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Chapter 41 - Chapter 50

100 Chapters

제41화

새해 다음 날 아침 일찍 노숙진에게서 전화가 왔다.서하가 전화받자마자 노숙진은 따지듯이 말했다.[임서하, 너 대체 무슨 일이야? 어제 상호가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까지 했는데도 답장도 없고, 전화도 안 받고.] [아무리 그래도 새해인데, 엄마한테 전화 한 통 할 생각을 안 해?]서하는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엄마, 죄송해요.”[나한테 사과할 필요 없어!] 노숙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배 서방에게 사과해!]서하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노숙진은 말을 이었다. [남자는 여자가 잘 어르고 달래줘야 하는 거야. 예쁜 말 몇 마디 해주고, 네 자존심 좀 내려놓으면 될 일인데, 왜 굳이 이혼하겠다고 그래?] [우리 딸, 엄마 말 듣고 배 서방한테 제대로 사과하자, 응?]서하는 마음속 깊은 곳까지 싸늘함을 느꼈다.“그럴 일 없어요. 저는 반드시 그 사람하고 이혼할 거예요.”[넌 대체 언제쯤 철이 들고, 엄마 말을 들을 거니!] [이혼? 지금 이혼이 애들 장난이야? 이혼하면 우리 집안 망신이야! 부모 체면도 생각해야지!]서하는 결국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죄송해요...”이 말을 끝으로 서하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사실 서하가 어릴 때는 부모님이 서하에게 참 잘해줬다. 다만, 사촌 동생 상호가 부모를 잃고 서하 집에 온 뒤부터, 부모님은 상호에게 유독 깊은 애정을 쏟았다.처음엔 서하도 부모를 잃은 상호에게 마음을 쓰는 자기 부모에게 특별한 불만은 없었다. 자신 역시 상호가 안쓰러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부모님이 상호를 지나치게 편애한다는 걸 느꼈다. 심지어 친딸인 자신보다 더 아끼는 듯했다.특히 은혁과 결혼해 집을 떠난 후에는 더 심해졌다. 상호가 아니었다면, 서하네 가족은 이렇게 힘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서하도 은혁 앞에서 그렇게 움츠러들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부모님은 서하의 감정을 외면한 채 은혁에게 사과하라고 강요하고 있다.서하의 마음이 아프지 않을 리 없었다.그녀는 한동안 넋을 놓고 멍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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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당분간 이 사람의 선택지에 이혼은 없을 거야.’부모님이 사위를 따로 불러내 딸이 얼마나 철없고 제멋대로 구는지 일러바치고, 심지어 딸에게 사과까지 시키려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자, 서하는 수치스럽고 난감했다. 은혁 앞에서 서하는 한없이 작아졌다.은혁의 눈빛에 비웃음이 서려 있는 듯했다.크게 상처받은 서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지만 곧 무너질 것 같았다. 눈가가 붉어진 채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아빠 엄마.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임범철이 버럭 화를 냈다. “네가 알아서 한다고?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결혼이 애들 장난이야!”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심술을 부려, 정말 창피하다!”노숙진도 거들었다. “그러게 말이다. 배 서방처럼 좋은 남편 세상에 어딨다고, 너는 왜 이렇게 철이 없니?”노숙진은 말을 마치고는 은혁을 보며 비굴하게 웃었다. “배 서방, 자네가 좀 너그러이 이해해 줘. 우리가 얘를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애가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른다네.”어머니의 아첨 어린 미소를 보는 순간 서하는 힘을 잃었다.오래 붙들어온 자존심과 고집이 한낮의 농담처럼 허무하게 무너졌다. 서하는 분노를 억누르며 은혁을 보았지만 그는 여유롭기만 했다.은혁에게 이 광경은 어떠한 파장도 남기지 않았다. 아마 이 모든 것을 단순한 소동으로 치부할 것이다.‘이 사람 눈에는 우리 가족이 얼마나 가소로워 보일까?’순간 아랫배가 칼로 도려내는 듯 조여왔다.천장의 조명이 눈부시게 번쩍이고, 귀에는 전투기 엔진의 굉음처럼 소리가 폭풍처럼 몰아쳤다.중심을 잃은 서하는 비틀거렸고, 거대한 손이 재빨리 그녀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서하야, 왜 그래?”노숙진이 황급히 일어나 반대편에서 딸을 부축했다.서하의 얼굴은 창백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두 사람은 서하를 부축해 앉히고, 노숙진은 따뜻한 물을 따라 조금씩 마시게 했다.서하는 천천히 안정을 되찾았다.“저 은혁 씨랑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어요.” 서하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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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혼합의서는 사람 시켜 준비해서 당신한테 연락할게.”“얼마나 걸리는데?”서하의 놀랍도록 담담한 목소리를 듣자, 은혁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걱정 마.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긴 다리를 성큼 내디디며 룸을 나섰다.서하는 곧게 펴 있던 허리가 힘없이 꺾이듯 주저앉았다. 통증이 몰려와 숨이 막힐 듯했다. 게다가 아랫배가 묵직하게 불편하고 가슴은 답답해 숨을 쉬기조차 버거웠다. 온몸이 산산조각 난 것처럼 느껴졌다.“사모님?”갑자기 장난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서하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천후였다.천후는 방금 룸 앞을 지나가다가 무심코 안을 흘끗 들여다보았다. 이미 몇 걸음 지나쳤는데 뭔가 이상해 되돌아와 서하를 불렀다. 고개를 숙이고 옆으로 비스듬히 서 있던 서하를 천후가 알아본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약속 있었어요?” 천후는 문틀에 기대서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배은혁 대표랑?”서하는 천후와 엮이고 싶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 했다. 그러나 막 일어서자마자 어지러워서 몸을 가누기 어려웠다.순간 누군가 팔을 잡아주었고, 서하는 겨우 몸을 지탱할 수 있었다.눈을 뜨자, 또다른 압도적인 미남자의 얼굴이 보였다.천후는 즉시 손을 놓고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괜찮아요?”서하는 테이블을 붙잡고 섰다. 얼굴은 더욱 창백해져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 괜찮아요. 고마워요.”천후는 서하의 안색이 정말 좋지 않은 것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배 대표 어디 갔어요? 아내를 이렇게 혼자 두다니, 정말 신사답지 못하네.”천후를 아는 사람이 이 말을 들으면 아마 배꼽을 잡고 웃을 것이다.가장 신사답지 못한 사람을 꼽으라면 둘째가라면 서운할 사람이 본인일 테니 말이다. 천후는 늘 제멋대로였고, 무엇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서하는 더 말할 기운도 없었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지 대표님,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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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서하가 마침내 전화 연결에 성공하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응급실 앞에서 벽에 기대 겨우 서 있는 엄마를 발견했다. 노숙진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했다.딸을 보자 노숙진이 눈물 가득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서하야, 네 아빠가...”서하는 앞으로 다가가 엄마 끌어안았다. “아빠 괜찮으실 거예요.”아무리 부모님에게 서운한 마음이 많아도 이 세상에서 유일한 가족이었다.엄마를 안은 서하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노숙진은 딸을 보자 그나마 감정을 조금 진정시켰다.임범철은 몇 년 전 장 종양으로 수술받은 뒤 3개월간 회복기를 거쳐 화학요법을 시작했다. 그러나 부작용이 너무 심해 고가의 수입 항암제를 복용했음에도 그는 항암요법의 고통을 견디지 못했다. 결국 의사는 화학요법을 중단하고 부작용이 덜한 약물만 처방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쓰러진 것은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임범철 씨 가족분!”서하는 급히 일어섰다. 순간 또다시 눈앞이 캄캄해지며 황급히 뒷벽을 짚고 버티며 입을 열었다. “여기요!”수납창구로 가서 진료비를 계산하고 돌아온 서하는 뒤늦게 나타난 상호를 봤다.상호는 부모를 잃은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활기차고 생기가 넘쳤으며, 옷부터 신발까지 모두 명품이라서 부잣집 도련님처럼 보였다.하지만 상호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노숙진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니, 그나마 상호가 배은망덕한 아이는 아니라는 점에 서하는 안심했다.30분이 더 지나서야 임범철은 병실로 옮겨졌다.검사 결과 기존 장 종양의 폐 전이, 동반된 빈혈 및 저산소 상태로 인해 의식을 잃었던 것으로 밝혀졌다.현재는 응급처치받고 모니터에 연결된 채 산소를 흡입하며 의식을 되찾은 상태였다.서하는 이미 이런 결과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당시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도 장 종양은 전이되기 쉬우며, 폐가 가장 흔한 전이 기관 중 하나라고 말했었다.의학이 모든 병을 완치할 만큼 발전하지 않은 이상 이런 병의 변화는 피할 수 없었다.서하는 마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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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천후는 씩 웃으며 벽에 기대 담배를 꺼냈다. 고개를 들어 벽에 붙은 ‘금연’ 표지판을 보고는 곧바로 코웃음 치더니 몸을 돌려 병실을 나섰다.서하는 병실 침대 옆에 앉아 방금 의사가 했던 말을 곰곰이 곱씹었다.임범철이 화학 요법에 심각한 부작용을 보였다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표적 항암제 치료라도 시작해야 할 터였다.부작용도 고통이지만, 천문학적인 치료비 역시 큰 부담이었다.서하는 시현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시현이 곧바로 답장했다. [또 알바 구할 생각이야?][부탁 좀 할게요, 선배.][너 합격하면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알바 할 시간 없을 텐데.][제가 알아서 조절하면 돼요.]한참 지난 후, 시현이 다시 답장했다. [돈이 필요해서 그래?][네.]시현은 즉시 전화를 걸었지만, 서하는 얼른 아빠를 흘끗 보고는 전화를 끊었다.[여기선 통화하기가 불편해요.][얼마나 필요해?]서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시현이 자신에게 필요한 금액을 묻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한숨을 쉬고는 다시 답장했다. [선배, 괜찮아요. 그냥 시간도 보내고 경험도 쌓으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 괜찮은 알바 있으면 알려줘요. 나 지금 바쁘니까 이따 봐요.]문자를 보낸 뒤, 서하는 핸드폰을 옆에 내려놓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서하는 시현에게만큼은 절대로 도움받고 싶지 않았다.시현은 과거에 자신을 좋아했었고, 비록 지금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오해하는 게 걱정이었다.저녁이 되어서야 임범철은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 서하는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핸드폰으로 영상 통화를 하게 해 주었다.전화를 끊자 병실 안은 잠시 고요해졌다.“아빠, 이제 주무세요.” 서하가 말했다. “밤에 불편한 거 있으면 저 부르시고요.”임범철이 짧게 대답하고는 한참 조용히 있더니 입을 열었다. “딸아.”서하가 임범철을 바라보았다.임범철은 먼저 한숨부터 쉬고 말했다. “아빠도 이제 늙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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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그럼 이혼 안 하겠다고 약속해!”서하는 한참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이혼 안 할게요.”서하는 일단 아빠를 안심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이혼은 당연히 할 작정이었다.어차피 거짓말을 해도 아빠는 알 수 없을 터였다.하지만 임범철은 안심하지 못했다. “그냥 대충 둘러댈 생각 하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배 서방한테 전화해 봐.”“아빠!”“서하야, 너 정말 아빠 편히 눈도 못 감게 만들 거야?”서하는 그 자리에서 넋이 나가 뻣뻣하게 입을 열었다. “좋아요, 전화할게요.”핸드폰을 집어 든 서하는 한참 조용히 있다가 은혁의 번호를 눌렀다.세 번, 네 번 벨이 울린 후에야 전화가 연결되었다.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것은 레나의 목소리였다. [서하 언니...?]서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배은혁은?”[아, 은혁 오빠 씻고 있어요.] 레나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오빠한테 볼일 있으세요?]서하의 마음속 무언가가 세차게 흔들렸다.‘배은혁이 씻고 있는데 왜 핸드폰이 민레나 손에 있는 거지?’‘샤워 후에 습관적으로 옷을 입지 않고 나올 거고, 그럼 민레나가 벌거벗고 나온 배은혁을...’ 비록 집에 둘만 사는 것이 아니었지만, 방문이 닫히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핸드폰을 쥔 서하의 손가락 마디 마디가 힘이 들어가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전화를 끊으려다가 문득 고개를 들자, 아빠의 간절한 시선이 보였다.서하는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서하는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임범철은 전화 너머의 소리를 듣지 못했기에 물었다. “왜 그래? 배 서방이 안 받아?”“네.”서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한참 지난 후 다시 입을 열었다.“아빠, 이제 주무세요.”임범철은 고개를 저었다. “배 서방한테 전화하는 걸 내가 봐야 안심이 되지.”서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은혁이었다.[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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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임범철은 전화를 끊고 흐뭇하게 말했다. “이것 보렴. 배 서방이 그래도 참 괜찮은 사람이야. 내가 입원했다고 하니까 바로 오겠다고 하잖니.”서하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빠, 사위가 장인어른 병문안 오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요?”“그렇게 따지면 안 되지.” 임범철이 반박했다. “배 서방이 보통 사람이니?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한테 평범한 사위 기준으로 요구하면 안 되는 거야.”서하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도로 삼켰다.“아빠, 이제 쉬세요. 이런 일에는 신경 쓰지 마시고요.”“이따 배 서방 오면, 너 말 잘해야 해, 알겠지?”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임범철은 몸이 불편한 데다 딸에게 약속까지 받아내자 안심했는지 금세 잠이 들었다.똑똑-노크 소리에 서하는 깜짝 놀라 잠시 멈칫했다.‘설마 배은혁이 벌써 온 건가?’아빠가 깨지 않게 서하는 재빨리 문가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목소리 낮춰, 아빠 주무시니까... 선배?”문밖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시현이었다.서하는 병실 밖으로 나와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선배,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걱정돼서 상호한테 연락해 봤어. 상호가 알려주더라.”“둘이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요?” 서하는 의아했다. “상호는 아무 말도 없던데.”시현이 설명했다. “연락처만 저장해 두고 거의 연락은 안 했어.”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시현이 물었다. “아버님 상황은 좀 어떠셔?”서하는 아빠의 상황을 설명했고, 시현은 이야기를 듣고 잠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에서 알림 소리가 울렸고, 서하가 확인해 보니 시현이 2천만 원을 송금한 것을 알게 되었다.“선배...”“차용증 꼭 써 줘.” 시현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내 돈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거 아니거든.”시현은 서하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2천만 원 이상은 보내지 않았다.서하가 침묵하자, 시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대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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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은혁도 서하가 전화를 건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상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다.서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왔어?”은혁은 성큼 다가와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 상황은 어때? 의사는 뭐라고 해?”“암이 폐에 전이됐대.” 서하는 솔직하게 알렸다. “방사선 치료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대.”은혁은 얇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하는 전화로 했던 말을 떠올리며 설명했다. “내가 이혼 안 한다고 한 건 아빠 때문이야. 아빠가 지금 안정을 취해야 해서 걱정시켜 드리고 싶지 않았어.”“이혼은 당연히 할 건데, 혹시 아빠한테 이 사실을 비밀로 해줄 수 있어?”“임서하.” 은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봤다. “네가 이혼하자고 해서 서류를 준비했더니, 이젠 네 뜻대로 이혼 안 한 척 연기까지 해달라고? 날 대체 뭐로 생각하는 거야?”그 말은 서하가 전에 은혁에게 했던 말이었다. 이제 역으로 은혁에게서 되돌아왔다.서하가 받아쳤다. “나도 당신이 곤란하다는 건 알지만... 당신도 회사 주가 변동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어?”“그건 네가 신경 쓸 문제 아니야!”은혁의 차가운 단언은 서하에게 묘한 기시감을 남겼다.은혁에게서 이전의 망설임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자신의 이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듯했고, 심지어 서하보다 더 서두르고 싶어 했다.서하는 자기 집안일 때문에 두 사람의 이혼 진행을 미룰 수는 없었다. 특히 은혁 같은 사람은 모든 일을 계획적으로 처리할 터였다.서하는 결국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이혼 서류 준비 계속해. 방해하지 않을게.”은혁이 서하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당신이랑 연기 안 해도 되는 거야?”서하는 고개를 저었다.어차피 은혁은 결혼 기간에도 아빠와 접촉이 거의 없었다. 서하가 이혼 사실을 숨기면 아빠도 알 길이 없을 터였다.그녀가 말을 이었다.“다만... 우리가 이혼한 후에, 당신이 우리 부모님께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으면 해. 혹시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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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노숙진은 딸의 지친 모습을 보고 안쓰러워하며 말했다. “얼른 밥 먹고 집에 가서 쉬어. 낮에는 엄마랑 상호가 여기 있으면 돼.”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간호사가 노크하고 들어와 말했다. “임범철 환자분 가족분 맞으시죠? 어젯밤에 확인해 보니 병원비 정산이 필요하다고 나왔습니다. 혹시라도 급히 약을 쓰셔야 할 수 있어서, 일부 비용은 미리 납부해 주셔야 합니다.”서하는 황급히 고개를 들고 답했다.“네, 알겠습니다.”서하는 곧 식사를 마치고 말했다. “병원비 내고 올게요.”노숙진은 딸을 보며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상호가 곧바로 물었다. “누나, 돈 있어요?”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있어. 신경 쓰지 마.”서하는 말을 마치고 병실을 나섰다.임범철이 재빨리 노숙진에게 속삭였다. “서하가 어제 이혼 안 한다고 약속했어.”노숙진은 깜짝 놀라며 기뻐했다. “정말요?”상호도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진짜예요? 누나가 약속했다고요?”임범철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제 내 앞에서 전화하는 거 들었어. 게다가 어젯밤에 배 서방도 왔다 갔는데, 내가 잠들어서 못 봤지 뭐야.”“그럼 됐네, 됐어!” 노숙진은 곧바로 안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계집애가 뭐가 그렇게 고집인지. 배 서방처럼 조건 좋은 남편이 어디 있다고, 뭘 저렇게 배부른 고민을 하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가.”상호는 히죽 웃었다. “그러게요. 매형처럼 돈 많고 잘생긴 남자가 어디 있겠어요? 누나 진짜 바보 같아요.”노숙진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상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말 좀 줄여. 넌 서하 동생이잖아. 나중에 우리 집 기둥이 돼야 할 사람이 지금 매형에게 손 벌려 돈이나 빌려 쓰면, 서하가 시댁에 가서 어떻게 얼굴을 들겠니?”상호가 황급히 말했다. “큰엄마, 지금은 일이 없을 뿐이에요. 앞으로 성공 못 할 이유는 없잖아요. 걱정 마세요.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큰엄마와 큰아빠께 효도하고, 누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게요.”임범철은 매우 흐뭇해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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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벨이 몇 번이나 울린 후에야 전화가 연결되었다.‘설마 또 민레나가 받는 건 아니겠지?’다행히 귀에 들려온 것은 은혁의 낮고 깊은 목소리였다.[여보세요.]서하는 핸드폰을 붙잡은 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은혁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불만이 섞여 있었다. [임서하?]그제야 서하가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당신 어젯밤에 우리 아빠 병원비 냈어?”[우린 아직 이혼하지 않았으니까.] 은혁이 말했다. [나한텐 여전히 장인어른이야.]서하는 곧바로 은혁의 의중을 읽었다.은혁에게 가장 부족하지 않은 것이 돈이다. 이번 일은 그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서하에게는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문제도 은혁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서하는 입꼬리를 올리며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고마워.”은혁이 말했다. [이게 다야?]서하는 어리둥절했다. “뭐가?”[말로만? 성의가 없네.]서하는 은혁이 그런 말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해 되물었다. “그럼 뭘 더 원해?”[오늘 밤에 참석할 연회가 있어. 당신이 나와 같이 가.] 은혁은 다시 한마디 덧붙였다. [우린 아직 이혼하지 않았고, 연회에는 파트너가 있어야 해.]이런 일은 전에도 몇 번 있었고, 서하도 한두 번 은혁을 따라간 적이 있었다.“밤에 아빠 간병해야 해. 8시쯤엔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괜찮아?”은혁이 말했다. [그렇게 해.]서하가 말했다. “알겠어. 그럼 저녁 연회 주소 알려 줘. 내가...”[오후에 사람 보낼게. 샵 가서 꾸미고 와.] 은혁은 말을 마치며 짜증 섞인 어조로 덧붙였다. [끊어.]뚜- 뚜-서하는 대답도 못 했는데 은혁은 이미 전화를 끊어버렸다. 은혁은 서하와 한 마디도 더 말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서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한참 뒤 이불을 젖히자 창백한 얼굴을 드러낸 서하는 그대로 잠들어 점심때까지 푹 잤다.눈을 뜨자 잠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정신이 몽롱했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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