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드디어 내 손에 들어온 너: Chapter 61 - Chapter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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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양현주 씨, 참 뻔뻔하시네요.”강재혁의 눈빛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는 탁자에 얼굴을 묻고 억울함을 호소하던 양현주를 내려다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당신이 채아를 공격한 건 강지유를 위해서였다고 아무리 떠들면 내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줄 알았습니까? 설령 끝까지 감췄다 해도 당신이 왜 채아를 미워했는지, 왜 채아의 죽음을 바랐는지 전부 알고 있습니다. 채아가 바로 그때 제 어머니의 유품을 찾아줬던 사람이기 때문이겠죠.”순간 숨이 막혀올 정도로 공기가 탁해진 것 같았다.양현주는 그 말에 온몸이 굳었다. 울음을 쏟아내던 얼굴이 한순간에 얼어붙었다.강재혁과 강의준의 부자 관계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틀어져 있었다.과거 옥 펜던트 목걸이 사건으로 강재혁이 강준혁을 폭행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강재혁은 끝내 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그래서 지금까지 강의준은 그 일로 강재혁을 숨이 끊어질 만큼 두들겨 패기까지 했어도 두 아들이 왜 그렇게 격렬하게 맞붙었는지 정확한 사정을 알지 못했다.그는 그저 장남인 강재혁이 집을 떠나 7년간 방황하며 성격이 비뚤어진 탓이라고만 여겨왔다.그런데 지금, 강재혁이 돌연 오랜 세월 묻어둔 비밀을 불현듯 입 밖에 꺼내버렸다.강의준의 얼굴빛이 단숨에 굳어지더니 강재혁과 꼭 닮은 검은 눈동자를 성난 야수처럼 번뜩이며 억눌려 있던 흉악한 기운을 드러냈다.양현주는 공포에 떨며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마지막 발악처럼 애원을 늘어놓았다.“재혁아, 그게 무슨 소리니... 네 어머니는 내 오랜 친구였어. 만약 문채아라는 아이가 정말 무언가를 찾아줬다면 나는 오히려 감사의 마음을 전했을 거야...”“그만하세요. 그 위선적인 얼굴, 이제 더는 보기 역겹습니다.”강재혁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차가운 눈빛이 양현주의 얼굴을 얼어붙게 했다.“어머니 유품을 집에 들여놨을 때, 당신 그 잘난 두 자식은 상속권을 뺏겼다고 여겼겠죠. 그래서 강준혁은 친구들을 끌고 와 수시로 날 두들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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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어제까지만 해도 강지유는 ‘커리어 우먼’이라는 화려한 포장으로 문채아를 밟아 내렸지만, 하루 만에 그 포장은 산산이 무너졌다.온라인 여론은 급격히 뒤집혔다.여전히 문채아를 불륜녀라 욕하는 목소리는 뜨거웠지만, 이제는 누구도 강지유가 능력 있는 여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강지유를 두둔하는 댓글이 달리면 곧바로 ‘제정신이냐’는 비아냥이 따라붙었다.[문채아도 밉지만, 이렇게 보니 강지유도 절대 좋은 인간은 아니네.][맞아, 나도 늘 하고 싶었던 말이야. SNS에서 밑바닥부터 올라온 재벌가 딸인 척했던 건 다 설정이었어? 능력자인 줄 알았더니 결국 공금 횡령범이었네?][‘능력자’라고 떠들던 팬들, 지금 어디 계세요? 좀 나와보시죠.][강지유, 사업가 코스프레는 이제 끝났네. 차라리 옥살이 브이로그나 찍어보지 그러냐. 강의준 회장이 나서지 않으면 10년은 감옥에서 썩겠는걸?][문채아는 불륜녀, 강지유는 횡령범, 박도윤 대표는 왜 이런 여자들하고만 얽히는 거지?][공금 횡령범 딸 옆에서 엄마는 연기 차력쇼, 이게 바로 강씨 가문 클래스지!]댓글 창은 조롱과 분노로 끓어올랐다.문채아는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강재혁이 쥐고 있던 강지유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바로 공금 횡령이었다.‘그러니 강지유가 그토록 불안해했겠지.’그때 ‘띵동...’하고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문채아는 주연우와의 전화를 끊고 급히 현관으로 달려갔다.문을 열자마자 짙은 술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그리고 문 앞에는 조금 전까지 머릿속에 떠올랐던 강재혁이 서 있었다.“재혁 씨?”강재혁은 여느 때처럼 맞춤 수트를 입고 있었지만, 차갑게 다가서기 어려운 포스는 한결 누그러들어 있었다. 매서운 눈매는 여전했지만, 그의 표정은 어딘가 부드러워 보였다.“술 드신 거예요?”문채아가 조심스레 물었다.“응... 고객 대응으로 간단히 마셨어.”강재혁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리고 잠시 시선을 떨구며 말을 이었다.“줄 게 있어서 왔어. 잠깐 들어가도 돼?”문채아는 순간 망설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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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아직 눈이 부어서 불편하지 않아? 내가 연고 발라줄게.”강재혁은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움직였다.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지만 묘하게 스며든 다정함이 듣는 이를 설레게 했다.문채아는 눈꺼풀을 깜박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사실 참을 만해요.”“그래도 내가 약 발라주는 게 더 나을 거야.”강재혁이 연고를 손에 덜며 말했다.“채아야, 우린 이미 결혼한 부부야. 그리고 협력 관계인 파트너이기도 하고...”어차피 협력 관계라 약을 발라주는 것도 파트너로서 챙겨주는 것에 불과할 수 있었다. 문채아도 그 점을 부정할 수 없었다.게다가 그녀는 강재혁을 꽤 신뢰하고 있었기에 더는 말없이 고개를 들어 강재혁이 연고를 발라주도록 눈을 감았다.곧 차갑고 은은한 연고가 눈가에 스며들었고 그의 손끝에 밴 얇은 굳은살이 눈꺼풀을 스칠 때마다 마치 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스치는 것 같기도 했다.잠시 후 눈을 뜨자, 강재혁의 얼굴이 바로 앞에 가까이 와 있었고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문채아는 자신이 아마 그의 몸에 밴 술 향기에 취해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순간 귀 끝이 붉어진 그녀는 방금 주연우와의 통화를 떠올리고 급히 화제를 돌렸다.문채아가 조심스레 말했다.“재혁 씨... 강지유 일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어젯밤 저를 위로해 주신 뒤에 바로 강지유를 해고한 거겠죠?”“맞아.”강재혁은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낮게 답했다. 목소리에는 냉정함과 동시에 묘한 힘이 실려 있었다.“온라인 소동은 강지유와 직결돼 있었어. 내가 약속했지? 복수의 큰 그림은 네가 쥐고 가야 한다고. 다만 네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잠깐 숨통을 틔워준 거야. 전체 판을 흔들지 않고 네가 버틸 수 있게 손 좀 썼을 뿐이야.”“알겠습니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문채아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어젯밤만 해도 그녀는 인터넷의 악성 댓글, 그리고 사주를 받은 댓글부대가 또 어떤 상처를 들춰낼지 불안에 시달렸었다.하지만 강재혁의 개입은 판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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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형, 오늘 술 안 마셨잖아?”이무현은 팔짱을 낀 채 웃음을 흘리며 강재혁 앞에 섰다. 방금 전 스위트룸 문 앞까지 함께 왔던 그는 강재혁이 문채아를 따라 들어가는 것을 본 터였다.일부러 술에 취한 척해 부축받고 들어가는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아래층에 술자리가 있었던 건 사실이었지만 재호 그룹의 대표이사인 강재혁이 굳이 그 자리에서 빈틈을 보일 이유는 없었다.그 자리에 참석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체면이 섰으니까. 참석한 사람들은 오히려 자칫 실언이나 실수라도 할지 걱정돼 술잔조차 쉽게 들지 않았다.그런데 그날은 예외였다. 강재혁이 먼저 잔을 들어 술을 마시도록 권했고 그 탓에 옷에 술 냄새가 가득 배게 되었던 것이었다.이무현은 강재혁이 평소 냄새에 민감하다는 걸 알기에 곧장 차고에서 새 외투를 가져와 갈아입히려 했다. 그러나 정작 강재혁은 외투를 챙기지도 않고 스위트룸으로 올라가 문채아의 방문을 두드렸다.‘쳇, 머리 굴리는 게 여자들만의 특권인 줄 아냐? 우리 재혁 형님 같은 남자가 작정하고 움직이면 훨씬 무섭다고!’이무현은 피식 웃으며 비꼬았지만 강재혁은 태연하게 외투만 갈아입었다.입술에 남은 꿀 향기 탓일까. 그날따라 그의 표정은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술 취한 척 좀 했다, 그래서 뭐.’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예전 공식 석상에서 강재혁은 문채아가 박도윤 곁을 지키며 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마다 꿀물을 내주는 모습을 수도 없이 지켜봐야 했다.그 한 잔은 특별할 것도, 대단한 기술이 담긴 것도 아니었지만, 늘 강재혁에게는 부러움이자 질투, 시기의 대상이었다.그런데 오늘, 강재혁은 드디어 그 꿀물을 맛보게 되었다.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단순한 걱정에서 비롯했던 행동일지라도 그녀가 자신을 위해 마음을 쓴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그의 삶에서 처음 맛보는 달콤함이었다....호텔 밖 하늘은 며칠째 드리워졌던 먹구름이 걷힌 듯 맑게 개어 있었다.문채아는 예정대로 박씨 가문으로 돌아왔다.도우미들은 문채아가 그 많은 소동을 일으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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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문영란은 문채아를 집으로 데려와 모든 걸 직접 설명하게 하고 싶었다.‘제기랄, 이놈의 불효녀는 전화조차 받지 않고 글로리 호텔에 틀어박혀 있으니...’문영란은 호텔 매니저에게까지 쫓겨나며 속을 태웠다.그러던 찰나에 오늘은 문채아가 스스로 돌아오자, 문영란은 그간 쌓인 분노를 한꺼번에 터뜨렸다.하지만 문채아는 그런 질책에도 평온하게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엄마, 그렇게 제가 돌아오길 바라셨다면서요. 무슨 일 있으세요?”“뭐라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문영란의 가슴이 요동쳤다.“요즘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일들에 대해 몰라서 하는 말이야? 당장 집으로 들어와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야?”“사과요? 네, 물론 필요하겠죠. 그런데 사과해야 할 쪽은 오히려 박씨 가문 아닐까요? 온라인에 떠도는 그 더러운 소문, 그걸 만들어낸 장본인이 박씨 가문이잖아요?”거실은 순간 얼어붙었다. 아무도 문채아가 그런 말을 할 거라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문영란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더구나 박진성이 바로 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눈치만 보였다. 그녀는 목소리가 갈라질 듯 외쳤다.“문채아, 너 지금 제정신이니? 박씨 가문이 무슨 짓을 했다는 거야!”“아저씨는 끝까지 모른 척하실 건가요?”문채아는 가볍게 웃으며 시선을 박진성에게로 옮겼다. 사람들 앞에서는 언제나 의연했던 그를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노려보았다.“아저씨, 몇 년 전 해고된 도우미들까지 불러다 댓글부대를 만들고 저를 ‘박도윤을 유혹한 여자’로 매장하라고 지시하셨죠? 그런 짓을 꾸미고도 정작 엄마한테는 아무 언질도 없으셨던 거예요? 엄마만 불안에 떨게 놔두셨던 거네요? 엄마를 향한 그 ‘사랑’... 참 대단하시네요.”문채아는 실제로 이 일을 꾸민 사람이 박도윤이라고 의심했다. 하지만 박씨 가문에서 실권을 쥔 박진성이 모른 척했을 리 없다는 생각도 이어졌다.그는 가문을 위해서라면 거리낌 없이 자기 아내의 친딸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그 순간 문채아는 그동안 문영란이 입에 달고 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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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아저씨, 사람이라면 누구나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마련이잖아요? 박도윤이 강씨 가문의 장녀 강지유와 인연을 맺는다는 건 이미 다 아는 사실인데요. 만약 제가 정말 신분 상승을 원했다면, 박도윤이 아니라 재호 그룹 대표이사 강재혁 쪽을 택했겠죠.”문채아는 박진성의 논리를 빌려 반쯤 농담처럼 내뱉었다. 그러나 그 말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이는 없었다.문영란은 황급히 손으로 문채아의 입을 막으며 눈을 부릅떴다.“닥치지 못하겠어? 내가 어쩌다 너 같은 불효녀를 낳았을까. 네가 감히 강재혁 대표랑 엮일 생각을 해? 어떻게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입에 담니?”문영란이 분노한 이유는 남편 눈치를 봐서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 말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말도 안 돼. 강재혁은 강씨 가문에서 실권을 쥔 인물이잖아. 우리 채아가 그 사람의 짝이 된다는 건 상상조차 못 할 일이지.’문채아가 오늘처럼 감히 넘볼 수 없는 자리를 넘보는 망상을 입 밖으로 흘렸다가는 온라인과 상류사회 모두 문영란을 조롱해 집밖에 나오지 못하게 만들 것이었다.문영란은 예전에 들은 소문도 떠올렸다. 강씨 가문의 안주인 양현주가 자기 조카를 강재혁의 아내감으로 점찍고 있다는 얘기였다.‘그 여편네가 과연 강재혁의 배필로 다른 여자를 받아줄 리가 있나...’비록 문영란도 양현주처럼 새엄마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문영란은 본능적으로 양현주와 자신이 본성부터 다르다는 걸 느꼈다.‘양현주라는 여자, 겉으로는 온화하고 현숙한 체하지만 속은 음흉하고 교활하다고 소문이 자자했지. 그러니 그 조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강재혁이 그런 집안을 처음부터 달가워하지 않았던 건 이해가 가지만, 어쨌든 강재혁은 우리 채아가 바라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문영란은 애써 목소리를 낮추며, 떨리는 손으로 딸의 입을 붙잡고 다그쳤다.“아저씨한테 네가 도윤이와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잘 설명해. 그리고 제발 그런 미친 소리는 그만 해! 엄마 놀라게 하지 마.”“...”문채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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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허무맹랑한 소문이 저한테 상처가 될지 말지는 중요하지 않고... 강지유는 실제 범죄를 저질렀어도 피해자라는 말이죠? 제 명예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건가요? 설마 저를 이용해서 강지유의 평판을 뒤집으려는 겁니까?”“맞아, 우리는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박진성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한 뒤, 박도윤을 쳐다보았다.“도윤아, 그 계획은 네가 생각한 거니까 네가 채아에게 말해보거라.”“네, 아버지.”그동안 침묵하던 박도윤이 입을 열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은 문채아의 심장을 겨누는 칼날 같았다.“문채아, 잘 들어. 너한테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주려고 해. 회의 자리에서 네가 의도적으로 나에게 먼저 접근했고 내 약혼녀인 지유에게 상처를 줬다고 네 손으로 시인하게 할 거야. 지금 너와 지유 둘 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니, 지유의 명예를 회복하려면 네가 공개적으로 더 악랄한 이미지가 되어야 해. 그래야 여론의 모든 화살이 네게 꽂히고 사람들이 지유에게는 동정표를 줄 테니까...”요컨대, 박도윤의 계획은 강지유의 이미지를 위해 문채아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었다.설령 강지유가 비리를 저지른 데 대해 비난을 받더라도 만약 문채아가 더 잔혹하고 음흉한 사람으로 보이면 사람들의 시선은 문채아에게 쏠릴 것이고, 그 결과로 강지유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게 된다는 논리였다.듣고 있자니, 문채아의 명예를 통째로 바쳐 강지유의 이미지를 구하려는 잔혹한 계산이었다.문채아는 박도윤의 온화한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비꼬듯 박수를 쳤다.“박도윤, 강재혁 대표가 나를 위해 복수해 주는 걸 보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또 이런 일을 꾸밀 생각을 해? 강재혁 대표가 가만있을 거라 믿어? 이번에는 아예 강지유를 매장시키고 박씨 가문까지 무너뜨릴 수도 있는데, 두렵지도 않아?”박도윤은 안경 너머로 의미심장한 눈빛을 내비쳤다.“이 판은 내가 짠 거야. 지유와는 무관하니 강재혁 대표도 직접 지유에게 손을 쓰지는 못할 거야. 그럴 명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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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사람들은 문영란이 박씨 가문에 시집간 것이 돈과 권력 때문이라고 수군거렸다. 마치 날개를 펴고 높은 곳으로 오르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문영란은 진심으로 박진성을 사랑했다.어려서부터 문영란의 삶은 늘 사랑이 부족했다. 부모가 일찍 갈라선 뒤 그녀는 버려진 짐처럼 취급당하며 여기저기 떠밀렸다. 그러다가 어렵게 결혼했지만 남편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어린 딸만 남긴 채 홀로 버텨야 했다.그 과정에서 가장 뼈아픈 건 ‘아무도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그때 나타난 사람이 박진성이었다. 배경도, 학식도 없는 그녀를 외면하지 않았고, 오히려 온화하고 순종적인 성품을 칭찬해 주었다.문영란은 그에게 매달리듯 더 착한 아내이자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자신을 가다듬었다. 박진성의 인정을 받기 위해 박도윤을 비롯한 박씨 가문의 식구들에게 온갖 정성을 쏟았다.딸이 식구들에게 모욕을 당해도, 도우미가 밥을 빼앗고 손가락질하며 욕해도 문영란은 못 본 척했다. 언젠가 박진성이 자신의 대의를 먼저 생각하는 여자라며 칭찬했던 기억을 붙잡고 버텼다.그리고 이제 박진성이 딸을 버리라 강요하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스스로를 달랬다.‘박씨 가문이 잘돼야 진성 씨도 잘되고, 그래야 나도 편하게 살 수 있다.’문영란은 눈물을 삼키며 문채아의 손을 붙잡았다.“채아야, 이제부터는 도윤이 말에 잘 따르렴. 너는 강씨 가문 딸과는 비교도 안 돼. 네가 지유를 도와주면 박씨 가문 안에서라도 조용히 지낼 수 있어. 그러면 밖에서도 너를 건드리지 못해. 우리 가족도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거야.”문채아는 비꼬듯 고개를 저으며 팔에 남은 손자국을 쓰다듬었다.“엄마, 정말 매번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네요. 늘 하시던 대로군요.”친딸마저 재혼한 남편에게 차려질 이익을 위해 내다 버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문영란이 사랑에 눈이 멀어 모든 걸 잃는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하지만 문채아는 이미 이런 결말을 예상하고 있었다.이제 더는 주저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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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문채아가 비웃듯 입을 열었다.“박씨 가문이 진짜로 저를 지킬 수 있는 집안이었다면 애초에 피해자인 저를 파렴치한 가해자로 만들지는 않았겠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제게 남은 것까지 모조리 빼앗아 가고 외부에 도움을 청할 길마저 막아버리려 하고 있는데... 밖에 나가면 물어뜯길지 몰라도, 이 집에 남아 있는 한 저는 살점 하나 남지 못할 거예요!”“...”문영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야말로 딸의 인생을 망치는 데 동조한 사람이었으니까.그때 박진성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좋다. 네 요구를 들어주마.”차갑고 묵직한 목소리가 거실을 가르며 울렸다.“조만간 네가 원하는 대로 간단하게 초안을 작성하겠다. 기자회견 전에 네 손에 전달해 주도록 할 거야.”그 말은 협약서를 얻으려면 기자회견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박진성은 문채아가 막판에 빠져나갈 가능성까지 틀어막았다. 그야말로 노련하고 교활한 수였다.그러나 문채아 역시 물러설 뜻은 없었다.“좋습니다. 회견장에서 약속을 주고받죠. 제가 박씨 가문이 준비한 무대를 완벽하게 끝내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박진성은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채아야, 네가 이런 결심을 했다니 기특하구나. 안쓰럽지만 네가 선택한 길이니, 아저씨도 네 뜻을 존중하겠다.”문채아는 일어나려다 박진성의 말에 콧방귀를 뀌고 돌아섰다.“아저씨, 박도윤이 누굴 닮아서 저렇게 약아빠졌나 했더니 아저씨를 그대로 닮았네요.”그는 비꼬듯 웃으며 박진성을 똑바로 노려봤다.“존중이라니요? 그건 아저씨가 원하는 걸 다 얻었고 덤으로 성가신 저까지 손쉽게 정리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은 거겠죠. 제 뜻을 존중한다고요? 그런 말은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나 속일 수 있겠죠. 저한텐 통하지 않아요. 제가 속으로 아저씨를 어떻게 욕하는지야 아저씨도 잘 알 거예요?”그 말에 박진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문영란이 황급히 끼어들었다.“채아야! 어른에게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해!”“왜 못해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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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박진성은 박도윤을 바라보며 기자회견 준비를 재차 당부했다.언뜻 보기엔 문채아의 무례한 말에 격분해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는 애초부터 대대적인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다.지금 하는 말은 그저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할 명분을 쌓기 위한 구실일 뿐, 문채아가 어른을 공경하지 않았다는 것을 핑계로 삼은 것에 불과했다.소파에 앉아 있던 박도윤은 한참 고민한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금테 안경 너머로 비친 그의 옅은 눈동자에는 어둠이 번져 있었고 그 속에는 은근한 살기가 어른거렸다....그날 이후로 집안에는 먹구름이 드리우고 싸늘한 기운이 맴돌았다.다음 날 박도윤은 곧장 기자회견 준비에 착수했다.원래 강지유는 공금 횡령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퍼지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강의준이 수십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옥 펜던트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되면서 강씨 가문 전체가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그런데 뜻밖에도 박도윤이 문채아를 이용해 강지유의 평판을 되살릴 묘안을 내놓은 것이다.상처를 입었던 강지유의 마음은 순간 기쁨으로 가득 찼고 그녀는 기자회견을 손꼽아 기다렸다.문채아를 공개적으로 짓밟는 동시에 그 자리를 빌려 강재혁의 체면까지 깎아내리기를 바랐다.하지만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아 강지유는 불안해졌다. 박도윤을 좀처럼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데이트 약속을 잡으려 할 때마다 박도윤은 일이 바쁘다, 프로젝트가 있다는 말만 남기고 피했다.분노가 쌓인 강지유는 결국 사설탐정을 고용해 그의 일정을 추적했고 마침내 뜻밖의 장소에서 그를 붙잡았다. 그 장소는 다름 아닌 병원이었다.박도윤은 위출혈로 응급실에 실려와 입원해 있었다. 창백한 얼굴로 의식을 잃고 누운 그의 모습은 늘 보던 온화한 인상과 달리 병색이 짙었고 안경을 벗은 눈가에는 고통이 번져 있었다.강지유는 순간 안쓰러움을 느끼며 다가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박도윤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날 탓하지 마... 조금만 더 기다려 줘, 채아야...”강지유는 그대로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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