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이라면, 서하는 마음대로 행동해도 됐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은혁과 서하는 연인 사이가 아니었다.친구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사이였다.그저 이한의 아빠와 엄마.서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다행히 은혁은 따로 캐묻지 않았다.서하는 은혁의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그때 은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이한이한테는 말해놨어. 당신 눈은... 엄마가 책을 읽었는데, 내용이 너무 감동적이라서 울었다고.”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마워.”아직 계단 중간에 있었는데, 아래에서 소리가 났다.이한이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엄마!”며칠 동안 서하를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하지만 이한은 어릴 때부터 이런 상황에 익숙했다.서하가 해외에 있을 때는 일이 바빠서 이틀, 사흘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날도 잦았다.그럴 땐 이한이 시터와 지내기도 했고, 천후와 있기도 했고, 소진과 함께 있기도 했다.그래서 지금 은혁과 함께 지내는 것도, 이한에게는 낯설지 않았다.“엄마, 눈 아파?”서하는 계단을 내려와 이한 앞에 쪼그려 앉아 아이를 끌어안았다.작은 몸이었지만, 서하에게는 큰 힘이고 버팀목이었다.무엇보다 서하에게는 이한이 있었다.그리고 소진 같은 친구도 있었다.이 정도면, 세상은 서하에게 충분히 관대했다.“이제 안 아파.”서하는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여기서 말 잘 들었어?”“응! 엄청 잘했어!”이한은 서하의 손을 잡아끌었다.“엄마, 밥 먹자!”서하는 입맛이 없고, 속도 편하지 않았다.하지만 은혁이 눈치챌까 봐, 그리고 이한이 빤히 보고 있어서 더 미룰 수도 없었다.결국 서하는 죽 반 그릇을 겨우 비웠다.입고 있던 옷은 집에서 입던 옷이었다. 예전에 이 집에 두고 간 옷이었다.식사가 끝난 뒤, 은혁이 물었다.“잠깐 나갔다가 올래? 오늘은 이한이도 수업 안 가니까, 함께 산에 가도 괜찮고.”“좋아! 좋아!”이한이 먼저 반겼다.서하도 고개를 끄덕였다.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자꾸 엉뚱한 데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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