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 Chapter 841 - Chapter 850

861 Chapters

제841화

성유준이 월강 레지던스로 돌아왔을 때, 온채아는 거실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따뜻한 대추차를 마시고 있었다.이미숙은 옆에 앉아 걱정스러운 얼굴로 온채아의 배를 살피고 있었다.“왜 그래?”성유준은 빠르게 다가오며 가장 먼저 온채아의 얼굴부터 살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방금 아기가 평소보다 좀 세게 움직였는데 할머니가 너무 놀라셔서 그래요.”온채아가 웃으며 옆자리를 두드렸다.“오빠도 참, 할머니한테 옮았나 봐요.”성유준은 온채아 옆에 앉아 불룩한 배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안에서 작고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게 느껴지자 잔뜩 찌푸렸던 미간이 조금 풀렸다.이미숙은 여전히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이제 곧 애 낳을 사람이 무슨 진료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한의원까지 나가야 해? 내 말 듣고 한동안 집에서 쉬어.”온채아가 난감한 얼굴로 성유준을 바라봤다.성유준은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고 중재에 나섰다.“할머니, 채아도 자기 몸은 알아요. 요즘은 진료도 거의 안 나가고 있고요.”이미숙도 온채아가 걱정돼 하는 말일 뿐이었다. 더 잔소리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 직접 끓이고 있는 국을 살폈다.거실에 두 사람만 남자 온채아가 낮게 물었다.“그런데 오빠는 갑자기 왜 왔어요?”“너랑 있으려고.”성유준이 온채아를 바라보며 조금 새침하게 되물었다.“안 돼?”온채아가 웃음을 터뜨렸다.“되죠. 저는 너무 좋죠.”어릴 때부터 온채아는 성유준이 부드러운 말을 듣기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성유준의 기분을 풀어 주는 건 생각보다 아주 쉬운 일이었다.잠시 뒤 이미숙이 두 사람을 불러 점심을 먹게 했다.두 사람이 식탁에 앉자 가정부들이 아직 반찬을 올리는 중인데도 닭 다리가 들어간 국 한 그릇이 온채아 앞에 먼저 놓였다.이미숙이 곁에 앉아 웃으며 말했다.“닭 다리가 식기 전에 얼른 먹어. 국물은 싫으면 안 먹어도 되고.”“네.”온채아가 얌전히 대답했다.온채아는 닭 다리를 먹고 반찬도 제법 많이 먹은 뒤 만족스럽게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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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2화

성유준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그럼 누구겠어?”구씨 집안사람들이 성유준과 온채아의 관계를 대놓고 알아보고 다니는 동안 성유준은 일부러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구정훈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되면 적어도 온채아에게 함부로 접근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구씨 집안이 후계자를 고르는 안목이 이 정도로 형편없을 줄은 몰랐다.이렇게까지 어리석을 줄이야.구정훈은 마른침을 삼키며 빠르게 말을 정리했다.“성 대표님, 이번 일은 제가 경솔했어요. 저는 그저 온 선생님을 통해 하씨 가문의 입장을 조금 알아보려 했을 뿐이고, 불쾌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어요. 만약 제가 그분이...”구정훈은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멈췄다.강준태가 성유준이 별다른 배경 없는 여자 의사와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고했을 때도 구정훈은 반신반의했다.그런데 이제 성유준이 직접 온채아가 자기 아내라고 말했다.“그 사실을 알았으면 안 갔을 것 같아?”성유준이 구정훈의 말을 끊었다. 그의 목소리는 싸늘했다.“구 대표는 아마 티 안 나는 방법을 찾았겠지. 당신은 늘 자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믿고, 다른 사람은 전부 당신이 움직일 수 있는 바둑알처럼 생각하니까.”구정훈은 말문이 막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성유준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 번 두드린 뒤 천천히 말을 이었다.“구정훈, 나는 원래도 너한테 어느 정도 여지는 남겨 두고 있었어.”구정훈이 뜻밖이라는 듯 멈칫했다.이렇게까지 몰아붙인 게 여지를 남긴 거라고?하지만 구정훈은 반문하지 못했다.괜히 전화기 너머의 성유준을 다시 자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구정훈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 하씨 가문 어른들 앞에서나 쓰던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성 대표님, 이번 일은 제가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어요. 온 선생님과 대표님의 관계를 모르고 불쑥 찾아간 건 제 잘못이에요.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앞으로?”성유준이 마치 비웃는 듯, 아주 나지막하고 옅은 목소리로 말했다.“구정훈, 너한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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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3화

전화가 끊긴 뒤에도 구정훈은 한동안 차 안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누군가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자기 전화를 끊은 건 처음이었다.구씨 집안의 장남, 하씨 가문의 사위, 구온 그룹의 후계자인 그는 여러 신분 덕분에 어디를 가든 존중받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방금 성유준의 말투는 길을 막은 개 한 마리를 쫓아내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게다가 구진택에게는 이제 더 설명하기 어려워졌다.“경성 지사로 가.”한참 만에 구정훈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강준태가 대답하고 차를 출발시켰다.룸미러를 통해 보니 구정훈은 눈을 감은 채 좌석에 기대 있었다.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대표님, 그럼 앞으로는...”“일단 회사로 가.”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구정훈 자신도 명확하게 생각하지 못했다.성유준이 마지막에 한 말은 협박이 아니라 통보에 가까웠다.강준태는 룸미러로 구정훈을 빠르게 한 번 보고는 무언가 말하려다 결국 입을 다물었다.차가 구온 그룹 경성 지사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갈 때 구정훈의 휴대폰이 울렸다.발신자를 확인한 구정훈의 미간이 더 깊게 찌푸려졌다.“어머니.”“정훈아.”금재은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네 아버지가 빨리 해성으로 돌아오래. 할아버지가 오늘 아침 집안사람들을 전부 본가로 불러 모으셨어. 의논할 게 있다고...”“무슨 문제를 의논한다는 거죠?”전화기 너머에서 잠시 말이 끊겼다.“네 일 말이야.”구정훈은 휴대폰을 꽉 움켜쥐었다.구정훈은 구진택이 말하는 의논이 결코 모두의 의견을 듣는 경우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알겠어요.”구정훈은 차분하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차가 완전히 멈추자 구정훈은 바로 문을 열고 내려 엘리베이터 쪽으로 빠르게 걸었다.강준태는 다급한 걸음으로 뒤따랐다. 그는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지만 감히 입을 열지는 못했다.사무실에 들어온 구정훈은 코트를 소파에 아무렇게나 던지고는 서랍을 열어 서류 하나를 꺼냈다. 손가락이 표지에 잠시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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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4화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오랫동안 하도연 곁에서 일해 온 탓인지, 굳이 묻지 않아도 지금 하도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하도연은 정계에 몸담은 뒤로 적지 않은 일을 겪었다. 아무리 비열하고 더러운 수작을 당해도 진심으로 화를 낸 적은 거의 없었다.하지만 구정훈이 어리석게도 온채아를 찾아간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임신 중인 온채아는 만삭에 가까워 배가 많이 불러 있었다. 성씨 가문과 하씨 가문 모두 혹시라도 온채아가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거나 감정에 영향을 받을까 봐 조심스럽게 보호하고 있었다.그런데 구정훈은 자기 이익 때문에 직접 온채아의 진료실까지 찾아갔다.게다가 그가 온채아에게 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아직 아무도 몰랐다.“채아와 하씨 가문의 관계를 조사했어?”하도연이 갑자기 물었다.“조사하긴 했지만 알아낼 수는 없을 거예요.”관련 정보는 모두 철저히 봉인되어 있었다.서진이 이어 말했다.“오늘 한의원에 간 것도 아마 진료를 핑계 삼아 막내 아가씨 쪽을 떠보려는 거였을 거예요.”하도연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그녀는 며칠 전 월강 레지던스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온채아는 소파에 기대앉아 대추차를 조금씩 홀짝이며 말했다.“도연 언니, 언니네 가족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에요.”그리고 온채아가 자신을 볼 때마다 눈빛을 반짝이며 반갑게 부르던 모습도 떠올랐다.그런데 이제 구정훈이 온채아에게까지 손을 뻗었다.무엇보다 온채아는 아직 자신이 하도연의 친동생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오늘 진료실에서 구정훈에게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듣기라도 했다면?하도연은 옆으로 늘어뜨린 손을 갑자기 꽉 움켜쥐었다.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큰아가씨.”서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성 대표님 쪽에도 미리 말씀드릴까요?”“아니.”하도연은 금세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성유준은 우리보다 먼저 알았을 가능성이 커. 그쪽에서 이미 처리했을 거야.”성유준이 온채아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생각하면, 구정훈이 오늘 한의원에 갔다는 소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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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5화

구정훈은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하도연은 정각에 접견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뒤에는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오늘 하도연은 아이보리색 실크 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다. 칼라에 단 진주 브로치가 조명 아래에서 은은하게 빛났다.지난번 이곳에서 철저히 공적인 태도로 선을 그었을 때보다 오늘의 하도연에게서는 한층 더 차가운 기운이 흘렀다.구정훈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술을 달싹이며 그녀를 부르려 했지만 하도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구 대표님, 앉으세요.”하도연은 그대로 긴 테이블 반대편에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꼬박 2m가 넘는 거리가 벌어졌다.마치 두 사람의 결혼생활 같았다.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둘 사이에는 늘 무언가가 가로막혀 있었다.구정훈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입 밖으로 나올 뻔한 애칭을 삼켰다.“하 국장님이 오늘 저를 보자고 하신 건...”구정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하도연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구정훈, 어제 명안 한의원에는 왜 갔어?”구정훈의 표정이 잠시 굳었지만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왔다.“요즘 속이 좀 안 좋아서. 거기가 평이 좋다고 하길래...”“속이 안 좋으면 종합병원에 가면 되잖아. 아니면 구씨 집안 주치의를 부르든가.”하도연이 말을 잘랐다. 그녀는 높지 않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굳이 한의원까지 찾아가면서 온 선생님이 진료하는 시간까지 골라 갔더라.”“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왜 물어보는 거지?”구정훈은 얼굴에 걸려 있던 부드러운 미소를 거뒀다. 심지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상관없다는 기색까지 비쳤다.하도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온채아 씨는 그냥 평범한 의사야. 너와 아무 관계도 없고, 하씨 가문과도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어. 찾아가서 귀찮게 해 봐야 아무 의미 없어.”구정훈은 잠시 침묵하다가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온 선생님이 하씨 가문과 가깝게 지낸다는 말을 들었어. 그 사람을 통해 네 생각을 조금 알아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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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6화

하도연의 시선이 맞은편에 앉은 구정훈에게 머물렀다.그녀의 눈에는 실망도, 비웃음도 아닌, 거의 무심하다 싶을 정도의 냉정한 심문만이 담겨 있었다.“구정훈.”하도연이 낮게 불렀다.“지금 나한테 조건을 거는 거야?”구정훈의 등이 순간 굳어졌다. 그래도 얼굴에는 여전히 진지한 표정을 유지했다.“도연아, 조건을 걸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그냥 뭐?”하도연이 말을 끊었다.“이혼에 협조하는 대신 성유준을 멈추게 해 달라는 거잖아. 원래 네가 해야 할 일을 거래 조건으로 내걸 수 있다고 생각해?”구정훈의 얼굴에서 서서히 핏기가 가셨다.하도연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이혼 절차는 감정적으로든 법적으로든 어차피 구정훈이 따라야 했다.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구정훈, 잘 들어.”하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내려다봤다. 차갑고 단호한 눈빛이었다.“넌 이혼하기 싫어도 해야 해. 나한테 조건을 걸 자격도 없어.”“성유준 쪽은...”하도연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입꼬리를 씩 올렸다.“그 사람을 어떻게 멈출지 고민할 시간에 네가 어떻게 수습할지 생각하는 게 나을 거야.”“언제 이혼 서류 정리할지 정했으면 서진한테 연락해.”그 말을 끝으로 하도연은 구정훈에게 더 이상 시선조차 주지 않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하이힐이 바닥에 부딪히며 맑고 차가운 소리를 냈다.구정훈은 텅 빈 접견실에 혼자 앉아 눈앞의 식어 버린 차를 바라봤다.지난 번에 이렇게까지 초라해진 건 하도연이 처음 이혼합의서를 내밀었을 때였다.그때는 그저 자신을 겁주려는 줄 알았다. 며칠만 지나면 마음을 돌릴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제야 완전히 알았다.하도연은 겁을 주려던 게 아니었다.정말로 구정훈과 깨끗하게 끝내려 했다. 단 한 치의 여지도 남길 생각이 없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구정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정장 자락을 정리한 뒤 접견실을 나섰다.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서진조차 배웅하러 나오지 않았다.구정훈은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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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7화

구정훈은 눈앞에 내밀어진 명함을 한 번 훑어봤다.명함은 지나치게 단순했다. 이름 하나와 해외 전화번호만 있을 뿐 회사명도, 직함도 적혀 있지 않았다.“방금 저와 거래를 하고 싶다고 하셨죠.”구정훈은 명함에서 시선을 거뒀다.“무슨 거래에요?”서강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흐릿한 눈동자에 날카로운 빛이 떠올랐다. 그 모습은 마치 이미 모든 것을 손바닥에 거머쥔 것 같았다.서강진은 명함을 두 사람 사이의 팔걸이 수납함 위에 내려놓고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구 대표가 지금 어떤 처지인지는 나도 대충 알고 있네.”“한빛 그룹이 움직이면서 구씨 집안이 여러 사업을 잃었고, 경성 지사까지 문을 닫게 생겼지. 하씨 가문의 큰아가씨는 물러설 생각도 없고.”“구씨 집안에서의 입지가 꽤 난처해졌겠군.”구정훈이 되물었다.“오늘 누군가를 대신해 저를 설득하러 오신 거예요?”“아무도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하지 않았어.”서강진은 고개를 저었다.“내가 구 대표를 찾아온 거네.”“왜 하필 저죠?”“구 대표에게는 내가 원하는 게 있으니까.”서강진은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그리고 나한테는 구 대표가 필요한 게 있어.”‘내게 필요한 것이라고?’구정훈은 서강진을 한참 바라보다 먼저 물었다.“원하는 게 뭐예요?”서강진이 몸을 살짝 돌렸다. 그의 탁한 눈동자에 순간 차갑고 음침한 눈빛이 반짝였다.“성유준.”그의 가벼운 말투에서 서리가 낀 것처럼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구정훈이 살짝 놀랐다.“성 대표님이요?”“그래.”서강진은 단호하게 말했다.“성유준을 끌어내리는 거네.”구정훈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서강진의 얼굴을 몇 초 동안 바라보며 진심인지 아닌지 가늠했다.잠시 후 구정훈은 좌석에 등을 기대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서 선생님, 욕심이 크시네요. 성 대표님이 어떤 사람인지 저보다 더 잘 아실 텐데요. 경성에서 그 사람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나 혼자라면 안 되겠지.”서강진은 순순히 인정했다.“하지만 구 대표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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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8화

서강진의 질문은 느긋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본 사람처럼 확신에 차 있었다.구정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강진이 스스로 이어 말하기를 기다렸다.서강진 역시 구정훈이 질문을 되받기를 기대하지 않았는지, 흐릿한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하씨 가문에서 20년 넘게 찾아온 딸이네. 하씨 가문의 막내딸이지.”차 안은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구정훈은 자기 심장이 순간 한 박자 건너뛴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그는 무심결에 내뱉었다.“그럴 리 없어요.”서강진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그럴 리 없다고?”“그럼 구 대표는 하씨 가문이 아무 배경도 없는 젊은 의사에게 왜 그렇게까지 신경을 쓴다고 생각하지?”“하도연이 왜 직접 나서서 구 대표에게 그 여자에게서 떨어지라고 경고했을까?”구정훈은 천천히 가죽 시트에 몸을 기댔다. 머릿속에서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빠르게 이어지기 시작했다.하예원이 체포된 일, 하선호가 해외로 보내진 일, 하씨 가문 사람들이 자꾸 월강 레지던스를 드나든 일...하나하나 따로 보면 우연처럼 보였다.하지만 그 중심에 온채아를 넣는 순간 모든 단서가 한 줄로 이어졌다.“성유준이 그 여자와 결혼한 것도 아마 좋아해서만은 아닐 걸세.”서강진이 계속 말했다.“하씨 가문이 그 딸을 다시 찾아오는 건 시간문제야. 성씨 가문과 하씨 가문이 손을 잡게 되면...”서강진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비웃듯 웃었다.“아, 아니군. 이미 손을 잡았지. 그래서 구 대표가 손 한번 제대로 못 써 보고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구 대표, 내가 내미는 건 사실상 지금 남은 유일한 기회네.”구정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말없이 창밖의 흐릿한 하늘을 바라보는 입술을 깨물었다.상황은 구정훈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했고 위험했다.온채아가 정말 하씨 가문에서 잃어버린 딸이라면, 오늘 자신이 한 행동은 하씨 가문에서 가장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을 건드린 것이나 다름없었다.구정훈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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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9화

구정훈은 차에서 내린 뒤 조금 떨어진 곳에 그대로 서 있는 검은 승용차로 걸어갔다.강준태는 차 옆에 서 있다가 구정훈이 다가오는 걸 보고 급히 마중 나왔다. 그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구 대표님, 아마 회장님께서 대표님께 전화하셨는데 못 받으셔서 제 쪽으로 연락하신 것 같아요. 회장님이... 뭔가 또 아신 모양이에요. 많이 화가 나셨습니다.”구정훈은 휴대폰을 꺼내 부재중 전화를 확인한 뒤 그대로 차에 탔다.“뭐라고 하셨어?”“당장 해성으로 돌아오라고 하셨어요.”강준태는 운전석에 앉은 뒤 잠시 망설이다가 있는 그대로 전했다.“회장님 말씀 그대로 전하면... 당장 돌아오라고, 안 그러면 영원히 돌아오지 말라고 하셨어요.”구정훈은 차갑게 웃었다.“그럼 대신 전화해서 당분간은 돌아갈 시간이 없다고 말씀드려.”강준태가 놀라 고개를 돌렸다.“대표님?”“왜?”구정훈이 그를 바라봤다.강준태는 오랫동안 구정훈 곁에서 일하며 그가 구진택 앞에서 얼마나 공손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지 봐 왔다.구진택에게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건 처음이었다.강준태가 망설이며 물었다.“정말 안 돌아가실 거예요? 회장님께서 원래도 많이 화가 나 계셨는데, 대표님이 이렇게까지 하시면...”“돌아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지?”구정훈이 강준태의 말을 자른 후, 마치 남의 일이라도 이야기하듯 평온한 목소리로 되물었다.“돌아가서 욕 한 바가지 먹고, 온 가족 앞에서 할아버지가 내 후계자 자리를 박탈하는 걸 듣고 있어야 하나?”예전의 구정훈은 늘 구진택을 자신의 버팀목이라고 생각했다.구씨 집안의 권력이야말로 자신의 모든 기반이라고 믿었다.하지만 오늘 서강진의 말을 듣고 한 가지를 깨달았다.온채아는 하씨 가문의 막내딸이었다.그 사실은 열쇠처럼 그동안 구정훈이 이해하지 못했던 모든 의문을 풀어 주는 동시에, 그를 전혀 다른 위치로 밀어 넣었다.이제 구정훈은 하씨 가문과 성유준 모두가 없애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었다.이 상황에서 구진택의 비위를 맞춘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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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0화

전화기 너머의 공기가 순간 얼어붙은 듯했다.이내 구진택의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는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위압감이 실렸다.“구정훈, 지금 나한테 시간이 없다고 하는 거야?”“네.”구정훈은 휴대폰을 움켜쥔 채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할아버지, 제 말을 좀 들어 보세요. 성 대표가 움직인 건 분명 저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 일은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무슨 결과?”“성 대표가 손을 뗄 겁니다.”구정훈은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그리고 하씨 가문과 성씨 가문이 구씨 집안에서 가져간 것들도 하나씩 전부 돌려놓게 할 겁니다.”이번에는 구진택뿐 아니라 강준태까지 입을 벌렸다가 끝내 끼어들지 못했다.강준태가 구정훈을 따라 일한 지도 오래됐지만, 구정훈이 구진택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예전의 구정훈은 구진택 앞에서 늘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했다.속으로 아무리 많은 생각을 품고 있어도 겉으로는 언제나 깍듯하고 공손했다.하지만 지금 구정훈의 눈매에는 모든 걸 걸고 끝까지 가겠다는 결의가 서려 있었다.“너 미쳤어?”마침내 구진택이 입을 열었다. 분노에 더해 당혹감까지 묻어났다.“성유준이 어떤 인간인지 경성에서 2년이나 있었으면서 아직도 몰라? 네가 무슨 수로 그놈을 멈춰 세우겠다는 거야?”“할아버지, 한 번만 믿어 주세요.”구정훈은 당차게 약속했다.“일주일 안에 결과를 보여 드릴게요.”수화기 너머로 오랫동안 침묵이 이어졌다.구정훈이 전화가 이미 끊긴 건가 싶을 정도였다.한참 뒤에야 구진택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까보다 한층 더 무거웠다.“정훈아,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구씨 집안이 여기까지 오는 게 쉬운 줄 알아? 네 개인적인 오기로 집안 전체를 걸지 마.”“알겠어요.”“네가 이 판에서 지면...”구진택은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하지만 뒤에 이어질 말은 굳이 듣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구정훈은 잠시 눈을 감았다.“지지 않을 겁니다.”통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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