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Chapter 51 - Chapter 60

104 Chapters

제51화

이수희가 재빨리 말했다.“그렇게 심각해? 루인아, 난 괜찮으니까 얼른 가서 영도를 챙겨줘.”강루인이 말했다.“먼저 병실까지 모셔다드릴게요.”그러자 이수희가 거절했다.“괜찮아. 몇 걸음만 가면 되는데 뭐. 나 혼자 갈 수 있어. 얼른 남편한테 가 봐.”그러고는 강루인을 밀어버렸다.강루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링거실.“이 주사를 맞으면 졸릴 수 있으니까 보호자분들이 상태를 잘 봐주시고 문제 있으면 바로 부르세요.”간호사는 여자 둘에 남자 하나인 그들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보호자’ 구아정이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기분이 이상한 건 간호사뿐만 아니라 강루인도 마찬가지였다. 어젯밤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라 불편하기만 했다.강루인이 말했다.“보살펴주는 사람 있으니까 난 먼저 가볼게.”두 사람의 애정 행각을 보고 싶지 않았다.문득 그녀의 귓등에 생긴 붉은 자국을 발견한 주영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어젯밤에 어디 갔었어?”그 말에 강루인은 발걸음을 멈췄다. 따져 묻는 듯한 눈빛을 보니 어젯밤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강루인이 답했다.“지율이한테 갔었어.”아픈 탓인지 계속 그 일을 물고 늘어졌다.“너 유부녀인 거 잊었어? 어떻게 외박을 해? 주씨 가문의 명예에 먹칠할까 두렵지도 않아?”강루인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가 하면 로맨스고 그녀가 하면 불륜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었다.구아정이 강루인의 편을 드는 척했다.“오빠, 그런 소리 하지 마. 언니도 개인적인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밤에 나간 것일 수도 있잖아.”무슨 생각을 했는지 주영도의 얼굴이 굳어졌다.“대체 무슨 일이길래 하필 밤에 함지율을 만나러 가야 하는 건데?”강루인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말 속에 숨은 의미를 모를 리가 없었다.‘어떻게 구아정의 앞에서 이렇게 비꼴 수 있어? 내 체면 따위 안중에도 없는 거야?’강루인은 마음이 너무나 괴로웠다.“난 영도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더러운 여자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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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강루인은 하루 종일 이홍섭과 함께 있었고 저녁이 돼서야 일을 마무리했다. 차성열이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줬다.차성열과 작별 인사를 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그녀의 착각인지 도우미들의 표정이 왠지 복잡해 보였다. 강루인이 쳐다보면 얼른 시선을 돌리곤 했다.어리둥절해 하던 강루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았다.주방에서 구아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주머니, 식사 다 준비됐어요? 영도 오빠가 입맛이 없다는데 입맛 돋우는 음식 좀 준비해봐요...”강루인은 이 집안의 안주인인 것처럼 지휘하는 구아정을 쳐다봤다.“언니, 왔어요?”그녀를 보고도 구아정의 안주인 기세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오빠 아직 회복 중이니까 오늘 밤에는 안방 말고 다른 데서 자요.”그 말에 가장 먼저 불쾌감을 표한 건 오용주였다. 이건 강루인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사모님이 어디서 주무시든 그건 아정 씨가 결정할 일이 아니죠. 그리고 대표님은 사모님께서 보살펴드리면 돼요.”“오빠가 언니 때문에 아픈 건데 잘 챙길 수나 있겠어요?”구아정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게다가 이건 내 뜻이 아니라 영도 오빠가 시킨 거라고요.”강루인이 말했다.“알았어요.”그녀가 필요 없다는데 굳이 가서 미움을 사서 뭘 하겠는가?강루인의 나약한 모습에 오용주는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강루인은 게스트룸을 썼다. 집안의 방음 효과가 아주 좋은데도 안방에서 구아정의 다정한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설계도를 그리다가 멈칫한 그녀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주영도와 결혼한 첫날부터 안방은 그들의 신혼 방이었고 그곳에서 수많은 친밀한 순간을 보냈으며 많은 추억이 깃들어 있었다.이제 안방과 주영도는 곧 남의 것이 될 것이다.더는 일할 마음이 들지 않아 노트북을 덮고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다음 날 강루인이 아래층으로 내려간 그때 주영도와 구아정은 이미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평소 강루인이 앉던 자리는 구아정이 차지하고 있었고 주영도를 보살피는 일까지 도맡아 하고 있었다.주영도는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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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37도는 인간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온도지만 감정에서는 최적의 온도가 아니다.잔잔하기만 한 결혼 생활은 고인 물과 같아 그 안에 온통 위기뿐이었다....김옥순은 매달 절에 방문했고 갈 때마다 이틀 정도 머무르면서 경전을 외우고 예불을 올렸다.액땜에 성공한 후 복덩이가 된 강루인은 김옥순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고 절에도 함께 갈 수 있게 되었다.오늘은 그녀뿐만 아니라 박정금도 함께 왔다.절에 도착하자마자 박정금은 강루인더러 부처의 불상 앞에서 아이를 점지해달라고 무릎 꿇고 빌라고 했다.매번 꿇었으니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강루인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냥 대충 시늉만 할 생각이었으니까.예불을 마친 후에도 김옥순은 계속 절을 했고 다른 사람들은 쉬러 갔다.차성열의 업무 관련 문자가 와서 한동안 얘기를 나눴다. 얘기가 끝난 후에는 SNS를 열어봤다. 위에 있는 게시물 세 개 모두 구아정이 올린 것이었는데 게시물마다 사진을 여러 장씩 올렸다.사진 속에 강루인이 아는 사람도 있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아는 사람들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모두 주영도와 관련된 사람들이었다.이 사진들에서 주인공은 역시나 구아정과 주영도였다.해변과 바다, 편안함과 여유로움. 신혼여행의 기본 구성이었다.강루인은 씁쓸함이 밀려와 휴대폰을 꽉 쥐었다. 그녀와 주영도는 신혼여행은커녕 결혼식조차 올리지 못했다.“너 일 그만뒀어?”박정금이 불쑥 나타나 묻자 강루인이 사실대로 답했다.“네.”그녀가 미리 얘기하지도 않고 제멋대로 퇴사한 것에 대해 박정금은 딱히 나무라지 않았다.“일 그만두는 것도 좋지. 이젠 집에서 임신 준비에만 신경 써.”강루인은 반항하지 않고 여전히 순종적인 태도를 유지했다.박정금이 나지막하게 말했다.“남자 옆에 여자들이 꼬이는 건 그만큼 매력이 있다는 뜻이야. 남자가 집에만 들어오면 아무 문제 없는 거니까 속 좁게 굴지 말고 네 역할만 제대로 해.”그녀의 이런 태도에도 강루인은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아들은 그녀의 친아들이지만 며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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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구아정은 그렇게 강루인의 집에 눌러앉았다.아니. 선샤인 빌리지는 사실 강루인의 집이 아니었다. 이곳은 주씨 가문의 소유였고 그녀는 잠시 머물고 있을 뿐이었다.안방에서 나온 날부터 강루인은 다시는 들어가지 않았다.저녁,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던 그때 주영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강루인이 침대에 앉아 물었다.“뭐 하는 거야?”주영도가 말했다.“자야지, 이제.”강루인이 귀띔했다.“여기 내 방인데?”“여긴 내 집이야.”그렇다. 이곳은 그의 집이었고 그가 어디서 자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그 말에 강루인은 이불을 꽉 움켜쥐었고 모욕감이 마구 밀려왔다.‘날 이렇게까지 모욕해야겠어?’강루인이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내려가자 주영도가 막아섰다.“어디 가?”“영도 씨 집에서 나갈게.”강루인도 갈 곳이 없는 게 아니었다.주영도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더니 침대 위로 밀어 넘어뜨렸다.“너 오늘 배란일이잖아.”그러고는 그녀를 덮쳤다.강루인은 예전에 느꼈던 흥분을 더는 느끼지 못했다. 그를 밀어내려고 팔을 뻗었다.“난 아이 낳고 싶지 않아.”주영도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머리 위로 눌렀다.“네가 낳고 싶지 않다고 해서 안 낳아도 되는 문제가 아니야.”강루인이 온몸으로 거부했다.“구아정 씨는 원하는 것 같던데 가서 낳아달라고 해.”말하는 사이 잠옷이 벗겨지고 있었다. 주영도가 말했다.“할머니께서 증손주를 원하셔.”그 말에 강루인은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구아정과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고 부정하지 않았다.주영도는 이미 그녀를 침입하고 있었다. 순간 몸이 돌처럼 굳어버린 강루인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으로 저항했다.사실 두 사람의 속궁합은 매우 잘 맞았다. 강루인은 평소에는 조용했지만 침대 위에서는 아주 열정적이고 협조적이었으며 그 시간을 즐겼다.하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꿈쩍도 하지 않았고 건조함 때문에 이어갈 수가 없었다. 주영도는 불편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원초적인 욕구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고 대충 일을 마무리했다. 그러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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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강루인이 억지 미소를 쥐어짰다.“괜찮아요.”차성열이 말했다.“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강루인이 입술을 적시고 물었다.“아는 변호사 있어요?”차성열이 물었다.“변호사는 왜?”“이혼하려고요.”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주초원이든 구아정이든 그녀의 이혼에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평화롭게 헤어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주영도가 원치 않는다면 이혼 소송을 할 생각이었다.주씨 가문은 체면을 중요시했기에 그런 상황까지 가는 건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때 가서 한발 물러서서 협상하면 된다.차성열의 눈빛이 반짝였다.“이혼하겠다고?”강루인이 답했다.“네. 주영도가 안북의 변호사들한테 손을 써놔서 아무도 사건을 맡으려 하지 않아요. 그래서 날 맡아줄 변호사를 찾을 수가 없어요. 그냥 말해본 거니까 너무 부담 갖지...”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성열이 가로챘다.“내가 도와줄 수 있어.”“주씨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알잖아요. 내 사건을 맡으면 많은 어려움이 생길 거예요.”차성열이 웃으며 말했다.“어려움이 있어야 도전하는 맛도 있지.”결과가 어떻든 강루인은 차성열의 도움이 진심으로 고마웠다.점심 무렵 주초원에게서 전화가 왔다.‘얘는 하루라도 잔소리를 안 하면 입에 가시가 돋치나.’주초원이 명령하듯 무례하게 말했다.“네가 만든 약과 먹고 싶어. 지금 당장 와서 만들어줘.”강루인이 답했다.“바빠. 시간 없어.”주초원이 억지를 부렸다.“내 알 바 아니야. 지금 당장 먹고 싶어. 안 해주면 엄마한테 일러서 엄마더러 널 집에 부르라고 할 거야.”그녀의 협박에 강루인은 짜증이 났지만 결국 타협했다. 왜냐하면 박정금이 주초원보다 상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운전하여 본가에 도착했는데 예상치 못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구아정이었다.강루인이 발걸음을 멈췄다.‘이젠 본가까지 쳐들어왔어?’주초원이 말했다.“왜 가만히 서 있어? 얼른 주방에 가서 약과나 만들어.”구아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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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돌아가는 길, 강루인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차 안은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구아정이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그때 주영도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양동운이었다. 구아정을 데리고 놀러 오라는 전화였다.강루인의 표정은 평온했고 겉으로는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전화를 끊은 후 입을 열었다.“차 길가에 세워. 먼저 들어갈게.”구아정이 말을 꺼냈다.“언니, 우리랑 같이 가요. 다 오빠 친구들이라 언니도 아는 사람들이에요.”그녀가 좋은 마음으로 같이 가자고 했을 리가 없었다.“아니요. 다른 일이 있어서요.”“이 늦은 시간에 다른 일이라니요? 같이 가요, 그냥. 사람이 많으면 더 북적거리고 좋잖아요. 오빠, 내 말이 맞지?”주영도가 명확히 대답하진 않았지만 말없이 앞으로 달리는 차가 그의 뜻을 대신 말해줬다.강루인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나무들의 그림자를 보며 생각했다.‘그럼 거기 도착해서 택시를 불러 돌아가야겠어.’클럽.강루인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가려 하자 구아정이 그녀의 팔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가요. 같이 들어가요.”그렇게 강루인은 안으로 끌려갔다.룸 안에는 역시나 전부 주영도의 친구들이었다. 구아정이 먼저 나타나자 다들 인사를 건넸다.“형수!”강루인이 발걸음을 멈췄다. 엄청난 굴욕감이 순식간에 밀려오는 듯했다.결혼한 지 5년이나 되었지만 그녀는 한 번도 받지 못한 인정을 구아정은 아주 쉽게 받았다.구아정이 황급히 해명했다.“언니, 오해하지 말아요. 저 사람들은 언니를 부른 거예요.”강루인은 착한 것이지, 멍청이가 아니었다.사람들은 그제야 강루인도 함께 온 걸 보더니 저마다 각기 다른 표정을 지었다.뒤따라 들어온 주영도가 물었다.“왜 다들 여기에 서 있어?”구아정이 다시 그녀의 팔짱을 꼈다.“언니, 영도 오빠의 와이프는 언니예요. 그러니까 마음에 두지 말아요.”강루인은 조금 전까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혼자 독차지하고 싶으면서 왜 굳이 그녀를 끌어들였는지. 하지만 이젠 알 것 같았다. 우월감을 과시하려는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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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동운 오빠, 루인 언니랑 무슨 얘기 했어?”갑자기 다가온 구아정에 양동운은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구아정이 눈을 깜빡이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왜 그래? 내가 그렇게 무서워?”양동운은 코를 만지며 헛기침하고는 어색하게 웃었다.“아니. 너랑은 상관없어.”‘젠장. 다 강루인 그 미친 여자 때문이야. 어디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여? 난 친구의 여자를 좋아할 정도로 나쁜 놈은 아니라고.’“저쪽에서 날 찾아서 먼저 가볼게.”양동운이 갑자기 피하자 구아정은 의아한 동시에 강루인에 대한 경계심도 커졌다.‘동운 오빠한테 대체 무슨 말을 했지? 설마 내 나쁜 말을 했나?’강루인은 그녀의 뜻밖의 행동이 이런 연쇄 반응을 일으킬 줄은 전혀 몰랐다.예전이었더라면 주영도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모임에 기꺼이 참여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정을 받았다는 걸 뜻하니까.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런 기회가 드물었다.이젠 강루인도 흥미를 잃었다.화장실에 다녀온 후 그대로 클럽 밖으로 향했다.클럽에 주정뱅이들이 득실거렸다.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걷던 강루인은 갑자기 룸에서 뛰쳐나온 남자와 부딪힌 바람에 휘청거렸다. 똑바로 서기도 전에 남자가 소리쳤다.“눈이 삐었어? 감히 나를 쳐?”남자는 술에 많이 취해서 혀까지 꼬여 있었다.강루인이 겨우 몸을 바로 세우고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본 순간 온몸이 굳어지더니 뇌도 정지된 듯했다.깊숙이 묻어두었던 집단 따돌림의 기억들이 댐이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굴욕과 수치심이 그녀의 모든 신경 세포를 자극했다.“내가 말하고 있잖아. 벙어리야?”남자가 앞으로 다가오더니 강루인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본능적으로 움츠렸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사람의 외모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기 마련이지만 그녀를 괴롭혔던 학생들의 얼굴은 절대 잊을 수 없었다.여승현, 그녀를 3년이나 괴롭혔던 무리의 대장이었다.강루인의 예쁘장한 얼굴을 본 여승현은 순식간에 음흉하게 변했다.“예쁘장하게 생겼네. 오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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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어깨의 통증은 끔찍했던 기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여승현이 강루인의 머리채를 낚아채고 얼굴을 후려쳤다. 순간 이명과 함께 고통이 밀려왔다.그의 친구들은 여전히 환호하며 떠들어댔다.이 장면은 골목길에서의 장면과 완벽하게 겹쳐졌다. 고통은 순식간에 그녀를 숨 막히고 암울했던 시간으로 끌고 갔다.여승현의 얼굴이 다시금 혐오스럽게 일그러졌다.강루인은 사지가 마비되는 듯했고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괴로웠다.거센 손길이 다시 한번 날아들었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런데 예상했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고 대신 여승현의 욕설이 들려왔다.“누구야?”누군가 휙 튕겨 나갔는데 바로 여승현이었다.강루인이 떨면서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들자 주영도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똑같은 상황, 똑같은 인물이었다. 순간 어린 시절의 주영도가 겹쳐 보였다. 빛줄기를 타고 온 소년의 모습에 강루인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때 구아정의 놀란 외침에 강루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루인 언니, 무슨 일이에요? 왜 이유 없이 이렇게 맞고 있어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강루인은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이 더러워져 꼴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한쪽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여승현의 친구가 주영도를 알아보고는 계속 시비를 걸려는 여승현을 말렸다. 눈치 빠른 여승현은 구아정의 말에서 힌트를 얻고 재빨리 발을 빼려 했다.“이 여자가 먼저 나한테 꼬리 쳤어. 난 이 클럽의 아가씨인 줄 알았단 말이야.”강루인이 주영도를 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적 없어.”문득 인생이 둥근 고리 같았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어린 시절 주영도가 그녀를 구해줬을 때도 여승현은 똑같이 말했었다. 그녀의 야한 사진을 들고서는 그녀가 먼저 꼬리 쳤다고 거짓말했었다.그때 두 사람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음에도 주영도는 그녀를 믿어줬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줬을 뿐만 아니라 그 끔찍한 사진들을 없애주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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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주영도는 이번에는 구아정을 선샤인 빌리지로 데려가지 않고 그녀의 집으로 바래다줬다.선샤인 빌리지.강루인은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옷을 벗어 던지고 샤워기 앞에 섰다. 따뜻한 물줄기가 몸에 닿자 더러운 것이라도 씻어내려는 듯 피부를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하얀 피부에 붉은 자국들이 금세 선명하게 생겼다.그녀를 괴롭히던 장면들이 영화처럼 한 프레임씩 끊임없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기억과 현실의 충돌에 강루인은 몸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고 그녀를 끔찍한 상황 속으로 끌어들였다.욕실에 들어간 지 두 시간이나 지나서야 밖으로 나왔다. 뜨거운 물 때문에 온몸이 붉어져 있었다. 특히 얼굴의 따귀 자국이 더욱 끔찍하게 변했다.무표정한 얼굴로 방 안에 서 있는 주영도를 본 순간 강루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주영도가 무뚝뚝하게 말했다.“욕실에 밤새 있을 생각이었어?”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던 강루인이 쉰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 있어?”“이리 와.”주영도가 들고 있는 연고를 보자 강루인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이내 연고를 받아들었다.“내가 알아서 바를게.”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침대에 앉혔다.“다른 남자의 옷은 잘도 입으면서 왜 나한테는 이래? 내가 그렇게 불편해?”주영도가 그녀의 턱을 붙잡았다.“네가 유부녀라는 걸 잊지 마.”강루인은 숨이 턱 막혔다.“잊은 건 내가 아니라 영도 씨지.”차가운 연고가 얼굴에 닿자 뜨거운 열기가 조금 가시는 듯했다. 주영도가 입을 열었다.“난 이혼할 생각이 없어.”강루인이 말했다.“단지 지금 생각이 없을 뿐이겠지.”구아정과 강루인이 아이를 낳으면 구아정을 안주인 자리에 앉히겠다 약속하지 않았던가?주영도의 손에 힘이 들어가더니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차성열 그 사람이랑 그렇게 같이 살고 싶어?”강루인이 아픈지 숨을 들이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마음이 더러우니까 뭐든 다 더럽게 보지.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주영도가 콧방귀를 뀌었다.“입만 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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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사실 습관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익숙한 분위기 속에서 강루인은 쉽게 길을 잃었다. 이건 그녀가 통제할 수 없는 몸의 본능이었다.주영도의 품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 두렵지 않은 것 같았다.하지만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날카로운 벨 소리가 이 귀한 고요를 깨뜨렸다.강루인은 무의식적으로 주영도의 옷을 붙잡았다. 그가 전화를 받지 않기를 바랐다.주영도의 시선이 그를 꽉 잡은 그녀의 손으로 향했다. 그녀의 뜻대로 받지 않으려 했지만 끈질기게 울려대는 벨 소리에 결국 끝까지 무시하지 못했다.“전화만 받고 바로 올게.”역시 그녀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구아정의 전화였다.전화를 받자마자 주영도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변하더니 지금 아내가 그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은 듯했다.급히 나가려는 그를 보며 강루인은 처음으로 나약함을 드러냈다.“영도 씨, 가지 마.”그가 머물러주기를 바라는 눈빛으로 간절하게 쳐다봤다.주영도가 말했다.“아정이 심장이 아프대.”“지금 아정 씨한테 필요한 건 의사지, 영도 씨가 아니야.”주영도가 돌아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언제부터 이렇게 독해졌어?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그 말에 강루인은 마음이 씁쓸함으로 가득 찼다. 그녀가 속 좁게 굴었다고 독한 사람이라 하다니.그에게 묻고 싶었다. 강루인이야말로 그의 아내라는 걸 알고 있는지, 한밤중에 다른 여자의 전화를 받고 조강지처를 홀로 집에 버려두고 가는 게 옳은 일인지 말이다.하지만 주영도는 그녀에게 따져 물을 기회조차 주지 않고 나가버렸다.잠깐의 다정함을 강루인이 제대로 만끽하기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텅 빈 그녀의 손처럼 마음도 비어버렸다. 결국 그를 잡지 못했다....구아정의 심장병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밤 나간 이후로 주영도는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다.강루인의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갔다.차성열이 물었다.“괜찮아?”강루인이 미소 지으며 답했다.“괜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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