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말에 수화기 너머 하도연의 눈매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하긴, 황아림과 관련된 일이라면 일단 상대방부터 의심하고 보는 것, 그것이 구정훈의 한결같은 방식이었다. 비서에 대한 그의 신뢰는 아내인 하도연에 대한 신뢰를 진작에 넘어섰다.하도연은 더 이상 말다툼할 의욕조차 생기지 않아 그저 결과만을 물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올 수 있어?”하도연은 이 이혼 서류를 받아내는 일이 유독 절박해 보였다.구정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서두르는 걸 보니 다음 정략결혼 상대가 벌써 밖에서 기다리고 있나 보군.”평소 구정훈의 성격답지 않은 가시 돋친 말이었다. 내뱉는 순간 그 자신도 놀랄 만큼 비뚤어진 말이었다.아마 하도연이 언제나 지나치게 평온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할 때도, 결혼 생활 중에도, 심지어 황아림이 대놓고 그와 각별한 사이임을 내비칠 때조차 그녀는 평온했다. 이제 이혼마저 이렇게 담담하니 구정훈은 그 평정심을 견디지 못하고 기어이 그녀를 찔러보고 싶어진 것이다.구정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큰 다툼 한번 없이 무난했던 이 결혼을 하도연이 왜 이토록 단호하게 끝내려 하는지.하지만 하도연은 오히려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난 혼인 기간에 이성과 애매모호한 관계를 즐기는 취미 같은 건 없어서 말이야.”그 말에 구정훈은 묘하게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누군가를 겨냥한 듯한 뉘앙스에 기분이 묘해졌다. 무언가 대꾸하려던 찰나, 황아림이 다가와 회의를 독촉했다.마음을 가다듬고 하도연에게 제대로 설명하려 했을 땐 이미 전화가 끊긴 뒤였다.회의실로 다시 들어가기 전, 구정훈은 반걸음 뒤에 서 있던 황아림을 돌아보며 물었다. “서진 씨랑 약속을 왜 오늘 세 시로 잡은 거지? 내가 분명히 거절하라고 했을 텐데.”구정훈은 이 결혼이 끝났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잠시 시간을 두면 하도연의 마음도 가라앉을 거라 믿었다.황아림은 흠칫 놀라더니 당황한 듯 휴대전화를 뒤적이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요. 제가 서진 씨한테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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