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아내, 재혼에 눈물 쏟는 전남편의 모든 챕터: 챕터 111 - 챕터 120

178 챕터

제111화

지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억울함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듯, 떨리는 손으로 마스크를 천천히 내려 보였다.하얗고 고운 얼굴은 군데군데 붉게 부어올라 있었고, 뺨에는 손자국이 어른거렸다.그리고 지설은 턱을 들어 올려, 목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두 줄의 시퍼런 손자국을 그대로 보여주었다.“엄마, 똑바로 떠서 봐봐. 이게 다 부영민이 어젯밤 술 처먹고 한 짓이야! 이렇게 갑자기 미쳐서 사람을 패는 남자랑... 어떻게 다시 살라는 거야? 이걸 보고도 재혼하라는 말이 나와?”목소리는 갈라졌고, 말을 내뱉을수록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지설은 마치 무너져 내릴 듯 울먹였지만, 그 울음은 억울함과 절망이 뒤섞인 비명이었다.예연숙은 그 모습을 보고 완전히 얼어붙었다. 눈이 커다랗게 뜨이고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부 서방이... 어떻게 너를 때려? 그럴 사람이 아닌데...”그동안 영민이 예연숙 앞에서 보여준 것은 정성스럽고 다정한 ‘완벽한 사위’의 모습뿐이었다.그래서 그녀는 도무지 딸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러던 순간, 예연숙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지설을 바라보았다.“지설아... 엄마가 하나 물어볼게. 너 어젯밤... 다른 남자 만났지? 그거... 부 서방이 안 거 아니야? 부 서방도 남자야. 네가 그렇게 나오면 질투하는 건 당연하지. 아마 그래서...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그랬을 수도 있어.”“엄마! 제발 정신 좀 차려!”지설은 거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내가 몇 번이나 말했는데! 나랑 부영민은 이미 이혼했어! 지금은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그리고 내가 나중에 누구랑 만나든, 그건 내 자유야!”“부영민이랑은 진짜 끝났어! 엄마가 괜히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나 그 인간이랑 훨씬 전에 깨끗하게 끝낼 수 있었어!”하지만 예연숙은 딸의 절규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만의 확신을 굳게 붙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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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지설은 문득 떠올렸다.뉴스에서 보았던, 집에서 폭력을 당한 여자들이 결국 친정에 돌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정작 가족들은 ‘딸을 위한다’라는 말로 딸을 다시 그 지옥 같은 신혼집으로 돌려보내는 이야기들을...심지어 가해자인 남편에게 ‘우리 딸을 잘못 가르쳤다’라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부모들까지.그런 집들은 딸을 자율적인 한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의 며느리’가 되도록 길러냈다.지설은 그 모든 사례가 자기 인생에서 일어날 일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지금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그 뉴스 속 이야기들과 똑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우리 엄마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어?’가슴이 서늘하게 식어갔다.지설은 극도로 피로했다 육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완전히 지쳐버렸다.그러나 단 한 가지는 분명했다.지설은 다시는 영민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어떤 식으로든 어머니 예연숙만 자기 곁으로 데려오기만 한다면, 영민은 더 이상 자신을 위협할 수 없게 된다.‘어떻게 해야... 엄마가 나랑 같이 나가줄까...’지설은 마음속에서 수십 번, 수백 번 그 질문을 되뇌었다....그날 저녁.영민이 빌라로 돌아왔다.이마에는 커다란 테이프와 거즈가 붙어 있었다.거실 불빛 아래 그 흉한 상처는 더 도드라져 보였다.예연숙은 소파에 앉아, 문 쪽에서 울리는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영민을 보자마자 눈빛에 실망이 스쳐 지나갔다.영민은 그 표정만 보고도 예연숙이 이미 어젯밤 일을 들었다는 것을 알아챘다.만약 이 상황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다면, 이어지는 모든 계획이 난관에 부딪힐 것이었다.영민은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무릎을 꿇었다.“장모님...!”영민의 목소리는 이미 울먹이고 있었다. 눈물까지 맺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어제는 정말... 정말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너무 충동적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장모님!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예연숙은 팔짱을 낀 채 천천히 고개를 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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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지설아...”영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불렀다. 눈가에는 금세 눈물이 고여 번들거렸다.그는 조심스레 손을 들어 지설의 손을 잡으려 했다.그러나 지설은 단숨에 뒤로 물러섰다.그와의 거리에 철저한 안전선을 그어버렸다.영민의 두 눈에는 죄책감이 가득했다.그는 지설을 바라보며 거의 애원하듯 말했다.“어젯밤 일... 다 내 잘못이야. 정말 미안해. 네가 어떤 벌을 주든 다 받을게. 그러니까... 제발 나를 무시하지는 말아 줘.”지설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하지만 그 웃음은 따뜻함이 하나도 없는 차갑고 비웃는 웃음이었다.“어떤 벌을 줘도 좋다고? 좋아. 그럼... 죽어.”그 말은 단검처럼 그대로 영민의 가슴을 꿰뚫었다.영민의 얼굴이 한순간 굳어버렸다. 조금 전까지 넘치던 후회와 기대는 얼어붙은 얼음처럼 산산조각 났다.“지... 지설아...?”예연숙이 급히 다가왔다. 당황과 초조가 뒤섞인 얼굴이었다.“지설아, 말이라고 아무렇게 해선 안 되지 않니? 부 서방이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있잖아. 좀 좋은 말로 해라.”지설은 단번에 반박했다.“흥. 잘못한 건 알아도 절대 안 고치지. 내가 다음에 또 다른 남자랑 만나기라도 하면, 어제처럼 또 미친 듯이 패겠지? 안 그래, 부 대표님?”지설의 눈빛이 날카롭게 영민을 찔러댔다.영민은 입술을 꽉 깨물며 고통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지설아... 너도 내 마음 알잖아. 그렇게 말하는 건 그냥 날 일부러 자극하려는 거지... 그렇지?”예연숙은 도리어 딸에게 불만을 터뜨렸다.“너는 왜 이렇게 고집이 세니? 부 서방이랑 앉아서 차분히 이야기하면 되잖아! 왜 이렇게 상황을 극단으로 몰아가니?”지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대화? 절대 안 해! 우리 이혼한 순간부터 그냥 남이야. 그리고 어젯밤에 나를 때린 순간부터 이 사람은 내 원수야. 이 일은 평생 기억할 거야. 죽을 때까지.”지설은 이미 오늘 병원에서 진단서를 떼왔다.증거를 마련해 두었다.때가 되면 반드시 영민을 법적으로 끝장낼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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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예전에 주유연은 말 그대로 세상 모든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란 공주였다.원하는 건 반드시 얻어야 했고, 투정과 고집도 예쁘게 받아들여지는 아이였다.하지만 지금 유연의 목소리는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조심스럽고, 작고, 기어들어 갔다.[오빠...]달콤하고 여린 그 목소리는 혹여나 영민이 화낼까 봐 숨도 크게 쉬지 못하는 듯했다.[정말... 나 버리는 거야?]그 한마디에는 억울함과 슬픔과 애절함이 뒤섞여 있었다.듣고만 있어도 누군가는 마음이 흔들릴 것 같은... 그런 소리였다.그러나 영민은 흔들리지 않았다.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자신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지설이라는 것을.그리고 지설이 계속 유연 때문에 상처받는다는 것도.영민에게 유연과의 과거는 한때는 뜨거웠지만 이제는 완전히 식어버린 지나간 계절이었다.하지만, 유연은 아직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유연은 남자가 연애에서 마음을 거두는 속도를 전혀 몰랐다.잔인함과 단호함마저도. 영민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유연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오빠... 나 진짜 오빠 보고 싶어서 그래... 오늘 밤엔 나랑 저녁 먹어주면 안 돼?]그 목소리는 꿀처럼 달콤했고, 남자라면 누구든지 흐물흐물 무너질 것 같은 억양이었다.그러나 영민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표정은 얼음 같았다.“주유연. 우리... 앞으로 연락하지 말자.”그 말은 벼락처럼 유연의 가슴을 내려쳤다.유연의 얼굴에서 핏기가 스르륵 사라졌다.입술이 새파랗게 변했고, 떨리기 시작했다.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한때, 그녀를 얻으려고 국내를 뒤흔들고, 해외까지 쫓아갔던 남자였다.다리까지 다쳐가며 매달리던 남자였다.그런 남자가 지금 눈앞에서 변했다.‘부영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유연의 목소리는 충격으로 갈라졌다.[오빠... 방금 뭐라고 한 거야? 나... 내가 뭘 잘못했어? 말만 해, 내가 다 고칠게. 제발... 제발 이러지 마.]유연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손은 떨리고,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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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영민은 나 없으면 못사는 사람처럼 굴었잖아.’‘이렇게까지 차갑게 돌아설 리 없어. 그럴 수가 없어.’유연은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함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옆에서 비서는 숨소리조차 죽이며 유연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그러다 문득 유연의 눈이 번쩍 뜨였다.“심지설! 분명 그 여자가 뭐라도 한 거야! 내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예린은 또다시 ‘법무법인 도진’을 찾았다.평소 같으면 도진은 바쁘다는 핑계로 예린을 잘라내거나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지나가기 일쑤였다.하지만 오늘은 도진이 직접 말했다.“들어와.”예린은 잠시 귀를 의심했지만, 가슴이 여전히 터질 듯 뛰었다.‘설마... 이 모든 시간이 헛된 게 아니었어?’‘드디어... 오빠 마음이 움직인 거야?’예린은 희망이 가득 찬 얼굴, 설레는 발걸음으로 도진의 사무실에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예린은 들뜬 목소리로 보온병을 꺼냈다.“오빠! 이거 내가 직접 끓인 갈비탕이야. 오빠가 Y시에 있을 때 제일 좋아했다는 그거! 내가 직접 배워서 만든 거야. 얼른 먹어봐! 기억하는 그 맛, 맞지?”예린은 반짝이는 눈으로 보온병을 도진 앞에 내밀었다.기대와 사랑이 그대로 담긴 눈빛이었다.그러나 도진은 손을 내밀지 않고, 심지어 보온병에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책상 앞에 앉은 채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앉아. 너한테 보여줄 게 있어.”예린은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자신을 다독였다.‘이거... 혹시 오빠가 준비한 서프라이즈 아닐까?’그렇게 믿으며 예린은 환한 미소를 유지한 채 의자에 앉았다.도진이 노트북을 켜고, 하나의 영상 파일을 재생했다.화면이 밝아지자 예린 입가의 미소는 그대로 얼어붙었다.영상 속 한 여자의 모습.바로 그날 밤, 지설의 사무실 문을 잠그는 예린의 모습이었다.숨이 턱 막혔다.예린은 바로 변명을 쏟아냈다.“오빠, 이거 진짜 오해야! 그날 나랑 심지설 씨가 조금 다퉜고... 심지설 씨가 갑자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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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같이 식사하실래요?”도진은 예린에 관한 일을 지설과 이야기하고 싶었다.결국 예린은 도진 때문에 지설에게 상처를 입혔다.지설의 얼굴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고,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도진을 집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오늘은 조금 곤란해요. 며칠 뒤에 뵐게요.]도진은 지설이 아직 전남편 곁으로 돌아갈지 말지 망설이고 있다고 생각했다.가슴 한쪽이 이유 없이 욱신거렸고, 그 탓에 목소리도 한층 담담해졌다.“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뒤, 도진은 서랍을 열어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뚜껑을 여니 그 안에는 목걸이가 놓여 있었다.그 목걸이는 오래전부터 지설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었지만,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았다.도진은 다시 상자를 닫아 서랍 안에 넣고, 묵묵히 야근을 이어갔다.밤 열한 시가 되어서야 그는 변호사 사무실을 나섰다.도진이 건물을 나서 몇 걸음 떼기도 전에, 멀리서부터 귀를 찢는 듯한 자동차 엔진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왔다.이어 검은색 세단 한 대가 마치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도진이 서 있는 방향으로 곧장 돌진해 왔다.천지가 뒤집힐 듯한 그 순간, 한 사람이 재빨리 달려와 도진 앞을 가로막았다.도진의 반응도 빨랐다.그는 그 사람의 팔을 움켜쥐고 온 힘을 다해 옆으로 거칠게 끌어당겼다.두 사람은 간발의 차로 미쳐버린 차를 피했고, 직접적인 충돌은 면했다.그러나 너무 급하게 몸을 피한 탓에 둘은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단단한 아스팔트와 몸이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도진은 자신의 통증을 돌볼 겨를도 없이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사고를 낸 차량은 이미 흔적도 없이 도로 끝으로 사라진 뒤였다.도진은 차 번호를 머릿속에 새긴 뒤에야 고개를 숙여, 자신과 함께 쓰러진 사람을 살폈다.그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도진은 미세하게 굳어졌다.예린이었다.예린은 종잇장처럼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간 듯 보였다.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도진 오빠... 무릎이...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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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도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내일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오늘 밤은 여기 같이 남아 있어줄 수 없어. 대신 미리 간병인 아주머니 한 분을 연결해 놨어.”“네 상태도 자세히 말씀드렸고. 간병인 아주머니가 잘 돌봐주실 거야. 병원비랑 간병비는 전부 내가 책임질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말을 마치자마자 도진은 등을 돌려 병실을 나설 준비를 했다.하지만 예린이 도진을 그렇게 쉽게 보내줄 리 없었다.예린은 갑자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리에 전해지는 극심한 통증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급하게 소리쳤다.“도진 오빠! 내가 오빠 대신 이렇게 크게 다쳤는데, 오빠는 이렇게 매정하게 나를 두고 가버리는 거야?”“난 간병인 같은 거 필요 없어. 간병인 아주머니가 어떻게 오빠만 하겠어? 난 그냥 오빠가 내 옆에 있어 주면 돼...”말을 이어갈수록 예린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금방이라도 또르르 떨어질 것처럼 반짝였다.예린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도진은 걸음을 멈췄다.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도진의 시선은 담담했다. 잔잔한 호수처럼, 그 안에서는 어떤 감정의 흔들림도 읽히지 않았다.그는 아무 말 없이 예린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그때, 예린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서둘러 입을 열었다.“맞다, 오빠. 나 오늘 진짜 목숨 걸고 오빠 살린 거잖아. 그 정성을 봐서라도, 아니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도 오빠가 나한테 보답은 해야 하는 거 아니야?”예린은 말이 끝나자마자 기대에 찬 눈빛으로 도진을 올려다보았다.도진은 원래 은혜를 가볍게 넘기는 사람이 아니었다.그 은혜가 크든 작든, 누군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다면 반드시 기억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성격이었다.도진은 예린을 바라보며 물었다.“보답을 원한다면 말해. 돈이든, 다른 보상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뭐든 들어줄게.”그 말을 들은 예린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떠올랐다.어딘가 계산이 깔린, 교묘한 미소였다.이내 예린이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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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네, 어젯밤 예린이에게 사고가 있었고, 그때 제가 예린이랑 같이 있었습니다. 예린이가 저 때문에 다쳤습니다.”구동성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나는 예린이 엄마랑 해외에 있어서 바로 귀국할 수가 없어. 예린이를 직접 돌봐줄 수도 없고. 도진아, 어른으로서 부탁 하나만 하자. 네가 예린 좀 잘 챙겨줘.]도진은 아무 말 없이 침묵했다.구동성은 도진이 예린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은 도진뿐이었다.“예전에 내가 네 조카 우준이 구해준 거 있잖아. 그 일을 한 번 생각해서라도, 예린이를 잠시만 네가 돌봐줬으면 한다.”도환의 아들이 어릴 적 물에 빠졌을 때, 망설임 없이 물로 뛰어들어 아이를 구한 사람이 바로 구동성이었다.그 일은 기씨 가문 사람들 모두가 잊지 않고 있는 큰 은혜였다.도진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알겠습니다. 며칠 동안은 시간을 내서 예린을 보러 가겠습니다.”[그래, 그럼 부탁할게.]구동성의 목소리에는 안도의 기색이 묻어났다....지설은 병원에서 상해 진단서를 발급받았다.집으로 돌아온 뒤, 지설은 병원에 다시 다녀온 이야기를 예연숙에게 꺼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예연숙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가슴이 거칠게 오르내렸다.예연숙의 목소리는 자신도 모르게 높아졌고, 분노와 결연함이 섞여 있었다.“네가 정말로 나를 데리고 가겠다면, 그럼 이제부터 넌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마.”사실 예연숙은 최근 며칠 사이, 조금씩 기억을 되찾고 있었다.남편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집안이 완전히 망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사실을 딸에게는 말하지 않았다.괜히 딸의 마음에 짐을 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예연숙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자신의 병은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했고, 치료에는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병원에서 받아든 병원비에 적힌 긴 숫자들을 볼 때마다, 그녀의 심장은 죄어 오는 듯 아팠다.이미 딸은 감당하기 힘든 삶을 살고 있었다.예연숙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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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지설은 허둥지둥 장식장 앞으로 달려가 평소 어머니가 복용하던 혈압약을 찾아냈다.손이 떨려 제대로 집히지도 않았지만, 이를 악물고 알약 몇 개를 꺼내 어머니의 입가로 가져가며 다급하게 말했다.“엄마, 얼른 약부터 먹어!”예연숙은 힘겹게 입을 벌려 약을 삼켰다.그러나 약효는 곧바로 나타나지 않았다.증상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해졌고, 예연숙의 몸은 힘없이 뒤로 축 기울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엄마!”지설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몇 초가 지난 뒤에야 정신을 차린 지설은 떨리는 손으로 119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한 채 주소를 불러댔다.잠시 후, 구급차가 집 앞에 도착했다.구급대원들은 예연숙을 들것에 옮겨 싣고 즉시 응급 처치를 시작했다.지설도 함께 구급차에 올랐다.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동안, 지설의 심장 박동수는 계속해서 목구멍까지 치솟았다.두 손을 꼭 움켜쥔 채, 지설은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제발... 우리 엄마 아무 일도 없게 해 주세요.’구급차는 가장 가까운 병원에 도착했다.문이 열리자마자 지설은 거의 뛰다시피 내려 들것을 따라갔다.어머니가 응급실 안으로 밀려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지설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응급실 문이 굳게 닫히는 순간, 지설의 감정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참고 있던 눈물이 둑이 터진 것처럼 쏟아져 내리며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그렇게 어찌할 바를 몰라 서 있던 지설의 시야에, 익숙한 사람이 들어왔다.도진이었다.‘기 변호사님이... 왜 여기에?’도진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울고 있는 지설을 보자마자 물었다.“무슨 일이신가요?”지설은 죄책감과 후회에 휩싸인 채, 흐느끼며 말했다.“제가... 제가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엄마가 기절했어요. 다 제 잘못이에요. 원래도 몸이 안 좋으신데, 그런 말을 해서...”도진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지설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제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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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도진은 그 모습을 보자 곧바로 침대 옆으로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목소리를 한껏 낮춰, 아이를 달래듯 부드럽게 말했다.“조금만이라도 드세요. 그래야 어머님을 돌볼 힘이 나지 않겠습니까.”말을 하며 도진은 도시락 뚜껑을 하나씩 열었다.따뜻한 김과 함께 음식 냄새가 모락모락 병실 안에 퍼졌지만, 지설은 여전히 시선을 주지 않았다.도진은 조급해하지 않고 한참을 더 설득했다.그제야 지설은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마지못해 젓가락을 들어 몇 입을 먹었다.지설은 한 입 한 입을 유난히 천천히 씹었다.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그저 도진을 덜 걱정시키기 위해서였다.결국 더는 삼키기 힘들어지자, 지설은 애써 화제를 돌렸다.“변호사님은... 오늘 왜 병원에 계신 거예요?”도진은 잠시 망설였다가, 숨기지 않기로 했다.“예린이가 저 때문에 다쳤습니다. 그래서 제가 책임지고 돌봐야 하는 상황입니다.”말을 마친 도진은 지설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혹시라도 상처를 받거나 오해하지는 않을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예상대로, 그 말을 듣자 지설은 곧장 말이 없어졌다.병실 안 공기가 눈에 띄게 무거워졌다.도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는 급히 덧붙였다.“오해하지 마세요. 저와 예린이는 지설 씨가 생각하시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저는 예린이와 함께할 생각도 없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도진의 목소리는 진지했고, 시선은 지설에게서 한순간도 벗어나지 않았다.그는 지설의 신뢰를 꼭 붙잡고 싶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설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작게 웃었다.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변호사님, 저는 변호사님을 믿어요.”지설의 눈동자는 맑고 고요했다.그 안에는 의심도, 불만도 담겨 있지 않았다.지설도 알고 있었다.도진이 정말 예린을 좋아했다면, 두 사람이 그렇게 오래 알고 지낼 동안 이미 함께했을 것이다.괜히 혼자서 상상하며 마음을 괴롭힐 필요는 없었다.그렇게 생각하자 지설의 마음은 서서히 가라앉았다.그동안 도진은 말없이 곁에서 지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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