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891 - Chapitre 900

1099

제891화

엄진경은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눈을 크게 뜬 채 멍해 있는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조카가 그런 일들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재물을 노리고 사람의 목숨을 위협한 걸로 유이영의 죄악을 다 설명하기에는 부족했다. 게다가 유이영이 해친 사람 중에는 엄진경이 20여 년 전부터 손수 키운 서현주까지 포함돼 있었다.그녀가 그렇게 애타게 찾아다녔던 조카가 그녀의 딸에게 상처를 입혔다니.“그게 다 진짜야?”엄진경은 숨이 막히는 듯 쉰 목소리로 물었다.“정말 사실이냐고?”서현주는 담담하게 말했다.“경찰서 공식 통보 문서에 다 적혀 있어요. 엄마가 원하시면 집에 가서 제가 직접 찾아드릴게요.”“정말로 이영이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이지...”엄진경은 힘이 풀린 듯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녀의 얼굴에 슬픔인지, 충격인지, 아니면 그 모든 감정이 뒤섞인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 떠올랐다.“그럼 이영이는 언제 세상을 떠난 거야?”서현주가 대답했다.“경찰이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고 체포하러 간 그날이었어요. 유이영 씨는 한 어린아이를 구하려다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살지 못했어요.”엄진경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아이를 구했다고? 누구를?”서현주는 당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말했다.“유이영 씨가 알던 어떤 아이가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었대요. 그걸 보고 유이영 씨가 달려가서 아이는 살렸는데 본인은 사고를 당한 거예요.”서현주는 유이영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죽음을 왜곡하거나 일부러 더 나쁘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사실은 사실이니까.엄진경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바보, 정말 바보 같은 아이야. 남은 살리고 자기는 그렇게 가버리다니...”서현주는 엄진경의 곁에 서서 그녀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음을 억지로 눌러 삼키는 모습을 지켜봤다.“다 내 잘못이야... 내가 그 애를 키웠다면, 내가 그 애를 데리고 있었으면 그렇게 나쁘게 자라지 않았을 텐데. 그럼 이렇
Read More

제892화

“그래도 꼭 조심하세요. 진짜로 경비원한테 내쫓기기라도 하시면 안 돼요. 나이도 있으신데 몸 다치면 힘들잖아요.”서현주는 돌아서서 엄진경을 흘끗 봤다.엄진경은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서현주가 말했다.“시간이 늦었으니까 씻고 푹 쉬세요. 그 일은 내일 다시 생각해 보시고요. 전 방에 들어갈게요.”엄진경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그 후 며칠 동안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말수도 확 줄었고 예전처럼 친구들과 나가 놀지도 않았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 앉아 멍하니 TV만 바라보며 보냈다.하지만 서현주가 보기에는 드라마가 엄진경의 눈에 들어오는 것 같지도 않았다. 엄진경은 화면을 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전혀 다른 데 가 있는 게 분명했다.서현주는 그녀의 곁에 계속 있어 주고 싶었지만 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흘간 출장을 가야 했다.짐을 싸면서 그녀는 엄진경에게 다시 한번 당부했다.“만약 유이영 씨의 부모님을 찾아갈 생각이 들면 꼭 저한테 먼저 말하세요. 제가 같이 갈 사람 붙여줄게요. 괜히 엄마 혼자 몰래 갔다가 괴롭힘만 당하고 말 한마디 못 하지 마시고요.”엄진경은 작게 ‘응’ 하고 대답했다.“아직 갈지 말지 못 정했어.”서현주는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못 정하셨으면 계속 생각해 보세요. 아무튼 함부로 돌아다니지는 마세요. 저 사흘 뒤에 돌아와요.”문을 나서기 직전에 그녀는 다시 한번 엄진경을 돌아봤다. 고개를 푹 숙이고 풀이 죽은 그 모습을 보니,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서현주는 몇 마디를 더 덧붙이고 나서야 집을 나섰다.이번에 그녀는 무인 자율주행 관련 입찰 프로젝트 때문에 출장 가는 거였다.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성화 그룹이 아성시에서 업계 교류회를 열었고 그 자리에서 자율주행 사업과 관련한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었다.서현주는 성화 그룹 사람들과 미리 관계를 트고 정보도 떠볼 생각으로 강혜인과 몇몇 임원, 비서를 함께 데리고 갔다.도착하자마자 성화 그룹 측 직원이 그녀의 캐리어를 받고 곧장 리조
Read More

제893화

서현주가 담담하게 말했다.“이따가 프로젝트 책임자도 만날 텐데 지금처럼 겁먹은 티를 내면 안 돼.”그러자 강혜인은 괜히 목을 빳빳이 세우며 말했다.“나 강해질 거야.”차는 먼저 성화 그룹에서 배정해 준 별장 앞에서 멈췄다. 그 별장은 3층짜리 서양식 건물이었는데 외벽의 타일부터 시작해 모든 디테일에 고양이 요소가 가득했다. 마당의 작은 분수, 거실의 소파, 스탠드 조명까지 전부 고양이 테마라서 강혜인은 마음이 불편했다.“귀엽긴 한데 무서워.”강혜인이 말했다.일행은 재빨리 방을 정하고 캐리어를 든 채 위층으로 올라갔다.강혜인은 속으로 잔뜩 경계한 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걸었다.그러자 서현주가 못마땅한 듯 말했다.“그만해. 아까 너도 들었잖아, 네가 싫어하면 고양이를 안 들인다고.”강혜인은 발뒤꿈치를 든 채 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니, 넌 몰라. 고양이는 몸이 액체 같이 유연해서 어디든 들어올 수 있어.”서현주는 말문이 막혀 한숨을 쉬더니 다가가 강혜인의 팔을 잡고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빨리 들어가.”짐 정리를 마친 뒤 일행은 다시 차를 타고 집합 장소로 이동했다.집합 장소는 단지 안에 있는 한 리조트였는데 이곳은 장식이 더 과감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게 고양이 모양이었고 장식품뿐만 아니라 실제 고양이들이 바닥을 누비며 사람들에게 다가와 몸을 비비고 쓰다듬어 달라며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강혜인은 거의 혼이 빠진 상태로 구석에 숨어 겉보기에는 멍하고 귀엽지만 실은 그런 미모로 인간을 현혹하는 ‘사악한’ 고양이 무리를 극도로 경계하며 지켜보고 있었다.아직 담당자가 도착하지 않았고 서현주는 발치에 앉아 있는 오렌지색 고양이의 유혹을 도저히 이기지 못해 쪼그려 앉아 그 녀석을 품에 안고 쓰다듬기 시작했다.이때 옆에 있는 직원이 부드럽게 말했다.“이곳의 고양이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충분한 사료를 먹고 있습니다. 건강 관리를 위해 외부에서 따로 먹이를 주는 건 금지되어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서현주는 고개를
Read More

제894화

서현주는 어디까지나 업계 인맥을 사귀자는 마음에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대답했다.“고양이를 좋아하시면 여기서 많이 보세요. 돌아가면 이렇게 다양한 품종을 한꺼번에 볼 기회가 없잖아요.”잭스는 그 말을 듣고도 고양이는 보지 않고 서현주를 뚫어지게 바라봤다.“서현주 씨는 제가 본 거진국 여자 중에서 가장 아름다워요.”그 말에 서현주는 고양이를 쓰다듬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는 예의는 지키되 거리를 두려고 미소를 지었다.“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그러나 잭스는 묘하게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정말이에요, 거짓말 아니에요. 서현주 씨가 여기 들어왔을 때부터 계속 보고 있었어요. 서현주 씨는 정말... 눈부셔요.”서현주는 여전히 같은 말만 반복했다.“감사합니다.”잭스는 고개를 기울이며 피식 웃었다.“지금 부끄러워하시는 건가요?”서현주는 말문이 막혔다.“아...”잭스는 손을 뻗어 고양이의 꼬리를 살짝 만지며 말했다.“거진국 여자들은 원래 이렇게 수줍음이 많죠. 이해해요. 저 수줍음이 많은 거진국 여자들을 많이 만나봤거든요.”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래도 결국에는 다들 굉장히 열정적으로 바뀌더라고요.”서현주는 고양이를 안은 채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이따가 성화 그룹 쪽 사람들이 오면 어디서 회의를 하나요?”잭스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아마 3층에서 하겠죠.”그의 시선이 서현주의 얼굴에서 손으로 내려갔다. 잭스는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살짝 잡았다.서현주는 아무 반응도 못 하다가 잭스의 입술이 점점 그녀의 손등과 가까워지는 걸 보고서야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그녀가 손을 빼려 했지만 잭스는 조금 더 힘을 주어 잡은 채 그녀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서현주는 손등이 찌릿해 곧바로 손을 빼냈다.잭스가 웃으며 말했다.“긴장하지 마세요, 서현주 씨. 이건 우리나라에서 친근함을 표현하는 인사예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요.”서현주는
Read More

제895화

그때 강혜인이 갑자기 서현주 뒤쪽 한 방향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았고 눈이 서서히 커졌다.서현주는 그걸 알아채고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거기에 말끔한 정장 차림의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길게 뻗은 다리, 뒤로 깔끔하게 넘긴 머리카락, 그 아래로 드러난 잘생긴 이마와 튀어나온 눈썹 뼈, 살짝 다문 얇은 입술. 그의 뒤에 여러 사람이 붙어 있었고 입구 쪽에서 여유로운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그 남자는 바로 연지훈이었다.강혜인이 미간을 찌푸렸다.“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어?”서현주가 담담히 말했다.“연성 그룹이 몇 년 전에 이미 IT 시장으로 범위를 확장했잖아. 그러니 연지훈 씨가 여기 온 게 이상할 건 없지.”그녀는 시선을 거두려 했지만 그 순간 연지훈이 고개를 살짝 돌려 이쪽을 봤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마침 맞닿았다.서현주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선을 거두며 강혜인에게 말했다.“가자.”그러자 강혜인은 벽을 짚고 있던 손을 바로 서현주의 팔로 옮겼다.“나 좀 지켜줘. 고양이가 가까이 못 오게.”일행이 회의실에 도착한 뒤 성화 그룹에서 배정해 준 자리에 앉아서야 서현주는 황태민과 남아현도 있는 걸 발견했다. 두 사람은 바로 그녀의 앞자리에 앉았다.서현주는 연지훈의 자리를 찾았다. 연지훈은 황태민과 같은 줄의 그리 멀지 않은 자리에 앉아 있었고 중간에 사람이 끼어 있어 서로 눈에 잘 띄지 않았다.회의실 안에 고양이가 없어 강혜인은 한껏 안도했다.“아, 방금 진짜 무서웠어. 다행히 여긴 고양이가 없네.”서현주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좀 똑바로 앉아. 곧 회의 시작해.”그러자 강혜인은 허리를 곧게 폈다.“그래, 회사 이미지가 중요하지.”회의는 성화 그룹 측 책임자가 무인 자율주행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서현주는 이미 입찰 제안서를 통해 대부분 내용을 파악해 점점 집중력이 떨어졌다.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레 앞자리에 앉은 두 사람에게 향했고 특히 황태민 옆의 여자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그 여자는 체형, 뒷
Read More

제896화

리조트 안에 있는 바는 조용한 편이었는데 음악이 부드럽게 흘렀고 세련되며 분위기도 과하지 않고 딱 좋았다.바 곳곳에 ‘야옹’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이 있었는데 목에 검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안쪽에서 일하는 직원들 역시 단정한 차림에 온화하고 예의 바른 미소를 띠고 손님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꽤 괜찮은 장소라는 인상을 주었다.서현주가 도착했을 때 바 안에 이미 사람들이 어느 정도 차 있었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조용하고 차분했다.황태민과 남아현은 구석 자리에 앉았고 서현주는 바 전체를 살펴보기 쉬운 위치를 골라 앞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성화 그룹의 책임자는 이미 자신들이 이곳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말해 둔 상태였다.서현주는 도수가 낮은 술을 한 잔 주문했고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홀짝거렸다.현재로서는 남아현이 정말로 유이영이 맞는지 확인하려면 친자 확인 검사가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는데 남아현과 유이영 친부모의 친자 관계를 확인하거나 남아현과 연유준의 친자 관계를 확인하면 되었다.생각이 정리된 지금, 서현주가 해야 할 일은 남아현에게서 친자 확인 검사에 사용할 수 있는 머리카락이나 혈액을 확보하는 것이었다.“서현주 씨도 여기 있었네요?”그런데 이때 잭스의 느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서현주는 고개를 살짝 돌려 조금 전에 만났던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잘생긴 남자가 술잔을 들고 자신의 옆자리에 앉는 모습을 보았다.“안녕하세요.”서현주는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잭스는 등을 바 테이블에 기댄 채 와인잔을 손에 쥐고 그녀를 향해 살짝 흔들며 말했다.“거진어로 말하면 우리 두 사람, 정말 인연이 깊네요. 여기서 다시 마주쳤잖아요.”서현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여기에 아까 회의 때 봤던 대부분 사람들이 다 있잖아요.”잭스는 피식 웃었다.“그래도 난 들어오자마자 서현주 씨가 가장 먼저 보였어요. 제 눈에 서현주 씨 말고는 아무도 안 들어오더라고요. 이런 게 바로 인연이죠
Read More

제897화

서현주는 잭스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잭스는 고개를 숙여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나랑 놀 거예요, 말 거예요? 내가 확실히 즐겁게 해줄게요.”서현주는 당장이라도 술을 그의 얼굴에 끼얹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 채 다시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잭스 씨, 저는 분명히 같이 놀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더 이상 저를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그녀의 거절은 단호했고 밀당 따위는 없었다.잭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지만 그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왜요? 내가 마음에 안 들어요? 아니면 내가 무슨 실수 했어요?”서현주는 점점 짜증이 났다.‘거진어를 할 줄 알면서 내 말은 못 알아듣는 건가?’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가 멈칫했다.서현주는 연지훈과 눈이 마주쳤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저 남자 친구 있다고 말했잖아요.”잭스는 두 손을 벌리며 몇 걸음 더 다가왔다.“그래서 뭐요? 나도 여자 친구 있어요. 그래도 우리끼리 재미있게 놀 수 있잖아요. 현주 씨 남자 친구한테 말 안 하면 되죠. 남자 친구 아닌 다른 남자랑 노는 게 그렇게 싫어요? 평생 한 남자만 바라보고 살 거예요? 그러면 재미없어요.”그 말에 서현주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고 그녀는 술잔을 움켜쥐었다.“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마요. 전 분명히 싫다고 했어요.”그녀는 술을 끼얹을 듯한 자세를 취했고 잭스는 곧바로 항복하듯 두 손을 들며 뒤로 물러섰다.“알겠어요, 알겠어요. 가만히 있을게요. 그러니까 현주 씨도 흥분하지 말고 술 뿌리지 마요.”서현주는 그가 몇 걸음 뒤로 물러선 걸 확인한 뒤에야 천천히 잔을 내렸다.그런데 이때 잭스는 갑자기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더니 갑자기 앞으로 달려들어 술잔을 쥔 그녀의 손을 붙잡고 몸을 밀착시켰다.서현주는 바로 몸부림쳤고 잔 안의 술이 흔들리다가 쏟아졌다. 그녀는 이를 악문 채 소리쳤다.“잭스 씨, 손 놔요!”잭스의 힘이 워낙 세서 서현주는 벗어날 수가 없었다. 잭스는 입꼬리를 비틀어
Read More

제898화

잭스는 주변에서 쏟아지는 놀람과 의심, 노골적인 혐오가 섞인 시선을 느끼자 참을 수 없다는 듯 이를 악물고 서현주와 연지훈을 한 번 노려본 뒤 돌아서서 빠르게 걸어갔다.그러나 서현주의 맑은 눈동자에 아직 분노가 채 가시지 않았다. 그녀는 목을 가다듬고 연지훈에게 말했다.“고마워요.”연지훈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고맙긴.”서현주를 바라보는 그의 까만 눈동자 안에 마치 폭풍이 잠긴 듯했다.서현주는 괜히 불편해져 슬쩍 눈을 피했다.어쨌든 연지훈이 그녀를 도와준 건 사실이니 감사의 뜻은 전해야 했다. 서현주는 바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제가 술 한잔 살게요.”그녀의 뒤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연지훈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래.”서현주는 바텐더 쪽으로 턱짓하며 말했다.“원하시는 걸 직접 말씀하시거나 추천받으셔도 돼요.”바 안에 흐르는 잔잔한 음악 덕분에 그녀의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았고 다시 술을 음미할 여유도 생겼다.조금 전 잭스와의 실랑이는 바로 이 근처에서 벌어졌고 바텐더는 그 장면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지만 선뜻 나서지는 못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재력이나 배경이 있는 자들이었고 그저 바텐더에 불과한 자신이 괜히 나섰다가는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그는 상황이 끝난 뒤에야 조심스럽게 피해자인 서현주에게 물었다.“괜찮으세요?”서현주는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대답했다.바텐더는 의롭게 나선 연지훈에게 이 바에서 잘 나가는 술을 몇 가지 추천해 주었고 존경의 의미로 돈을 받지 않으려 했다.하지만 연지훈은 그가 추천한 술 대신 서현주가 들고 있는 잔을 가리키며 말했다.“이분이 마시는 것과 같은 걸로 주세요.”바텐더는 남자를 한 번 보고 여자를 한 번 보더니 상황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칵테일을 제조하러 갔다.바텐더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서현주와 연지훈 사이의 분위기는 묘하게 굳어 있었다. 서현주는 연지훈이 자신을 도와준 데 대한 호의로 먼저 입을 열어 어색함을 깼다.“오랜만이
Read More

제899화

그런데 정작 연지훈 본인은 전혀 농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서현주는 곧바로 의자에서 내려와 서서 말했다.“연 대표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되네요.”연지훈은 감성 지수가 꽝인 사람 같았고, 아니면 애초에 다른 사람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서 그런 걸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는 몹시 독단적인 사람이었다.연지훈이 말했다.“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고 싶어.”서현주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고 당장 그의 얼굴에 술을 몽땅 끼얹고 싶었다.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장난하지 마세요. 전혀 웃기지 않아요.”연지훈은 몇 초 동안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 장난친 거 아니야.”서현주는 몇 번이나 심호흡한 뒤에야 몸속에서 치솟는 충동을 겨우 눌렀다.조금 전에 연지훈이 난감한 상황에서 그녀를 구해줬었기에 서현주는 그를 위해 최소한의 체면은 지켜줄 수 있었다.서현주는 굳은 표정으로 연지훈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만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런데 뒤에서 연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화났어?”화가 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그의 목소리를 듣자 서현주는 걸음을 더 빨리 재촉했다.그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여유조차 없어서 계단을 이용했고 발걸음이 빨랐다.리조트 1층 로비에 도착해 그곳에서 돌아다니며 ‘야옹’거리는 작은 고양이들을 보자 그제야 서현주의 가슴속에서 요동치던 분노가 조금씩 가라앉았다.서현주는 잠시 멈춰 서서 머릿속을 비웠다. 그러다 그녀의 발치에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 계속 몸을 부비는 바람에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여기에 더 이상 머무르면 안 되었다. 연지훈과 다시 마주치게 될 수 있으니까.리조트 단지가 워낙 넓어서 이동하려면 반드시 구역 내 관광차를 이용해야 했다. 서현주는 직원에게 차를 불러서 배정받은 리조트까지 데려다 달라고 요청했다.잠시 후 어스름이 천천히 깔려 왔다. 관광차는 사방이 트인 구조라 밤바람이 그대로 서현주의 이마에 스쳤고 그 덕분에 그녀는 잠시나마 조금 차분해질 수 있었다.서현주는
Read More

제900화

서현주는 연지훈이 그런 의도로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도저히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고 당장 돌아가 그의 뺨을 몇 대 후려치고 싶어졌다.이번만큼은 다시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연지훈이 조금 잘해준다고 마음이 흔들려 다시 돌아가는, 예전처럼 열 번 찍어도 돌아보지 않는 냉담한 그 앞에 스스로 얼굴을 들이미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잠시 후 관광차는 리조트 앞에서 멈춰 섰다. 강혜인은 안에서 쉬고 있었고 리조트 안의 불은 켜져 있었다.서현주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실에서 누군가가 깜짝 놀란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그녀는 어이없고도 피곤한 표정으로 현관에 멈춰 서서 쿠션을 무기처럼 들고 있는 강혜인을 바라보며 말했다.“나야.”강혜인은 그녀의 발 주변을 유심히 살피다가 몰래 리조트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털 뭉치’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천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밖에 있는 고양이가 사람으로 변해서 문을 여는 줄 알았어.”강혜인은 쿠션을 소파 위로 던지며 말했다.“밖에서 좀 놀다 온다더니, 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어?”서현주는 소파에 몸을 던지듯 앉았다.“놀기 싫어져서 그냥 돌아왔어.”강혜인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살피더니 가까이 다가와 서현주의 몸에 밴 냄새를 맡았다.“너 왜 그래? 안색도 안 좋아 보이고 술 냄새도 엄청 나.”서현주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을 내려다봤는데 과연 술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걸 발견했다.그녀가 마신 술은 도수가 낮아서 이렇게 진한 알코올 냄새가 날 리 없었다. 아마 잭스와 실랑이를 벌일 때 옷에 술이 많이 쏟아져서 냄새가 밴 것 같았다.서현주는 TV화면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바에 갔다가 네가 오늘 봤던 그 잘생긴 외국인 남자를 만났어. 그런데 그 사람,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더라고. 나한테 남자 친구가 있어도 상관없다면서 자기랑 놀아달래.”그 말을 듣고 강혜인은 눈을 크게 떴다.“뭐? 그 남자가 그렇게 뻔뻔하게 굴었어? 그래서?”서현주가 이어서
Read More
Dernier
1
...
8889909192
...
110
Scanner le code pour lire sur l'application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