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Chapter 461 - Chapter 470

523 Chapters

제461화

“유진이 죽었어.”갑작스러운 소식에 강루인이 흠칫하더니 두 눈에 경악이 스쳤다.‘죽었다고?’강루인의 예상을 벗어난 일이긴 했으나 구아정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뿌리를 완전히 뽑아야 하니까.다만 구아정의 잔혹함을 여전히 과소평가했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이 그녀에게 이리도 쉬운 일일 줄은 몰랐다.강루인이 물었다.“어떻게 발견한 거죠?”구아정이 사람을 죽였다면 시신을 은닉하고 증거를 인멸했을 터.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빨리 발각된 걸까?차성열이 알고 있는 모든 걸 강루인에게 빠짐없이 털어놓았다.구아정의 운이 나쁘다고 해야 할지, 유진의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범인은 유진을 죽인 뒤 돌에 묶어 바닷속에 던졌다. 원래는 다시는 햇빛을 볼 수 없는 운명이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돌을 묶어뒀던 밧줄이 끊어지면서 시신이 바다 위로 떠 올랐다. 때마침 그곳에서 바다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시신을 발견했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다.강루인이 경찰서로 가서 신원을 확인했고 심지어 유진의 시신까지 직접 확인했다. 날카로운 흉기에 찔려 사망한 것이라고 했다.바닷물에 불어 변형된 얼굴을 보면서도 강루인의 표정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유진의 죽음을 어떤 감정으로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유진이 어떻게 구아정을 알게 되었는지, 또 왜 구아정을 도와 강루인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거래였을까, 아니면 강루인에게 원한이라도 있었던 걸까?하지만 유진과 어떤 앙금이 있었는지 강루인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구아정과 손을 잡을 만큼 유진을 해코지한 적이 없었다.가장 가능성이 큰 건 유진이 구아정과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것이었다.강루인은 원래 유진을 찾아 진실을 캐묻고 싶었지만 유진이 죽은 바람에 실마리가 끊기고 말았다.경찰이 말했다.“범인은 아직 추적 중입니다.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바로 알려드릴게요.”주범이 구아정이라는 사실을 강루인이 이미 경찰에 알린 상태였다. 하여 경찰 또한 구아정을 조사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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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2화

더 이상 변은혜와 쓸데없는 말을 섞기 싫었던 경찰이 딱 잘라 말했다.“지금 저한테 이런 소리 해봤자 아무 사용 없어요. 찾을 수 없다고 하면 없는 겁니다.”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변은혜가 또다시 울부짖기 시작했다.“아이고, 하느님. 어찌 저한테 유진이 같은 배은망덕한 자식을 보내신 겁니까? 죽기 전에도 효도라는 게 뭔지도 모르고 혼자 숨어서 호의호식하더니 죽어서도 가족이 편히 지내게 놔두질 않아? 천하의 죽일 년...”온갖 듣기 거북한 욕설이 난무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유진이 그녀의 딸이 아니라 원수라고 생각할 정도였다.강루인이 그 모습을 쭉 지켜봤다. 유진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지적이면서도 다정한 그녀가 저런 막돼먹은 여자와 한 가족이라는 걸 믿지 못했을 것이다.강루인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깊은 생각에 잠겼다.바로 그때 멀지 않은 곳에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주영도가 그 차 안에 앉아 강루인과 차성열이 함께 나와 차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봤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들을 지켜보기만 했다.운전석의 노윤환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언제 미쳐 날뛸지 모르는 주영도를 주시했다. 다행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강루인 일행의 차가 떠난 뒤에도 주영도는 내리지 않았다. 문득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결국 노윤환이 혼자서 유진에 관한 걸 알아보러 갔다. 돌아오자마자 유진과 그녀의 막돼먹은 가족에 대해 주영도에게 전부 얘기했다.노윤환도 유진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녀에게 이런 부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안 후 그도 강루인과 마찬가지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유진의 말과 행동을 보면 이런 가정에서 자랐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보고를 마치고 한참이 지나도 주영도가 멍하니 있자 노윤환이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대표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주영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왜 나한테 따라오지 말라고 했을까?”노윤환이 잠시 멈칫했다.“네?”“이젠 날 믿지 않는단 소리 아니야?”노윤환은 그제야 주영도가 무슨 말을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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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3화

강루인이 유진의 부모를 주시했다.유진의 인간관계에 대해 조사해봤는데 주변 사람들 모두 유진이 고아이고 가족이 다 죽었다고 했다. 지금 보면 전부 거짓말이었다.유진이 외부에 이렇게 말하고 다닌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바로 그들을 증오했기 때문이었다. 죽어버리길 바랄 정도로 말이다.경찰도 그들에게 연락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먼저 찾아왔다고 했다.경찰이 알린 게 아니라면 유진이 죽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도 이렇게 빨리?강루인은 유진의 부모가 실마리를 잡을 수 있는 돌파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유진의 가족이 모텔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후 강루인은 차성열과 함께 모텔로 찾아갔다.문을 두드리자 젊은 남자가 문을 열었다. 유진과 눈매가 비슷한 걸 보니 아무래도 남매인 듯했다.하지만 점잖은 유진과 달리 남자의 눈빛은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 않았다. 강루인을 봤을 때 두 눈에 놀라움이 스친 동시에 예쁜 여자를 훑어보는 남자의 노골적인 시선이 더해졌다.그의 불순한 눈빛에 차성열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불쾌감을 드러냈다.바로 그때 변은혜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누구야?”강루인이 남자의 눈빛에 담긴 음흉함을 무시하고 걸어 나오는 변은혜에게 말했다.“안녕하세요, 전 유진 씨의 친구예요.”변은혜도 그들을 빠르게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무슨 일이죠?”강루인이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해도 될까요?”변은혜가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세 식구가 한방을 쓰고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변은혜가 먼저 입을 열었다.“죽은 년이랑 친한 친구예요?”강루인이 고개를 끄덕였다.“동료였어요. 유진 씨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고 했거든요. 이렇게 살아계실 줄은 몰랐어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변은혜가 눈을 부릅떴다.“그년이 우리를 그렇게 저주했단 말이에요?”“엄마, 내가 뭐라고 했어요? 은혜도 모르는 년이라고 했죠?”유진의 남동생 유민호도 변은혜의 편을 들었다.“혼자만 큰 도시에서 팔자 좋게 살고 우리가 힘들게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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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4화

강루인의 말이 끝난 후 유진의 부모의 표정이 몇 번이나 변했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기도 했다.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자세히 살폈던 강루인은 그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변은혜가 말했다.“이 얘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강루인이 답했다.“유진 씨 대신 어머님, 아버님을 뵈러 온 거예요.”“다 봤으면 이만 가봐.”변은혜가 대놓고 내쫓았다. 지금 그들끼리 해야 하는 중요한 얘기가 있었다.강루인이 옆에 있던 차성열을 힐끗 쳐다보자 차성열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더는 머물지 않았다.“어머님, 아버님. 유진 씨 장례를 치르기 전까지 혹시 어려움이 있으시면 저한테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다 도울게요.”말을 마치고는 차성열과 함께 방을 나섰다.모텔 밖 차 안, 강루인과 차성열이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유진 부모의 대화 소리가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왔다.그들을 찾아간 이유가 바로 도청기를 설치하기 위해서였다.유진의 아버지 유민철이 입을 열었다.“내가 그때 분명히 말했었지? 유진이한테 너무 심하게 하지 말라고. 당신이 너무 심하게 하니까 애가 집을 나간 거잖아...”변은혜가 쏘아붙였다.“이제 와서 날 탓해? 내가 왜 그랬는지 당신 정말 몰라? 당신이 욕구를 참지 못하고 그년한테 손을 댔잖아. 입을 막아야지 어떡해? 당신이 저지른 짓을 그년이 죄다 퍼뜨리면 우리 얼굴을 못 들고 다녀. 마을 사람들한테 쫓겨나는 건 시간 문제라고.”아들이 어린 여자애를 성폭행한 것 때문에 가뜩이나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었다. 거기에 이런 일까지 더해지면 마을에서 발붙이고 살 수 없을 것이다.강루인의 두 눈에 혐오감이 스쳤다.그녀와 유진 사이의 문제도 문제지만 유민철의 짐승만도 못한 행동과 변은혜의 동조하는 태도가 강루인은 너무나 역겹고 수치스러웠다.‘어떻게 자기 핏줄한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상처를 주다니. 짐승만도 못한 것들.’“그 얘기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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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5화

어떤 이들에게 사람의 목숨은 아무런 값어치가 없거나 이용할 자원일 뿐이었다. 유진이 바로 그 후자였다.변은혜의 생각이 유민철의 지지를 얻었다.그들이 이번에 이곳으로 온 건 유진과 모녀의 정이니 뭐니 헛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돈을 위해서였다.그들에게 연락한 사람 역시 유진이 잘사는 걸 바라지 않는 게 분명했다. 이미 죽은 마당에 울부짖어봤자 소용이 없었다. 차라리 돈을 챙기는 게 훨씬 현실적이었다.돈이 생기면 시골을 떠나 도시로 이사 가 집을 살 생각이었다. 그러면 아무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고 그들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며 아들도 장가갈 수 있을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변은혜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내 딸의 죽음이 혹시 너랑 관련이 있어?”변은혜가 직설적으로 물었다. 빙빙 돌리는 법이라곤 없었다.전화 건너편에서 뭐라고 하는지 강루인이 들을 수 없었으나 대신 변은혜가 협박하는 소리를 들었다.“헛소리하지 마. 네가 아니면 왜 우리가 오자마자 죽었겠어? 우리를 불러서 유진이를 협박하려 했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여기까지 불러놓고 이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라고? 우리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 돈 안 주면 네가 내 딸을 죽인 범인이라고 경찰한테 다 말할 거야.”상대방이 돈을 주기로 했는지 변은혜가 곧바로 액수를 말했다.“10억. 더 이상은 안 돼.”“모레까지 돈 가져와.”전화를 끊은 후 그들은 흥분하면서 앞으로 그 돈을 어떻게 쓸지 상상했다.유진의 남동생 유민호가 물었다.“엄마, 정말 준대요?”변은혜가 답했다.“안 줄 리가 없지.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모를까.”다만 상대방에게 돈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10억이라니. 천만도, 1억도 아닌 10억이야. 그 돈만 있으면 우린 이제 부자야.’세 식구의 얼굴에 탐욕스러운 빛이 번뜩였다.더 이상 중요한 정보가 없자 강루인이 이어폰을 뺐다. 밀폐된 차 안, 차성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구아정은 절대 돈을 주지 않을 거야.”맞는 말이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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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6화

구아정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눈앞의 남자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스스로를 변호하는 말이기도 했다.그 말은 구아정이 아니라 유진의 부모에게 잘못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그러게 내 말을 들었어야지.’남자가 그녀의 다소 창백한 얼굴을 훑어보며 물었다.“아직도 주영도랑 함께하고 싶어?”구아정이 대답했다.“영도 오빠는 내 남편이 될 사람이야. 당연히 함께하고 싶지.”“사실 주영도는 너랑 어울리지 않아.”주영도는 그의 아내를 위하여 구아정이 어떻게 되든 아랑곳하지 않고 강제로 낙태를 시켰다. 그런 남자가 좋은 남자일 리가 없었고 구아정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그 말에 구아정의 얼굴에 불쾌감이 떠오르더니 매섭게 호통쳤다.“그만해.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 우리가 왜 어울리지 않아? 나랑 영도 오빠야말로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방 안에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산소가 빨려 나간 듯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구아정이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지광혁을 보았다. 아직 그에게 맡길 일이 있었던 터라 다가가 허리를 감싸 안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다정하게 말했다.“영도 오빠랑 결혼하는 게 내 평생의 꿈이야. 오빠, 날 도와줄 거지?”말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쳐다보는 모습이 보는 이의 연민을 자아냈다.지광혁이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도와줄게.”구아정이 그제야 활짝 웃으며 달콤하게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지광혁이 어두운 밤을 가르며 구아정의 거처를 떠났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는 정글의 치타처럼 주변을 경계하면서 빠르게 모습을 감췄다.그가 떠난 후에야 미행하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이쪽의 움직임이 주영도에게도 전달되었다. 얼굴이 희로애락을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평온했지만 내뿜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노윤환은 그가 겉으로 보이는 만큼 침착하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기 전까지 구아정이 살인범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 주변의 수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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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7화

유진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지광혁의 귀에도 들어갔다. 팔에 깊게 남은 긁힌 자국을 흘끗 보던 그의 눈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아직 아물지 않은 이 상처는 유진이 죽기 전에 발버둥 치면서 남긴 것이었다.지광혁은 경찰의 DNA 채취를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이 나라 사람이 아니어서 검사를 한다 해도 신원 미상으로 나올 것이다.하지만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지광혁은 구아정에게 연락하여 이제 더 이상 구아정을 만나지 않을 것이고 일이 있으면 전화로 연락하자고 했다.유진의 몸에서 증거가 발견될 수도 있다는 소식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구아정은 바로 속으로 지광혁을 탓했다.‘그런 실수를 하면 어떡해?’구아정이 물었다.“날 알아낼 가능성은 없겠지?”지광혁이 그녀를 안심시켰다.“응, 없어. 일은 내가 한 거야. 너랑 아무 상관 없어.”그 말은 설령 알아낸다 해도 구아정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의미였다.구아정이 그의 말뜻을 알아챘다.“오빠는 나한테 너무 잘해줘.”“널 지켜주겠다고 했잖아.”...차성열은 강루인을 엘리베이터까지 바래다줬다.강루인이 차가운 엘리베이터 벽에 기댔다. 거울을 비춰 보니 얼굴과 입술 모두 창백하기 그지없었고 시들어버린 꽃처럼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야말로 산송장이나 다름이 없었다.사실 그녀도 차성열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심장과 몸이 모두 망가져 이젠 사랑이란 것에 더는 미련이 없었다. 차성열이 사랑을 강루인에게 낭비하지 말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바랐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강루인이 차성열에게 마음이 없었다. 하여 그에게 헛된 희망을 줘서는 안 되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강루인이 지친 몸을 이끌고 내렸다.바로 그때 고요한 복도에 불길한 존재가 나타났다. 고개를 들어 집 앞에 주영도가 서 있는 걸 본 순간 그녀의 두 눈에 혐오감이 스쳤다.강루인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순간부터 주영도의 시선이 한순간도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하지만 강루인은 무시하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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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8화

주영도가 목구멍에 차오르는 씁쓸함을 삼키며 준비해온 영양제를 강루인에게 내밀면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유산한 지 얼마 안 돼서 몸조리 잘해야 해. 너무 무리하지 말고. 지금 내가 보기 싫다면 나타나지 않을게. 경자 아주머니더러 와서 챙겨달라고 해. 몸을 너무 혹사하지...”강루인이 너무 수척해져서 마음이 다 아팠다.주영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루인이 주영도의 호의를 걷어차 버렸다. 영양제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엉망진창이 되었다.강루인의 눈빛이 무척이나 날카로웠다.“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아이가 당신 때문에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하고 떠났는데 어떻게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수 있어? 밤에 잘 때 아이 꿈도 꾼 적이 없어? 난 꿨어. 피투성이가 된 채 몸이 부서진 아이가 계속 아프다고, 너무 아프다고 했어.”그 말에 주영도의 몸이 굳어지더니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조명 아래 그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보였다.아이를 잃은 게 주영도에게도 사실은 아픔이었다. 강루인의 묘사에 주영도는 온몸이 다 아픈 것 같았다. 꿈에서 아이를 보진 못했지만 눈을 감으면 강루인이 피를 흘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죄책감이 그의 영혼을 괴롭혔고 밤새도록 잠 못 들게 했다.강루인이 주영도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했다.“영도 씨, 이건 우리의 업보야. 잊어선 안 돼. 아이가 당신 손에 죽었다는 걸 기억하고 평생 참회하면서 살아.”주영도의 곧게 뻗었던 몸이 구부러지더니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그의 창백한 얼굴을 본 순간 곤두섰던 신경이 아주 조금은 느슨해졌지만 마음속의 증오심은 오히려 커져만 갔다.‘절대 편히 살게 내버려 두지 않아.’강루인이 주영도를 밖에 내버려 두고 현관문을 닫아버렸다.집 안, 함지율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강루인을 쳐다봤다. 밖의 소란을 다 들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어떤 일은 강루인이 스스로 처리해야 했다.강루인이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려고 부엌으로 들어가 얼음물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고는 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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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9화

마지막엔 가장 죄가 없는 사람이 이 비극의 모든 짐을 짊어지게 되었다. 죽어야 할 자가 살았고 죽지 말아야 할 자가 목숨을 잃었다.강루인은 뱃속의 아이에게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몸에서 피가 흘러내릴 때 보이지 않는 손이 그녀의 몸을 반으로 찢는 듯한 고통이 느껴져 숨쉬기 힘들었다.아직 형체조차 갖추지 못한 아이가 무능한 어머니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함지율의 눈에서도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아니야. 널 사랑하는 사람들은 널 원망하지 않아. 할머니께서 널 얼마나 아끼셨는데. 원망이 게 아니라 네가 잘 지내길 바라실 거야.”강루인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부엌에 그녀가 슬프게 흐느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듣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보는 이의 눈물을 자아내는 소리였다.함지율이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로 울고 있는 강루인을 부축해 침대로 데려가 눕힌 다음 곁을 지켰다.그녀는 최지호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가 놓고 온 사건 자료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최지호가 자료를 들고 강루인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주영도가 노숙자처럼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깜짝이야.’주영도가 엄청난 충격이라도 받은 듯 넋이 나가 있자 최지호가 물었다.“이 시간에 여기서 뭐 해? 누가 시신이라도 수습해주길 기다리는 거야?”그 말에 주영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을 본 순간 최지호가 흠칫 놀랐다.‘울었어?’주영도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여긴 왜 왔어?”최지호가 손에 든 서류 봉투를 흔들었다.“지율이한테 자료를 전해주려고.”주영도의 시선이 굳게 닫힌 현관문으로 향했다.“지율 씨도 안에 있어?”최지호가 어지럽게 놓여있는 영양제들을 훑어보았다.“쫓겨난 거야?”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기에 쫓겨났다고 할 수도 없었다.주영도가 물었다.“저녁에 약속 있어?”“집에 가서 자야지. 내일 재판 있어.”그가 벽을 짚고 일어섰다.“같이 한잔하자.”‘내 말은 아예 안 들은 거야?’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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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0화

‘말도 안 되는 기대 좀 하지 마. 자기 몸 하나 챙기기도 힘든데 언제 배신자인 너까지 걱정한다고.’주영도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루인이 더 이상 날 필요로 하지 않아.”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나 인정해야만 했다. 강루인이 정말 그를 싫어하게 되었고 증오까지 하게 되었다.강루인이 주영도에게서 점점 멀어져 잃을 것 같다는 느낌이 전보다 훨씬 뚜렷해졌다.최지호가 말했다.“필요로 하지 않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너 진작 정신을 차렸어야 했어. 자신한테 상처를 준 사람을 계속 제자리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없어. 가족을 잃은 상황에서 루인 씨가 널 쳐다보기나 할 것 같아? 루인 씨는 정상적인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최지호가 계속 설득했다.“루인 씨 지금 조금만 건드려도 무너지니까 자극해선 안 돼. 더 자극하면 정말 미쳐버릴지도 몰라. 네 몸에 난 상처가 어떻게 생긴 건지 잊지 마.”멀리 떨어져 주는 것이야말로 주영도가 강루인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속죄였다.그렇지 않으면 다음번에 그녀가 발작했을 때 얼마나 미쳐버릴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 피비린내 나는 장면이 한 번이면 충분했다. 최지호는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주영도가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얼굴에 고통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우리 관계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거지?’최지호는 주영도네 집에 조금만 있다가 이내 돌아갔다....돈을 받기로 한 날 그들은 야간에 움직였다. 어쨌거나 불법 거래였기에 은밀하게 밤에 만나는 것에 대해 유씨 가문 사람들은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돈만 받으면 되었으니까.그들이 외출하기 전에 강루인은 이미 모텔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경찰도 협조하여 함께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유씨 가문 세 사람은 그들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돈벼락 맞을 생각에 입이 귀에 걸렸다.차성열도 함께였는데 차성열이 운전을 맡았다.유씨 가문 세 사람이 렌터카를 몰고 목적지로 향했다. 인적이 드문 산길이었다.유민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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