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Chapter 41 - Chapter 50

104 Chapters

제41화

차가 병원에 도착했다.강루인이 멍한 얼굴로 서 있는 강혜미에게 귀띔했다.“지금처럼 돈 걱정 없이 살고 싶다면 자세를 낮춰. 거만하게 굴지 말고.”‘난 억울한 상황에서도 꾹 참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이 모든 일을 저지른 넌 대체 뭘 믿고 이렇게 기고만장한 거야?’강혜미가 강루인을 노려봤다.“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할머니 때문이 아니었다면 강루인은 이런 일에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강루인이 병실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주영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문을 열어 보니 주영도가 구아정에게 다정하게 물을 먹여주고 있었다. 강루인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고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주영도의 시선이 강루인에게 향한 순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 눈빛은 여긴 왜 왔냐고 묻는 듯했다.강루인이 마음속의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구아정 씨한테 사과하려고 혜미를 데려왔어.”그러고는 강혜미를 힐끗 쳐다봤다. 강혜미는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 시키는 대로 사과했다.“죄송해요.”방금 수술을 마친 구아정은 얼굴이 창백했고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왜 저한테 사과하는 거죠?”강루인이 대답하기도 전에 밖에서 들어온 양동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쟤 동생 때문에 네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으니까.”“강루인, 강씨 가문은 대체 뭐 하는 가문이야? 한 사람이 피를 빨아먹는 걸로도 모자라서 두 명이 같이 빨아먹으려고? 어쩜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 다 있을까?”강루인은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쥐었고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그녀가 한 일은 아니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속으로 억울함을 삼키며 말했다.“아정 씨, 이번 일은 우리 강씨 가문이 잘못했어요. 요구든 보상이든 최대한 맞춰드릴게요.”구아정이 고개를 돌리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영도 오빠, 나 피곤해.”“자, 그럼.”주영도는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시선이 강루인에게 닿았을 땐 눈빛에 온기는 사라지고 차가움만 남았다.“쟤를 데리고 나가.”강루인은 아직 풀지 못한 손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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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현실은 참으로 허무했다.조강지처인 강루인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구아정에게 밥을 가져다줬고 남편인 주영도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다.구아정의 병실은 늘 북적였고 찾아오는 이들은 모두 주영도의 친구들이었다.양동운이 강루인이 가져온 점심을 가로채 먹으며 말했다.“영도야, 너희 집에 이렇게 요리 잘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우리 집 주방에서 일해볼 생각 없어? 월급은 후하게 줄게.”강루인이 뭐라 대답하기 전에 구아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동운 오빠, 루인 언니더러 오빠네 집에서 일하라고 하는 건 좀 아니지.”양동운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뭐가 아니야? 집에서 밥하는 거나 우리 집에서 하는 거나 똑같지. 내가 공짜로 일을 시키겠다는 것도 아니고.”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강루인의 귀에 날카롭게 박혔다.양동운이 강루인을 함부로 대하는 건 전적으로 주영도의 태도 때문이었다. 구아정을 무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내가 여기 있는 게 안 보여?”주영도가 웬일로 나서서 강루인의 편을 들었다.하지만 강루인은 전혀 감동하지 않았다. 그가 지키려는 건 그녀가 아니라 그의 체면이었으니까.주씨 가문의 며느리가 남의 집 주방에서 일한다는 게 얼마나 망신스러운 일인가?양동운은 주영도의 불쾌한 기색을 눈치채고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알았어, 알았어. 네가 허락하지 않을 거라는 거 알아. 안 뺏을게.”강루인의 마음은 아직 그리 단단하지 않았다. 모욕당하지 않은 척 연기할 수는 있었지만 진짜로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더는 이 숨 막히는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아 병실을 나왔다.할머니 이수희도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어 구아정의 병실을 나온 후 곧장 할머니에게 갔다.이수희의 컨디션이 괜찮아 보였고 강루인을 보자마자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할머니.”할머니가 있는 곳은 강루인에게 언제나 안식처였다.이수희의 눈에 기쁨이 어린 걸 보고 강루인이 물었다.“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데요?”이수희가 웃음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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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아니야.”강루인이 무슨 자격으로 탓하겠는가?그녀는 주영도가 진심으로 원해서 결혼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그저 거래일 뿐이었고 너무 많은 욕심을 낸 건 강루인이었다. 명분뿐만 아니라 사랑까지 바랐다.주영도는 그녀의 대답에 신경 쓰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아정이가 네 동생을 선처해줬어. 더는 책임을 묻지 않겠대. 이번이 마지막이야.”분명 강루인이 원하던 결과였지만 이 순간 그녀의 마음은 너무 괴로웠고 스스로가 가엽게 느껴졌다.“혜미 대신 고맙다고 전해줘.”주영도가 말했다.“네가 이렇게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인 줄 몰랐네.”비꼬는 뉘앙스가 너무나도 뚜렷했다.강루인도 이기적으로 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녀를 키워준 할머니를 버릴 수 없었다.강루인이 물었다.“26일에 시간 돼?”주영도가 되물었다.“왜?”“그날 우리 할머니 칠순이셔. 같이 가줄 수 있어?”“음.”주영도가 짧게 대답했다. 명확하게 대답하진 않았지만 주영도가 동의했다는 뜻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또 밖으로 나가려는 그를 보며 강루인이 물었다.“어디 가?”“병원.”그 말에 강루인은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배웅했다....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렀고 어느덧 이수희의 칠순 잔치 날이 되었다.출근 준비를 하는 주영도를 보며 강루인이 말했다.“생신 잔치는 저녁 다섯 시부터야.”주영도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시간 맞춰 주선 그룹에서 기다릴게.”어차피 가는 마당에 함께 가야 했다. 이수희가 그들의 불화를 눈치채면 안 되니까.주영도가 알겠다고 짧게 답했다.집을 나선 두 사람은 각자 갈 길을 갔다. 그는 주선 그룹으로, 그녀는 작업실로 향했다.차성열이 말했다.“이번 주말에 학교에서 백 주년 기념행사를 열어. 이홍섭 교수님도 참석하실 거야. 같이 가서 스승님 뵐래?”그 말에 강루인이 멈칫했다. 이홍섭을 벌써 몇 년이나 보지 못했다.주영도와 결혼하여 펜을 내려놓고 가정주부로 살기로 한 이후 그녀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은사를 볼 면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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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차가 도로 위를 천천히 달렸다.주영도의 시선이 강루인의 텅 빈 약지에 닿더니 순간 멈칫했다.“반지는?”강루인이 당황해하며 손가락을 문질렀다.“아침에 세면대에 놔두고 나올 때 깜빡했어.”사실 결혼반지를 오래전에 뺐다. 주영도가 오늘에서야 그걸 눈치챘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약지에 남은 반지 자국을 보던 강루인은 저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사실 결혼반지는 강루인의 사이즈에 맞춰 고른 게 아니었다. 사이즈가 맞지 않았지만 반지를 끼던 순간 강루인의 마음은 꿀처럼 달콤했다.나중에 반지 사이즈를 수정했고 그렇게 5년이나 꼈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에게 이걸 깨우치게 했다. 처음부터 맞지 않는 건 아무리 고쳐도 본질을 감출 수 없다는 것을.주영도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고 그녀를 사랑하지도 않았다.차가운 감촉에 강루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개를 숙여보니 주영도가 네모난 케이스를 내밀고 있었다.강루인이 어리둥절해 했다.“뭐야?”케이스 안에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 있었다. 그녀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거지?’주영도가 말했다.“네 생일 선물이야.”“생일 아직 한 달이나 남았어.”“그날에 해외 출장이 잡혀서 국내에 없을 거야.”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려다보던 강루인은 마음이 무척이나 복잡했다.주영도의 한결같은 냉대는 받아들여도 갑작스러운 관심은 견디기 힘들었다. 마음이 흔들릴 수 있으니까.반지를 꺼내 손가락에 꼈는데 사이즈가 딱 맞았다.“마음에 들어?”다이아몬드에서 반사된 빛이 그녀의 눈을 찬란하게 비췄다. 강루인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저렸다.“응. 마음에 들어.”주영도가 준 건데 어찌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차가 강씨 저택에 도착했다. 주영도는 차에서 내려 준비한 선물을 트렁크에서 꺼냈다.“이건 할머니께 드리려고 준비한 거야.”그가 들고 있는 고급 선물을 쳐다보던 강루인은 마음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주영도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여 이미 두 사람의 이름으로 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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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주영도는 다 알고 있었지만 망설임 없이 구아정에게로 달려갔다. 대문 앞까지 왔으면서도 단 1분도 더 머물지 않았다.결국 주영도는 돌아오지 않았다. 생일잔치가 끝날 때까지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이 결말은 강루인의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루인은 구아정이 보낸 문자로 주영도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 주영도가 그녀의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진이었다.[영도 오빠가 나한테 저녁 만들어주고 있어.]휴대폰 화면을 끈 순간 강루인의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눈물은 바람에 실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주영도는 밤새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왔다.“미안해.”그의 사과는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강루인이 물었다.“만약 나랑 구아정 씨가 동시에 사고를 당하면 영도 씨는 당연히 구아정 씨한테 달려갈 거지?”주영도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의미 없는 가정은 안 해.”강루인은 스스로를 비웃었다.‘봐. 좋아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거짓말도 안 한다니까.’...이홍섭을 만나기로 한 날이 되었다. 강루인은 전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차성열이 그녀의 피곤한 얼굴을 보며 웃으면서 말했다.“잘 못 잤어?”강루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답했다.“떨려서요.”차성열이 웃었다.“호랑이나 늑대를 만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긴장해? 스승님이 널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그는 이홍섭이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존재라는 걸 알지 못했다.하경대학교.강루인은 이곳에서 주영도를 마주칠 줄은 몰랐다.사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주영도가 이 학교 출신이었고 성공한 인사로서 학교 백 주년 행사에 초대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하지만 주영도는 강루인이 이곳에 나타난 걸 의아하게 생각했다.“네가 왜 여기에 있어?”강루인이 답했다.“나도 하경대 졸업생이야.”주영도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강루인이 그의 후배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그뿐만 아니라 그녀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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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제가 누구랑 결혼했는지 알고 계셨어요?”이홍섭이 또다시 콧김을 내뿜었다.그의 모습에 강루인은 더욱 죄책감에 휩싸였다. 이홍섭이 아직도 그녀를 신경 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에게 완전히 실망했다고 생각했었는데.죄책감 때문에 강루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이홍섭이 퉁명스럽게 말했다.“왜 울고 그래? 한심하게. 남이 봤으면 이 늙은이가 널 괴롭히는 줄 알겠어.”“...”그 말에 강루인은 쏟아지는 울음도 억지로 삼켰다. 차성열이 계속 옆에서 중재했다.“강연이 곧 시작되는 거 아니에요? 제가 모셔다드릴게요.”이홍섭은 성미가 불같았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했다.“난 뭐 팔다리가 없어? 왜 네 부축을 받아야 하는 건데?”차성열은 말을 잇지 못했다.‘난 스승님을 화나게 한 게 없는 것 같은데.’이홍섭을 화나게 하진 않았지만 불똥이 그에게도 튀었다.이홍섭의 시선이 강루인에게 향했을 땐 또 다른 투덜거림이 이어졌다.“왜 그리 멀뚱멀뚱 서 있어? 얼른 와서 부축하지 않고. 스승을 깍듯이 모셔야 한다는 거 몰라?”강루인은 반항 한마디 못 하고 쪼르르 다가가 이홍섭을 부축했다.기고만장해하는 이홍섭을 보며 차성열은 달리 방법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강당.이홍섭은 학교에서 특별히 초대한 인사였기에 당연히 맨 앞줄에 앉았다. 주영도도 같은 대우를 받았다.이홍섭과의 인연 덕분에 강루인과 차성열은 2열에 앉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구아정이 강루인의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차성열과 자리를 바꾸려던 그때 행사가 시작되고 말았다.구아정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었다. “너도 올 줄 알았더라면 영도 오빠한테 같이 가자고 했을 텐데.”강루인은 그녀의 도발이 점점 익숙해졌다.만나서 도발하지 않으면 구아정이 오늘 제정신이 아니라고 의심할 지경이었다.주영도는 강단 위에 꼿꼿하게 서 있었고 표정도 진지했다. 그리고 움직임 하나하나에 매력이 흘러넘쳤다.강루인은 강단 아래의 여학생들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주영도를 쳐다보는 걸 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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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강루인은 15살이던 해에 주영도와 처음 만났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일이었다.남들에게 방과 후는 별거 아니었지만 학교 폭력 피해자였던 강루인에게는 두려움의 시간이었다.왜냐하면 방과 후가 괴롭히기 좋은 최적의 타이밍이었으니까. 그날도 그녀는 골목길에서 괴롭힘을 당했다.아이들의 악랄함은 가끔 어른들보다 더 잔인했다.때리는 건 당연한 것이었고 옷을 벗긴다거나 오줌을 머리에 붓는다거나 나체 사진을 찍는 일도 빈번했다.오랫동안 이어진 괴롭힘에 강루인의 몸과 마음은 상처투성이가 돼버렸고 의지력도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다.그러다가 그녀의 멘탈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주영도가 나타났다.그는 외투로 그녀의 벗겨진 몸을 덮어주었고 싫어하는 기색 하나 없이 그녀의 얼굴에 묻은 오물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면서 안쓰러워했다.“가여운 것.”강루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걸 눈치챘는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잘 살아. 쟤네들보다 더 잘 사는 게 최고의 복수야.”주영도는 그녀의 칠흑 같은 길에 비춘 한 줄기의 등불이었고 유일한 빛을 주었다.학교 폭력 가해자들에게서 강루인을 구해줬을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쫓아냈다.강루인은 그가 그걸 어떻게 해냈는지 알지 못했다. 그 후 학교에서는 학교 폭력을 엄격히 조사했고 강루인도 더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다.그러다가 나중에야 그녀가 다니던 학교가 주씨 가문의 소유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주씨 가문의 장손 주영도였다.강루인은 따뜻한 빛과도 같은 주영도의 행보를 계속 주시했다.그는 햇살 아래 서 있는 천사처럼 깨끗했고 웃는 모습도 더할 나위 없이 예뻤다. 그렇게 점점 그에게 다른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그녀가 따라다니는 걸 알아챈 주영도는 짜증을 내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물었다.“왜 날 쫓아다녀?”주영도의 친구가 놀리듯 말했다.“왜겠어. 네가 좋아서지.”하지만 주영도는 믿지 않았고 친구들에게 타인의 명예를 해치지 말라고 했다.“꼬마야, 넌 아직 어리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 연애는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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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학교 행사가 끝이 났다.강루인이 옛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는 이홍섭을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서 들려오는 대화가 그녀의 주의를 끌었다.“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주영도는 여전히 뛰어나네.”“당연하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라 우리랑 출발점부터 달라.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우리하고는 비교도 안 돼.”“주영도 벌써 결혼했대.”“그 나이에 결혼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옛날에 가을 선배랑 잘 만나더니 다른 사람이랑 결혼할 줄은 몰랐어.”“주씨 가문 정도면 집안 형편이 비슷한 가문과 사돈을 맺으려고 하겠지.”강루인이 귀를 쫑긋 세웠다.‘영도 씨가 대학교 때 만났던 여자친구 이름이 가을이었구나.’“가을 선배 지금 해외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네.”“왜? 보고 싶어?”그 순간 그들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이내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강루인이 뒤를 돌아보니 주영도가 바로 뒤에 서 있었다.그의 표정이 하도 평온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지금의 주영도는 학교 다닐 때와 완전히 딴판이었다. 교통사고 이후 강루인의 기억 속 웃음 많고 따뜻한 햇살 같던 소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지금은 어찌나 진중하고 무뚝뚝한지 인간미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또 완전히 그런 건 아니었다. 구아정의 앞에서는 그다지 점잖지 않았다.조금 전까지 뒷담화를 하던 사람들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주영도가 강루인에게로 다가갔다.“이홍섭 교수님이랑 무슨 관계야?”강루인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답했다.“옛 스승과 제자 관계.”“옛 스승?”강루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영도가 계속 물었다.“왜 옛 스승이야?”“너랑 결혼했으니까.”주영도는 대충 이유를 짐작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가 이홍섭의 제자였을 줄은 정말 몰랐다.“전에는 왜 말 안 했어?”강루인이 답했다.“물어보지도 않았잖아.”주영도를 좋아했기에 그의 모든 취향과 과거를 알고 있었고 강루인을 싫어했기에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죄책감이라도 느꼈는지 주영도는 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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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이홍섭의 말에 강루인의 무거웠던 마음이 살짝 풀리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강루인이 농담을 건넸다.“스승님은 이혼을 무조건 반대하실 분 같은데 의외로 개방적이시네요.”이홍섭이 눈을 흘겼다.“내가 뭐 꼰대야? 게다가 결혼이 사형 선고도 아니고. 사형도 집행유예가 있어. 혹시 이혼 안 하는 이유가 부귀영화를 포기하지 못해서야?”강루인이 계속 농담했다.“사실 포기 못 한 것도 있어요. 이렇게 돈 많은 사람을 본 적이 없거든요.”이홍섭이 버럭 화를 내며 눈을 부릅뜨자 강루인이 황급히 차를 따라주며 사과했다.“이혼 문제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할게요.”강루인도 이혼을 간절히 원했지만 그건 그녀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차성열이 적절히 끼어들어 강루인의 편을 들었다.“주씨 가문은 일반 가문이 아니잖아요. 이혼한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처리될 일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루인이가 알아서 해결하게 두세요.”이홍섭은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강루인은 차성열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이혼 얘기만 빼면 참으로 즐거운 점심 식사였다. 이홍섭과 서먹해졌던 사이가 다시 회복됐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이홍섭은 여전히 강루인을 학생으로 대하며 숙제를 잔뜩 내줬다. 입으로는 툴툴거렸지만 마음속으로는 무척이나 기뻤다.기분이 좋아 저녁에 집에 돌아갈 때까지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주영도는 그녀보다 늦게 들어왔고 온몸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오늘 과음했는지 완전히 취한 상태였다.평소였더라면 강루인은 바로 달려가서 챙겼겠지만 오늘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오용주가 현모양처 노릇을 강요했다.오용주가 시어머니에게 고자질할 거란 생각에 결국 타협했다. 괜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침실.주영도가 침대에 누웠고 강루인은 물을 떠 와 그의 몸을 닦아주었다.손과 얼굴을 닦아주던 그때 주영도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다.그의 눈은 항상 예뻤다. 특히 웃을 때면 두 눈에 별이 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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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다음 날 주영도가 잠에서 깼을 때 그는 바닥에 누워있었다.멍한 상태로 일어나 약간 욱신거리는 뒷머리를 만졌다. 어쩌다가 바닥에서 잤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옷에서 나는 술 냄새를 맡은 주영도는 눈살을 찌푸렸다. 바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진경자가 아직 구아정네 집에 있어 오용주가 집안일을 맡았다.주영도가 물었다.“루인이 언제 나갔어요?”오용주가 어리둥절해 하며 되물었다.“사모님 위층에 안 계세요?”강루인이 어젯밤에 이미 집을 나간 걸 그녀도 모르고 있었다.주영도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어젯밤의 기억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강루인이 그의 몸을 닦아줬던 게 어렴풋이 기억났지만 그 이후의 기억은 전혀 없었다.밤새 바닥에서 잔 바람에 온몸이 쑤셨고 기분도 좋지 않았다. 강루인의 행방을 알아볼 마음도 없었고 아침도 먹지 않은 채 회사로 향했다.강루인은 어젯밤 집을 나와 함지율을 찾아갔다.그녀와 주영도의 일을 함지율이 가장 잘 아는 터라 그녀에게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강루인은 함지율에게 이혼을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강루인과 밤늦게까지 얘기한 바람에 함지율은 아침에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법률 사무소.함지율이 커피를 내리고 아직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는데 탕비실에 불청객이 들어왔다.“강루인 씨의 이혼을 돕는다면서요?”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짐승 같은 최지호를 보며 함지율이 눈을 흘겼다.“그게 지호 씨랑 무슨 상관이죠?”최지호가 금테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동료로서 충고하는데 이 일 끼어들지 않는 게 좋아요.”함지율이 말했다.“왜요? 그새 주영도의 앞잡이라도 됐어요?”최지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지율 씨는 본인을 너무 과대평가해서 문제예요. 이 바닥에서 지율 씨 하나쯤 없애는 건 일도 아니에요.”함지율이 말을 잇지 못했다.화가 잔뜩 난 그녀의 모습에 최지호가 웃었다.“남의 부부 일에 외부인이 끼어들지 말란 말이에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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