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 Chapter 61 - Chapter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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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오경애는 꿈속을 헤매다 급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문을 열자 주율천의 심상치 않은 표정이 눈에 들어왔고 불안감이 엄습했다.“도련님, 무슨 일이세요?”주율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채아가 마지막으로 돌아온 게 언제인가요?”옆에 있던 심서정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그 빌어먹을 년이 이사 가서 며칠이나마 겨우 안주인 노릇을 한 그녀였다. 그녀는 더 이상 온채아의 그림자조차 보고 싶지 않았다.“작은 사모님은 매일 돌아오셨는데요...”오경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빠르게 대답했다.“아, 맞다, 오늘 밤은 안 오셨네요. 어르신 팔순이 다가와서 사모님께서 본가에 가서 의논할 일이 있다고 부르셨어요.”심서정의 눈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지만 동시에 의문이 가득해졌다.‘왜 오경애마저 온채아가 이사 간 사실을 숨기는 걸까? 혹시 오경애도 온채아보다 내가 이 집 안주인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걸까?’그런 생각이 들자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주율천을 바라봤다.“그만해. 온채아가 하룻밤 안 들어온 것뿐인데, 왜 그렇게 의심해?”주율천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오경애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그녀 책장에 있던 책들은 왜 몇 권밖에 안 남은 거죠?”오경애는 잠시 당황했다.그러고는 애써 태연하게 대답했다.“늘 그 몇 권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요, 혹시 잘못 기억하시는 거 아니세요?”“그랬나요?”주율천도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결혼 후, 그는 바쁘다는 핑계로 온채아와 거의 각방을 썼다.안방에는 들어가는 횟수도 적었고 뭘 주의 깊게 본 적도 없었다.심서정은 하품을 하며 말했다.“아주머니는 원래 꼼꼼하잖아. 아주머니가 그렇다고 하는데, 왜 안 믿어?”“아니야. 됐어.”주율천도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았다.오경애는 주씨 가문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니 온채아 편을 들어 그의 뒤통수를 칠 리는 없었다.무엇보다 온채아가 아무런 말도 없이 집을 나갔을 리 없었다.그의 여사친들도 조금만 기분이 나쁘면 늘 울고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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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그래.”강태무는 그녀의 기분이 괜찮아 보이자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다들 그러더라. 온 선생님이 남한테 저렇게 쌀쌀맞게 구는 건 처음 봤다면서, 너랑 심서정 사이에 무슨 일 있냐고 다들 궁금해하던데.”온채아는 별다른 말 없이 그의 손에 들린 물건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나 주려고 가져온 거예요?”“어.”강태무는 그녀의 앞에 보온 도시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훈제 오리, 가지볶음, 배추겉절이야. 사모님께서 특별히 갖다 주라고 하셨어.”온채아가 뚜껑을 열자 향긋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가지를 한 입 먹어 보았다.“선생님 댁에 갔었어요?”“응, 선생님과 한빛 그룹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 좀 나눴어.”강태무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맛은 어때?”“당연히 맛있죠.”온채아는 웃으며 물었다.“오빠는 드셨어요?”“난...”강태무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녀의 뺨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소를 지었다.“아직.”“그럼 같이 먹어요.”온채아는 서랍에서 일회용 젓가락 한 벌을 꺼내 건네며 물었다.“한빛 그룹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요? 언제부터 시작해요?”“일단 밥부터 먹자.”강태무는 시계를 흘끗 보며 말했다. “프로젝트 얘기는 퇴근하고 나서 천천히 얘기하자. 아, 그리고 심서정... 조 선생님 제자가 됐대.”그 말에 온채아는 젓가락을 멈칫했지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주율천은 심서정 일이라면 늘 꼼꼼하게 챙기니까.이 한의원에서 여승운 외에는 조현덕이 그다음이었다.온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조현덕이 옆에서 지켜보면 그래도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퇴근하기 직전, 환자에게 침을 놓고 있는데 주머니 속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주율천에게서 온 메시지였다.[채아야, 퇴근하면 데리러 갈게.]온채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거절하려고 했다.하지만 미처 어떤 이유를 댈지 생각하기도 전에 간호사가 갑자기 소리쳤다.“온 선생님! 환자분이 쓰러지셨어요!”온채아는 깜짝 놀라 휴대폰을 주머니에 던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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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그녀는 주율천이 퇴근 시간에 맞춰 자신을 데리러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하지만 눈앞의 상황은 어딘가 씁쓸하고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주율천이 품에 안긴 여자를 살짝 떼어내고 입을 열려던 찰나, 눈치 빠른 동료들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서정 언니, 남자친구분이세요?”심서정은 낮에 출근해서부터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았다. 키 크고 잘생기고 다정하고 돈 많은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이다.아침에 봤던 스포츠카도 남자친구에게 선물 받은 거라고 했다.하지만 실제로 보니 심서정의 말이 과장은 아니었다. 확실히 돈 많고 잘생긴 남자였다.아니, 평범한 부자와는 차원이 달랐다. 분위기 자체가 젠틀하고 고급스러웠다.심서정은 쑥스러운 듯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주율천을 바라봤다.“율천아, 이분들은 내 동료들이야.”주율천은 미간을 찌푸렸고 고개를 들어보니 온채아는 이미 멀리 가고 없었다.그가 대답하지 않자 사람들은 그저 과묵한 성격 탓이라고 여겼다.게다가 저렇게 돈 많은 재벌이 사람들에게 관심 없는 건 당연했다.심서정과 주율천이 차에 오르자 여자 동료들은 부러움에 어쩔 줄 몰라 했다.“세상에, 심서정은 전생에 무슨 덕을 쌓은 거야? 남자친구가 돈 많은 건 그렇다 쳐도, 저렇게 잘생기기까지 하다니. 잘생긴 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자상하게 퇴근 시간에 맞춰 데리러 오다니?!”“맙소사... 내 수명 10년 줄여서라도 저런 남자친구 갖고 싶다.”“난 12년!”“이것도 경쟁할 거야!”어쨌든 인생은 길이가 아니라 질 아니겠는가.그들도 저렇게 돈이 넘쳐흐르고 한정판 스포츠카 몰고 다니는 삶, 딱 하루만이라도 누려보고 싶었다.온채아가 시동을 걸려는 순간, 조수석 문이 활짝 열렸다.강태무가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밥 먹으러 갈까?”온채아는 복잡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한빛 그룹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 생각에 미소 지으며 물었다.“뭐 먹으러 갈 건데요?”그는 온채아의 휴대폰으로 식당 위치를 전송하며 말했다.“근처에 새로 오픈한 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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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그때가 되면, 한빛 그룹에 자주 가야 할 텐데...”그는 말을 하면서 온채아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한빛 그룹에는 건물이 두 채 있는데, 실험실과 연구소도 그 안에 있어서 성유준을 마주칠 가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온채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오빠도 왜 선생님처럼 걱정해요?”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말했다.“태무 오빠, 걱정 말아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잘할 수 있어요. 개인적인 일 때문에 공적인 일에 영향 주는 일은 없을 거예요...”레스토랑 2층, 룸 하나가 문이 열려 있었다. 문 앞에는 남자가 손가락 마디가 뚜렷한 큰 손으로 난간을 잡고 칠흑 같은 눈으로 아래층의 남자와 여자를 뚫어지게 내려다보고 있었다.그에게는 늘 냉담한 모습만 보이던 여자가 지금은 얌전하게 다른 남자에게 무언가를 약속하고 있었다.“성유준, 넋 놓고 뭐 하는 거야? 빨리 들어오지 않고.”그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가 룸에서 나오며 그의 시선을 따라 아래층을 힐끗 쳐다보더니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오, 네 여동생보고 있었구나.”“꺼져!”성유준은 그를 흘겨보며 무심하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남은 일은 네가 알아서 처리해. 난 먼저 간다.”“그래, 알았어. 내가 급한 일 생겨서 먼저 갔다고 둘러댈게.”하지훈은 알아차렸다는 듯, 온채아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쯧쯧. 간도 크지. 아무나 막 좋아하다니.’온채아가 겨우 강태무를 안심시켜 놓았더니 이번에는 성유준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그녀는 순간 굳어 버렸다.여기서 그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에, 온채아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못 본 척하려 했다.하지만 채 그러기도 전에 성유준은 이미 옆에 서 있었다.강태무는 웃으며 일어섰다.“성 대표님, 여기서 뵙네요. 식사하러 오셨어요?”성유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네라니. 저건 대체 무슨 뜻이야?’강태무는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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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강태무를 피해야 할 일이라면 사적인 일일 터였다.온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차가운 태도로 말했다.“성 대표님, 우리 사이에 따로 이야기해야 할 일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요.”성유준은 그녀를 흘겨보며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김현우가 네게 돌려줄 물건이 있다고 해서 대신 전해주려고 하는데, 필요 없어?”온채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강태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태무 오빠, 먼저 가세요.”강태무는 불안했지만 두 사람이 과거에는 남매 사이였으니 성유준이 터무니없는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가 가자마자 온채아는 성유준에게 손을 내밀었다.“뭔데요?”성유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곧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온채아는 김현우에게 뭘 맡긴 적이 있는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지만 체념하고 그의 뒤를 따랐다.남자는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의 차 앞에 멈춰 서서 손잡이를 잡아당겼지만 열리지 않자 그제야 그녀를 쳐다봤다.온채아는 숨을 크게 쉬며 말했다.“물건 돌려주는데 차에 타야 해요?”“내 차는 네 태무 오빠를 데려다주러 갔는데, 너는 나 안 데려다줄 거야?”온채아는 속으로 투덜거렸다.‘내가 데려다주라고 했나!’다만 며칠 전 성씨 가문에서 그가 자신을 도와주었던 일을 떠올리며 차 문을 열어 주었다.남자는 태연하게 조수석에 앉아 부적 하나를 건네며 차갑고 묘한 어조로 말했다.“이런 거로 주율천 마음을 돌리려고?”온채아는 단번에 이미숙 할머니가 준 부적임을 알아보고 받아 가방에 넣으며 그의 빈정거림을 알아듣고 차갑게 대꾸했다.“신경 꺼요.”말을 마친 그녀는 그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고 목적지를 물었다.“어디로 모셔다드릴까요?”남자는 불쾌한 기색 없이 대답했다.“진안로.”“진안로요?”온채아는 어리둥절했다.성유준은 눈을 들어 그녀를 흘끗 보며 말했다.“나는 진안로에 살면 안 돼?”“안 될 건 없죠...”그녀는 그저 우연치고는 너무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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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성유준은 비웃으며 말했다.“내가 안 된다고 하면 순순히 포기할 거야?”온채아는 그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었지만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그를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이건 그쪽 명의의 프로젝트니까 당연히 그쪽 뜻을 존중해야죠.”주율천과 결혼한 후, 그는 그녀에게 낯선 사람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다.정적이 흐르자 성유준은 비웃듯 아주 작게 웃으며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그럼 오지 마.”말을 마치고 차 문을 밀고 나가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온채아는 어이가 없었다.‘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잘못했길래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걸까. 안 가면 그만이지!’하지만 왠지 모르게 억울한 기분이 들었던지 밤에 잠을 자면서 자신이 성유준에게 매달리는 꿈을 꾸었다.“성유준, 날 프로젝트에 안 넣어주면 다시는 너 안 볼 거야!”성유준은 가늘고 긴 눈꼬리를 치켜올리며 말했다.“지금 뭐라고 불렀지?”“잘못했어요, 오빠!”온채아는 잠에서 벌떡 깨어 검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거친 숨결이 가슴을 흔들었고 한참 멍한 끝에 간신히 제정신을 찾았다.그녀와 그는 이미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 그러니 어릴 때처럼 억지를 부릴 수는 없었다.그녀는 불을 켜고 거실로 가서 가방에서 부적을 꺼내 방으로 돌아와 베개 밑에 넣으려다 문득 멈칫했다.이 부적은...어쩐지 전에 받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온채아가 다시 한의원에 출근했을 때, 심서정은 여직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심지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그랬다.심서정 주변에는 여러 명의 젊은 여자들이 몰려 있었고 온채아가 식판을 들고 지나가는 것을 보자 그중 한 명이 친절하게 옆자리를 두드리며 말했다.“채아 언니, 여기 앉으세요.”“그래요.”온채아는 그녀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앉아서 조용히 밥을 먹으며 그들의 이야기에 참여하지 않았다.심서정은 여자들에게 체리를 건네며 친근하게 웃었다.“오늘 해외에서 갓 공수해온 건데, 이따가 씻어서 나눠 드세요.”“와, 고맙습니다!”몇몇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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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맞아요.”여직원도 지난번에 온채아와 이미숙의 대화를 듣고 알게 된 것이어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하지만 채아 언니는 많은 사람들이 아는 걸 원하지 않을 거예요. 저도 우연히 들은 거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 안 돼요.”“걱정 말아요.”심서정은 그녀의 어깨를 톡톡 치고 서둘러 일어섰다.“나는 다 먹었어요. 천천히들 드세요.”그녀는 식당을 나서며 기분 좋게 눈을 가늘게 뜨며 바로 주율천에게 전화를 걸었다.“율천아! 방금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너한테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주율천은 회의 중이었지만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무슨 일이야?”“온채아랑 강태무, 관계가 진짜 심상치 않은 것 같아.”주율천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무슨 말을 하려는데 심서정이 말했다.“알고 보니 온채아가 직접 한의원 사람들에게 이혼했다고 말했대. 다들 알고 있더라고. 나도 방금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주율천은 벌떡 일어나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지금 뭐라고 했어?”“율천아...”심서정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주의를 줬다.“온채아가 바람난 것 같은데.”바람을 피운 온채아는 그 사실도 모른 채 주 씨 집안으로 향하고 있었다.오늘 아침, 주율천의 어머니 민은하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난번에 구두로 약속했던 내용을 서면으로 작성하고 싶다는 연락이었다.온채아는 흔쾌히 승낙했다.집과 돈, 모두 확실하게 받았으니 계약서를 쓰는 것에 협조할 의향이 있었다.밥을 먹자마자 그녀는 진료실로 돌아가 가방을 들고 나섰다.이 시간대의 주 씨 가문 본가는 매우 조용했다.주율천의 할머니는 낮잠을 자는 습관이 있었는데 잠귀도 밝아서 가정부들은 모두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움직였다.온채아가 도착하자마자 집사가 다실로 안내했다.지난번 그녀가 터무니없는 요구를 했던 일 때문에 민은하는 태도가 많이 냉담해져 있었고 미리 작성해 둔 합의서를 그녀 앞에 내밀었다.“서명해.”온채아는 윤기 있는 손가락으로 계약서 첫 페이지를 살짝 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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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저는 율천 씨에게 먼저 이혼 얘기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지만 그가 추측하거나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되는 것까지는 책임질 수 없어요.”“네가 말 안 하고 내가 말 안 하면 그가 어디서 알 수 있겠어?”민은하는 수정하기를 꺼리며 말했다.“온채아, 우리 주씨 가문의 돈은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온채아의 전화벨이 갑자기 울렸다.발신자는 주율천이었다.“채아야, 왜 우리 이혼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거야?”온채아는 일부러 민은하를 피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그 말을 똑똑히 들었다.민은하는 미간을 찌푸리며 진실을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말했다.“누가 그런 소문을 퍼뜨려요? 저 혼자 어떻게 이혼을 해요?”“지금 어디야?”“본가에서 어머니랑 차 마시고 있어요.”온채아는 싹싹하게 대답했다.그 말을 들은 주율천은 마음이 조금 놓이며 시간을 확인했다.“그럼 내가 일 끝나고 데리러 갈게.”“네.”온채아는 순순히 대답하고 전화를 끊은 후, 민은하를 바라보며 말했다.“보세요, 제가 말한 거 아니잖아요.”민은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숨을 크게 쉬고 집사에게 변호사를 불러오라고 해서 그 자리에서 조항을 수정했다.계약서에 서명한 후, 거실에서 주율천의 할머니 최해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민은하가 당부했다.“할머니 혈압이 계속 불안정해. 이혼 얘기는 아직 안 했으니 너도 말실수 안 하도록 조심해.”온채아는 대답하고 나가 최해경과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최해경은 그녀를 좋아해서 손을 잡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야기를 하던 중, 온채아가 맥을 짚어보더니 걱정스럽게 당부했다. “할머니, 기저 질환이 있으시니 음식에 신경 쓰시고 기름진 음식은 절대 드시면 안 돼요.”“아휴, 너까지 은하처럼 할머니한테 잔소리만 늘어놓는구나!”최해경은 일부러 볼멘소리를 내며 짐짓 엄한 표정으로 그녀를 타박했다.“할머니.”현관에서 익숙한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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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그의 당연하다는 듯한 모습에 온채아는 웃음만 나왔다.‘왜 예전에는 주율천이 이렇게 이중적인 사람이라는 걸 몰랐을까?’하지만 4일만 지나면 완전히 이혼한다는 생각에 더 이상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성씨 가문 사람들을 상대할 때 쓰던 방법을 사용하여 진지하고 위선적으로 말했다.“네, 걱정 마세요. 저랑 태무 오빠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나쁜 남자들이나 쓰는 대사지만 그녀도 배워둔 게 있었다.주율천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를 달래듯 말했다.“그래. 난 당연히 널 믿어.”지난 몇 년 동안, 온채아는 그렇게 그의 어르고 달램에 익숙해져 있었다.예전에 그녀가 성유준과 싸우고 성유준의 다른 친구들이 아무도 감히 그녀를 도와주지 못할 때, 주율천만이 그녀를 위해 말해줬었다.온채아는 시동을 걸고 적절한 핑계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마침 휴대폰이 울렸다.강태무에게서 온 전화였다.주율천의 시선이 갑자기 그녀에게 꽂혔지만 온채아는 떳떳했기에 바로 전화를 받았다.차에 연결된 블루투스로 강태무의 목소리가 동시에 두 사람의 귀에 들려왔다.“채아야, 늘 가던 곳에서 저녁 먹기로 했는데 7시까지 올 수 있지?”“갈 수 있어요.”온채아는 안도하며 바로 대답했다.강태무는 그녀가 흔쾌히 승낙하자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가족도 데려올 수 있어. 정다슬 씨 시간 되면 같이 데리고 와.”온채아는 정다슬이 오늘 몇 시에 퇴근하는지 몰라서 물어보려고 하는데 옆에 있던 남자가 갑자기 낮게 읊조렸다.“강 대표님, 제가 채아와 함께 가겠습니다.”강태무는 주율천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웃음기만 남은 채, 예의 바르게 말했다. “물론 환영합니다.”전화를 끊고 온채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율천을 바라보며 물었다.“정말로 갈 거예요?”“내가 가면 안 돼?”주율천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네 학교 선배가 날 보면 불편할까 봐 그래?”남자는 남자를 알아보는 법이다.강태무 그자가 지난번 주차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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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네.”온채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은 후에야 손바닥에 깊은 붉은 자국이 새겨진 것을 발견했다.누군가 궁금해하며 물었다.“채아 언니, 전 남편은 왜 한 번도 본 적이 없네요?”온채아는 복잡한 생각들을 떨쳐내고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그 사람 바람피웠어요.”자신에게 꽂히는 날카로운 시선을 무시하며 그녀는 또렷하게 덧붙였다.“아주 오래전부터 바람피웠어요.”정신적인 외도 또한 외도라고 할 수 있으니까.“세상에, 정말요?!”한의원의 나이 많은 한의사들은 회식에 관심이 없었기에 매번 회식에는 젊은 사람들만 왔다.정의감이 넘치는 나이였다.특히 평소에 심서정을 부러워했던 어린 간호사들은 분개하며 욕을 퍼부으면서 만난 적도 없는 전 남편과 결혼을 파탄 낸 상간녀를 신랄하게 비난했다.그 과정에서 온갖 욕설이 난무했다.심서정은 몹시 화가 나서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온채아 씨, 너무 일방적인 주장만 하는 거 아니에요? 남편분이 바람을 피운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잖아요...”온채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누군가가 울분을 토하듯 심서정의 말을 잘랐다.“그런 사람 편들지 마세요. 다 쓰레기 같은 연놈이니 좋은 인간일 리 없어요.”온채아는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즐겼다.반면에 주율천은 시종일관 굳은 표정이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천재적인 남자가 젊은 나이에 거대한 은성 그룹을 이어받았으니 그 앞에서 감히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도 결국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온채아가 미리 불편할 거라 했지만 그가 믿지 않았던 것이다.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온채아는 잠시 화장실에 들르기로 했다.“채아 언니처럼 훌륭한 사람이 결혼 때문에 그렇게 큰 고생을 할 줄은 몰랐어.”“괜찮아. 나중에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얼마나 더 좋은 사람? 아무리 좋아도 서정 언니가 만나는 사람만큼 좋겠어? 은성 그룹 대표잖아!”“야, 너 경제 뉴스 좀 봐라. 성씨 가문 그분이 훨씬 대단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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