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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한다고 말해줘: Chapter 291 - Chapter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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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1화

민하윤의 눈은 몽롱하게 풀려 있었고 달아오른 볼은 만져 보기만 해도 뜨거울 것 같았다.임형섭은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휴대폰으로 대리운전을 예약했다. 그리고 지갑에서 지폐 5만 원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는 민하윤 앞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목울대가 한 번 굴렀고 임형섭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하윤아, 이제 집에 가자. 걸을 수 있어?”민하윤은 초점이 흐린 눈으로 임형섭을 올려다보다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갑자기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임형섭은 몇 초 망설이다가 민하윤의 앞에 등을 내밀며 다시 쪼그려 앉았다.“그래. 그러면... 업혀. 내가 업어 줄게.”임형섭은 숨을 죽였다. 민하윤의 가늘고 긴 팔이 그의 목을 감싸안았다. 너무 말라서, 등에 닿는 무게감조차 선명하지 않았다.민하윤의 몸이 임형섭의 등에 바짝 붙었다. 희고 가는 손목뼈가 그의 가슴 앞쪽으로 축 늘어졌다. 미지근한 매실주 향과 민하윤의 몸에서 은근히 스며 나오는 차가운 향기가 뒤섞여 코끝을 간질였다. 임형섭은 어색하게 고개를 살짝 틀고, 등을 더 곧게 세우며 민하윤이 편하도록 자세를 가다듬었다.임형섭은 민하윤의 가방을 자기 목에 걸어 멘 채, 단단히 업고 골목을 걸었다. 따뜻한 숨결이 일정한 리듬으로 임형섭의 목덜미에 닿았다.임형섭은 귀가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절대 이 틈을 이용할 수 없었다. 민하윤을 향한 마음은 언제나 존중이 먼저였다.임형섭은 민하윤을 조심스럽게 차 뒷좌석에 옮겨 눕혔다. 민하윤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작게 몸을 웅크리고 잠들었다. 긴 머리칼이 흐트러져 퍼져 있었고, 눈꼬리에는 눈물에 젖은 잔머리 몇 가닥이 붙어 있었다.임형섭은 무심코 그 잔머리를 쓸어 넘기려다 손을 허공에서 멈췄다. 대신 두툼한 코트를 민하윤의 몸 위에 덮어 주고 히터를 틀었다.문을 닫고 나오자, 초봄의 찬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숨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임형섭은 시선을 골목 안쪽 테이블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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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임형섭은 차갑게 웃으며 되물었다.“하 대표님은 다른 여자랑 약속 잡아도 되고, 우리는 오래된 친구끼리 얼굴 한번 보는 것도 안 됩니까?”하도진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어이없다는 듯 비웃으며 입꼬리를 올렸다.“말로 저를 자극하지 마세요. 임 팀장님, 굳이 다시 말해 줘야 하나요? 민하윤은 제 아내입니다. 남의 아내한테 마음 품을 생각이라도 하는 거예요?”룸 안쪽에서는 주사위 굴리고 술을 들이붓는 소리가 시끌벅적하게 울려 퍼졌다.“누나, 왜 안 마셔요! 자, 원샷! 원샷!”임형섭은 술기운이 오른 듯, 뿌옇게 김 서린 유리창을 노려보며 마음이 뒤집힌 채로 내뱉었다.“하 대표님은 본인 주변의 여자부터 정리하시죠. 본인은 감정에도 결혼에도 불성실하면서... 왜 하윤이한테만 선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건가요? 하윤이가 원한하면 저는 언제든지 하윤이를 데려가겠습니다.”“데려간다고요?”하도진은 입꼬리를 비틀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리는 동안, 미세한 전류음이 섞인 듯한 통화 너머로 남자의 낮은 웃음이 흘렀다.“그런 허튼 꿈부터 접어요. 제가 죽지 않는 한, 우리는 절대 안 떨어져요.”임형섭은 입을 열어 반박하려다, 그대로 끊겨 버린 통화음에 말끝을 삼켰다.휴대폰에 주소 메시지가 떴다. 임형섭은 그 주소를 그대로 대리기사에게 읊어 주었다.차는 서서히 도심의 흐름 속으로 스며들었다. 임형섭은 창에 기댄 채, 가로등 불빛과 붉은 테일 라이트의 흐릿한 잔상을 바라봤다.터널 안은 밝았다가 어둡기를 반복했다. 임형섭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유리에 비친 그 얼굴만 응시했다.민하윤의 살짝 올라간 눈꼬리, 요염한 선이 도는 얼굴, 가늘게 휘어진 눈썹, 오뚝한 콧날, 촉촉하게 젖은 붉은 입술이 보였다.뒷좌석에서 웅크린 민하윤은 잠든 숨결에 맞춰 살짝 들썩였다.임형섭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길고 선명한 마디가 유리 위의 잔상을 떨리는 듯 어루만졌다.임형섭의 손끝이 민하윤의 눈썹과 눈매를 따라가다 멈췄다. 임형섭은 창에 이마를 기댄 채, 터널을 빠져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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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임형섭의 얼굴도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까만 눈동자에는 물기가 얇게 감돌았다. 임형섭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한마디만 뱉었다.“추우니까... 데리고 들어가요.”하도진은 비웃듯 웃었다. 얼굴빛은 더 험악해졌고 시선을 내리깔며 경고했다.“임 팀장님, 선 넘었어요.”하도진은 자신의 코트를 벗어들더니 허리를 숙여 차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민하윤의 위에 덮여 있던 옷을 거칠게 한쪽으로 던지고 그녀의 손목을 잡아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체온이 남아 있는 코트로 민하윤을 빈틈없이 감쌌다.민하윤은 열이 오른 얼굴로 잠에 취해 있었다. 하도진이 늘어진 소매를 민하윤 앞에서 묶어 주자, 그녀는 마치 고치 속에 감긴 듯 꼼짝도 못 한 채 입술만 작게 달싹였다. 입가에 보조개가 순간 얕게 파였다.하도진은 민하윤을 가로로 안아 올렸다. 품 안의 여자는 불안한 듯 그의 가슴팍에 이마를 비볐다가 만족한 듯 자세를 고쳐 다시 잠들었다.하도진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하지만 돌아서는 순간, 그 표정은 즉시 눌러 지워졌다. 하도진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임형섭을 차갑게 훑어본 뒤, 일부러 그 앞까지 걸어가듯이 다가갔다.“그만 돌아가시죠. 배웅은 못 합니다.”임형섭의 시선이 민하윤의 얼굴에 멈췄다.임형섭은 민하윤의 얼굴을 꿈에서 수없이 봤다.그러나 눈을 뜨면 늘 칠흑 같은 빈방뿐이었다. 책상 위 노트북, 텅 빈 메일함, 아무것도 오지 않는 화면이 전부였다.유학 시절에도 그랬다.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임형섭은 붉은 네모 창문 앞에 서서 동쪽에서 떠오르는 주황빛 태양을 바라보고는 했다. 교회 지붕 위로 하얀 비둘기가 원을 그리며 날아가고, 임형섭은 그 너머 끝없이 이어진 산과 바다를 넘어 가슴속에 숨겨 둔 사람을 진짜로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었다.임형섭은 웃어 보이려 했지만, 찬바람이 얼굴을 얼려 웃음 같은 건 걸리지 않았다.임형섭은 그저 하도진이 민하윤을 안고 불빛 환한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대리기사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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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난 그렇게 인내심이 좋은 편이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잘 참지도 못해.”하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며 차가운 입술을 민하윤의 쇄골 근처에 조심스레 가져가 맞췄다.전화받고 집으로 돌아온 하도진은 차가운 바람 속에서 한참 동안 기다렸다. 몸은 유독 차가운 민하윤은 달콤한 온기를 알아챈 아이처럼 두 손을 하도진의 옷깃 안으로 파고들어 더 따스한 체온을 찾았다.하도진은 침대 위에 무릎을 짚은 채, 거추장스러운 검은 터틀넥을 벗어 던지고 다시 민하윤을 끌어안았다. 얇은 천 너머로 두 사람의 온기가 천천히 겹쳤다.민하윤의 몸은 유독 달아올라 있었다. 매실주를 너무 많이 마셨다. 직접 담근 술은 도수가 없는 게 아니라, 그저 측정하지 않았을 뿐이었다.희미하게 감도는 차가운 향과 어딘가 달큰한 꽃내음이 섞이자, 민하윤의 체온은 숨이 막힐 만큼 뜨거웠다. 민하윤은 술기운에 밀려 평소의 자신이 아닌 듯 용기가 튀어나왔다.민하윤은 팔을 올려 하도진의 목을 감았고, 서툰 입맞춤을 이마와 눈가, 입가에 조심스레 흩뿌렸다. 턱끝에 스친 하도진의 잔수염에도 어설프지만 진심만은 또렷한 키스가 닿았다.하도진은 잠깐 멈칫했다. 물처럼 고요하던 민하윤에게 이런 열기가 숨어 있었다는 걸, 정말 몰랐다. 하도진은 숨을 삼키며 민하윤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하윤아, 밖에서 나한테 미안한 일이라도 한 거야? 이렇게까지 애써서...”말끝이 다 닿기도 전에, 하도진의 숨이 한 번 크게 흐트러졌다. 하도진은 손을 더듬어 불을 껐다. 크리스털 샹들리에는 꺼지고 방에는 낮은 스탠드 불빛만 남았다.“민하윤... 네가 먼저 시작했어.”하도진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몸을 민하윤에게로 기울였다.민하윤은 하도진의 몸을 탐냈지만 하도진은 그녀의 손을 못 움직이게 꽉 쥐었다.민하윤이 어렴풋이 눈을 뜨자, 하도진의 차가운 땀방울이 민하윤의 이마에 떨어졌다.하도진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만하윤의 가늘고 얄팍한 허리를 들어 올렸다.그날 밤, 창밖에는 봄바람이 느리게 지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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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커튼은 끝까지 닫혀 있었다.민하윤의 희고 가느다란 팔이 자꾸만 하도진의 가슴팍을 어루만졌다. 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민하윤의 손목을 붙잡았다.“그만해.”콧소리가 묻은 하도진의 잠긴 목소리였다.민하윤은 입술을 조금 벌린 채 숨을 몰아쉬었다. 술기운이 속을 뜨겁게 태우는 듯했고,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민하윤은 본능처럼 하도진에게 매달렸다가 정신이 멍한 채로 하도진의 어깨를 두 번쯤 밀어냈다.그러자 다음 순간, 묵직한 그림자가 민하윤을 덮었다.하도진이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한 채 내려다봤다. 어둠 속에서도 하도진의 눈빛은 젖어 있었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진짜... 계속 날 이렇게 건드릴 거야?”민하윤은 대답 대신 몸에 걸친 넉넉한 남성 셔츠를 답답하다는 듯 끌어당겼다. 셔츠가 풀려지자 민하윤의 하얗고 부드러운 속살이 드러났다. 민하윤의 살짝 거친 숨결에 따라 가슴이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런 모습에 하도진은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목울대가 한번 울렁이더니 하도진은 말없이 민하윤을 바라보다가 침대 옆에 둔 술잔을 들었다.도수가 높은 양주였다.하도진은 크게 한 모금 삼키고는 다시 민하윤과 시선을 맞췄다.민하윤은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물...”입모양은 분명히 물이라고 말했지만 민하윤의 목소리는 끝내 흘러나오지 못했다.대신 술기운에 떠밀리듯 고개를 들어 두 팔로 하도진의 목을 끌어안으며 입을 맞췄다.하도진은 예상 못 한 듯 짧게 숨을 들이켰다. 받아주면서도 억지로 무언가를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민하윤은 어딘가 어색한 자세로 하도진과 입을 맞췄다. 방금 하도진의 입에 들어있던 술이 이번에는 민하윤의 입가로부터 흘러나왔다. 민하윤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하도진을 바라보았다.잠시 뒤, 하도진은 민하윤의 턱을 감싸 쥐더니 억지로 거리를 벌렸다.하도진은 기어이 정신을 붙들어 매려는 듯, 숨을 거칠게 고르며 말했다.“하윤아, 이건 술이야.”하도진은 손끝으로 민하윤의 입가를 조심히 훔쳐내며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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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하도진은 민하윤을 안아 욕실로 들어갔다. 욕조엔 적당히 뜨거운 물이 가득 받아져 있었고, 민하윤이 몸을 기대자 물이 출렁이며 욕조 가장자리를 넘쳐흘렀다.민하윤은 하도진의 품에 편안히 기대었다. 얼굴은 술기운에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젖은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물에 젖은 긴 머리카락은 하도진의 넓은 가슴팍에 들러붙어 엉겨 있었다.“민하윤...”하도진은 참다못해 민하윤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이 와중에 또 잠든 거야?”민하윤은 몽롱한 눈빛으로 고개만 기울였다. 몸은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힘이 풀려 있었고 민하윤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기댈 곳을 찾았다. 결국 민하윤이 붙잡은 건 하도진뿐이었다.그 순간 하도진의 표정이 더 무거워졌다. 물소리가 잔잔히 이어지는 사이, 욕조 안에서 풀린 검은 머리카락이 물결을 따라 흔들렸다.하얗게 밝은 욕실에 김이 차오르며 시야가 흐려졌다가 어느 순간 민하윤의 정신이 선명해졌다. 그 순간, 민하윤은 술기운이 한꺼번에 가시며 숨이 멎는 듯했다.“이제야 깼네?”하도진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민하윤을 내려다봤다. 검은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쳤고 하도진은 자연스럽게 민하윤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쪽으로 자리를 바꿔 버렸다.민하윤은 반사적으로 두 팔을 감아 몸을 가렸다. 그러나 그 작은 몸짓은 하도진의 비웃음만 불러왔다.“지금 와서 가리면 뭐 해. 너무 늦었잖아.”민하윤은 숨을 삼켰다. 하도진은 욕조의 가장자리 가까이로 민하윤을 붙들어 두고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민하윤은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젖은 머리칼의 차가운 감촉에 몸을 떨며 손끝에 힘을 주었다. 눈부신 조명 아래에서 민하윤이 도망칠 곳은 없었다.물이 점점 식어 갔고 하도진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하도진은 민하윤을 물에서 건져 올려 마른 수건으로 단단히 감쌌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민하윤을 어깨에 메고 김이 서린 욕실을 빠져나왔다.따뜻한 난기가 가득한 방.두 사람은 결국 처음으로 되돌아왔다.천장 샹들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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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민하윤은 온몸이 욱신거렸다. 하도진은 민하윤을 안아 욕실로 데려가 씻겼고 민하윤은 버틸 힘조차 없어 그대로 맡길 수밖에 없었다.하도진이 깨끗한 수건으로 민하윤을 감싸 준 뒤, 민하윤을 민하윤의 침실로 다시 안아 옮겼다. 민하윤이 경계하듯 하도진을 바라보는데도 하도진은 아무렇지 않게 민하윤 곁에 누웠다.“뭐가 무서워? 할 짓도, 안 할 짓도 이미 다 했잖아.”하도진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민하윤을 바라봤다. 검은 눈동자에는 만족감이 짙게 어려 있었다.민하윤은 부르르 떨며 몸을 더 웅크렸다. 온몸이 쑤시고 아픈데도 하도진은 입꼬리만 비스듬히 올렸다가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하도진의 늘 느슨하고 태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내 방의 침대는 젖어서 못 자.”민하윤의 얼굴이 단숨에 달아올랐다. 하도진이 말하는 침대가 왜 젖었는지 민하윤도 모를 리 없었다.민하윤은 겨우 온몸의 뻐근함을 참아 내며 몸을 돌려 등을 보이고 누웠다.그 순간 하도진이 입술을 꾹 다물더니 민하윤의 허리를 감싸안으려고 팔을 뻗었다. 하도진은 뒤에서 민하윤을 와락 끌어안았다. 넓은 가슴이 민하윤의 여린 등에 빈틈없이 붙었고 핏대가 선명히 솟은 하도진의 손이 민하윤의 손바닥을 거칠게 감쌌다. 하도진은 민하윤의 손가락을 억지로 엮어 쥐고 민하윤의 허리를 돌아 두 사람을 단단히 묶어 버렸다. 민하윤과 하도진은 그렇게 한 덩어리처럼 붙잡힌 채로 잠이 들었다.예능 관찰자 스튜디오.고은율은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무릎 위에 두꺼운 대본을 올려두고 있었다. 스태프가 분홍 형광펜으로 고은율의 파트를 전부 표시해 둔 대본이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수정 화장을 하는 동안에도 고은율은 계속 스튜디오 입구 쪽을 힐끔거렸다.고은율은 휴대폰을 열었지만 하도진은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어젯밤, 회식 도중 하도진이 전화를 받더니 급히 자리를 떴다. 그 뒤로 하도진은 아예 연락이 끊겼다. 전화는 받지 않았고 문자도 읽지 않았다. 단체 채팅방에서 다들 하도진을 미친 듯이 태그하며 문자를 쏟아냈지만 하도진은 끝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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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백누리는 아무렇지 않은 척 휴대폰 화면을 꺼 버리더니 고은율에게 조용히 내밀었다.하지만 고은율은 차마 휴대폰을 받지 못했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텅 빈 눈으로 백누리만 멍하니 바라봤다.“이 바닥은 원래 선 넘는 팬 한두 명쯤은 꼭 있어요. 제가 이 번호는 이미 차단해 놨어요. 매니저한테 말해서 회사에 경호원 신청해요.”백누리의 말투는 차가운데 손길은 따뜻했다. 할 말만 딱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갔다.촬영은 아무 일 없던 듯 그대로 이어졌다.그 시각, 주민혁은 촬영장 모니터 화면을 보며 휴대폰 유심을 툭 빼냈다. 손가락으로 비틀어 부러뜨린 뒤, 손바닥 위에 조각을 펼쳐 보이자 옆에 있던 비서가 재빨리 새 유심을 내밀었다.주민혁은 유심을 끼우고 전원을 켰다. 턱을 쓸어내리며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고은율 씨는 참 겁도 많네. 죽은 고양이 한 마리로 저렇게 질리다니.”주민혁의 말끝이 잔잔해서 더 섬뜩했다. 주민혁은 아무렇지 않게 다음 명령을 내렸다.“더 재밌는 걸로 준비해 봐. 손이 예쁜 여자 모델 하나 잡아서... 손을 잘라 선물 상자에 담아 고은율한테 보내.”경호원이 난처한 표정으로 눈치를 봤다.“도련님, 그건 가문에 알려질 수도 있습니다.”주민혁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음산한 기운이 내려앉았다.“진서우 그 개자식은 어디 갔지? 요즘 왜 안 기어와? 아직도 진운 은행이 굴러가는가 보지? 길들일 줄 모르는 개는 끌고 나가서 죽여버려야 해.”경호원은 심기가 들쭉날쭉한 주민혁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불러오라고 할까요?”“쓸모없는 놈 같으니라고... 전 약혼녀 사진 하나도 못 구해오는 놈이 무슨 도움이 되겠어?”주민혁은 차갑게 잘라 말했다.“하도진의 아내 자료를 전부 준비해 오면 그때 기어 오라고 해. 그전에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고.”경호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려는 순간, 주민혁이 다시 불러 세웠다.“잠깐, 더 중요한 게 있어.”경호원이 멈춰 서자, 주민혁은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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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백누리는 카키색 긴 트렌치코트를 걸친 채 나무 아래 서 있었다. 발밑에는 장비랑 케이블이 엉켜 있었고, 귓가에 붙인 전화기에서는 전류 잡음만 찌릿하게 흘렀다. 차갑고 기계적인 안내 음성이 같은 멘트를 끝없이 반복했다.계단 위에 서 있던 임형섭이 검은 눈썹을 미세하게 찌푸렸다. 감정이 읽히지 않는 차가운 목소리였다.“아직도 연락 안 돼요?”백누리는 빨간 굽 하이힐로 발을 구르며 전화를 끊었다.“네. 어제 임형섭 씨가 하윤을 집까지 데려다줬잖아요. 그럼 됐죠. 뭐가 그렇게 걱정돼요?”백누리는 손을 비비며 힐끗 임형섭의 긴 캐시미어 코트를 쳐다보다가 불쌍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말끝을 길게 늘어뜨리며 툭 던졌다.“형섭 씨... 저 추워요.”“기사 불러서 호텔로 가요.”임형섭은 어젯밤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고 시선을 내리깔더니 휴대폰을 꽉 쥐었다.그 순간, 표정이 와르르 무너진 백누리가 하이힐을 또각또각 울리며 임형섭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이럴 때는 남자가 자기 외투 벗어서 여자한테 덮어 주는 게 맞는 거 아니에요?”“저는 그런 남자랑 안 어울려요.”임형섭이 백누리를 한 번 쓸어보고 말았다. 창백한 얼굴에 귀 끝만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백누리는 얇은 트렌치코트에 치마 차림으로 밤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었다.백누리는 어깨를 으쓱했지만 이상하게도 화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임형섭 씨는... 언제부터 하윤이를 좋아했나요?”임형섭은 대답하지 않자, 백누리가 혼잣말처럼 덧붙였다.“저랑 임형섭 씨도 같은 학교였잖아요. 근데 그때는 저도 하윤이랑 별로 안 친했거든요. 그냥... 평범한 동기였을 뿐이죠.”“네.”임형섭은 백누리를 한 번 보더니 짧게 대답했다.“하윤이 앞에서는 할 말이 그렇게 많으면서, 왜 제 앞에서는 이렇게 조용해요?”백누리는 성격이 직설적이었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였다. 할 말들을 속으로 삭이지 않고 바로 내뱉는 편이었다.임형섭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휴대폰을 넣어 버렸다. 잠깐 생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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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백누리는 동공이 살짝 줄어든 채, 손에 쥔 사진 뭉치를 빠르게 넘겨 봤다.찍힌 사진들은 너무 가까웠다. 몇 장은 백누리의 옆얼굴이 선명하게 잡혔고, 남자는 표정이 어둑하게 가라앉은 채 시선을 백누리 뒤쪽의 민하윤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또 다른 사진에는 남자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장면도 있었다.정작 사진 속 남자 얼굴은 대체로 흐릿했다. 카메라는 오히려 두 젊은 여자 쪽에 초점을 맞춘 채였다.“이 사진들이... 밖으로 퍼졌어?”백누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앞뒤가 잘린 이런 사진이 한 번이라도 공개되면, 언론이든 악의적인 팬들이든 사진 한 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낼 게 뻔했다. 그러면 백누리의 커리어는 치명타를 맞고, 민하윤까지 엮여서 개인 정보가 노출되고 일상이 망가질 수도 있었다.나은지는 백누리를 위아래로 훑으며 단호하게 말했다.“운이 좋았어. 회사에서 돈을 크게 써서 다 사들였어. 아직은 안 터졌어.”나은지는 표정 하나 안 풀고 물었다.“백누리, 너랑 이 남자는 무슨 관계야?”백누리는 숨을 삼키고 또박또박 못 박았다.“아무 관계도 없어요. 그냥... 좀 불쾌한 일이 있었을 뿐이에요.”나은지는 사진 속 그 남자 위로 새빨간 손톱을 탁 얹었다.“누리야, 내가 널 데리고 왔으니까 말해 주는 건데, 저 남자는 건드리지 마. 엮일 일 자체를 만들지 말고.”백누리는 나은지가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구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습관처럼 이유를 물으려 했다.나은지는 정면으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애매하고도 섬뜩한 말만 던졌다.“저 남자 쪽에 걸린 사람은... 멀쩡히 못 나와. 죽든, 망가지든... 온전한 사람으로 빠져나간 경우는 전혀 없어.”그 말에 백누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얘졌다. 어제 신고하자는 말에도 주민혁이 꿈쩍도 안 했던 이유가 이제야 피부로 와닿았다.나은지는 백누리의 손을 잡아끌어 백누리 손바닥에 무언가를 꾹꾹 눌러썼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이 사람의 후손이야.”백누리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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