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Chapter 151 - Chapter 160

192 Chapters

제151화

“아니야.”서하가 말했다.“나 이혼할 거야. 이혼합의서도 이미 준비해 뒀어. 설 연휴 지나면 바로 절차 밟을 거고.”“정말이에요?”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정말이야.”“저... 저랑 배성우 씨는 계약 결혼이에요.”레나가 불쑥 말했다.“저희... 가짜 부부예요. 배성우 씨는 절 한 번도 건드린 적 없어요. 오빠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은혁 오빠인 거 알고 있고요. 그래서 더더욱 함부로 못 해요.”서하는 미간을 좁혔다.‘원래 그랬던 거구나.’레나가 말을 이었다.“은혁 오빠가 제게 약혼은 하지 말자고 했어요. 그래도 저는 오빠 옆에 있고 싶었고... 방법이 없었어요.”서하는 짧게 웃었다.레나는 그 웃음을 확인하듯 다시 입을 열었다.“은혁 오빠는 항상 저 챙겨줘요. 제가 뭘 해도... 오빠는 다 들어주거든요.”서하는 더 듣고 싶지 않았다.“그런 얘기, 난 신경 안 써. 내 일만 비밀로 지켜 줘.”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담담하게 말했다.“언니한테 이런 얘기하는 게...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에요. 언니는 그렇게 들릴지 몰라도, 은혁 오빠가 제게 잘해주는 건 저한테는 그냥 ‘일상’이에요.”“배씨 가문의 맏며느리라는 신분 말고는... 언니한테 제가 부러워할 만한 건 하나도 없어요.”서하는 비웃듯 말했다.“걱정하지 마. 그 자리, 곧 넘겨줄 테니까.”“그럼 다행이네요.”레나는 서하의 배를 흘끗 보았다.“언니가 한 말, 지켜 주세요. 뱃속 아이도 빨리 정리하고, 빨리 이혼하시고요. 병원 갈 때는... 제가 같이 가드릴 수도 있어요.”레나는 서하가 혹시 말을 바꿀까 봐 불안했다.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하가 굳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레나가 자기 말을 믿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혼만 성사되면 서하는 조용히 떠날 거고, 그러면 레나 역시 아이 문제를 끝까지 캐묻지는 않을 가능성이 컸다.레나에게 임신 사실을 들킨 건 철저한 우연이었다. 더 이상 어떤 우연도 생기게 할 수 없었다.하지만 어떤 일들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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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화

설날 첫날부터 배씨 가문 본가엔 세배차 들른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배씨 가문 같은 명문가의 본가에 새해 인사를 올리러 오는 사람들이니, 당연히 하나같이 부유한 집안들이었다.하물며 설이라는 전통적인 큰 명절이니 집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권력을 쥔 이들.나이 오십, 육십이 넘은 이들이 가장 많았다.은혁처럼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서하는 배씨 가문의 맏며느리로서 단정하고 품위 있게 행동하려 애쓰고 있었다.설 연휴 셋째 날, 서하는 원래 친정에 잠깐 들릴 생각이었다.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가, 속옷에 희미한 커피색의 핏자국이 묻어 있는 걸 발견했다.서하는 얼굴이 새하얘졌다. 거의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왜, 왜 이래...?’서하는 허둥지둥 옷을 챙겨 입고 그대로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아래층엔 아무도 없었다. 서하는 그것조차 신경 쓰지 못한 채 급하게 현관으로 향했다.차 문을 열고 앉아 몇 번이나 깊게 숨을 들이켜야 겨우 시동을 걸 수 있었다.가는 내내 서하는 마음속으로 계속 되뇌었다.‘놀라지 마. 겁내지 마. 침착해, 제발...’하지만 한겨울의 차가운 공기와는 상관없이, 서하의 등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핸들을 잡은 두 손바닥에서도 끈적한 땀이 흘러내렸다.서하는 누구보다도 이 아이를 기다렸다.조용히, 순하게 자라주는 아이 덕에 배 속의 생명이 점점 더 사랑스러워졌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서야 서하는 깨달았다. 자신이 이 작은 존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뱃속에 찾아온 순간부터, 서하는 이 아기를 자신의 피와 살로 받아들였다.만약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서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오랜만에 찾아온, 숨을 죄는 듯한 심장 통증이 다시 서하를 덮쳤다.서하는 결국 지역에서 가장 좋은 병원, 임범철이 입원했던 그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설 연휴라 당번 의사들이 정상 근무 중이긴 했지만, 평소와 비교하면 병원엔 확실히 사람이 적었다.진료 접수를 하려고 신분증을 내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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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3화

은혁은 곧바로 또 다른 번호를 눌렀다.전화는 신호가 한번 울리자마자 바로 통화가 연결됐다.[매형!]은혁이 묻는다.“오늘 장인어른, 병원 가셔?”[맞아요!]상호가 덧붙였다.[누나가 매형한테 말했어요?]은혁은 핸드폰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만큼 힘을 주고 있었다.“그래. 알았다.”뚝-전화를 끊어버린 은혁 때문에 상호는 멍하니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매형이 뭘 안다는 거야?’은혁은 더 이상 뛰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집에 도착하니, 이미 출근한 가사도우미가 아침상을 차리고 있었다.배효산이 은혁을 보며 말했다.“서하는 아직 안 내려왔어. 가서 서하 불러서 같이 밥 먹어라.”은혁은 계단을 올라가며 짧게 말했다.“서하 병원 갔어요. 오늘 장인어른 검사 받으시잖아요.”배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구나. 너도 같이 가지? 그래도 사위인데.”“안 가요.”배효산은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얘야, 그래도 한집안 식구잖니. 서하는 딸이고, 병원에서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네가 있어야 하지.”은혁은 아무 말 없이 계단을 끝까지 올라갔다.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배효산이 불렀다.“와서 밥이라도 먹고 가라.”“안 먹어요.”은혁은 낮게 말했다.“미팅 있어요.”“오늘 미팅이 있어?”배효산은 의아해했다.“오늘 출근하니?”“네.”은혁은 대답과 동시에 현관문을 열고 나가 차에 올랐다.곧 엔진 소리가 울리고 차는 가파르게 집을 떠나갔다....서하는 의사 앞에 앉아 자신의 증상을 자세히 말했다.의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큰 문제는 아니에요.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우선 피검사부터 하시죠.”서하의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이 그제야 약간 누그러졌다.서하는 순순히 검사지를 받아 계산하고, 바로 채혈실로 향했다.검사를 마치고 진료실 앞 의자에 앉자, 거의 처음으로 숨이 폐 속 깊게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그때, 서하의 핸드폰이 울렸다. 상호였다.상호가 전화받자마자 서하는 말했다.“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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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화

남자는 소진의 입에서 손으로 담배를 뺏더니, 자기 입에 물고 한 모금 깊게 빨았다.그러고 나서야 비죽 웃으며 말했다.“모든 남자는 끝나면 무정하다는데, 보니까 너는 더하네.”“하선우.”소진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선우를 노려봤다.“어제 밤에 내가 너 오라고 했어?”“아니. 내가 기어들어 왔지.”소진 옆에 누워 있던 남자... 바로 선우였다.소진은 선우를 밀쳐내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신의 옷을 하나하나 챙겨 입었다.그리고 가방을 열어 현금 한 다발을 꺼내 선우 쪽으로 거칠게 던졌다.“수고비.”지폐들이 한 장 한 장 선우의 가슴과 배 위로 흩어져 떨어졌다.선우는 그중 한 장을 집어 들며 코웃음을 쳤다.“내 값어치가 이 정도냐?”소진은 이미 옷을 다 챙겨 입은 상태였다.선우를 위아래로 한번 훑고는 차갑게 말했다.“네가 얼마짜리인지는 난 관심 없고, 내 예산은 여기까지야. 싫으면 다음엔 먼저 들이대지 마.”그 말을 남기고 소진은 힐끗도 안 하고 방을 나갔다.선우는 잠시 입술을 깨물다, 피식 자조 섞인 웃음을 흘리며 욕 한마디를 내뱉었다.그러고는 흩어진 돈을 하나하나 주워 담고, 천천히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그때, 선우의 핸드폰이 울렸다.전화받자마자 버럭 내질렀다.“말해.”[뭐야, 아침부터 왜 이렇게 까칠해?]전화기 너머로 천후의 목소리가 들렸다.[너 집에 있는 거 아니야? 고모랑 다른 친척들 다 돌아왔는데, 넌?]“우리 어머니도 오셨어?”[일찍 왔지.]천후가 물었다.[너 어디야?]“30분이면 가.”천후는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야, 너 설에 어디 숨겨놓은 여자라도 있냐? 밤새 안 들어오고.]“있으면 어쩔 건데?”[어쩌긴, 네가 깽판 치면 고모한테 바로 찌른다.]“네 고모는 내가 드디어 여자한테 관심 생겼다고 좋아하시겠지.”[하, 재수 없게. 그게 자랑이냐?]천후가 비웃었다.[별 볼 일 없는 놈.]“그래, 나 별 볼 일 없다.”선우는 바로 받아쳤다.“여자 하나 못 사귀는 아직도 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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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화

서하는 눈앞의 상황에 완전히 얼어붙었다.손에 들고 있던, 아직 가방에 넣지 못한 진료 명세서를 반사적으로 뒤로 감춰버렸다.서하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고, 긴 속눈썹이 떨렸다.은혁은 이런 서하의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은혁의 기억 속 서하는 언제나 차갑고, 담담하고, 이과생 특유의 고집스러운 고요함과 날카로움이 있는 여자였다.하지만 지금, 서하는 길을 잃고 큰 회색 늑대에게 들킨 어린 토끼처럼 불안하고 작아 보였다.은혁의 시선이 서하를 꿰뚫었다.“꺼내.”서하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당황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상황이 너무 무겁게 서하의 머리를 짓눌렀다.서하는 이혼만을 생각해 왔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자신에게 되뇌어왔다.그러나 뱃속의 아기는 서하 혼자만의 아이가 아니었다.아기는 은혁의 아이이기도 했다.만약 은혁이 알게 된다면...이혼이 어려워질 뿐 아니라, 설령 이혼한다 해도 이 아이를 자신이 데려갈 수 있을까?절대 아니라고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배은혁... 왜 병원에 와 있어?’‘하필 지금, 하필 내가 있는 걸 봤다고?’서하는 간절하게 바랐다.‘혹시... 혹시라도, 이 사람이 다른 쪽으로 생각한 건 아니겠지?’서하는 숨을 들이쉬며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를 내려 했다.“나... 친구 때문에 같이 온 거야...”“임서하.”은혁의 목소리는 더 낮고 더 차가웠다.“내가 그렇게 호구로 보여? 당신 손에 든 거, 내놔.”서하는 그대로 굳었다.은혁이 말했다.“내가 직접 들어가서 의사한테 물어볼까? 남편이면 아내가 임신한 이후 건강 상태 알 권리 있잖아?”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서하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은혁이 알고 있다.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벼랑 끝에 선 채, 발을 뗄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그런 상태.은혁의 시선이 서하의 창백한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곧이어 은혁은 손을 뻗어 서하의 팔을 거칠게 잡았다.“가.”저항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서하는 작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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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화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가방 속을 정리하는 작은 바스락거림, 종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은혁은 눈을 내려뜨린 채 고개를 살짝 기울여 서하를 바라봤다.드디어 서하는 정리한 서류들을 은혁에게 내밀었다.“첫 번째 검사 때... 아기 6주. 지금은 8주야. 오늘 아침에 조금 피가 비쳐서 병원에 온 거고... 의사 말로는 큰 문제 없대. 약만 먹으면 된다고.”은혁은 아무 말도 없이 멍하니 서하를 보았다.몇 초 뒤, 천천히 손을 뻗어 그 검사결과지를 받아들었다.서하는 그 순간 알아차렸다.은혁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페이지는 몇 장 되지 않았고, 대부분 전문적인 수치들이라서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렵다.마지막으로, 은혁의 시선은 초음파 결과지에 내려앉았다.초음파라고 해도 그림은 흐릿하고, 어디가 아기인지 잘 분간도 되지 않았다.하지만 하단 보고란엔 분명히 적혀 있었다.[자궁 내 아기집, 임신 6주]은혁은 그 문장을 아주 오랫동안 가만히, 꼼짝도 하지 않고 바라봤다.서하는 기다렸다.또 기다렸다.하지만 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결국 서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당신...”말이 끝나기도 전에 은혁이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왜... 나한테 말 안 했어?”서하는 눈을 크게 떴다.“우리가 곧 이혼한다는 이유로, 당신은... 내가 내 아이의 존재조차 알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거야?”은혁의 말은 잔혹할 만큼 직설적이었다.틀린 데가 없는 말이라 서하는 더더욱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임서하, 당신 진짜... 독하다.”아이 문제만큼은 은혁에게도 절반의 책임과 결정권이 있었다.서하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은혁도 말 없이 검사결과지를 반으로 접었다.그걸 서하에게 건네려는 듯했기에 서하는 손을 내밀었다.그러나 다음 순간, 은혁은 서하의 손을 외면하고, 그 종이들을 차의 중앙 수납함에 그대로 넣어버렸다.“내가 보관할게.”“응...”은혁의 말에 서하는 작게 대답했다.검사결과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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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화

“배고파?”은혁이 물었다.“당신 요 며칠... 좀 많이 먹더라.”서하는 순간 고개를 돌려 은혁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봤다.‘배은혁이... 내가 뭘 얼마나 먹는지 신경을 쓴다고?’‘이 사람이 신경 쓰는 건 민레나 아니었나?’“뭐 먹고 싶어?”은혁의 목소리가 서하의 흐트러진 생각을 끊었다.서하는 살짝 멍한 상태로 말했다.“어... 아무거나. 나 안 가려.” “김밥?”서하는 잠깐 말이 막혔다가 말했다.“세상에 먹을 게 김밥만 있는 건 아니잖아.”은혁은 조용히 서하를 보더니 말했다.“근데 당신... 진짜로 먹고 싶은 건 김밥 하나뿐이잖아.”서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봤다.겨울의 풍경은 칙칙했고, 도로 옆 나무들도 색을 잃고 말라 있었다.“아무 데나 들어가서 먹자.”그 말에 은혁은 차를 다시 출발시켰고, 근처의 중식당으로 향했다.조금 이른 시간이라 식당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룸으로 들어가고 나니,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서하는 몇 번 눈을 들어 은혁을 봤다.그런데... 은혁이 계속 서하를 보고 있었다.서하는 결국 시선을 내리깐 채 못 본 척했다.두 사람은 조용히 두 가지 요리와 탕 하나를 주문했고, 음식은 금방 나왔다.은혁은 먼저 서하 앞에 따뜻한 국물을 떠주었다.“고마워.”서하는 살짝 작은 소리로 말을 꺼냈다.그리고는 차분히, 아주 잘 먹었다.많이 먹는 건 아니었지만 꾸준히, 끊임없이.원래 별로 식욕 없었던 은혁도, 서하의 모습을 보며 몇 젓가락 따라 먹게 되었다.식사가 끝나갈 즈음, 은혁은 물 한 잔을 따라 서하에게 건넸다.“이제... 얘기 좀 할 수 있어?”서하는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나... 배부르니까 졸려.”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니까 요 며칠 밤마다 그렇게 빨리 잠들었구나.”“응. 임신하면... 진짜 많이 졸려.”“그럼 바로 집으로 가자.”은혁은 단호하게 말했다.“자고 싶으면 자. 다른 생각하지 말고.”서하는 문득 물었다.“당신은... 배불러?”두 사람이 먹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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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화

막 깨어난 서하는 정신이 아직 몽롱했다.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우리가... 더 이야기할 게 있어?”“나 이혼 안 해.”은혁의 말은 단단하고 확고했다.“얘기할 게 없다면, 내가 먼저 말할게. 난 이혼 동의 안 해.”“아이가 있다고 해서, 우리 결혼생활이 갑자기 정상이 되는 건 아니야.”서하는 침착하게 말했다.“우리는... 아이 때문에 서로의 인생을 포기하면 안 돼.”“뭘 포기해?”“그러니까...”서하는 고개를 들어 은혁을 똑바로 바라봤다.“당신도 나 좋아하지 않고, 나도 당신 좋아하지 않아. 이혼 안 하면... 서로 진짜 사랑하는 사람 만날 기회도 사라진다는 거야. 그게 인생 포기 아니면 뭐야?”“난 포기할 수 있어.”은혁은 한 치 흔들림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나한텐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서하는 피식 웃었다.‘민레나가 바로 코앞에 있는데, 뭐가 어렵겠어.’‘평생 몰래 만나도 아무도 뭐라 못 하는 사이일 텐데.’‘그러니 배은혁은 당연히 어렵지 않겠지.’서하는 작게 입을 열었다.“난 못 해.”“그럼... 어떻게 해야 당신이 이혼 안 하겠다고 하겠어?”서하는 더 깊은 곳에서 웃음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웃기네.’‘처음엔 내가 뼈 빠지게 노력해서 이 결혼 붙잡으려고 했었는데.’‘내가 완전히 마음 접고 포기하니까... 이제 와서 배은혁이 나를 붙잡네.’‘어떻게 해야 이혼 안 할 거냐고.’‘비참할 만큼... 아이러니해.’서하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난 이혼할 거야.”“임서하!”은혁이 짜증과 조급함을 억누르며 낮게 이름을 부르자, 그 분위기에 서하도 잠시 숨을 멈췄다.은혁은 벌떡 일어나 방을 몇 번 오가며 자신을 진정시키려 했다.그리고 다시 서하 앞에 서서 내려다보듯 말했다.“당신 요구가 뭔데? 무엇이든 들어줄게.”서하는 눈을 내리깔고 아주 작게 말했다.“이제... 당신한테 바라는 거 없어.”‘바라면 뭐 해.’‘내 유일한 바람은 이혼인데, 그걸 당신이 막고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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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화

“내가 데려다줄게.”“필요 없어.”서하는 외투를 제대로 여미며 현관 앞에서 은혁을 정면으로 막아섰다.“정말로, 필요 없어.”그 말을 남기고 서하는 바로 문을 열고 나갔다.쾅!그리고 손을 뒤로 뻗어 문을 닫았다.그 소리가 은혁의 모든 동작을 단번에 멈추게 했다.“오빠!”레나가 계단을 내려오며 눈을 크게 떴다.“오빠랑 언니... 싸우신 거예요?”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짧은 침묵이 흐르고, 그는 돌아서서 조용히 계단을 올라갔다.레나는 인상을 깊게 찌푸렸다.‘대체 무슨 일이야?’레나는 즉시 핸드폰을 꺼내 서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지금 이런 때에 문제가 생기면 절대로 안 된다.그건 레나에게도, 서하에게도 마찬가지였다.서하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제발... 더 복잡해지지만 않으면 좋겠는데.’하지만 은혁은 결국 서하의 임신 사실을 알아버렸다.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서하는 핸드폰을 보지 않았다.소진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해서야 레나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장을 보냈다.[배은혁이 내가 임신한 거 알아버렸어. 아이 때문에 이혼 안 한대. 네가 좀 말려줘.]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서하는 핸드폰을 가방에 던져 넣었다.룸에 들어가 앉자, 조금 일찍 도착한 터라 손에 잡히는 대로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서하는 가방에서 이전에 기중환 교수가 준 학습 자료를 꺼내 들었다.어차피 기다리는 시간, 어려운 문제라도 몇 개 풀어볼까 싶었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소진이 들어왔다.그 순간 소진이 본 건, 책상에 바르게 앉아 학습 자료에 집중하는 서하였다.등은 곧게 펴져 있고, 고요하면서도 깔끔한 기운이 흐르는 모습.학교에서나 볼 법한 ‘우등생’의 분위기였다.소진과 동갑이지만, 실제로 보면 서하는 몇 살은 어려 보였다.외모 때문만이 아니라, 그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깨끗하고 순수한 느낌 때문이었다.낮게 드리워진 속눈썹 그림자, 고요한 옆모습.누가 봐도 가슴 뛰는 그런 얼굴이었다.“소진이야?”서하는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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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화

선우는 옆에서 투덜대는 천후를 힐끔 쳐다봤다.“너 같은 모태 솔로가 내 연애에 훈수 두는 게 말이 되냐?”“하선우!”천후가 얼굴까지 빨개져서 버럭 소리쳤다.“다시 말해봐?!”선우는 아예 대꾸하지 않고 성큼성큼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먼저 시비 건 건 너잖아.”둘의 설전은 멀리서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못난이들의 치고받기’에 가까웠다.천후는 연애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좋아해 본 여자도 없었다.선우는 그보단 나았지만, 평생 처음 좋아한 여자가 하필 소진이라... 누가 더 낫다고 할 것도 없는 수준.원래 두 사람은 룸을 예약했지만, 선우는 소진과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노렸고, 결국 문과 가까운 홀 자리로 바꿨다.이렇게 하면 식당 안에 있는 누구든 나오면 바로 볼 수 있으니까....소진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서하에게 이혼 전략을 진지하게 제시하고 있었다.“안 되겠다, 그냥 세게 말해. 배은혁한테 이혼 안 하면 너 수술한다고 해!”“그 방법은... 통할 것 같지 않아.”서하는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난 못 해. 진짜로 못 해.”“아 진짜 그 얘기 자체가 속임수야. 너 보고 진짜 수술하라는 게 아니라, 시간 벌자는 말이잖아.”서하는 고개를 기울였다.“근데... 남자가 정말로, 사랑도 없는 여자랑 낳은 아기를 좋아해?”“대부분 좋아하더라.”소진은 거의 확신에 차서 말했다.“남자들 뼛속에 있는 뭔가 있어. 아이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내 자식’이라는 감각에서 오는 이상한 우월감? 존재감? 그런 거.”“근데... 배은혁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랑 아기 낳고 싶지 않을까?”“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아이는 많아도 상관없잖아. 배은혁 같은 부자라면.”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네... 그래서 뭐, 어떻게 해야 배은혁이 이혼하겠다고 할까?’‘혹시... 민레나가 도와줄까?’정말 아이러니했다.예전에는 레나가 자신의 결혼을 위협하는 ‘다른 여자’라고 생각했다.배은혁이 좋아하는 여자가 레나든 누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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