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의 모든 챕터: 챕터 701 - 챕터 710

731 챕터

제701화

말은 매우 공손했지만, 온채아는 그의 말투에 숨겨진 날카로움을 단번에 알아차렸다.성유준은 서강진의 말을 단 한 글자도 믿지 않았다.온채아 역시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너무 절묘했다.어젯밤 하씨 가문에서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결론을 낸 직후, 오늘 아침 서강진이 전화를 걸어와 스스로 어제의 단정적인 발언을 뒤집었다.하지만 하도연이든 하지훈이든, 이 일에 있어 타인을 쉽게 끌어들이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많아야 최측근 정도일 뿐.어제 자신이 하씨 가문과 접촉한 사실을 서강진이 알 방법은 없어 보였다.의문을 품은 채 서강진을 바라보자, 그는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성 대표님, 온 선생님, 이건... 정말 죄송합니다. 어쩌면 제 친구가 착각했을 수도 있어요. 오랜 친구라 괜히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행동과 말투 모두 자연스러웠다.온채아는 뭔가를 파악해보려 했지만 단서를 잡을 수 없었다.성유준은 가볍게 웃으며 더는 캐묻지 않고, 대신 온채아를 보며 말했다.“시간도 늦었으니 일단 치료부터 해.”“알았어.”지금 서강진의 상태로는 어제 처방을 그대로 쓸 수 없었다.온채아는 먼저 침 치료로 현재의 증상을 완화한 뒤, 처방을 새로 바꾸었다.그녀는 처방전을 집사에게 건네고 나서, 서강진을 보며 말했다.“앞으로는 제가 직접 방문 치료를 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 강태무 씨에게 연락해서 매주 외래 예약을 잡으세요.”말투는 담담했지만 협의의 여지는 없었다.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성유준과 함께 돌아섰다.집사가 배웅하려 하자 온채아가 막았다.“괜찮아요. 서 회장님을 부축해서 좀 걷게 하고, 담백한 죽 같은 걸 드시게 하세요.”검은 벤틀리가 마당을 빠져나간 뒤에야, 집사는 서강진을 부축해 일으키며 물었다.“회장님, 저들이 믿은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서강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눈 밑에 깔린 서늘함은 숨겨지지 않았다.“어떻게 생각하나? 오늘 성유준 같은 바쁜 사람이 직접 따라올 줄은 몰랐군.”온채아는 상대하기 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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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2화

잠시 후, 소원희가 이를 악물고 입을 열었다.“왜? 당신 손에 쥔 세력으로 온채아 하나 못 처리할 리 없잖아! 그 여자는 성유준과 허씨 가문의 약점이야. 그 애만 잡으면 두 집안의 숨통을 쥐는 거라고! 나랑 윤혁이의 한을 풀어주는 건 당신 마음 하나면 되는 일이야!”이렇게 사람들 눈치 보며 사는 생활을, 소원희는 단 하루도 더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예전 상가에 있을 때는 성유준에게 실권을 빼앗겼어도, 사람들은 그녀를 보면 고개를 숙이고 조심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누구나 그녀를 보면 피하거나, 심지어 대놓고 비웃고 모욕하기까지 했다.한참이 지나서야 서강진이 대답했다.“지금은 예전과 달라. 조금만 방심하면 DK는커녕, 나 자신도 같이 무너질 수 있어.”하씨 가문과 성유준은 아마 땅을 파서라도 그의 행방을 찾고 있을 것이다.“나는 반드시 신중해야 해. 가장 적절한 시기를 기다려야 한다고.”“적절한 시기가 없는 거겠지...”소원희는 낙담한 목소리로 몰아붙였다.“아니면 당신이 이미 예전 같은 결단력을 잃고, 우유부단해진 거 아니야?”세력만 놓고 보면, 지금 그의 힘은 과거보다 절대 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했다.그가 20년간 갇혀 있었던 동안, 박시훈이 이어받아 해외에서 세력을 훨씬 더 키워놓았기 때문이다.용병과 사병도 부족함이 없었다.그런데도 그가 출소한 지 꽤 되었지만 여전히 성유준에게 완전히 제압당한 채, 자신과 성윤혁을 위해 상가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았다.“조금만 더 참아.”서강진은 인내심 있게 그녀를 달랬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빛에 계산된 날카로움이 스쳤다.“요즘 온채아 배를 보니까 두세 달 안에는 출산할 것 같더라.”“설마...”소원희의 원망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아이를 노리는 거야?”그 말을 꺼내는 순간, 그녀도 깨달았다.온채아는 성유준과 허씨 가문의 약점이지만 아이야말로 그들 모두의 약점이었다. 온채아 자신까지 포함해서 말이다.그때가 되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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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3화

어디서 더 봤는지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직감은 분명했다.서강진이 숨기고 있는 건 ‘남자’였다.성유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아직 끊지 않은 전화 너머로 말했다.“아가씨 말 들었지?”“네, 들었습니다.”성일은 차분하게 답했다.“그날 서강진 집 단지 CCTV를 확인해서 누군지 찾아보겠습니다.”“그래.”성유준은 전화를 끊으려다,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덧붙였다.“박시훈이 그 단지에 드나든 기록이 있는지도 확인해.”성일은 즉시 답했다.“바로 확인하겠습니다.”통화가 끝났다.온채아는 등골이 서늘해진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설마... 서강진이 박명하랑 관련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는 거야?”그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성유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가능성은 있어.”온채아는 마음이 불안해져 더 묻고 싶었지만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강태무의 전화였다.“여보세요. 태무 오빠.”“채아야.”강태무의 목소리는 밝고 부드러웠다.“네가 부탁한 거 방금 부모님께 물어봤어.”마침 조금 전 성유준과 나눈 이야기와 관련된 내용이었다.온채아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며 물었다.“어때요? 아저씨, 아줌마도 알고 계셨어요?”“응. 얼마 전에 서 회장님 부인과 통화했는데, 서 회장님이 해외에 간 건 딸이 아파서였대.”강태무가 부드럽게 말했다.그 말을 듣고 온채아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알겠어요. 태무 오빠, 또 번거롭게 했네요.”통화 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아, 성유준도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성유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강씨 가문이랑 서강진, 꽤 친해?”“응.”온채아는 사실대로 말했다.“태무 오빠 말로는 부모님 세대부터 아는 사이라고 했어.”이 점 때문에 온채아는 계속 확신과 의심 사이를 오갔다.서강진의 일부 행동은 분명 이상했지만, 그의 신분, 가정, 사업 모두 너무 명확해서 박명하와 연결된 인물처럼 보이지 않았다.성유준은 그녀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그럼 괜한 걱정일 수도 있겠네.”하지만 온채아는 여전히 이상했다.“그래도 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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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4화

온채아는 살짝 멈칫하더니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다가갔다.“이건 뭐예요?”“앉으세요.”하도연이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이미숙은 온채아를 바라보며 온화하게 웃었다.“앉아서 얘기하자. 우리 채아를 봐, 너를 보면 정신을 못 차리네.”그 말에 하도연의 눈가에 어린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온채아는 머쓱한 듯 코를 살짝 긁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몸을 기울여 하도연이 들고 있던 서류를 들여다봤다.[지분 양도 계약서.]설마 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자 온채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해졌다. 시가총액만 몇십조에 달하는 한화 그룹이다. 아무리 그래도 생판 남인 자신에게 선뜻 지분을 넘겨줄 리가 없지 않은가.온채아가 생각에 잠긴 사이 하도연은 투명한 서류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 내밀었다.“한번 볼래요?”“도연 언니...”온채아는 잠시 망설였다.맞은편에 앉아 있던 성유준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웃으며 말했다.“일단 봐. 그냥 보여주기만 하는 걸 수도 있잖아.”그 농담에 하도연과 이미숙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온채아도 그제야 긴장을 풀고 서류를 받아 들었다.‘그래, 오빠 말대로 그냥 검토만 해달라는 걸 수도 있지.’비록 그녀는 변호사가 아닌 의사일 뿐이지만 말이다.하지만 서류를 넘겨 갑과 을의 이름을 확인한 온채아의 손이 멈췄다.상세한 지분율을 확인하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을: 온채아, 지분 5%.]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틀림없는 제 이름이었다.온채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하도연을 바라보았다.“도연 언니,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왜 저한테 이런 거액의 지분을...”“채아 씨의 양부모님 일 말이에요. 우리 아버지가 직접 가담하신 건 아니지만 우리 집에서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하도연이 펜 뚜껑을 연 후 사인펜을 건넸다.“이 5% 지분은 할아버지께서도 허락하신 거예요. 아버지 명의에서 지분을 넘겨주는 건데 아버지가 지금 해외에 계셔서 절차가 좀 더뎌졌을 뿐이에요. 이 합의서는 모든 절차가 끝나야 효력이 발생할 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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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5화

하도연은 계약서를 들고 그린 빌라로 돌아왔다.문을 들어서는 순간 그녀는 묘하게 달라진 분위기가 느껴졌다.외투를 벗어 가정부에게 건네고 응접실 쪽을 힐끗 본 순간 하도연은 걸음을 멈췄다.짙은 남색의 고급 정장.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완벽한 재단.움직임 하나하나에서 배어 나오는 여유와 품격.어릴 때부터 몸에 밴 부잣집 도련님의 기품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머리랑 몸만 깨끗했다면 정략결혼 상대로는 꽤 괜찮았을 텐데.’강미진이 그녀를 보고 손짓했다.“도연아, 정훈이 경성에 출장 왔다가 너 보러 들렀대.”이혼 이야기는 아직 어머니에게 하지 않았다.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강미진이 딸의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겼음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다만 사위인 구정훈 앞이라 말을 아낄 뿐이었다.하도연의 표정은 담담했고 미동조차 없었다.“저 사람은 엄마랑 할아버지, 할머니 뵈러 온 거예요.”하씨와 구씨 집안은 대대로 이어진 인연이라 이혼해도 관계가 끊길 일은 없었다.게다가 구정훈은 원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구정훈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말했다.“도연아, 어머님 말씀 맞아. 너 보러 온 거야.”겉보기엔 진심 같았다. 강미진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난 위에 올라가서 좀 쉴게. 너희 둘이 얘기해.”강미진이 자리를 비켜주었다.어머니를 배웅한 하도연이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가정부가 내온 따뜻한 로즈 티를 한 모금 마신 그녀가 무심하게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구 대표님, 시간이 늦었네요.”그리고 고개를 들어 통유리창 너머 마당에 세워진 차량을 바라보며 말했다.“비서랑 같이 해성으로 돌아가셔야죠.”‘전처가 될 사람을 보러 오면서 비서까지 데리고 오다니. 성의가 대단하네.’하도연은 입가에 떠오르려는 비웃음을 겨우 눌렀다.구씨 가문 같은 명문가에서 어떻게 저런 자손이 나왔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도연아.”구정훈이 인내심을 갖고 설명했다.“황아림 씨는 업무 때문에 같이 온 거야. 곧 해성으로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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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6화

담담하게 이어지는 하도연의 말투에는 그 어떤 감정의 동요도 섞여 있지 않았다.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린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씨 가문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두고 내린 결정이라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났다.하용건은 그제야 목소리를 조금 가다듬으며 물었다.“다른 방법은 없어? 정훈이가 그리 멍청한 놈은 아니니 네가 직접 나서서 주변 정리를 좀 도와준다고 하면 그 녀석도 군말 없을...”“할아버지.”하도연은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는 대신 나직하게 덧붙였다.“아까 정훈 씨가 여기 들어와 있을 때도 그 비서는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구정훈에게 황아림이 어떤 의미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정말 할아버지 말씀대로였다면 하도연이 처음 황아림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을 때 구정훈은 진작에 그녀를 더는 눈에 띄지 않게 치웠어야 했다. 이렇게 매번 보란 듯이 하도연의 눈앞에 얼쩡거리게 둘 게 아니라.그 말에 하용건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그는 단호하게 결단을 내렸다.“그래. 이왕 이혼하기로 마음먹었다면 화끈하게 끝내거라. 그놈이 질질 끌면서 네 시간 낭비하게 두지 말고. 다음에 해성으로 돌아가면 바로 이혼 서류 정리하거라.”“네.”할아버지가 동의해 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확답을 듣자 하도연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용건은 서른을 갓 넘긴 손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이 아이에게 늘 다정한 할아버지이기보다는 엄격한 스승에 가까웠다.그 탓에 지금의 하도연이 만들어졌다. 이성적이고 독립적이며 때로는 냉혹할 만큼 결단력 있는 영민한 여자가 되었다.하씨 가문의 주인으로는 완벽했으나 결혼 생활에서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는 성격이다.하용건은 하도연의 손을 가볍게 다독이며 한숨을 내쉬었다.“집안의 일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구나.”“하지만 구씨 가문 그놈이 정신 못 차리고 있으면 정신 번쩍 들게 해줘야지. 그 집안 형제들 하나같이 만만한 놈들 아니다. 그런 놈들 제치고 정훈이 그놈이 어떻게 후계자 자리를 차지했는지 알아? 다 너와의 혼약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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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7화

구민호의 어머니는 북영시 명문가 금씨 집안의 외동딸이었다.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귀하게 자라서일까. 결국 사랑 하나 보고 구정훈의 아버지와 재혼을 선택했다.북영시의 쟁쟁한 혼처를 다 마다하고 굳이 구정훈의 새엄마가 되겠다며 고집을 피웠던 것이다.기씨 집안 어르신들은 처음엔 속이 뒤집어졌지만 하나뿐인 귀한 외동딸을 이길 수는 없었다.구민호가 구씨 가문의 후계자 자리를 꿰차지 못한 건 구정훈과 하도연의 정략결혼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본인이 그 자리에 큰 욕심이 없어서이기도 했다.다른 일이었다면 구민호의 지지가 든든했겠지만 이혼 문제에 있어서는...하도연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일단 고마워.”딱히 도움은 안 되더라도 이 살벌한 명문가에서 진심은 귀한 것이니까.그 웃음소리는 해성에 있는 구민호의 귀에 들렸다. 그 웃웃음소리는오늘따라 허탈해 보였다.구민호는 그녀가 이혼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오해했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누나, 구정훈 그 형은 누나한테 과분해요. 누나는 훨씬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자격이 있어요.”아직 어려서 그런지, 아니면 다정한 성격 덕분인지 하도연은 다시 한번 웃음이 났다.“그래, 네 말이 맞아.”‘구정훈 이 남자는 구씨 가문 후계자 자리조차 내 도움을 거쳐 얻은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나와 나란히 한단 말이야?’이번엔 구민호도 하도연의 웃음에서 그녀의 진심과 자부심을 읽어냈다.그의 두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아참, 누나 언제 해성으로 돌아와요? 내가 누나한테 맛있는 거...”“미안, 전화가 또 오네. 일단 끊어야겠다.”하도연은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느라 그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용건 있으면 문자 남겨줘. 나중에 확인할게.”“네.”구민호는 시원스럽게 대답했지만 가늘고 긴 눈매는 묘하게 위로 휘어 올라가 있었다.하도연이 새로 걸려 온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입을 떼기도 전에 휴대폰 너머로 질책이 쏟아졌다.“내가 분명히 말했지, 황아림이랑은 아무 사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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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8화

하지만 하도연은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이혼하는 마당에 굳이 스스로 걸림돌을 놓을 생각은 없었다.구씨 가문의 후계자 자리가 가진 무게가 너무 무거웠으니까.아무리 구정훈이 겉으로는 태연한 척해도 그 자리를 쉽게 내려놓을 사람은 아니었다.“당신의 어리석음을 가려줄 의무 나한테 없다는 거예요.”말을 마친 하도연은 가차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렇다. 이건 어리석은 짓이었다.‘구정훈은 대체 무엇을 믿고 자신이 참고 넘어갈 거로 생각한 걸까?’그가 이혼 사실을 하용건 회장에게 찔렀다면 자신은 이혼 사유를 구씨 가문에 알리는 것이야말로 공평한 것이다.그는 아직 하도연에게 희생을 요구할 자격이 없었다.침실로 들어온 하도연은 소파 위로 휴대폰을 던지려다 전화를 끊기 전 구민호가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아 슬쩍 카톡을 확인했다.쌓여 있는 안 읽은 문자 중에 그의 것은 없었다. 딱히 중요한 용건은 아니었던 모양이다.어제 주식 양도 문제로 밤을 거의 꼬박 새우다시피 했다. 하용건이나 하선호 쪽 모두 쇠뿔도 단김에 빼듯 몰아붙여야 했다.그렇지 않으면 언제 마음이 바뀌어 막내가 거액의 지분을 놓치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지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온채아가 결혼하기 전에 최대한 혼전 자산을 챙겨주는 것, 그다음이 이혼이었다.다행히 두 가지 일 모두 순조롭게 풀려가고 있었다.하도연은 가볍게 샤워를 마친 뒤 침대에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도시의 불빛이 창밖을 수놓고 있었다.그녀는 잠귀가 밝고 잠이 짧은 편이라 아무리 피곤해도 서너 시간 정도면 충분했다.똑똑.가정부가 노크 후 문을 아주 살짝 열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아가씨, 깨셨어요? 사모님께서 아가씨가 위장병 도질까 봐 걱정하시며 저녁 식사를 방으로 올리라고 하셨습니다.”강미진 역시 딸이 피곤하다는 걸 알기에 따로 깨우지 않은 것이다.다만 가정부에게 방안 기척을 잘 살피다 깨는 대로 식사를 챙겨주라고 일러두었다. 불이 켜진 것을 확인한 가정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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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9화

“성이 황씨 라고요?”하도연이 되묻자 가정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오라고 하세요.”구정훈, 아니 구씨 가문이 저질러 놓은 난장판을 수습해 줄 의무는 없었다. 조용히 저녁 식사를 마치는 게 훨씬 중요했다.가정부가 멀어지는 것을 보자 강미진이 물었다.“정훈이 그 비서니?”“네.”어머니 앞이라 숨길 것도 없었다.“정훈 씨랑 비서 사이의 일을 할아버지께 말씀드렸거든요.”하용건 회장에게 알렸다는 건 곧 구씨 가문 어른들이 다 알게 됐다는 뜻이다.완벽한 혼사를 구정훈이 망쳐놓았으니 그 화살은 당연히 황아림을 향했을 것이다. 다만 그녀가 이곳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다.강미진은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이런 시국에 널 찾아오다니, 보통 눈치 없는 여자가 아니구나. 안 나가는 게 맞아. 얼른 밥 먹으렴.”그녀는 딸의 접시에 반찬을 얹어주었다. 모녀가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가정부가 다시 들어왔다.이번엔 아주 난처한 표정이었다.“아가씨, 그 황아림 씨가 대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가씨를 기다릴 테니 볼일 다 보시고 만나주시면 된다고 합니다.”“가서 내 휴대폰 좀 가져와요.”강미진이 거실 쪽을 가리키며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무릎을 꿇으려면 구씨 가문 본가에 가서 꿇을 일이지 우리 집 대문 앞은 왜 찾아와서 저 난리야? 우리가 언제 구박이라도 했어?”가정부가 움직이려 하자 하도연이 제지했다. 오히려 여유롭게 어머니를 달랬다.“무릎 꿇고 있는 건 그 여자인데 엄마가 왜 화를 내세요?”그러고는 가정부에게 지시했다.“뒤쪽으로 가서 서진이 좀 불러와요.”서진은 영문도 모른 채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타났다.“아가씨, 그 황 비서가 왜 우리 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겁니까?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대답도 안 하던데요.”“신경 쓰지 마.”하도연의 입가에 차가운 기운이 서렸다.“너는 오늘 밤부터 언론 쪽 동향만 잘 살펴. 누가 이 일을 빌미로 기사를 크게 터뜨리지 못하게 말이야.”설령 황아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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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0화

하지훈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심심해서 방금 CCTV나 좀 훑어봤지.”웃긴 건, 하씨 가문 사람 중에 휴대폰에 집안 보안 시스템을 연동해 놓은 사람은 유독 그뿐이라는 거였다. 그 이유 또한 지극히 당당했다. 막내가 언제 집에 돌아왔는지 제때 알려주지 못할까 봐 미리 대비한 것이라고.하지만 그날은 하도연이 집에 없었기에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그 설명을 듣고서야 하도연의 얼굴빛이 조금 누그러졌다.“나도 나서기 힘든 판에, 너는 더더욱 안돼. 자칫 힘 있는 자가 약자를 괴롭힌다는 말거리나 잡힐 수 있어.”하지훈의 평소 평판으로 봐서, 남들이 괜한 트집을 잡기엔 너무나 좋은 먹잇감이기는 했다.하지만 하지훈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나는 원래부터...”“원래부터 뭐?”하도연이 그의 말을 막아서며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일렀다.“지훈아, 지금 너의 언행 하나하나가 한화 그룹을 대표하는 거야. 예전처럼 행동해서는 안 돼.”“알았어.”하지훈은 성의 없이 대답하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누나한테까지 덤비는 놈이 있는데 혼내줄 수도 없으니, 한화 그룹 부대표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마음에 둔 사람을 아내로 맞이할 때가 되면 의미가 있게 될 거야.”하도연이 드물게 그를 놀리며 받아쳤다.“됐어, 샤워하고 올게. 무슨 일이든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해.”하지훈이 대답하기도 전에 통화는 끊겨버렸다.그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산더미처럼 쌓인 자료와 서류들을 바라보다가, 해외에 출장 중인 하희민에게 영상 통화를 걸어 괴롭혔다.하희민은 오늘 아침 일찍 F국으로 출장을 떠났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하도연은 순백색 목욕 가운 하나만 걸친 채였다.그녀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창가로 다가갔다. 앞마당을 비추는 희미한 노란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테라스로 나가서 고개만 살짝 숙이면, 황아림이 정말 떠났는지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너무 추웠으니까.그 여자가 떠나든 말든, 그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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