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남편의 결혼을 지지해요: Chapter 581 - Chapter 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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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1화

진성민 사건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진전됐다.경찰과 검찰은 공금 횡령, 영업비밀 탈취, 강간 미수 등의 혐의로 그를 공동 기소했고, 법원에서도 이미 일정을 조율 중이라 머지않아 재판이 열릴 예정이었다. 여러 혐의가 한꺼번에 적용되는 만큼 진성민에게 좋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리 없었다.진성민의 추문이 터지자 그가 몸담고 있던 회사의 주식이 크게 요동쳤고 주가가 연일 곤두박질쳤다. 그러자 진씨 가문 내부에서는 격렬한 권력 다툼이 시작됐다.안팎으로 시끄러운 상황 속에서 진용혁은 자기 일조차 감당하기 벅찼고 결국 진성민과 관련된 모든 일을 서현주에게 일임했다.진성민은 완전히 몰락했다. 한때 가족이라, 친구라 부르던 사람들 중 누구 하나 나서서 변호사를 선임해 주려 하지 않았고 할 수 없이 그는 무료 국선 변호사의 도움을 받게 됐다.서현주는 차연희를 찾아갔다. 차연희의 이웃들이 그녀에게 벌어진 일을 알게 된 뒤로 서현주는 그녀가 쓸데없는 소문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다른 곳에 머물게 했다.서현주가 도착했을 때 차연희는 이미 진성민 관련 뉴스를 모두 확인한 뒤였고 눈에 띄게 상태가 좋아졌다.“별일 없으면 난 이만 갈게요. 아직 처리할 일이 많아서요.”서현주가 말했다.“대표님.”차연희가 다급하게 그녀를 불러 세웠다.서현주는 돌아서서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무슨 일 있어요?”차연희는 망설이는 듯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였다. 진성민과의 일이 주변 이웃들에게까지 퍼진 뒤로 그녀는 온갖 시선을 견뎌야 했다. 동정, 연민, 비웃음, 멸시... 호의든 악의든 그런 시선들 하나하나가 그녀를 바늘방석에 앉힌 듯 괴롭혔다.그런데 오직 서현주만은 달랐다. 서현주는 예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눈빛으로 차연희를 바라봤고 여전히 차분하고 담담했으며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마치 그녀에게 벌어진 일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 개의치 않는 태도였다.그건 차연희에게 진짜로 필요하고 유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였다.차연희는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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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2화

서현주가 말했다.“연희 씨가 나를 믿어줬는데 내가 그 신뢰를 저버릴 수는 없죠. 그리고 나 역시 영광이에요. 연희 씨를 실망시키지 않아서요. 진성민은 이번에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거예요.”서현주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묘하게 사람을 설득하는 힘이 담겨 있었다.“연희 씨는 충분히 용감한 사람이니 이제 본인을 조금 더 인정해 줘도 돼요.”차연희는 끝내 참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은 채 흐느끼기 시작했고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떠나기 전에 서현주가 말했다.“푹 쉬어요. 연희 씨가 다시 출근할 날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동료들도 다 연희 씨를 기다리고 있어요.”차연희의 거처에서 나온 뒤 서현주는 다시 한번 우지윤의 커피숍으로 향했다. 요 며칠 동안 그녀는 진성민 사건과 회사 일에 매달리느라 커피숍에 들를 여유조차 없었다.커피숍의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매장 한가운데 놓인 피아노였다. 피아노 의자에 가녀린 체형의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새하얀 긴 치마를 입고 있어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 게다가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이 부드럽고 매끄러운 걸 보아 여자의 연주 실력이 상당해 보였다.서현주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방향을 틀어 피아노 의자 옆 구석 자리로 갔다. 그곳은 등받이가 있는 의자가 시야를 가려 주는 위치였고 피아노를 등지고 앉는 자리라 연주자 쪽에서는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한 곡이 끝나자 우지윤이 주방 쪽에서 나왔다.“유이영 씨, 오늘은 웬일로 오셨어요?”우지윤의 말투는 평소처럼 부드럽지 않고 미묘한 긴장감과 불안감을 띠고 있었다.반면 유이영은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지윤 씨, 두 달 만이네요. 그 사이에 커피숍도 열고 피아노까지 들여놓다니, 꽤 잘 지내는 것 같네요.”우지윤은 목소리를 낮췄다.“할 말 있으면 빨리 말씀하세요. 여기에 오래 계시지 말고요.”그러나 유이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긴장하지 마요. 아무도 우리한테 신경 안 써요. 지윤 씨가 그렇게 하면 오히려 더 눈에 띄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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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3화

우지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서현주는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아마 표정이 좋지 않을 거라는 건 알 수 있었다.서현주의 눈빛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유이영이 우지윤의 가족을 인질로 삼았다니.유이영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전혀 다르게 들렸다.“지윤 씨, 내 말 잘 들어요. 이번 대회는 나한테 정말 중요해요. 좋은 피아노 곡으로 제대로 준비해 줘요. 그 곡이 내 마음에 들면 돈은 바로 보내줄게요.”유이영은 웃으며 덧붙였다.“알다시피 나 지훈 씨랑 결혼했잖아요. 나 이제 연씨 가문의 사모님이에요. 지윤 씨가 계속 내 일을 도와주면 돈은 걱정할 필요가 없죠. 나만 믿고 따라오면 앞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거예요.”우지윤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이해가 안 돼요. 왜 유이영 씨가 직접 작곡하지 않으세요? 실력도 충분히 좋으신데 유이영 씨가 만드신 곡이 나쁠 리가 없잖아요.”유이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건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요. 보상은 확실히 해줄 테니까.”한참이 지나서야 서현주는 다시 우지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알겠습니다.”유이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우지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서둘러요. 대회가 얼마 안 남아서 시간이 없어요.”“네...”유이영은 그렇게 커피숍을 떠났다.서현주는 고개를 살짝 돌려 뒤쪽을 힐끗 보았는데 우지윤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이 보이지 않아 서현주는 시선을 거두었다.서현주는 전생에 이미 유이영의 명의로 발표된 피아노 곡 대부분이 그녀의 작품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때 서현주는 유이영이 누구의 곡을 훔쳐 썼는지 알지 못했지만 이번 생은 달랐다. 그녀에게는 조사할 능력이 있었다.유이영은 꽤나 치밀했지만 서현주가 집요하게 파고든 끝에 2, 3년 만에 결국 우지윤이라는 이름을 알아냈다. 우지윤을 주목하기 시작한 바로 다음 날, 서현주의 부하가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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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4화

안요한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럼 빨리 거기서 나와.”“네?”서현주가 되물었다.그때 연지훈이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누구랑 통화 중이야?”의심할 여지 없이 연지훈의 목소리는 수화기 너머까지 그대로 전달됐다.그러자 안요한이 화를 내며 말했다.“서현주, 당장 거기를 벗어나라니까.”서현주는 애초에 연지훈과 길게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대충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그 말을 듣고 안요한은 갑자기 조용해졌다.연지훈은 서현주의 휴대폰을 힐끗 봤다가 다시 서현주를 바라보면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지자 서현주는 순간적으로 연지훈이 말을 안 할 작정인가 싶을 정도였다.한참이 지나서야 연지훈은 입을 열었다.“진성민 이번엔 완전히 끝장날 거야.”‘진성민 얘기를 하려고 왔나...’서현주는 연지훈이 어떤 의도로 이 주제를 꺼낸 건지 알 수 없었다. 연지훈이 그동안 했던 일들이 떠오르자 그녀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조금 사라졌다.“알아요.”서현주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연 대표님, 설마 그거 때문에 저한테 따지러 오신 건 아니죠?”연지훈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정말 그렇게 생각해?”서현주가 되물었다.“그게 아니면요?”여러 번 그녀를 방해하며 끝까지 진성민을 지키려 했던 사람은 연지훈이었다. 이번에 진성민이 잡혀 들어갔으니 서현주는 연지훈이 속으로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웠다.연지훈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사실 서현주 자신도 이 상황이 꽤 의외였다. 연씨 가문의 영향력이 아주 넓은 데다가 연동욱과 연지훈이 진성민을 보호하려 한다는 걸 알았을 때 그녀는 진성민을 법정에 세우는 걸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그런데 상황은 갑자기 급변했다. 아무리 안요한의 도움이 있었다고 해도 진성민이 이렇게 수월하게 잡힐 리는 없었다. 그래서 마치 어느 순간부터 연씨 가문이 돌연 진성민을 버린 것처럼 느껴졌다.서현주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연지훈의 비서는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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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5화

기사가 짧게 대답했다.“네.”그때 서현주의 휴대폰에 카카오톡 알림이 떴는데 눌러 보니 강혜인이 메시지를 보낸 거였다.[환자 이름은 차경숙이고 나이는 79세, 지금 대원 병원에 입원 중인데 골암 말기야. 병실은 A동 1207호.]서현주는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고개를 들었다.“대원 병원으로 가주세요.”“알겠습니다.”한편 연지훈은 먼저 유이영과 연유준을 호텔에 내려준 뒤 혼자 약속 장소에 나갈 생각이었다. 차가 이동하는 동안 비서는 끝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대표님, 그렇게 신경 써서 검찰 쪽을 움직이셨는데 왜 서 대표님께는 말씀 안 하신 겁니까?”그 말을 듣는 순간 유이영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마음이 요동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연유준을 꽉 끌어안았다.연지훈은 태블릿에 띄운 서류를 보고 있다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고개를 들어 운전석에 앉은 비서를 바라봤다. 그가 한참 동안 대답이 없자 비서는 자신이 괜한 질문을 했다는 걸 깨닫고 급히 입을 다물며 말 그대로 숨 죽인 채 운전에만 집중했다.연지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쓸데없는 말이 많군.”그러자 비서가 사과했다.“죄송합니다, 대표님.”비서는 속으로 더는 답을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1분쯤 지났을까, 연지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서현주가 알 필요는 없어.”비서는 백미러로 연지훈의 표정을 살피며 소심하게 ‘아, 네’ 하고 대답했다.유이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갑자기 그녀의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 나왔고 가슴 깊은 곳에서 불안한 감정이 서서히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진성민 사건에 대해 알고 있고 며칠 전에 연지훈이 이 일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도 알고 있었다. 연지훈은 아주 분명하게 자신의 태도를 보였었고 연동욱에게도 그렇게 약속했었다.그리고 유이영은 뉴스도 직접 봤었는데 진성민은 이미 체포됐다. 하지만 연지훈이 뒤에서 손을 썼을 줄이야, 그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유이영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고 그녀가 너무 오래 말이 없자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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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6화

연동욱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래서 그게 네가 검찰청 사람들한테 진성민을 조사하라고 시킨 이유야? 내가 미리 말해두는데 나를 속일 생각은 꿈도 꾸지 마. 검찰청에서 이미 전부 나한테 보고했어.”“알고 있어요. 일부러 할아버지께 숨기지 말라고 제가 말했어요.”연지훈이 담담하게 대답하자 연동욱은 그 말에 폭발했다.“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 내가 너한테 시킨 일이 뭔지, 내가 네 할아버지라는 사실은 아직도 기억하냐고?”연지훈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기억해요. 그리고 이번 일은 분명 제가 한 게 맞아요. 제가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않았어요.”연동욱은 숨을 몰아쉬며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네가 이렇게까지 한 게 혹시 서현주 때문이야?”연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침묵만으로도 연동욱은 이미 답을 알아버렸다.“너 정말 날 속 터지게 하는구나.”연지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할아버지, 저한테 화를 내셔도 되지만 꼭 몸 조심하세요. 제가 돌아가면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할아버지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요.”“지금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야. 너 네가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잖아.”연동욱은 마지막 기대를 품고 물었다.“지금 내가 당장 진성민을 빼내라고 하면 너 그래도 안 할 거지?”연지훈은 다시 침묵했다.연동욱은 한숨을 길게 내쉬다가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내가 진작 알았다고. 서현주는 화근이야.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때 아예 서현주를 입양하지도 않았을 거야. 너희가 그렇게 깊이 엮이게 두지도 않았을 거고, 진작에 돈 좀 쥐여주고 그 집안 통째로 내쫓았을 거야. 멀리, 아주 멀리 꺼지게 했을 거라고!”연동욱은 화가 나다 못해 눈앞이 캄캄해졌다.“나도 늙었지. 이제는 너를 통제 못 하겠어. 내가 젊었더라면...”그때 연지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할아버지, 제 잘못이에요.”연동욱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됐어. 일 다 끝내고 당장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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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7화

서현주는 뜨거운 보온병을 병실 침대 옆 협탁에 내려놓고 컵에 물을 따라 차경숙에게 건넸다.살짝 놀란 차경숙은 컵을 받으며 얼굴에 더 깊은 주름이 패이도록 웃었다.“아이고, 고마워. 넌 이름이 뭐니?”“별말씀을요. 제 이름은 진연우예요.”서현주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거짓말했고 차경숙은 그 이름을 천천히 되뇌었다.“진연우... 이름이 참 예쁘네.”“감사합니다.”서현주는 다가가 차경숙을 부축하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혔다.“여기 앉으세요.”그러나 차경숙은 오히려 서현주의 손을 잡고 자기 옆으로 끌어당기며 걱정스럽게 물었다.“병원에는 무슨 일로 왔어? 어디 아파?”서현주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친구 병문안 왔어요. 그 친구도 정형외과에서 치료받고 있어서요. 오다가 우연히 할머니를 뵌 거예요.”“어머나.”차경숙은 미간을 더 깊이 찌푸렸다.“정형외과라니, 그 친구는 무슨 병이야?”서현주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했다.“골절이 됐어요. 너무 심각한 건 아니지만 며칠만 입원해서 지켜보자고 해서요.”그제야 차경숙은 안도한 듯 웃으며 서현주의 손등을 토닥였다.“그럼 다행이지. 뼈는 잘 쉬면 나아. 나으면 얼른 퇴원하고.”“네,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서현주는 고개를 들어 일부러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어르신은 어디가 편찮으세요?”차경숙은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여전히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골암 말기야.”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서현주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차경숙은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녀의 얼굴은 지나치게 야위었고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은 듬성듬성했으며 눈도 깊게 꺼져 있고 눈 밑이 거뭇거뭇했다. 게다가 손등에 선명한 주사 자국들이 가득했다. 모두 항암 치료의 흔적이었다.골암 말기의 가장 큰 증상은 극심한 다리 통증인데 아까 걸어오는 내내 차경숙의 걸음걸이가 위태로운 걸 보아 걷는 게 무척 힘든 것 같았다.서현주는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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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8화

차경숙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얼른 친구 보러 가. 여기서 나랑 수다 떨어줄 필요 없어.”굳이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오늘은 이 정도만으로 충분했고 너무 오래 머무는 건 오히려 좋지 않아 서현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네, 어르신도 몸 잘 챙기세요.”그녀가 병원을 나서자마자 강혜인에게서 좀 더 상세한 자료가 도착했는데 차경숙을 치료하고 있는 전문 의료진과 현재 진행 중인 치료에 대한 내용이었다.[아는 의사한테 자료 보내서 검토해 달라고 부탁했어. 아직 답장은 안 왔는데 너도 일단 봐봐.][알겠어.][병원은 다녀왔어?][응, 벌써 나왔어.][사람은 만났고?][응, 잠깐 얘기만 했어. 그게 다야.][그분들이 네 말에 귀 기울여 줄까? 유이영이 사실상 그 집안의 생명줄이나 다름없잖아. 그래도 네 편을 들어줄까?][그건 네가 의뢰한 의사들이 유이영 씨가 데려온 전문가랑 치료 방식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달렸지.][맞아. 이런 식으로 추측하는 건 좀 그렇지만... 네가 그분들을 설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포인트이긴 해.][응, 천천히 하자.]그 후 며칠 동안 서현주는 회사 일과 진성민 사건을 처리하는 틈틈이 병원과 카페를 오갔다.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자연스럽게 우지윤과 차경숙과도 꽤 가까워졌다.다만 서현주는 여전히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않았다.대회를 이틀 앞둔 날, 우지윤은 완성된 최신 피아노 곡을 유이영에게 보냈고 유이영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내가 한 번 연주해 보고 마음에 들면 바로 돈 보낼게요.]우지윤은 메시지를 바라보며 숨을 들이마시고 답장은 하지 않았다.그날도 그녀는 평소처럼 저녁 여섯 시에 퇴근해 지하철을 타고 대원 병원으로 향했다. 매일 반복하는 동선이었다.다만 그날 평소와 달리 차경숙이 이런 말을 꺼냈다.“지윤아, 내가 병원에서 어떤 예쁜 아가씨를 알게 됐어.”우지윤은 처음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병원에는 늘 사람이 많았고 이런저런 사람을 알게 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니까.그래서 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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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9화

사진을 보는 순간, 우지윤은 동공이 미세하게 수축됐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사진 속의 할머니는 그녀에게 더할 나위 없이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었고 그 옆에 있는 젊은 여자 역시 낯설지 않았다.그 여자는 최근 며칠 동안 우지윤의 카페에 와서 커피를 마시고 피아노를 치던 바로 그 손님이었다. 틀림없었다. 이렇게 보기 드문, 인상적인 미모의 여자를 우지윤이 기억 못 할 리가 없으니까.그녀는 그동안 단 한 번도 그 여자의 이름을 물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처음 이름을 알게 되었다.그런데 우지윤은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해졌고 마치 커다란 돌덩이가 짓누르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이렇게까지 우연일 수가 있을까?진연우는 우지윤과 아는 사이이면서 마침 친구가 골절해 이 병원에 입원했고 또 우연히 그녀의 할머니와 알게 됐다고 했다.우지윤은 그동안 유이영과 알고 지내며 평범하지 않은 일들과 음모들을 숱하게 접해왔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직감이 말했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닐 거라고.차경숙은 여전히 웃으며 물었다.“지윤아, 어때? 이 아가씨 예쁘지?”“예쁘긴 하네요...”우지윤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런데 할머니, 이분은 언제 만나신 거예요?”차경숙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며칠 전에 만났어.”“며칠이요? 정확한 날짜를 알려주세요.”우지윤이 다시 물었다.“왜, 그게 그렇게 중요해?”차경숙이 되묻자 우지윤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중요해요.”차경숙은 잠깐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음... 한 나흘쯤 됐나?”나흘 전이라... 그 말은 곧 진연우가 먼저 우지윤의 카페에 들렀고 그 이후에 이 병원에서 할머니를 만났다는 뜻이었다.진연우에게 특별한 의도가 있다는 증거는 없고 며칠 동안의 교류만 놓고 보면 그녀는 오히려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우지윤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그녀는 최근 며칠 동안의 일을 떠올렸다. 진연우는 예의 바르고 센스가 있으며 말도 재치 있게 잘했다. 우지윤은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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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0화

우지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차경숙을 부축해 침대에 앉혔다.“별일 아니에요. 방금 가게 직원한테 전화 왔는데 매장에 일이 생겼대요. 제가 잠깐 다녀와야 할 거 같아요.”차경숙은 그녀의 손을 붙잡고 토닥였다.“그래, 그럼 얼른 가서 일 보고 와. 너무 무리하지 말고, 몸도 챙기고.”우지윤은 입술을 살짝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럴게요.”그러다 망설이며 덧붙였다.“할머니, 혹시 나중에 진연우 씨가 또 찾아오면... 거리를 좀 두세요.”차경숙은 미간을 찌푸렸다.“왜? 연우한테 무슨 문제가 있니?”우지윤은 또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별건 아니에요. 그냥 제 말대로 해 주세요. 너무 많은 얘기는 하지 마시고 조금만 멀리하시면 돼요.”그러자 차경숙은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래. 네 말 들을게. 다음에 그 애가 또 오면 내가 아는 척 안 할게.”잠시 후 서현주는 우지윤과 정확히 엇갈렸다. 우지윤이 병원을 나선 직후 서현주가 병원에 도착했고 두 사람은 마주치지 않았다.서현주는 평소처럼 차경숙의 병실로 향했지만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문을 몇 번이나 두드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다.서현주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라면 차경숙이 바로 들어오라고 했을 텐데 반응이 없는 게 이상했다. 게다가 아직 쉬는 시간도 아닌데 말이다.잠시 더 기다려 보다가 안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자 서현주는 돌아서려 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병실 문이 열렸고 차경숙을 돌보는 간병인 양미진이 걸어 나왔다.양미진은 문을 닫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어르신께서 지금 주무세요.”사실 방금 문이 열렸을 때 서현주는 문틈 사이로 차경숙이 침대에 앉아 문 쪽을 보고 있는 걸 보았다. 절대 잠든 게 아니었다.그러나 서현주는 눈썹만 살짝 올렸을 뿐, 양미진의 거짓말을 굳이 까발리지 않았다. 그리고 가볍게 감사 인사를 건넨 뒤 바로 자리를 떴다.그녀는 복도 한쪽에 잠시 멈춰 서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결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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