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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한다고 말해줘: Chapter 31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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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화

민희수는 화가 나서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눈앞의 여유로워 보이는 여자가 예전의 우물쭈물하며 한 번도 반항하지 못하던 민하윤이라는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성격이 완전히 뒤바뀌다니, 뭔가 이상했다.설마 민하윤과 하룻밤을 보냈던 그 남자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민하윤, 며칠 못 본 사이에 성격이 더러워졌네. 왜? 이번에는 또 누구랑 잔 거야? 임신 못 해서 실망했나 봐. 설마 임신해서 신분 상승이라도 하고 싶었어? 그런데 임신이 아니어서 화가 난 거야? 그래서 이렇게 아침부터 미친 짓을 하는 거였어?”민희수는 경멸 어린 눈빛으로 비아냥댔다.민하윤은 민희수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태연한 얼굴로 민희수의 앞에 놓여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어 민희수의 머리 위로 끼얹었다.차가움과 함께 약간의 쓴맛이 느껴졌다. 또다시 커피를 뒤집어쓰게 된 민희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얼빠진 얼굴로 믿을 수 없다는 듯 민하윤을 바라보았다.“민하윤, 너 정말 미쳤구나! 그러니까 서우 오빠한테 미움받고 아빠, 엄마한테도 미움받지. 너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해!”민희수는 분풀이하듯 민하윤을 욕했다. 그러다 카페 안의 다른 손님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머리카락에서 커피가 뚝뚝 떨어지는 자신을 바라보자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민희수는 민하윤을 매섭게 노려보다가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민희수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민하윤은 움켜쥐고 있던 주먹을 천천히 풀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잔액을 확인했다.민하윤은 양아버지를 위해 새로운 병원을 찾아봐야 했고 간병인 서정아의 석달 치 급여를 미리 지급해야 했다.대학 졸업 이후 민하윤은 민씨 가문에서 단 한 푼도 돈을 받은 적이 없었다. 민희수는 그동안 온몸에 명품을 두르고 수억 원대의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며 민희윤이 몇 년 동안 아득바득 돈을 모아야 살 수 있을 가격대의 비싼 명품 가방을 들고 다녔는데 말이다.민하윤과 민희수는 상반되는 삶을 살았다.민하윤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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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민하윤은 무릎을 꿇은 채로 갈기갈기 찢어진 사진 조각들을 주워 맞춰보려고 했다.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눈물이 끊임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민하윤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옆에 있던 민성현을 바라보았다.그러나 민성현은 본인과는 아무런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민하윤을 내려다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비아냥댔다.“잊었어? 그 인신매매범들 교통사고 당해서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지금 반신불수가 되었어. 그런데 어떻게 생선을 팔아 쟤를 키우겠어?”18살 생일날에는 서프라이즈도, 축복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가장 날카로운 말로 민하윤에게 상처를 주었다.[그분들은 인신매매범이 아니에요. 당신들이 저를 버렸고 그분들은 저를 힘들게 키워 주셨다고요!]민하윤은 필사적으로 손짓을 하며 수화를 했다. 그러나 민성현은 혐오스럽다는 눈빛으로 민하윤을 바라볼 뿐이었다.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민하윤은 서서히 정신을 차린 뒤 무표정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예전에 민하윤은 친부모님에게서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앞으로 그녀는 더 이상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통제당하거나 이용당하지도 않을 것이다.르네 별장 2층 객실, 민하윤은 옷장 안에 있던 옷 몇 벌을 개어서 넣고 짐을 간단히 정리한 뒤 홀로 캐리어를 거실로 옮겼다.혼인 신고를 하기 전 하도진은 그녀와 계약을 체결했었는데 재산 분할 관련 내용 외 가장 중요한 것은 을이 아이를 출산하는 날 둘의 부부 관계가 끝나고, 갑은 을에게 100억을 지급하고 을은 아이의 양육권과 면접교섭권을 포기하며 갑의 허락 없이 아이를 접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민하윤은 임신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100억을 받을 수 없었고 부부 관계도 당연히 끝이었다.민하윤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 뻔뻔하게 이곳에서 계속 지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캐리어를 들고 거실로 내려오자마자 초인종이 울렸다.민하윤은 조금 망설였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누가 온 걸까?르네 별장 근처는 치안이 매우 좋았기에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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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민하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임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숨길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씨 가문 사람들은 큰 기대를 품고 불러오지 않는 민하윤의 배만 뚫어져라 쳐다볼 테니 숨기는 것은 불가능했다.김옥자는 비록 나이가 많이 들긴 했지만 아주 명석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온화한 어조로 물었다.“도진이랑 싸운 거니? 도진이는 너무 오냐오냐 자라서 성격이 좀 더러워. 네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넌 지금 임신했으니 너무 스트레스받으면 안 돼. 만약 그 자식이 널 화나게 했다면 나한테 얘기해. 내가 아주 혼쭐을 내줄게!”김옥자의 말을 들은 민하윤은 난감함을 느꼈다. 언젠가는 밝혀야 하는 일이었다.민하윤은 심호흡을 한 뒤 옆에 놓여 있던 종이와 펜을 가져와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열심히 썼고 다 쓴 뒤에는 그 종이를 김옥자에게 보여주었다.김옥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종이를 건네받더니 안경을 끼고 열심히 읽었다. 그녀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임신하지 않았다고? 호르몬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고 생리가 지연된 거라고?”민하윤은 입술을 꾹 깨물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김옥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니? 캐리어는 네가 가져다 놓은 거야? 여기서 나가려고? 너희는 법적으로 부부야. 신혼부부가 별거라니, 그게 말이 되니?”민하윤은 더는 숨길 수 없다는 걸 알고 모든 것을 솔직하게 밝히려고 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뒤 계속하여 종이에 글을 적었다.[저 여기서 나가 살게요. 이 일은 제 오해로 벌어진 일이니까 도진 씨가 화를 내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저 돈 한 푼 안 받을 거예요. 추후 이혼합의서 보내주시면 바로 사인할게요.]그러다 뭔가 떠올랐는지 민하윤은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거실로 돌아왔을 때 민하윤의 손에 상자가 하나 들려 있었다.김옥자는 그것이 지난번 가족 식사 때 자신이 민하윤에게 선물로 주었던 비취 팔찌라는 걸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것까지 돌려주려고 하는 걸 보면 떠나려고 마음먹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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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민하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걱정되는 것이 있는지 펜을 들고 무언가를 쓰려고 했지만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몰라서 다시 펜을 내려놓았다.“화인 병원의 서동민 씨랑은 무슨 사이니?”그 이름을 들은 순간 민하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움과 곤혹스러움이 담긴 눈빛으로 김옥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김옥자가 갑자기 그 얘기를 꺼내는 의도를 알지 못했다.민하윤은 펜을 들고 힘이 느껴지는 수려한 글씨체로 글을 썼다.[제 양아버지예요.]김옥자는 꽤 많은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사람을 시켜 민하윤을 조사해 보았고 민하윤의 상황을 거의 다 알고 있었다.문제를 처리할 때는 핵심을 파악해야 했다. 김옥자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병원에는 이미 얘기해 뒀다. 네 아버지는 그곳에 계속 머물러도 돼. 일단 병실은 일인실이고 앞으로 최고의 신경외과 전문의와 정형외과 전문의가 네 아버지를 치료해 줄 거야. 그리고 내 명령이 없다면 아무도 네 아버지를 퇴원시킬 수 없어.”김옥자의 말 때문에 민하윤은 결국 별장에 머물렀다.이사하지 못하게 된 그녀는 침대에 누워 밤새 뒤척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김옥자는 떠나기 전 토요일에 꼭 하도진과 함께 본가로 오라고 당부했었다.하도진과 함께 돌아가라니.민하윤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현재 하도진과 만날 수조차 없었다.두 사람은 함께 있을 때면 대부분 다퉜다. 침대 위가 아니라면...민하윤은 어느샌가 잠이 들었고 날이 밝았을 때 잠에서 깼다. 간단히 씻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식탁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하도진은 민하윤과 완전히 연을 끊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청소해 주고 식사를 준비해 주던 아주머니도 떠났고 태유 은행과의 협력 프로젝트도 중단되었으며 심지어 민하윤의 양아버지를 퇴원시키려고 했다. 민하윤은 아주머니가 준비해 준 정성스러운 아침을 먹지 않아도 괜찮았고, 하도진이 조롱하며 싫은 기색을 드러내도 뻔뻔하게 굴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치료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단기간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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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민하윤은 씩씩대면서 수화를 한 뒤 두 손을 축 내려뜨렸다.하도진의 미간이 더 심하게 찌푸려졌다. 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민하윤을 지긋이 바라보았고 그의 시선에 조금 찔린 민하윤은 속으로 투덜댔다.‘보긴 뭘 봐? 수화는 알지도 못하면서.’하도진은 민하윤을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어들였다.“나랑 이혼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내가 널 얕봤네.”원래는 이혼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민하윤은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수백억의 가치를 지닌 에스티와의 협력 프로젝트를 망쳤으니 임원들은 민하윤을 질책할 것이고 심한 경우 임형섭까지 좌천될 수 있었다.만약 직장을 잃는다면 지금 은행 잔액으로는 다음 달 말까지 버틸 수가 없었다.자존심을 부리는 것도 생존이 가능한 상황에서야 가능했다. 게다가 서동민은 아주 비싼 수입 약을 사용해야 했고 24시간 내내 간병인이 옆에서 돌봐줘야 했다. 지금 민하윤은 달리 기댈 데가 없으니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그러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물론 언젠가는 떠날 거예요.]민하윤은 진지하면서도 고집스러운 얼굴로 수화를 했다.민하윤은 오만한 성격의 하도진이 절대 자신 때문에 수화를 배울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도진은 말을 못 하는 민하윤을 싫어했으니 말이다.그런 하도진이 그녀의 소리 없는 세상에 들어오려고 할 리가 없었다.민하윤은 하도진의 가시 돋친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쓴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민하윤의 뒷모습은 매우 가녀렸다. 민하윤은 그렇게 서서히 하도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누군가 큰 손으로 그의 심장을 꽉 쥐고 있다가 확 놓아버린 것처럼 뒤늦게 통증이 느껴졌다.민하윤의 손짓이 하도진의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사실 하도진은 일주일 전부터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었다. 처음에는 아주 간단한 것만 알아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상당히 많은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민하윤은 정말로 이혼할 생각을 한 적이 있었고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떠날 생각도 하고 있었다.민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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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선배?’고개를 든 민하윤의 얼굴에서 피곤함이 살짝 가셨다.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짓더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선배, 저 때문에 피해 보셨죠?]에스티가 협력하지 않겠다고 한 일 때문에 임원들은 초조해져서 늦은 시간에 주주총회를 열었다. 그뿐만 아니라 팀장 이상 직급의 직원들 모두 회의에 참석해야 했고 임형섭은 신용대출팀 팀장으로서 대부분의 책임을 져야 했다.임형섭은 조금 수척해 보였다. 검은색 셔츠를 입은 그는 단추 두 개를 잘못 끼웠다. 평소의 임형섭이라면 절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임형섭은 아주 피곤한 상태였다.임형섭은 마음 아픈 얼굴로 미안해하는 민하윤을 바라보며 서둘러 그녀를 위로했다.“아니야. 처음부터 그냥 협력하고 싶다고 의향만 내비친 거였어. 이렇게 갑자기 상황이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자책하지 않아도 돼.”민하윤은 미안함에 고개를 푹 숙이면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임형섭은 민하윤을 더 위로하려다가 무심결에 바닥에 놓인 박스를 보게 되었다. 안에 책과 선인장, 그리고 다른 소지품들이 들어 있었다.미간을 찌푸린 임형섭은 뒤늦게 사무실을 쭉 둘러보았다. 작은 사무실이 지금은 썰렁했고 책상 위도 텅 비어 있었으며 서랍 위에 놓여있던 물건도 줄어들었다.“왜... 물건들을 정리한 거야?”임형섭은 이해할 수 없었다.민하윤은 코를 훌쩍이며 글썽거리는 눈으로 임형섭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수화를 했다.[저의 개인적인 이유로 계약이 날아간 거니까 선배가 저 대신 책임을 질 필요는 없어요. 저도 더는 선배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일을 그만두려는 걸까?임형섭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는 곧바로 긴장하며 말했다.“개인적인 이유? 하 대표님이 널 괴롭힌 거야?”민하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와 하도진의 관계를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는 없었다. 하도진과 하룻밤을 보냈다가 그의 아이를 임신한 줄 알고 그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그런데 왜 그만두려는 거야?”임형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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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두 인턴은 겁을 먹고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중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대리님, 무... 무슨 일이세요?”민하윤은 싸늘한 얼굴로 두 사람을 둘러본 뒤 그들의 사원증을 바라보았다.상대방은 그 점을 눈치채고 두려운 얼굴로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사과했다.“대리님, 죄, 죄송합니다... 저희도 다 주워들은 얘기였어요.”이번에 총 여섯 명의 인턴을 채용했는데 그중 두 명은 가장 힘든 영업팀에 배치되어 고객 예금, 대출 등의 업무를 맡았고 나머지 네 명은 신용대출팀으로 배정됐다.민하윤은 두 사람을 불안하게 하려고 일부러 두 사람의 사원증을 바라보았다. 인턴들이 순환근무를 마치면 해당 부서에서 인턴의 역량을 평가하기 때문이다.태유 은행에서 인턴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뛰어난 인재였다. 명문대 졸업생들도 유명한 사립 은행에서 일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러한 은행의 고객들은 대부분 명원의 재벌들이었기 때문이다.게다가 태유 은행의 급여와 복지는 명원 은행 업계에서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고 순조롭게 인턴 기간을 마치면 앞으로 이력서가 더욱 빛날 수가 있었다.물론 인턴 기간이 끝난 후 정직원이 되지 못한다면 다른 곳으로 떠나면 되었다. 그러나 만약 상사의 험담을 하거나 악의적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단순히 직장을 잃는 게 아니라 앞으로 해당 업계에서 더는 일을 하지 못할 수가 있었다.그들 모두 명문대 출신의 훌륭한 인재들이었기에 이러한 일로 자신의 미래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몇 초 전까지만 해도 악의적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리던 두 사람은 이 순간 마치 피해자처럼 굴었다. 그들은 민하윤의 앞에서 굽신거리며 이 일을 상사에게 얘기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민하윤은 수화를 쓰기도 귀찮아서 싸늘한 얼굴로 두 사람을 무시하고 돌아서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 단호한 모습이었다.인간은 늘 그랬다. 자기 일이 아니면 모든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본인들이 내뱉는 말들이 누군가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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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민하윤은 어이없어서 입을 비죽였다. 휴대전화를 확인해 보니 앱으로 예약한 택시 기사님께서 오고 있었다. 민하윤이 차에서 내리려고 문손잡이를 잡은 순간 하도진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고개를 돌린 민하윤은 하도진의 싸늘한 두 눈을 보게 되었다. 하도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짓궂게 말했다.“예전에는 몰랐는데 성격이 왜 이렇게 더러워? 내가 달래줘야 해?”민하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둘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심지어 하도진의 셔츠에 나는 은은한 향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정도였다.그것은 차 안의 우드 향과는 살짝 달랐다. 오히려 꽃향기에 가까웠는데 아주 익숙했으나 당장은 어떤 향인지 떠오르지 않았다.인간의 감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비록 민하윤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대신에 청각과 후각이 다른 사람들보다 예민했다.“민하윤, 나 오늘 피곤하니까 귀찮게 굴지 마. 널 달래줄 기분 아니야.”하도진이 민하윤의 손목을 놓으면서 덤덤한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본 뒤 몸을 뒤로 기대었다.민하윤은 결국 예약을 취소했다. 그들이 탄 차는 퇴근 시간 정체 때문에 육교에서 아주 느리게 움직였고 민하윤은 지루한 얼굴로 뒷좌석에 앉아 휴대전화를 봤다.갑자기 앞에서 차가 끼어드는 바람에 운전기사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방심했던 민하윤은 앞으로 몸이 확 쏠려서 휴대전화가 발치에 떨어졌다.하도진은 짜증 난 듯이 혀를 찼고 운전기사는 황급히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사모님. 앞에서 갑자기 차가 끼어들어서요. 괜찮으세요?”민하윤은 힘껏 고개를 끄덕인 뒤 허리를 숙이고 휴대전화를 주우려다가 립스틱을 줍게 되었다. 짙은 붉은색의 립스틱이었다.민하윤은 그렇게 진한 붉은색의 립스틱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립스틱 케이스를 쓰다듬다가 불현듯 불쾌한 기억을 떠올렸다.하도진에게서 나던 향기가 느껴지니 그제야 그것이 여자 향수 냄새, 그것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던 예쁜 여자 고은율에게서 맡아본 적 있는 향이었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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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하도진의 본가는 아주 따뜻했다. 채선화는 단정한 정장을 입고 고개를 숙인 채 꽃꽂이를 하고 있었다. 꽃병 안에는 모란꽃 몇 송이가 꽂혀 있었고 그 옆에는 아직 손질하지 않은 꽃들이 수북이 놓여 있었다.하도진은 대충 자리에 앉은 뒤 꽃 하나를 집어 들고 말했다.“어머니, 어제 학술 교류회 때문에 못 오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채선화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너희 할머니가 내일 가족 식사를 할 예정인데 꼭 참석하라고 하셨거든.”“그래요.”민하윤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하도진을 힐끗 바라본 뒤 조심스럽게 채선화에게로 걸어가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채선화는 민하윤을 차가운 시선으로 힐끗 보더니 그냥 무시해 버렸다. 그녀는 여유롭게 모란꽃의 가지를 다듬은 뒤 잠시 바라보다가 그것을 꽃병 안에 꽂았다.“도진아, 외교부 한선재 아저씨 기억하지? 그 집 막내딸 한유라가 지난주에 귀국했대. 너희 친구라면서? 시간 있을 때 집에 불러서 같이 식사라도 하자.”“기억 안 나는데요.”하도진은 손을 들어 잎을 뜯었다. 그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인지 시선 한 번 들지 않았다.“은율이도 귀국했다면서? 예전에는 집안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걔 따라 제누오까지 갔잖아. 예전에는 걔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어쩌다가...”채선화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옆에 서 있던 민하윤을 일부러 힐끗 쳐다보며 덧붙였다.“더 못난 애가 왔는지.”“예전에는 은율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은율이가 그리우신가 봐요?”하도진은 차갑게 웃었다. 그의 눈빛만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민하윤은 누군가 심장을 옥죄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자기도 모르게 하도진이 정말로 고은율을 사랑했을 거라고 생각했다.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잠깐 넋을 놓은 민하윤은 저도 모르게 그날 엘리베이터에서 보았던, 예쁘고 솔직하며 대범한 고은율이 울면서 하도진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매달리던 모습이 떠올랐다.고은율은 하도진을 사랑했기에 기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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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하준혁이 하진석을 부축하며 밖에서 들어왔다. 두 부자는 매우 닮았고, 화를 내지 않아도 위엄이 느껴지는 표정도 상당히 비슷했다.채선화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고 하도진도 꼬고 있던 다리를 내려놓으며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민하윤의 팔을 잡아당겨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하진석은 부축을 받으며 상석에 앉은 뒤 사람들을 쭉 둘러보았다가 마침내 민하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분위기가 살짝 어색했다. 하진석의 의미심장한 눈빛에 민하윤은 저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졌다.다행히 하준혁이 나서서 분위기를 풀었다.“다음 주 수요일은 제사를 지내는 날이야. 지선이 고모가 애들을 데리고 귀국해서 내일 우리 집에 모일 거다. 그리고 지선이 고모가 조카며느리를 보고 싶다고 하더구나.”’채선화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비꼬았다.“무슨 조카며느리예요? 이제 곧 이혼할 텐데. 괜히 고모님 귀찮게 하지 말아요.”“선화야, 내가 한 말 다 잊었어? 내가 애들 일에는 간섭하지 말라고 했지. 너는 도진이가 일찍 가정을 이루길 바라지 않는 거야?”하준혁이 적당한 때 입을 열어 채선화를 막았다. 말투가 차가워서 명령처럼 느껴지기도 했다.하진석이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채선화는 더는 불만을 드러내지 못하고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위층으로 올라갔다.“할머니는요?”하도진은 할아버지에게 차를 건네면서 물었다.“뮤지컬을 보러 갔어.”하진석은 그렇게 대답한 뒤 시선을 돌려 날카로운 눈빛으로 다시금 조용히 앉아 있는 민하윤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말을 꺼냈다.“진짜든 가짜든 이번 한 번뿐이야. 다음은 없어.”민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엄 있는 어른 앞에서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얌전히 하도진의 옆에 앉아 있었다. 감정 기복이 커 보이지는 않았다.민하윤은 그들이 어렵게 생긴 아이 때문에 마지못해 자신을 며느리로 받아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비록 지금 아이는 없지만 그들은 여전히 법적으로 부부였다.게다가 오늘 밤에는 본가에서 머물러야 했고 그것은 그들이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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