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의 모든 챕터: 챕터 141 - 챕터 150

504 챕터

제141화

하지훈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왜?”“그냥 다음 주에 해.”성유준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펜에 관한 일은 김현우에게 신세를 진 것이나 다름없기에 어쩔 수 없이 체면을 세워주긴 해야 한다.하지훈이 말했다.“아마 주율천도 올 거야.”“괜찮아.”성유준은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균일하고 길게 이어지는 호흡 소리를 듣고선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눈동자로 맞은편 집 쪽을 한 번 흘끗 바라보았다.이제 온채아와 문 하나만을 두고 있다.하지훈은 그의 말 속에 숨어있는 뜻을 눈치채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주율천이 네 마음을 읽지 않을까?”말을 내뱉고 나서야 그 질문이 좀 불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성유준은 두려운 게 없는 사람이니까.아니나 다를까 성유준은 그 질문에 관심도 보이지 않고 손목시계를 한번 쳐다본 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할 말 다했으면 이만 가지?”하지훈의 입은 멈출 줄 몰랐다.“오늘 밤에 약속 있었어?”성유준은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욕실로 들어갔다.미리 말을 안 했다는 게 더 의심스러웠던 하지훈은 코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코코야, 삼촌한테 얘기해 봐. 네 아빠 뭐 하러 가는 거야?”하지훈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성유준에게 내심 서운함을 느꼈다.코코도 사람을 가렸다. 하지훈이 손을 뻗자 머리를 밀어내고 한 번 털더니 유유히 창가에 놓인 쿠션에 누웠다.“지금 뭐하는...”성유준이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하지훈은 마침내 이상함을 깨달았다.“어떻게 한 거야? 벌써 채아 씨랑 데이트 약속을 잡은 거야?”평소에는 외모에 의존해 고급 정장과 세련된 헤어스타일로 완벽하게 차려입은 모습이었는데 오늘은 츄리닝 차림에 머리는 약간 헝클어졌지만 오히려 신경을 더 쓴 느낌이었다. 심지어 시계도 특별히 다른 걸로 바꿨다.서른이 된 남자가 마치 대학생으로 변신한 모습이었다.온채아와 비슷한 연령대로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모양이다.성유준은 하지훈을 힐끗 보며 말했다.“누가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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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화

성유준은 입이 아주 독했다.정신을 차린 온채아는 머리를 흔들며 침대 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그 위에 찍힌 통화 시간 7시간을 보고 잠시 멍해졌으나 이내 곧 잠들기 전에 했던 약속을 기억해 냈다.온채아는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너무 깊이 잠들었어요. 잠깐만 기다려요.”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고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었다.문을 열고 나섰을 땐 성유준은 지루한 듯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온채아를 보고서야 몸을 천천히 일으키더니 평소처럼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돈 아까워서 피하는 줄 알았네.”온채아는 코트를 입으며 밖으로 나갔다.“정장 한 벌 살 돈은 있어요,”“그럼 가자.”성유준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동안 온채아는 이미 외투를 입고 그의 옆에 서서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마치 부부처럼.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그 안에는 남녀가 타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품에 기대어 있고 남자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고 있다가 누군가 들어오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그들은 분명 신혼부부 같았다.먼저 엘리베이터를 탄 성유준은 몸을 돌리며 온채아의 가느다란 허리를 훑어봤다.때마침 안에 타고 있던 여자가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온채아에게 말을 건넸다.“저희는 위층에 살아요. 오늘 처음 뵌 것 같은데 남편분이랑 이제 막 이사 오신 건가요?”눈동자에 즐거움이 스친 성유준과 달리 온채아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아니요. 저희는 이웃이에요. 제 남편은 다른 곳에 있어요.”“옷 사준다며? 어느 백화점으로 갈까?”온채아가 이제 막 해명을 끝낸 찰나 성유준이 늘 그렇듯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그 말에 당황한 온채아는 본능적으로 성유준을 바라봤고 아니나 다를까 부부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분명히 그녀와 성유준의 관계는 이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더 이상 깨끗하지 않게 되었다.처음엔 그들이 그냥 평범한 부부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결혼한 유부녀가 남편이 아닌 남자 이웃과 바람을 피운다고 여겨졌다.온채아는 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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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화

온채아는 어두운 색의 스트라이프 정장을 들고 성유준에게 다가갔다.“이거 한번 입어 볼래요? 제 생각엔 꽤 잘 어울릴 것 같아요.”온채아가 그 말을 했을 때 성유준의 싸늘한 기운은 조금 누그러졌고 심지어 흥미가 생긴 듯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그 모습에 직원은 자신의 추측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신했다.두 사람은 마치 정략 결혼을 하여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신혼부부처럼 보였다.‘그럼 주 대표님은...’‘됐어. 어차피 좋은 사람도 아니었잖아. 남편이 쓰레기 같은 짓을 했으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남자라도 많이 만나서 위로받았으면 좋겠다.’성유준은 거절하지 않았다.“그래. 입어볼게.”그는 어깨가 넓고 허리가 잘록한 역삼각형 몸매에 훤칠한 키와 잘생긴 얼굴을 갖고 있어 어떤 정장을 입든 전부 어울렸고 옷보다는 모델에 더 눈이 가는 스타일이었다.온채아는 그제야 이해했다. 왜 돈많은 재벌가 사모님들이 어린 남자를 만나며 돈을 아끼지 않는지.어마무시한 금액에 결제할 때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그러나 이를 알 리가 없었던 성유준은 가죽 벨트를 하나 들고 와서 말했다.“이것도 같이 계산해 주세요. 결제는 이분이 하실 거예요.”온채아는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저는 분명히 정장 한 벌만 사준다고 했어요.”그러자 성유준은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직원에게 물었다.“정장 살 땐 보통 벨트도 같이 사죠?”훌륭한 외모에 더불어 그 압박감은 대단했다.성유준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기에 직원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부분 그렇습니다.”온채아는 체념하며 결국 카드를 건넸다.매장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저녁 먹으러 음식점 코너로 걸음을 옮겼고 그 사이 수없는 여성들이 몰래 그들을 힐끔힐끔 쳐다봤다.열 명 중 여덟 명은 성유준을 훔쳐보는 듯했다.온채아는 그제야 성유준의 옷차림을 확인했다. 편한 츄리닝을 입고 있는 모습은 마치 캠퍼스의 인기 남학생처럼 보였고 평소 그가 보여주던 딱딱한 이미지와는 상반되었다.어찌나 매력적인지 번호를 물어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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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화

“내가 왜 당신이랑 같이 가야 되죠?”공공장소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으니 온채아는 너무 수치스러워 주율천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제발 정신 차리고 이성적으로 생각 좀 해요.”주율천은 눈살을 찌푸렸다.“내가 이성적이지 않다고?”이유를 모르겠지만 온채아가 그렇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오늘따라 심서정이 쇼핑가자며 닦달했고 주율천은 별수 없이 평소처럼 그녀와 함께 나왔을 뿐이었다.그런데 이런 장면을 목격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아내인 온채아가 직장에서 다른 남자와 접점이 있는 건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출근이 아닌 개인 시간에도 누군가와 가까이 지내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불안해져서 참을 수 없었다.온채아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로남불이 이성적이라고 생각해요?”자기는 단둘이 심서정과 함께 쇼핑하면서 온채아가 다른 남자와 밥을 먹는 건 불편하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주율천은 더 이상 논리적인 말이 통하지 않았다.“서정이는 이미 이사했어. 그러니까 집으로 돌아와. 짐 정리하는 거 도와줄 테니까 우선 같이 경원 아파트로 가자.”“싫어요.”“채아야, 이건 네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주율천은 온채아의 손목을 잡고 엘리베이터로 밀어 넣으려 했다.“주 대표.”어디선가 무게감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속에 싸늘함도 담겨 있었다.“잠깐 통화하고 돌아오니까 동생이 사라졌더라고? 어디 갔나 싶었는데 여기로 끌려왔네?”표정이 일그러진 주율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온채아를 바라봤다.“두 사람이 같이 밥 먹고 있었던 거야?”“응.”성유준이 보는 앞에서 이런 굴욕을 당하니 더욱 수치심이 밀려와 강하게 주율천의 손을 뿌리쳤다.부드럽고 새하얀 피부는 그 잠깐 사이에 시뻘건 자국이 생겼다.표정이 어두워진 성유준이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마음대로 밥 먹을 자유도 없는 거야?”“그건 아니야.”주율천은 감정을 가라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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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화

여승운은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좋아하지 않았다.그래서 생일은 온채아만 불렀고 최근 두 해 동안 강태무가 더해졌다.아들이 해외에 있어 온채아는 그들에게는 자식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우리 그이가 들으면 엄청 좋아하겠네.”손정원은 착하고 예쁜 온채아를 매우 아꼈다.“우리 지금 마트에서 장보는 중인데 먹고 싶은 거 있니?”온채아는 해맑게 답했다.“오늘은 선생님 생신이라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걸 먹는 게 좋을 것 같아요.”전화 너머의 손정원은 웃으며 여승운에게 말했다.“당신 제자 하나는 잘 뒀네요. 입에서 꿀이 떨어진다니까?”그러고선 온채아가 소금구이 새우를 좋아하는 걸 기억하고 해산물 코너로 가며 말했다.“알았어. 그럼 퇴근 후에 태무랑 같이 와.”“네, 그럴게요.”온채아는 예의 바르게 답하고 전화를 끊고선 진료를 이어갔다.강태무는 회의 때문에 자리를 비웠고 온채아는 차에 앉아 히터를 틀어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최근에 약물 연구 프로젝트 때문에 자주 밤샘을 하다 보니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자 졸음도 함께 밀려왔다.강태무는 아직 20분 정도 더 걸린다고 했고 온채아는 그동안 잠깐 눈을 붙이기로 했다.그런데 자세를 조정하고 눈을 감으려는 순간 누군가 차창을 두드렸다.온채아는 실눈을 뜨고 차 밖에 서 있는 심서정을 보고선 창문을 내리며 피곤한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심서정은 화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율천이한테 무슨 얘기 했어요?”최근 며칠 동안 주율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사실 이건 그저 온채아를 떠보기 위한 테스트였다.심서정은 매우 강한 위기감을 느꼈기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온채아는 심서정이 옥 펜던트 얘기를 하는 걸 알았지만 그 일에 대해 전혀 모르는 척할 생각이었다.지난번 심서정이 호텔에서 벌인 짓은 아직도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그래서 더 이상 심서정과 주율천 사이의 관계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심서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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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화

“세상에 백프로 안전한 선택은 없어요.”그러자 성윤혁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네가 확신했잖아. 그렇게 자신 있게 얘기하지 않았으면 그 함정에 빠졌겠어? 내가 얼마나 끔찍한 대가를 치렀는지 알긴 해?”그 말은 들은 심서정은 괜스레 죄책감이 밀려왔다. 성유준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주율천을 통해 대충 들은 적이 있었다.최근 며칠 동안 피했던 이유도 바로 이 일이 자신에게까지 불똥이 튈까 봐서였다.하지만 지금 그 불똥이 튀어버린 건 확실했고 성윤혁은 그 모든 책임을 심서정에게 돌리고 있었다.그녀는 머리끄덩이를 잡힌 고통을 참으며 재빨리 머리를 굴리다가 조심스럽게 얘기했다.“저도 그날 대표님이 오실 줄 몰랐어요. 이건 제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잠시 생각한 심서정은 목소리를 단단히 하고 말했다.“온채아를 탓해야죠. 진짜 문제의 근원이 온채아잖아요. 저기 봐봐요.”그녀는 온채아의 차를 가리키며 야비하게 웃었다.“도련님은 이미 망가졌는데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돌아다니잖아요. 그것도 이 남자 저 남자 다 건드리면서요.”얼마 지나지 않아 강태무가 온채아의 차에 탔다. 두 사람은 함께 여승운의 생신을 축하하러 가고 있었다.“입 가물어.”성윤혁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며 심서정의 뺨을 때렸다.“내가 네 속셈을 모를 것 같아? 날 이용하려는 거잖아. 내가 너 대신에 주씨 가문 사모님의 자리를 비워주길 바라는 거야?”성윤혁은 여자에 대한 자비 따윈 없이 온 힘을 다해 때렸다.심서정은 아픈 듯 입술을 꽉 깨물려 말했다.“저는 그냥 도련님이 안타까워서 이러는 거예요. 온채아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요. 내 말은 온채아를 철저하게 망쳐놔야 한다고요. 그렇게 하면 무조건 도련님에게 충실하게 될 거예요.”“대단하다.”심서정처럼 독한 여자는 처음이었던 성윤혁은 그녀의 턱을 꽉 잡고 말했다.“솔직히 말해봐. 너 질투하는 거지? 하긴 질투하는 게 맞지. 네 얼굴은 온채아의 발톱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잖아. 온채아는 발까지 부드럽고 예쁠 거야.”성윤혁은 온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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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화

여상준은 여승운과 손정원의 외동아들이다.온채아는 미지근한 차를 조금씩 마시며 말했다.“잘됐네요. 그럼 제가 이틀 안에 특산물 준비해서 보내드릴게요. 갖고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손정원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럼 너는? 우리랑 같이 가는 게 어때?”손정원은 온채아의 착하고 세심한 성격을 좋아했지만 또 때때로는 너무 착해 보이는 그녀가 안쓰럽기도 했다.그래서 몇 년 동안 그들은 매년 설날 명절에 온채아를 초대했다.그들의 마음을 온채아도 알았지만 명절 첫날에 아들 내외가 온다는 걸 신경 써 보통 이틀 차에 가서 인사를 드리곤 했다.올해는 주율천과 이혼했기에 집사 한 명 없는 집에서 홀로 외로이 명절을 보낼 온채아가 무척이나 걱정이었다.온채아는 살짝 웃으며 답했다.“저는 됐어요. 이번 연휴는 푹 쉬면서 연구 계획을 어떻게 조정할지 생각해 볼 거예요.”현재도 치료 효과가 나쁘지 않을 것 같지만 부작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약효를 좀 더 높이고 싶다.그럼에도 손정원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가서 아무 일도 안 해도 돼. 저쪽에서 편하게 연구해도 되잖아.”“됐어.”여승운은 온채아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채아가 어떤 성격인지 잘 알잖아. 가면 오히려 불편해할 거야. 당신은 채아가 든든하게 먹을 수 있게 음식 좀 준비해 줘. 군것질 좋아하니까 만두나 튀김 같은 걸 많이 만드는 게 좋겠어.”온채아는 민망한 듯 코를 긁적였다.“선생님...”“맞는 말이네요.”손정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온채아의 의견을 물었다.“이 정도는 괜찮지?”온채아는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손정원의 팔짱을 끼며 머리를 기대었다.“정말 고마워요.”머리를 기대다 보니 곧 잠이 들었다.손정원은 그녀가 잠든 걸 깨닫고 미소를 지으며 여승운에게 눈빛을 보내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밤낮으로 프로젝트 연구하느라 피곤했을 거야. 게다가 술까지 마셨으니 잠이 쏟아졌겠지. 걱정하지 마.”“알겠어요.”옆에서 지켜보던 강태무가 입을 열었다.“채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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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화

귓불까지 화끈 달아오른 온채아는 서둘러 말했다.“아... 화장실 갔다 올게요.”“잠깐만.”성유준은 성유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기며 옆으로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재킷을 세심하게 허리에 둘러주며 치마에 묻은 피를 가렸다.“고마워요.”여승운과 강태무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이렇게 하는 게 확실히 더 안전하다.얼굴과 목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온채아는 화장실로 가는 대신 차로 향했다.오늘처럼 이런 상황이 올까 봐 그녀는 차에 여벌의 옷을 챙겨두는 습관이 있었다. 최근 수면 부족으로 생리 주기가 불규칙했다. 그런데 어제 스스로 맥을 짚어본 덕분에 오늘 생리가 시작될 거라 예상하여 미리 가방에 생리대를 준비해 두었다.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성유준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와 마주쳤고 여전히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다.그녀는 천천히 걸어가며 재킷을 들고 말했다.“이건 제가 세탁 후에 다시...”“지난번 것보다 더 비싸.”차가운 말투는 여전했다.온채아는 생리 때문에 또 큰돈을 써야 할 상황에 처하자 살짝 기운이 빠졌다.배를 문질러 가며 성유준에게 따지려 했으나 갑자기 손이 텅 비었다.성유준은 감정이 일렁인 듯 눈빛이 흔들렸고 온채아의 손에서 재킷을 갈아 채며 한마디 했다.“됐어. 부담 갖지 마. 이건 내가 직접 세탁할게.”온채아는 본능적으로 물었다.“직접 세탁한다고요?”함께 지낸 9년 동안 성유준이 직접 옷을 세탁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게다가 정장은 물세탁이 안 되는 옷이다.성유준은 손에 재킷을 쥔 채 흠칫하더니 그 위에 묻은 어두운 빨간색을 보며 목을 가다듬었다.“집에 가져가서 도우미한테 부탁하면 돼.”“그럼 알겠어요.”온채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마침 그때 여승운과 강태무가 정원에서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여승운은 낚싯대를 옆에 두고 잡은 물고기를 성유준에게 내밀며 말했다.“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기가 막힌 생선탕 끓여줄게. 백 년 인삼을 선물해 줬는데 이 정도는 내가 대접해야지.”성유준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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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화

온채아는 성유준이 손에 들고 있는 정장을 슬쩍 보며 마음이 불편해졌다.“알겠어요.”집이 가까운 강태무를 택시를 탔고 술을 마신 온채아는 대리운전을 불렀다.낮잠을 너무 깊게 자서 온채아는 아주 정신이 맑았다.반면 성유준은 여승운과 술을 좀 더 마신 탓에 차에 오르자마자 머리를 받침대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온채아의 코끝에는 술 냄새와 함께 은은한 침향목 향기가 섞여 있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그 향기가 거슬리지 않았다.차 안은 고요했고 온채아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단둘이 있을 때 지금처럼 편안했던 적이 있었나?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도 나지 않네.’온채아는 마음속에 응어리가 있었고 아직도 성유준이 왜 그녀를 버렸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물론 성유준 역시 화가 나 있는 듯했다. 3년 전 두 사람이 대립했을 때 주율천과 결혼하려 했던 것에 대해 여전히 마음이 상한 상태일 것이다.그래서 벨린에서 재회한 후 그들 사이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그 인삼, 처음부터 선생님에게 선물하려고 했던 거야.”갑자기 차 안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술을 마셔서인지 목소리가 약간 쉬었고 평소의 날카로운 느낌이 덜했다.온채아는 그가 왜 자신에게 이걸 설명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순간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성유준을 쳐다보며 말했다.“임 비서님 아버지께...”그날 경매에서 성유준은 분명히 그 인삼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 때문에 사야 한다고 말했다.‘설마 그 사람이 정말 선생님이었나?’성유준은 자세를 바꾸지 않고 여전히 머리를 받침대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도로 양쪽의 불빛이 번쩍거릴 때마다 그의 어두운 표정이 보였다.“임 비서 아버지랑 무슨 상관이야.”온채아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성유준의 여자 친구, 아니면 그가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은 분명 임지연이 아니었다.‘도대체 누구지?’그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른 온채아는 화들짝 놀랐다.‘내가 왜 궁금해하지? 나랑 아무 관계 없는 일이잖아.’“알겠어요.”온채아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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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화

온채아는 머릿속이 하얘졌다.직접 경험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성인이니 자신이 방금 무엇을 만졌는지 금방 알아챘다.그리고 지금 성유준의 다리에 갇혀 움직일 수 없었다.분명히 옷을 통해서였지만 피부가 닿은 듯한 느낌이 들어 성유준을 올려다보며 당황한 눈빛을 보냈고 거의 울음이 터질 듯 말했다.“성유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성유준은 온채아의 머리를 큰 손으로 감싸고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분홍색 입술을 눌러가며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뭐라고 불렀어?”온채아는 움직이지 못한 채 급히 입을 열었다.“대표님.”성유준은 온채아를 쳐다보며 마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상위 존재처럼 말했다.“틀렸어.”몸이 점점 뜨겁게 달궈진 온채아는 더 이상 버티지 않고 물었다.“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죠?”“예전에 어떻게 불렀는지 생각해 봐.”성유준은 저음으로 부드럽게 유도했다.오빠라는 호칭을 분명히 기억했지만 순간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제발... 제발 나 좀 내려줘요.”온채아는 몸을 움직여 보았지만 허리를 감싼 손은 결코 움직이지 않았고 성유준은 강압적이었다.“먼저 불러.”온채아는 눈물이 맺힌 채로 그를 바라보더니 눈을 깜빡이며 부끄러움을 참은 채 입을 열었다.“오... 오빠.”“말을 이렇게 더듬었었나?”만족하지 못한 모양이다.“오빠.”온채아는 속상하고 화가 나서 이빨을 꽉 물고 버럭 소리쳤다.어릴 때 화내며 발악하던 그 말투와 매우 닮아 있었다.성유준이 손을 풀자 온채아는 재빨리 일어나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창문을 내려 애써 차 안의 이상한 분위기를 쫓으려 했고 동시에 심장 박동 소리를 숨기려고 했다.예전에도 성유준은 자주 온채아를 놀리며 그녀가 화내는 걸 즐겼었다.하지만 방금 그런 이상한 느낌은 처음이었다.한편으로는 재회 이후로 단 한 번도 오빠라고 부르지 않아 내심 기분이 나빴을지도 모른다.성씨 가문의 후계자답게 성유준은 다른 사람과 맞설 때 절대 승복하지 않았고 역시나 이번에도 이겼다.성유준은 도망치듯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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