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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한다고 말해줘: Chapter 701 - Chapter 710

799 Chapters

제701화

기사가 차를 광성 빌딩 지하 주차장에 세우고 정중하게 물었다.“사모님, 주변에 숨어서 찍고 있는 사람들은 처리할까요?”민하윤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선글라스를 벗고 미간을 찌푸렸다.백미러 너머 구석에 세워진 흰색 밴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총처럼 길쭉한 망원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괜찮아요. 저 사람들이 노리는 건 제가 아니에요.”기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백미러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수상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계속 살피며 말했다.“사모님,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민하윤은 고개를 끄덕이고 가방을 든 채 차에서 내렸다.엘리베이터를 타고 27층까지 올라가자 직원이 민하윤을 예약된 룸으로 안내했다.문이 열리는 순간 구이현이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구이현은 눈이 퉁퉁 부어 있었고 앞에는 쓴 휴지가 작은 산처럼 수북이 쌓여 있었다.민하윤을 본 순간 구이현은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감정이 무너졌는지 코를 훌쩍이더니 결국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어디 있어?”구이현은 벌게진 눈으로 가방을 뒤적여 접어 둔 휴지를 꺼냈다.휴지 안에는 이미 사용한 임신 테스트기가 들어 있었다.민하윤은 한참 동안 자세히 살펴봤다.두 번째 줄은 아주 옅은 분홍색이었다.민하윤은 테스트기를 천천히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송지훈 씨는 알아?”구이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듣고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말하지 마. 난 아직 이 아이를 낳을지 말지 결정 못 했어.”구이현의 목소리에는 애원하는 기색까지 묻어 있었다.구이현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고 설마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했고 상대는 자신보다 열 살이나 많은 데다 오빠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였다.구이현 같은 집안에서 연애와 결혼은 자기 뜻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마음대로 상대를 고를 자유는 없었고 결국 집안끼리 조건을 맞춘 결혼이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졌다.“언제까지 숨길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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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2화

“결정은 네가 해. 송지훈 씨한테 말하고 둘이 같이 책임을 지든지 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몰래 아이를 지우든지...”백누리는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후자를 선택하면 두 사람 사이에는 평생 지울 수 없는 벽이 남을 거야.”구이현은 벌게진 눈으로 두 무릎을 끌어안고 얼굴을 파묻었다.손끝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시선은 다시 테이블 모서리에 놓인 임신 테스트기로 향했다.한참을 망설이던 구이현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 잠금을 풀고 번호 하나를 눌렀다....송지훈은 막 수술실에서 나온 참이었고 무려 여섯 시간 동안 이어진 고강도 뇌수술을 끝낸 탓에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송지훈이 벽에 등을 기대고 잠시 눈을 감고 있었는데 수술 보조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송 선생님, 계속 전화가 오고 있습니다.”송지훈은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구이현은 평소 그가 근무 중일 때 먼저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이렇게 전화를 계속 걸어온 건 처음이었다.송지훈은 구이현에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지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런데 전화를 받으려는 순간 통화가 끊겼다.송지훈은 곧바로 수술모와 장갑을 벗고 손을 씻은 뒤 휴대전화를 움켜쥔 채 조용한 복도로 향했다.다시 전화를 걸자 구이현은 3번 만에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응. 나 방금 수술 끝났어. 무슨 일 있어?”“이따가 또 수술 있어요?”구이현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당황하고 겁에 질린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송지훈의 사정을 생각한 건 구이현의 오래된 습관이었다.“없어. 그런데 너 울었어?”송지훈은 단번에 이상함을 알아차렸다.그러고는 창밖을 잠깐 바라본 뒤 곧장 엘리베이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안 울었어요.”구이현은 코를 훌쩍이면서도 끝까지 아니라고 우겼다.그러다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민하윤의 차분한 눈빛과 마주치자 마침내 용기를 냈다.“저 할 말 있어요.”잠시 숨을 고른 뒤, 구이현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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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3화

구준오는 술자리 접대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온몸에 술 냄새가 밴 채 지친 듯 좌석에 기대 있었고 손끝에는 이미 다 타 버린 담배 한 개비가 끼워져 있었다. 반쯤 열린 차창 밖으로 희뿌연 담배 연기가 흩어졌다.그때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렸다.전화를 받자 너머에서 희미하게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어머니의 싸늘한 목소리가 이어졌다.“어디야? 당장 집으로 와.”구준오는 순식간에 술이 확 깼다.불길한 예감에 미간을 찌푸린 채 기사에게 차를 돌려 경원 별장으로 가라고 했다....술 냄새를 풍기며 집에 도착한 구준오는 현관 앞에 세워진 검은색 SUV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송지훈의 레인지로버였다.‘이 늦은 시간에 송지훈의 차가 왜 여기 있는 걸까?’아까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을 때 들렸던 울음소리까지 떠올리자 불안감이 더욱 짙어졌다.구준오는 무거운 걸음으로 돌계단을 하나씩 올라갔다.가사도우미가 다가와 외투를 받아 현관에 걸어 주면서 이상한 표정으로 몇 번이나 눈치를 줬다.하지만 구준오는 그런 의미를 알아차릴 겨를도 없었다.거실 쪽에서 희미하게 동생 구이현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고 곧장 불이 환하게 켜진 거실로 향했다.구이현은 소파에 앉아 있었고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붓고 새빨개져 있었다.구준오를 발견하자 참았던 서러움이 다시 밀려왔는지 구이현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울먹였다.“오빠, 나 좀 도와줘.”구준오는 하나뿐인 동생을 어릴 때부터 금이야 옥이야 아꼈다.두 사람은 나이 차이가 꽤 났고 주변 친구들 대부분이 외동으로 자란 탓에 구준오에게 어린 동생은 더욱 각별한 존재였다.하늘의 달이나 별처럼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만 아니라면 구이현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해 주고 싶어 했다.구이현이 한마디만 하면 이유도 묻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 들어줬다.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동생이 지금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울고 있었다.구준오는 집에 낯선 사람이 있다는 것조차 신경 쓰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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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4화

“송지훈, 난 널 친구라고 믿었어. 그런데 네가 감히 내 동생한테 손을 대?”구준오는 주먹을 꽉 쥐고 그대로 송지훈의 얼굴을 후려쳤다.정확하고 거센 주먹에 송지훈의 고개가 옆으로 크게 돌아갔다. 그 순간, 이가 혀와 입천장을 세게 스치면서 입안에 비릿한 피 맛이 번졌다.“이현이랑 결혼할 거야.”송지훈이 침착하게 대답했다.“난 이현이와 결혼하고 싶어.”늘 잔잔하던 눈빛에도 그제야 미세한 흔들림이 일었다.구준오가 버럭 소리쳤다.“꿈도 꾸지 마. 네가 내 동생이랑 결혼해? 이번 생은 물론이고 다음 생에도 어림없어!”구준오는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난 널 친구라고 믿었는데 네가 한 짓이 이거야? 이현이는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이야. 넌 걔보다 열 살이나 많잖아. 어떻게 내 동생한테 그런 마음을 품을 수가 있어?”송지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코 안쪽에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의사인 송지훈은 바로 코피라는 걸 알아차리고 손등으로 담담히 닦아 냈다.“열 살 차이인 건 알아. 하지만 이현이가 미성년자였을 때는 어떤 선도 넘지 않았어.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송지훈은 구준오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난 진심으로 이현이를 좋아해.”구준오는 기가 막힌다는 듯 다시 송지훈의 멱살을 움켜잡았다.“미성년자일 때 아무 짓도 안 했다고 지금 그걸 자랑이라고 해?”구준오는 이를 악물었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미성년자일 때부터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으면 그게 더 미친놈이지!”“오빠...”구이현은 너무 울어 목소리까지 쉬어 있었고 황급히 달려와 구준오의 소매를 붙잡으며 어떻게든 진정시키려 했다.구준오는 송지훈을 밀어내며 차갑게 말했다.“꺼져. 앞으로 내 눈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마. 내가 그동안 사람을 잘못 봤어. 오늘부터 너랑 난 이제 친구도 뭐도 아니야.”그때 구이현이 울먹이며 말했다.“오빠, 나 지훈 오빠의 아이를 가졌어.”구준오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잠시 귀가 먹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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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5화

민하윤이 하씨 본가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주주는 분유를 먹고 일찌감치 잠들었고 연이는 거실 가득 놓인 장난감을 혼자 차지한 채 신나게 놀고 있었다.고작 하루 집을 비웠을 뿐인데 장난감이 또 부쩍 늘어난 것 같았다. 넓은 거실이 온통 아이들 물건으로 가득 찰 정도였다.고풍스럽고 우아하게 꾸며진 거실을 둘러보면 알록달록한 장난감밖에 보이지 않았다.노란색 대형 포클레인 장난감, 빨간 소방차, 목마와 아기용 미니 피아노, 오뚝이, 말랑한 블록까지 종류도 다양했다.소파 위에는 그림책과 유아용 책, 새로 산 아기 옷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거실 한쪽에는 아예 아이들을 위한 공간까지 따로 마련해 안전 울타리를 둘러놓았다.연이는 그 안의 놀이 매트에 앉아 통통한 자기 손을 정신없이 빨고 있었다.그 주변에는 어른들이 둘러앉아 연이를 보며 연신 감탄했다.“아이고, 귀여워라. 손이 그렇게 맛있어?”“우리 아기는 정말 똑똑하네. 하는 짓마다 어쩜 이렇게 예쁜지...”김옥자는 돋보기안경까지 쓰고 눈을 가늘게 뜬 채 휴대전화를 들었다.통통하고 사랑스러운 증손주를 카메라에 담느라 화면을 연신 눌러 댔다.민하윤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역시 이때쯤의 아기들은 뭘 해도 모두의 관심을 받았다. 손가락 하나 빠는 것만으로도 온 가족이 둘러앉아 귀엽다며 난리였다.“할아버지, 할머니. 저 왔어요. 오늘 애들 봐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민하윤은 두 분께 인사를 건네면서 몸과 손을 꼼꼼히 소독했다.“고생은 무슨... 애들이 얼마나 얌전한데... 우리야 둘이랑 놀아서 너무 좋았지.”“저녁은 먹었니? 안 먹었으면 사람 시켜서 밥 데우고 국도 새로 끓이라고 할게.”민하윤은 얼른 손사래를 쳤다.“괜찮아요. 친구들이랑 밖에서 먹고 왔어요.”익숙한 엄마의 목소리를 들은 연이가 작은 머리를 힘껏 뒤로 젖히며 민하윤을 바라봤다.그러고는 옹알옹알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열심히 엄마를 불렀다.하지만 민하윤은 바로 안아 주지 않고 먼저 화장실로 가 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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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6화

민하윤은 가끔 자신이 리틀 하도진을 낳은 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었다.주주는 이제 겨우 다섯 달밖에 안 됐는데도 이상하리만큼 의젓하고 차분했다.예방접종을 하러 병원에 갔을 때도 그랬다.연이는 동그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주변을 구경하느라 신이 나 있었다. 사람만 보이면 방긋방긋 웃어 대더니 막상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순간 표정이 확 바뀌었다.연이는 그대로 민하윤 품에 얼굴을 묻고 서럽게 울어 댔다.반면 주주는 전혀 달랐다.진지한 얼굴로 자신에게 주사를 놓는 의사를 빤히 바라보더니 바늘이 들어가는 순간에도 살짝 미간만 찌푸렸을 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그러고 보니...’민하윤의 시선이 잠든 주주에게 천천히 향했다.태어난 뒤로 민하윤은 아직 주주가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본 것 같았다.엄마가 된 뒤 민하윤은 두 아이를 거의 직접 챙기다시피 했다.평소에는 산후도우미와 나지혜가 함께 아이들을 돌봐 주고 있었지만 웬만한 일은 민하윤이 직접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고 재우는 것부터 아이들에 관한 일이라면 이제 무엇이든 능숙하게 해냈다.민하윤은 먼저 방 안 에어컨 온도를 조금 높였다.두 아이의 잠옷을 수면조끼로 갈아입힌 뒤 얇은 이불까지 잘 덮어 주고 나서야 민하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욕실로 들어갔다....잠자리에 들 시간이 다 되도록 하도진은 돌아오지 않았다.민하윤은 휴대전화를 확인해 봤지만 새로 온 전화나 문자는 하나도 없었다.결국 민하윤은 더 기다리지 않고 몸을 돌려 두 아이를 품에 끌어안은 채 잠이 들었다.하도진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간이었다.병실에 들어선 하도진은 링거를 맞으며 누워 있는 송지훈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구준오는 밥도 안 먹었대? 기왕 때릴 거면 좀 세게 때려서 아예 죽여버리지 그래.”송지훈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아픈 갈비뼈 쪽을 손으로 감쌌고 천장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내가 살아 있어서 많이 아쉬운가 본데?”“멀쩡한 남자가 주먹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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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7화

하도진은 송지훈에게 싸늘한 눈빛을 던졌다.민하윤에 관한 얘기를 한 번만 더 꺼내면 자신이 먼저 칼을 들겠다는 표정이었다.송지훈은 속으로 혀를 찼다.평소 그렇게 사이가 좋던 부부가 아무래도 싸운 모양이었다. 하도진은 집에서 제대로 한 소리 듣고 와서는 송지훈한테 화풀이하는 게 분명했다.송지훈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이현이가 임신했어.”하도진의 눈동자가 순간 커졌다.“언제?”“나도 오늘 알았어. 이현이가 이런 걸 뭘 알겠어. 몸이 좀 이상하니까 혼자 임신 테스트기 사서 해 봤는데 두 줄이 나온 거야. 놀라서 하윤 씨랑 백누리 씨한테만 말했대.”송지훈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둘이 옆에 있어서 다행이지... 이현이 성격이면 나한테도 숨겼을지 몰라.”하도진이 피식 비웃었다.“그러니까 준오가 칼 들고 널 죽이려 한 게 이해가 되네.”그러고는 다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그래서 구씨 가문까지 찾아가서 결혼 허락받으려고 한 거야?”“응.”하도진은 일부러 약 올리듯 한마디 던졌다.“그런데도 살아서 돌아왔네. 운도 좋다.”“너무하네. 내가 그렇게 이현이랑 안 어울려?”송지훈의 말에는 은근한 떠보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하도진이 뭐라고 답하든 사실 크게 상관은 없었다. 다만 송지훈은 하도진이 구이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어쨌든 구이현이 오랫동안 몰래 좋아했던 사람이니 따지고 보면 송지훈에게는 한때 제대로 된 라이벌이었던 셈이었다.하도진은 어이없다는 듯 송지훈을 흘겨봤다.“네가 생각해 봐.”하도진은 입꼬리를 비틀며 말을 이었다.“이제 곧 서른 되는 남자가 스무 살 갓 넘은 애를 만나 놓고 뭘 잘했다고 그래? 게다가 걔는 친구의 친동생이잖아. 우리 셋이 어릴 때부터 봐 온 애를 어떻게 그런 눈으로 봤냐?”하도진이 혀를 차며 덧붙였다.“송지훈, 넌 겉보기에는 멀쩡하게 생겨 놓고 알고 보니 꽤 양심 없네.”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찌나 독한지 송지훈은 피를 토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겉으로는 땀을 닦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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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8화

하도진은 그렇게 말하고 병원을 나섰다.기사가 차를 하씨 본가 앞에 세웠다.1층 현관에는 불 하나만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 하도진은 차창을 내리고 2층 침실 쪽을 올려다봤다.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두꺼운 커튼까지 쳐져 있어 빛 한 줄기 새어 나오지 않았다.집에 들어선 하도진은 외투를 벗어 놓고 소매를 걷어 올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조심스럽게 침실 문을 밀자 침대 머리맡 조명 하나만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그런데 방 안을 보자마자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아기 침대는 텅 비어 있었고 두 아이가 수면조끼를 입은 채 민하윤의 양옆에서 나란히 자고 있었다.하도진은 기가 막혔다.고작 오늘 조금 늦게 들어왔을 뿐인데 벌써 자기 자리가 사라졌었다.하도진은 소매를 걷어 올리며 두 녀석을 깨우지 않고 어떻게 다시 아기 침대로 옮길지 고민했다.‘어른은 큰 침대에서 자고 아기는 아기 침대에서 자야지.’한번 정한 규칙은 지켜야 했다.사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만 해도 집에서는 아기 침대를 따로 들일 생각이 없었다.민하윤은 새 가구에서 유해 물질이 나올까 걱정했고 르네 별장 안방 침대가 워낙 넓으니 한쪽에 아이들의 자리를 만들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하도진은 단호하게 반대했다.결국 사람을 시켜 특대형 아기 침대 두 개를 주문 제작했다. 좋은 원목을 골라 장인이 직접 만들었고 꼭 필요한 마감재 외에는 유해 물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신경을 썼다.나중에는 그중 하나를 하씨 본가로 옮기고 르네 별장에는 하나만 남겨 두었다.그때 하도진이 내세운 이유는 그럴듯했다.어릴 때부터 혼자 자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너 살쯤 돼서 갑자기 따로 재우려 하면 더 힘들어진다면서 고집했다.민하윤은 별다른 의심 없이 하도진의 말을 믿고 동의했다.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하도진은 그저 속이 좁은 사람이었다.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를 끌어안고 자는 꼴은 죽어도 못 봤다.아무리 작은 아기라도 마찬가지였다.두 아들도 엄연히 남자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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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9화

연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옆으로 누워 있었다.작은 두 손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고 길게 올라간 속눈썹 끝에는 맑은 눈물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보고 있자니 민하윤은 괜히 마음이 짠해졌다.민하윤은 연이를 품에 안고 몸 위에 덮여 있던 얇은 이불을 걷어 냈다. 그리고 잠옷 단추를 풀어 아이를 달래기 시작했다.그 순간, 욕실 쪽에서는 불빛이 새어 나왔다.하도진은 대리석 세면대에 두 손을 짚은 채 거울 속 물에 젖은 얼굴을 바라보다가 잠시 멍해졌다.그러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참나... 처음도 아닌데 이 정도로 정신을 못 차리다니.’고작 한 번 봤다고 코피까지 쏟다니 하도진은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웠다.민하윤이 연이를 다시 재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욕실 문이 열렸고 가운을 걸친 하도진이 밖으로 나왔다.두 사람은 눈이 마주치자 거의 동시에 시선을 피했다.하도진은 침대 쪽으로 걸어오다가 민하윤 곁에서 곤히 자는 연이를 못마땅한 눈으로 한번 흘겨봤다.“아기 침대로 안 옮길 거야?”하도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하도진의 말투는 부드러웠고 먼저 화해해 보려는 기색도 조금 묻어 있었다.민하윤은 아기 침대에서 자는 주주를 힐끗 바라보다가 그제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챘다.“네. 오늘은 연이랑 잘 거예요.”민하윤은 여전히 하도진에게 쌀쌀맞았다.하도진이 한마디 물으면 딱 한 마디만 대답할 뿐, 그 이상은 입도 열지 않았다.아직도 복직 문제로 화가 풀리지 않았다는 걸 하도진도 알고 있었다.하도진은 능청스럽게 가까이 다가오며 물었다.“그럼 나는 어디서 자?”“이렇게 큰 침대에서 설마 잘 자리 하나 없겠어요?”민하윤은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았고 말투에도 날이 서 있었다.하도진은 속으로 한숨을 삼키고 먼저 민하윤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말했다.“자리는 있지. 대신 좀 비좁겠네...”민하윤은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풀어 놓았던 잠옷 단추를 하나씩 다시 채웠다.그러자 하도진이 달래듯 말했다.“이제 그만 화 풀어. 그 정도 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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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0화

두 사람 모두 간신히 마지막 이성은 붙잡고 있었다.침대 위에서 낮은 목소리로 다투는 동안, 옆에서 자던 연이도 분위기를 느끼기라도 한 듯 좀처럼 편히 자지 못했다. 작은 손을 자꾸 움직이다가도 갑자기 화들짝 놀라고는 했다.민하윤은 문득 너무 지쳤다는 생각이 들었다.몸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피로가 밀려왔다.‘그때 다시 화해했던 게 너무 성급했던 건 아닐까? 결국 우리 두 사람은 또 예전과 같은 길을 걷게 되는 걸까...’두 사람은 성격부터 살아온 환경까지 너무 달랐다.하도진은 명원에서도 손꼽히는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자란 사람이었다. 늘 당당했고 자존심이 강했으며 누구 앞에서도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반면 민하윤은 사소한 일 하나도 몇 번이고 곱씹는 성격이었다.마음이 여리고 예민해서 작은 일도 쉽게 넘기지 못했고 늘 불안해했다. 마음 한구석에는 자신도 쉽게 떨쳐 내지 못하는 열등감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민하윤에게는 언제나 안정감이 부족했다.하도진이 아무리 큰 재산을 가지고 있고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만큼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달라지지 않았다.민하윤에게 있어서 일자리는 단순히 월급을 받는 직장이 아니었다.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자 독립적인 사람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존재였다.지금 두 사람이 다투는 이유도 단순히 육아휴직을 한 달 일찍 끝내고 복직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그건 그저 쌓여 있던 문제를 터뜨린 계기에 불과했다.애초부터 두 사람의 관계에는 보이지 않는 차이가 있었다.서로를 충분히 믿지 못했고 하도진은 늘 자신의 방식으로만 민하윤을 사랑했다.정작 민하윤이 어떤 마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그 사랑은 너무 무거웠고 너무 자기중심적이었다.“하윤아, 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하도진이 거칠게 숨을 들이쉬며 민하윤의 턱을 잡았고 시선은 민하윤의 입술에 고정돼 있었다.당장이라도 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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