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 Chapter 81 - Chapter 90

100 Chapters

제81화

온채아는 순간적으로 당황하며 무심결에 해명했다.“내가 한 짓 아니에요.”“누가 했든 일단 서정에게 사과해!”주율천의 어조는 단호했다.팔꿈치가 짓눌려 아팠지만 온채아는 굳건히 멈춰 서서 그가 아무리 끌어도 꿈쩍하지 않았다.“내가 안 했다고 했잖아요. 왜 사과해야 하는데요?”“채아야.”주율천은 잠시 멈칫하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예전 같았으면 망설임 없이 널 믿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널 모르겠어.”요즘 들어 그녀가 변한 모습을 주율천은 똑똑히 지켜봤다.지난번에 심서정의 머리를 깨뜨렸을 때도 그는 그저 그녀가 화가 나서 그랬을 거라고, 순간적인 실수였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한의원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매일같이 늦게 귀가하며 집안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오경애가 아이를 위한 약선 레시피를 부탁했을 때조차 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온채아를 보며 그는 그녀가 아직 어리고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며칠 전 레스토랑에서 벌어진 일로 그와 심서정은 곤경에 처했고 오히려 그녀에게 속없이 비웃음만 샀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하나하나 짚어보면 과거의 싹싹하고 착하며 분별력 있던 온채아와는 완전히 달랐다.그러니 어떻게 그녀를 믿는단 말인가...온채아는 입술을 살짝 비틀더니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평온하기 그지없었다.“그럼 믿고 싶은 대로 믿으세요.”‘그의 신뢰가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수사는 경찰이 하는 거지, 그가 하는 것도 아니잖아.’“뭐라고?”주율천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점점 잘생긴 얼굴에 실망감이 가득 차올랐다.그는 그녀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런 말을 꺼내기 전에 그는 신중하게 생각했다. 그녀가 그 말을 들으면 분명 억울해하거나 슬퍼할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예상 밖의 반응이었다. 그녀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그가 한 말에 아무렇지도 않은 건지, 아니면 그 사람 자체에 아무렇지도 않은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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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너무 낯설어서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그는 온채아를 꼼짝 않고 바라보며 만약 그녀가 인정한다면 차라리 목을 졸라 죽여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그러나 온채아는 고개를 떨군 채 되물었다.“당신은 아니었나요?”서로를 이용했을 뿐, 더 고결한 사람은 없었다.주율천은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억지로 자신을 바라보게 하며 물었다.“다시 한번 물을게. 신중하게 생각하고 대답해. 이 결혼, 처음부터 나를 이용해 온 거 맞아?”턱뼈가 탈골될 듯 꽉 쥐어짜는 바람에 온채아의 눈가가 고통으로 붉게 물들었고 이성도 조금씩 사라져 갔다. 그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맞아요! 맞다고요! 주율천, 이 결혼을 배신한 건 당신이에요. 그런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이렇게 떳떳하게 나를 추궁하는 거죠?”그녀는 마침내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그 질문을 터뜨렸다.처음에 그녀는 그의 곁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리라 생각했었다.그에게 잘 보이고 싶었고 평생 순종적인 주씨 가문의 둘째 며느리로 살고 싶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었다.턱을 쥐고 있는 힘이 점점 더 강해졌다. 주율천은 자신의 모든 교양을 동원해 그녀를 죽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냈다.“너에게 몇 번이나 설명했잖아. 이건 내 아내는 바뀌지 않을 거라고, 네가 영원히 주씨 가문의 둘째 며느리일 거라는 뜻 아니겠어? 온채아, 왜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온채아는 마치 자비를 베푸는 듯한 그의 말투에 비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주율천은 그녀가 잠시 침묵하자 자신이 너무 심했나 생각하며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고 손을 놓았다. 그는 원래 남을 몰아붙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마침 서정도 한빛 그룹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어 하던데, 네가 조장이니까 팀원을 뽑을 권한이 있겠지. 그걸 성의로 병원에 가서 그들 모자에게 제대로 사과해.”온채아는 이런 식으로 일이 전개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이성을 되찾은 그녀는 딱딱하게 말했다.“경력이나 능력으로 볼 때 심서정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자격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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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후회 안 해요.”온채아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그 문제는 이전에도 스스로에게 되물었던 터라 이미 답을 정해둔 상태였다.이 결혼이 아니었다면 또 소원희가 주씨 가문을 의식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이미 날개가 꺾인 채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했을 것이다.한의원조차도 성씨 가문이 눈치채는 순간, 더 이상 머물 수 없었을 것이다.따지고 보면 주씨 가문은 물론, 주율천조차 그녀를 박대하지 않았다.주율천이 좋은 남편이 되어주길 기대했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건 딱히 큰일도 아니었다.지난 삼 년은 그걸로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니까.성유준은 그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며 빈정거렸다.“그 정도로 좋아했던 거야?”그의 검은 눈은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그녀의 모든 가면을 벗겨내려는 듯했다.온채아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대답했다.“네.”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며 맑고 투명한 눈으로 웃으며 물었다. “성 대표님, 이 문제에 그렇게 신경 쓰시는 걸 보니, 너무 오래 솔로로 지내셔서 친구가 사랑받는 꼴을 못 보시는 건 아니겠죠?”주율천과 그는 한때 꽤 괜찮은 친구였다.성유준의 표정이 순간 굳어지더니, 곧 아무렇지 않다는 듯 되물었다.“내가 싱글이라고 누가 그래?”이번에는 온채아가 당황할 차례였다.그녀는 잠시 멍해지더니, 약간 뜻밖이면서도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그 감정을 붙잡을 새도 없이 놓치고 말았다.어쨌든 그녀는 이번 시비에서 질 뻔했지만 잠시 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축하드려요. 결혼식 하면 꼭 청첩장 보내줘요.”차에 올라탄 후에도 온채아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한참 생각한 끝에, 그녀는 드디어 이유를 깨달았다.아마도 ‘자기 것'을 지키려는 심리일 것이다.많은 여동생들이 겪듯이 오빠가 갑자기 여자친구가 생기면 가장 친했던 사람이었던 오빠에서 다른 여자의 남자친구로 바뀌게 된다. 그런 관계 변화 초기에 여동생이 약간 섭섭함을 느끼는 건 당연할 것이었다.비록 그녀와 성유준은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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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그런데 뜻밖에도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주율천 씨, 오셨네요.”여경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이 일은 심각하게 보면 심각하지만, 달리 보면 결국 집안일일 수도 있으니 개인적으로 화해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온채아의 무관심한 태도를 보며 주율천은 답답함을 느꼈다.“경찰에 맡기는 게 낫겠습니다.”온채아의 긴 속눈썹이 떨렸지만 말쑥한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그녀는 마치 방금 했던 말처럼 그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주율천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가 왜 이제는 약한 척조차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심지어 그녀가 잘못을 인정하고 애원한다면 과거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그냥 넘어가 줄 생각이었다.주율천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설령 순간적인 충동이었다 하더라도, 잘못을 저질렀다면 대가를 치러야죠.”말을 마친 후 그는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경찰은 또다시 형식적인 질문들을 쏟아냈고 당시 상황을 파악한 후에야 온채아를 보내주었다.한겨울 매서운 추위 속에서 온채아는 경찰서를 나섰다. 순식간에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익숙한 마이바흐 한 대가 정문 앞에 멈춰 섰다.그녀가 지나치려 하자 차창이 스르륵 내려가며 주율천의 완벽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드물게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내일 할머니 생신 잔치이니 같이 가야 해. 데리러 갈게.”온채아는 마침내 그가 왜 여기에 왔는지 이해했다. 역시 심서정 때문이었다.그녀와 아무리 사이가 나빠졌어도 심서정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그녀를 찾아올 사람이었다.그는 본가에서 화목한 부부의 모습을 연출해야 했다.하지만 이번에 온채아는 협조하고 싶지 않았다.“내일은 시간이 없어요.”그녀는 최대한 빨리 한빛 그룹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 했다.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야만 주씨 가문에서 벗어나도 성씨 가문이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그녀는 예전처럼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대며 자유롭지 못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주율천은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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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온채아는 주율천이 자신과 함께 본가에 돌아가려는 목적은 짐작했지만 민은하의 속내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하지만 본가에 도착하여 민은하 옆에 여러 명의 명문가 규수들이 서 있는 것을 보자 모든 것을 파악했다.오늘 잔치는 겉으로는 할머니의 생신 잔치지만, 사실은 주율천의 맞선 자리였던 것이다.민은하는 지난번 온채아가 과도한 위자료를 요구했던 것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듯했다.그녀에게 이혼하면 주율천은 언제든지 더 나은 상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애초에 온채아가 주율천과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과분한 일이었다는 것을 말이다.“율천이 왔구나.”온채아와 주율천이 함께 나타나자 민은하는 온채아가 아들의 팔에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면서도 겉으로는 늘 그랬듯 친절하게 말했다.“채아야, 할머니께서 네 이야기를 하시던 참이다. 어서 할머니께 인사드리러 가렴.”“네, 알겠습니다.”온채아는 굳이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눈치껏 물러났다.주율천도 말했다.“같이 가.”“율천아, 너는 잠시만 기다렸다가 가렴.”민은하가 그를 불러 세우며 평소와 다름없는 어조로 말했다.“오늘 심씨 가문, 장씨 가문의 따님들이 모두 함께 할머니께 생신 축하드리러 왔으니 다실에 가서 차도 마시면서 잘 대접해 드려. 소홀히 하지 말고.”주율천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사람들 앞에서 어머니의 체면을 깎을 수도 없었다.“알겠습니다.”어쩔 수 없이 온 자리였지만 온채아도 진심으로 할머니의 생신을 축하하고 싶었다.그녀는 홀에서 할머니를 찾았지만 할머니가 위층 작은 거실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먼저 음식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뷔페 테이블 앞에 막 도착했을 때, 누군가가 갑자기 그녀의 허리를 꼬집었다.온채아는 순간 소름이 돋아 뒤돌아선 후, 얼굴을 찡그리며 낮게 말했다.“성윤혁, 미쳤어? 여기가 어딘지 알고!”이곳은 주씨 가문 본가, 즉 그녀의 명목상의 시댁이었다.성윤혁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다실 방향을 바라보며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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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청순한 캠퍼스 퀸 타입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온채아와 비교하면 어딘가 부족했다.오늘 그녀는 심플한 디자인의 짙은 녹색 미니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오늘 참석한 다른 재벌가 영애들 사이에선 눈에 띄지도 않았고 평범하게 보일 정도였다.하지만 그녀의 몸매와 얼굴은 정말 매혹적이었다.그는 혀로 이를 핥으며 말했다.“네 허리랑 엉덩이는 만지면 정말 기분 좋을 것 같아.”“만져 봐.”온채아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긴장을 풀고 벽에 기대선 채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성유준이 알면 네 왼손을 자를까, 오른손을 자를까?”성윤혁이 성유준을 두려워하는 건 타고난 것이었다.성유준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그는 무의식적으로 움츠러들었다.그러고 나서야 능글맞게 입을 열었다.“내가 바보인 줄 알아? 지난번 가족 모임 이후로 너랑 성유준은 사적으로 왕래가 없었잖아.”‘얘가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 거지?’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가 아무리 푸대접을 받는다 해도 성씨 가문 사람이니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었다.온채아는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손바닥에 박아 넣었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기가 가득했다.“만약 왕래가 없다면 내가 어떻게 한빛 그룹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겠어?”암 연구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성윤혁은 어렴풋이 들어본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는 온채아에게 너무 많이 속아왔기 때문에 쉽게 믿지 않았다.“단순한 우연일 뿐이야. 그룹에 프로젝트가 얼마나 많은데, 형이 일일이 다 신경 쓸 시간이 있겠어. 대충 넘어가는 게 한두 개쯤 있는 것도 당연하지.”“하지만 나는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쓸모없는 인간이잖아.”채아는 체념한 듯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말했다.“그 사람 지시가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겠어?”그녀의 말에 성윤혁은 정말 망설였다.온채아 인생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순간은 뛰어난 실력으로 경성대에 입학한 것뿐이었다. 그 후 몇 년 동안은 조용히 한 한의원에서 시간을 보냈다.이치대로라면 그녀의 학력이나 경력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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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주율천은 아가씨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정신없었지만 뒤늦게 상황 파악을 했다.다실에서 나오자 민은하가 다가와 물었다.“오늘 만난 아가씨들, 어땠어?”“뭐가 어떻다는 거죠?”그는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민은하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시치미 떼지 마. 넌 내 아들인데 얼마나 똑똑한지 내가 모를까 봐?”주율천은 적당히 얼버무리며 어머니와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이야기가 여기까지 나온 이상, 솔직하게 말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엄마,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않으셨으면 해요.”말투는 다소 차가웠다.하지만 민은하는 늘 막내아들을 예뻐했기에 화를 내는 대신, 진지하게 물었다.“내가 관여하지 않으면, 뭘 하고 싶은 건데?”주율천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그는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온채아에게 말했듯이, 그의 아내는 오직 온채아뿐이었다.비록 그녀가 요즘 지나치게 반항적이긴 하지만 어찌 됐든 그 원인은 자신에게 있었다.여자가 질투심에 휩싸여 투정을 부리는 건 흔한 일이니까.그가 잠시 말이 없자 민은하는 오해하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엄하게 말했다.“설마 심서정을 다시 주씨 가문에 들일 생각은 아니겠지? 내 두 아들이 같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면 사람들이 주씨 가문을 얼마나 비웃겠어!”그 생각만 하면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잘 지경이었다.주율천은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저는 아내가 있는데 어떻게 재혼을 해요?”민은하는 뜻밖이라는 듯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믿지 않았다.“단 한 번도 심서정과 결혼하기 위해 이혼할 생각은 없었던 거야?”“당연히 없죠.”주율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내심을 가지고 말했다.“엄마, 난 누구보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오늘 같은 일은 앞으로 다시는 만들지 마세요. 그리고 온채아를 불러서 말씀하시는 일도 삼가해 주시고요.”“하지만...”민은하는 뭔가를 생각하더니 약간 불편한 기색을 보였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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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그런데 이제 와서 웬 딴소리지?’민은하는 웃으며 말했다.“혹시라도 이혼 증명서를 넘겨줬는데 네 입이 방정맞아서 이혼 사실이 새어나가면 나는 뭐가 되겠니?”온채아가 상기시켰다.“저희 합의서 썼잖아요.”“합의서 따위는 착한 사람한테나 통하는 법이지.”은근히 온채아를 깎아내리는 발언이었다.하지만 온채아는 개의치 않고 물었다.“그럼 언제쯤 받을 수 있을까요?”“율천이가 언제 마음 바꿔서 재혼이라도 하겠다고 해야...”“그건 안 돼요.”온채아는 단호하게 말했다.“전에 저는 사모님께서 적당한 상대를 찾으실 때까지만 임시로 비밀을 지키기로 약속드렸을 뿐입니다.”주율천의 의사는 너무나 불확실한 요소였다.그녀는 더 이상 이 일에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어차피 이혼 증명서는 이미 나왔는데 너한테 그게 뭐가 중요해? 언제 공개되든, 언제 손에 들어오든 차이가 있어?”“중요해요.”비밀을 유지하는 동안, 그녀는 명목상 주씨 가문의 둘째 며느리 신분을 유지해야 했고 주율천의 연극에 발맞춰야 했다.하지만 최근 일어난 일들을 겪으면서 그녀는 하루빨리 관계를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민은하는 자신의 귀한 아들이 온채아에게는 하루빨리 떨쳐내고 싶은 짐짝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꾹 참고 말했다.“한 달만.”그녀는 못 박았다.“정월 대보름 지나면 바로 줄게. 그건 되겠지?”어차피 주율천은 온채아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으니 말이다.설 연휴 동안, 괜찮은 집안 아가씨들을 여럿 소개해주면 주율천이 온채아 따위는 잊고 새로운 인연에 눈을 뜰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온채아는 잠시 고민에 잠기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알겠습니다.”하지만 그녀는 확인할 것이 있었다.서재에서 나온 그녀는 민은하가 어제 카톡으로 보내준 이혼 증명서 사진을 정다슬에게 보냈다.[다슬아, 이혼 증명서 진위 좀 확인해 줘.][헐?! 이혼 증명서 받았어?]정다슬은 즉시 답장했다.[가짜라고 의심하는 거야?][90%는 진짜일 가능성이 커.]하지만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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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온채아는 그녀와 옥신각신할 마음이 없어 그저 최해경을 바라보며 말했다.“할머니, 이 일은 이미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에서도 수사 중이에요.”“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심서정은 격앙된 목소리로 아이를 걱정하는 듯 말했다.“시윤이가 다쳤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채아 씨밖에 없었어요. 그러니 채아 씨가 아니면 누가 그랬겠어요? 이렇게 며칠이 지나도록 병문안 한번 안 오는 걸 보면 죄지은 게 뻔하다니까요.”온채아는 그녀가 이렇게 억지를 부릴 줄은 몰랐다.최해경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온채아를 바라보며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채아야, 네 동서가 말한 게 사실이냐?”“네, 하지만 저는 죄지은 건 없어요...”“됐다!”할머니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차갑게 말했다.“너희 동서 사이가 아무리 나쁘다 해도 아이는 죄가 없잖니. 오늘은 손님도 많으니 알아서 사당에 가서 밤새 반성하거라.”주씨 가문의 사당은 조상을 모시는 곳이자 가문의 법도를 다스리는 곳이기도 했다.사당은 뒷마당 구석진 아주 외진 곳에 있었는데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웠다.성씨 가문처럼 자갈길에 무릎 꿇리는 벌을 주지는 않지만 한겨울에 사당에서 밤을 새우면 아무리 못해도 고열에 시달릴 것이었다.온채아는 눈을 들어 주율천을 쳐다봤지만 그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입술을 치켜올렸다.“할머니, 당시 저밖에 없었던 건 사실이지만, 저는 그저...”그녀가 반박하려는 순간, 계단 쪽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주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자 그제야 온채아는 성유준이 어느새 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성씨 가문의 후계자가 가는 곳에는 늘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지금도 수많은 명사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 아첨하고 있었다.그는 오늘따라 기분도 좋아 보였는데 평소처럼 무시하지 않고 건성으로 응대하고 있었다.아마도 여자 파트너를 데리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임지연은 완벽한 실루엣을 자랑하며 몸매를 착 감싸는 드레스를 입고 성유준의 팔에 팔짱을 낀 채 그의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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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온채아 씨.”그녀가 어색해하고 있을 때, 임지연이 갑자기 그녀 앞에 나타나 친근하게 손을 잡았다.“저 기억하시죠?”온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기억해요.”성유준의 비서였다.다른 사람들은 성유준처럼 냉철한 사람이 사적인 관계와 공적인 관계를 철저히 구분할 거라고 생각하며 부하 직원과 연애를 할 리 없다고 여길 수도 있었다.하지만 온채아는 그가 얼마나 변덕스럽고 자유분방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그가 누군가를 아끼기로 마음먹으면 곁에 두고 부하 직원으로 삼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그 사람의 부하 직원이 되어도 상관없을 것이다.그는 누군가를 하늘 아래 무서울 것 없이 아껴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그리고...다시 가혹하게 내팽개칠 수 있었다.임지연은 매우 친절한 태도로 말했다.“전부터 성 대표님께 여동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온채아 씨일 줄은 몰랐네요.”“네...”온채아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저도 참 의외네요.”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임지연은 잘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네? 뭐라고 하셨어요?”“아니에요, 아무것도.”온채아는 임지연이 진심으로 자신과 친해지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아주 오래전, 성유준이 자신을 버리기 전에도 그녀에게 잘 보이려는 여자애들은 많았다.그녀가 성유준의 여동생이었기 때문에 성유준에게 접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지름길과 같은 존재였다.하지만 지금 그녀와 성유준의 관계는 보통 친구보다 더 어색했다.그러니 임지연은 굳이 그녀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었다.그녀의 어색함을 눈치챘는지 임지연은 웃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생신 잔치가 끝나갈 무렵, 온채아는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민은하가 손님을 배웅하는 데 함께하라고 붙잡았다.그녀가 손님을 배웅하고 나오니 익숙한 마이바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집사는 어색한 표정으로 설명했다.“서정 사모님께서 음식을 잘못 드셔서 알레르기가 좀 있으시다고, 둘째 도련님께서 병원에 모셔다드렸습니다.”“알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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