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Chapter 21 - Chapter 30

100 Chapters

제21화

[왜 4천만 빌리는데? 무슨 문제 있어? 설마, 배씨 집안이 망하기라도 했어?] [배은혁한테 4천만 원도 없어?]서하가 황급히 스피커폰을 끄려고 손을 놀렸다.“지금 바빠서,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게.”전화를 끊고 뒤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은혁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4천만 원이라니, 무슨 말이야?”은혁이 물었다.“돈 빌렸어?”서하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은혁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당신이 밖에서 4천만 원을 빌리고 다니는 걸 남들이 알면, 우리 집안 체면이 뭐가 돼?”“아무도 모를 거야.”서하가 말했다.“소진이는 다른 사람한테 말 안 해.”은혁은 더 말하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조작했다.“전에 줬던 카드는? 다 썼어?”서하는 핸드폰 알림에 고개를 숙여 확인했다. 은혁이 눈도 깜짝하지 않고 1억 원 송금했다.‘전에 줬던 카드?’‘아, 맞다.’결혼할 무렵 은혁은 서하에게 카드 여러 장을 주었지만, 서하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딱히 돈 쓸 일도 없었고, 사치품을 사지도 없었다.서하는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를 조작하며 1억 원을 곧바로 은혁에게 돌려보냈다.“당신 돈 필요 없어.” “예전에는... 우리 집 일로 당신한테 민폐를 끼쳤지만, 앞으로는 당신 돈 안 써.”은혁이 이마에 잔주름이 잡히면서 서하를 바라봤다.“이혼하기 전까지는 당신은 우리 배씨 집안 사람이야.”“당신 망신시키진 않을게.”서하가 말했다.“어쨌든, 당신 돈 필요 없어.”은혁의 얼굴이 굳어졌다.“또 밖에서 돈 빌리고 다니려고?”“안 그런다고.”서하는 자신이 열등감을 느끼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돈이 없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당당할 수가 없었다.서하는 비참해 보이고 싶지 않아 허리를 곧게 폈다.“당신에게는 우스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많아.”서하는 더 이상 은혁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욕실로 가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은혁은 망설임 없이 전화받았다.“응, 상호야.”순간 서하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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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서하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결국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무릎을 감싸안고 소리 없이 오열했다.문밖에 잠시 멈춰 서 있던 은혁은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냉정히 자리를 떠났다....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서하가 욕실 문을 열고 나왔다.방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은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했다.침대에 누웠지만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기만 했다. 밤이 깊어지자 겨우 잠들었지만,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꿈속에서 거대한 짐승에게 잡혀 손발을 꼼짝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악몽을 꾸었다.서하는 숨 막히는 고통에 벌떡 몸을 일으키며 눈을 떴다. 그제야 비로소 그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침대 위 서하의 옆 빈자리는 차가웠다.은혁은 어젯밤 돌아오지 않은 듯했다.시간을 확인한 서하는 바로 일어나 씻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집을 나섰다.정원을 나서는데, 어제 봤던 눈앞에 천후가 다시 불쑥 나타났다.그는 새하얀 트레이닝복 차림에 검은색 헤드폰을 쓰고 아침 운동 중이었다.올 화이트 룩을 이토록 멋지게 소화하는 남자는 보기 드물었다. 게다가 남자의 얼굴은 여자들도 질투할 만큼 아름다웠다.서하는 잠깐 시선을 줬지만, 곧 눈길을 거두고 차를 천천히 몰아 나갔다.그런데 천후가 운전석에 앉은 서하를 발견하고 차 옆으로 달려들었다.“이봐요, 사모님. 고작 몇천만 원짜리 차나 몰다니 너무 초라한 거 아니에요?”서하가 창문을 닫았음에도 남자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고, 그녀는 철저히 천후를 외면했다.하지만 이곳은 차선이 좁은 정원주택 단지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옆에는 산책하는 노인들과 아이들까지 있어 서하는 전혀 속도를 내지 못했다.덕분에 천후는 서하의 차 옆에 바짝 붙어 나란히 달렸다.서하가 천후를 직접 대면한 것은 고작 두세 차례였고, 그 만남도 모두 은혁과 함께 있을 때가 전부였다.두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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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상호는 차마 서하에게 변명하지 못했다. 서하는 단호한 목소리로 못을 박았다.“앞으로 그 사람한테 전화하지 마! 돈 빌릴 생각도 집어치워!”서하는 곧 은혁과 이혼할 예정이었고, 이후에는 어떤 식으로든 은혁과 엮일 일이 없어야 했다.상호가 곤란한 듯 입을 열었다.[이미... 어젯밤에 입금해 줬어요.]서하는 깜짝 놀랐다.“입금해 줬다고? 얼마?”상호가 말했다.[내가 달라고 한 만큼.]서하는 그제야 상황을 깨달았다. 은혁에게 상호가 요구한 정도의 돈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내 앞에서 늘 우월함을 느끼려고 그 돈을 빌려줬겠지. 아마도 그런 속셈일 거야.’‘어떤 사람들은 날 때부터 금수저 물고 태어나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고 사는데, 이 세상은 참 불공평해.’서하가 말했다.“상호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할게.”“다시는 그 사람에게 손 벌리지 마. 이런 일이 또 있으면 나 너 안 봐.”상호는 사실 서하가 조금 두려웠다. 서하의 으름장에 황급히 입을 열었다.[안 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약속할게요!]...서하는 전화를 끊고, 이번에는 소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서하와 소진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줄곧 함께였다. 집안 배경이 워낙 좋았던 소진이기에 원래 서하와는 엮일 일이 없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우연한 기회에 한 친구를 통해 인연을 맺었고, 중학교 시절을 함께 보내며 두터운 우정을 키웠다.소진은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대범하며 할 말은 하는 스타일로, 지금은 능력 있고 강인한 여성 사업가로 성공했다. 다만, 최근 해외 시장 개척으로 바빠 두 사람은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하고 한동안 소원하게 지냈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소진이 물었다.[서하야, 대체 무슨 일이야? 배은혁 진짜로 파산했어?]서하는 은혁과의 이혼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아직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 만약 정말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아야 한다면, 그 사람은 오직 소진뿐이었다.“소진아, 나 이혼하려고.”소진은 잠시 멍하니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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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서하는 이혼하기 전에 맡고 있던 일들을 깔끔히 마무리해 두려 했다.11시가 좀 넘었을 무렵, 시현에게 메시지가 왔다. 몇 가지 알바 자리를 알아봤는데, 서하에게 괜찮을지 모르겠다는 조심스러운 제안이었다.시현이 보내 준 목록을 서하는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았다.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제시된 보수는 대부분 평범한 수준이었다. 그중 하나는 화공 공장 일이었는데, 급여가 꽤 높았다.서하가 자세히 물어보자, 시현이 바로 전화를 걸었다.[문자메시지로 연락하는 게 불편해서 전화했어.]서하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그 공장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서요.”시현은 서하에게 이런저런 상황을 이야기해 준 후, 덧붙였다.[자세한 건 내일 내가 직접 가서 볼게. 혼자 보내기가 불안해서.]자신이 하려는 알바인데, 시현에게 수고를 끼칠 수는 없었다.서하는 황급히 말했다.“제가 직접 갈게요. 주소만 보내 주시면 혼자 갈 수 있어요.”[거기 거리가 꽤 되잖아. 교외에 있고. 너 혼자 보내는 건 마음이 편치 않아서. 내일 나 시간 있으니까, 같이 가 줄게.]서하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선배.”...그렇게 또 반나절이 훌쩍 지났다. 저녁 일곱 시가 넘어서야 겨우 식사를 마친 서하는 잠시 더 근무하다가, 아예 연구원에서 밤을 새울 생각이었다.바로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은혁이였다.서하는 받고 싶지 않았지만, 전화는 끈질기게 끊어질 생각도 없이 다시 울려댔다.결국 어쩔 수 없이 전화받았지만,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핸드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은혁이 아니었다.[배 대표님께서 술에 취해 몸을 가누기 어려워하십니다. 사모님께서 오셔서 모셔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상대방은 장소를 알려준 뒤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서하는 핸드폰을 든 채, 누군가 은혁의 핸드폰을 훔쳐 자신을 속여 유인하려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했다.하지만 이내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 룸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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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서하는 천후를 미친 사람 보듯 쳐다봤다.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서하는 서둘러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천후는 따라 들어오지 않고, 그저 문밖에서 말했다.“사모님, 다음에 또 만나요!”‘다시는 안 보는 게 상책이지.’서하는 닫힘 버튼을 꾹 눌렀다....윗층에 도착해 룸으로 들어서자, 민석이 눈에 들어왔다.서하는 민석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가 소문난 플레이보이라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저런 부류와 어울리는데도 배은혁은 바람둥이 기질이 없는 게 참 신기해.’‘아마 처음부터 민레나만 마음에 두어서 그런 거겠지.’서하는 쓸쓸한 마음을 숨기고,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것은 어려웠다. 은혁과 얽힌 일이라면 늘 감정에 휩쓸리기 일쑤였다.“왔어요?”민석이 서하를 보며 싱긋 웃었다.“술에 너무 취해서 움직일 생각조차 안 하네요. 정말 고약한 버릇이죠.”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신 말했다.“고마워요, 유민석 씨.”민석은 서하를 몇 번 스치듯 보았다. 은혁의 ‘계약' 아내가 조용하고 순종적이며 군더더기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은혁이 원하는 아내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 자리에 선택되지도 않았을 것이다.민석은 은혁의 마음속에 진정으로 누가 자리 잡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고맙긴요.”그가 웃으며 말했다.“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곧 룸 안에는 서하와 은혁만 남겨졌다.서하는 소파에 기대앉은 남자를 내려다보았다.은혁은 소파에 기대앉아 있었는데, 셔츠 단추가 서너 개 정도 풀어져 있어 다소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경계를 푼 그의 모습은 위험할 만큼 유혹적이었다. 나른한 눈빛과 자극적인 모습이 뒤섞여, 서하의 이성을 흔들었다.서하는 마음속의 복잡한 상념을 억누르고,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여보.”은혁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눈은 뜨지 않았다.서하는 할 수 없이 다시 불렀다.“일어나, 이제 돌아가야지.”은혁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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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날 그 겨울밤, 술에 취한 은혁은 서하에게 난생처음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했다.다음 날 아침, 은혁이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서하는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오늘도 서하는 쉴 틈 없이 바빴고, 시현과 함께 화학약품 공장에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열 시가 다 되었을 무렵, 시현에게서 건물 아래층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서하는 전화를 끊고 너무 급하게 일어섰다가, 아랫배가 순간 뻐근하게 아팠다.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배를 감싸 쥐자 이내 통증이 사라졌다.가방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시현이 서 있었다. 훤칠한 키의 그 남자는 서하를 보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따스하고 매력적인 얼굴이었다.“선배.”서하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죄송해요, 일부러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나한테 무슨 그런 말을 하니.”시현이 조수석 문을 열어 주었다.“후딱 다녀와서 같이 밥 먹자. 오후 근무에 지장 없게.”“고마워요, 선배.”두 사람은 차 안에서 옛 학교 시절 이야기와 아는 동기들의 근황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한 시간이 넘는 길이었지만, 두 사람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화공 공장에 도착해 상황을 파악했다. 일은 고될지언정 제시된 보수가 매우 높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상대편에서도 서하의 프로필에 크게 만족하며, 성공 시 보수를 더 올려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서하는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서 근로계약서에 서명했다.돌아오는 길, 두 사람은 길가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서하가 계산했고, 시현은 그녀가 기꺼이 한 턱 내도록 내버려두었다....연구원으로 돌아오니, 마침 오후 근무 시작될 무렵이었다.채아가 서하에게 초콜릿 몇 개를 건네며 물었다.“선배 봤어? 둘이 점심 같이 먹었어?”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도움받을 일이 있어서 부탁했고, 겸사겸사 내가 밥 한 끼 샀어.”채아가 서하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밥이나 좀 잘 챙겨 먹어. 보니까 너 요즘 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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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서하는 박사과정 지원 서류는 다 내놓았지만, 심사가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아직 면접이 남아 있었다.게다가 학교 기숙사 신청은 결국 내년이나 되어야 가능했다. 그렇게 되면 아직도 한두 달은 더 기다려야 한다.은혁과 함께 살던 그 집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결국 거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7시 30분에 알람이 울리자, 서하는 짐을 정리하고 약속 장소인 카페로 향했다. 시아버지 배효산을 만나기 위해서였다.카페에 도착해 잠깐 앉아 있는 사이에 약속했던 배효산이 들어섰다. 서하는 곧바로 일어나 그에게 인사했다.“아버님.”배효산은 손짓으로 서하를 앉게 했다.“무슨 일인데 밖에서 보자고 하니?”서하는 커피잔을 내려다보며, 망설임 없이 곧바로 핵심을 꺼냈다.“저... 은혁 씨와 이혼하려고 합니다. 아버님께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배효산은 막 커피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려던 참이었다. 서하의 말에 화들짝 놀라 커피잔을 놓칠 뻔했다.“뭐라고?”가장 어려운 말을 꺼냈으니, 뒤이은 말들은 어렵지 않았다.서하가 말했다.“저희는 이미 남이나 다름없습니다. 서로에게 불행한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 않습니다.”배효산은 결국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서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은혁이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니?”“네, 알고 있습니다. 다만 회사 주가에 영향을 줄까 봐 이혼을 미루고 있어요.”“서하야.”배효산이 말했다.“네가 우리 집으로 시집온 것은 어르신의 뜻이었지만, 나는 너에게 아무런 불만이 없다.”“은혁이가 성격은 좀 차갑지만, 결혼했으니 가정에는 책임을 질 거야...”배효산의 말들은 서하 역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서하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단순히 ‘책임감 있는 남편’이 아니었다. 최소한 다른 여자와 얽히지 않는 남편이기를 바랐을 뿐이다.“그리고, 지금은 아이가 없지만, 혹시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상황이 더 좋아질 수도 있지 않겠니.”“아이요?”서하가 배효산에게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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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서하는 몇 초간 침묵을 지키다가 나지막이 말했다.“나 이혼할 거야.”‘하고 싶다’가 아닌, 이미 확정된 결심을 담은 ‘할 거야’였다.소진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네가 이미 마음을 정했다면, 난 널 응원해.] [하지만 서하야, 이혼하면 아마 앞으로는 배은혁을 영영 마주칠 일이 없을지도 몰라.]서하는 은혁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소진에게 털어놓지 않았다. 은혁을 향한 사랑은 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묻어 두었기에, 서하 본인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그래, 이쯤에서 끝내는 게, 서로에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겠지.’“마주칠 일 없는 게 좋지.”서하가 말했다.“앞으로 그 사람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바로 그때, 서하는 문밖에서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고 급히 소진에게 말했다.“잠깐만!”서하는 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밖을 살폈다. 복도는 고요했고, 아무도 없었다.서하의 휴게실은 사무실 바로 옆의 아주 작은 방이었다. 평범한 나무문이라 방음이 취약했다.서하는 문을 닫았다.소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무슨 일이야?]“아무것도 아니야.”서하가 말을 이었다.“이혼은 곧 관계를 끝낸다는 뜻이잖아. 앞으로 엮일 일 없는 게 오히려 당연한 거 아니야?”소진이 말했다.[너희는 아이가 없으니, 이혼 후에는 더 이상 엮일 일이 없겠지. 아마.]“응...”서하는 짧게 대답하며, 마음속 모든 쓰라린 감정을 꾹 눌러 참았다....배씨 가문의 본가.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레나가 황급히 뛰어나갔다.“오빠, 이제야 돌아왔어요? 술 마셨어요?”은혁은 붉게 상기된 눈으로 넥타이를 잡아당겼다.“아직 안 잤어?”레나가 고개를 저었다.“저 방금 서하 언니 일 때문에 생각하고 있었어요.” “오빠, 제가 해장국이라도 끓여 드릴게요. 그거 드시면 좀 편해질 거예요.”“됐어.”은혁이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말했다.“늦었으니 너도 일찍 쉬어.”은혁은 몇 걸음 걷다가 뒤돌아섰다.“방금 서하 이야기는 왜?”“서하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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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식사 자리는 무겁게 가라앉은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배효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서하가 나한테 말했는데, 요즘 좀 바빠서 밖에 나가 지내겠다고 하더구나.”주인정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얼마나 바쁜데요? 아무리 바빠도 은혁이보다 바쁘겠어요?” “며칠째 집에도 안 들어오고, 이게 시댁 어른 모시고 사는 며느리 맞아요?”배효산은 주인정의 날 선 말에는 대꾸하지 않은 채, 은혁을 힐끗 보며 말했다.“시간 나면 서하 좀 찾아가 보렴.”은혁은 말이 없었다. 시선을 아래로 떨군 채 굳게 다문 입술은 은혁의 감정을 간신히 짐작하게 했다. 은혁의 눈빛에서는 기쁨이나 분노, 그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레나가 걱정스러운 척 입을 열었다.“오빠가 이렇게 바쁜데, 어디 시간이 나겠어요. 차라리 제가 서하 언니를 만나 보고 올게요.” “언니가 혹시 저 때문에 불편한 건 아닐지 걱정돼서요.”주인정은 승리감에 젖은 얼굴로 말했다.“역시 우리 레나 마음 씀씀이도 넓지. 임서하 그 애는...”은혁이 무심한 듯 차가운 시선을 던지자, 주인정은 나머지 말을 다시 목구멍으로 삼켰다....새해 첫날을 닷새 앞둔 날, 민레나는 연구원으로 향했다.레나를 만나러 나온 서하의 시선은 차가운 서릿발 같았다.“무슨 일이야?”레나는 웃는 얼굴로 서하를 바라보았다.“서하 언니, 왜 집에 안 들어가요? 식구들이 걱정돼서 저한테 가 보라고 하셨어요.”서하가 단호하게 말했다.“여긴 아무도 없어. 너 연기할 필요 없어.”레나가 웃음을 거두었다.“그렇게 말하면 재미없죠. 제가 무슨 연기를 한다는 거예요?”“용건만 말해. 바쁘니까.”서하는 그녀와 감정 소모적인 말다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레나는 입가에 다시금 조소를 띠었다.“제가 보낸 메시지 확인 못 했어요?” “오빠가 또 저한테 주얼리를 많이 사 줘서요. 그 작은 다이아몬드 귀걸이는 언니한테 돌려줄게요.”레나는 말과 함께 가방에서 보석함을 꺼냈다. 입가에 비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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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레나는 극도로 적대적인 눈빛으로 서하를 쏘아봤다.“무슨 뜻이야?”서하는 대답 대신, 칠흑 같은 눈으로 레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기쁨이가 마지막 숨 거둘 때, 네 마음은 어땠어?”레나는 순간적으로 놀랐지만, 이내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터뜨렸다.“아직도 그 기쁨이 이름을 입에 담아! 당신이 뭔데!”서하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여긴 아무도 없어. 말했잖아, 연기할 필요 없다고.” “밤에 잠을 잘 때, 악몽을 꾸지는 않아? 기쁨이가 널 찾아오지는 않았어?”“임서하!” 레나의 목소리가 격렬하게 떨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불쾌한 소리 집어치워!”서하는 레나가 극도로 불편해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사실 처음부터 서하는 기쁨이의 죽음이 레나가 스스로 저지른 일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민레나가 쉴 새 없이 떠들어댔던 모든 말...’‘즉 기쁨이가 나에게 악감정을 품었다느니...’‘손대지 말라느니 했던 모든 이야기는, 훗날 기쁨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빌드업이었던 거야.’‘결국 기쁨이는 레나가 나를 공격하는 데 사용한 도구였어.’ ‘진짜 악랄한 사람은 이 여자야. 어떻게 하나의 생명을 가지고!’레나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는 것을 본 서하가 차갑게 웃었다.“걱정 마. 아무도 널 의심하지 않아.” “그리고 나도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야.” “내가 억울하게 누명을 쓴들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을 테니까.”레나는 곧 평소의 교활한 모습을 되찾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당신이 지금 지껄이는 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기나 해? 오빠가 당신을 싫어할 만도 하네. 당신 얼굴은 온통 계산적인 속셈으로 가득하잖아!”서하는 더 이상 레나와 말 섞고 싶지 않았다.“그래, 다른 용건은 없지? 난 바빠서 이만.”“임서하, 하루빨리 당신의 신분과 위치를 깨달아! 오빠의 아내라는 가짜 타이틀 차지해서 오빠 앞길 방해하지 마!”“방해? 내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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