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남편의 결혼을 지지해요: Chapter 291 - Chapter 300

483 Chapters

제291화

차유리는 두 손으로 옷자락을 꽉 쥔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는 속으로 서현주에게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그러고는 눈물을 삼키며 원장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잠깐만요, 아직 안 끝났어요.”여자가 불쑥 소리쳤고 차유리는 발걸음을 멈췄다. 원장도 짜증 섞인 표정으로 안경을 밀어올리며 물었다.“왜 또, 무슨 일이야?”“외삼촌, 이 간호사가 우리 이진이한테 사과도 안 했잖아요.”여자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고 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유리에게 눈짓했다. 차유리는 입술을 세게 깨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합니다. 제 잘못이에요.”그러자 여자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됐어요. 이제 가봐요. 다음부터는 눈치 있게 행동해요, 알겠죠?”간호사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은 참담하고 초라했다.“여긴 병원이야.”원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적당히 해. 너무 지나치면 곤란해.”“알겠어요, 외삼촌.”여자는 눈웃음을 치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원장은 짧게 ‘응’ 하고 대답하곤 자리를 뜨려 했다.그때 서현주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병원의 원장이라는 사람이 이런 짓을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으세요?”그 말에 여자의 얼굴이 뒤틀렸다.“뭐라고요? 그쪽은 입 다물고 돈이나 내놔요!”원장도 코웃음을 쳤다.“돈이 없으면 다른 걸로 보상할 수 있죠.”그는 서현주를 천천히 훑었고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참 불쌍하네요. 내가 도와줄 수도 있는데, 어때요?”서현주는 그가 역겨워서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봤다. 지금 그녀의 몸이 멀쩡했다면 분명 그 남자의 뺨을 세게 후려쳤을 것이다.“외삼촌, 저 여자가 우리 이진이를 괴롭혔어요. 절대 봐주지 마세요.”여자는 코웃음을 치며 아이를 감쌌고 남자아이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거들먹거렸다.“맞아요, 저 아줌마는 혼 좀 나야 해요!”“누구를 혼내요?”그 순간, 병원 복도에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공기가 멎는 듯했다.서현주는 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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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서현주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한 손으로 바닥을 짚었고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면서 올라간 옷을 내려 허리를 가렸다. 그리고 다시 조심스럽게 바닥을 짚으며 몸을 완전히 세웠다.연지훈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서늘한 눈빛에 원장 이장원은 고개를 점점 더 숙였다.이장원은 다급히 여자를 돌아보며 말했다.“멍하니 뭐 해! 환자를 부축해 드려야지!”여자는 연지훈을 다시 훔쳐보았다. 잘생긴 얼굴, 단정한 수트, 손목에 찬 빛나는 고급 시계. 그 모습에 그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여자는 이혼한 지 몇 년이 되었고 혼자 아이를 키우느라 제대로 남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가끔 접근해 오는 남자들은 많았지만 마음이 동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그런데 지금 눈앞의 이 남자는 달랐다. 그의 옆에 있는 여자가 아무리 눈부셔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그 남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여자는 허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자, 일어나요.”그녀는 억지로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서현주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워 휠체어에 앉혔다.그 순간, 서현주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지만 그녀는 이내 힘을 빼고 여자의 손을 빌려 휠체어에 몸을 기댔다.안정적으로 앉고 나서야 서현주는 고개를 들어 연지훈과 유이영을 바라봤다. 연지훈도 여전히 그녀를 보고 있었지만 깊은 눈빛에서 감정이 읽히지 않았다.옆에 있는 유이영은 그의 팔을 끼고 있었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으나 그 안에 은근한 우월감이 스며 있었다.서현주는 속으로 생각했다.‘이제 유이영은 본인이 완전히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겠지. 내가 더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거야.’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돌리고 감정을 억눌렀다.그때 옆에 있는 여자가 다시 그녀의 팔을 세게 움켜쥐더니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입 다물고 있어요.”이장원은 속으로 중얼거렸다.‘이 밤중에 연지훈은 병원에 왜 온 거지?’그는 조심스레 연지훈의 표정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연 대표님, 그게...”그러나 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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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연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끝까지 그들의 말을 다 들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 억눌린 무언가가 깊고 짙게 깔려 있었다. 서현주는 그걸 발견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잠시 정적이 흘렀고 이장원은 연지훈이 반응이 없는 걸 보고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연 대표님, 여긴 시끄러우니까 잠깐 나가서...”그때 유이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서현주 씨는 고등학생이에요. 치료비가 얼마든 제가 대신 드릴게요. 그러니까 제발 더는 문제를 키우지 마세요.”그러자 이장원과 여자는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내 이장원은 표정이 굳어지며 물었다.“연 대표님, 유이영 씨, 혹시 이분을 아십니까?”연지훈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서현주.”그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고 그는 서현주를 위아래로 천천히 훑었다.그녀의 머리는 엉망이었고 고무줄이 거의 끊어지다시피 느슨하게 걸려 있었다.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어 있었고 병원복은 잡아당겨져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바지도 젖어서 얼룩졌고 주변의 바닥에 진흙이 섞인 물이 퍼져 있었다. 깨진 주전자는 아무렇게나 바닥에 굴러 있었고 그 누구도 치우지 않았다.오늘 아침만 해도 서현주는 반항심이 가득한 고슴도치 같았는데 지금은 기댈 곳 없는 굶주린 길고양이처럼 보였다. 가엾을 정도였다.그런 서현주의 모습을 보자 연지훈의 속이 이상하게 뒤틀렸다. 마치 이런 감정과 흡사했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사고를 치면 자신이 혼내면 되지만 남이 함부로 발길질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럴 자격은 강아지의 주인에게만 있으니까.서현주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고 이장원은 식은땀을 흘리며 입술을 달싹였다.“연, 연 대표님, 이분은 혹시...”유이영은 그제야 연지훈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현주 씨는 지훈 씨의 동생이에요. 저희는 병문안 왔다가 이 모습을 보게 된 겁니다.”그 말에 이장원과 여자의 얼굴이 동시에 새하얗게 질렸다. 특히 이장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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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여자는 억지로 웃으며 아이를 품에 안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아까 말한 대로예요. 저 여자가 제 아이한테 뜨거운 물을 끼얹었어요. 거짓말 아니에요.”유이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난처한 표정을 짓고 연지훈에게 물었다.“지훈 씨, 그렇다네요?”연지훈가 냉랭하게 말했다.“서현주, 네가 말해.”그 순간 여자가 입술을 꽉 깨물며 불쌍한 얼굴로 연지훈을 올려다봤다.“연 대표님, 그게...”“난 그런 짓을 안 했어요.”서현주는 침착하게 여자의 말을 단칼에 끊어버렸다.그러자 여자는 표정이 굳어졌고 연지훈이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서현주를 향해 이를 갈며 노려봤다.연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말했다.“그래.”그 한마디에 담긴 의미가 너무나도 명확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아들었다. 이장원은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연지훈이 곧바로 말했다.“이 원장님, 설명해 보시죠.”이장원은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연 대표님, 분명 오해가 있습니다. 진정하시고 말씀을 나눠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거예요. 저도 방금 막 와서 상황을 잘 몰랐습니다.”여자의 얼굴도 새하얗게 질렸다. 그녀의 외삼촌은 이 병원의 원장인데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평소에 그가 얼마나 공손하게 연지훈을 대하는지 알 수 있었다.지금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아니, 심각했다. 심지어 그녀의 외삼촌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로.그때 갑자기 이장원이 여자의 팔을 확 잡아끌었다.“전부 제 조카가 벌인 일입니다. 연 대표님의 동생분이 그런 짓을 저지르셨을 리가 없죠. 그렇다면 다 제 조카의 잘못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반드시 해결하겠습니다. 사적인 감정으로 그냥 지나가는 일은 일절 없을 겁니다. 제 조카한테 꼭 책임지게 하겠습니다.”“외삼촌?”여자는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하지만 이장원은 연지훈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더 초조해졌다. 그는 여자의 목덜미를 꾹 눌러 서현주 앞에서 억지로 고개를 숙이게 했다.“사과해! 당장 이분께 사과하라고!”그는 거의 고함치듯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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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그 말을 끝으로 연지훈은 서현주의 휠체어를 밀며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하지만 잠시 후 그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고 이장원은 혹시라도 자신에게 변명할 기회가 생긴 줄 알고 급히 말했다.“연 대표님, 제 얘기를 좀 들어보시겠습니까?”하지만 연지훈의 입에서 나온 건 전혀 다른 말이었다.“바닥을 깨끗이 닦고 새 주전자를 하나 갖다 놔요.”“네, 알겠습니다!”이장원은 허둥지둥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연지훈은 고개를 돌려 깊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들을 훑었다.“이 원장님의 몸으로 직접 닦아요. 옷으로 바닥을 문질러서 깨끗하게. 내가 확인했을 때 단 한 군데라도 더러우면 그때는 이 원장님의 혀로 깨끗이 핥아내야 할 겁니다.”그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지만 그 안에 숨은 압박감은 숨이 막힐 정도였다.이장원과 여자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버렸다. 여자는 더럽혀진 물자국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몸으로 바닥을 닦으라니, 농담이겠지.’그녀는 그럴 리가 없다고,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다고 자신을 다독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분노가 더 컸다.“왜요? 제가 이미 말했잖아요. 물은 그쪽 동생이 쏟은 거라고요. 저랑은 상관없어요. 저는 절대...”그때 이장원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성질을 최대한 죽이며 속삭였다.“너 미쳤어? 입 다물어!”“외삼촌, 방금 저 사람이 뭐라는지 들었어요? 우리보고 몸으로 바닥을 닦으래요! 제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여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그 말을 들은 순간 이장원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그의 눈빛도 어두워졌다.“입 닥쳐. 네가 멍청한 건 알지만 나까지 끌어들이지는 마. 저분이 누군지는 알아?”“제가 왜 알아야 해요?”여자는 억울한 듯 눈물을 머금고 소리쳤다.“닥치라고!”짝.이장원은 여자의 뺨을 후려쳤고 조용했던 병원 복도에 맑고도 잔혹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여자는 놀란 눈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고 눈가가 붉어지며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외삼촌...”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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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이번에 연지훈의 분노는 눈에 보일 정도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장원이 유이영 쪽을 먼저 공략했다면 상황이 좀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이장원은 억지로 웃음을 띠며 유이영에게 말했다.“유이영 씨, 오랜만이네요. 볼 때마다 더 예뻐지시는 것 같아요.”그는 너무 성급히 돌파구를 찾으려다가 유이영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유이영은 미소를 지으며 연지훈을 흘깃 보고는 부드럽게 말했다.“저희는 이만 가볼게요.”이장원은 다급해져 급히 말을 붙였다.“들으니 연 대표님과 유이영 씨에게 곧 좋은 소식이 있다던데요. 축하도 못 해 드렸네요. 제가 혹시 두 분의 약혼식에 초대받을 수 있을까요?”유이영이 말하려 했지만 연지훈이 말을 끊었다.“이영아, 가자.”유이영은 입을 다물며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러자 이장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서현주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연지훈이 그녀의 휠체어 손잡이를 꽉 쥐고 있는 걸 봤다.그제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그녀는 손을 바퀴에 올리고 힘을 주어 앞으로 밀려 했다.하지만 그녀가 힘을 쓰기도 전에 손이 툭 밀려났다. 뒤에서 연지훈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뭐 하는 짓이야.”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휠체어를 직접 밀기 시작했다.서현주는 손을 허벅지 위에 얹은 채 천천히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발목이 다쳐서 그를 이길 수도 없고 굳이 버티는 것도 의미 없었다. 그래서 그냥 그가 밀게 두는 편이 덜 피곤했다.하지만 문제는 연지훈의 몸에서 나는 솔나무 향과 유이영의 달콤한 향수 냄새가 섞여 그녀의 코를 찔렀다.서현주는 무표정하게 생각했다.‘이 냄새, 정말 맡기 싫다.’결국 그녀는 눈을 감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이장원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그 옆에 있는 여자는 불안하고 억울한 눈빛이었다.그녀는 자신이 잘못한 건 알지만 이해되지 않았다. 왜 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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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솔직하게 말하라고!”이장원이 다가와 여자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여자는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다.“이... 이진이의 실수였어요. 이진이가 연 대표님의 여동생을 들이받아서 주전자가 넘어졌던 거예요.”긴장한 그녀는 이장원의 팔을 붙잡았다.“외삼촌, 이진이가 어릴 때부터 아빠가 없었잖아요. 그래서 외삼촌이 키워주셨고 분유도 외삼촌이 사주셨잖아요. 이진이는 절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나이가 어려서 아직 아무것도 몰라요. 제발 이진이를 탓하지 마세요.”여자는 말할수록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고 고개를 들어 보니 이장원의 얼굴은 섬뜩할 만큼 어두워져 있었다. 그의 그런 눈빛을 본 적이 없던 터라 그녀는 더 위축되어 얼굴이 창백해졌다.“그런데 도대체 저 사람이 누구길래 외삼촌이 이렇게 무서워하시는 거예요?”짝.이장원은 손을 들어 여자의 뺨을 힘껏 때렸다.여자는 얼굴을 감싸며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외삼촌, 저를 왜 또 때려요?”얼굴이 빨개진 이장원은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바보야, 네가 나를 죽일 뻔했어!”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고 남자아이는 엄마가 맞는 걸 보자 더 움츠러들었다.이장원은 뒤에 숨은 남자아이를 보고 재빨리 손을 뻗어 아이를 끄집어내더니 옷깃을 잡아채며 소리쳤다.“넌 왜 그 사람을 들이받았어? 말해! 왜 들이받았냐고!”겁에 질린 남자아이는 두 손으로 이장원의 팔을 붙잡은 채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삐죽거리며 울음을 터뜨렸다.“엄마, 엄마!”여자는 달려가 남자아이를 끌어안으며 이장원의 손에서 아이를 빼냈다.“외삼촌, 이진이는 아직 애예요. 제발 이진이한테 그렇게 하지 마세요.”이를 악문 이장원은 분을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자신의 이마를 치더니 제자리에서 초조하게 빙글빙글 돌았다.남자아이는 계속 울어댔고 여자가 어떻게 달래도 멈추지 않았다. 이장원은 참다못해 목소리를 높였다.“그만 울어!”그 말에 남자아이는 울음을 뚝 멎었고 붉게 충혈된 두 눈으로 멍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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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서현주는 연지훈을 힐끗 쳐다보고는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두 손으로 휠체어의 바퀴를 밀며 앞으로 나아갔다.연지훈은 여유로운 걸음으로 다가와 아까처럼 자연스레 그녀의 손을 밀어내고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았다.그 순간 서현주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녀는 연지훈이 그녀의 휠체어를 잡는 순간 유이영의 표정이 잠시 굳어지는 걸 발견했다.서현주는 연지훈을 막지 않았다. 방금 바지를 갈아입느라 무리했으니 굳이 힘을 쓸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연지훈은 그녀의 입장에서 ‘무료 인력’이나 다름없으니까.이때 유이영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내가 밀게요.”서현주는 고개를 살짝 돌렸고 유이영의 손이 연지훈의 손 위로 자연스럽게 얹히는 게 보였다. 유이영은 일부러 연지훈의 손등을 스치며 살짝 문질렀다.“내가 하는 게 낫겠죠?”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다정했다.연지훈은 손가락을 살짝 움직였다가 이내 천천히 손을 놓았다.“그래.”유이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휠체어를 침대 옆으로 밀었다. 서현주는 아무 말 없이 몸을 일으켰고 유이영이 재빨리 그녀를 부축했다.“나랑 지훈 씨가 요즘 일이 많아서 좀 늦게 왔어요. 사실 그냥 혹시나 싶어서 들른 건데 마침 현주 씨가 그런 일을 겪었을 줄은 몰랐네요. 우리가 조금만 일찍 왔어도 그런 일이 안 생겼을 텐데... 정말 미안해요.”서현주는 그녀를 한참 바라봤다. 유이영은 진심으로 미안한 듯 보였고 말투도 다정했다. 게다가 그녀가 넘어질까 봐 손도 잘 받쳐주고 있었다.하지만 서현주는 유이영이 진심으로 사과할 리가 없다는 걸 안다.아니나 다를까 그녀를 부축하던 유이영은 살짝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려 연지훈을 바라봤다.“사실 내 잘못이에요. 저녁도 제대로 못 먹어서 저혈당이 왔었는데, 초콜릿 하나 먹으면 될 걸 지훈 씨가 굳이 병원에 가자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늦었어요.”서현주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연지훈을 봤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했고 유이영의 말에 아무 반박도 하지 않았다.서현주는 이내 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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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서현주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역시 연지훈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는 대단했다. 사람을 저렇게 굴욕적인 짓까지 하게 만들다니.“연 대표님, 서현주 씨, 여기 물 끓여왔습니다. 안에 미지근한 물이라 바로 드셔도 돼요. 식을 때까지 기다리실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온수실 바닥도 다 닦아놨습니다. 가서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이장원은 싱긋 웃으며 주전자 뚜껑을 열고 아직 김이 살짝 피어오르는 따뜻한 물을 컵에 조심스레 따라냈다. 그리고 다시 주전자 뚜껑을 덮고는 두 손으로 컵을 들어 서현주의 앞으로 내밀었다.“서현주 씨, 정말 죄송합니다.”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아까 제 철없는 조카랑 조카의 아들놈이 실례를 했습니다. 저도 아이가 울고 있으니 순간 흥분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서현주 씨, 그리고 연 대표님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서현주는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이장원의 눈빛은 겉보기에는 진심 어린 듯 보였지만 그 안에 번뜩이는 계산과 노련함이 느껴져서 오히려 불쾌했다. 그녀는 시선을 병실 문가로 돌렸다.그곳에 정희수가 어린 아들을 꼭 끌어안은 채 서 있었다. 둘 다 옷이 엉망이긴 했지만 정희수의 옷에 흙과 물 자국이 잔뜩 묻어 있었고 아이는 그에 비해 훨씬 깨끗했다.정희수는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고 눈빛이 조심스럽고 불안했다. 조금 전의 뻔뻔하고 오만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옆에서 아이는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그녀의 바지자락만 꼭 붙잡고 있었다.서현주는 목이 바짝 타서 이장원이 건넨 컵을 받아 한 모금에 물을 꿀꺽 삼켰다. 이장원은 그녀가 물을 마시는 걸 보자마자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연 대표님, 서현주 씨는 아직 아이가 없으시니 저 같은 어른의 마음을 잘 모르실 겁니다. 손주 같은 애가 그렇게 울고 있으면 누구라도 마음이 급해지죠. 저도 그래서 잠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겁니다. 부디 이해해 주세요.”“물론 제가 처음부터 서현주 씨인 줄 알았다면 바로 말렸겠죠. 방금 제가 제 조카와 조카의 아들을 단단히 혼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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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남자아이는 엄마가 하는 짓을 배운 모양이었다. 예의바르다고 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이는 남자아이는 아까는 연지훈과 눈도 못 마주치더니 지금은 서현주에게 불만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안녕하세요.”그제야 서현주는 그들이 왜 달라졌는지 깨달았다.조금 전에 온수실에서 그들은 그녀가 누구인지 몰라서 유이영의 말만 듣고 연지훈의 친동생인 연채린으로 착각해 공손하게 굴었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그들의 태도와 그녀를 ‘서현주 씨’라고 부르는 걸 보아 대충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아마도 저 사람들은 방금 인터넷으로 서현주에 관한 자료를 조금 찾아본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연지훈의 혈육이 아니라는 사실, 즉 그녀가 연채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게다가 최근 유이영과의 사건으로 온갖 소문이 떠돌았기에 인터넷에서 그녀의 신상을 찾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실제 상황도 서현주가 생각한 대로였다. 이장원은 원래 자신이 연지훈과 그의 여동생을 건드렸을까 봐 몹시 걱정하고 있었고 어떻게 사과해야 받아들여질까 궁리하다가 마지막 수단으로 인터넷에 검색한 것이었다.그런데 검색해 보니 놀라운 정보들이 쏟아졌다. 병원장인 그는 평소 바쁘다는 이유로 인터넷의 소식에 어두워서 이번 사태가 얼마나 뜨거운 이슈였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이장원은 관련 게시물과 언론 보도를 하나하나 훑어보며 사태의 전말을 확인했고 그제야 그가 알고 있던 연지훈의 ‘여동생’이 진짜 여동생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서현주는 사실 연씨 가문 운전기사의 딸이었고 몇 년 전에 연씨 가문에서 데려가 귀하게 키우다가 최근에 쫓겨났다. 지금 그녀는 월세방에 살고 있고 연씨 가문에서는 버림받은지 오래다. 즉 연씨 가문 안팎에서 서현주는 전혀 중요하지 않는 존재였다.이장원은 시골 출신이지만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걸 보면 세상의 판세를 읽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이번 사건에서 여론이 일방적으로 서현주를 공격하고 있고 연지훈 측에서 특별히 제지하거나 어떤 입장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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