다.명원의 남운산은 터가 매우 좋았는데 에스티가 그 비싼 땅을 소유했다. 그들은 20년 전 그곳을 하씨 가문의 묘지로 만들었고 외부에 개방하지 않았다.민하윤은 자신이 하씨 가문의 재력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뿌리가 깊은 가문의 세력은 그녀의 상상보다 훨씬 강대할지도 몰랐다.차는 남운산 중턱에 멈춰 섰다. 푸른 소나무가 구불구불 이어진 돌계단 양옆에 줄지어 서 있었고, 고개를 들어도 산 정상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흰 구름에 둘러싸인 것만 같았다.건장한 체구의 경호원들이 도시락과 과일들을 챙겨 차에서 내렸고 노인들은 지팡이를 짚으면서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산을 올랐다.소피아는 매우 즐거운지 돌계단 위를 깡충깡충 뛰었다. 잠시 뒤 소피아는 어른들보다 멀리 앞서가서 풍경을 감상하며 등산했다.민하윤은 얌전히 노인들의 뒤를 따르며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조용한 산속에서는 이따금 새의 울음소리, 바람에 나뭇잎들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하윤은 이내 체력을 소진했다.반대로 노인들은 체력이 상당히 좋아서 걷다가 쉬기를 반복하면서도 힘들어하지 않았고 그렇게 민하윤은 점점 뒤처지게 되었다. 민하윤은 아침에 밥을 든든히 먹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그러다 하도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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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하도진은 조용히 민하윤을 바라보았다. 덤덤한 표정이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민하윤은 하도진이 수화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생각해 그동안 억눌러왔던 억울한 감정을 전부 쏟아냈다.[우리 양어머니는 아주 좋은 분이에요. 저한테는 최고로 좋은 엄마였어요. 17살 때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저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어요. 그리고 양아버지가 치료를 받게 하려면 민씨 가문으로 돌아가야만 했어요. 친부모님은 제가 말을 못 한다고 싫어했고 입양한 딸을 더 좋아했어요. 그동안 저는 엄마의 묘지에 찾아가 볼 수가 없었어요. 제 친부모님은 절 사랑하지 않으면서 제가 그분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용납하지 못했거든요.]민하윤은 감정이 살짝 격해졌다. 그녀는 수화로 한바탕 감정을 쏟아낸 뒤 마치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간 듯 초점 없는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하도진의 반응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민하윤은 아무런 기대를 품지 않았다. 그들 모두 수화를 몰랐기에 이런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손짓을 통해 민하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하씨 가문은 명원에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가문이었기에 경치 좋은 산을 통째로 사들여 가문의 묘지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민하윤은 자신의 양어머니가 어디에 묻혀있는지 알기 위해 하루 꼬박 민성현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민하윤은 하도진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몰래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하도진의 긴 손가락이 핸들을 꽉 잡았는데 힘을 너무 많이 준 탓에 관절 부분이 살짝 창백해졌다. 그러나 민하윤은 그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두 사람은 돌아가는 길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소피아가 뒷좌석에 타면서 조잘거렸다.“저희 같이 한식 먹으러 가요. 저 콩국 먹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떡갈비랑 생선찜도 먹고 싶어요.”소피아는 거절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녀는 외식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고 하도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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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7년. 한 사람의 인생에 7년이 몇 번이나 있겠는가?그들은 서로의 가장 젊고 순수했던 7년을 함께했다.민하윤은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특히 고은율이 하도진과 며칠 전 만났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질투와 서운함을 느꼈다.그날 밤 하도진에게 전화를 건 여자는 고은율이 맞았다. 그래서 그렇게 단호히 민하윤을 떠나간 것이다.‘전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갔던 거구나.’게다가 그녀와 밤새 있었다.민하윤은 쓴웃음을 지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콩국을 휘휘 저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우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난 네가 이 가게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줄 알았어. 예전에 우리 사귀었을 때 거의 매주 한 번은 꼭 왔잖아.”고은율은 옆에 있는 민하율을 힐끔 바라보면서 일부러 말했다.“나 피아노 수업 끝나면 매일 이곳으로 데려와서 같이 잔치국수를 먹었잖아. 내가 당근을 싫어해서 너도 당근을 안 먹겠다고 했었지. 그 습관이 아직도 있을 줄은 몰랐네.”고은율이 말을 마치자마자 똑똑한 소피아가 하도진의 잔치국수에 당근을 전부 쏟아 넣었다.“엄마가 음식을 가리면 좋은 아이가 아니라고 했어요. 오빠, 다 큰 어른이면서 왜 당근을 안 먹어요? 당근을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하도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름다운 옛 추억을 얘기하고 있었는데 눈앞의 13, 14살쯤 돼 보이는 아이가 그녀의 말허리를 잘라버렸다.고은율은 기분이 언짢았는지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러나 조금 전 고은율은 소피아가 하도진을 오빠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너 도진이 여동생이니? 귀엽게 생겼다. 혼혈이야?”고은율은 비어 있는 자리에 앉으면서 소피아의 손을 잡아당기며 살갑게 말을 걸었다.소피아는 젓가락질이 서툴러서 포크를 썼는데 고은율이 눈치 없이 포크를 들고 있는 자신의 왼손을 잡아당기자 짜증이 났다. 그리고 조용히 있는 민하윤의 표정을 보니 고은율과 하도진이 심상치 않은 사이라는 직감이 들었다.‘오빠는 진짜 쓰레기야!’정의감 넘치는 소피아는 속으로 하도진을 욕했다.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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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그만해.”하도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소피아를 말렸다. 그는 언짢은 얼굴로 고개를 돌려 고은율을 바라보았다.“또 다른 볼일 있어?”고은율은 흠칫하더니 서운한 얼굴로 말했다.“우리 엄마 얼마 전에 입원하셨어. 네가 많이 보고 싶으시대.”민하윤은 그들을 힐끔 바라보았다. 입맛이 전혀 없었다. 고은율의 엄마는 하씨 가문의 가정부였는데 전 고용인이 피고용인의 병문안을 가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하도진과 고은율이 특별한 사이가 아닌 이상 말이다.“요즘 회사 일로 바빠. 시간 없어.”하도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차갑게 거절했다.“나 대신 안부 전해 줘. 병원에는 내가 얘기할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돼.”“도진아, 우리 엄마... 우리 헤어진 거 모르고 계셔.”고은율은 눈시울을 붉히면서 멋대로 하도진의 손을 잡으며 애절한 목소리로 애원했다.“마지막으로 한 번만 보러와 주면 안 돼? 나 그동안 너한테 이렇게 부탁한 적 없잖아.”고은율은 흰 손에 빨간 네일을 하고 있었다. 피아니스트라서 그런지 손이 길고 가늘어서 하도진의 손과 대조되어 강한 시각적 대비감을 주었다.민하윤을 굳은 얼굴로 젓가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 소리를 들은 하도진은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려 민하윤을 바라본 뒤 고은율에게 잡힌 손을 빼냈다.“그래. 비서한테 시간 비워두라고 하고 추후에 연락할게.”하도진이 동의했다.고은율은 눈가가 빨개진 채로 놀란 듯이 하도진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입을 열려는 순간 갑자기 벨 소리가 울렸고 고은율은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일부러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화 너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음악 소리, 잔이 부딪치는 소리, 남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왔다.고은율은 목소리를 낮추며 애원하듯 말했다.“다음에 가면 안 될까요?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술을 마실 수가 없어요.”전화 너머 여자가 갑자기 목청을 높이는 바람에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율, 연주회 안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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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하도진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는 민하윤을 바라보았다.“언니, 저 여자 오빠한테서 동정받고 싶어서 일부러 불쌍한 척하는 거예요. 절대 오빠를 보내주면 안 돼요.”소피아는 얼마나 흥분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며 민하윤의 팔을 잡고 힘껏 흔들었다.민하윤은 엷은 미소를 지은 채로 소피아의 입가에 묻은 양념을 닦아주면서 고개를 돌려 하도진을 향해 수화를 했다.[그렇게 걱정되면 가봐요. 우리끼리 있어도 돼요.]어차피 하도진은 수화를 모르니 상관없다고 민하윤은 생각했다.하도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레스토랑을 떠났다.민하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심지어 질투하지도 않았다.하도진은 빠르게 걸으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상대방은 이내 전화를 받았다.“어디 있어?”하도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고은율은 매우 기뻐하면서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구해줘, 도진아.”하도진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고은율은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다. 그녀는 두 눈이 풀려 있었고 볼이 빨갰으며 머리도 헝클어진 상태였다.비록 헤어졌지만 두 사람은 친구보다는 더 가까운 사이였다. 하도진이 슬럼프를 겪고 있을 때 고은율이 그의 곁을 지키면서 그를 돌봐줬었기 때문이다.가장 젊고 순수했던 시절, 고은율과 하도진은 많은 행복한 추억들을 쌓았다. 그러나 그 뒤로 두 사람은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고은율은 유명해지고 싶었고 큰 성과를 이뤄내고 싶었기에 제누오에서 하도진 몰래 술자리에 나가 다른 남자들의 비위를 맞췄다.그 일로 7년의 연애가 끝났다.오래 연애해서, 또는 감정이 식어서 헤어진 게 아니라 상대방이 배신했기 때문이었다.그들은 이제 더 이상 연인이 아니었지만 옛정 때문에라도 하도진은 곤란한 상황에 빠진 고은율을 모른 척하기가 힘들었다.하도진은 차가운 얼굴로 고은율을 일으킨 뒤 자신의 겉옷을 고은율에게 걸쳐주어 흰색 드레스 아래 고은율의 아름다운 몸 선을 가려주었다.“도진아... 와줬구나. 네가 날 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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