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는 눈앞의 상황에 완전히 얼어붙었다.손에 들고 있던, 아직 가방에 넣지 못한 진료 명세서를 반사적으로 뒤로 감춰버렸다.서하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고, 긴 속눈썹이 떨렸다.은혁은 이런 서하의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은혁의 기억 속 서하는 언제나 차갑고, 담담하고, 이과생 특유의 고집스러운 고요함과 날카로움이 있는 여자였다.하지만 지금, 서하는 길을 잃고 큰 회색 늑대에게 들킨 어린 토끼처럼 불안하고 작아 보였다.은혁의 시선이 서하를 꿰뚫었다.“꺼내.”서하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당황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상황이 너무 무겁게 서하의 머리를 짓눌렀다.서하는 이혼만을 생각해 왔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자신에게 되뇌어왔다.그러나 뱃속의 아기는 서하 혼자만의 아이가 아니었다.아기는 은혁의 아이이기도 했다.만약 은혁이 알게 된다면...이혼이 어려워질 뿐 아니라, 설령 이혼한다 해도 이 아이를 자신이 데려갈 수 있을까?절대 아니라고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배은혁... 왜 병원에 와 있어?’‘하필 지금, 하필 내가 있는 걸 봤다고?’서하는 간절하게 바랐다.‘혹시... 혹시라도, 이 사람이 다른 쪽으로 생각한 건 아니겠지?’서하는 숨을 들이쉬며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를 내려 했다.“나... 친구 때문에 같이 온 거야...”“임서하.”은혁의 목소리는 더 낮고 더 차가웠다.“내가 그렇게 호구로 보여? 당신 손에 든 거, 내놔.”서하는 그대로 굳었다.은혁이 말했다.“내가 직접 들어가서 의사한테 물어볼까? 남편이면 아내가 임신한 이후 건강 상태 알 권리 있잖아?”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서하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은혁이 알고 있다.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벼랑 끝에 선 채, 발을 뗄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그런 상태.은혁의 시선이 서하의 창백한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곧이어 은혁은 손을 뻗어 서하의 팔을 거칠게 잡았다.“가.”저항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서하는 작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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