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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한다고 말해줘: Chapter 691 - Chapter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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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1화

구이현은 자신도 모르게 치맛자락을 움켜쥔 채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오늘따라 오빠 구준오가 너무 이상했다.‘갑자기 왜 지훈 오빠의 연애사에 이렇게까지 관심을 보이는 걸까? 설마 우리가 사귀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건가?’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구이현이 돌아서려던 순간, 뒤에서 송지훈의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됐어. 우리는 헤어질 일 없어. 난 처음부터 헤어질 생각으로 널 만난 적도 없고. 사귀기 시작한 날부터 결혼까지 생각했어.”순간 허공에 붕 뜬 것 같던 구이현의 마음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진호영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송지훈을 바라봤다.“형, 진짜 진심이야? 대체 어떤 여자길래 형이 이렇게 푹 빠졌어?”구준오가 다시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고은율이 그의 손을 잡았다.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이제 그만하라는 눈빛을 보냈다.잠시 후 주주와 연이의 백일잔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하도진은 마이크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왼손 약지에 낀 은색 반지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민하윤의 약지에 낀 반지와 한 쌍이라는 건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바쁘신데도 우리 애들 백일잔치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하도진은 짧게 인사한 뒤 웃으며 말을 이었다.“긴말은 안 하겠습니다. 애들 돌잡이부터 하고 오늘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편하게 즐기다 가세요.”하도진과 민하윤은 아기를 한 명씩 안고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리 마련해 둔 돌잡이 자리로 향했다.촬영 기사는 먼저 전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행사 전문 업체가 따로 꾸민 자리라 준비도 꽤 정성스러웠다. 넓은 붉은 카펫 위에는 부드러운 흰색 양모 매트가 깔려 있었고 그 위로 각종 돌잡이 물건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하도진이 먼저 형인 주주를 매트 위에 앉혔다.하지만 주주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하도진과 민하윤이 앞에서 아무리 부르고 장난감을 흔들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반면 연이는 달랐다.활발한 성격답게 두 손과 무릎으로 신나게 기어다니며 동그란 눈으로 주변 물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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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2화

주주는 양모 매트 위에 앉아 두 손을 뻗으며 자꾸 안아 달라는 듯 옹알거렸다.작은 손발까지 계속 꼼지락거리며 미간을 찌푸리는 걸 보니 바닥에 앉아 있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하도진은 그런 주주를 보다가 그대로 품에 안아 올렸다.“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내 아들이 앞으로 뭘 하든 앞길은 탄탄대로일 텐데 이런 물건 몇 개 잡는다고 인생이 정해지는 것도 아니잖아.”사람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아들 감싸는 것도 정도가 있지 하도진은 너무 대놓고 편을 드는 것 아닌가 싶었다.꼬마 하회주는 아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동그란 눈으로 하도진을 빤히 바라봤다.자기를 대신해 아빠가 한껏 편을 들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하지만 그런 일도 금세 잊고 유모차에 들어가자 동생과 신나게 손발을 맞대기 시작했다.아직 싸움이 뭔지도 모르는 나이인데 벌써 한 번씩 주먹을 휘두르고 발을 차며 서로 몸으로 대화했다.나름 형제애를 다지는 방식인 모양이었다.백일잔치가 끝난 뒤, 구이현은 연회장 입구에 홀로 서 있었다.치마 아래에는 아까 쏟은 와인 자국이 남아 있었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밤색 머리카락은 자연스럽게 웨이브가 져 있었다.가만히 서 있는 모습은 꼭 예쁜 인형 같았지만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마침 구이현은 복도 쪽에서 나오던 고은율과 눈이 마주쳤다.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구이현이 먼저 시선을 내렸다.고은율의 손가락 사이에는 아직 다 피우지 않은 담배가 끼워져 있었다.구이현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담배 피우면 정말 기분이 좀 나아져요?”고은율은 조금 민망해졌다.사람들을 피해 잠깐 바람이나 쐬려고 나왔다가 담배 한 대 피운 것뿐인데 하필 구이현에게 들킨 것이다.“넌 좋은 것만 배워. 담배 같은 건 배우지 말고.”그러자 구이현이 피식 웃었다.“담배 좀 피운다고 나쁜 사람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둘이 이렇게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건 드문 일이었다.구이현은 예전부터 고은율을 좋아하지 않았다.철이 없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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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3화

민하윤은 너무 피곤해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촬영 기사에게 사진을 받아 볼 생각도 못 한 채, 머리도 다 말리지 못하고 아기방 카펫 위에서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민하윤은 품에 첫째 주주를 꼭 안고 있었다. 은빛 실크 슬립의 목선이 살짝 흐트러져 있었고 주주의 통통한 손은 엄마 품에 얹힌 채 자기 자리라도 찜한 듯 꼼짝하지 않았다.하도진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 품에 안고 있던 연이를 먼저 아기 침대에 눕혔다. 이어 민하윤의 품에서 주주도 살며시 안아 올려 나란히 눕혀 주었다.모든 걸 정리한 뒤에는 수면등 하나만 희미하게 켜 두었다.하도진은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민하윤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손끝에 부드러운 허리가 닿는 순간, 오랫동안 눌러 두었던 감정이 다시 꿈틀거렸다.아무리 그래도 아이들 앞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하도진은 애써 마음을 누르고 민하윤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어 침실로 데려갔다.민하윤이 잠결에 작게 신음하듯 소리를 내자 하도진이 겨우 붙잡고 있던 이성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하도진은 민하윤을 침대에 눕히고 자신을 답답하게 하던 옷을 벗었다. 그러고는 민하윤을 끌어안으며 낮게 속삭였다.“하윤아, 조금만 있다가 자.”반쯤 잠든 민하윤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도 못한 채 하나둘 옷이 벗겨졌고 어느새 침대 아래에는 두 사람의 옷이 뒤섞여 떨어져 있었다.하도진은 정말 오래 참았다.임신 내내 혹시라도 민하윤에게 무리가 갈까 조심했고 출산 뒤에도 한동안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임신과 출산을 거치며 민하윤의 몸도 많이 달라졌다. 전보다 한층 성숙해진 모습에 부드럽고 차분한 분위기까지 더해져 오히려 더 눈길을 끌었다.주주와 연이는 이미 분유에 익숙해졌지만 가끔 엄마 품을 유난히 파고들고는 했다.작은 손으로 이리저리 더듬으며 한껏 품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걸 보면 원하는 게 뭔지는 뻔했다.민하윤도 두 아이가 계속 보채면 결국 못 이기는 척 안아 주었다.하도진도 몇 번이나 그런 장면을 목격했다.쌍둥이는 한 쪽씩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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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4화

아기들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둘이 누가 더 크게 우나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민하윤은 민망한 듯 얼른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리고 하도진을 발로 툭 찼다.“도진 씨, 애들이 울잖아요.”“좀 울다 보면 알아서 그치겠지.”하도진은 전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지금은 다른 일이 더 급했다.그런데 정말로 옆방의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하도진은 그 순간만큼은 두 아들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었다.‘이제야 눈치가 좀 생겼네. 엄마랑 아빠가 좋은 시간 보내는 건 방해하면 안 된다는 걸 아는구나.’두 아이의 아침 수유 시간은 8시였지만 하도진과 아이들은 그대로 늦잠을 자서 10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하도진은 유난히 개운한 얼굴로 아래층에 내려가 분유를 탔다. 젖병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아 주는 일도 오늘만큼은 군말 한마디 없이 척척 해냈다.민하윤은 오후 1시가 되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그사이 에너지가 넘치는 하도진은 쌍둥이를 유모차에 태워 산책까지 다녀온 뒤 두 번째 분유를 타고 있었다.삼색이와 새끼 고양이들의 모래도 갈아 주고 사료와 물까지 새로 채워 둔 상태였다.주주는 배터리가 다 된 듯 분유를 먹자마자 다시 잠들었다.하도진은 주주를 거실 아기 침대에 눕힌 뒤, 한 손으로는 보채는 연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 민하윤의 아침... 아니, 점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전날 밤 하도진은 나름대로 많이 참았다.민하윤이 출산한 지 이제 겨우 석 달 반밖에 되지 않았고 아직 회복 중이라는 걸 알기에 최대한 조심하고 또 조심했지만 오랫동안 참아 온 만큼 완전히 자제하지는 못했다.하도진은 뚝배기에 당근과 양갈비를 넣어 푹 끓이고 따로 무와 돼지갈비를 넣은 맑은 탕도 준비했다.얇게 썬 무와 한번 데친 돼지갈비에 대추 몇 알과 구기자와 옥수수까지 넣어 담백하게 끓였다.샤워를 마친 민하윤이 잠옷으로 갈아입고 내려오자 연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두 팔부터 뻗었다.백일 된 아기에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두 다리는 모터라도 달린 듯 쉬지 않고 허공을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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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5화

민하윤은 다섯 달째 출산휴가를 보내던 중 태유 은행 본점에서 급히 복귀 요청을 받았다.대규모 해외 인수합병 건이 하나 들어왔고 태유 은행의 자금 투입이 필요한 중요한 프로젝트였다.리스크 관리 부서에서 이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민하윤뿐이었다. 본점에서도 외부에서 비슷한 경력자를 새로 영입하는 건 위험 부담이 큰 데다가 프로젝트 일정까지 늦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그러던 어느 날, 하도진이 민하윤의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다가 메일함에 들어온 새 메일 하나를 발견했다.인사부 신임 부장 볼리가 보낸 메일이었다.대략 민하윤더러 출산휴가를 한 달 일찍 끝내고 복귀해 줄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하도진은 메일을 읽자마자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민할 것도 없이 그대로 삭제해 버렸다.민하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하지만 결국 숨길 수는 없었다.두 사람의 갈등은 본점 인사부장 볼리에게 직접 전화가 걸려 오면서 터졌다.마침 그때 두 사람은 쌍둥이 예방접종을 하러 병원에 가기 위해 아기용품 가방을 급하게 챙기고 있었다.민하윤은 통화를 마치고 한동안 굳은 얼굴로 서 있다가 하도진을 바라봤다.“왜 제 메일을 지웠어요?”하도진도 자기가 잘못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어떻게든 가볍게 넘어가 보려고 뒤에서 민하윤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네가 다시 회사 나가는 게 싫어서 그랬어. 힘들기만 하고 거기서 평생 일해 봐야 잘돼도 임원 정도잖아. 은행 일이 그렇게 좋으면 에스티 그룹 산하에도 은행 있어. 내가 행장 자리 하나 마련해줄게.”하지만 민하윤에게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민하윤은 하도진의 손을 떼어 내고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제가 회사 가는 게 싫다고 해서 제 메일까지 마음대로 지워도 되는 거예요?”하도진도 슬슬 기분이 상했다.“우리 이걸로 싸우지 말자. 응?”“저 지금 싸우자는 거 아니에요. 왜 그랬는지 제대로 듣고 싶은 거예요.”“그래. 네가 꼭 이걸 따지고 넘어가야겠다면 할 말은 없어. 내가 지웠어.”하도진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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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6화

이제는 이 문제만큼은 아무리 말해도 하도진과 의견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았다.산후 도우미는 현관에 서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유모차에는 두 아기가 타고 있었고 부부가 심하게 다투는 상황에 남인 자신이 끼어들 수도 없었다.그렇다고 산후 도우미도 계속 기다릴 수도 없었다.오늘은 예약해 둔 쌍둥이 예방접종 날이었다. 더 늦으면 병원 진료 시간이 끝날 판이었다.민하윤은 고개를 들고 애써 눈물을 참았다.“정말 이 일로 저랑 계속 싸울 거예요?”민하윤은 자신이 이렇게 눈물부터 나는 게 싫었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하도진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늘 오후에 애들 예방접종도 해야 하고 저도 더 싸우고 싶지 않아요. 이번에는 제가 양보할게요. 한 달 더 쉬겠어요.”민하윤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하지만 출산휴가가 끝나면 다시 회사로 돌아갈 거예요. 그 얼마 안 되는 월급 때문만은 아니고요.”민하윤은 씁쓸하게 웃었다.“됐어요. 말해 봐야 도진 씨는 듣고 싶지도 않을 테니까. 도진 씨는 제 생각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고 늘 자기 생각만 맞다고 하잖아요.”민하윤의 목소리는 오히려 차분했고 평소 화가 나서 감정적으로 내뱉던 말과는 달랐다.하도진은 눈을 내리깔았다.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민하윤은 더 들을 생각이 없었다.민하윤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현관으로 걸어갔다.“이제 가요.”그때 유모차에서 자고 있던 주주가 마음이라도 알아챈 듯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작은 두 팔을 뻗으며 안아 달라고 보챘다.“주주야, 울지 마. 엄마가 안아 줄게.”민하윤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이를 품에 안고 코끝을 훌쩍이며 조용히 달랬다.아이 울음소리에 하도진의 마음도 덜컥 가라앉았다.반사적으로 돌아서 두 사람을 따라가려 했지만 이미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만 들려왔다.넓은 별장은 순식간에 텅 빈 듯 고요해졌다.하도진은 그제야 조금 후회가 밀려왔다.아까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다.저녁이 되자 민하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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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7화

일행이 집 안으로 들어서자 거실에는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장난감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어른들이 손자들을 워낙 예뻐하다 보니 볼 때마다 하나씩 사다 놓은 모양이었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주주와 연이는 장난감 탱크 하나를 두고 싸우기 시작했다.누구 하나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서로 있는 힘껏 잡아당기는 바람에 통통한 두 얼굴이 금세 새빨개졌다.하진석은 손주 싸움의 원인을 제공한 하준혁을 못마땅하게 노려봤다.“너도 예순이 넘었는데 생각이 그렇게 없냐? 장난감을 하나만 사 오면 둘이 싸울 거라는 생각을 못 해?”평소에는 어디서든 한자리하는 하준혁도 집에서는 꼼짝 못 했다.우는 손자 둘을 달래면서 하준혁은 억울하다는 듯 해명했다.“여러 가지를 사 주면 서로 바꿔 가면서 놀 줄 알았죠.”“바꿔 놀긴 뭘 바꿔 놀아. 장난감은 전부 똑같이 두 개씩 사야지. 나이 먹더니 생각이 더 없어졌어.”김옥자도 두 증손주가 장난감 하나 때문에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자 당장이라도 같은 걸 하나 더 사 오고 싶은 심정이었다.결국 하준혁은 더 말하지 못하고 비서에게 연락해 낮에 샀던 장난감들을 똑같이 한 세트 더 사 오라고 했다.순식간에 본가는 난장판이 됐다.두 아이는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밀고 당기며 작은 손발을 휘둘렀다.뜻대로 안 되면 목청껏 울어 대니 어른들은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다.하도진만 별일 아니라는 얼굴이었다.겨우 다섯 달 된 아기 둘이 울어 봐야 얼마나 울겠나 싶었다.“됐어. 이제 그만 울어.”하도진은 더 크게 보채는 연이를 품에 안고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아 줬다.“장난감 하나 가지고 언제까지 울 거야.”하지만 다섯 달 된 아기가 그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연이는 서럽게 입술을 삐죽이다가 형이 탱크를 안고 신나게 노는 모습을 발견했다.순식간에 얼굴이 벌게지더니 다시 목청껏 울음을 터뜨렸다.하도진은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엉덩이라도 한 대 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지금 지켜보는 눈이 몇 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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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8화

하씨 가문의 외아들로 귀하게 자란 하도진은 서른이 넘도록 늘 남들이 떠받들어 주는 삶을 살아왔다. 결혼했어도 뼛속 깊이 남아 있는 오만함과 제멋대로인 성격까지 쉽게 바뀌지는 않았다.그런 성격이니 민하윤이 이토록 피하고 화가 풀리지 않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어른들은 생각했다.“솔직히 말해 봐. 대체 무슨 일인데?”하준혁은 김옥자의 등을 쓸어 주면서도 아들을 다그쳤다.“그게...”하도진은 별일 아니라는 듯 사건의 전말을 간단히 설명했다.“그냥 그런 일이에요. 메일을 지운 건 제가 잘한 건 아니죠. 근데 애들이 아직 이렇게 어린데 저도 평소에 회사 때문에 바쁘잖아요. 하윤이까지 출근하면 애들은 누가 봐요?”어른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이 일은 누구 한쪽이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단지 두 사람의 생각이 달랐을 뿐이었다.김옥자가 먼저 결론을 내렸다.“낮에는 애들을 우리한테 맡겨. 퇴근할 때 다시 데려가면 되잖아.”하진석도 매일 증손주들을 볼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그래. 너희는 너희들의 일에 집중해. 회사 다니고 하고 싶은 일 하면 돼. 애들은 우리한테 맡기면 되는데 뭐가 걱정이야?”채선화는 마음 한편으로는 여전히 아이들이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다.“그래도 조금만 더 크고 나서 복귀하면 안 될까요? 정 안 되면 제가 하윤이랑 한번 얘기해 볼게요.”김옥자는 곧장 며느리를 바라봤다.“너도 도진이 낳고 출산휴가 끝나자마자 학교로 돌아갔잖아. 그때는 승진 심사 놓치면 안 된다고 그렇게 서둘렀으면서.”김옥자는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도진이도 생후 여섯, 일곱 달부터 우리 둘이 거의 키웠어. 그런데 왜 하윤이한테만 집에 있으라고 해? 그건 말이 안 되지.”채선화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그때는 학교에 새 보직자들이 대거 들어온 시기였어요. 제가 출산휴가 끝나고 바로 복귀하지 않았으면 행정 쪽으로 밀려났을 수도 있었고요.”“하윤이 다니는 은행이라고 사정이 쉬운 줄 아니?”김옥자는 단호하게 말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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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9화

민하윤은 하도진을 밀어내고 흘러내린 잠옷 끈을 다시 어깨에 걸쳤다. 눈가에는 아직 눈물이 맺혀 있었다.하도진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손끝으로 입가의 피를 닦았다.“이 일로 끝까지 나랑 틀어질 생각이야? 그러면 이 문제는 더 얘기할 여지도 없는 거야?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는 얘기는... 나랑 제대로 상의한 적은 있어?”민하윤은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상의요? 옷부터 벗기고 시작하는 게 상의예요? 제가 도진 씨의 기분부터 맞춰 주면 그제야 회사에 나가게 해 주겠다는 거예요? 저보고 뭔가 대가라도 내놓으라는 뜻이에요?”민하윤은 하도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마디 한마디 또렷하게 말했다.얼굴이 굳은 하도진이 한 걸음 다가가며 낮게 말했다.“말을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민하윤은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나며 차갑게 웃었다.“역시 도진 씨는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모르네요. 늘 자기 생각이 먼저고요. 출산휴가가 끝나고 회사로 돌아가는 건 제 권리예요. 누구도 마음대로 막을 수 없어요.”“은행, 은행... 그렇게까지 태유 은행을 못 놓는 이유가 뭐야?”하도진은 감정이 올라온 나머지 순간적으로 말을 내뱉었다.“정말 일이 좋아서 그래? 아니면 거기에 못 놓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말이 입에서 나간 순간 하도진도 바로 후회했다.민하윤은 홱 고개를 들어 하도진을 바라봤다.“그게 무슨 뜻이에요?”“무슨 뜻인지는 너도 알잖아.”하도진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민하윤 때문에 머리가 돌아 버릴 것 같았다.‘한 번쯤은 그냥 져 주고 날 달래 주면 안 되는 거야...’하도진은 왜 민하윤이 매번 끝까지 자신과 맞서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전 모르겠는데요. 할 말 있으면 똑바로 해요. 애매하게 사람 의심하지 말고요.”하도진은 잠시 침묵하다 결국 솔직하게 말했다.“좋아. 회사 다니는 건 반대 안 해. 대신 다른 데로 옮겨. 태유 은행에는 계속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어.”민하윤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하도진을 바라보며 물었다.“왜 태유 은행은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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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0화

하도진은 침대에 올라가지 않고 옷을 입은 채 침대 끝에 놓인 1인용 소파에서 밤을 보냈다.그러다가 하도진은 꿈을 꿨다.민하윤이 임신 6개월쯤 되었을 때, 퇴근하는 민하윤을 데리러 갔던 날이었다.멀리서 건물 밖으로 나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둘은 무척 다정하게 웃고 이야기하며 나란히 걷고 있었다.자세히 보니 여자는 민하윤이었고 옆에 있는 남자는 임형섭이었다.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 하도진은 곧장 두 사람 앞으로 다가갔다.“둘이 왜 이렇게 붙어 다녀? 네 마음속에는 내가 남편도 아니야?”그런데 두 사람은 오히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그때 민하윤이 의아하게 말했다.“사람 잘못 보신 것 같은데요. 저는 그쪽의 아내가 아닌데요?”그러고는 임형섭을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여보, 나 피곤해. 우리 집에 가자.”임형섭은 임신한 민하윤을 다정하게 부축한 채 하도진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하도진은 그 장면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몸을 일으키고 나서야 하도진은 온몸이 식은땀에 젖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임형섭은 오래전부터 하도진의 마음에 박힌 가시 같은 존재였다.특히 그 녹음 파일을 들은 뒤로는 더 그랬다.녹음 속에서 민하윤은 직접 말했다.하도진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임형섭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했을 때 만나 볼 생각이 있었을 거라고 말이다.그 말을 들은 뒤부터 하도진의 마음속 가시는 더 깊이 박혔다.결국 하도진은 새벽 내내 다시 잠들지 못했고 혼자 소파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방 안은 조용했다.침대에 누운 민하윤 역시 편하게 자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잠든 와중에도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아기 침대에서는 통통한 두 녀석이 팔다리를 벌린 채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연이는 자다가 형 주주의 손을 끌어안더니 입에 넣고 오물거리기까지 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도진은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자기가 너무 못되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꿈은 어디까지나 꿈이었다.민하윤은 자신의 아내였고 두 사람 사이에는 이렇게 건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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