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Chapter 511 - Chapter 520

523 Chapters

제511화

강루인의 말마따나 악질인 구아정은 명이 참 길었다. 수술실을 제집 드나들 듯 오갔는데도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생명력이 어찌나 끈질긴지 금강불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사실 강루인 역시 구아정이 살아 있기를 바랐다. 죽음은 허망할 정도로 쉬운 탈출구다. 반면 죽지도 못하고 산송장처럼 살아가는 게 세상 그 무엇보다 고통스럽고 지독한 형벌이었다.구아정을 더욱 미치게 만드는 건 강루인을 어찌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정신 질환 진단서가 그녀를 완벽하게 보호하는 단단한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한편 두 다리를 잃은 딸의 처참한 몰골을 본 채정화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뒤집으며 기절했다. 한참 뒤에야 깨어난 그녀는 친정엄마라도 잃은 듯 목놓아 울며 주영도를 몰아세웠다.“강루인이 아정이한테 이런 짓까지 했는데 정말 그냥 가만히 있을 거야?”주영도가 대답 대신 되물었다.“아줌마는 어떻게 처리하고 싶으신데요?”“이건 명백한 살인이야. 당장 감옥에 처넣어야지.”주영도가 느릿느릿 말했다.“아줌마 딸은 사람을 죽이고도 멀쩡히 살아 있지 않나요? 지금 이렇게 숨이 붙어 있는데 살인이라니요?”채정화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아정이는 너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나 몰라라 하면 어떡해?”“내가 왜 신경 써야 하죠?”주영도가 침대 위의 구아정을 돌아봤다.“널 감옥에서 꺼내준 건 어디까지나 거래였어. 난 손해 보는 장사는 절대 안 해. 그러니까 더 이상 내가 뭘 해주기를 바라지 마.”그가 경고하듯 덧붙였다.“이틀 줄게. 연정이가 있는 곳을 알려주든가, 아니면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든가 둘 중 하나만 선택해.”분노가 치밀어 오른 구아정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오빠가 날 도와주지 않으면 구연정도 죽어.”주영도가 한쪽 손을 주머니에 넣고 무심하게 말했다.“죽기로 작정했다면 그것 또한 연정이의 팔자겠지. 하지만 걱정하지 마. 네가 죽으면 유골을 강에 뿌려는 줄게.”그 말에 구아정은 숨이 턱 막힌 것처럼 얼굴이 시뻘게졌다.전에는 구연정에 대한 걱정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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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2화

고작 구아정 때문에 이렇게까지 대담하게 행동하다니,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강루인이 말했다.“아파.”함지율이 이를 갈며 쏘아붙였다.“차라리 죽어버리지 그랬어?”“나 지금 정신 질환자야. 사람을 죽여도 처벌 안 받아.”그 말에 함지율은 목이 멨다. 마음이 너무 괴로웠지만 겉으로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그래서 네가 정신 질환자라는 게 자랑스러워?”“자랑스러운 건 아니고 그냥 이 병에 걸린 것도 괜찮은 것 같아서. 뭐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말이야.”그러고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나중에 돈 필요하면 말해. 내가 금은방이라도 털어올 테니까. 그때 가서 5 대 5로 나누자. 나 정말 통 크지 않냐?”할 말을 잃은 함지율이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눈을 감았다. 지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이 예측 불가능한 정신 상태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강루인이 견과류와 과일을 들고 외출하려 하자 함지율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어디 가려고?”“문병.”“누구 문병?”“구아정. 너도 갈래?”‘루인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는데? 그나저나 나도 미친 거 아니야? 루인이를 따라가서 같이 난리를 피울 생각을 하다니. 에라 모르겠다. 발광하지 않으면 정신병이 아니지. 남을 미치게 하는 게 내가 미치는 것보단 낫겠지.’병원 VIP 병실.채정화가 구아정을 돌보고 있었다. 강루인을 보자마자 그녀의 눈에 적대감과 경계심이 스쳤다.구아정이 엄마보다 훨씬 격렬하게 반응했다.“누가 여길 오라고 했어? 당장 꺼져!”강루인은 구아정이 소리를 지르든 말든 무시하고 당당하게 들어가 침대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버릇없기는. 그래도 손님인데 손님 대접을 이렇게 해? ”말하면서 구아정의 일그러진 얼굴은 아랑곳하지 않고 옆자리를 툭툭 쳤다.“지율아, 여기 와서 앉아.”함지율은 구아정을 괴롭힐 온갖 방법을 상상해봤지만 이런 식의 괴롭힘은 예상치 못했다. 약간 민망했지만 그래도 친구의 편을 들어줘야 했다.자리에 앉자마자 강루인이 견과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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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3화

“그만해!”구아정이 폭발하기 전에 옆에서 지켜보던 채정화가 먼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당장 나가. 널 환영하는 사람 여기 없으니까.”구아정이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고 어떤 자극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의사가 신신당부했었다.강루인이 고개를 들고 느릿느릿 말했다.“내가 당신 환영 따위 바라고 여기 왔을까요? 당신 딸이 상간녀 짓거리할 땐 내 허락을 받았어요?”그녀가 대놓고 비웃었다.“당신들만 남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도 되고 난 안 된다는 건가요? 구아정이 저렇게 안하무인으로 큰 이유를 이제 알겠네요. 어미라는 작자가 사람 도리를 모르고 가르친 게 없으니 저 모양이죠. 손님이 왔는데 차 한 잔 대접할 줄도 모르고. 그러니 딸이 길거리에서 차에 치이는 거예요. 결국은 다 자업자득이에요.”채정화가 부들부들 떨며 강루인에게 손가락질했다.“너, 너...”강루인의 뻔뻔한 태도에 화가 난 나머지 뒷말을 잇지 못하고 헉헉거렸다.강루인이 말했다.“손가락질하지 말아요. 나 정신병 있는 거 알죠? 여기서 당신을 두들겨 패도 난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거든요.”그녀의 시선이 구아정에게 향하더니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지금 당장 당신 딸을 죽여버려도 나한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에요. 그냥 개죽임당하는 거죠.”강루인의 협박에 겁을 먹은 채정화가 급히 구아정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두 눈에 경계심이 가득했다.강루인이 시선을 거두고 씩 웃었다.“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 딸 죽이지 않을 거니까. 죽이는 것보다 이렇게 평생 장애를 안고 살게 하는 게 훨씬 재밌거든요. 그러니 딸 잘 챙겨요. 죽어버리면 내가 새로 만들어준 이 껍데기가 너무 아깝잖아요.”마지막 견과류까지 다 먹은 뒤 강루인이 손을 털고 일어났다. 고개를 살짝 까닥이고 채정화 너머의 구아정을 빤히 쳐다봤다.“푹 쉬어. 내일 또 올게.”그러고는 옆에 있던 함지율에게 고개를 돌렸다.“나랑 쇼핑 가자. 백화점 가서 하이힐 좀 사야겠어.”함지율이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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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4화

최지호가 다정함의 끝판왕인 차성열을 보다가 날마다 쌀쌀맞기만 한 친구 놈을 떠올렸다. 주영도 같은 사람이 결혼할 수 있었던 것도 강루인이 남자 보는 눈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만약 그때 그 교통사고가 아니었더라면 주영도는 절대 결혼하지 못했을 것이다.함지율이 어떻게든 강루인과 차성열을 엮어주려 애를 썼지만 강루인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계속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굴었다.그녀가 속으로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이렇게 괜찮은 남자가 너만 바라보는데 왜 마다하는 거야?’그때 최지호가 함지율의 접시에 반찬을 집어주었다.“얼른 먹어. 중매쟁이 놀이 좀 그만하고.”‘눈치도 없어, 정말. 루인 씨가 싫어하는 게 안 보여? 계속 부추기면 분위기만 어색해질 거라고.’함지율이 최지호를 쏘아봤다.“지금 내가 오지랖이 넓다는 뜻이야?”최지호가 질문의 요지를 피했다.“네가 배고플까 봐 그러지.”함지율이 코웃음을 쳤다.‘내가 눈이 먼 줄 알아?’‘조금 전까지 눈치 없더니 갑자기 눈치가 빨라졌네?’그녀는 아예 고개를 돌려 최지호를 무시하고는 왼쪽에 앉은 고원겸에게 악수를 건넸다.“변호사님 안녕하세요. 전 루인이 친구 함지율이에요. 저도 변호사님과 같은 업종에 종사하고 있어요.”고원겸이 예의 바르게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웃어 보였다.“역시 미인의 옆에는 미인만 있군요. 지율 씨는 미모만큼이나 능력도 출중하시네요.”그 말에 함지율의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변호사님 말씀 참 예쁘게 하시네요.”고원겸이 웃으며 말했다.“전 빈말은 절대 안 합니다.”함지율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최지호가 눈을 희번덕거렸다.‘빈말을 안 한다고? 이 바닥에서 먹고사는 놈들 중에 진실만 말하는 놈이 몇이나 된다고.’함지율이 까르르 웃었다.“변호사님처럼 입에 꿀 바른 남자친구가 있어서 여자친구가 정말 행복해하겠어요.”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원겸이 짐짓 슬픈 표정을 지으며 탄식했다.“안타깝게도 아직 솔로예요.”“에이, 말도 안 돼요. 이렇게 완벽하신 분이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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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5화

기분이 좋았던 강루인은 평소보다 술을 몇 잔 더 들이켰다. 술자리가 끝났을 땐 걸음걸이마저 비틀거렸다.차성열이 강루인의 팔을 부축하며 다정하게 말했다.“조심해.”강루인의 두 눈이 반짝였다. 눈가에 술기운이 번진 채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술 때문에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고마워요.”“내가 데려다줄게.”차성열이 강루인을 부축한 손을 놓지 않았다. 알코올 때문에 강루인의 반응이 평소보다 느려졌기에 손을 빼내는 걸 깜빡하고 말았다.다정하게 강루인을 챙기는 차성열을 보며 함지율이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좋은 남자가 없는 게 아니었다. 그저 강루인이 운이 지독히도 없어 주영도라는 악마를 만난 것뿐이었다. 이젠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탓에 차성열 같은 좋은 남자가 다가와도 선을 긋게 된 강루인이 안쓰러웠다.함지율이 슬그머니 왼쪽으로 걸음을 옮겨 고원겸에게 다가갔다. 고원겸의 눈에 순간 경계의 빛이 스쳤다.그녀는 못 본 척하며 턱으로 앞에서 걸어가는 차성열을 가리켰다.“변호사님이 보시기엔 차성열 씨 어때요? 믿을 만한 사람인가요?”고원겸은 함지율이 그에게 수작을 거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서야 경계를 풀고 솔직하게 말했다.“두 사람의 문제는 성열이가 믿을 만한 사람이냐에 달린 게 아니에요. 루인 씨가 세상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낼 만큼 마음이 강하냐에 달려있어요.”함지율은 그 따가운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박에 알아챘다.“그냥 연애 좀 하는 건데...”고원겸이 말을 이었다.“성열이가 차씨 가문의 외아들이라 집안 어른들이 성열이한테 거는 기대가 아주 커요.”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고 때로는 연애도 두 집안의 문제가 된다.강루인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처한 상황을 냉정히 따져볼 때 차성열의 집안에서 그녀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희박했다.그리고 고원겸이 보기에 강루인이 누구보다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있었다. 오직 차성열 혼자서만 그녀에게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었다.‘어휴, 우리 루인이는 연애 한번 하기 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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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6화

이 세상에 진정한 공감이란 없었다. 그저 누군가에게 억눌려 있던 감정이 다른 누군가에게로 옮겨갈 뿐이었다.과거 강루인이 견뎌야 했던 그 지독한 압박감이 이제 고스란히 주영도의 몫이 되었다. 최근 들어 무엇 하나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들이 주영도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특히 달라진 강루인 때문에 주영도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그려왔던 두 사람의 관계는 결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강루인이 떠나버린 선샤인 빌리지에 여전히 그녀의 흔적이 가득했다. 집안 곳곳에 새겨진 그녀의 그림자가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 남아 무시로 존재감을 드러냈다.주영도는 텅 빈 집이 주는 공허함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귀가를 꺼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곳에 머물러야만 강루인과 가까이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이 집이 건재하는 한 강루인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진경자가 술기운을 풍기며 돌아온 주영도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남부러울 것 없던 가정이 이렇게 산산조각이 난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그녀가 꿀물을 타서 가져다줬다. 주영도는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할 뿐 받지 않았다. 예전에 그가 취해서 돌아올 때면 강루인이 항상 직접 타주었다.그러면서 건강을 생각해서 술을 좀 줄이라고, 아직 회복기라 많이 마시면 몸이 상한다고 다정하게 말하곤 했다.그땐 그게 잔소리라 생각했고 그의 일을 너무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사실 그녀의 사소한 걱정과 보살핌을 즐기고 있었다는 것을.이젠 강루인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더 이상 주영도의 건강을 신경 쓰지도 않았다. 이런 변화들이 주영도를 몹시 불쾌하게 만들었다. 특히 강루인이 다른 남자와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볼 때면 소중한 무언가를 도둑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머리가 지끈거린 주영도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짜증을 내며 손을 휘저었다.“도로 가져가요. 마실 생각 없으니까.”진경자가 쟁반을 들고 나가려던 그때 주영도가 급히 불러 세웠다.“잠깐만요.”그 소리에 진경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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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7화

그 말에 가뜩이나 어둡던 주영도의 안색이 더 어두워졌고 주변 공기마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주영도가 손을 내밀며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휴대폰 이리 줘요.”진경자가 휴대폰을 건네자마자 바로 강루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통화연결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연결되었다. 문득 강루인이 주영도의 번호를 차단했다는 사실이 떠올라 안색이 더욱 험악해졌다.전화가 연결되고 강루인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왔다.“그 사람 죽었어요?”주영도가 이를 악물었다.“강루인!”‘그렇게 내가 죽었으면 좋겠어?’관자놀이가 다시 지끈거리기 시작했다.뚜뚜.강루인이 전화를 끊어버렸다.주영도의 이마에 튀어 오른 핏줄이 그의 현재 감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 그는 극심한 분노에 휩싸였다.주영도가 다시 걸자 곧바로 끊어버렸다.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이젠 진경자의 번호까지 차단해버렸다.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주영도가 휴대폰을 바닥에 내던졌다. 액정이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그 모습에 진경자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이거 내 휴대폰인데.’그것이 누구의 휴대폰인지 주영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강루인에게 모욕을 당했다는 사실에만 분노할 뿐이었다.강루인은 주영도가 체면을 구기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고 결연했다.다음날 강루인은 또다시 병원으로 구아정을 ‘문병’하러 갔다.이번에는 과일뿐만 아니라 댄서까지 대동했다. 병실에 도착하자마자 강루인은 돈을 주고 고용한 댄서에게 구아정의 침대 앞에서 춤을 추라고 했다.구아정 모녀는 어이가 없었다.하지만 강루인은 그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구아정의 앞에서 일부러 감상평까지 늘어놓았다.“저 다리 좀 봐. 얼마나 곧고 희고 예쁜지. 완벽한 구등신이야. 딱 너의 영도 오빠가 제일 좋아하는 스타일이라니까. 저 친구한테 다리 관리하는 법 좀 가르쳐달라고 할까?”그러다가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아이고, 내가 깜빡했네. 넌 관리할 다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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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8화

강루인이 주영도가 첫사랑을 순순히 찾게 내버려 둘 리 없었다. 강루인의 모든 소망을 짓밟고 그녀의 삶을 철저히 파괴하여 매일 죄책감과 후회 속에 살게 하고 밤마다 악몽을 꾸게 한 장본인이 주영도였다.그런데 그가 무슨 자격으로 뜻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인가?강루인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죽을 운명이라는 걸 아는 상황에서 구아정이 제 발로 사지에 뛰어들 리 없다고 강루인은 확신했다.구아정이 더 악착같이 버틸지, 아니면 주영도가 더 잔인하게 몰아붙일지 지켜볼 작정이었다.개들끼리 서로를 물어뜯는 이 진흙탕 싸움이야말로 강루인이 가장 바라던 결말이었다.강루인의 말이 구아정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강루인을 믿어서가 아니라 그녀가 누구보다 주영도라는 인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주영도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인간이었다.사실 처음부터 구아정은 주영도가 그녀를 순순히 살려 보내줄 거라 믿지 않았다. 그래서 이미 오래전부터 도주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하지만 계획이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났다. 이번 교통사고로 인해 주도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인 강루인을 향한 증오가 뼛속까지 사무쳤다. 아직 반격할 기회도 찾지 못했는데 강루인이 먼저 선수를 쳤다.구아정의 눈에 잔인함이 스쳤다. 적을 가장 잘 아는 게 역시 적이라 했던가?강루인이 구아정을 꿰뚫어 보듯 구아정 역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각자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약속했던 이틀이 지나자 주영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구아정은 그가 원하는 대답을 주지 않았다.주영도의 눈에 서늘한 한기가 서리더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네 친구랑 저승길에 함께 가기로 한 모양이구나.”구아정이 이불 아래에서 손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표정은 한없이 침착했다.“우리 거래는 목숨과 사람을 바꾸는 거였어. 오빠가 약속을 어기려 하는데 내가 어떻게 공짜로 정보를 넘겨줘? 강루인이랑 둘이 머리를 아주 잘 썼더라? 나한테서 구연정의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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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9화

협상이 일단 중단되었다.주영도가 떠난 뒤 구아정의 손바닥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채정화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아정아, 우리 이제 어떡해?”주영도가 처음부터 구아정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는 사실을 어리석게도 이제야 깨달았다.구아정이 대답 대신 되물었다.“아빠 어디 갔어요?”구신원 얘기가 나오자 채정화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연정이를 찾으러 갔어.”구신원은 나름대로 은밀하게 움직인다고 생각했겠지만 20년 넘게 같이 산 아내가 그의 속내를 모를 리 없었다.구아정이 감옥에 가자마자 모녀에게 서서히 관심을 끊기 시작하더니 구아정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두 다리를 잃었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는 아예 완전히 나 몰라라 했다.구신원에게 가치를 잃은 딸이란 쓰레기와 다름없었기에 버리는 것이 당연했다.그 말에 구아정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았고 분노가 치밀어 입까지 파르르 떨었다.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다. 오직 그의 이득만 중요한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만약 어머니가 옆에 없었더라면 심장병을 앓는 구아정은 편히 살지 못했을 것이다.이익만 중요시하는 구신원 때문에 구아정이 구연정에게 손을 댔다. 친어머니도 없이 자란 주제에 감히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려 드는 게 너무나 미웠다.구연정이 그녀를 초라하게 만들 정도로 빛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극단적인 길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구아정이 이 지경이 된 것도 다 그들의 탓이었다.‘다 당신들 때문이야. 나랑 맞서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 꼴을 당하지 않았다고.’구아정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구연정의 행방을 아는 건 이제 구아정과 지광혁뿐이었다. 그리고 지광혁은 절대 그 비밀을 발설할 사람이 아니었다.지광혁 생각에 구아정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결연함도 있었다.사람은 결국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법이다. 지광혁이 구아정에게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대신 해결해주겠다고 했었다.설령 구아정이 지광혁을 버린다 해도 원망하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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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0화

주영도가 눈치 없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강루인의 남편인 척 그녀의 옆에 섰다.하지만 강루인은 주영도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고원겸만 쳐다봤다. 고원겸도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고 기꺼이 맞장구를 쳐주었다.인사를 마친 강루인이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영도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고원겸이 보란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조만간 다시 뵙죠.”강루인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러죠.”고원겸은 제자리에서 그녀를 배웅하다가 그를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는 주영도를 힐끗 쳐다봤다. 그러고는 여유롭고 예의 바르게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한 뒤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주영도의 얼굴에 먹구름이 가득했고 이를 악물어 얼굴 근육까지 떨렸다. 그러다가 강루인이 차 문을 열고 올라타기 전에 손으로 차 문을 가로막았다. 열렸던 문이 다시 닫혔다.강루인이 시선을 늘어뜨렸다. 뒤에서 익숙한 냄새가 풍겼다. 하지만 이제 더는 이 냄새를 그리워하지 않았다.주영도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강제로 돌려세웠다. 그러고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강루인의 예쁜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가장 친밀해야 할 사람이 이젠 원수를 대하듯 차갑게 대하고 있었다.강루인의 눈동자에 스친 노골적인 혐오감을 본 순간 주영도는 심장이 베인 것처럼 아팠고 불쾌함이 온몸에 퍼져나갔다.“날 투명인간 취급을 해?”그의 음울한 분위기가 사라지기는커녕 되레 분노가 거세게 타올랐다.강루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자 주영도가 이를 악물고 물었다.“고원겸이랑 호텔에서 뭐 했어?”그녀가 거침없이 내뱉었다.“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 신경 꺼.”주영도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강루인이 그에게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가 그녀의 어깨를 꽉 잡고 분노를 터뜨렸다.“사람이 어쩜 이렇게 뻔뻔해? 고 변호사님한테 여자친구가 있다고. 선을 지켜야 한다는 거 몰라?”강루인은 미친 게 그녀가 아니라 주영도인 것 같았다.그녀가 어깨를 비틀어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러고는 진저리가 난다는 얼굴로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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