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의 모든 챕터: 챕터 711 - 챕터 720

731 챕터

제711화

하도연은 그제야 문득 떠올랐다.그때 구민호가 며칠 전부터 시간을 반복해서 확인했었다.이유는 다름 아닌, 구씨 집안 다른 사람들은 시간이 없었고, 구정훈조차 임시로 북영시 출장을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금씨 가문과 중요한 프로젝트를 논의한다는 소문이었다.전화 목소리가 서운해 보이자, 하도연은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어 일정을 조정했다.그래서 이 사진이 남게 된 것이다.다만 최근 2년 동안 그녀는 승승장구하며 각종 업무가 많고 복잡해졌고, 게다가 집안일도 연이어 터져 여유가 없었다.구민호가 재작년에 이미 석사 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잊혀 있었다.늘 어떤 일이든 여유롭게 해내던 하도연은 어색하게 웃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그러면 앞으로 무슨 계획이야? 해성에 남을 거야? 아니면 북영시로 갈 거야?”“음...”하도연의 전화에 구민호의 기분은 금방 풀렸다. 무언가를 생각했는지 그의 목소리는 온화해졌다.“누나는 나중에 다시 해성으로 돌아올 거야?”“나?”하도연은 잠시 생각했다.“갓 경성으로 발령받았으니, 이변이 없는 한 향후 2년은 여기 있을 것 같아.”성유준은 당분간 경성을 떠날 가능성이 없고, 막내의 생활과 업무 중심도 모두 이곳에 있다.그녀가 경성에 머물러야 막내가 무슨 일을 만났을 때 더 의지할 수 있을 테니까.“아...”구민호는 감정을 알 수 없는 대답을 하며 입술을 깨물었다.“나도 아마 해성에 남지 않을 것 같아. 외할아버지가 계속 회사 경영을 빨리 맡으라고 하시거든.”사실 그는 작년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북영시에서 보냈다.다만 무엇 때문에 망설였는지, 외할아버지로부터 금씨 그룹을 넘겨받는 것을 좀처럼 답하지 못하고 있었다.구씨와 금씨의 집안일에 관한 것이니, 곧 이혼하게 될 하도연이 섣불리 조언하기는 어려웠다.“좋네.”“뭐가 좋아?”구민호는 아이처럼 투덜거렸다.“누나, 내가 북영시로 가면 앞으로 밥 한번 사달라고 할 수도 없잖아.”해성과 경성은 그리 멀지 않았다.200킬로, 차로 두 시간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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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2화

황아림이 병원에 갔으니, 하도연은 더 이상 걱정할 일이 없어 오랜만에 푹 잘 수 있었다.단, 어느 가정부가 실수로 말을 흘렸는지, 황아림이 집 대문 앞에서 무릎 꿇다가 기절했다는 소문이 결국 하용건의 귀에까지 들어갔다.하도연은 1층으로 내려오자마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식탁 앞에 앉아 있던 하용건은 그녀가 내려오는 것을 보자 죽을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듣기로는, 그 여비서가 어젯밤에 왔다고? 심지어 병원에 실려 갔다면서?”하도연은 빈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네, 무릎을 꿇다가 기절했대요.”“터무니없어!”하용건은 갑자기 힘껏 식탁을 내리치며 호통쳤다.“그 여자는 구씨 집안 대문 앞에 가서 무릎을 꿇었어야지! 뭐 하러 우리 집 대문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게냐? 그 구씨 가문이 뭐가 그렇게 대단해서 네가 그렇게까지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냐?”하용건은 하도연이 얼굴이 얇아, 구씨 가문과의 정분을 고려해 그 자리에서 황아림을 쫓아내지 못한 줄 알았다.식당에 있던 몇 사람은 모두 깜짝 놀랐다.차경희는 하도연에게 찐 만두를 건녀주며 감싸듯 말했다.“화가 나면 구정민한테 화풀이하지, 왜 식구들한테 식탁을 두드리고 그래요?”그러나 하도연은 잠시 놀랐지만, 하용건의 말을 듣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하도연은 웃으며 말했다.“할아버지가 저를 엄청나게 혼내실 줄 알았어요.”하용건은 평생 가문의 명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다.황아림이 추운 겨울에 하씨 집 대문 앞까지 와서 무릎을 꿇은 것은 남의 눈에는 처량하고 불쌍해 보일 테고, 하씨 집안이 자칫하면 오히려 누명을 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하용건의 반응은 확실히 하도연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왜 너를 혼내?”하용건은 그녀를 흘겨보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내가 그렇게 사리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제가 구씨 가문을 고려한 게 아니에요. 그냥 그 여자랑 입씨름하기 싫었을 뿐이에요.”하도연이 설명했다.“어젯밤에 소란을 피웠으면 할아버지와 할머니 주무시는 데 방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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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3화

하도연은 잠시 멍했다.수년간, 그녀는 자신을 차갑고 인정머리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녀가 있는 그 자리에서 만약 인정을 베풀었다면, 그 자리가 부여한 권리에 해를 끼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그래서 그녀는 떳떳했고, 그런 말들이 귀에 들어와도 웃어넘길 수 있었다.하지만 구정훈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그녀와 구정훈은 사실 한때 꽤 괜찮은 시간을 보냈었다.결혼 초기에는 따뜻한 정이 오갈 때도 있었다.그때 찾아온 사람들을 그녀가 거절할 때마다, 구정훈은 늘 웃으며 말했다.도연이는 세상에서 제일 원칙과 소신이 확실한 사람이라고.그런데 이제 그녀가 거절한 사람이 그의 소중한 사람이 되니 그는 말을 바꿨다.그녀는 더 이상 원칙과 소신이 확실한 사람이 아니라, 냉정한 사람이 되어버렸다.그녀는 눈가에 스치는 동요를 가볍게 털어내며 물었다.“그 여자가 누군데? 내가 왜 그 여자에게 냉정하면 안 된다는 거야?”그녀가 거절한 사람 중 황아림의 신분은 가장 하찮은 편이었다.‘그저 그녀의 남편과 황아림의 관계가 애매하다는 이유만으로, 황아림에게 특별히 대해야 하나? 이건 대체 어디서 나온 억지 논리야.’구정훈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겨우 화를 누르며 말했다.“그냥 살길을 남겨달라고 부탁한 것뿐인데, 왜 그렇게 고고하게 굴어? 싫다고 했으면 됐지 굳이 대문 앞에서 무릎 꿇려서 기절시킬 필요까지 없잖아….”하도연이 그의 입에서 이렇게나 많은 불만을 듣기는 처음이었다.하지만 불만이 쌓일수록, 하도연은 그가 점점 무능해 보일 뿐이었다.남자로서 결혼 관계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것도 모자라, 아내에게 자신의 연약하고 가련한 그녀를 너그럽게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꼴이라니.그는 하도연도, 황아림도 전혀 알지 못했다.하도연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그럼, 당신이 바라는 게 뭐야?”“너…”구정훈은 그녀의 맑은 눈동자를 마주하자, 하고 싶던 말이 순간 목구멍에 막혀 버렸다.그가 바랐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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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4화

구정훈은 스스로 떳떳하다고 자부했다.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음 한구석에선 때늦은 후회가 피어올랐다.그럼에도 그는 하도연이 진짜로 이혼을 감행할 리는 없다고 굳게 믿었다.자신보다 더 나은 정략결혼 상대는 없다는 사실을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을 테니까.해성 전체를 통틀어 구씨 가문만큼 하씨 가문의 격에 어울리는 집안은 없었기에, 하도연이 눈높이를 낮춰 격이 떨어지는 상대를 만날 리도 만무했다.그러나 하도연은 그의 예상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녀는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해묵은 짐을 덜어낸 홀가분한 기색으로 대답했다.“지금 바로 승낙해줘서 정말 다행이다. 며칠 내로 시간 내서 해성에 다녀올게.”마치 1초라도 늦으면 그가 마음을 바꿀까 봐 전전긍긍하는 듯 그녀의 태도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했다.구정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무언가 말하려 할 때, 옆에 서 있던 비서가 공손히 다가와 입을 열었다.“대표님, 아림 씨 전화입니다.”병원에 있는 황아림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싶어, 구정훈은 깊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옆으로 비켜서서 전화를 받았다.하지만 전화를 마치고 돌아보니 하도연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비서 강준태는 참지 못하고 넌지시 조언을 건넸다.“대표님, 사모님께 먼저 숙이고 들어가시는 게 어떨까요? 아림 씨를 해고한 건 회장님이신데 아림 씨는 그 화살을 괜히 하씨 가문으로 돌렸잖아요? 평소 아림 씨와 대표님 관계가... 가깝긴 했으니 하씨 가문과 사모님이 언짢아하시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일로 이혼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마지막 말에는 강준태의 진심 어린 충고가 묻어났다.하도연을 잃는다면 구정훈이 어디 가서 이런 아내를 또 만날 수 있겠는가.그녀만 곁에 있다면 구씨 가문의 후계자 자리는 굳건하겠지만 그녀가 떠난다면... 모든 상황은 장담할 수 없게 될 터였다.황아림이야 사모님의 눈을 피해 가끔 즐기는 상대라면 몰라도, 제정신을 가진 남자라면 비서 하나 때문에 친정 세력 든든한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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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5화

하도연은 주최 측에 가볍게 목례하고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목적은 이미 달성한 것 아닌가요?”하씨 가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건 구정훈에게 보여주기 위한 고육지계였고 구정훈은 그녀의 의도대로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어주었다.“도연 언니.”황아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다른 목적은 없어요. 전 그저 구온 그룹에서 쫓겨나 밥줄을 잃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언니가 그렇게 속 좁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 잘 알아요. 회장님께 언니가 한마디만 잘해주신다면, 전 분명히 회사에 남을 수 있을 거예요...”몹시 억울하고 희생하는 듯한 말투였지만, 정작 그 속에 숨겨진 무례하고도 뻔뻔한 요구는 듣는 이의 미간을 절로 찌푸리게 했다.그녀는 늘 이런 식이었고 구정훈은 매번 그 얄팍한 연기에 속아 넘어갔다.하지만 하도연은 구정훈처럼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단숨에 상황의 핵심을 꿰뚫는 말로 차갑게 되받아쳤다.“구온 그룹을 못 떠나는 건가요, 아니면 구정훈 씨를 못 떠나는 건가요? 황 비서님, 조금이라도 영리하신 사람이라면 이런 식으로 몇 번씩이나 내 인내심을 시험하며 번거롭게 굴지는 말았어야죠. 아이를 앞세워 신분 상승을 노리든, 구씨 가문에 가서 죽네 사네 생떼를 쓰든... 그게 지금 당신이 부리는 수작보다는 훨씬 고상해 보였을 겁니다.”하도연은 자신과 구정훈의 결혼이 파국에 이른 근본적인 이유가 황아림 때문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그들이 번번이 그녀를 도발하지만 않는다면, 하도연 역시 굳이 황아림 같은 여자를 상대로 날을 세울 이유가 전혀 없었다.“구정훈과 나는 조만간 이혼할 거니까 더는 귀찮게 하지 말아요.”말을 마치고 하도연이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황아림이 물러설 기미 없이 목소리를 높였다.“하도연 씨, 사실 난 당신이 이혼하든 말든 관심 없어요. 말했잖아요, 난 그저 이 직업이 필요할 뿐이라고. 게다가 어차피 이혼할 사이인데, 구 대표님의 비서가 누구든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 당신은 귀하신 하씨 가문 아가씨잖아요, 왜 굳이 나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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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6화

병원에 도착하자 서진이 동행하려 했지만 하도연은 만류했다.“그럴 것 없어. 성유준에게 상황만 전달해 둬.”하도연은 황아림이 감히 선을 넘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대등한 관계에서 약점을 쥐는 건 상대의 명줄을 쥐는 것과 같았으니까.이 상황에서 황아림이 최후의 카드를 섣불리 써버리는 건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하지만 온채아와 관련된 일이라면 단 만분의 일의 확률이라도 모험할 수 없었다.성유준에게 미리 알리는 것도 만약을 대비한 안전장치였다.서진은 아쉬운 듯 물러났고 하도연은 홀로 입원실로 향했다.“왔네요.”병상에 누운 황아림은 언뜻 보기엔 무척이나 수척하고 허약해 보였다.“당신 같은 사람에게도 약점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그 아이는 내 동생이지, 약점이 아니에요.”하도연에게 가족이란 약점이 아닌 갑옷과 같았다.가족은 그녀를 더욱 이성적이고 신중하게 만들어, 사소한 실수조차 범하지 않게 하는 든든한 방패였다.하도연은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긴 다리를 우아하게 꼬고 앉은 모습은 협박당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일상적인 협상 테이블에 앉은 사람처럼 여유롭기만 했다.“말해봐요. 구씨 가문을 움직여서 회사에 남게 해달라는 거 말고 또 뭘 원하는지?”하도연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요구사항이 고작 이것뿐이었다면, 황아림이 그녀를 굳이 병원까지 불러들일 리가 없었다.황아림은 그녀의 태연한 모습에 실소를 터뜨리며 그 가면을 조금씩 깨뜨려 보려는 듯 입을 열었다.“저 임신했어요. 구 대표님 아이예요. 그러니 이 아이, 반드시 구씨 가문 족보에 올려야겠어요.”세상 그 어떤 여자라 해도 남편의 혼외자 문제 앞에서는 태연할 수 없는 법이다. 하도연도 찰나의 순간 멍하니 멈칫했다.구정훈이 아침부터 그토록 막무가내로 그녀를 몰아세웠던 이유가 이제야 납득이 갔다.무릎 위에 놓인 하도연의 손가락이 소리 없이 움츠러들었지만, 목소리만큼은 여전히 차갑고 단호했다.“전화로도 이미 말했을 텐데요. 나랑 구정훈은 곧 이혼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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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7화

여자의 손바닥은 그녀의 성격처럼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구민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 서늘함이 가시고 다시 시야가 트이자, 그는 괜히 멋쩍은 듯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저, 저 지금 갈게요.”하는 짓이 딱 애였다.그가 성큼성큼 걸어 나간 뒤, 하도연은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황아림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딱히 이겼다는 쾌감은 들지 않았다.아마도 황아림의 다리를 타고 흐르는 선혈이 너무도 형형했기 때문이리라.황아림은 고통으로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면서도 하도연을 향한 추궁을 잊지 않았다.“또 언니가 무슨 수작을 부린 거죠? 구 대표님은요? 왜 대표님이 아니라 구민호가 온 거냐고요...”“누나!”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민호가 다시 돌아와 길고 깨끗한 손으로 하도연의 손목을 잡고 뒤로 가볍게 끌어당겼다.“의사 선생님 오셨어요.”주치의는 황아림의 상태를 확인하고 즉시 수술실로 들여보냈다.수술실 문이 닫히는 것을 보며 하도연은 고개를 들어 어느덧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진 구민호를 바라보았다.“네 형은?”황아림이 아이까지 내걸었을 정도면,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별다른 이변이 없었다면 방금 병실에 나타났어야 할 사람은 분명 구정훈이었을 터였다.“아빠가 경성에 오셨거든요.”구민호의 귓가엔 여전히 발그레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는 방금 하도연을 잡았던 손바닥을 은근히 비비며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황아림이 어제 하씨 가문 본가에서 무릎까지 꿇었다는 이야기가 오늘 새벽에 본가 귀에 들어갔나 봐요. 그 바람에 할아버지께서 노발대발하셔서 아빠가 부랴부랴 움직이신 거고요. 아마 지금쯤 구정훈을 끌고 하씨 가문에 사과하러 가셨을 거예요.”하도연은 예상치 못한 소식에 놀랐다.“그걸 새벽에 알았다고?”할아버지조차 그녀가 집을 나서기 직전에야 겨우 아셨던 일인데, 구씨 가문의 정보통이 그보다 더 빨랐다니 의외였다.구정훈이 제 입으로 털어놓았을 리는 만무했고 그녀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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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8화

분명하게 들리지만 실상은 모호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영리한 하도연조차 그가 가리키는 게 무엇인지 단번에 간파하기 힘들 정도였다.오직 그의 몫이라니...향후 구씨 가문이 지분 분할을 통해 그의 손에 쥐여 줄 재산도 그의 몫이겠지만, 만약 그가 작정하고 후계 다툼에 뛰어든다면 구씨 가문 전체가 그의 손아귀에 들어올 수도 있었다.게다가 금씨 가문의 전폭적인 지지까지 등에 업는다면, 그가 구씨 가문을 통째로 집어삼킬 가능성은 차고 넘쳤다.과거 구정훈이 후계자 자리에 앉은 건 순전히 시기가 좋았던 덕분이었다. 당시 구민호는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상태였고 병석에 누운 구강우는 급히 후계자가 필요했으니까.구정훈의 지금 위치는 그저 운과 타이밍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뿐이었다.구민호는 그녀의 눈에 스친 의구심을 놓치지 않고 담백하게 물었다.“그래도 돼요?”하도연이 옅은 미소를 띠며 답했다.“당연하지. 그건 구씨 가문의 자손으로서 네가 누릴 정당한 권리니까.”그것은 그녀가 간섭할 영역이 아니었다.사실 구민호는 다소 반항적인 기질이 있을지언정 능력만큼은 구정훈에게 뒤지지 않는 녀석이었다.하도연의 긍정적인 대답에 구민호의 수려한 눈매에는 주인에게 인정받은 강아지 같은 기쁨이 스쳤지만, 이어진 뒷말에 치켜세웠던 꼬리가 다시금 축 처지고 말았다.하지만 그는 금세 생각을 고쳐먹었는지 눈꼬리를 살짝 휘어 접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네. 누나 말 들을게요.”앞 문장만 듣겠다는 뜻이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하도연은 별다른 의심 없이 그와 함께 병동을 나섰다.“아가씨.”미리 연락을 받고 로비 앞에 대기 중이던 서진이 구민호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어머, 민호 아니니? 경성엔 언제 왔어?”서진은 하도연의 곁을 워낙 오랫동안 보필해온 터라, 구민호는 가끔 하도연과 연락이 닿지 않을 때면 그녀를 찾곤 했다. 그렇게 몇 번 연락을 주고받다 보니 자연스레 가까워진 사이였다. 게다가 그녀는 구민호보다 일곱 살이나 많았기에, 하도연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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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9화

이것 말고는 구씨 가문이 어떤 답변을 내놓아도 하용건을 만족시키기 어려울 것이 자명했다.그동안 구씨 가문이 해성에서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하씨 가문의 조력이 컸다.가문의 명운을 위해서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하씨 가문과의 끈만큼은 놓쳐선 안 됐다.후계자 자리야...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법이었다.구강우는 하도연 곁에 서 있는 막내아들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한숨을 삼켰다.나이대만 엇비슷했어도 구민호를 대신 정략결혼 상대로 내세우는 것도 방법이었겠지만, 무려 여덟 살이나 연하인 데다 워낙 되바라진 놈이라 남의 뜻대로 움직여 줄 위인이 아니었다.무엇보다 외가인 금씨 가문에서 금지옥엽으로 키운 외동아들을 이혼녀와 맺어주려 할 리가 만무했다. 아무리 그 상대가 하씨 가문의 고귀한 장녀라 할지라도 말이다.구강우의 속내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겉으로는 흔쾌히 수락하며 대답했다.“당연한 말씀입니다. 어르신께서 먼저 꺼내지 않으셨어도 저희 아버지 또한 진작 같은 생각이셨을 겁니다.”이런 판국에는 시원하게 확답을 던지지 않을 바엔 차라리 입을 닫는 편이 나았다.조금이라도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간 두 가문의 향후 관계에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금이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구정훈도 그간 구씨 가문을 위해 일한 공이 결코 적지는 않았으나, 감히 하씨 가문과 척을 지면서까지 안고 가야 할 절대적인 카드는 아니었다.하용건은 그제야 서슬 퍼런 안색을 누그러뜨리며 구민호를 쳐다봤다.“네 녀석이 네 아비와 함께 오지 않은 걸 보고 진작 도연이에게 쪼르르 달려갔을 줄 알았다.”“할아버지 눈은 정말 못 속이겠네요.”구민호는 쑥스러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태연하게 인정하더니 차경희와 강미진에게도 싹싹하게 인사를 올렸다.평소 하도연의 말이라면 죽는시늉까지 하는 데다 나이 차도 꽤 났기에 자리에 모인 이들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다만 구강우만이 그런 아들을 째려보았다.‘못된 녀석! 집에서는 입에 지퍼라도 채운 듯 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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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0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하도연의 목소리는 시리도록 차갑고 무정했다.마치 한 생명의 무게가 그녀에겐 길가의 돌멩이만도 못한 것처럼.구정훈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올라 관자놀이가 파르르 떨렸지만, 가까스로 터지려는 화를 억누르며 입을 뗐다.“도연아, 너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 아무리 미워도 손은 대지 말았어야지.”그의 말투에는 실망감이 역력했다.그가 이 아이의 정체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겨를조차 없었다고는 하나, 하도연이 이토록 생명을 경시할 만큼 냉혹한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하도연은 더는 대꾸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저 구정훈의 가당치 않은 훈계에 입꼬리를 비틀며 서늘한 비웃음을 흘릴 뿐이었다.멀지 않은 곳에서, 구민호의 시선이 무심한 척 하도연의 곧게 뻗은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그녀가 아주 잠깐 흔들렸던 그 찰나의 순간을, 그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그는 알 수 있었다.누나가 한때 구정훈을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사실을.사랑했었다라...하지만 상관없었다.하도연은 마당에 떨어져 뒹구는 빛바랜 낙엽을 응시하며 무미건조하게 대꾸했다.“당신이 나라는 사람을 단 한 번도 제대로 안 적이 없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구정훈, 내 동정심은 당신 생각만큼 그렇게 싸구려가 아니야.”황아림이 감히 제 배 속의 아이 목숨까지 이용해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던 악행을 그저 조용히 묻어둔 것만으로도 무릎 꿇고 고마워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감히 제 쪽에서 이따위 궤변으로 따져 묻고 들 줄이야.“너 지금...”남자가 막 입을 열어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 하도연의 손끝이 훅 허전해졌다. 누군가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챈 것이었다.고개를 돌리자, 구민호의 얼굴에 보기 드문 냉랭함이 서려 있었다.“구정훈, 설령 그 핏덩이가 귀신이 되어 나타나더라도 천벌을 받아야 할 건 형의 그 대단한 비서야.”추호의 체면도 차리지 않는 서슬 퍼런 어조였다.하지만 수화기 너머의 구정훈은 이미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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