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남편의 결혼을 지지해요: Chapter 51 - Chapter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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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화

서현주는 생각했다. 연지훈은 역시나 유이영을 한결같이 아끼는 남자였다. 세심하고 다정해서 유이영이 조금이라도 억울함을 겪게 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오늘 밤 일로 인해 유이영은 꽤 오랫동안 ‘표절’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될 것이다.인터넷은 워낙 넓고 크다. 연지훈이 손바닥으로 가린다 해도 몇 마디는 새어 나가기 마련이다.아직 교정을 벗어나기도 전에 이승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현주야, 교장실로 좀 와 줄래?”“네.”서현주는 담담히 대답했다.교장실 문 앞에 막 다다랐을 때, 안에서 유이영의 낮게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안에는 여러 명의 교직자들과 간부들이 있었고 다른 세 명의 사회자도 모두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모두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서현주가 문을 두드리자 안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단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연지훈은 유이영 어깨에 자신의 양복 상의를 걸쳐주고 손바닥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위로하고 있었다.서현주는 태연히 그쪽을 바라보며 말했다.“교장 선생님, 저를 찾으셨나요?”교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서현주, 다른 사람들에게 이미 확인했어. 그 연주곡 튼 거 너 맞지? 다른 사람들은 아니라고 했어.”모두의 시선이 한꺼번에 그녀를 향했다.서현주는 미소를 지으며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 무슨 문제 있나요?”그 말이 끝나자 연지훈이 마침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시선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낮게 가라앉아 있었으며 압박감이 서려 있었다.교장은 그 기세에 눌려 잠시 연지훈을 두려운 듯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낮추어 경고하듯 말했다.“누가 허락했지? 제멋대로 틀다니, 문제 생기면 네가 책임져야 하는 거야.”서현주는 모른 척 눈을 깜빡이며 맑은 눈빛으로 되물었다.“제가 잘못한 건가요?”그리고는 고개를 숙이며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사실 이 곡 은 제가 오랫동안 준비해 개교기념일 무대에서 연주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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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연지훈의 매서운 눈빛이 그녀를 훑었다. 길고 검은 눈동자는 압박감을 담아 서현주를 꿰뚫듯 바라봤다.그 순간 유이영이 흐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연지훈의 팔에 손을 얹고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지훈 씨, 아영 씨 탓하지 마. 이번 일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거야.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그리고는 불현듯 울먹이는 눈으로 서현주를 바라봤다.그 눈빛은 단단하면서도 연약했고 꼭 드라마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 같았다.“현주 씨, 이런 짓을 한 의도가 뭔진 모르겠지만 분명히 말해두겠어요. 이번만큼은 더는 현주 씨가 제멋대로 하게 두지 않을 거예요. 제 권리는 제가 지켜낼 겁니다.”유이영을 바라보던 서현주의 마음 한구석에 알 수 없는 낯선 감각이 일렁였다.그 기분은 유이영이 연지훈을 붙잡고 떠난 뒤에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서현주는 주먹을 꼭 쥐고 그 감정을 억눌렀다. 그러고는 교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더 이상 문제없으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교장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서현주, 이번 일은 네가 벌인 거야. 무슨 문제가 생겨도 학교는 책임지지 않을 테니 네가 알아서 감당해.”서현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르게 교장실을 나섰다.그녀는 서둘러 걸어 나갔기에 이승주가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을 보지 못했다.개교기념일이 끝나자 주말이 찾아왔다. 이틀간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됐기에 서현주는 원룸에 틀어박혀 공부에 매진했다.엄진경은 온종일 막장 가족 드라마를 보느라 개교기념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서현주도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았기에 오히려 조용히 지낼 수 있어 편했다.그러다 잠시 쉬는 시간, 무심코 휴대폰을 스크롤 하던 그녀의 눈에 한 뉴스가 들어왔다.[충격! 무명 피아니스트 ‘고지현’ 사망 소식은 거짓, 그녀의 진짜 정체는 바로 유명 피아니스트 유이영이었다!]서현주는 거의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꽉 쥔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눈은 휴대폰 화면에 꽂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엄진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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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엄진경은 서현주의 얼굴에 드리운 어두운 기색에 깜짝 놀랐다.“현주야, 너 뭐 보고 있는 거야?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서현주는 급히 휴대폰을 덮고 눈을 감았다. 숨이 가빠지고 마치 가슴속에 무거운 돌덩이가 눌려 있는 듯 호흡이 막혔다. 온몸의 피가 식어 굳어버린 듯했다.엄진경이 그녀 손을 붙잡았다.“현주야, 무슨 일이야?”서현주는 천천히 눈을 뜨며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냥 문제를 하나 틀렸을 뿐이에요. 엄마, 나 아직 문제 더 풀어야 하니까 먼저 나가 주세요.”엄진경은 반신반의하며 방을 나갔다.서현주는 문을 닫고 다시 휴대폰을 켰다.그 게시글 아래에는 유이영과 고지현이 동일인이라는 수많은 증거가 달려 있었다.고지현은 한 번도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는 점, 두 사람의 나이가 같다는 점, 같은 시기에 같은 도시에 머물렀다는 점.고지현이 세상을 떠난 뒤, 곧바로 ‘천재 소녀 피아니스트 유이영’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드러났다는 점.심지어 몇 년 전 유이영이 고지현의 계정에 ‘좋아요’를 눌렀던 기록, 두 사람이 입었던 같은 옷까지..게다가 고지현의 곡 은 이미 3년 전 음악 플랫폼에 올라와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고작 수백 번밖에 재생되지 않은 무명 곡이었다.유이영이 어떻게 그 수많은 무명 곡 가운데 이 곡을 집어낼 수 있었겠는가?그건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블로거는 더 많은 증거를 나열했고 그 모든 화살표는 ‘유이영=고지현’라는 결론을 가리키고 있었다.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현주는 더욱 유이영을 증오했다.의 명성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서현주가 그 곡을 알 리가 없었다.그럼에도 알고 있는 이유는 하나, 고지현이 바로 그녀의 피아노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몇 년 전, 엄진경은 서현주의 취미를 길러주겠다며 고지현을 선생으로 붙여주었다.사실 고지현이 그녀의 피아노 스승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워낙 이름 없는 인물이었으니 말이다.고지현은 서현주보다 겨우 다섯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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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이번 생에서 유이영은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고지현이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두려움 없이 그녀의 이름을 자기 것으로 삼았고 뻔뻔하게도 의 작곡가 자리까지 차지했다.서현주의 눈가가 붉어졌다. 아직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잡고 전화를 받았다.들려온 건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다소 머뭇거리는 기색이 있었다.“거기 서현주 씨 맞나요?”서현주는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맞아요, 무슨 일이죠?”소녀는 잠시 망설였다.“목소리가 왜 그래요?”서현주는 기침을 몇 번 하고는 말했다.“괜찮아요. 말해 보세요.”소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저 기억해요? 전에 학교 밖에서, 저희 엄마 전기자전거가 연 대표님 롤스로이스랑 부딪쳤을 때, 대표님께 엄마 책임 묻지 말아 달라 해주신 분이잖아요.”“기억나요. 그런데 왜요?”소녀가 말했다.“그 일 때문에 알려드리는 건데 빨리 학교로 오세요. 이승주 선생님이 교장한테서 해고당할 위기에요. 선생님이 멋대로 현주 씨를 사회자로 세운 데다 일이 터졌다고 교장이 화가 나서 책임을 묻겠대요.”서현주의 동공이 움찔거렸다.교장실.서현주는 목소리를 눌러 따졌다.“왜 이승주 선생님을 해고하겠다는 겁니까? 이건 제가 한 일이지, 이승주 선생님과는 전혀 상관없어요!”교장은 짜증 섞인 얼굴로 쏘아붙였다.“다른 사람 두둔할 여유가 있으면 네 처지를 생각해. 널 퇴학 시키는 절차가 이미 진행 중이야. 얼마 안 가 네가 학교를 떠날 차례라고.”‘퇴학’이라는 말에도 서현주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자기가 저지른 일이니 책임도 스스로 질 수 있었다.하지만 이승주만큼은 안 된다. 그는 억울하게 엮여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학교 교사들 대부분이 정식 임용을 받기 위해 몇백 대 일 경쟁을 뚫고 들어왔는데 이승주는 무려 세 번 도전 끝에 겨우 합격해 교단에 선 사람이었다.자신은 감당할 수 있어도 선의로 도와준 이승주가 대신 희생당할 수는 없었다.서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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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서현주는 교장에게 당장 달려가겠다며 몸을 돌렸다.“지금 당장 교장 선생님께 가서 빌어볼게요.”이승주는 고개를 저으며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가지 마. 날 해고시키려는 건 교장 선생님이 아니야. 다른 사람이야. 교장 선생님에게 빌어봤자 소용없어.”서현주의 온몸이 덜컥 굳었다. 눈이 커지며 그를 바라봤다.“설마... 연지훈 씨요?”이승주는 입을 꾹 다물었다. 대답을 하지 않았다.그 순간 서현주의 눈은 더 붉어지고 입술마저 떨렸다.“정말 그 사람이 맞는 거예요?”그녀는 마치 벼락을 맞은 듯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연지훈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자신만을 겨냥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서현주를 도와준 사람까지 철저히 짓밟을 만큼 증오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서현주의 발걸음이 멈췄다.만약 정말 연지훈의 뜻이라면 이 일은 돌이킬 방법이 없었다.더구나 여기에 유이영까지 얽혀 있었다. 연지훈은 그녀를 지키는 데 있어서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전생에도 그랬다. 연하나가 그의 친딸임에도 불구하고 아빠라고 부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연하나가 죽은 뒤 7일 동안, 그는 딸이 세상에 없어진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만약 이번에 위험에 처한 이가 유이영과 그의 아들이었다면...아니, 애초에 연지훈은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두지 않았을 것이다.이승주는 그녀의 손을 놓으며 억지웃음을 지었다.“괜찮아, 지현아. 난 아무렇지도 않아. 겨우 직장 하나 잃은 거잖아.”“아니요, 제가 직접 찾아가서 부탁드릴 거예요.”서현주의 목소리는 힘없이 떨렸지만 단단한 결의를 담고 있었다.이승주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듯 말이다.“제발 그러지 마. 우선 교장 선생님에게 가서 네 퇴학 문제나 막아. 몇 달 후면 입시잖아. 널 먼저 생각해.”서현주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이승주 선생님, 전 절대로 선생님이 잘리는 걸 두고 보지 않을 거예요.”이승주는 초조하게 눈살을 찌푸렸다.“연 대표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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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그녀와 연하나가 셋방에서 쫓겨나던 순간, 연지훈이 나타났다.연지훈은 그녀에게 운진 빌딩에서 청소 일을 시켰고 그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33층짜리 건물, 수십 명의 청소 직원이 있었지만 연지훈의 눈짓 하나에 모든 일이 그녀에게만 몰렸다.매일 33층을 청소해야 했고 허리는 쑤시고 팔다리는 덜덜 떨릴 정도로 지쳤다. 연하나를 돌볼 시간조차 없었다.그렇게 고생해도 한 달 월급은 고작 40만 원, 보험도 없고 수당도 없고 휴가도 없었다.연지훈의 말은 간단했다.“하기 싫으면 그만둬. 하지만 이 도시에서 다른 일자리는 못 찾을 거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운진에서 1년을 버텼다. 결국 유이영이 ‘바닥이 더럽다’는 이유로 그녀를 내쫓았다.건물을 바라보는 순간, 서현주의 몸은 저절로 떨렸다. 영혼 깊숙이 각인된 공포, 지워지지 않는 두려움이었다.그녀는 다시는 이 안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승주는 본래 선한 사람이었고 더는 자신 때문에 피해를 입게 하고 싶지 않았다.서현주는 연결되지 않는 전화를 내려다보다 이를 악물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들어서자마자 안내 데스크 직원이 길을 막았다.“죄송하지만 누구를 찾으러 오셨습니까?”서현주는 익숙한 내부 구조를 바라보다 잠시 멍해졌다.“연지훈 대표님을 찾으러 왔어요.”직원들은 그녀의 평범한 옷차림을 흘끗 보더니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죄송합니다. 연 대표님께서는 이미 그쪽이 올 거라 예상하신 것 같았어요. 대표님 말씀은 간단해요.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특별히 저희에게 당부하셨습니다. 절대 안으로 들이지 말라고요. 그러니 돌아가시죠.”그들의 눈빛에는 그녀를 권세에 빌붙으려는 뻔뻔한 여자로 보는 경멸이 담겨 있었다.서현주는 더 말할 필요 없다 생각하고 곧장 안으로 뛰어들었다.“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안 돼요!”그때, 회장실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열리고 연지훈의 수행비서가 나타났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만, 연 대표님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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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엘리시움.문 앞에 다가가지도 않았는데 서현주는 이미 차 안에서 터져 나오는 요란한 음악 소리와 수많은 환호성을 들었다.그녀는 얇은 바람막이를 꼭 여며 몸을 가린 채 앉아 있었고 아래로는 하얗고 가느다란 두 다리만 드러난 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수행비서가 차를 현관 앞에 세우고는 룸미러로 그녀를 힐끗 보았다.“도착했습니다. 내리시죠. 연 대표님과 대표님의 친구분들이 이미 SVIP1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서현주는 엘리시움의 정문을 올려다봤다. 현관 위 네온사인은 오색찬란하게 번쩍이며 눈앞을 아득하게 만들었다.심장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막 문손잡이에 손을 얹는 순간, 수행비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그의 눈빛에는 노골적인 악의가 번뜩였다.“외투는 벗으셔야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연지훈의 수행비서는 열 명이 넘게 있었고 각자 맡은 일이 달랐다. 이번에 배정된 수행비서는 능력 때문이 아니라 서현주를 대하는 태도 때문에 특별했다.그는 유이영의 대학 동창이었다.한때 일자리를 찾지 못했을 때, 유이영이 연지훈의 뒷문을 통해 그를 끌어넣었다.서현주, 연지훈, 유이영 사이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었다.자연스레 유이영 편에 섰고 서현주에게는 노골적으로 무례했다. 연지훈이 모를 리 없었다.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이 분명했다.서현주는 웅크린 손가락을 펴며 마지못해 바람막이를 벗었다.그리고 엘리시움의 초미니스커트를 입은 접객 여자를 따라 SVIP1실 앞에 섰다. 그녀의 손바닥은 여전히 옷 사이로 드러난 하얀 가슴께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안에서 응답이 오자 접객 여자는 붉은 입술을 치켜올리며 문을 밀어 열었다.“들어가시죠.”방 안으로 들어선 순간, 서현주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소파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연지훈이었다.연지훈은 다리를 걸친 채 무심한 태도로 앉아 있었다. 검은 정장을 입었지만 셔츠 단추 두 개는 풀려 있었고, 목젖과 쇄골이 어스름한 조명 아래 더욱 눈에 띄었다.그는 고개를 숙이고 와인잔을 들고 있었으며 잔 속의 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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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서현주가 입을 열려는 순간, 다른 남자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영 씨.”그 남자의 목소리에는 아부가 묻어 있었다.“어제 있었던 일 다 들었습니다. 이영 씨가 바로 고지현이라니, 정말 놀라워요. 그 네티즌들이며 몇몇 사람들은 너무 지나쳤어요. 듣기만 해도 다 화가 나더군요.”그 남자의 시선이 서현주에게 스쳐 지나갔다. 눈빛에는 노골적인 조롱과 비아냥이 담겨 있었다.“보시다시피 연 대표님께서는 이영 씨를 위해 나서주고 계셔요.”재벌가 도련님, 아가씨 곁에 붙어 있는 사람들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이는 없었다.서현주뿐 아니라 연씨 가문의 사람들 모두가 알았다. 연지훈이 유이영에게만은 특별히 예외적이라는 것을.그들은 유이영이 연지훈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고 연지훈에게 접근할 수 없다면 지금처럼 유이영에게 아첨하며 비위를 맞췄다.유이영을 기쁘게 하는 것이 곧 연지훈을 기쁘게 하는 길이었다.‘고지현’이라는 이름이 들려온 순간, 서현주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엄청난 증오가 치밀어 그녀를 삼켜버릴 듯했다.전생에 유이영은 연하나의 시신을 밟고 올라섰다.그리고 이번 생에는 대중 앞에서 고지현의 신분을 훔쳤다.유이영은 고지현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알기에 저토록 뻔뻔하게 굴 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고지현에게 살아 있는 제자가 있다는 사실은 알 리 없었다.서현주는 고개를 떨구고 화려한 무늬가 깔린 카펫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치맛자락을 힘껏 움켜쥐었다.유이영이 잠깐 그녀를 바라보더니 곧장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괜찮아요. 아직 철이 덜 든 어린애들이 종종 실수를 하고는 하죠. 제가 몇 살은 많은데 굳이 애들 같은 일에 마음 쓰지 않을래요.”서현주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유이영의 시선이 그녀와 마주쳤다.조롱인지 동정인지 모를 눈빛이었다.“현주 씨, 현주 씨 나이면 지금은 공부에만 집중할 때예요. 좋은 대학 가는 게 우선이지 다른 데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면 되잖아요.”그녀는 잠시 입술을 다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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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이제 그녀는 그 여자에게 사과해야 했다.억지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는 거칠고 메말라 있었다.“미안해요. 제 잘못이에요. 사과드립니다.”서현주는 보지 않아도 알았다. 지금 자기 모습이 얼마나 비참하고 치욕스러운지.유이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올렸다.“괜찮아요. 받아줄게요.”연지훈은 그녀를 보지도 않고 짧게 ‘응’ 하고만 답했다.서현주는 소지욱이 싫었다. 아니, 그 이상의 혐오였다.그런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차라리 그가 자신을 데리고 나가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그녀는 서둘러 돌아가 억지로 얼굴에 웃음을 걸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를 데리고 가주세요.”소지욱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서현주의 어깨를 감쌌다.“그럼 연 대표, 난 현주 데리고 갈게. 인생은 짧으니 오늘 밤은 마음껏 즐겨야지.”그 말이 끝나자, 룸 안은 곧바로 웃음소리와 야유 섞인 환호로 가득 찼다.연지훈은 고개조차 들지 않고 다시 한번 짧게 ‘응’하고만 대답했다.소지욱의 얼굴에는 더 큰 웃음이 번졌다. 그는 서현주를 끌어안은 채 방을 나섰다.서현주는 온몸에 힘을 한 치도 풀지 않은 채 바짝 긴장했다.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소지욱에게 이끌려 휴식 공간으로 향할 때, 그녀의 호흡은 점점 가빠졌다. 결국 걸음을 멈추고 양손으로 치맛자락을 꼭 움켜쥐었다.“소 대표님.”술에 취한 듯한 소지욱에게서 진한 술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그 숨결만으로도 서현주는 구역질이 치밀어올라 숨을 못 쉴 지경이었다.소지욱은 아직은 인내심을 보이는 듯, 몸을 돌려 서현주의 턱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왜?”서현주의 얼굴은 창백했다.“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예요?”소지욱의 눈빛은 가볍게 비웃는 듯한 장난기 가득한 눈빛이었고 손바닥은 제멋대로 그녀의 흰 피부 위를 훑고 지나갔다.“당연히 오늘 밤을 즐기러 가야지. 걱정 마, 현주야. 오빠가 너 충분히 기분 좋게 해줄 테니까.”서현주는 당장이라도 토할 듯했지만 필사적으로 참으며 도망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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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소지욱은 그녀의 절규를 들으며 히죽히죽 웃었다.“오빠는 너 같은 고집 센 애가 좋아. 잠시 후에는 편안해질 테니 그때는 발버둥도 못 칠 거야.”그의 힘은 너무 강했다. 서현주는 전혀 몸부림칠 수 없었고 손발이 모두 억눌린 채 절망 속에 갇혔다.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제발, 제가 다른 여자 찾아줄게요.”이곳은 엘리시움, 여자라면 취향별로 얼마든지 있었다.“하지만 난 너만 원해.”소지욱은 그녀의 손목을 누르며 눈빛에 노골적인 점유욕과 뜨거운 욕망을 드러냈다.전생에서 연지훈은 늘 서현주를 혐오한다 말했지만 결국 그녀의 몸은 탐닉했다.그의 눈빛은 소지욱처럼 노골적이지 않았지만 욕망이 이는 순간만큼은 서현주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그 생각에 그녀는 더욱 당황했다.한편, 룸 안에서 유이영은 은근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다른 사람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서현주가 소지욱에게 끌려나간 뒤부터, 연지훈의 분위기가 계속 달라져 있었다는 것을.차라리 그가 후회하기 전에 자신이 넓은 아량을 베푸는 척하며 서현주를 데려오자 제안하는 것이 낫다고 여겼다.그렇게 하면 연지훈 앞에서 미리 자신의 너그러움과 이해심을 보여줄 수 있었다.이와 반대로 만약 연지훈이 훗날 후회하며 서현주를 다시 끌어들일 경우, 그때는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었다.만약 그 일로 연지훈이 서현주에게 죄책감이라도 품게 된다면 유이영은 울 곳조차 잃게 될 것이다.하여 유이영은 그의 팔에 팔짱을 끼고 부드럽게 떠보았다.“지훈 씨, 우리 현주 씨 데리러 가는 게 어때요? 비록 잘못을 저질렀지만 아직 고등학생일 뿐이잖아요. 그냥 겁만 주면 됐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연지훈은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더니 잔 속의 술을 천천히 흔들었다.목소리는 차갑고 무심했다.“필요 없어.”유이영은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을 살피며 입술을 깨물었다.“지훈 씨, 지훈 씨가 나 때문에 이러는 거 알아요. 하지만 정말 이 정도면 충분해요. 현주 씨는 그냥 고등학생이에요.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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