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사랑한다고 말해줘 / Chapter 351 - Chapter 360

All Chapters of 사랑한다고 말해줘: Chapter 351 - Chapter 360

363 Chapters

제351화

민하윤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마치 희망이라도 본 사람처럼 현관문 쪽을 올려다봤다.나지혜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양손에 채소와 과일이 가득 든 봉투 두 개를 들고 들어오다가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민하윤을 보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모님, 어디 불편하세요? 얼굴이 왜 이렇게 안 좋아요? 어머나, 식은땀까지 이렇게 많이...”나지혜는 목소리까지 떨며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달려왔다. 그러고는 허둥지둥 휴대폰을 꺼내 응급차를 부르려 했다.민하윤은 숨을 고르며 나지혜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핏기 하나 없는 입술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다급하게 2층 쪽을 가리켰다.나지혜가 민하윤의 손끝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위층에서 무언가를 뒤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나지혜는 입을 틀어막고 소곤거렸다.“집에 도둑 든 거예요?”민하윤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끝이 떨렸지만 애써 수어를 이어 갔다.[관리실이랑 경비팀에 연락해서 처리해 주세요.]나지혜는 놀란 얼굴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민하윤의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보여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사모님, 그래도 구급차부터 부를게요. 어디 다치신 거 아니에요?”‘안 돼...’민하윤은 급한 마음에 입까지 벌렸지만 당연히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민하윤은 나지혜 손을 붙잡고 연신 고개를 저었다.[저는 괜찮아요. 그냥 한 번 넘어진 게 너무 놀라서 그래요. 다친 데는 없어요.]민하윤은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지혜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한편 민희수는 눈이 번쩍였다.복도 끝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선 민희수는 통유리창 앞에 서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원시 상권을 바라봤다.방 안에는 거대한 침대가 놓여 있었고 검은색과 회색 위주의 단정한 침구가 깔려 있었다. 차갑고 고급스러운 백단과 화이트티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민희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침대를 한 번 쓸어 보더니 낮게 웃음을 흘렸다.남자 옷방은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잘 다려진 고급 맞춤 정장
Read more

제352화

민희수는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바쁘게 움직였다.새 쇼핑백을 몇 개 더 끌어와 눈에 보이는 가방들을 닥치는 대로 쓸어 담기 시작했다.몇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유리 아일랜드장 안에는 보석과 장신구가 가득했다.젊은 취향의 핑크 다이아 풀세트, 사파이어 목걸이, 색색의 보석들이 정신없을 만큼 진열돼 있었다.소장용 비취 팔찌와 펜던트도 눈에 띄었다. 투명도도 뛰어났고 빛깔도 좋았다. 크기까지 커서, 한 번 시선이 닿으면 쉽게 떼기 어려울 정도였다.이 드레스룸 전체가 돈으로 찍어 누르듯 꾸며진 공간 같았다.태그도 떼지 않은 새 옷과 가방이 그냥 먼지를 뒤집어쓴 채 놓여 있었다.이 정도쯤 되면 단순히 돈만 많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엄청난 돈은 물론이고, 그만큼의 애정과 정성까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민하윤은 늘 궁핍한 삶에 익숙했던 사람이었다.이런 값비싼 물건들에 애착을 느낄 사람이 아니었다. 이렇게 귀한 것들을 쌓아 두고 먼지만 앉게 놔둘 리도 없었다.그러니 이 모든 건 민하윤이 산 게 아니라 하씨 가문의 그 은밀한 후계자가 민하윤을 위해 준비해 둔 것일 수밖에 없었다.질투가 민희수의 이성을 완전히 집어삼켰다.그 순간, 민희수는 민하윤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해 여기 남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견딜 수 없는 불공평함이 가슴속에서 들끓었다.‘왜 민하윤이 이런 사랑을 받아야 하지? 말도 못 하는 그 여자가 왜 이렇게까지 정성 어린 사랑을 받아야 하느냐고!’그런 생각에 민희수의 속은 점점 더 타들어 갔다.민희수는 입술을 꽉 깨문 채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도 거의 미친 사람처럼 드레스룸을 털어 갔다.그리고 그 뒤로 검은 제복을 입은 건장한 남자들이 이미 여러 겹으로 에워싸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한편 하도진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하도진은 공항 터미널 밖으로 반짝이는 불빛들을 노려보며 전화기 너머를 향해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매년 관리비를 수천만 원씩 내는데 그 돈을 받
Read more

제353화

새벽 두 시.창밖에서는 아직도 밤바람이 멎지 않았고, 가득 핀 벚꽃이 바람을 따라 사각사각 흔들렸다. 은은한 꽃향기가 실처럼 가늘게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침대 한쪽이 조용히 꺼졌다.남자는 초봄 한밤의 냉기를 그대로 몸에 두른 채, 옷도 갈아입지 않고 누워 뒤에서 민하윤을 끌어안았다.민하윤은 원래 잠이 얕았다. 몸을 웅크린 채 자고 있다가 금세 눈을 떴고, 본능적으로 허리와 아랫배를 감싸고 있는 하도진의 두 손을 떼어 내려 했다.“깼어?”하도진의 목소리는 잠긴 듯 낮았다. 까슬하게 올라온 턱수염이 민하윤의 어깨를 살짝 스쳤다.불도 켜지지 않은 방 안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깊고 얕은 숨소리만 들으며 누워 있었다.“하윤아, 무서웠지?”하도진은 민하윤의 손을 도로 감싸 쥐고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더 강하게 품 안에 가뒀다.민하윤은 어둠 속에서 하도진을 등진 채 누워 있었다.그래서 하도진이 지금 어떤 얼굴로 이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하도진은 숨을 깊게 들이켰다. 목울대가 민하윤의 가늘고 여린 등에 닿았다. 하도진은 얼굴을 민하윤 목덜미에 묻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든 익숙하고 좋은 향기를 조용히 맡았다.민하윤은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자기도 모르게 긴장으로 등이 뻣뻣해졌다. 민하윤은 뱃속 아이가 다칠까 봐 감히 움직이지도 못했다.하도진은 이미 민하윤의 침묵에 익숙해져 있었다.하도진은 꾹 참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가에 차오른 뜨거운 기운을 애써 눌러 삼켰다.“내가 없을 때 그 미친 여자가 널 다치게 했어?”“하윤아, 너는 맨날 아픈 것도 참고 삼키기만 할 거야?”하도진이 내뿜는 숨결 때문에 서늘해야 할 밤공기가 이상하게도 뜨겁고 아슬하게 달아올랐다.목소리는 낮고 사람을 홀리는 듯했지만 그 밑에는 다른 감정이 가늘게 섞여 있었다.민하윤은 그 감정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었다.하지만 하도진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하도진은 민하윤의 어깨를 돌려 억지로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뜨거운 숨결이 민하윤의 피부 위로 쏟아졌다.
Read more

제354화

민하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신도 모르게 아직 평평한 아랫배를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하도진은 품 안의 민하윤이 놀란 새처럼 잔뜩 긴장해 있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하도진은 손을 들어 민하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잠이 몰려오는지 목소리도 한층 느슨했다.“편하게 자. 아무것도 안 할게.”그제야 민하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굳어 있던 몸도 조금씩 풀렸다. 민하윤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다음 날 아침.민하윤은 누군가의 품 안에 단단히 안긴 채 잠에서 깼다. 서로 몸을 깊게 맞댄 채, 지나치게 가까운 자세였다. 상대의 가슴에서 울리는 묵직한 심장 소리까지 또렷하게 느껴졌다.민하윤은 조심스럽게 몸을 빼내 보려 했지만 하도진은 오히려 더 세게 끌어안았다.“움직이지 마. 졸려.”하도진은 눈살을 찌푸린 채 민하윤 어깨를 눌렀다.그러더니 반쯤 감긴 눈으로 민하윤을 올려다보며 낮게 말했다.“네가 안 졸리면... 이렇게 시간만 버리지 말고 다른 의미 있는 일을 할 수도 있는데.”말투에는 대놓고 장난기 섞인 협박이 묻어 있었다. 하도진이 눈을 뜨자 검고 깊은 눈빛이 그대로 마주쳤다.민하윤은 어렵게 침대맡 휴대폰을 집어 들고 문장을 입력했다.[오늘 은행 분기 실적 평가가 있어요. 늦으면 안 돼요.]민하윤이 한 말은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하지만 분명 핑계이기도 했다.퇴원할 때 의사는 임신 초기에는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몇 번이고 강조했다.민하윤은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민하윤은 어렵게 찾아온 이 아이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겼다.하도진은 화면이 깨진 민하윤 휴대폰을 빼앗아 옆으로 던져 버렸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으로 민하윤을 바라보던 하도진의 목울대가 천천히 움직였다.하도진의 목소리는 다시 잠기듯 낮아졌다.“하윤아, 우리는 일주일 만에 만났어. 넌 내가 뭘 원하는지 알잖아.”그 눈빛만 봐도 무슨 뜻인지 모를 수 없었다.민하윤은 고운 눈썹을 꽉 찌푸린 채, 하도진의 손을 다급히 붙잡았다.
Read more

제355화

민하윤은 카드를 찍고 종종걸음으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문이 닫히려는 순간, 멀리서 걸어오던 몇 사람은 안색이 바꿨다.민하윤은 곧바로 열림 버튼을 눌렀다.“감사합니다.”그러자 젊은 여자 한 명이 진심으로 고맙다는 듯 말하며 방금 산 커피를 내밀었다.민하윤은 웃으며 고개를 저어 사양한 뒤, 곧장 신용대출 팀이 있는 층 버튼을 눌렀다.“어, 선배님도 신용대출 팀으로 가세요? 안녕하세요.”아까 커피를 건넸던 여자가 반갑게 인사했고 옆에 서 있던 젊은 남녀 둘도 따라 웃으며 인사했다.민하윤은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액정이 산산조각 나 타자를 하기가 꽤 불편했지만 그래도 천천히 글자를 눌렀다.[신용대출 팀으로 가는 거예요? 신입 인턴들인가요?]그러자 세 사람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새로 산 듯한 흰 셔츠와 정장 차림, 아직 다크서클도 주름도 없는 맑은 얼굴, 누가 봐도 막 학교를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이었다.민하윤은 휴대폰을 다시 내려다보며 짧게 적었다.[실습 잘하세요. 우리 팀에 온 걸 환영해요.]그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민하윤이 먼저 밖으로 나갔다.민하윤은 굽이 고작 3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낮은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도 한 걸음 한 걸음을 무척 조심스럽게 내디뎠다.그것도 드레스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낮은 굽이었다.민하윤은 퇴근하고 나면 백화점에 들러 플랫슈즈를 몇 켤레 더 사고 휴대폰도 새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이남주는 승진하면서 민하윤이 예전에 쓰던 사무실로 옮겨 갔다.민하윤은 걸음을 멈추고 이남주 사무실의 반투명 유리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문을 살짝 연 뒤 자기 뒤에 따라온 젊은 인턴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남주에게 눈짓했다.이남주는 삶은 달걀을 한입 가득 물고 있다가 허겁지겁 씹어 삼킨 뒤 말했다.“새로 온 인턴들은 제가 배치해 둘게요. 그리고 10시에 본점 회의실에서 분기 회의 있는 거 아시죠? 꼭 가셔야 해요.”민하윤은 손으로 오케이 표시를 해 보였다.그리고 칸막이로 나뉜 자리들을 지나 햇빛이
Read more

제356화

이남주는 우유 뚜껑을 따서 민하윤에게 건넸다.“회장님이 왜 갑자기 언니를 보자고 했을까요? 그분은 거의 다 권한을 내려놓으셨잖아요. 주주총회 아니면 은행에도 잘 안 나오시는데요.”민하윤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기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얘기 하셨어요?”[별말은 없었어요. 평소에 일이 힘들지 않냐고 물으시고 그냥 몇 마디 나눴어요. 비서한테 식사도 두 사람분 시키라고 하셨는데 회장님 앞에서는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요.]“그럴 만하죠. 저라도 회장님이 앞에 떡 버티고 있으면 밥 못 먹어요.”이남주는 단번에 민하윤이 왜 이렇게 허겁지겁 먹는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과자 몇 봉지를 더 뜯어 민하윤의 앞으로 밀어줬다.민하윤은 정말 배가 고팠다. 임신한 뒤로 식욕이 부쩍 늘었다. 입덧은커녕 오히려 더 잘 먹게 됐다.태유 은행 본사 건물을 나서자 길가에 임형섭의 차가 서 있었다. 민하윤은 그 자리에 멈춰 한참을 망설이자 임형섭은 쇼핑백 몇 개를 든 채 곧장 다가왔다.“점심때 휴대폰을 회의실에 두고 갔더라. 액정이 왜 그렇게까지 깨졌어? 하도진이 돌아온 거야?”임형섭은 민하윤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도 걱정은 숨길 수 없었다.이건 거의 병에 걸린 정도였다.임형섭은 민하윤을 걱정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이런 관심이 민하윤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임형섭은 멈출 수가 없었다.민하윤을 보지 못하면 미칠 것처럼 속이 타들어 갔고 자꾸만 가까이 가고 싶었고, 또 걱정하게 됐다.민하윤은 쇼핑백들을 내려다봤다.안에는 최신형 휴대폰도 있었고 몸에 좋은 영양제며 건강보조제도 있었고 신발 상자 하나도 들어 있었다.[선배, 저는...]민하윤은 어떻게 이 호의를 거절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깨물었고 수어를 하려던 두 손도 허공에서 멈췄다.임형섭은 억지로 담담한 척 웃었다.“하윤아, 다른 뜻은 없어.”민하윤은 입술을 깨문 채 쇼핑백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오른손 엄지를 살짝 아래로 접었
Read more

제357화

하도진은 뒷좌석에 기대앉은 채, 못마땅하다는 듯 쇼핑백 몇 개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렸다.“아주 정성도 지극하네. 휴대폰이 깨지자마자 바로 새 걸 사다 주다니 말이야.”하도진은 몸을 앞으로 조금 숙였다.“어디 한번 보자. 또 뭘 사 줬어?”하도진이 쇼핑백 안을 들춰보려는 순간, 민하윤이 두 손으로 하도진의 얼굴을 감쌌다.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좁은 차 안 공기가 순식간에 미묘하게 달아올랐다.하도진은 민하윤의 손을 붙잡더니 고개를 기울여 손바닥 위에 입을 맞췄다.눈꼬리를 살짝 올린 채, 하도진은 늘 그렇듯 건성건성한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무슨 뜻이지? 날 유혹하는 거야?”민하윤은 온몸에 열이 확 오르는 걸 느꼈다.귓불은 새빨개졌고 얼굴이 달아올라 뜨거울 정도였다.하도진은 일부러 민하윤을 놀리고 있었다.관심도 쇼핑백에서 민하윤에게로 완전히 옮겨갔다.하도진의 손끝이 촉촉한 민하윤의 입술을 가볍게 스쳤다.“홍 어르신이 지어 준 한약은 아직도 먹고 있어?”민하윤은 차마 약을 끊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임신 사실을 안 뒤부터 민하윤은 아주 조심스러워졌다. 먹는 것, 쓰는 것 하나까지 전부 신경 썼다. 감히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이 아이는 하늘이 준 선물이었다.민하윤은 처음부터 하도진과 평생 함께 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반드시 하도진의 곁을 떠날 생각이었다.하지만 아이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었다.이제 몇 년 뒤면 민하윤도 서른을 앞두게 될 터였고, 지금은 연봉도 제법 괜찮았으니 아이 하나쯤 충분히 책임질 수 있었다.민하윤은 아이를 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이 아이가 하씨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한 존재라고 여긴 적도 없었다.민하윤은 알고 있었다.자신이 뱃속의 아이를 사랑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그 아이는 민하윤의 아이였다.민하윤의 피와 살로 품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혈육이었다.그런 사랑은 아주 순수했다.어떤 조건도 계산도 붙지 않는 사랑이었다.민하윤이 평생 가장 목말라했던 엄마의 사랑이었다.민하
Read more

제358화

민하윤은 재빨리 차창을 내리고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듯 깊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름 모를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 들어왔다.반면 하도진은 입가를 한 번 핥으며 여운을 음미하듯 웃고 있었다. 얼굴에는 만족감이 가득했다.‘진짜 변태, 뻔뻔한 강도에 완전 양아치야.’민하윤은 속으로 하도진을 있는 대로 욕했다.하도진은 곁눈질로 민하윤의 얼굴을 훑었다. 볼을 잔뜩 부풀린 채 삐진 듯 붉어진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괜히 더 기분이 좋아졌다.이런 상황에서 뽀뽀 한 번 더 안 하면 그게 바보였다.천천히 감정을 쌓자고 한 것뿐이지 진짜 하도진더러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 중처럼 살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유 기사님은 역시 베테랑 기사였다. 뒷좌석 분위기가 얼마나 요란하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묵묵히 운전만 했다. 속도도 안정적이었고 차는 거의 흔들림 없이 미끄러지듯 달렸다.하도진은 긴 다리를 포개고 앉은 채, 조금 전 입맞춤의 감촉을 아직도 곱씹고 있었다.그때 뜬금없이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하도진은 고개를 돌려 민하윤을 한 번 보고는 느긋하게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그런데 상대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곧바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하도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한 손으로 민하윤의 귓불을 천천히 만지작거리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응. 안 가.”수화기 너머로 진호영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아, 왜? 여긴 분위기 벌써 다 달아올랐는데... 송지훈 그 일벌레도 왔고, 은율 누나도 광고 촬영까지 미뤘어. 근데 형만 안 온다고?”하도진은 얼굴을 굳힌 채 옆 창문을 조금 내렸다. 그러자 바람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난 더 중요한 일이 있어. 안 간다고 했으면 안 가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를 할 시간이 없어.”“뭔 중요한 일인데? 형, 주민혁이 주해에서 돌아오자마자 집안 어르신한테 집에 갇혀서 못 나가게 된 거 알아?”“네 형수님이랑 시간 보내느라 몰랐어.”하도진은 미간을 한 번 누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Read more

제359화

검은색 마이바흐는 콜드 블루 클럽 앞에 조용히 멈춰 섰다.왼쪽에는 선명한 노란색 페라리, 오른쪽에는 은백색 투톤의 맥라렌 세나가 세워져 있었다.차는 두 대 사이 빈자리에 정확히 멈췄다.기사는 시동을 끄고 먼저 내려 두 사람이 따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다.민하윤은 한 손을 문손잡이에 얹은 채, 의아한 얼굴로 옆에 앉은 하도진을 바라봤다.[왜 그래요?]민하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수어를 했다.[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하도진이 너무 빤히 쳐다보는 바람에 민하윤은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민하윤은 영문도 모른 채 손등으로 자기 뺨을 한 번 문질렀다.하도진은 저도 모르게 민하윤의 볼을 가볍게 꼬집듯 만졌다. 목소리도 한결 부드러워졌다.“저 안에 있는 애들은 다들 좀 제멋대로야. 혹시 누구 때문에라도 불편해지면 바로 나한테 말해.”민하윤은 옅게 웃었다.그러자 민하윤의 볼에는 아주 작고 얕은 보조개가 스쳤다.콜드 블루 클럽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고급 회원제 휴식 공간이었다. 예약한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 보안도 철저했고 휴식과 오락이 한데 섞인 상류층 전용 사교 공간에 가까웠다.두 사람은 둥근 아치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눈앞에는 몇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인공 암석이 솟아 있었고 아래쪽 샘에서는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가짜 바위산과 졸졸 흐르는 물길을 돌아서 구불구불 이어진 긴 복도를 지나던 민하윤은 문득 익숙한 실루엣 하나를 스치듯 봤다.민하윤이 다시 확인하려는 순간, 하도진의 목소리가 생각을 끊어 놓았다.“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완전히 넋이 나갔는데?”민하윤은 입술을 다문 채 고개를 저었다.아마 잘못 본 걸 거라고 자신을 달랬다. 주민혁 그 변태 같은 남자는 한동안 민하윤 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하도진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맨 위층 버튼을 눌렀다.벽에 등을 기대고 선 하도진은 그대로 눈을 감고 잠시 쉬는 듯했다
Read more

제360화

그 순간, 뒤에서 주민혁의 휘파람 소리가 건들거리듯 울렸다.“아, 맞아. 민하윤 씨는 진짜 예쁘네. 방송에 나오는 걸 못 본 건 좀 아쉬워.”그대로 걸음을 멈춘 하도진은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하도진은 몸을 돌려 주민혁의 음침한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하도진은 정말 후회됐다.그때 괜한 인정 따위 베풀지 말아야 했다. 그때 주민혁의 목숨을 살려 둔 게, 결국 자기 발밑에 끝도 없이 터질 지뢰를 묻어 둔 셈이 됐다.그때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이 가볍게 하도진의 손끝을 감쌌다.민하윤이었다.민하윤은 고개를 저으며 괜히 상대하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다.주민혁의 얼굴이 순간 굳었고 입가에 걸려 있던 웃음도 그대로 얼어붙었다.‘도대체 언제부터 둘 사이가 저렇게 가까워진 거야? 민하윤은 하도진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하도진은 민하윤이 놀랄까 봐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겨우 화를 눌러 삼킨 채 민하윤의 손을 잡고 복도 끝에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주민혁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복도에 멍하니 서 있었다.서로 바짝 붙어 걷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자, 주민혁은 가슴속에서 질투와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치밀어 올랐다.가늘게 찢어진 눈을 가늘게 뜬 채 주민혁은 마침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자신이 민하윤에게 품은 감정이 예전과는 달라졌었다.그런 감정은 원래 하도진이 아끼는 걸 부숴 버리겠다는 목적과 점점 어긋나고 있었다....하도진이 방문을 열자, 진호영이 노래방 기계 옆 의자에 한쪽 발을 올린 채 마이크를 두 손으로 잡고 있었다.시끄러운 록 메탈 음악에 맞춰 고개를 흔들며 완전히 취한 사람처럼 놀고 있었다.하도진과 진호영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곧장 진호영의 시선은 하도진을 넘어서 뒤에 선 민하윤에게로 옮겨 갔다.순간 진호영 얼굴에 민망함이 번졌고 노래도 그대로 뚝 끊겼다.“왜 멈춰? 계속해.”하도진은 웃음을 겨우 누른 채 손을 들어 보였다.진호영더러 자기들 신경 쓰지 말고 원래 하던 대로 록의 세계에서 마음껏 날뛰
Read more
PREV
1
...
323334353637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