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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1화

천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그럼 난 먼저 간다. 서하 씨 이혼하는 날엔, 내가 폭죽 사서 불꽃놀이 해 줄게.”서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운전 조심하고.”천후가 떠나고 나자, 서하는 은혁을 바라봤다.“무슨 일이야?”“요즘 저렇게 매일 지천후랑 붙어 다녀?”은혁의 목소리는 차갑게 갈라져 있었다.“걱정 마. 우리 아직 이혼 전이야. 나도 내 위치와 신분도 알아. 배씨 가문 욕먹을 짓 안 해. 지천후는 그냥 친구일 뿐이야...”“지천후랑 친구?”은혁은 얼음처럼 식은 눈으로 서하를 꿰뚫었다.“내가 했던 말들, 다 흘려듣는 거야?”“배 대표님.”서하는 담담히 그 시선을 받아냈다.“당신이 나한테 뭘 가르칠 필요 없어. 나도 성인이고, 내가 뭘 하는지 알아.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 해. 무슨 일로 왔어?”은혁은 입을 열 생각 없이 그저 서하를 보기만 했다.서하는 미간을 좁혔다.“말 안 할 거면 난 간다. 진짜 바빠.”“뭐가 그렇게 바쁘냐?”은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그리고... 요 며칠, 몸은 어때? 어디 불편한 데는 없고?”“응. 괜찮아.”“밥은? 바빠도 밥은 챙겨 먹어야지. 이제 혼자도 아니잖아. 영양도 신경 써야 하고.”“알아.”서하는 답답하다는 듯 은혁을 보았다.“그러니까... 무슨 일인데?”“나... 그냥 당신 보러 왔어.”뜻밖의 말이었지만, 서하는 곧 이해했다.은혁은 서하가 아니라, 서하 뱃속의 아이를 보러 온 것이었다.배씨 가문의 핏줄을 이어받은 그 아이.“걱정하지 마. 나 잘 지낼 거야. 그럼 다른 일 없으면 난 간다.”“여보!”은혁이 목소리를 높였다.“당신 지천후랑 캠퍼스에서 산책하고, 난 아직 할 말도 다 못 했는데 그냥 가라고?”“나 보러 왔다며? 봤잖아. 나 괜찮아. 그럼 이제 가면 되지 않아?”“난... 당신이 공부하는 곳도 보고 싶어.”은혁이 천천히 말했다.“당신 지금 혼자 아니야. 뱃속 아이는... 내 아이기도 해.”서하는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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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2화

서하는 즉시 눈살을 찌푸렸다.‘배은혁은 왜 이런 말을 하지? 뭐 하려고 그래?’서하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은혁을 잠깐 데려와서 얼굴만 보여주고, 대학원생들에게 자신이 유부녀라는 사실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것.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솔직히 말해, 은혁은 앞으로 이혼녀라는 신분을 가리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서하에게 ‘결혼했다’라는 사실은 일종의 방패였다.불필요한 접근, 말도 안 되는 호감, 오해... 그 모든 걸 줄여주는 단단한 보호막.그런데 은혁이 대학원생들과 가까워지기라도 하면, 이혼 사실이 금방 퍼질 것이고, 그러면 서하는 다시 골치 아픈 질문들을 감당해야 했다.그래서 서하는 은혁을 복도로 끌고 갔고 복도 끝에서 날카롭게 말했다.“왜 그래? 왜 당신이 갑자기 저 사람들한테 저녁을 사?”“당신이 저 친구들이랑 같이 공부하는 거잖아. 내가 당신 남편이면 밥 사는 게 당연하지 않아?”은혁은 아주 자연스러운 표정이었다.“당연하지 않아.”서하는 단호했다.“우리 이혼할 거잖아.”“근데 왜 나를 학생들한테 소개했어?”은혁이 되물었다.“그 순간엔 우리가 이혼할 거란 생각 안 들었어?”서하는 순간 말이 막혔다. 설마 ‘당신은 그냥 보호막이야’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밥은 됐어. 내가 잘 말할게. 당신은 이대로 그냥 가.”서하가 정리했다.“뭐라고 말할 건데?”“당신이 갑자기 급한 일 생겨서 못 온다고. 내가 그냥 혼자 사는 걸로 해.”“난 급한 일 없어.”“배은혁, 도대체 왜 그래?”서하는 답답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우린 이혼하는 사인데, 이런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어?”“우린 아직 이혼 전이라고.”또 그 말이었다.서하는 속으로 신음했다.‘또야... 또 이 말이야...’“어차피 곧 할 거야. 별일 아니면 제발 그냥 가.”서하는 진심으로 말했다.은혁은 몇 초 동안 서하를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걸어갔다.서하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비로소 한숨을 내쉬었다.연구실로 돌아가서 말했다.“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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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3화

천후가 대학원생들 데리고 뷔페 갔을 때처럼 이번 샤브샤브집도 학생들 대부분은 처음 와본 곳이었다.하지만 샤브샤브는 원래 떠들썩하게 먹는 음식이었다.게다가 전부 젊은 사람들이라 금세 분위기가 달아올랐다.서하에게 의외였던 건... 은혁의 태도였다.은혁은 서하 옆에 앉아, 목소리 낮춰 뭐 먹고 싶은지 묻고, 접시에 이것저것 덜어주고, 심지어 새우껍질까지 까주었다.서하는 처음엔 작은 목소리로 ‘고마워’하고 받았지만, 나중엔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말을 섞는 것조차 피하고 싶었다.그때 신애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언니랑 형부 사이 진짜 좋아 보여요! 두 분 앞으로도 영원히 이렇게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서하는 그저 얌전히 웃기만 할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대신 은혁이 서하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그리고 아주 진지하게 신애를 향해 말했다.“고마워. 꼭 그럴게.”강민은 맞은편에서 그 모습을 한 번 보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여 자기 몫만 먹었다.식사가 끝나고 은혁이 말했다.“운전기사들이 학교까지 데려다줄 거야.”신애가 물었다.“언니는 우리랑 같이 안 가요?”“난 서하 데리고 집으로 갈 거야. 내일 아침에 서하 다시 데려다주고.”신애는 금세 얼굴이 빨개져서 웃었다.“맞아요, 맞아. 언니랑 형부 평소에 잘 못 만나신다면서요. 오늘은... 둘이 오붓하게 지내셔야죠...”말하면서도 신애는 민망한지 볼을 긁적였다.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서하는 은혁을 뿌리칠 수 없었다.억지로라도 자연스럽게 굴 수밖에 없었다.차들이 다 떠나고 난 뒤, 서하는 조용히 말했다.“소진이네로 데려다줘.”“당신 집 없어? 왜 남의 집으로 가?”“본가 가기 싫어.”“안 가.”은혁이 단호했다.“우리가 전에 함께 살던 그 집으로 가.”서하는 더더욱 가기 싫었다.은혁이 조수석 문을 열고, 눈을 조금 내리며 말했다.“타.”“나 안 가.”서하가 고개를 저었다.“당신 혼자 가.”“여보, 우리 아직 이혼 전이라고.”“그 말밖에 할 말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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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4화

은혁의 목소리에 조급함이 서서히 사라지더니, 차갑고 건조한 톤으로 바뀌었다.“아까 그 말... 무슨 뜻이야? 말 똑바로 해.”서하는 눈물에 젖은 눈으로 은혁을 바라봤다.은혁은 화가 나 있었다. 깊은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잘생긴 눈썹도 날카롭게 찌푸려져 있었다.서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울고 있어서인지... 자기가 생각해도 조금 연약해 보였다.하지만 그런 모습을 은혁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허리를 곧게 세우며 똑같이 차가운 눈으로 은혁의 시선을 마주했다.“내가 무슨 말을 잘못했는데?”“당신이 한 말 중에 제대로 된 게 뭐가 있어?”은혁의 목소리는 더 싸늘해졌다.“나 유부남이야. 결혼 기간 내내, 당신에게 부끄러운 짓 한 적 없어. 당신이 말한 그 ‘생리현상 해결’ 같은 표현은... 나에 대한 모욕이라고.”“아, 그래? 그럼 미안.”서하의 사과는 공기처럼 가벼웠다.진심은 한 톨도 섞이지 않았다.은혁의 눈빛은 더 얼어붙었다.“임서하. 설령 우리가 이혼한다 해도 당신... 이렇게까지 날 모욕할 필요는 없잖아.”“모욕?”서하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내가 당신을 모욕했어? 아니... 내 말이 사실이 아닌 부분이 있어?”“당신...!”은혁은 무언가 더 말하려다가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서하의 눈에 비친 은혁은 지금 완전히 초조하고 불안정한, 통제력 잃은 짐승 같았다.걸음을 두어 번 휘저으며 자리를 맴돌더니, 서하에게 다시 시선을 고정했다.날카롭고, 위험한 눈빛.하지만 서하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은혁의 강렬한 시선을 똑바로 받아냈다.“우리 사이는 이미 끝났어. 당신도 기억해!”말을 끝낸 서하는 곧바로 길가로 가서 택시를 세웠다.차에 타려는 순간, 은혁은 또다시 서하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았다.택시 기사도 성질이 난 듯 운전석에서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손님, 탈 거예요, 말 거예요?”은혁이 바로 받아쳤다.“안 가요.”그리고 다음 순간, 은혁은 허리를 숙이며 서하를 그대로 번쩍 들어 올렸다.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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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화

서하는 은혁과 더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이미 이혼할 건데, 여기서 더 말해 뭐 하겠어?’게다가 방금 밥을 먹어서 그런지, 몸이 노곤하고 졸음이 쏟아졌다.아무리 은혁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올라도 몸에 밀려오는 피로감은 숨길 수 없었다.서하는 지금 그냥 잠이 몰려왔다.은혁은 서하를 ‘구름바다’ 아파트 단지 안의 신혼집으로 데려왔다.결혼 후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그 집의 침대가 얼마나 편한지,집 전체가 얼마나 서하 취향으로 꾸며져 있는지 서하는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이곳으로 온 것이 썩 내키지 않아도,‘그래... 여기서 자고 가는 건 나쁘지 않겠네.’서하의 마음 한쪽에는 그런 생각이 스쳤다.엘리베이터 안에서 은혁은 고개를 숙여 서하를 바라봤다.서하의 긴 속눈썹은 은혁 눈에 두 줄의 작은 부채처럼 보였다.서하를 볼수록 마음이 간질거렸다.오뚝한 콧날, 작고 야무진 코끝.은혁은 시선을 돌리며 셔츠 깃을 잡아당겼다.울컥하는 듯한 숨, 흔들린 목젖.은혁은 서하만 보면 그렇게 됐다.언제든, 어떤 상황이든... 몸이 먼저 반응했다.가끔은 자신도 감당 못 할 만큼.하지만 지금 이 감정은 오히려 서하에게 공격의 빌미만 주고 있었다.그렇다고...‘아내한테 반응하는 게 그렇게 욕먹을 일인가?’‘내가 잘못한 건가? 남편이 아내를 원하는 게... 그렇게 비정상적인 건가?’은혁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미혼이고, 결혼한 친구들도 속사정을 털어놓는 사이는 아니었다.부부 사이에 관해 묻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부부관계는 어떻게 해?’이런 걸 누가 누구에게 묻는가?그랬다간 변태 취급이나 받을 것이다.만약 서하가 불만인 게 그거라면...‘나도... 고칠 수 있지.’무슨 일이든, 둘이 앉아서 대화하면 될 일이다.진짜로 내 잘못이었다면 앞으로는... 더 조심하면 되는 일이고.그렇게 생각하니, 은혁 머릿속에는 지난날의 스킨십까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혹시... 내가 너무 거칠었나?’‘내가 너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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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6화

서하는 말을 끝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가려 했다.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기 싫고, 그저 빨리 편히 누워 자고 싶었다.“여보!”은혁이 갑자기 서하의 손목을 확 잡아챘다.서하는 그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배은혁, 진짜 지겹지도 않아? 바람을 피우든, 여자를 몇이나 만나든, 나 신경 안 써! 관심 없어! 이제 됐다고!”은혁은 더 강하게 서하의 팔을 붙잡았다. 충혈된 눈동자가 흔들렸다.“당신 눈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아무 여자랑도 잘 수 있는 인간으로 보여? 그게 맞아?!”은혁의 과한 반응에 서하는 순간 멈칫했다.그러다 비웃듯 웃었다.“아닌 척하지 마. 민레나가 내 앞에서 몇 번을 잘난 척했는지, 당신 정말 몰라서 그래?”“레나는... 좀 버릇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그만!”서하가 은혁 말을 큰소리로 끊어버렸다.더는 한마디도 듣기 싫었다.“말했지? 난 관심 없다고. 그러니까, 그만 좀 해. 됐지?”서하는 팔을 빼내려 했지만, 은혁의 손아귀는 여전히 단단했다.“이거 놓으라고.”서하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갈라졌다.“아프다고!”은혁이 멍해진 눈으로 서하를 보다가 그제야 손을 놓았다.서하는 한순간도 머뭇거리지 않고 계단을 빠르게 올라갔다.은혁은 제자리에서 몇 초간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다 이를 악물고 곧장 뒤를 따라갔다.“그런 게 아니야. 내 말 좀 들어봐...”그러나 돌아온 건 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였다.쿵!은혁은 곧 문을 두드렸다.“문 열어. 얘기 좀 하자! 나랑 레나는 그런 사이 아니야!!”방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은혁은 다시 말했다.“당신이 안 믿어도 좋으니까... 지금 상황에 내가 뭐 하러 거짓말을 하겠어? 난 레나를 동생처럼 생각해. 우리 사이에는 진짜 아무것도 없어.”무슨 말을 해도, 방 안은 죽은 듯 조용했다.은혁은 이를 꽉 물었다.턱선이 굳게 경직되었다.한참 뒤, 그는 결국 돌아섰다....민석이 호출됐을 때는 미인과 침대에 누워 있었다.서하가 알았던 여자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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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7화

“아니.”“세상에 미치겠네!”민석은 거의 튀어 오를 듯 소리쳤다.“네가 좋아한 사람, 예랑이 아니었어?”은혁은 손목을 이마에 걸친 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응, 아니야.”“미쳤네, 진짜!”이번엔 민석이 제대로 놀랐다.“그럼 도대체 누구 좋아한 건데?”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민석은 속이 근질근질해 미쳐버릴 것 같았다.“야, 말 좀 해! 누구 좋아했냐고? 민레나?”“아니.”“그럼 너 주변에 여자 딱히 없잖아?”민석이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설마... 서하 씨냐?”“응.”“아니, 그럴 리가 없... 잠깐만! 지금 방금 대답했냐?”“했어.”은혁은 팔로 눈을 가린 채 조용히 말했다.“서하.”“배은혁!!!”이번엔 민석이 정말로 펄쩍 뛰어올랐다.“너 지금 뭐라고 했어? 나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네가 좋아한 사람이 임서하? 너랑 결혼한 그 임서하?”은혁은 또다시 말을 닫았다.민석은 허리에 손을 얹고 테이블 주변을 몇 바퀴 걸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상황이 괴이했다.“말이 되냐? 네가 좋아한 사람이 네 와이프였다고? 그럼 왜 이혼을 해?”“내가 잘못 들었겠지? 아님 내 귀가 먹었나?”은혁은 짜증 섞인 눈으로 민석을 바라봤다.“입 좀 닥쳐.”“닥치긴 누가 닥쳐! 네가 말하다 마니까 답답해서 미치겠잖아!”민석은 당장이라도 은혁의 어깨를 흔들어대고 싶었다.“말할 거면 끝까지 하라고!”“말했어. 내가 좋아한 사람은... 서하야.”은혁은 덤덤하게 말했다.“아니었으면, 내가 왜 결혼했겠어.”“근데 그때 네 할아버지가 너 억지로...”민석은 말하다 스스로 멈췄다.그리고 천천히 결론에 도달했다.“네가 먼저 네 할아버지한테 서하 씨랑 결혼하겠다고 말한 거냐? 처음부터 강요 같은 건 없었던 거냐고?”“응.”은혁은 담담히 인정했다.민석은 거친 욕을 내뱉었다.“와... 나는 그동안 네가 할아버지한테 떠밀려서 결혼한 줄 알고, 뒤에서 몇 번이나 불쌍하다고 동정했는데! 알고 보니 네가 다 밑그림 그린 거였어?”민석이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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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8화

은혁은 사실 민석에게 이렇게까지 털어놓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의 그는, 속내를 다 이야기할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그나마 은혁이 마음을 열고 속내를 터놓을 수 있었던 유일한 친구, 그리고 은혁이 누구를 좋아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 그 친구는 지금 군대, 그것도 폐쇄 훈련 중이라 연락조차 닿지 않았다.다른 사람들은 더 기대할 게 없었다.심지어 민석조차, 감정이 뭔지도 모르는... 맨날 여자나 갈아치우는 꽃미남 바람둥이였다.사람들은 말한다.은혁은 돈도 많고, 권력도 있고, 성공했고, 멀리 있는 별처럼 닿지 않는 곳에 있다고.하지만 정작 은혁은 지금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토할 것처럼 답답한데, 그 감정의 출구가 없었다.‘고독이 이런 건가?’‘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결국 혼자인 거지.’‘높은 자리에 오르면 외롭다’라는 말은 입에 올리기만 해도 괜히 잘난 척 같지만, 그 말이 바로 지금의 은혁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했다.민석은 당연히 은혁의 고민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민석의 세계관에서 여자란 손짓 하나면 다가오고, 돈으로 다 해결되는 존재였다.은혁이 괜히 감정놀음 같은 걸 해서 스스로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민석이 말했다.“내가 볼 때, 그냥 넌 마음 좀 비워. 네 와이프? 뭐 괜찮지. 예쁘고 머리도 좋고. 근데 세상에 예쁘고 능력 있는 여자 널리고 널렸어! 넌 왜 숲 전체를 버리고 네 와이프라는 나무 한 그루에 목매달아 있냐?”바로 그 말 때문에 은혁은 더 답답해졌다.민석은 도무지 공감이란 걸 할 줄 모른다.오히려...‘저 좋은 조건에 저 얼굴이면 바람둥이 안 하는 게 손해지.’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인간이었다.“내 마음속에는 딱 한 사람만 있어.”은혁이 말했다.“넌 몰라.”“그래서, 너는 알아? 그래서 지금 이 모양 이 꼴인 거야?”민석은 비웃듯 말했다.“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은혁은 고개를 숙여 잔에 술을 따랐다.“난 이혼하기 싫어.”“네 와이프가 단단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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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9화

“네 와이프는 어떻게... 자기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배은혁이라는 큰 나무를 버릴 생각을 하지? 설마... 밀당하는 거 아냐?”민석이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여자들 그 조그만 술수, 너 같은 놈이나 속지.”은혁은 애초에 민석에게 조언을 기대하지 않았다.하지만 설마 이렇게 한 톨도 도움 안 되는 수준일 줄은 몰랐다.왜냐하면 민석이 하는 말은 맨날 똑같았다.‘마음 비워라’‘여자들 소개해 줄게’, 이 둘 중 하나였다.“내가 소개할 그 예쁜 애들, 다 진짜 어려. 손만 대도 과즙미 팡팡이야.”민석이 말했다.“걱정 마. 내가 소개하는 애들은 다 깨끗한...”퍽-은혁의 발길질이 먼저 날아갔다.“꺼져.”“야, 이 자식이 진짜...!”민석은 가까스로 피하며 외쳤다.“내가 얼마나 너 생각해서...!”“말했지. 넌 모른다고.”“몰라, 몰라, 뭐가 그렇게 어려운데?”민석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아는 건 너뿐이라며? 그래서 지금 이렇게 술 퍼마시고 찌질하게 앉아 있냐? 나 봐라. 얼마나 즐겁게 사냐?”“서하... 같은 사람은 없어.”“와, 진짜... 이건 뭐 거의 미쳤네.”민석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됐다. 그래도 친구니까 도와는 줄게. 지금 상황은... 네 와이프는 이혼하자 하고, 넌 하기 싫다. 맞지?”“응.”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은혁은 인정했다.“서하 씨가 너 바람피웠다고 의심한다며? 내 생각엔, 서하 씨도 진짜 이혼하고 싶은 건 아닐걸.”“솔직히 말해서 배씨 가문 며느리 자리, 그거 노리는 여자들 얼마나 많은데? 그걸 왜 자기 손으로 내치겠냐?”은혁은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민석을 한 번 째려보고 말했다.“너 진짜 쓸모없다.”“아니, 나 진짜 진심으로 얘기하는 건데! 내가 여자를 얼마나 많이 만나봤는데? 여자 마음은 나만큼 아는 사람이 없다니까?”“서하는 진짜로... 이혼하고 싶어 해.”“그래서 내가 말하잖아. 넌 여자를 몰라. 여자는 대부분 말과 마음이 따로라고.”민석이 또 팔짱을 꼈다.“어떻게 해야 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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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0화

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되게 잘 맞아.”“거 봐라.”민석은 완전히 ‘내 말 맞지?’ 하는 표정이었다.“이것마저 안 맞았으면 너희 둘 지금까지 못 버텼지. 근데 너희 둘, 이걸로만 몇 년을 산 게 더 신기해.”“아니.”은혁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너도 알잖아. 나 얼마나 바쁜지. 대부분은... 떨어져 지냈어.”한 번은 해외 출장 때문에 한 달 넘게 못 본 적도 있었다.“야, 이게 좋아하는 사람 대하는 태도냐?”민석이 말했다.“몇 주씩 안 보는데, 무슨 감정이 남았겠냐?”은혁이 대답했다.“그때는 진짜 바빴어. 그리고... 계속 붙어있으면, 서하가... 좀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민석은 서하를 잘 알지도 못했고, 여자 심리는 꿰뚫는다고 자부했지만, 서하는 그 ‘보통 여자’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민석은 대충 말했다.“야, 너 같은 남자랑 붙어있는 걸 불편해한다? 그런 건... 병이지, 병.”은혁은 단호하게 말했다.“아니야.”“아직도 감싸네?”민석이 혀를 찼다.“친구야, 진짜 사람 한번 바꿔 볼 생각 없어? 여자가 바뀌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너는 모를걸? 한 번 갈아타면 바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니까.”은혁은 대놓고 민석을 째려봤다.그러자 민석이 말했다.“근데 정말 신기하긴 하다. 어떤 명문가 도련님이 너처럼 이렇게 답답하게 사냐?”은혁이 말했다.“딴 방법 없으면 닥치고 술이나 마셔.”“잠깐, 생각 좀 해볼게.”민석이 진지하게 말했다.“일단은... 네 와이프가 너한테 어떤 감정인지부터 알아야지. 넌 그것도 모르고 좋아한다는 게 더 소름이고.”“응.”은혁이 짧게 대답했다.“서하 씨가 너 바람 의심할 때 표정은 어땠어? 막 흥분했어? 화났어?”민석은 손가락을 흔들며 말했다.“사람 안 좋아하면 아무 반응도 없어.”“서하가 말했어. 내가 바람을 피웠든 말든, 이제 상관없다고.”“아이고, 이거 큰일인데? 진짜 너 안 좋아하는 걸 수도 있겠네.”민석은 진짜로 동정하는 눈으로 은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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