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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첫사랑만 구한 남자: Chapter 101 - Chapter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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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화

“이름이 고우빈이라고?”변도영은 그 이름이 어딘가 귀에 익었다.곧, 양준명이 조심스레 덧붙였다.“대표님이 투자 협력하고 싶다고 하셨던 UME 대표입니다.”변도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물었다.“동명이인인가?”“아닙니다. 고우빈 씨 본인 확인했습니다.”변도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본인이라고?’그런 인물은 변하늘조차 쉽게 만나지 못한다.그런데 신지아가 왜 고우빈과 함께 있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이 나오지 않았다.그의 의문을 눈치챈 듯, 수화기 너머의 양준명이 다시 말을 이었다.“조사해 보니 고 대표님에게 여동생이 한 명 있더군요. 이름은 고이진이고 한때 지아 씨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고 합니다. 그때는 신지아가 고씨 가문과 제법 가까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5년 전, 윤씨 가문의 차기 후계자 윤재혁 씨가 고이진 씨와의 정략결혼을 지정했는데 고이진 씨는 그걸 거부하고 도망쳤습니다. 결혼을 피하려고 영성을 떠난 후로 소식이 끊겼고 그때부터 지아 씨와 고씨 가문의 왕래도 완전히 끊겼습니다.”양준명의 말을 들은 변도영의 마음속 의문이 조금씩 풀려갔다.그도 예전에 신지아에게 아주 친한 친구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이름까진 알지 못했다.“변 대표님.”양준명이 말을 이었다.“혹시 신지아 씨가 대표님이 UME와 협력하려는 걸 알고 그걸 도와드리려는 생각으로 고우빈에게 접근한 건 아닐까요? 전에 그런 일도 있었잖아요.”예전에도 신지아는 변도영의 마음에 들기 위해 몰래 정보를 알아내곤 했다.변도영이 부성 그룹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엿듣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조용히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하지만 변도영은 누가 자기 일에 제멋대로 끼어드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예상대로 그는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그건 쓸데없는 짓이야.”여자를 앞세워 일을 해결하는 건 죽는 한이 있어도 싫었다.양준명이 낮게 설득했다.“그래도 대표님, 신지아 씨 입장에선 순전히 좋은 뜻이었을 겁니다. 너무 화내지 마세요. 다만 요즘은 두 사람이 꽤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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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신지아가 아이를 몰래 키운 다음 그 아이로 나를 붙잡아두려는 건가?’그런 생각이 스치자 그동안 이해되지 않던 모든 일들이 하나둘씩 맞아떨어졌다.“그래, 알겠어.”전화를 끊고 나서 변도영의 마음은 묘하게 복잡해졌다.그는 신지아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녀가 자기 아이를 낳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그런데 막상 그녀가 정말 자신의 아이를 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마음 한편이 이상하게 흔들렸다.싫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신지아는 그날 일과를 마친 뒤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고, 가방을 정리해 밖으로 나섰다.막 계단에 이르렀을 때, 마침 위층에서 내려오는 고우빈과 마주쳤다.“오늘은 일이 있어서 같이 못 갈 것 같아요.”고우빈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에 잠시 머물렀다.방금 손본 화장 덕분에 얼굴이 한층 또렷했고 손에 든 가방도 출근용 커다란 토트백 대신 작고 세련된 클러치로 바뀌어 있었다.곧, 그가 조용히 물었다.“변 대표님 만나러 가는 거야?”신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어떻게 아셨어요?”“그냥 감으로 맞췄지.”고우빈은 짧게 대답했고 신지아는 대수롭지 않은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의 표정이 살짝 굳어 있는 걸 본 신지아는 고우빈이 혹시 또 감정 문제로 불편해할까 싶어 이런 말을 덧붙였다.“변도영 씨를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 할머니께 인사드리러 가요. 아직 이혼이 제대로 결정 난 게 아니잖아요. 지금은 제가 아직 변씨 가문의 손주며느리니까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죠.”고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난 너를 믿어.”그는 신지아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한 번 결심한 일에는 절대 후회도, 번복도 하지 않는 여자.그러나 고우빈은 변도영을 믿지 않았다.어젯밤 그는 귀가하던 길에 변도영의 차가 단지 밖으로 나가는 걸 봤고 오늘은 또 갑자기 장미꽃까지 보냈다.그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그럼 저 먼저 갈게요.”신지아가 손을 흔들며 인사하자 고우빈이 불쑥 그녀를 불러 세웠다.“지아야.”엘리베이터에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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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신영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전화 안 받아. 문자해도 답이 없어.”신하나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 모습을 본 임문영이 옆에서 나직이 말했다.“하나야, 아마 바쁘겠지. 무슨 급한 일이 있었을 거야. 내가 보기엔 어제 너한테 꽤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그 말을 듣자 신하나의 얼굴에 금세 안도와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맞다.사실 그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고우빈은 자신에게 놀라울 만큼 부드럽게 대해줬다.목소리엔 온기가 있었고 대화에도 끝없는 인내가 묻어 있었다.그의 성격이 원래 까칠하다고 들었다.그런 고우빈이 자신에게 그토록 다정했다면 그건 분명 관심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그의 시선을 떠올리자 신하나는 저도 모르게 설렜지만 달콤함 뒤엔 아쉬움이 스쳤다.어젯밤 신지아만 그 자리에 오지 않았더라면.신지아 때문에 고우빈의 시선이 자꾸 다른 곳으로 향했고 심지어 그녀가 자리를 비우자 그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이런 생각이 들자 신하나의 얼굴에 불쾌함이 확 피어올랐다.“다 신지아 때문이에요!”이내 신하나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걔만 아니었으면 어제 더 오래 고우빈 씨랑 얘기할 수도 있었고 저한테 더 좋은 인상을 남겼을 거예요.”그녀는 이를 악물며 덧붙였다.“결혼까지 해놓고 아직도 고우빈 씨 주위를 맴돌다니... 정말 욕심도 끝이 없네요. 신지아는 오 대표님한테 당해도 싸요.”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임문영이 재빠르게 손을 뻗어 신하나의 입을 막았다.그리고 날카ㄹ운 눈빛을 보냈다.그들이 신지아를 오 대표에게 ‘소개’한 일은 신영호가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다.그가 아무리 신지아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해도 어쨌든 친딸이었다.술 접대야 시킬 수 있었겠지만 신지아를 오 대표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보냈다는 걸 알게 된다면 큰일이었다.임문영은 웃는 얼굴로 다급히 상황을 수습했지만 신영호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오 대표? 그게 무슨 말이야? 신지아랑 오 대표가 또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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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그날 임문영은 오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정말 일이 끝났는지 확인하려 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전화를 아무리 걸어도 받지 않았다.그녀는 잠시 찜찜했지만 곧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아마도 신지아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전화받을 틈이 없는 거겠지.’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걱정을 털어냈다.한편 옆에 앉아 있던 신하나는 여전히 고우빈에게 어떻게 접근할지를 두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고 있던 임문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금세 한 가지 묘책을 떠올렸다....그 시각, 신지아는 회사에서 야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중이었다.퇴근길에 교통체증까지 겹치는 바람에 변씨 저택에 도착할 즈음엔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차를 저택 입구에 멈춰 세우려던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어디야? 내가 데리러 갈게.”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변도영의 목소리에 신지아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그가 직접 데리러 오겠다고 말한 건 처음이었다.“괜찮아요. 거의 다 왔어요.”그녀는 그렇게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차를 정문 밖에 세우고 안으로 들어서자 정원 앞쪽에 서 있는 변도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의 표정엔 묘한 감정이 얽혀 있었다.“다들 기다리고 있어.”변도영의 짧은 말 속엔 왜 이렇게 늦었냐는 불만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신지아는 그제야 깨달았다.그는 자신을 걱정한 게 아니라 원망하고 있다는 것을.이미 늦은 건 사실이었기에 신지아는 변명하지 않고 조용히 사과했다.“죄송해요. 길이 좀 막혀서요.”그리고 곧장 거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오늘 신지아는 깔끔한 셔츠에 편한 슬랙스 차림이었다.소매를 가볍게 걷어 올린 덕분에 허리선이 드러나 있었고 묶은 머리 사이로 목선이 곱게 드러났다.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단정해 보였다.그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던 변도영은 시선을 거두지 못했고 의아함을 느낀 신지아가 다가오며 물었다.“왜요? 뭐 이상해요?”순간 자신의 속내가 들킨 듯 변도영은 당황해 말까지 더듬었다.“왜... 또 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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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사실 오늘 이 식사 자리는 원래 신지아가 올 자리가 아니었다.변하늘은 며칠 전 박수미와 이미 얘기를 맞춰둔 상태였다.애초에 단순히 박수미의 생신 준비를 논의하며 가족끼리 간단히 식사만 하자는 약속이었다.게다가 이나은이 갑자기 일이 생겨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변하늘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그럼 신지아 씨도 부를 필요 없겠네.’심지어 박수미에게 단단히 못을 박았다.“만약 신지아 씨가 오면 저는 안 갈래요.”박수미도 그 말을 받아들였기에 변하늘은 당연히 오늘 자리에 신지아는 없을 거라 믿었다.하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신지아가 있었다.더 놀라운 건, 그걸 변도영이 허락했다는 사실이었다.그녀의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가족들 앞에서 화내거나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그야말로 철없는 애처럼 보일 게 뻔했다.게다가 여기는 자기 집이었다.설령 누가 나가야 한다면 그건 자신이 아니라 신지아였다.변하늘의 싸늘한 말투를 들은 신지아는 잠시 멍해졌다.자신이 뭘 잘못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그러나 그녀가 무언가 말하기도 전에 박수미가 부드럽게 웃었다.“안 늦었어, 딱 맞춰 왔네.”그 말이 끝나자마자 주방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이 줄지어 나왔다.곧, 모두가 일어나 둥근 식탁 주위로 모여 앉았다.박수미가 맨 먼저 자리를 잡았고 왼쪽에 변승주가 그 옆엔 고미애가 앉았다.변하늘은 아무 생각 없이 고미애 옆에 앉았고 테이블엔 아직 세 자리가 남아 있었다.신지아는 예전처럼 박수미의 오른쪽에 앉았다.예전 같았으면 박수미는 당연히 변도영에게 신지아의 옆에 앉으라고 했을 것이다.하지만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변하늘은 그 이유를 짐작했다.‘아마 약속을 어긴 게 마음에 걸리는 거겠지.’변도영이 아직 자리를 고르지 않고 서 있는 걸 보자 변하늘은 일부러 환하게 웃으며 손짓했다.“오빠, 여기! 내 옆에 앉아.”그녀는 알고 있었다.변도영이 신지아 옆에 앉는 걸 싫어한다는 걸.박수미도 말하지 않았으니 이제 자신이 오빠를 편하게 해줄 차례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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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이제 와서 보니 신지아가 정말 자기 아이를 가진 게 분명한 것 같았다.그런데도 그녀는 일부러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변도영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지만 신지아는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박수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며칠 전 체중을 쟀을 때 확실히 살이 좀 쪄있었다.집을 나와 혼자 살기 시작한 뒤로는 더 이상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었고 식사도, 잠도 이전보다 훨씬 규칙적이었다.식탁 한편에서 변승주가 입가를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엄마, 곧 칠순이시잖아요. 이번 생신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저랑 미애가 준비 좀 하게요.”고미애가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그래요, 이번엔 크게 하셔야죠. 그동안은 소박하게 지나갔지만 이번엔 칠순이에요. 이런 경사는 성대하게 치러야지요.”그녀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박수미가 또 고개를 저을 거라 생각했다.박수미는 늘 검소했다.가문이 부흥한 뒤에도 허례허식엔 관심이 없었다.그래서 아무리 설득해도 생일이면 가까운 지인 몇 명만 불러 조촐히 밥 한 끼 하는 게 전부였다.그런데 이번엔 박수미가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이번엔 크게 하자.”고미애는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봤고 변승주도 예상치 못한 듯 눈썹을 올렸지만 곧 미소를 지었다.‘어머니도 이제야 마음을 여셨구나.’그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제가 명단 정리해서 보여드릴게요.”하지만 박수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명단은 필요 없어. 잔치는 연성시에서 제일 큰 식당으로 잡아. 그리고 몇몇 가문엔 초대장 직접 보내. 윤씨 가문도 포함해서.”그녀의 말투는 단호했다.“이번 생일잔치는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좋아.”순간, 식탁 위 공기가 미묘하게 흔들렸다.그 말의 의미는 모두가 알았다.무언가 중요한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신호.그리고 그 중요한 일이란 이제껏 미뤄온 유언장 문제일 확률이 높았다.고미애는 재빨리 변도영 쪽을 흘깃 바라봤다.‘부성 그룹을 이제 정말 물려줄 생각인가?’변승주 역시 같은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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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변하늘 역시 놀란 듯 휘둥그레진 눈으로 박수미를 바라봤다.처음엔 할머니가 잠시 착각한 줄 알았지만 박수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내가 방 두 개라고 했을 텐데? 두 개 준비해.”아무도 더는 토를 달 수 없었고 가정부는 머뭇거리다 고개를 숙였다.“네, 알겠습니다.”그녀는 곧장 박수미를 부축해 방으로 모셔갔다.박수미의 뒷모습이 복도 끝으로 사라지자 식탁에 남은 사람들의 시선이 엇갈렸다.서로 눈치를 보며 묘한 정적이 흘렀다.그러던 중, 변하늘이 피식 웃었다.“이제 알겠네요.”그녀가 일부러 들릴 만큼의 목소리로 말했다.“지난번에 누가 할머니한테 너무 싼 선물 드렸다면서요? 할머니가 그걸 보고 속으로 꽤 서운해하셨대요. 그러니까 지금 이러시는 거죠.”그제야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그 말이 꽤 그럴듯하게 들렸다.실제로 지난번 가족 식사 이후로 박수미의 표정은 늘 무겁고 냉담했다.그렇다면 오늘의 차가운 태도도 이해가 된다.한때는 두 사람을 이어주려 애쓰던 그녀가 오늘만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이유.이제 신지아를 더 이상 손주며느리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고미애는 신지아를 곁눈질로 흘겨봤다.마치 답답하고 못마땅하다는 듯한 시선.예전 같았으면 그녀도 나서서 분위기를 풀었을 것이지만 요즘 신지아의 행동들을 생각하면 굳이 나서야 할 이유가 없었다.‘이제 조금 배워야지.’고미애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우리도 가자.”그들의 집은 본가와 멀지 않았고 걸어서 3분이면 닿는 거리였다.이윽고 변승주가 우산을 챙기자 변하늘이 옆에 다가가 꼭 붙었다.그러다 문을 나서기 직전 그녀는 일부러 신지아를 향해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며 말했다.“새언니, 축하해요. 이제 곧 해방이네요.”그러곤 변도영을 향해 눈웃음을 지으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오빠, 축하해. 곧 진짜 자유네.”그 말에 신지아는 변도영을 지그시 바라봤다.그녀는 생각했다.‘이제 정말 우리 둘 다 벗어나는 거겠지.’하지만 변도영의 얼굴엔 그 어떤 해방감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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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그런데 아이의 이름이 변도영의 입에서 다시 흘러나오자 신지아의 온몸이 굳었다.그때의 통증이 마치 아직 몸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순식간에 다시 살아난 듯 그녀를 안에서부터 갉아먹었다.숨이 막혔다.가슴이 조여오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그리고 그런 반응은 그대로 변도영의 눈에 담겼다.그는 천천히 의미심장하게 한쪽 눈썹을 올렸다.“역시 아이를 낳았네. 나한테 의도적으로 숨기고.‘변도영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신지아, 네가 요즘 얼마나 대담해졌는지 알겠네. 이런 일까지 숨길 줄이야.”신지아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용히 대답했다.“숨기려던 건 아니에요.”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속엔 오래된 슬픔이 배어 있었다.이미 아이는 없었으니까.그리고 그 아이가 세상에 오기도 전에 신지아는 모든 걸 잃었다.그리고 이제 변도영은 곧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 했다.그녀가 그 일을 다시 꺼낼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지금 와서 그렇게 말하면 뭐가 달라져?”변도영은 비웃듯 말을 이어갔다.“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신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제 그의 불신은 너무나 익숙했다.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변도영이 믿든 말든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그녀의 침묵을 ‘죄책감’으로 읽은 변도영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애는 어디 있어?”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뭐라고요?”“내 아이.”변도영은 한발 다가서며 되물었다.“애를 어디에 숨긴 거야?”신지아는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서서히 깨달았다.‘아직 아이가 죽은 걸 모르네.’그렇다면 어떻게 그 아이의 존재를, 그리고 이름까지 알게 된 걸까?신희망이라는 이름은 그녀와 아이만이 공유하던 비밀이었는데 말이다.신지아는 너무 혼란스러웠다.하지만 그녀가 아무 말 하지 않자 변도영의 얼굴엔 조급함이 스쳤다.“신지아, 이미 다 알아냈어. 그러니까 더는 숨기지 마. 아니면...”“아니면 뭐요? 저를 또 쫓아낼 거예요? 아, 생활비를 끊을 건가요? 아니면 이번엔 일부러 또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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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제 의료기록에서 출산 기록을 못 찾은 이유는 그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이미 죽었기 때문이에요.”신지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변도영은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지만 신지아의 얼굴엔 눈물도, 절망도 없었다.마치 오래전에 끝난 일을 이야기하듯 조용하고 평온했다.그걸 본 변도영은 헛웃음을 터뜨렸다.“신지아, 나를 속이려는 거지? 그렇지?”그의 눈빛엔 분명한 조롱이 섞여 있었다.아무리 차가운 여자라도 자기 아이가 죽었는데 이렇게 덤덤할 리가 없다.변도영은 신지아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늘 그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고 관심 한 번에 상처받고 말 한마디에 흔들리는 여자였다.예전엔 길에서 주운 고양이 한 마리가 끝내 숨을 거뒀을 때도 신지아는 먼 해외에 있는 자신에게 전화해 울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그런 여자가 자기 아이를 잃고 이렇게 아무렇지 않다는 건 말도 안 된다.신지아는 변도영의 눈빛에 드러나 있는 감정을 읽어냈다.불신.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눈빛이 전처럼 그녀를 아프게 하진 않았다.이미 예상한 반응이었다.신지아는 씁쓸하게 웃으며 더 이상 변명하지 않고 그저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그러나 변도영이 재빨리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길을 막았다.“신지아, 이런 식으로 사람 놀리지 말고 솔직히 말해. 그 애는 대체...”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소리는 변도영의 주머니에서 나왔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고 화면엔 선명하게 이름이 떠 있었다.이나은.신지아도 봤다.그래서 변도영이 전화를 받을 거라 생각하고 조용히 옆을 지나치려 했다.하지만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전화를 바로 끊어버리더니 다시 신지아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가로막았다.“애는 어디 있냐고 물었잖아.”신지아는 깜짝 놀라서 그를 바라봤다.이나은의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 그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곧, 그녀는 짧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제가 거짓말 안 했다고 말해도... 당신은 믿을 리 없잖아요.”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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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도영아, 언제 돌아올 거야?”이나은의 물음은 그저 무심한 듯, 다정하게 흘러나왔다.마치 아내가 남편에게 건네는 일상적인 질문처럼 자연스러웠다.신지아도 예전에 그에게 똑같이 물은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건 냉담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신지아, 너 스스로 이게 귀찮다고 생각 안 해? 네 일이나 잘 챙겨. 난 누가 내 일에 끼어드는 거 진짜 싫어해.”그리고 신지아가 걱정돼서 전화했다고 하면 그는 늘 전화를 끊어버렸다.변도영은 늘 말했다.자신은 누가 엄마처럼 간섭하는 게 제일 싫다고.그렇지만 지금, 이나은의 같은 물음에도 그의 목소리는 놀랄 만큼 부드러웠다.“오늘 밤은 아마 돌아가기 힘들 것 같아.”그 한마디를 들은 신지아의 입꼬리가 조용히 올라갔다.그는 간섭받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간섭을 싫어할 뿐이었다.“그럼 오늘은 본가에서 잘 거야?”이나은의 목소리가 조금 흔들렸다.“너 내일 중요한 회의 있잖아. 괜찮아?”“괜찮아, 충분히...”“악!”수화기 너머로 갑작스러운 비명소리가 들렸고 변도영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무슨 일이야?! 나은아, 들려? 무슨 일 생겼어?”하지만 대답은 없었다.이어 들린 건, 통화 종료음뿐이었다.신지아는 그 장면을 조용히 바라봤다.그녀는 알고 있었다.이나은의 이런 ‘연기’는 모두 변도영을 불안하게 만들어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라는 걸.하지만 변도영은 그걸 몰랐다.그는 다시, 또다시 전화를 걸었다.세 번, 네 번.모두 연결되지 않았다.변도영의 표정은 눈에 띄게 초조해지더니 결국 그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그리고 단 한 발짝을 내디딘 순간 그는 손을 뻗어 신지아의 팔을 거칠게 붙잡았다.“같이 가.”신지아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고는 변도영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변도영 씨, 당신은 가는 길에 죽든 말든 상관없지만 전 아직 살아야 할 이유가 많거든요?”변도영은 분노 섞인 웃음을 흘렸다.“살고 싶다고? 이나은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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