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남편의 결혼을 지지해요: Chapter 61 - Chapter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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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예전에 연지훈은 어떤 사람, 어떤 일의 전화라도 절대 자리를 피하지 않고 받곤 했다.그런데 이번에는 누구일까?유이영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다행히 30초도 안 돼서 연지훈이 밖에서 돌아왔다.늘 변함없는 얼굴을 보고서야 유이영의 불안감이 조금 가라앉았다.한편, 서현주의 눈물은 쉴 새 없이 흘러내렸고 소지욱의 손길은 점점 더 뻔뻔해졌다.그녀가 온 힘을 다해 버텼기에 그는 옷을 벗기지 못했다.옷을 못 벗기자 소지욱은 짜증이 났는지 몸을 일으켜 서현주의 뺨을 사정없이 내리쳤다.그러고는 어두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뭘 아직도 연기를 하고 있어?”뒤이어는 비웃듯 입꼬리를 씩 올렸다.“됐어, 게임은 끝. 더는 네가 애써 도도한 척하는 꼴 못 봐주겠다.”그가 세게 때린 탓에 서현주는 머리가 어지러웠다.입안에 차오르는 피 맛을 삼키며 입술 살을 씹어 뜯을 만큼 이를 악물었다.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서현주가 겨우 말했다.“제발...”그때 날카로운 전화벨 소리가 터졌다.서현주는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잡은 듯 눈을 크게 떴다.“휴대폰 울려요, 전화 왔어요.”소지욱은 짜증스럽게 벨소리 쪽을 힐끗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그러고는 전화를 무시한 채 고개를 숙여 그녀를 위아래로 훑었다.“전화 따위 신경 쓰지 마. 지금은 우리 시간이잖아.”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옷을 벗기려 달려들었다.서현주는 몸을 끌어안고 치욕의 눈물을 떨구며 애원했다.“제발 그만 해요. 제가 다른 사람 찾아줄게요...”하지만 끊긴 벨소리는 다시 울렸고 다급한 기색마저 묻어났다.서현주는 발버둥 치며 소리쳤다.“소 대표님, 전화 받아요! 당장 받아요!”그녀의 저항에 화가 치밀던 소지욱은 귀찮게도 전화가 끊이지 않자 벌떡 일어나 머리를 쓸어올리고는 서현주의 배에 대고 발길질을 했다.“더러운 년.”그 발길질 한 방에 오장이 뒤틀리는 듯했고 서현주는 고통에 몸을 웅크리며 식은땀을 쏟았다.몸에서는 힘이 빠져나갔다.소지욱은 옷을 헤집어 집어던지고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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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서현주는 소지욱이 간 쪽과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여기는 SVIP 전용 구역이라 사람도 거의 없고 분위기도 조용했다. 오직 몇몇 노출이 심한 차림의 여종업원들만이 룸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헝클어진 몰골의 서현주는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아무리 다급해도 오는 발소리가 들릴 때는 늘 구석에 몸을 숨겼다.연지훈은 엘리시움의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이었다. 다만 업무가 워낙 많아 대부분의 운영은 다른 창립자들에게 맡긴 상태였다.결국 엘리시움 안의 사람들은 거의 다 연지훈 쪽 사람이라는 것이다.만약 종업원들에게 들킨다면 자신을 다시 잡아다 바칠지도 몰랐다.종업원 몇 명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서현주는 조심스레 구석에서 나왔다.손님들이 드나드는 큰길 대신, 계단 쪽의 좁은 통로를 골랐다.계단 손잡이에 손을 얹는 순간, 등 뒤에서 여자의 머뭇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누구야?”서현주는 어깨에 걸친 얇은 담요를 꼭 움켜쥐고 심호흡을 한 뒤 문 손잡이를 확 틀어 열었다.곧장 나가려던 찰나, 담요가 뒤에서 낚아채듯 벗겨졌다.“너 서현주지?”여자의 목소리는 점점 더 확신에 찼다.“돌아가. 연 대표님이 아직 널 보내주지 않으셨어.”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서현주는 담요를 돌려받을 겨를도 없이 달아났다.뒤에서 갑자기 여러 사람의 급박한 발소리가 몰려왔고 중년 여자의 호통이 뒤따랐다.“붙잡아! 연 대표님이 아직 보내주지 않았어!”사람들에게 짓눌려 무릎 꿇린 순간, 서현주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었다.또각, 또각, 또각...눈앞에 반짝이는 검은 구두 한 켤레와 높은 굽의 하이힐이 멈춰 섰다.얼굴을 들자 서현주는 연지훈의 깊게 가라앉은 눈빛과, 유이영의 웃는 듯 아닌 듯한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유이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현주 씨, 왜 이래요... 소 대표님이 현주 씨 힘들게 한 건 아니죠?”서현주는 헐떡이며 연지훈을 노려봤다.“소 대표님은 이미 갔어요. 또 나한테 뭘 하고 싶은 건데요?”연지훈의 눈빛은 차갑게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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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하지만 연지훈의 미간은 오히려 더 깊게 찌푸려졌다. 불만이 커진 듯했다.서현주는 고개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주워 어깨에 걸치고 꼭 여민 뒤,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러니까... 이제 가도 돼요?”연지훈은 불쑥 고개를 들어 서현주의 목덜미와 쇄골이 맞닿은 피부에 손가락을 댔다.손끝이 힘을 주며 아래로 눌러오자 선명한 멍 자국이 드러났다.희고 고운 피부 위에 찍힌 잉크 얼룩처럼 너무도 도드라지고 흉했다.서현주는 고통에 얼굴을 찌푸리며 그의 손등을 탁 내쳤다.“뭐 하는 거예요?”‘찰싹’하는 소리가 또렷하게 울렸다.곧 연지훈의 손등에 붉은 자국이 퍼졌다.옆에 있던 직원들의 눈은 휘둥그레졌고 숨이 턱 막히는 긴장감이 흘렀다.이건 연지훈이었다.감히 그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감히 그를 건드릴 사람 자체가 없었다.직원들의 시선은 곧 동정으로 바뀌었다.이후 서현주에게 닥칠 일을 이미 짐작한 듯했다.하지만 연지훈은 손등을 맞고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하게 멍든 자리를 눌렀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낮게 물었다.“이건 뭐지?”‘뭐긴 뭐야?’서현주의 입꼬리가 비웃듯 말려 올라갔다.“연 대표님도 스물일곱이나 된 어른인데 이게 뭔지 몰라 보이진 않겠죠?”연지훈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치 그녀 몸의 더러움을 지워내려는 듯, 손가락 끝으로 그 자리를 거칠게 문질렀다.“소지욱이야?”서현주는 눈빛에 냉소를 담았다.“그럼 누구겠어요? 연 대표님이랑 그분이 날 서로 바꿔 치기 한 거 아니에요?”애써 쓴웃음을 지으며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날 그분한테 보낸 건 연 대표님이잖아요.”냉담하면서도 떨리는 목소리, 맑디맑은 눈빛이 연지훈을 곧게 꿰뚫었다.주변 공기는 얼어붙은 듯 고요했다.연지훈의 손끝이 멈췄고 어두운 눈빛이 그녀에게 꽂혔다.서현주는 담요를 확 벗어 던지고 불빛이 가장 환한 곳에 섰다.노출된 몸 위에는 소지욱이 남긴 자국이 뚜렷했다.붉은 손자국마저 얼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누가 만든 상처인지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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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유이영이 다가와 연지훈의 팔을 붙잡고는 부드럽게 말했다.“지훈 씨, 지금 마음이 힘든 거 알아요.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졌으니 차라리 현주 씨를 병원에 보내 치료를 받게 해요.”여전히 연기를 하고 있었다. 착하고 이해심 많은 여인인 척, 현명하고 자상한 척 말이다.연지훈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무거운 눈빛이 서현주를 강하게 붙잡았다.“내가 사람 불러 병원에 데려다줄게.”오늘 서현주는 정말 지쳤다.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한없이 피곤했다.그렇기에 더는 유이영과의 연극에 끼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비웃음을 띤 채 연지훈을 바라봤다.“필요 없어요. 나 지쳐서 그냥 집에 갈래요.”말을 남기고 돌아서려는 순간, 연지훈이 걸음을 옮겨 따라붙었다.서현주는 고개를 숙인 채, 드리운 그림자를 보고는 직감적으로 몸을 비켜섰다.그러고는 자리에 멈춰 선 채, 고개를 돌리며 담담하지만 슬픈 눈빛으로 물었다.“연 대표님, 떠나는 것도... 아직 대표님 허락이 필요한 건가요?”연지훈은 얇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서현주는 곧장 그의 앞에 다가가 단호히 말했다.“나한테 조금이라도 미안함을 느낀다면 이승주 선생님만은 놓아줘요. 제발 그분은 건드리지 마요.”연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뿐이었다.서현주가 다시 말했다.“연 대표님이 원한 대로 난 이미 했어요. 이제 대표님도 약속 지켜요. 이승주 선생님 건드리지 않겠다고. 이게 지금 내가 가진 유일한 바람이에요.”이렇게 말한 뒤, 잠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떨구고는 돌아섰다.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한밤이었다.예상 밖으로 엄진경은 아직 거실에 불을 켜둔 채 앉아 있었다.밝은 불빛 아래 서현주의 상처 자국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문 여는 소리에 그녀는 벌떡 일어나 외쳤다.“현주야, 돌아왔...”그러나 곧 눈가가 붉어지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이게 어떻게 된 거야? 누가 널 이렇게 만들었어? 왜 옷이 이 꼴이고 왜 온몸이 상처투성이야?”엄진경은 다급히 달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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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서현주는 낮게 말했다.“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냥 사람 하나 찾았을 뿐이에요.”이승주는 못 미더운 듯 계속 물었다.“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서현주는 탁자 모서리를 꼭 움켜쥔 채,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안 했어요. 선생님도 그냥 걱정 내려놓으세요. 전 잘 지내고 있으니까.”그가 몇 번 더 캐물었지만 끝내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통화를 끊고 난 뒤, 서현주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엄마, 늦었는데 이제 자요.”엄진경은 다급히 말했다.“그래도 먼저 상처부터 소독하고 자. 더 심해지면 어쩌려고.”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서현주는 담요를 끌어안고 엄진경에게 문을 열라고 했다.등을 돌린 채로 있었는데 곧 놀란 엄진경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연 대표 수행비서분 아니세요?”수행비서가 말했다.“연 대표님께서 보내신 약입니다. 현주 씨 드리라고 하셨습니다.”서현주는 소파에서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이번에 온 이는 아까 엘리시움으로 데려갔던 수행비서가 아니라 원칙대로 움직이는 다른 수행비서였다. 태도는 그저 무심했다.그는 약봉지를 엄진경에게 내밀며 담담하게 말했다.“받으시죠.”엄진경은 화가 치밀어 연지훈의 물건을 받기 싫었으나 집에 약이 없으니 망설여졌다.서현주는 시선을 거두며 조용히 말했다.“엄마, 받아요.”지금은 연지훈을 자극할 때가 아니었다.그는 손가락 하나로 자신과 이승주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이니 싫어도 맞춰야 했다.엄진경은 못마땅해하면서도 약봉지를 낚아채 문을 닫았다.“현주야, 어서 약 바르자.”하지만 서현주는 약봉지를 건네받자마자 옆으로 던져버렸다.놀란 엄진경이 멈춰 섰다.“왜 그래?”서현주는 담요를 움켜쥔 채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그 사람 물건은 쓰기 싫어요.”“엄마, 밑에 쓰레기통도 있고 약국도 있어요. 저거 버리고 약국에서 다시 사 와요.”이럴 때는 서현주의 말이 곧 기준이었다.엄진경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알았어, 그 사람 물건은 내가 버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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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수행비서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말을 마치고는 습관처럼 잠시 기다렸다. 보통은 윗사람이 먼저 전화를 끊기 때문이다.하지만 거의 반 분이 지나도 상대 쪽에서는 끊을 기미가 없었다.그는 어쩔 수 없이 말을 꺼냈다.“연 대표님, 혹시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잠시 침묵 끝에 연지훈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됐어, 지금 가서 직접 볼게.”수행비서는 순간 멍해졌다. 시계를 흘끗 보더니 급히 말했다.“지금이요? 벌써 자정이 다 되어 가는 데다, 댁에서 여기까지는 차로 반 시간이나 걸립니다. 내일 가시는 게 어떨까요?”연지훈의 목소리가 한층 무겁게 내려앉았다.“지금 당장.”결심이 묻어나는 말투에 수행비서는 곧장 수긍했다.“네, 바로 차량을 준비하겠습니다.”“지훈 씨!”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급하면서도 애교 섞인 여자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터져 나왔다.그에게는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요즘만 해도 시간이 있으면 연지훈은 늘 유이영을 데리고 회사를 오갔다.유이영이 귀국한 뒤로는 운진의 직원들 대부분이 이 ‘예비 사모님’을 다 알게 된 터였다.연지훈 곁에 붙어 다니며 수없이 들어온 목소리이니 틀릴 리가 없었다.유이영이었다.수행비서는 얼른 입을 다물고 연지훈과 유이영 둘만의 시간을 남겨두었다.멀어져 가는 듯한 연지훈의 목소리에는 살짝 온기가 묻어났다.“왜 그래?”이윽고 유이영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뒤이어 옷깃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지훈을 끌어안은 모양이었다.그녀는 애교 어린 투정을 부렸다.“지훈 씨, 나 지금 영화 보고 싶은데 같이 가 줄 거죠?”연지훈이 대답하기도 전에 유이영은 재촉하듯 말을 이어갔다.“지금 당장 가요. 며칠 뒤면 일 때문에 바빠서 시간도 없어요. 마침 상영 중인 영화가 있는데 다들 재밌다고 하더라고요. 나도 보고 싶어요.”“지훈 씨, 뭐든 내 말 들어준다 했잖아요? 아니면 지금 바빠요? 뭐가 나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비록 직접 듣는 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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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연채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서현주, 네가 이영 언니 망신 주려고 개교기념일에 표절을 폭로한 거 다 알아. 근데 그거 몰랐지? 의 원작자가 바로 이영 언니라는 거. 남 망신 주려다 결국 이영 언니한테 되레 맞은 꼴이잖아.”말이 끝나자마자 교실 안은 웃음소리와 조롱으로 가득 찼다.“이영 언니는 착하고 당당하고 학력도 좋고 인품도 훌륭해서 우리가 좋아하기도 바쁜데 괜히 질투심에 남 일에 끼어들다가 아무것도 못 건졌네. 하고 싶은 건 못 했지 오히려 소심하고 이상한 애라는 거만 들통났잖아.”“그러게. 게다가 세컨드라도 되려고 매달리다니 진짜 한심해. 남들이 이영 언니만 좋아하는 거 뻔히 보이는데 눈치가 없나 봐.”“제발 좀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영 언니랑은 비교조차 안 돼. 마음씨만 해도 언니의 백 분의 일도 안 되는구먼.”서현주는 고개를 숙인 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예전 같았으면 반드시 반박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힘조차 들이지 않았다.며칠 새 일어난 일들이 너무 많았다.그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자신과 연씨 가문, 그리고 연지훈 사이의 간극을.지금의 자신에게는 그들을 상대로 맞설 힘이 전혀 없다는 걸.그래서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사람들의 편견은 산만큼이나 높고 두터워서 웬만해서는 넘을 수가 없다.서현주는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펜을 들어 종이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곧 수업 종이 울렸다.첫 교시는 분명 생물 시간이었는데 교실로 들어온 건 국어 선생님이자 담임이었다.담임은 얼굴을 굳게 한 채, 겨드랑이에 낀 책을 탁 하고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순간 교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괜히 화풀이가 자기들에게 튈까 봐 학생들이 숨죽였다.담임은 냉랭하게 말했다.“최근 학교에서 일어난 일은 다들 알 거다. 이번 사건은 심각해. 우리 학교의 사회적 평판에 큰 타격을 줬어.”그 말을 하며 담임의 시선이 은근슬쩍 서현주 쪽을 스쳤다.학생들의 눈길도 자연스레 그녀에게 쏠리며 구경거리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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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하지만 아무도 예상치 못한 건, 그 결정을 들은 서현주가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는 것이다.학교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스스로 다른 반으로 옮겨달라고 했을 터였다.악의로 가득한 교실에 남아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수준이 떨어지는 반에 가는 편이 훨씬 낫다.적어도 거기에는 이런저런 잡음이 없을 테니까.학교의 이번 결정은 오히려 그녀가 바라던 바였기에 기꺼이 받아들였다.담임의 차가운 시선이 서현주를 향했다.“서현주, 너 의견 있어?”서현주는 이미 말없이 짐을 챙기고 있었다. 담임의 목소리가 들려와도 고개조차 들지 않고 손만 바삐 움직였다.“아니요. 지금 바로 옮기겠습니다.”담임은 미간을 찌푸렸다. 고개를 들지 않고 대꾸하는 걸 보고 학교 결정을 불만스러워하며 괜히 심술을 부리는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담임은 목소리를 굳혔다.“서현주, 이 정도 결정은 상당히 선처해준 거야. 더 이상 학교에 반항하지 말고 얌전히 옮겨.”서현주는 담담하게 받아쳤다.“알겠습니다.”하지만 그녀의 태연한 대답은 담임의 귀에 고집스러운 반항처럼 들렸다.담임의 인상이 더 굳어졌다.“서현주, 말 잘 들어.”서현주는 오히려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이미 짐을 다 챙겼는데 왜 이렇게 말을 질질 늘이는 건지.그녀는 곧장 일어나 가방을 메고 품에 책을 안아 들었다.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담임이나 같은 반 학생들보다도 더 서둘러 교실을 나가려 했다.하여 담임도 학생들도 어리둥절했다.‘이건 뭔가 이상한데? 울면서 제발 안 가겠다고 매달릴 거라 생각했는데 어쩜 이렇게 담담하고 깔끔할 수 있지?’학생들 마음속에 묘한 위화감이 번졌다.언제나 자기들보다 한참 아래라고 여겨왔던 애, 자신들에게 잘 보여야만 살 수 있다고 여겼던 애가 어느 날 갑자기 그들 앞을 성큼성큼 걸어가며 아무 미련도 없이 떠나버린 듯한 느낌이었다.마치 서현주는 애초에 그들을 개의치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그들은 도무지 적응이 안 됐다. 왜 서현주가 울며불며 매달리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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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강혜인은 비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서현주 앞에 다가왔다.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며 비아냥 섞인 시선을 보냈다.“그래도 깡다구는 좀 있네.”서현주는 태연하게 책더미를 안고 그녀의 말을 아예 무시한 채 곁을 스쳐 지나갔다.그러자 얼굴빛이 어두워지며 강혜인이 서현주의 팔을 붙잡았다.“야, 내가 말하고 있잖아.”“무슨 할 말이 더 있다고 그래? 쟤 서현주잖아, 다들 그러는데...”그 순간, 서현주가 고개를 홱 돌려 그 남학생을 똑바로 바라봤다.눈빛은 차분했지만 서늘했고 남학생은 얼굴빛이 점점 굳어가다 끝내는 입을 다물고 시선을 피했다.강혜인이 다시 한마디 하려는 순간, 수업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앞문으로 들어왔다.강혜인은 결국 서현주를 한 번 노려보는 걸로 멈추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서현주는 시선을 거두고 교실을 훑어보다가 맨 뒤 구석에 비어 있는 자리 하나를 발견했다.짝도 없는 외딴 책상이었는데 그 자리가 마음에 들었다.그녀가 통로를 지나 걸어가자 주변 학생들은 슬그머니 몸을 빼며 최대한 거리를 두었다.서현주는 전혀 놀랍지 않다는 듯 조용히 책을 정리했다.교단 위의 선생님은 그녀 쪽을 흘깃 보고는 곧 시선을 거두었다.학생들이 여전히 떠들고 장난쳐도 신경 쓰지 않고 건성건성 수업을 이어갔다.서현주도 수업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그녀는 강혜인의 뒷모습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지금은 아무도, 심지어 연지훈조차 이 여자가 훗날 그와 재계에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될 거라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다.만약 환생하지 않았다면 서현주 본인조차 강혜인이 어떤 인물이 될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날카롭고 명쾌한 사업 감각, 빠르고 단호한 수완...단 몇 년 만에 연지훈조차 무시할 수 없는 IT 회사를 일으킨 여자가 바로 강혜인이었다.서현주는 안타까움을 느꼈다.지난 생의 싸움 끝에 강혜인은 결국 연지훈의 집요한 압박에 무너져 회사를 강제로 빼앗겼다.하지만 강혜인은 잡을 때는 잡고 놓을 땐 놓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연지훈의 팀에 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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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서현주가 불쑥 웃음을 터뜨렸다.날카롭고 예리했던 강혜인이 고등학생 시절에는 이런 모습이라니, 의외였지만 꽤 재미있었다.다음 수업도 조금 전 그 선생님의 과목이었다.하여 서현주는 여전히 고개를 들 생각이 없었다.그런데 여기저기서 학생들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선생님이 바뀌었어요?”“선생님, 교실 잘못 들어오신 거 아니에요?”“저 선생님 청아대반에서 수업하시던 분 아니야?”그제야 고개를 들어 보니 정말로 이전 반에서 자신에게 화학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다.순간 이마가 찌푸려졌다.그 선생님은 수업을 아주 잘했고 수많은 수능 수석을 배출해온 인물이었다.학교에서도 항상 우수 반에만 배정하던, 절대 이런 반에 보낼 리 없는 사람이었다.선생님은 굳은 얼굴로 책을 탁탁 치며 무겁게 말했다.“조용히 해. 이건 학교 결정이야. 앞으로 화학은 내가 맡아. 물론 청아대반도 계속 맡을 거야. 내 수업에서는 떠들지 말고 자지 마라, 목소리 크게 내지도 말고. 수업 태도는 철저히 지켜야 한다.”“내 수업은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돼. 하지만 안 듣는 학생은 성적을 보여줘야 해. 성적 못 내면 미안하지만 부모님 모셔와라.”“내가 한 말 전부 명심해. 걸리면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그 말이 끝나자 교실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졸업이나 대충할 거라 생각했던 아이들에게 이건 단비가 아니라 벼락이었다.몇몇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 서현주를 노려봤다.서현주의 얼굴은 굳어졌다.‘아마 연지훈이 한 짓이겠지.’학교가 제 발로 이런 우수 교사를 이 반에 보낼 리가 없었다.학교의 결정이라기보다는 곧바로 연지훈의 결정이라 해야 맞았다.그녀가 이곳으로 오자 선생님들까지 따라온 셈이었다.누구라도 그 속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예상대로 이 선생님의 수업은 탁월했다.새로운 내용을 가르치는데도 이미 3차 복습에 들어갔던 서현주조차 고개를 들어 집중하게 될 정도였다.하루 수업이 끝날 즈음, 아이들은 이미 지쳐 있었다.청아대반에 있던 모든 선생님들이 통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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