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Chapter 881 - Chapter 890

970 Chapters

제881화

엄선호가 씻고 나오자, 구나린은 이미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머리 말려야 하는 거 아냐?”엄선호는 수건으로 머리를 몇 번 털어내듯 닦고는 말했다.“괜찮아. 조금만 있으면 다 말라.”엄선호는 수건을 내려놓고 침대에 올라와 구나린 옆에 앉았다.“왜 그래?”엄선호는 할 말이 있어 보였다.엄선호가 물었다.“하재언이 당신 찾아왔었지?”구나린은 원래 이 일을 말할 생각이 없었다.다른 이유는 없었다.괜히 엄선호가 이것저것 마음에 담아 둘까 봐 그게 걱정이었다.그런데 엄선호는 그걸 어떻게 안 걸까?구나린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하재언이... 설마 당신한테까지 전화한 거야?”“응.” 엄선호가 말했다. “나를 보자고 하더라.”“정말 제정신이 아니네.” 구나린은 바로 표정이 굳었다. “뭘 보재?”“당신 얘기하자더라. 나더러 당신 포기하라고.”“진짜...” 구나린은 화가 치밀었다. “하재언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당신은 상대도 하지 마.”“상대 안 해.” 엄선호가 말했다. “애초에 만날 생각도 없었어. 근데 내 마음이 좀 다쳤거든...”구나린이 엄선호를 바라봤다.“무슨 상처? 하재언이 당신한테 상처를 줘?”엄선호가 말했다.“하재언이 우리가 안 어울린다고 했어. 내가 일만 하느라 당신 옆에 못 있어 준다고도 했고.”“하재언이 그런 말 했다고 당신이 그걸 다 귀담아들어?” 구나린이 말했다. “우리가 잘 맞는지 아닌지를 왜 하재언이 정해?”“물론 아니지.” 엄선호가 말했다. “난 그냥 우리 결혼까지 했는데도 하재언이 저렇게 대놓고 나온다는 게, 진짜 당신을 좋아하긴 하나 보다 싶어서.”“그런 좋아하는 건 사양이야. 누가 바라기나 한대?”“그런데 하재언이 당신 찾아온 일은 왜 나한테 말 안 했어?”구나린이 말했다.“내가 딱 한 마디 제대로 하고 돌려보냈어. 그걸 굳이 말해서 뭐 해. 괜히 당신이 더 신경 쓸까 봐 말 안 한 거지.”“안 돼.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다 나한테 말해.”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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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2화

선우가 깨어난 다음 날, 이번에는 소진이 열이 났다.의사는 그동안 소진이 몸속에서 팽팽하게 버티던 한 가닥 줄을 억지로 붙들고 있었다고 했다.그러다 선우가 깨어나자, 그 줄이 툭 끊어졌고 몸도 함께 무너진 거라고 했다.고열이 나는 건 몸이 자신을 보호하려고 반응하는 과정 가운데 하나라며, 이틀 정도 푹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도 했다.서하가 병원에 오겠다고 했지만, 소진은 끝내 서하를 오지 못하게 했다.서하는 지금 임신 중이었다.소진은 자기 열이 어떤 상태에서 오른 건지도 아직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그 상태에서 서하를 오게 할 수는 없었다.선우는 속이 타들어 갔다.선우는 자신이 의식도 없이 누워 있던 동안 소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 소진이 쓰러진 모습을 보고 나서야, 소진이 자신을 향해 품고 있던 마음도 자신 못지않게 깊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선우는 당장이라도 몸을 일으켜 직접 소진을 돌보고 싶었다.하지만 생각해 보면 뻔한 일이었다.이제 막 눈을 뜬 선우가 직접 가는 것부터 무리였고, 설령 움직일 수 있다고 해도 선우가 소진을 돌보겠다고 나서면 소진이 더 화를 낼 게 분명했다.지금 선우에게 가장 중요한 건, 하루라도 빨리 몸을 회복하는 일이었다.다행히도 다음 날 저녁이 되자 소진의 열은 내렸다.기운도 한결 회복한 상태였다.소진이 열이 났을 때는 다른 병실로 옮겨 있었다.선우가 이제 막 깨어난 터라 면역이 약해져 있을 수 있었고, 괜히 선우에게 옮길까 봐 그렇게 한 것이었다.두 사람이 다시 마주하자, 선우는 참지 못하고 곧장 소진을 끌어안았다.소진을 품에 안고 나서야 선우의 떠돌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선우가 의식을 잃고 있던 시간도 짧다고 할 수는 없었다.그래도 몇 년, 길게는 10년 이상 누워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선우는 분명 운이 좋은 편이었다.몸도 비교적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이틀 정도 지나자 기본적인 움직임은 물론, 자잘한 동작도 크게 무리 없이 할 수 있게 됐다.근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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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3화

“다들 나한테 말해 주더라.” 선우가 소진을 바라봤다. “우리 자기가 나한테 뭘 해줬는지, 나 다 알아.”소진은 조금 어색해졌다.“됐어, 됐어. 그러지 마. 교수님이 언제쯤 집에 갈 수 있다고는 말 안 해? 가서 네 아들 얼굴도 봐야지.”“안 급해.” 선우가 말했다.“아들 안 보고 싶어?”“솔직히 말하면, 난 자기만 보고 싶어.”선우는 소진을 바라본 채 말했다.“자기야, 나 수술받을 때 사실 의식이 완전히 끊긴 건 아니었어. 그때 내가 무슨 생각 했는지 알아?”“내가 정말 죽으면, 자기는 분명 다른 남자 만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어떻게든 무덤에서라도 기어 나와서 그 새끼부터 가만 안 두겠다고 생각했어.”소진은 고개를 숙인 채 웃었다. 어깨가 들썩일 만큼 웃었다.한참 웃다가 끝내 눈물까지 맺혔다.소진이 물었다.“그 새끼를 찾아가서 혼낼 거면, 난 안 혼내?”“자기...” 선우가 말했다. “그건 내가 먼저 죽어 버리면 어쩌겠어. 내가 능력이 없었던 거지.”“진짜...” 소진은 어이없다는 듯 선우를 봤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그렇게 없어?”“나한테 무슨 믿음이 있어.” 선우가 말했다. “난 우리 소진이 옆에서 내세울 자리도 없잖아.”소진이 말했다.“그런 말로 나 떠보려는 거면 소용없어.”“나 그런 거 아니야!” 선우가 급히 말했다. “내가 자기랑 같이 못 있게 되면, 그건 내가 못난 거고. 자기가 나한테 자리를 안 줘도, 그것도 내가 부족한 거지.”“됐어, 그 얘긴 그만하자.” 소진이 말했다. “그리고 나도 자기한테 앞으로 위험한 일 생겨도 나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은 안 할게. 그런 말 해 봤자 자기는 들을 사람도 아니니까. 대신, 이번 일로 나한테 뭐 하나 요구해 볼 생각은 안 했어?”“무슨 뜻이야?”“그러니까... 자기가 원하는 걸 말해도 된다는 뜻이야. 웬만한 건 내가 다 들어줄 수 있어.”“그럼 그 말은... 내가 자기를 구해 줬으니까 이제 나도 자기한테 뭘 요구해도 된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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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4화

선우는 얼마나 오랜 세월 바라 왔는지도 모를 만큼, 언젠가 소진이 자기와 결혼해 주는 날을 꿈꿔 왔다.하지만 선우도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문제가 남아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예전에 선우는 소진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었다.어쩌면 그때부터 소진은 마음을 닫고, 사랑이라는 걸 믿지 않게 된 건지도 모른다.그 뒤로 선우는 오랜 시간 동안 소진이 다시 마음을 열고 자기를 받아들이도록 애써 왔다.사실 지금처럼 된 것만으로도 선우는 이미 충분히 만족했다.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 않았다.조금 얻고 나면 조금 더 바라고,많이 얻고 나면 더 많이 갖고 싶어졌다.그렇다고 해도 소진은 여전히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소진은 결혼하고 싶지 않았고, 다른 누군가와 법이라는 틀 안에 묶이고 싶지 않았다.얇은 혼인신고서 한 장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게 소진 생각이었다.세상에 이혼하는 사람도 그렇게 많은데, 그 서류 한 장이 무슨 대수냐는 뜻이었다.정말 함께할 사람이라면 그런 종이 한 장에 매여서 사는 것은 아니다.선우는 소진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게다가 소진은 스스로 돈 버는 능력도 있어서, 남자에게 기대야 살아갈 사람도 아니었다.그런 점에서 소진은 누구보다 자유로운 여자였다.선우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선우에게 있는 것들이 소진에게도 다 있었기 때문이다.그래도 이제 소진은 선우의 아이까지 낳았다.그것만으로도 선우는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결혼이니 자리니 하는 일은, 선우도 더는 감히 바라지 않으려 했다.그런데 누가 알았겠는가?한 번의 교통사고가 지나고, 눈을 뜬 뒤에 소진이 그런 말을 하게 될 줄은...소진과 결혼해서 소진 옆에 제대로 설 자리를 얻는 건 선우가 오래도록 꿈꿔 온 일이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소진이 이번 일 때문에 자기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선우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물론 선우도 알고 있었다.소진을 구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소진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소진이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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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5화

[소진이?] 서하가 금방 전화받았다. [오늘은 좀 어때? 괜찮아졌어?]“괜찮아. 열도 내렸어.” 소진이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너 요즘 너무 무리했잖아. 한동안은 진짜 푹 쉬어야 해. 가볍게 넘기지 말고.]“알았어.”[하 변호사님은? 좀 어때?]“걔 얘긴 하지 마.”말투가 심상치 않자, 서하는 의아해졌다.[왜? 두 사람 싸웠어?]이상했다.선우가 깨어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눈 뜨자마자 다툴 일이 뭐가 있나 싶었다.“지금 걔 보고 싶지도 않아.” 소진이 말했다. “네가 말해 봐. 걔 좀 이상하지 않아?”소진은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서하에게 다 털어놨다.얘기를 다 들은 서하가 웃으며 말했다.[소진아, 네가 그렇게 말하면 누가 들어도 오해하기 십상이야.]“뭘 오해해? 난 그런 뜻 전혀 아니었거든!”[근데 그 상황 자체가 원래 오해받기 쉬운 상황이잖아.]“설명도 했어.”[내가 옆에 있었던 건 아니지만, 네 설명이 다정하게 들리진 않았을 거라는 건 안 들어도 알아.] 서하가 말했다. [하 변호사님 좀 위로할 생각은 없어?]“걔가 몇 살인데 내가 달래.”서하가 한숨을 쉬었다.[하 변호사님은 죽을 고비 넘기고 겨우 깨어났잖아. 넌 말로는 결혼하자고 하면서, 그게 보답하려는 마음 때문은 아니라고 해 놓고, 정작 한번 마음 알아주는 건 싫다는 거야? 진짜 너무하다.]소진이 말했다.“난 원래 닭살 돋게 그렇게 말하는 거 못 해.”[좋은 말 몇 마디면 돼. 하 변호사님한테 네가 결혼하자는 게 널 구해 줘서가 아니라, 그냥 네가 하 변호사님을 사랑하고 평생 같이 살고 싶어서라고 말해 주면 되잖아...]“으, 너무 닭살 돋아.” 소진이 말했다. “너 평소에 배 대표한테도 그렇게 해?”[가끔은 좋은 말 몇 마디 해 주면, 남자한테 뭐 하나 시킬 때도 훨씬 수월해. 엄청 꿀팁인데 왜 안 써?]“친구야, 너 진짜 많이 변했다.” 소진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남자 다루는 것도 완전 자연스럽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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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6화

다음 날 아침 일찍, 서하는 소진에게 전화했다....소진은 병원 안 작은 정원에서 선우와 함께 천천히 뛰고 있었다.선우가 이렇게 빨리 회복한 건, 원래 몸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었다.지금은 이미 회복 막바지 단계에 들어선 상태였다.그래도 소진은 선우를 오래 뛰게 할 생각은 없었다.몸이 막 회복되기 시작한 때라, 운동 강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무리가 될 수 있었다.마침 핸드폰이 울리자, 소진은 선우를 이끌고 옆에 있는 나무 벤치에 앉았다.“서하야?”[소진아.]서하는 학교로 가는 길이었다. [오늘은 좀 어때? 이제 완전히 괜찮아진 거야?]소진이 말했다.“응, 다 나았어. 팔팔해. 나 지금 선우랑 운동 중이야.”[벌써 뛰어도 돼?] 서하가 바로 물었다. [너도 어제까지만 해도 열 났잖아. 너도 오늘 뛰면 안 되는 거 아니야?]“그냥 천천히 뛰는 정도야. 괜찮아.”[아무튼 조심은 해야 해. 며칠은 더 쉬어야지.]서하는 영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말했다. [교수님이 뛰어도 된다고 하셨어?]“응, 괜찮대.”[그럼 다행이고.]서하가 물었다. [그럼... 어젯밤에 말한 일은 어떻게 됐어? 하 변호사님은 좀 어때?]소진은 옆에서 혼자 실실 웃고 있는 선우를 한번 보고 입을 열었다.“나 지금이라도 후회하면 늦었나? 나 그냥 비혼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소진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선우가 핸드폰을 뺏어 갔다.선우가 말했다.“서하 씨, 소진이 말은 흘려들어요. 전 몸만 다 회복하면 바로 결혼할 거예요. 그때 이한이 화동 시키고 싶은데.”서하가 웃었다.[좋아요.]“그럼 끊을게요.”선우는 전화를 끊더니 그대로 자기 주머니에 넣어 버렸다.소진이 선우를 노려봤다.“뭐 하는 거야? 반란이라도 일으키려고?”선우는 소진 어깨를 끌어안았다.“이미 약속했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물러.”“왜 이렇게 들러붙고 난리야. 안 귀찮아?”“내가 자기를 얼마나 못 봤는데...”“나는 맨날 자기 옆에 있었거든!”“근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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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7화

“뭐 먹고 싶어?”“아무거나. 여러 가지 골라서 좀 사 와.”서하를 학교에 내려준 뒤, 은혁은 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민석이 받자마자 물었다.[무슨 일인데?]“왜 이렇게 짜증부터 내.” 은혁이 물었다. “어디야?”[회사.]“아정이한테 가 보진 않았고?”[용건 있어, 없어?]은혁이 웃었다.“또 차였냐? 나한테 화풀이하는 거야?”[진짜 할 말 있어, 없어? 없으면 끊는다.]은혁이 얼른 말했다.“있어. 너 요즘 디저트 안 만들어?”[돌려 말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바로 해.]“우리 와이프가 디저트 먹고 싶대.” 은혁이 말했다. “밖에서 사다 주긴 싫고, 네가 좀 만들어 줄래?”[네 와이프가 디저트 먹고 싶다고 왜 나한테 만들어 달래?]“넌 진짜 내 친구 맞냐?” 은혁이 말했다. “이 정도 부탁도 안 들어줘?”민석이 말했다.[그렇게 아끼면 네가 배워서 만들어.]“지금 배우면 늦잖아. 몇 가지 좀 만들어 줘.”[안 해.]그 말을 끝으로 민석은 전화를 끊어 버렸다.은혁은 고개를 저었다.“도대체 얼마나 아정이한테 깨졌길래 저러냐.”어쩔 수 없이 은혁은 그냥 직접 사러 가기로 했다.그런데 민석이 했던 말이 오히려 은혁 머릿속에 하나를 떠오르게 했다.차라리 베이커리 하나를 투자해서, 집 사람들 먹을 디저트를 따로 만들게 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그 생각이 들자마자 은혁은 바로 아는 사람에게 연락해서 알아봐 달라고 했다.회사에서 오후까지 일을 보다 보니, 연락했던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이미 다 알아보고 정리해 뒀다는 말이었다.그 정도 일은 그쪽 분야를 잘 아는 사람한텐 별것도 아니었다.은혁이 말했다.“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 수익이 얼마나 나느냐도 상관없고. 대신 재료는 꼭 깔끔해야 해. 위생도 철저해야 하고, 맛은 물론 좋아야 해.”상대방이 웃었다.[수익이 안 중요하다니, 이래도 사업가 맞냐?]그래도 그 사람도 알고 있었다.은혁이 그런 곳을 찾는 이유는 결국 집에서 먹을 디저트 때문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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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8화

민석과 아정 사이에는 석 달짜리 약속이 있었다.이제 그중 20일이 지났다.아무리 길게 잡아도, 민석에게 남은 시간은 칠십일뿐이었다.그 시간 동안만이라도 민석은 매일 아정을 볼 수 있었다.민석은 아정을 위해 직접 연습 코스를 그려 줬고, 후진 주차와 평행 주차도 옆에서 붙어 운전 연습하는 과정 하나하나 다 살펴봐 줬다.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아정의 연습 장소는 운전학원으로 옮겨 갔다.아정은 더 이상 민석에게 배우지 않겠다고 했다.이유는 단순했다.지난번 운전학원에 출석하러 갔을 때, 해외에서 막 들어온 남자를 만났기 때문이다.처음 말을 튼 날부터 이상할 만큼 잘 통했고,둘은 곧바로 같이 연습하기로 약속까지 잡았다.그 남자는 말투도 부드럽고, 분위기도 점잖았다.딱 아정이 좋아할 만한 타입이었다.민석은 운전학원까지 따라갔다가,아정이 다른 남자와 자연스럽게 웃고 떠드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민석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민석은 그저 아정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아정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은 아무것도 없었다.무엇보다 아정에게는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친해질지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운전 연습이 끝난 뒤, 아정은 마치 큰 아량이라도 베푸는 듯 민석에게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조수석에 앉은 아정은 눈가에 웃음기가 가득했다.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계속 손가락을 움직였다.누가 봐도 아까 그 남자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중이었다.민석과는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결국 신호에 걸려 차가 멈췄을 때, 민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아정아, 잘 모르는 사람이랑 너무 빨리 가까워지진 마. 위험할 수도 있어.”아정이 말했다.“운전이나 제대로 하세요. 기사님이 한눈팔면 안 되잖아요.”민석은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삼킬 수밖에 없었다.구씨 집안 저택이 가까워졌을 즈음, 민석은 길가에 차를 세웠다.그제야 아정의 시선이 핸드폰에서 떨어졌다.집 근처 익숙한 길이라는 걸 확인한 아정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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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9화

“아정아, 나 진짜 잘못한 거 알아.” 민석은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나 안 보겠다는 말은 하지 마. 아니면 네가 말해. 내가 어떻게 해야 화 풀 거야? 정 안 되면 몇 대 때릴래?”“유 대표님 때리면 제 손만 아프거든요!” 아정은 당연히 그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놔주세요!”“아정아, 네가 이렇게 가 버리면 나는 어떡해?”“유 대표님이 어떡하든 그걸 제가 왜 신경 써요! 아까 제 얘기할 때는 제 마음은 생각이나 하셨어요?”“내가 잘못했어.” 민석은 아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화만 풀 수 있다면 뭐든 할게. 진짜로.”“전 유 대표님 안 보고 싶어요!”“그건 안 돼.” 민석이 말했다. “그럼 내가 디저트 만들어 줄게. 뭐 먹고 싶은데? 내일 가져다줄게.”“안 먹어요!” 아정은 그 말을 듣고 더 화가 났다. “저 이제 디저트 안 먹을 거예요! 저 살쪘단 말이에요!”“네가 어디가 쪘어? 지금 딱 좋아. 하나도 안 쪘어. 진짜야!”“진짜요?” 아정은 자기 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전 살찐 것 같은데요. 날씨 추워지면 원래 살 잘 붙잖아요.”“진짜 아니야. 나는 오히려 네가 너무 말랐다고 생각해.”“저 안 말랐어요!” 아정이 말했다. “제가 말랐으면 좋겠지만... 아무튼 저 이제 디저트 안 먹을 거니까, 만들지 마세요.”아정의 관심은 참 쉽게 다른 데로 옮겨 갔다.민석이 말했다.“그럼 저당에 저지방으로 만들게. 맛은 그대로인데 살도 잘 안 쪄.”“진짜요? 그런 것도 만들 수 있어요?”디저트 싫어하는 여자가 어디 있을까?아정은 살이 안 찐다는 말을 듣자 눈이 바로 반짝였다.“할 수 있어.” 민석이 말했다. “내일 롤케이크랑 두리안 찹쌀떡 만들어 줄게.”“좋아요, 좋아요.” 아정은 연달아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다 아정은 뒤늦게 자기가 아직 화난 상태라는 걸 떠올렸다.“케이크 몇 개 준다고 제가 화 풀 줄 아세요?” 아정이 콧방귀를 뀌었다. “유 대표님 진짜 너무 싫어요. 전 남이 저한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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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0화

아정은 원래 달래기 쉬운 편이었다.애처럼 해맑은 구석이 있었고, 집안에서 곱게 자라 성정도 단순하고 맑았다.괜히 다른 속셈을 품고 사람을 재는 타입도 아니었다.그렇다고 아정이 마냥 순진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집에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민석이 슬쩍 화제를 돌려 자기를 말려들게 했다는 걸 알게 됐다.분명 아정은 화가 나 있었는데, 어쩌다 맛있는 거 몇 가지 얘기에 넘어가 버린 건지 자신도 어이가 없었다.하지만 민석이 만드는 디저트가 맛있는 건 사실이었다.게다가 민석은 아정이 전혀 살찌지 않았다고도 했다.‘아니지.’아정은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지금 이 사람이 날 좋아하니까 당연히 좋은 말만 하지.’아정은 맨발로 침대에서 폴짝 내려와 오빠 방으로 달려갔다.문을 두드리며 연달아 불렀다.“오빠, 오빠!”민준이 문을 열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아정의 하얗고 맨살 그대로 드러난 발이었다.“또 맨발이지.” 민준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당장 방으로 들어가.”아정은 가끔 귀찮다는 이유로 집 안을 맨발로 돌아다니곤 했다.그래서 집안 곳곳에 카펫이 깔려 있었지만, 복도까지 다 덮여 있는 건 아니었다.“바닥에 난방 들어오잖아. 하나도 안 차가워.” 아정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오빠, 나 살쪘어?”민준은 아정의 옷깃을 가볍게 잡아끌어 방으로 돌려보냈다.“실내화부터 신어.”“오빠 진짜 귀찮게 해.”아정은 제 방으로 돌아가 얌전히 실내화를 신고 와서 다시 물었다.“그럼 빨리 말해. 진짜 안 쪘어?”“안 쪘어.” 민준이 말했다. “누가 너 쪘다고 했어? 그런 소리 한 사람 있으면 보는 눈이 없는 거야. 난 오히려 네가 더 쪘으면 싶거든.”“진짜 안 쪘어?” 아정은 제 허리를 만져 보았다. 손에 아주 조금 잡히는 살이 느껴졌다. “오빠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내가 너한테 거짓말해서 뭐 하게.” 민준은 아정 머리를 한번 헝클어뜨렸다.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얼른 자.”시간이 늦은 탓에 민준은 동생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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