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 Chapter 71 - Chapter 80

100 Chapters

제71화

온채아는 그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는 게 전혀 놀랍지 않았다.그녀가 주율천과 결혼하려 했을 때도 그는 똑같이 막아섰으니까.하지만 그는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였기에 그녀처럼 평범한 사람이 당시 주율천에게 시집가는 것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그리고 이혼 또한 그녀에게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만약 주율천이 이혼을 제안했다면 그녀가 원치 않더라도 주율천은 천 가지 만 가지 방법과 수단을 동원했을 것이다.심지어 그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혼 확인서에 도장까지 찍어놓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주 씨 가문에서 허락하지 않고 주율천이 동의하지 않는 한, 그녀는 평생 주 씨 가문에 갇혀 살아야 한다.성씨 가문에서 보냈던 시간들 속에서 온채아는 권력 앞에서 평범한 사람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가장 뼈저리게 깨달았다.구태여 설명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살짝 미소 지으며 보조개를 드러냈다.“하지만 저는 그 사람을 포기할 수 없어요.”여전히 사랑에 푹 빠진 듯한 모습에 성유준은 얼굴을 순식간에 굳히며 이를 악문 채 말했다.“온채아, 내가 예전에 너 괴롭히기라도 했어?”말을 마친 그는 온채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담배를 비벼 끄고 가버렸다. 뒷모습에서는 아직 풀리지 않은 분노가 느껴졌다....그를 화나게 해서 보내버리는 것... 이것이 그녀와 성유준 사이에서 가장 간단한 소통 방식이었다.강태무가 그녀를 찾아왔다.“벌써 간 줄 알았잖아.”“다들 갔어요?”“어.”강태무는 무언가 말하려다 머뭇거렸다.“주율천도 갔어.”“네.”온채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손에서 가방을 받아 들었다.“그럼 우리도 가요.”강태무는 술을 마셨기에 온채아는 그를 집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거의 도착했을 때 강태무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아, 맞다. 내일 한빛 그룹 프로젝트 때문에 먼저 가서 회의하고 준비 작업을 해야돼.”그 말을 듣자 온채아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한빛 그룹에서 오빠한테 말 안 해줬나 본데, 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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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그럼 온채아는? 재능이 별로인 거야?”주율천은 침묵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주율천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결혼 후 몇 년 동안 온채아와 접촉이 많지 않았고 더군다나 일적으로는 거의 교류가 없었다.다만 그녀가 한의원에서 3, 4년 동안 성실하게 일했지만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한의원 사람들이 그녀를 칭찬하는 것은 강태무의 후배이기 때문일 것이었다.레스토랑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린 주율천은 온채아가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온채아는 꽤 빨리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세요?”그녀의 담담한 어조에 주율천은 조금 당황했다.“오늘 식당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나한테 설명해야 할 필요 있지 않을까?”“무슨 설명요?”온채아는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차분하게 말했다.“내가 남편 바람 난 일을 세상에 다 밝힌 걸 설명해야 하는 건가요? 아니면 뭘 원하시는 거죠?”온채아는 주율천이 염치없이 전화를 걸어 자신을 힐난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주율천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그녀에게서 묘한 변화를 감지했다.이전에는 한두 번 정도 화가 나서 심통을 부리는 거라고 치부했다.“나랑 서정이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꼭 서정이를 쫓아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네.”온채아는 순종적인 모습을 거두고 날카로운 본색을 드러냈다.“그래야 속이 시원할 거예요. 그래서 내보낼 건가요?”이 말은 오랫동안 그녀의 마음속에 억눌려 있던 말이었다.그녀는 이혼만 할 수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주율천이 오히려 그녀에게 해명을 요구하며 따져 물을 줄이야.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꿈도 꾸지 마!”온채아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반항하는 모습에 주율천은 그녀가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격한 감정이 끓어올랐지만 그녀가 아직 어리다는 점을 감안하여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고 차분하게 설명하려 노력했다.“온채아, 서정이는 내게 특별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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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온채아 말고도 다른 여자가 또 있다는 건가?’주율천의 큰 키가 살짝 굳어졌다. 본능적인 경계심에 하던 행동을 멈춘 채 그는 흐릿한 눈빛으로 한결같은 어조로 말했다.“네 어릴 적 이름, 잊었어?”“어?”“잊은 건 아니고 너무 오랜만에 그런 식으로 불려서 순간적으로 반응이 늦었어.”“정말?”“당연하지.”그녀의 심장이 쿵쾅거리고 눈가가 붉어졌다.“부모님 돌아가신 후에는 누가 나를 그렇게 불렀겠어... 율천아, 20년이나 됐는데...내가 잊는 것도 당연하잖아?”순식간에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설마 그런 걸로 나를 의심하는 거야?”“그럴 리가. 딴 생각 하지 마.”주율천은 의심을 거두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부드럽게 말했다.“시간이 늦었으니 가서 시윤이 재워.”심서정은 그의 표정이 평소와 같자 안심하며 물었다.“그럼 넌?”“나는... 아직 처리할 일이 좀 남아서 다 끝내고 자려고.”주율천은 목걸이를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아까 잠금장치를 잘못 건드려서 망가뜨렸어. 내일 담결에게 보석 가게에 맡겨서 수리하게 할게. 다 끝나면 돌려줄게.”말을 마친 그는 심서정이 건넨 과일 접시를 받아 들고 서재로 들어갔다.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그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주율천의 말끔한 얼굴에는 더 이상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고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담결아, 직접 사람을 데리고 해성에 가서 서정의 신상에 대해 꼼꼼하게 확인해 봐. 아주 사소한 것 하나까지 빠짐없이 다.”“알겠습니다.”담결은 대답하면서도 궁금한 듯 물었다.“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확인하시는 건가요?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는 건가요?”주율천이 답했다.“확실한 건 없어. 일단 확인해 봐.”부디 자신의 착각이기를 바랐다....전화 통화에서 주율천이 내뱉은 마지막 말을 옆에 있던 정다슬 또한 또렷이 들었다.정다슬은 얼굴을 찌푸리며 평소 젠틀한 이미지를 유지해오던 주율천이 저렇게 뻔뻔하게 양다리를 걸칠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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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괜히 변명을 늘어놓을수록 오히려 자신감 없어 보이는 꼴만 될 뿐이었다.온채아는 그들의 이력을 오는 동안 이미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그녀는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할 자신이 있었다.온채아는 다른 일은 제쳐두고 약재 보관함 앞으로 다가가 약재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점검하기 시작했다.강태무가 물었다.“이렇게 많은 약재가 필요해?”“아니요.”온채아는 차분하게 설명했다.“한의원에서 사용하는 약재들은 선생님께서 꼼꼼하게 확인하신 것들이고 약재상 또한 동일한 기준으로 약재를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약효에는 문제가 없을 거예요. 그런데 한빛에서 쓰는 약재는 우리가 먼저 직접 확인해야 해요.”약재의 색깔과 질감, 숙성 정도는 물론이고 야생인지 인공 재배인지에 따라서도 약효가 달라지기 때문이다.이런 점에서는 한약 개발은 서양 의약품 개발보다 훨씬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그 말을 듣자 강태무는 조금 부끄러워하며 말했다.“오랫동안 한의사로 일하면서도 그런 습관을 제대로 들이지 못했네.”“당연하죠, 사장님이시니까요.”온채아는 강태무를 놀리듯 웃으며 말했다.“이런 일은 사장님이 안 챙겨도 챙기는 사람이 있잖아요.”강태무는 그녀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그럼 우리 한의원은 네가 좀 잘 챙겨줘.”“걱정 마세요.”온채아는 말을 하면서 손에 든 남성을 냄새 맡았다.그 두 남자는 그녀가 구매부에서나 할 법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더욱 경멸하는 표정을 지으며 아예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게임이나 했다.온채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만 했다.약재 점검을 마치고 그녀는 강태무와 함께 연구 개발 계획을 논의했다.온채아가 집중하며 빛나는 모습에 강태무는 잠시 넋을 잃고 하마터면 그녀의 사고를 따라가지 못 할 뻔했다.어둑해질 무렵, 누군가가 실험실 문을 두드리고 나서야 온채아는 하던 일을 멈췄다.문 앞에는 우아하고 지적인 여자가 서 있었다. 실크 셔츠와 H라인 롱스커트를 입은 그녀는 밝고 단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여러분, 프로젝트팀 정식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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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룸안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온채아가 당황스러움을 느낄 때는 드물었지만 이곳은 업무적인 자리였고 성유준은 그녀에게 가장 큰 갑이었으니 그녀는 스스로에게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고 되뇌었다.잠시 후, 그녀는 감정을 추스르고 말했다.“성 대표님께서는 농담도 잘하시네요.”그러고는 안으로 들어가면서 손을 뻗어 문을 닫았다.다만 몇 걸음 걷지 않아 그녀는 성유준의 왼편에만 빈자리가 하나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다른 의자는 모두 종업원들이 치워버린 후였다.당황한 온채아가 고개를 들자 성유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는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역시 날 무서워하는군요.”온채아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성 대표님은 한빛 그룹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으신가 보네요.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이 모두 대표님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텐데요.”“정확히 보셨네요.”성유준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말했다.“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물어봐요. 누가 나를 안 무서워하는지.”말을 마친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오직 온 조장님만 나를 안 무서워하죠.”다른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성유준의 말뜻을 헤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심지어 그들은 대기업 대표가 자신들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이 저녁 식사자리는 엄청난 압박감을 주었다.다행히 적절한 시점에 룸 문이 열리고 종업원들이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프로젝트팀 책임자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온채아와 성유준의 관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다고 확신했다.장현택은 잔을 들고 온채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온 조장님, 이번 프로젝트는 한약팀에서 수고해 주셔야 할 일이 많을 텐데, 제가 먼저 건배하겠습니다.”“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온채아는 와인 잔을 들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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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강태무는 안심하지 못하며 말했다.“성 대표님...”“강 대표님.”성유준은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혹시 제가 온채아를 깊은 산골짜기에 팔아넘길까 봐 걱정하시는 겁니까?”강태무는 말을 멈췄다. 그도 예전에 선생님에게서 성유준과 온채아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 조금 들은 적이 있었다.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그는 항상 좋은 오빠였다.그 점을 생각하니 강태무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말했다.“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성유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온채아를 번쩍 안아 차 안에 태웠다.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온채아는 정신이 조금 맑아졌고 당황한 채 가죽 시트 위에서 허둥지둥 몸을 일으켜 앉았다.그러고는 흐릿한 눈으로 무의식적으로 불렀다.“태무 오빠...”차는 도로 위를 부드럽게 달리고 있었고 가로등 불빛이 가로수 가지 사이로 쏟아져 들어와 성유준의 깊고 날카로운 얼굴을 더욱 차갑고 굳건하게 만들었다.“강태무랑 사이가 아주 좋은가 봐?”그 목소리는 너무나 익숙했다. 온채아의 불안감을 씻어내고 경계를 풀게 할 만큼 익숙한 목소리였다.그녀는 몽롱한 눈으로 머리 받침대에 기대어 앉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나쁘지 않아요. 태무 오빠는... 저에게 정말 잘해줘요.”남자는 그녀의 하얗고 아름다운 뺨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이 이는 눈빛으로 끈기 있게 꼬드기듯 물었다.“성유준은 구아한테 잘 안 해줬나?”“성유준?”너무 오랫동안 그녀의 어릴 적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던 탓일까. 아니면 술기운에 정신이 너무 풀어졌던 탓일까. 온채아는 웅얼거리며 코끝이 찡해졌지만 술에 취한 와중에도 습관적으로 눈물을 꾹 참았다.그녀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체념한 듯 나지막이 말했다.“그 사람이... 날 버렸어요.”7년 전 자신이 얼마나 매정하게 할머니에게 보내졌는지, 술에 취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너무나 깊숙이 박힌 상처였다.그는 그녀가 처음으로 부모님 말고 다른 사람을 온전히 믿었던 사람이었다.그녀는 그를 구세주라고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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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자신의 부끄러운 사생활이 그의 앞에서 또다시 까발려지고 말았다.온채아는 그 말에서 조롱의 뉘앙스를 느꼈다.그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공격적으로 내뱉었다.“누가 저희가 별거했다고 그래요? 성 대표님은 싱글이시라 잘 모르시나 본데 가끔 다른 환경에서 사는 것도 부부간의 애정을 돈독하게 하는 방법 중 하나거든요.”“그래?”성유준은 온몸에 가시를 세운 듯한 그녀의 모습에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어느 부부가 애정을 쌓는데 절친을 끼워줘?”아직 술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 온채아는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뭐라고요?”“아까 정다슬에게서 전화가 왔어.”성유준은 여유롭게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왜 아직도 집에 안 들어오냐고 묻던데.”온채아는 할 말이 없었다.주먹을 꽉 쥔 채 그녀는 더 이상 억지를 부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그래서 체념한 듯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말했다.“맞아요, 저희 별거하고 있어요. 제 결혼 생활은 세상에 흉흉하게 떠도는 소문과 똑같아요. 엉망진창이죠.”온채아는 그의 눈을 똑바로 쏘아보며 술기운에 붉어진 눈꼬리로 쏘아붙였다.“이게 바로 당신이 그토록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기어이 결혼을 강행한 결과예요. 이제 속이 후련하세요?”말을 마치자 그녀는 아무렇게나 가방을 움켜쥐고 거의 도망치듯 그 자리를 뛰쳐나갔다.3년 전, 그녀는 주율천과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거의 4년 동안이나 사적으로는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던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억지로 그녀를 차에 태우고 싸늘한 얼굴로 내뱉었다. “너와 주율천의 결혼, 난 반대야.”그때의 온채아는 지금보다 훨씬 더 그에게 분노했다.개를 키워도 9년이면 정이 들 텐데 그는 조금도 그런 감정이 없었다.온채아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한 번은 40도가 넘는 찜통더위에 뙤약볕 아래 무릎 꿇은 채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었는데, 그때 이미 거대한 한빛 그룹을 물려받은 남자는 옆을 지나가며 무심히 가정부에게 한마디를 던졌다.“또 할머니 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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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내가 잘못했어...”온채아는 아직 머리가 띵했지만 그녀의 연기에 맞춰주며 말했다.“음, 꿀물이나 타 줘. 그러면 용서해 줄게.”“알았어!”정다슬은 잽싸게 그녀의 가방을 현관 수납장에 올려놓고 능숙한 솜씨로 꿀물을 타서 거실로 돌아왔다.그녀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띠며 물었다.“진짜로 용서해 주는 거야?”“당연하지.”온채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애초에 이 엉망진창인 상황을 얼마나 오래 숨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차 안에서 들통났을 때는 당황스러웠지만 집에 올라오는 동안 오히려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성유준이 비웃든 말든 거만하게 굴든 말든 상관없었다.그녀는 모든 걸 내려놓기로 했다.정다슬은 그녀의 안색이 비교적 평온해 보이자 잽싸게 본론으로 들어갔다.“그럼 말해 줄 수 있어? 왜 네 전화를 성유준이 받은 거야?”“무례한 사람이니까.”온채아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그는 원래 제멋대로였고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온채아는 오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정다슬에게 털어놓았고 정다슬은 왠지 모르게 찜찜한 기분이 들어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분명히 강 선배가 너를 데려다줄 수도 있었는데 성 대표님이 굳이 자기가 데려다주겠다고 나선 거잖아. 그거, 혹시 성 대표님이 너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건 아닐까?”“?”온채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누가 그렇게 호감을 표시하는 걸 본 적 있어?”“그럼 만약에 그가 정말로 너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거라면 다시 그와 잘해 볼 생각은 없어?”“없어.”온채아는 거의 망설임 없이 대답하며 꿀물을 한 모금 마셨다.“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딱 한 번의 기회밖에 없는 거야.”오직 단 한 번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기회 말이다.다시 좋아진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말이었다.일단 신뢰가 깨지면 아무리 억지로 맞춰보려고 해도 틈과 의심으로 가득할 뿐이다.모든 관계가 다 그렇듯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언제 다시 버려질지 끊임없이 불안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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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온채아는 모르는 척하며 그의 손에 들린 은침 세트를 빤히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그거 돌려줘.”스승님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18 침법의 전수자였고 이 침법은 대대로 한 명의 제자에게만 전수되는 것이 원칙이었다온채아는 13살 때 여승운에게 선택받아 이 침법을 계승하게 되었다.강태무조차도 전혀 접해본 적이 없는 침법이었다.이 은침 세트는 그녀가 침법을 배울 때 스승님이 선물해 준 것으로 그녀에게는 의미가 남달랐다.“싫어! 그냥 너 화나게 하고 싶어!”온채아가 화를 내자 주시윤은 더 신이 나서 은침을 모두 꺼내 바닥에 던져 버리고 미친 듯이 밟아댔다.온채아는 그의 옷깃을 움켜쥐고 굳은 표정으로 그를 진료실에서 끌어내 퉁퉁한 볼을 잡고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너 다시 내 사무실에 들어오기만 해 봐, 바닥에 있는 침 전부 네 머리에 꽂아버릴 테니까. 뚱뚱한 고슴도치로 만들어 줄 거야. 정말로 그렇게 할 수 있어. 두고 봐.”주시윤은 겁에 질려 온몸을 떨며 입술을 삐죽거리고 울음을 터뜨렸다.“거짓말! 뻥 치지 마. 으앙앙... 놓아줘, 엄마한테 갈 거야!”온채아가 놓아주자 그는 엉엉 울면서 뛰쳐나갔다.‘겁도 많으면서 왜 자꾸 와서 문제를 일으키는 건지... 심서정은 정말로 쟤를 친아들로 생각하긴 하는 거야?’하지만 그건 온채아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어쨌든 그녀의 친아들이 아니니 마음 아파할 필요도 없었다.환자는 예전보다 많지 않았지만 그녀는 오전 내내 의자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거의 정오 1시가 다 되어서야 마지막 환자를 진료했다.온채아는 구내식당에 가지 않고 물건을 챙겨서 한빛 그룹으로 갈 준비를 했다.강태무는 오전에 이미 출발했다.그녀가 화장실에서 나와 가방을 가지러 진료실로 돌아가려는데, 소방 통로에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그리고 희미하게 무언가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의사로서의 본능으로 그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문을 열고 달려 들어갔다.센서 등이 켜지며 계단 위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방금 굴러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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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간호사는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복잡했지만 어쨌든 알겠다고 대답했다.누군가 걱정스럽게 말했다.“서정 언니, 일단 채아 언니더러 먼저 아이를 진찰하게 해보는 건 어때요?”“어디 무서워서 보이겠어요?”심서정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온채아 씨가 내 아들을 저렇게 만들었는데 치료를 핑계로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아요...”온채아는 차갑게 말했다.“구급차 불러요.”말을 마친 그녀는 냉정한 표정으로 가버렸다.사무실에서 가방을 챙겨 나오는 길에 간호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설마 채아 언니가 그 녀석을 저렇게 만든 건 아니겠지...”“누가 알아? 소름 돋아. 만약 채아 언니가 한 짓이라면 나는 더 이상 같이 일 못 해...”“게다가 며칠 전에 식당에서 있었던 일 기억나지? 채아 언니와 주 대표님은 함께 왔잖아. 그리고 오늘 아침에 그 아이가 했던 말도 그렇고, 채아 언니는 내연녀일 가능성이 커.”“에이, 설마!”온채아와 가장 친한 허소망은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어 말했다.“채아 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뒤에서 험담 좀 그만해. 정말로 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본인한테 물어보든가.”누군가가 비웃듯 말했다.“네가 가서 물어봐. 너랑 친하잖아.”허소망은 그들의 태도에 질려 고개를 돌려 가 버렸다.그러다 막 모퉁이를 돌자마자 온채아와 정면으로 마주쳤다.온채아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아무 말 없이 지나치려 했다.“나 바빠서 먼저 가볼게.”“채아 언니!”허소망이 그녀를 불렀다.“정말 저들이 언니를 그렇게 말하도록 내버려 두실 거예요?”온채아는 입술을 살짝 오므리며 말했다.“잘잘못은 경찰이 판단하겠지. 다른 건 입은 그들에게 달려 있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그녀는 원래 구차하게 자신을 변호하는 것을 싫어했다. 변명하면 변명할수록 스스로만 더 피폐해질 뿐이니까.그녀는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한빛 그룹에 도착하니 강태무가 시킨 배달 음식이 막 도착해서 그녀도 마침 점심을 함께 먹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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