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 Chapter 101 - Chapter 110

136 Chapters

제101화

온채아는 살짝 웃으며 강태무가 건네준 음식을 받아들었다.“고마워요, 태무 오빠.”강태무의 요리 실력이 훌륭하다는 건 예전부터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두 사람이 가끔 선생님 댁에 들를 때면 강태무는 늘 후배로서 직접 요리를 했고 매번 여섯 가지 반찬에 국까지 한 상 가득 준비했다. 당연히 맛은 일품이었다.특별히 와인 한 병을 준비한 정다슬은 두 사람의 잔을 채운 뒤 빨간 입술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자유를 되찾은 우리 채아를 위해 다 같이 짠 한번 할까요?”“채아야, 앞으로는 너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당당하게.”온채아는 이런 오글거리는 분위기를 가장 못 견뎌 하는 사람이다.그럼에도 감동을 받았는지 눈물을 글썽이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잔을 부딪쳤다.“그래. 내 자유를 위하여.”자유. 온채아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자유를 얻게 되었다. 레스토랑에서 한 끼를 먹고 왔음에도 온채아는 꽤 많은 음식을 먹었다. 어쩌면 지금 이 자유로운 느낌이 너무 좋았을지도 모른다.어느 정도 배가 부르자 강태무는 뒷정리를 도우려 했다.그러자 온채아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오빠, 요리해 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워요. 뒷정리는 우리가 할 테니까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 제가 아래까지 바래다줄게요.”“그래.”강태무는 별다른 말 없이 수긍했고 술을 마실 거라고 예상한 덕분에 차를 안 가지고 와서 대리운전 부를 일도 없었다.많이 마신 편은 아니었지만 온채아는 그래도 걸음걸이에서 살짝 취기가 느껴졌다.그녀는 최대한 균형을 잡으며 강태무를 아파트 정문까지 배웅했다.온채아가 술이 약하다는 걸 알고 있던 강태무는 내심 걱정이 밀려왔으나 고급 아파트 단지는 보안이 철저해 그나마 다행이었다.그는 느릿하게 걸음을 멈추고 곁에 선 온채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혼자서 기다려도 되니까 먼저 올라가서 쉬어.”“음...”온채아는 못마땅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고집스럽게 도로 쪽으로 걸어갔다.“안 돼요. 손님 대접은 끝까지 해야죠.”술기운이 오른 온채아의 얼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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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온채아는 잠이 쏟아져 그저 빨리 집으로 돌아가 대충 샤워를 한 후 곧바로 침대에 누워 푹 자고 싶었다.하지만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성유준이 뜻대로 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두어 걸음 내디딘 온채아는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클랙슨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뒤돌아보니 뒷좌석 창문 너머로 성유준의 화가 가득한 냉랭한 얼굴이 보였다.오똑한 콧날과 깊게 파인 싸늘한 눈동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상한 괴리감을 주었다.온채아는 술기운이 조금 가신 듯했다.“대표님, 저한테 볼일 있으세요?”목에 두른 짙은 붉은색 머플러는 살짝 아래로 늘어져 가녀린 목선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희미하게 비친 가로등 불빛은 맑고 투명한 온채아의 얼굴을 더욱 극대화했다.평소 출근할 때처럼 대충 묶은 검은 머리는 어깨 위에 자연스럽게 흩어져 마치 젖은 비단처럼 고급스러운 느낌은 주었다.늘 그렇듯 차분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풍겼으나 성유준과 대화할 때만큼은 불만이 가득 섞여 있었다.성유준은 침착하게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프로젝트 진행 현황을 좀 알고 싶어서.”줄곧 한의원에서 근무해 온 온채아는 늦은 밤까지 야근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환자를 치료하는 일이었다면 기꺼이 환영이지만 성유준이 말하는 건 지금 당장 그녀가 꼭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프로젝트 현황은 어시스턴트가 매주 정리하고 있어요. 장 팀장님이 대표님께 메일 보낸 걸로 알고 있는데요?”“난 오늘의 현황에 대해 알고 싶은데?”성유준은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말하기 싫은가 보네? 그만두고 싶어?”참 악랄한 인간이다.온채아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술기운에 어질한 머리를 겨우 굴려 말문을 열었다.하지만 찬바람에 저도 모르게 입이 얼어붙었다.“오늘은 진세영 씨와 지난주에 제기한 안건에 대해...”“차에 타서 말해.”성유준은 어두운 눈동자로 온채아를 바라보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창문 열려 있어서 추워.”결국 체념한 온채아는 차에 올라 최대한 논리 정연하게 보고를 시작했다.책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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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어릴 적 성유준은 이렇게 자주 온채아를 아가씨라고 부르곤 했다.온채아는 고아원과 소원희의 집에서 1, 2년쯤 고생했을 뿐이지 어릴 때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기에 밝은 성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성유준이 조금만 다정하게 대해줘도 금세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일곱 살의 소녀는 착하면서도 가끔은 매우 단호했고 순수한 것 같지만 때로는 응석도 많이 부리는 제멋대로인 성격이었다.여름날 천둥번개가 치던 밤, 온채아는 인형을 꼭 껴안은 채 맨발로 성유준의 방에 뛰어들곤 했다.그녀보다 여섯 살이 많았던 성유준은 이미 사춘기에 접어들어 남녀 성별에 대해 명확히 구분할 나이였다.그래서 차가운 얼굴로 단호하게 방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했다.하지만 온채아는 그의 과한 사랑에 버릇을 잘못 들였는지 금세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얇은 담요를 머리 위에 뒤집어쓴 채 입을 삐죽이며 당당하게 말했다.“천둥번개가 너무 무서워요. 이러다가 번개에 맞아 죽으면 어떡해요?”돌이켜 생각해 보면 번개에 맞아 천벌을 받는 건 쓰레기 같은 남자들이라고 말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별수 없이 성유준은 짜증 가득 담긴 얼굴로 꼬리를 내렸다.“하여튼 채아한테는 못 당하겠다니까.”비록 어린 나이지만 온채아는 눈치가 매우 빨랐고 그 말투 속에 담긴 애정과 양보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그러다 시간이 흘러 성유준은 그녀를 버렸다.주율천과 결혼하려고 마음먹은 후부터 성유준의 ‘아가씨'라는 호칭엔 늘 조롱이 섞여 있었다.마치 아직도 내 손에서 귀하게 자란 아가씨라고 생각하냐며 비웃는 듯했고 주제 파악을 못 하는 온채아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게 눈에 보였다.술기운 탓인지 오랜만에 들은 애정 섞인 그 호칭은 마치 어린 시절도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차 문에 기댄 온채아는 손목 안쪽에서 느껴진 온기에 긴장감이 올라왔고 코끝엔 은은한 침향목 향기가 맴돌았다.이 향수는 성유준의 열여덟 번째 생일에 온채아가 직접 선물한 것이다.성유준은 침향목 향기를 매우 좋아했고 나중엔 향수 진열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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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내가 버린 쓰레기를 주워가고 싶어서 안달인 것 같네요.”온채아는 담담하게 말하고는 심서정이 가져온 간식들을 한 번 쓱 훑어본 뒤 간호사들에게 말했다.“음식 낭비하면 벌받아요. 괜찮으니까 드시고 싶은 분들은 편하게 드세요.”그 말을 끝으로 온채아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진료실로 돌아와 휴대폰을 확인하자 두 시간 전에 임지연이 보낸 카톡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채아야, 점심에 시간 돼? 같이 밥 먹을까?]시계를 확인해 보니 어느덧 오후 1시를 넘긴 시각이었다.온채아는 사실대로 답장을 보냈다.[방금 일이 끝나서 이제야 메시지를 확인했어요.]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보자는 내용을 보내려던 순간 임지연이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괜찮아. 마침 한의원 근처에 있거든. 같이 밥 먹자.]온채아는 그녀가 무슨 생각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차라리 속마음을 털어놓는 게 낫겠다 싶어 가방을 챙겨 두 사람이 만나기로 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레스토랑엔 손님이 많지 않았고 꽤나 조용했다.온채아가 안으로 들어서자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임지연이 손을 흔들며 그녀를 불렀다.“의사라는 직업이 이렇게까지 식사 시간이 불규칙한 줄은 몰랐네.”온채아가 다가가자 임지연은 익숙한 듯 그녀의 가방을 받아주더니 웃으며 말했다.“어쩔 수 없는 거죠.”온채아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의 과도한 친절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다.임지연은 어릴 적부터 온갖 사람들을 상대해 왔고 대부분은 그녀에게 다정하고 적극적이었다. 특히 성유준 곁에 붙어 다닌 이후로는 아첨하거나 호의를 보이는 이들이 줄을 섰다.온채아처럼 매번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아니, 아예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래도 성유준의 여동생이니 임지연은 개의치 않은 듯 메뉴판을 내밀며 말했다.“입맛을 잘 몰라서 같이 시키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뭐 먹고 싶어?”“그럼 알아서 시킬게요.”온채아는 메뉴판을 받아 들었다.이 레스토랑은 한의원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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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임 비서님은 대표님 여자 친구잖아요. 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않아요? 저 같은 사람을 거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온채아의 말투는 전반적으로 차분했다.임지연이 헛수고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온채아는 말을 분명히 했다.그런데 뜻밖에도 임지연은 표정이 매우 밝았고 큰 눈망울을 반짝이며 말했다.“내가 대표님 여자 친구라고? 대표님이 직접 그렇게 말했어?”온채아는 임지연과 성유준의 관계를 오해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잠시 멈칫했다.“아니요. 그냥 제 추측이에요.”그러자 임지연이 눈을 반짝였다.“날 좋게 보는 모양이네. 새언니로도 적합하다고 생각한 거야? 그렇게 이해해도 될까?”말이 많으면 탈이 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온채아는 몸소 깨달았다.임지연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온채아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성유준이 8년 전에 말했듯 온채아는 그의 친여동생이 아니니까.선을 그으려고 이 자리에 나온 온채아는 밥을 먹고 나서도 말을 명확히 하지 못했고 오히려 임지연이 더 적극적으로 다가왔다.“채아야, 차 갖고 왔어? 없으면 내가 운전해서 데려다줄게.”온채아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괜찮아요. 한의원이 바로 맞은편이라 길 건너서 조금만 걸으면 돼요.”“그래. 그럼 다음에 또 보자.”“네.”온채아는 한의원에 들러 차를 찾고 아는 선배인 하지원의 주얼리 작업실로 갔다.전에 갖고 있던 옥 펜던트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할 예정이었다.하지만 세상에 똑같은 옥석은 없기에 최대한 비슷한 것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어려운 건 아닌데 비슷한 재료를 찾으려면 며칠은 걸릴 것 같아. 일주일 후에 가지러 올래? 아니면 내가 택배로 보내줄까?”하지원은 흔쾌히 온채아의 부탁을 승낙했다.옥 펜던트를 만들 수 있다는 말에 온채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제가 가지러 올게요.”그 후 온채아는 시험실에도 다녀왔다.조금 뒤 갑자기 주율천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채아야.”휴대폰 너머의 남자 목소리는 부드럽고 온화했다.“당분간은 경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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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온채아는 집 현관 앞에 정성스럽게 포장된 대형 선물 상자가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상자 위에는 큼지막하게 이렇게 쓰여 있었다.[수신: 온채아]온채아는 선물 상자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상자를 열어보니 정교하게 제작된 고급 맞춤 드레스 한 벌이 들어있었다.자선 경매 행사에 찰떡인 드레스는 딱 봐도 주율천이 보낸 게 틀림없었다.참석을 요구한 사람이 주율천이니 미리 드레스를 준비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온채아는 사양하지 않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한 뒤 가볍게 화장을 하고 드레스로 갈아입은 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검은색 마이바흐가 이미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대기 중이었다. 주율천은 차에 기대 서 있다가 온채아가 나오는 걸 보고선 눈을 반짝이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역시 이 드레스가 너한테 잘 어울릴 줄 알았어.”그러며 신사적으로 차 문을 열어주었다.온채아는 먼저 차에 올라탔다. 드레스는 깊게 트인 하이슬릿 디자인이라 자리에 앉자마자 눈부신 새하얀 피부가 살짝 드러났다.주율천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춥지는 않아?”온채아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집 안도, 아파트 로비도 모두 난방이 되어있고 더군다나 지금은 차 안에 있으니 춥지 않았다.주율천은 정장 재킷을 벗어 말없이 온채아의 다리를 덮어주며 세심하고 다정하게 말했다.“곧 생리 예정일이지? 이럴 때일수록 더 따뜻하게 있어야 해.”온채아는 조금 놀랐다. 뭔가 설명할 수 없지만 주율천이 예전과는 달라진 것 같았다.이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신경 써주는 느낌이랄까?예상치 못한 그의 행동에 온채아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옷 벗어준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이런 섬세한 행동 자체가 처음이었다.“예전엔...”주율천은 반박하지 못했다.“내가 잘못했어. 앞으로는...”“호텔은 여기서 멀어요?”온채아가 웃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그들 사이엔 ‘앞으로’가 없고 온채아는 그 어떤 약속도 원하지 않았다.온채아의 미소가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진 주율천은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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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온채아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는 말도 없이 돌아서서 걸어갔다.그런데 길게 늘어진 드레스가 계속 발에 걸려 너무 불편했다. 온채아는 종아리를 뒤로 툭 차며 몸을 숙여 치맛자락을 집어 들고 성큼성큼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거슬렸다. 민은하가 손에 꼭 쥐고 있던 이혼 증명서만큼 이 드레스가 너무 거슬렸다.온채아는 연회장에 들어서자마자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췄다.알고 보니 멀찍이 떨어져 있던 성윤혁이 눈을 깜빡이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고 온채아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에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경매장에 들어갔다.스태프가 그녀를 VIP석으로 안내했다.“사모님,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감사합니다.”온채아는 자리에 앉고 나서야 살짝 숨을 돌렸다.성윤혁이 곧장 따라 들어왔고 앞으로 더 다가가려던 찰나 누군가가 그를 세게 끌어당겼다.성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인 성윤혁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은 없었고 경성에서는 성유준의 사촌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가 예의를 갖추곤 했다.하여 그는 짜증스럽게 손을 뿌리쳤다.“X발. 눈 똑바로 안뜨고...”“도련님.”심서정이 그의 팔을 놓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배고프다고 허겁지겁 먹으면 체하기 마련입니다. 지금 당장 쫓아가 봐야 채아 씨의 경계심만 더 키울 거예요.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무슨 뜻이죠?”“제가 이미 다 준비해 놓았어요.”심서정은 입꼬리를 올리며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성윤혁의 가슴을 툭툭 찔렀다.“결정적인 순간에 실수하지 않는다면 도련님이 원하는 대로 다 될 거예요.”“정말요?”“당연하죠.”심서정은 멀리 떨어진 온채아를 바라보며 자신만만하게 눈을 가늘게 떴다.‘오늘만 지나면 끝이야. 주씨 가문에 어떻게 발붙일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막무가내로 온채아를 찾아가려던 성윤혁을 진정시킨 후 심서정은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온채아와 한 자리 사이를 둔 좌석에 앉았다.자리에 앉은 심서정은 가방에서 거울 꺼내며 의미심장하게 온채아를 힐끗 쳐다봤다.“채아 씨는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걸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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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마음속의 울분이 한순간에 원망으로 바뀌었다.‘저 싸가지 없는 X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율천이랑 결혼했을 텐데.’이를 갈고 있는 심서정과 달리 애초에 이런 행사에 관심이 없었던 온채아는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그래도 제법 여유가 있었고 누군가 다가와서 인사라면 미소를 지으며 몇 마디 응대했다.아무도 다가오지 않을 땐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경매 품목을 훑어봤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매사가 단상에 올라왔고 경매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첫 번째 경매 품목은 청나라 시대의 고서화로 수집 가치가 높아 시작가는 20억이었다.이런 물건은 잘만 되팔면 꽤 큰 돈을 벌 수 있기에 심서정은 마음이 동했다.막 주율천에게 말을 걸려던 찰나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온채아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그를 보게 되었다.“마음에 들어?”온채아는 사실 별 흥미가 없었다.하지만 심서정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보고 예전에 그 옥 펜던트를 떠올리며 갑자기 마음을 바꿨다.“네. 마음에 들어요.”두어 마디 주고받는 사이 고서화의 가격은 이미 60억까지 올라와 있었다.주율천은 망설임 없이 팻말을 들었다.“100억.”순간 경매 현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줄곧 입도 뻥끗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40억을 올리니 다들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그래도 쉽게 포기할 수 없어 몇 번 더 따라붙었지만 결국 160억에 주율천이 낙찰받았다.고개를 돌린 온채아는 화가 나서 눈까지 빨갛게 충혈된 심서정을 보고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심서정이 저럴수록 온채아는 더욱 확신했다.옥 펜던트는 누군가의 손을 거쳐 심서정에게 넘어간 것이 아니었고 드레스를 일부러 망가뜨리고 신발에 못을 박은 후 펜던트를 가로챈 장본인이 바로 심서정이다.온채아는 더 이상 심서정의 뜻대로 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한편 주율천 앞에서 대놓고 도발하니 심서정은 미칠 지경이었다.그 뒤로 나온 몇몇 경매 품목은 지극히 평범했다.그러다 백 년산 인삼 한뿌리가 경매에 올랐고 온채아는 눈이 반짝 빛났다.고서화 같은 건 심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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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사실 이 가격은 이미 온채아의 예산을 훨씬 초과한 수준이었다.백 년 된 인삼이라고 해도 완전한 상태도 아닌데 수억 원을 주고 사는 건 호구나 다름없다.하지만 이 정도 돈은 주율천에겐 아무것도 아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새 가격은 20억까지 올라갔다.온채아는 망설였다. 계속 따라붙으면 그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만약 주율천이 더는 입찰하지 않으면 결국 손해 보는 사람은 온채아다.심서정이 도발하듯 온채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채아 씨, 왜 더 안 부르세요?”“전 그만할게요.”온채아가 담담하게 말하자 심서정은 피식 비웃었다.“이 금액이 부담돼서요? 아니면 별로 갖고 싶지 않은 건가요?”그 말속에 담긴 우쭐함은 거의 넘쳐흐를 지경이었다.주율천이 공개적으로 온채아의 체면을 깎아내리자 심서정은 방금 수군거리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속이 후련했다.‘오늘 밤이 지나면 다들 나한테 붙을 거야. 그때면 누가 더 갑인지 깨닫겠지.’“20억, 한 번.”“20억, 두 번.”“20억...”경매사가 낙찰을 부르려던 찰나 갑자기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뭐지? 낙찰 등이 올라왔는데?”“도대체 누가 한 거지?”“뻔하잖아. 경성에서 성씨 가문 그분 말고 누가 감히 주 대표님의 입찰을 가로챌 수 있겠어?”경매에서 낙찰 등이 올라왔다는 건 상대가 어떤 금액을 제시하든 더 높은 가격을 부를 거란 뜻이다.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에 온채아는 고개를 돌렸다.마침 검은색 맞춤 수트를 입은 성유준이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무덤덤하게 걸어오고 있었다.그 뒤를 따르던 스태프들은 감히 선뜻 좌석을 안내하지도 못하고 그저 조심스럽게 걸음을 쫓으며 그가 어디에 앉고 싶어 하는지 바라볼 뿐이었다.성씨 가문의 성유준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성유준이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걸 보고 온채아는 천천히 시선을 거뒀다.그때 주율천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이 정도 체면도 안 세워주나?”주율천은 알고 있다.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사람이 있음에도 온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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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온채아는 마지막 남은 의식을 겨우 붙잡은 채 작고 가느다란 은침을 자신의 피부 아래 깊숙이 찔러넣었다.눈을 떴을 땐 사지에 힘이 풀린 채 호텔 침대 위에 누워 있었고 방안엔 그녀 외엔 아무도 없었다.온채아는 다른 생각할 틈도 없이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손에 익은 그 번호를 눌렀다.비틀거리는 몸을 일으키고 전화를 걸며 막 침대에서 내려오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성윤혁이 느긋한 표정으로 들어왔는데 온채아가 깨어난 모습을 보고선 조금 놀란 듯 의아하게 말했다.“역시 의대 나온 애는 다르네. 엄청 센 약이었는데 몇십 분 만에 깰 줄은 몰랐어.”온채아는 자신이 찌른 그 은침 덕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약기운이 너무 강해 도망칠 힘조차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성윤혁은 마음이 단단히 먹은 듯 도망칠 여지조차 주지 않았다.온채아는 두 손을 이불 속에 감춘 채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성윤혁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뭐 하려는지 궁금해?”성윤혁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웃더니 천천히 온채아에게 다가갔다.“내가 뭘 하려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온채아는 빨갛게 충혈된 두 눈으로 성윤혁을 노려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성윤혁, 너 미쳤어?”“쳇. 약 먹고도 이렇게 청순할 줄 알았으면 진작에 맛볼걸 그랬어.”고개를 숙여 온채아의 머리카락 냄새를 맡은 성윤혁은 몸이 뜨겁게 불타올랐다.“넌 어떻게 머리카락까지 이렇게 향기롭냐?”“대표님이랑 주율천, 아직 아래층에 있어.”온채아는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키며 날카롭게 경고했다.하지만 성윤혁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고 있었다.“그래서 뭐? 호텔 엘리베이터는 3분 전에 고장 났고 여긴 21층이야. 그 둘이 층마다 올라오면서 찾기 시작할 땐 우린 이미 끝났을걸?”성윤혁은 예전부터 이런 역겨운 짓을 수도 없이 해왔다.남녀가 서로 원해서만 이뤄진 관계는 스릴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성윤혁이다.주율천이 마음속에 다른 여자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업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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