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 Chapter 201 - Chapter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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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화

온채아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웃음 띤 목소리로 말했다.“졌으면 깨끗이 인정해야지.”주율천은 그녀의 정교하고 생기 넘치는 눈매를 바라보다가 어느새 눈빛이 한층 부드러워졌다.성씨 가문의 저택.차에서 내린 심서정은 가정부의 안내를 받아 거실로 향했다.오래된 저택은 고풍스러운 멋과 함께 주씨 가문보다도 더 깊고 묵직한 백 년 세월의 내공이 스며들어 있었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녀는 속으로 되뇌었다.‘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이라는 게 어째서 이렇게까지 클 수 있는 걸까. 나는 왜 태어날 때부터 진흙탕 속에서 굴러야 했을까.’“어르신, 어제 민 여사님께서 말씀하신 며느님이 도착했습니다.”거실 앞에 다다랐을 때, 성탁수가 그녀를 잠시 멈춰 세웠고 안에서 무심한 대답이 들려오자 그제야 안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응접실 안에는 소원희가 찻잔을 손에 쥔 채, 날카롭고도 노련한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고 있었다.그 분위기 하나만으로도 주씨 가문의 노부인보다 몇 배는 더 강하고 압도적으로 느껴졌다.최해경은 겉으론 상냥한 면이라도 있었지만 소원희는 단 한마디 없이도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드는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심서정은 숨조차 고르기 힘든 긴장 속에서 조심스레 다가갔다.말을 꺼내기도 전에 소원희가 먼저 날을 세우며 물었다.“자네가 주씨 가문의 큰며느리라는 사람인가?”“네, 그렇습니다.”심서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주씨 가문의 큰며느리가 시동생과 엮였다는 추문쯤은 이 경성 상류층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에 소원희의 눈에는 대놓고 경멸이 어렸다.“자네 시어머니 말로는 나한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들었는데?”“맞아요.”심서정은 더 이상 돌려 말할 생각 없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저는 당신들이 왜 온채아를 입양했는지, 그 진짜 이유를 알고 있어요.”소원희의 미간이 살짝 떨리더니 곧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되물었다.“진짜 이유라니?”그날의 진실은 누구보다 철저히 감춰져야 했던 비밀이었고 그녀처럼 아무 관련 없는 외부인이 알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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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그 말을 들은 소원희는 잠시 심서정을 말없이 응시하더니 마침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래, 어디 한번 들어보자. 네가 날 어떻게 도와줄 수 있다는 건지.”“온채아가 지금 한빛 그룹의 항암 신약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소원희의 표정에 아무 변화가 없자 심서정은 곧장 말을 이어갔다.“그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완성되기만 하면 성씨 가문은 더는 온채아를 손쉽게 통제할 수 없게 됩니다.”국가 중점 지원 과제의 핵심 연구원이 된다면 그녀의 사회적 영향력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수직 상승할 것이고 아무리 성씨 가문이 손을 뻗어도 그때부터는 최소한의 파장을 각오해야만 그녀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소원희는 코웃음을 치며, 단칼에 잘라 말했다.“그년이 그걸 해낼 능력이 있을 것 같아?”온채아는 그녀의 눈앞에서 자라난 아이였다.인정할 만한 거라곤 학업 성적 하나뿐이었고 그런 성적을 가진 학생은 경성대에만 해도 수천 명씩 졸업했다.하지만 제대로 성공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게다가 온채아는 어릴 적부터 그녀가 직접 기회의 끈을 모조리 끊어놓았기에 출세의 가능성 따윈 처음부터 없었다.그 프로젝트에 들어간 것조차 십중팔구 성유준이 예전 정을 생각해 대충 이력서나 채워보라며 끼워 넣어 준 자리일 뿐이었다.사실 심서정 역시, 온채아가 그 프로젝트를 진짜 성공시킬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혹시라도 모르잖아요? 하지만 제가 있으면,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설령 결과가 나와도 그건 온채아의 공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오호라?”소원희는 예상을 했다는 듯 찻잔을 들어 입을 축이며 묻는다.“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심서정은 미소를 띠며 천천히 대답했다.“그건 어르신께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가능합니다.”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고 성탁수는 심서정을 응접실에서 배웅해 내보낸 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사모님, 저 여자... 정말 위험하지 않습니까? 아예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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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온채아는 문득 자신의 대학 시절을 떠올렸다.그 시절, 그녀도 정다슬도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평범한 사람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공부뿐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둘은 매 순간을 쪼개 가며 책에 매달렸다.게다가 같은 기숙사 방도 아니었기에 일주일에 얼굴을 볼 수 있는 날도 한두 번이 고작이었다.온채아는 정다슬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근데 그럼... 왜 헤어진 거야? 오늘 보니까 하지훈 씨, 너한테 아직 미련이 있어 보이던데?”정다슬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었다.“신분 차이 때문이지 뭐.”그리고는 태연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그 사람 누나가 나한테 20억 수표를 들고 왔거든. 헤어지라고.”온채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뭐라고?”정다슬은 그 반응이 오히려 웃긴다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그런 거, 흔한 일이지. 막장 드라마에서 자주 보잖아...”“그게 아니라.”온채아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물었다.“너, 그 돈 안 받았지?”정다슬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응. 그땐... 너무 어렸거든.”그 시절 그녀는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였다.집안은 남아선호가 극심했고 그래서 돈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찍 깨닫긴 했지만 그때만큼은 가난보다 자존심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고 조금의 모욕도 견딜 수 없었다.정다슬은 침대에 몸을 눕히며 그 시절을 떠올렸다.“그때 나, 울면서 벌떡 일어나서 헤어지겠다고 말했지.”그리고 하지훈의 누나가 ‘그럴 줄 알았다’라는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앞에서 두 손으로 수표를 찢어버렸고 그 조각들을 책상 위에 툭 던졌다.나중에 들은 말로는 그 누나는 그 일 이후 더 높은 자리에 승진했다고 했다.그 얘기를 들은 정다슬은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웠다.혹시라도 그날의 감정적인 선택 하나 때문에 그 누나가 앙심을 품고 자신을 짓눌러버리면 어쩌나, 그 한 번의 대드는 말 한마디로 영영 고개도 못 들게 만들면 어쩌나 가슴이 조마조마했었다.그녀 같은 평범한 사람은 상대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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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이미숙은 그를 흘깃 노려보며 쏘아붙였다.“내가 뭘 하든 네가 뭔 상관이야. 내일은 집에 있을 거냐? 아니면 새로 사귄 여자친구 만나러 가게?”성유준은 기분이 꽤 좋은 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오늘 이미 걔랑 데이트했어요.”“그럼 내일은 안 나가겠네?”이미숙은 굳이 숨기지도 않고 덧붙였다.“내가 그 여자 의사분한테 집에 와서 밥 먹자고 했거든. 너도 와서 얼굴 좀 익히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지.”“안 돼요.”성유준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칼에 잘랐다.“갑자기 생각났는데 내일은 일이 있어요.”이미숙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얼굴을 노려보며 속내를 간파했다.“야, 네 여자친구가 그렇게 질투가 심해? 그냥 인사하는 건데 그거 가지고 질투해?”성유준은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손끝으로 빙글빙글 돌렸다.깊어진 눈빛 속엔 억누른 감정이 고여 있었다.“근데 걔가 맞선을 볼 뻔했던 남자랑 같이 밥 먹는다고 생각하면... 나도 질투 날 것 같거든요.”그는 매번 주율천이 그녀 곁에 앉아 있는 걸 볼 때마다 속이 뒤틀렸다.왜 그녀의 남편이 자신이 아니었는지, 왜 그 자리에 다른 남자가 앉아 있어야 했는지 그는 속으로 수없이 되물었다.다음 날 아침.온채아는 이른 시간에 일어나 단정히 옷매무새를 갖추고 이미숙에게 새해 인사를 하러 갔다.이번엔 그녀 혼자였다.괜히 번거롭게 할까 봐 정중하게 단지만 들어섰고 이미숙을 따로 불러내지도 않았다.두 손 가득 보양식품을 들고 현관에 도착하자 이미숙은 깜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아이고야, 그냥 밥 한 끼 먹자고 부른 건데 뭘 이렇게까지 챙겨왔니.”“당연히 챙겨야죠.”온채아는 미소를 지으며 신발을 벗었다.그 순간, 신발장 문이 스르륵 열렸고 문틈 너머로 익숙한 남성용 구두 한 켤레가 눈에 들어왔다.명품 수제 구두 브랜드였고 가격도 꽤나 고가였다. 그리고 그 디자인은 어제 성유준이 신었던 것과 똑같았다. 하지만 곧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성유준이 이곳에 있을 리 없잖아.’성유준의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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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정말 그래 보여요?”온채아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볼을 살짝 만지며 되물었다.“나 요즘 잘 먹었는데...”냉장고 안에 쟁여둔 식재료만 해도 이틀은 거뜬히 버틸 양이 남아 있었고 이번 설 연휴 동안 그녀와 정다슬은 대단한 걸 준비하지도 않고 그저 과일이랑 간식 몇 개를 사다 놓은 게 전부였다.나머지는 전부 손정원과 이미숙이 챙겨준 명절 음식들로 배를 채운 셈이었고 그래서인지 오히려 온채아는 요 며칠 새 살이 조금 찐 것 같다고 느끼고 있었는데.강태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조금만 더 쉬어. 곧 일 시작하면 또 1년 내내 바빠질 테니까.”한의원은 여느 업종과 달랐다.365일 중 설 연휴 며칠 빼고는 사실상 쉴 틈도 없고 언제든 호출이 들어오면 바로 움직여야 했다.온채아는 진료도 보고 온라인으로 건강 정보를 알리는 라이브도 진행하고 거기다 요즘은 신약 개발 프로젝트까지 병행 중이라 하루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하지만 그녀는 담담하게 시동을 걸며 말했다.“그래도 바쁜 게 좋아요. 그게 제 성격엔 잘 맞는 것 같아요.”예상대로 공항 근처에 도착하자 차는 거의 기어가다시피 막혔고 두 사람은 한참 뒤에서야 여승운 부부를 마중 나갈 수 있었다.시내로 돌아왔을 땐 이미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저녁 식사는 강태무가 예약해둔 고급 한식당에서 하기로 했다.담백한 맛으로 유명한 집이었고 주방장은 미슐랭 출신답게 손맛도 확실한 곳이었다.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직원이 넓고 고급스럽게 꾸며진 별실로 안내했고 자리에 앉은 강태무는 메뉴판을 여승운과 손정원 앞에 내밀며 부드럽게 웃었다.“두 분 오랜만에 귀국하셨으니까, 오늘은 두 분이 메뉴를 골라주세요.”“그래, 오랜만에 한식 좀 먹어봐야지.”여승운은 익숙한 듯 메뉴를 훑으며 평소 다들 좋아하던 요리를 빠르게 골라냈다.온채아는 손정원 곁에 앉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 진짜 많이 회복되신 거 맞죠?”혹여 괜찮은 척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녀는 내심 걱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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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손정원은 예전부터 온채아와 강태무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곤 했지만 결국, 온채아가 선택한 사람은 주율천이었다.물론 그녀는 그 일로 온채아를 탓할 수 없었다.사실 그녀 자신도 처음 여승운과 함께 주율천을 만났을 때, 그가 반듯하고 점잖은 남자라고 생각했으니까. 결국 사람은 겉만 보고는 알 수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셈이었다.식사를 마치고 일행이 식당을 나서던 중, 온채아는 멀찍이서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했다.주율천이었다.막 모임을 마치고 나온 듯, 그는 고급 맞춤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있었고 수려한 이목구비에 냉정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머금은 채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해도 단번에 시선을 끌 만큼 눈에 띄었다.그리고 그 역시 곧장 온채아를 발견했다.물빛이 감도는 원피스를 입은 온채아는 맑고 단정한 얼굴에 평온하고 부드러운 표정을 띠고 있었고 비단처럼 매끄러운 검은 머릿결은 어깨 위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어느 때보다도 얌전하고 고운 분위기를 자아냈다.그리고 그 곁엔 강태무도 함께였다.가끔씩 음식이 모락모락 김을 피우며 지나가는 서빙 트레이들 사이로, 강태무는 거의 반사적으로 온채아를 지키듯 그의 옆에 바짝 붙어 있었고 그럴 때마다 온채아는 고개를 들어 강태무를 향해 환히 웃어 주었다.주율천은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며 두 사람의 대화는 들리지 않아도 그 분위기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그들은 마치 네 가족처럼 보였다.하지만 이상한 건, 온채아는 여승운이 지도하던 수많은 학생 중 하나일 뿐인데 어쩌다 이렇게까지 그들과 가까워졌는지 그것이 주율천에겐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분명한 건 하나 있었다.온채아는 강태무 앞에서 유독 마음을 내려놓고 편안해했으며 그것은 자신과 함께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주 대표님?”그와 함께 있던 이가 주율천이 한참 넋을 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며 불렀고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이내 놀란 눈으로 말했다.“저기 계신 분, 혹시 여 선생님 아니신가요?”하지만 주율천은 그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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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주율천의 눈빛은 매서웠지만 여느 때처럼 부드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제 아내 얼굴도 못 알아보는 사람과 우리 은성 그룹이 굳이 협력을 이어갈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그의 말은 조금의 여지도 없이 단호했고 그 속에 담긴 불쾌감은 누구라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분명했다.전우진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허둥지둥 고개를 숙이며 연거푸 말했다.“아이고, 제가 늙으니 눈이 잘 안 보이나 봅니다. 부디 넓은 아량으로 너그러이 봐주십시오.”입이 방정이었다는 ㄴ걸 이제야 뼈저리게 깨달은 그는 당장이라도 자기 입을 꿰매고 싶을 지경이었다.‘진작에 입을 다물었어야 했는데... 근데 소문하고 다르잖아? 다들 형수랑 사이가 각별하다고 하더니 또 꼭 그렇지도 않은가 보네...’아내 얼굴 하나 못 알아본 일로 거래까지 끊겠다고 선언하는 태도는 누가 봐도 아내를 꽤나 아끼는 사람의 반응이었고 방금 전 그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열 번은 죽이고도 남을 기세였다.그때, 여승운이 슬쩍 주율천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는 느긋하게 말했다.“고작 한마디 가지고 뭘 그리 예민하게 굴어. 자네가 예전에 벌인 일들로 얼마나 시끄러웠는데 채아는 한 번도 자네한테 뭐라 한 적 없잖아.”그 순간, 주위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숨을 죽였다.오직 온채아만이 선생님이 자신을 감싸주는 듯한 그 말에 마음속 깊은 곳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그녀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선생님, 벌써 시간이 꽤 늦었네요. 제가 두 분 먼저 모셔다드릴게요.”“그래, 좋지.”손정원은 아직 이혼 사실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혹여 남편이 말실수라도 할까 조바심이 들어 얼른 그의 팔을 끌어당겼다.“어서 집에 가요. 나도 피곤해요.”그들 셋이 함께 자리를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던 주율천은 곁에 있던 강태무를 차갑게 노려보았다.그때 온채아가 뒤돌아보며 강태무를 향해 말했다.“태무 오빠, 얼른 가요.”“응, 그래.”강태무는 짧게 대답하고 주율천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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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그들 사이의 관계는 사실 이혼을 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정상적인 부부라 부르기 어려운 상태였다.그는 심서정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든, 단 한 번도 그녀에게 그에 대한 보고나 해명을 한 적이 없었다.주율천 역시 잘 알고 있었다.예전의 일들, 특히 심서정과 얽힌 일들이 온채아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는 걸.그래서 그는 조심스레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나 심서정이랑은 완전히 끝났어. 앞으로 어떤 일도, 어떤 관계도 없을 거야.”잠시 말을 멈췄던 그는 이내 다시 단호하게 덧붙였다.“맹세할게.”하지만 온채아는 더 이상 그런 말에 흔들릴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그들이 다시 붙어 다니며 백년해로를 하든, 아니면 완전히 남처럼 갈라서든 이제는 그녀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결국 이혼은 이미 정해진 결말이었고 돌이킬 수도 없었다.그녀는 잠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심서정이랑은 끝냈다 쳐도... 다음엔 이서정이나 김서정은 없을까?”그녀는 언제나 믿고 있었다.한 번 배신한 사람은 언제든 백 번도 다시 배신할 수 있다고.사람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그리고 그녀는 더 이상 그것을 시험할 용기도 또다시 대가를 감당할 여유도 없었다.이미 자신의 인생은 충분히 버거웠고 이제는 실수를 되돌릴 기회조차 많지 않았다.그 물음에 주율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의 머릿속엔 여전히 ‘구아’가 맴돌고 있었다.‘만약 구아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내가 돌봐야 할 상황이 생긴다면...’아무 감정도 없다고 해도 온채아가 그런 말을 믿을 리는 없었다.그의 침묵을 본 온채아는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말없이 몸을 돌려 계단을 올라갔다.설 연휴가 금세 지나가고 다시 한의원이 문을 여는 첫날 아침이 밝았다.온채아는 곧 익숙한 리듬으로 돌아갔다.동이 트기도 전, 그녀는 이미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는 이른 아침 공기에 패딩을 꼭 여미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이번에는 다시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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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하지만 온채아의 눈에 비친 주율천은 그렇게까지 남을 몰아붙이는 사람이 아니었다.‘적어도 심서정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면 모를까...’마침 강태무가 조용히 웃으며 무언가를 말하려던 찰나, 온채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근데 뭐, 그런 건 이제 나랑 아무 상관 없는 일이잖아요.”주율천이 심서정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든, 그것은 이제 그녀와 무관한 일이었고 더는 감정을 소모할 이유도 없었다.“그래.”강태무는 그 대답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마치 마음속에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실이 툭 끊기고 그 틈 사이로 부드럽고 따스한 바람이 스며드는 듯했다.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일 다 끝났지? 우리 밥이나 먹자. 내 차는 정비 맡겨놔서 말인데 실은 네 차 얻어 타고 실험실에 좀 들르려 했거든.”“가죠.”온채아는 그렇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흰 가운을 벗고 가방을 챙긴 그녀는 그와 함께 진료실을 나섰다.설 연휴가 끝나고 이제는 다시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점이었다.두 사람은 별다른 말 없이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마친 뒤, 곧장 한빛 그룹 산하의 연구소로 향했다.한빛 그룹은 비용을 아끼지 않는 기업답게 연구소 내부는 최신 장비와 약재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고 일할 때만큼은, 온채아와 강태무는 누구보다도 손발이 잘 맞았다.그들이 소속된 한방 파트 팀에는 총 네 명의 인원이 있었고 그중 전윤호라는 연구원만이 간간이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편이었다.나머지 두 명은 예전부터 온채아를 비웃던 사람들이었고 지금도 겉으로는 바쁘게 움직이는 척하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전무했다.그들은 처음부터 온채아라는 젊은 여자 연구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녀가 팀의 조장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우리가 열심히 연구해서 성과를 내면 결국 그 공은 온채아한테 돌아가겠지. 그럴 바엔 그냥 손 빼고 있는 게 낫다.’이런 생각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이 바닥에선 성과를 가로채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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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아, 그러세요?”장현택은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온채아와 친분이 있다면 이 여자의 의학적 역량도 꽤 수준급이란 얘기겠지. 그렇다면 프로젝트 총책임자 자리에 있는 것도 납득이 가고.’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온채아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그녀는 심서정을 향해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무표정하게 자리에 앉았다.“그렇게까지 친한 사이 아니에요.”담담한 말투였지만 그 안에 담긴 단호한 거리감은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분명했다.그녀의 선 긋기에 회의실 분위기는 묘하게 얼어붙었고, 조금의 긴장감이 돌았다.그러자 늘 실험실에서 일도 제대로 안 하며 시간만 때우던 두 연구원이 슬슬 입을 열기 시작했고 기다렸다는 듯이 온채아를 향한 조롱 섞인 말들이 쏟아졌다.“봐봐, 진짜 능력 있는 사람들은 원래 혼자 다 해내는 거야. 실력도 없으면서 억지로 프로젝트에 끼어들어 경력이나 쌓으려는 사람도 있는데 말이지.”양준이 혀를 찼다.온채아가 이 프로젝트에 투입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그녀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그런데 이제는 자신들의 ‘윗선’에 서 있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곁에 앉아 있던 한재혁도 맞장구를 쳤다.“맞아. 진짜 실력 있으면 뭔가 보여줘야지. 그동안 뭐 했는지는 아무도 모르겠던데.”그 순간, 장현택이 단호한 어조로 말을 끊었다.“그만해. 실력도 없으면서 질투는... 밖에서 보면 웃음거리밖에 안 돼.”사실, 그들이 온채아의 실력을 몰랐던 그녀가 굳이 그들에게 자신의 결과를 보여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다만 프로젝트 총책임자인 장현택은 그런 온채아가 얼마나 묵묵히 연구를 이어왔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양준은 한빛에서 일한 지 오래됐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티고 있었고 억울하다는 듯 온채아를 노려봤다.“우리가 어디가 실력이 부족하다는 거죠? 조장 선출도 실력으로 된 건 아니잖아요?”그 말에 온채아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차갑게 물었다.“그쪽들, 지금까지 프로젝트에서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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